보고 끄적 끄적...2016. 2. 19. 07:54

 

<얼음>

 

일시 : 2016.02.13. ~ 2016.03.20.

장소 : 수현재씨어터

대본, 연출 : 장진

출연 : 이철민, 박호산 (형사1) / 김대령, 김무열 (형사 2)

제작 : 문화창작집단 수다, (주)수현재컴퍼니

  

나는 장진의 영화보다 장진의 연극을 훨씬 더 좋아한다.

장진 특유의 유머도 좋지만 보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기발한 모호함을 아주 좋아한다.

(얼마나 좋았으면 장진 희곡집까지 찾아 읽었을까!)

특히 신작 <얼음>은.

지금까지 장진의 영화와 연극을 통틀어 손에 꼽을 수 있는 수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랫만에 번특이는 장진스러움이 빛을 발하더라.

게다가 박호산과 김무열의 연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혁"이라는 인물을 마치 내 눈 앞에 실제하고 있는 사람처럼 만들었다.

무대에는 단 두 명의 배우만 등장하지만

1인극 같기도, 2인극 같기도, 때로는 3인극 같기도 한,

아주 기묘하고(?) 특이한 작품.

특히 초반부에 혼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박호산의 힘은 엄청나더라.

객석을 바라보고 앉아서 대사를 하는데

순간적으로 내가 "혁"이라는 착각마저 들었다.

실제 마주앉아 대화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들어맞는 타이밍과 시선처리를 보면서

귀신같다는 생각까지 했다.

김무열 역시도 제대 후 정말 오랫만에 인생 케릭터를 만난것 같다.

(제대 후 첫복귀작이었던 <킹키부츠>는 여러모로 좀...)

박호산, 김무열 두 배우의 환상적인 케미에 여러 번 감탄했다.

김무열의 혀짧은 김순경과,

박호산의 입 튀어나온 윤계장의 변신도 아주 재미있고 기발했다.

그야말로 장진 연출력의 정점을 보여주는 장면 연결과 배우 활용(?)이라 하겠다.

 

"얼음"이라는게 그렇다.

액체 상태의 물이 영하의 온도에서 고체의 상태로 변하는 게 얼음이다.

그리고 이 작품 속에서 이 "얼음"이라는 단어는 중의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조형사(박호산)에 취조에서도 잠깐 언급되긴 했지만

"혁"이라는 인물은 mental disorder의 하나인 "다중인격" 처럼도 보인다..

"나"이기도 하고 "나"가 이니가도 한.

그래서 작품을 보고 난 후 진짜 범인이 누군지 더 혼란스러울 수 있다.

물인지, 얼음인자 아니면 또 제 3의 무엇인지...

장진의 의도적인 연출이 제대로 관객들에게 적중했다.

성공적인 트릭에 오감이 짜릿하더라.

(생각해보니 이 작품과 유사한 자릿함을 장진의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도 느꼈었다.) 

 “관객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볼지 50억짜리 대작 영화보다 긴장이 된다. 살면서 이런 순간이 있다는 것이 즐겁다. 본의 아니게 요즘 대학로에 예전 내가 쓴 공연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 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내가 무얼 할 수 있는, 지금 쓸 수 있는 작품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뭔가를 시도하는 새로운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

장진감독의 말에 절대, 절대, 절대 찬성하는 바이다!

장진의 똘기는 연극에서 빛을 발한다.

아마도 당분간 그의 신작 소식이 들리면 귀글 쫑긋 세우게 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꽃의 비밀>도 꼭 챙겨봐야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5. 6. 16. 08:31

 

<프로즌>

 

일시 : 2015.06.09. ~ 2015.07.05.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극작 : 브리오니 래버리(Byrony Lavery)

번역 : 차영화, 우현주

윤색 : 고연옥

무대 : 정승호

연출 : 김광보

출연 : 박호산, 이석준 (랄프) / 우현주(낸시), 정수영(아그네샤)

제작 : 극단 맨씨어터

 

연극 <프로즌>

무겁고 우울한 작품이라는 소문을 듣긴 했는데

직접 관람한 내 느낌은,

너무 치밀하고 은밀하고 그리고 집요한 작품이다.

그리고 배우들이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을것을 같아 안스럽더라.

김광보 연출은...

이번에도 배우들을 편하게 해주지 않았구나... 싶었다.

출연 배우들과 포스터의 느낌만으로는 <디너>가 떠올랐는데

실제로 연극을 보면서 떠올린 작품은 김광보 연출의 또 다른 연극 <스테디 레인>이었다.

두 작품은 분위기도, 뉘앙스도, 아주 유사하다.

 

용서할 수 있는 것과 용서할 수 없는 것.

용서받을 수 있는 것과 용서 받을 수 없는 것.

같은 말 같지만 명확히 따지자면 다른 의미다.

왜냐하면 용서의 주체가 완전히 다르니까.

"용서"라는게 그렇게 쉬울까?

자식을 처참하게 죽인 사람을 용서한다는게

정말 가능할까?

그걸 세상 사람 모두가 "죄"가 아닌 "증상"이라 한대도

가족에게는, 엄마에게는 "죄"여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들이 진실을 다 말했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아니 아주 계획적으로 비밀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선 랄프를 찾아간 낸시의 행동은,

용서를 가장한 타살일 수 있지 않을까?

아무런 형체도 담겨져 있지 않는 까만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그래선지 나는 참 섬뜩했다.

감춰진 사진 처럼 그 둘의 관계의 진실도 감춰져 있는 것 같아서..

랄프 역시 죄책감에서 비롯된 자살이 아니라

분열된 자아를 감당하지 못한 최후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랄프의 장례식에서

넨시가 아그네샤에게 남긴 마지막 말.

"그냥 고통스러워하세요..."

그 말이...

날 자꾸 그렇게 몰아간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7. 15. 08:14

<Death Trap>

일시 : 2014.07.09. ~ 2014.09.21.

장소 :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

대본 : 아이라 레빈 (Ira Levin)

연출 : 김지호

출연 : 박호산, 김도현, 윤경호 (시드니 브륄)

        김재범, 전성우, 윤소호 (클리포드 앤더슨)

        오미란, 이수진 (마이라 브륄) / 한세라, 정다희 (헬가 텐 도프)

        정윤민, 유병조 (포터 밀그림)

제작 : 아시아브릿지컨텐츠(주)

 

김수로 프로젝트 9탄 <데스트랩>

프로듀서 김수로에게는 정말이지 박수와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겠다.

벌써 아홉번째 작품이라니!

게다가 매번 캐스팅 또한 절묘하니

초연으로 올려지는 작품의 첫공조차도 망설임없이 예매하게 만든다.

박호산 시드니와 김재범 클리포드.

<데스트랩>을 이 두 배우로 시작한건 확실히 "신의 한 수" 였다.

보는 내내 두 배우의 디테일한 연기와 합(合)에 저절로 신명이 나더라.

사실 김재범과 박호산의 나이 차이가 많지 않아서 그림이 잘 그려지진 않았는데

실제로 무대에서 만난 두 배우는 그대로 시드니고 클리포드더라..

코믹스릴러라는 장르는 배우의 역향이 정말 중요한데

(균형을 잃게되면 코믹하지도 쓰릴하지도 않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에...)

두 배우는 마치 오랫동안 이 작품을 공연해온 느낌이다.

신선하면서도 참 노련했다.

디테일이 좋은 배우들의 무대는 확실히 좋다.

 

그리고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드었던 헬가역의 한세라.

그녀! 정말 물건이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웃음 포인트를 확실히 살려준다.

게다가 티이밍까지 어찌나 환상적이던지!

말투며 못짓, 연기까지 존재감이 확실해서 나도 모르게 헬가의 등장을 계속 기다리게 되더라.

마이라 브륄 역의 오미란의 연기가 살짝 공중에 뜨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힘과 연기가 정말 좋았다.

원래 연극은 멀티 캐스팅이라도 재관람을 안하는 편인데 이 작품은 꼭 해야겠다.

김도현 시드니와 전성우 클리포드가 너무 궁금해서...

개인적으로 클리포드 역에 전성우가 적격일 것 같고

김도현은 워낙 코믹물에 강한 배우라 박호산과는 완전히 다른 시드니가 나올 것 같다.

그리고 한가지 더!

무대 셋트와 음악 정말 좋았다.

특히나 막이 전환될 때 나오는 음악들은 아주 절묘하더라.

 

<데스트렙>

두루두루 첫 단추를 정말 잘 끼웠다.

오랫만에 재관람 의욕 돋는 연극을 만나니 엄마미소가 지어진다.

고맙다, 김수로 프로젝트!

지금처럼 지지말고 계속 선전해주길 진심으로 부탁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6. 9. 08:38

<줄리어스 시저>

일시 : 2014.05.21. ~ 2014.06.15.

장소 : 명동예술극장

대본 : W 세익스피어

연출 : 김광보

출연 : 손종학(시저), 윤상화(브루터스), 박완규(카시이스)

        박호산(안토니), 정태화(시인)    

제작 : 명동예술극장

 

세익스피어의 정치극 중 가장 완성도 있는 작품이라 평가받는 <줄리어스 시저>가 명동예술극장과 김광보 연출의 손에 의해 올려졌다.

솔직히 말하면,

관람을 결정했던 건 배우들에 대한 기대감보다

김광보 연출과 명동예술극장의 독자적인 뚝심에 대한 믿음이 때문이었다.

게다가 일본을 다녀온 후 처음 보게되는 연극이라 기대감도 컸다.

(대략 열흘의 공백에 불과했음에도 주말을 공연없이 보내니 많이 허전하더라)

작품을 보기 전에 타인의 후기에 동요되는 편은 아니지만

들려오는 후기들이 좀 심상는 않아 살짝 걱정은 했다.

직접 보고 난 느낌은...

솔직히 혼란스럽고 모호하다.

이게 정말 "김광보 연출"이 맞나 의심도 했다가

"김광보 연출" 맞네! 인정도 하다가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지?

혼자 극과 극을 오가는 질문을 반복하면서 치열한 관람하게 관람했다.

 

무대와 조명, 의상과 음향은 정말 좋았다.

전체적인 해석과 표현도 나쁘지 않았다.

마피아세계를 보는 듯한 느낌도

메트리스의 키아노리브스를 대놓고 페러디한 안토니의 느낌도 좋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2년 전 공연된 삼국유사 시리즈 중 한 편인 <로맨티스트 죽이기>가 자꾸 오버랩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충분히 이해도 됐다)

그리고 원작에 등장하는 여자를 제외시키고 오직 열여섯명의 남자배우로만 무대를 꾸민다고해서

내심 아주 역동적이고 남성적인 작품일거라 기대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본 느낌은,

아주 많이 소란스럽고 수다스러웠다.

심지어 브루터스(윤상화)와 카이사르(박완규)가 대립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동네 아줌마들의 썰전을 방불케하더라.

당황스러웠다... 아주 많이...

게다가 시종일관 으쌰으쌰하면서 우스꽝스럽게 뛰어다니는 배우들과

난데없이 벌떡벌떡 일어서던 시체들.

뛰어다니는 것 자체는 충분히 이해됐고 이상하진 않았지만

굳이 그렇게 코믹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순간 내가 태능선수촌에 와 있는건 아닌가 착각까지 들더라.

(열맞춰서 참 잘도 뛰더만!)

 

가장 결정적으로 충격이었던 건 브루터스 윤상화.

시종일관 아무런 감정없이 너무나 열심히, 너무나 성실히 읽어나가던 대사들.

차라리 표정까지도 그렇게 무미건조했다면 좋았을텐데 그건 또 너무나 비장하고 심각하더라.

대사와 표정 사이의 어마어마한 괴리감.

보는 내내 너무 많이 괴로웠다.

결국은 도저히 참아내지 못하고 브루터스가 나오는 장면마다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분명 윤상화 배우가 맞긴한데 내가 지금껏 알던, 봤던 윤상화는 도무지 아닌 것 같다.

이게 도대체 뭐지?

김광보에 의해 의되된 연출?

<줄리어스 시저>라는 제목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사실은 시저도, 브루터스도 아닌 안토니에게 포커스를 내주기 위한 계획된 의도었을까?

상당히 모호한 신파극 한편을 본 느낌이라 지금까지도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차라리 아예 난해했다면 이해 자체를 포기하고 순수하고 관람이라도 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토니 박호산의 연기는 눈을 사로잡았다.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이해됐던 단 한 명의 인물.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박호산이 보여준 웃음은

살인마처럼 잔인했고 독사처럼 사악했다.

 

부화뇌동(附和雷同)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게 이게 아니었을까?

이 작품을 본 내 느낌도 딱 그렇고!

국민이란 그런 것이고

권력 또한 그런 것이다.

 

Et tu, Brute...

(누군가의 뒷통수를 노리는 누군가는 언제나, 항상, 늘 있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2. 14. 09:16

<명동 로망스>

일시 : 2014.02.08.

장소 :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대본 : 조민형

작곡 : 최슬기

연출 : 김민정

음악감독 : 구소영

출연 : 진상현(장선호), 원종환(박인환), 박호산(이중섭)

        안은진(전혜린), 손종학(경찰), 박범정(마담)

주최 : 중구문화재단, 충무아트홀

 

작년에 "뮤지컬하우스 블랙 앤 블루" 공모 포스터를 보고 이번에는 어떤 창작품들이 나올까 궁금했었는데 최종 다섯 작품이 선정이 되 프리프로덕션 공연을 시작했다.

2월 5일부터 3월 3일까지 단 하루 2회 공연의 행운(?)을 거머쥔 작품은

<Airport baby>, <명동 로망스>, <난쟁이들(Dwarfs)>, <카인과 아벨>,

<X-Wedding> 이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앞의 세 작품 관람신청을 선착순으로 받았는데 

제일 궁금했던 <명동 로망스>에 운좋게 당첨됐다.

(덕분에 오래 전에 예매해뒀던 연극 하나를 취소했다.)

몇 달 전 김재범이 "그리다"와 "생명수"를 부르는동영상을 봤었는데

느낌이 참 좋아 기대가 됐던 작품이다.

정식공연이 아니라 100% 완성도를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과연 이 작품이 상업작품으로서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보여주게 될지도 궁금했다.

 

2014년 현재와 모더니즘으로 대표되던 1955년으로의 시간여행.

흥미로운 소재이긴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뻔한 모습만 보이고 성급하게 끝낼 위험성도 있기 때문에...

 

<명동 로망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다. 

워크샾 공연에서는 연습기간도 짧고 무대셋트도 빈약하긴 했지만

이야기 구성 자체는 아주 좋았다.

중간중간 깨알 재미를 주는 장면도 과하지 않으면서 이야기 속에 잘 스며들어 있었고

무엇보다 넘버들이 아주 좋더라.

이번 워크샾 공연에서는 캐스팅이 살짝 어색하긴 했지만

이야기를 조금만 더 보강하고

적절한 배우들을 캐스팅한다면 상업작품으로서 성공적인 작품이 충분히 될 것 같다.

가령 선호는 조금 더 소년의 느낌이 들었면 좋겠고

그런 선호에게 고스트페인터를 거래하는 사람은 친우가 아니라 선배로 설정하면 좋겠다.

이중섭은 개인적으론 박호산보다 김재범의 표현이 훨씬 좋더라.

김재범은 시대를 잘못 만난 불운한 천재의 세기말적인 우울과 예술가가 갖는 천진함이 느껴졌었는데

박호산은 가난한 노동자의 무력과 노곤함이 강하게 느껴져서 좀...

그래서 후반부에 함께 떠나자는 선호에게

돌아가 너만의 그림을 그리라는 장면이 강하게 다가오지 못했다.
그림에 대한 이중섭의 아득하고 간절한 그리움도 깊게 느껴지지 못했고...

특히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재 박호산의 목상태가 좋지 못해 노래도 많이 흘들렸다.

그리고 1955년과 어울리는 노래도 몇 곡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예를 들면 윤심덕과 김우진이 주인공인 뮤지컬 "글루미데이" 처럼.

그냥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 ^^

그렇지만 김재범 이중섭은 꼭 보고 싶긴 하다.

 

근데 사실 제일 걱정스럽고 궁금한건,

이 작품이 실제 공연될때

관객들이 3인의 예술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는거다.

물론 황소의 화가 이중섭을 모르리야 없겠지만

박인환과 전혜린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날도 이중섭 말고는 마담이나 경찰처럼 가상인물이라 생각하는 관객도 꽤 되던데...

그렇디면 그들에게 이 작품은 단시 시간여행을 하는 환타지에 불과할텐데...

그런 의미에서 윤심덕과 김우진은 오히려 유명인인 셈이다.

어쩌면 <명동 로망스>를 두고 우리가 걱정해야 할 건

작품 자체가 흥망성쇄가 아니라

관객들의 취약한 현대사알지도 모르겠다.

자칫 하다간 역사속 실존했던 인물이 환타지 속 가상의 창조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뭐라고 또 다시 별 걱정을...

더 나아가기 전에 이쯤에서 오지랖 후기를 끝내야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2. 5. 08:20

<December>

일시 : 2013.12.16. ~ 2014.01.29.

장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대본 : 장진

연출 : 장진 

출연 : 김준수, 박건형 (지욱) / 오소연, 김예원 (이연/화이)

        박호산, 이창용, 이충주 (훈) / 김슬기, 조연진 (여일)

        임기홍, 김대종 (성태) / 송영창, 조원희 (아버지) / 홍륜희 외

제작 : (재)세종문화회관, NEW

 

12월 초반에 본 이 작품을 다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혹평에 장진 감독도 엄청난 자괴감을 느꼈겠지만 어찌됐든 이 작품은 성공적인 작품은 아니다.

그런데 공연 중에 피드백을 하면서 계속 수정을 했단다.

드라마틱한 변화가 기대하기엔 베이스부터 심각한 문제가 있는 작품이지만 그래도 수정을 헸다는 말에 재관람을 선택했다. 

박호산이 김광석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지도 궁금했고,.

그랬더랬는데...

수정을 거듭했다고 하더라도 이 작품은 참 견디기 힘든 작품이다.

여전히 난잡하고 산만하고 수다스럽다.

보는 내내 민망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

장진식 유머는 연극에서는 모르지만 뮤지컬에서는 정말 아니다.

이런 쓸데없는 유머코드만 줄어도 런닝타임이 확 줄어들겠다.

"난 알아요" 가사로 되도 않는 말장난을 하는 거 군인들,

개를 끌고 다니며 "점프"를 외치는 억지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도,

사투리리 쓰는 서울 아이나 페라로로쉐 초콜렛, 아저씨 운운하면서 원빈을 들먹이는 것도, 공연장의 좌석찾는 장면도

참 참기 힘든 유머다.

이런 식의 유머... 개인적으론 관객 모독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장진 작품에 매번 나오는 불멸의 여주인공 이름 "유화이"도 뮤지컬에서까지 만나니 어쩐지 식상하고!

성태의 장면들은 전부 없애버렸으면 좋겠다.

그 좋은 "서른 즈음에"를 이렇게 싹뚝 잘라내버리다니...

여전히 보고 난 후에 기억에 남는 노래가 없다.

이럴 수 있나?

김광석 노랜데...

이 작품을 보면서 <그날들>이나 <광화문연가>가 아주 괜찮은 주크박스 뮤지컬이었구나 뒤늦게 감탄했다.

새로 추가된 편지 장면과 훈 아버지 요양소 장면은 그 장면 자체로는 나쁘지 않았는데

앞뒤 연결되는 부분들이 영 매끄럽지 않다.

왠지 급하게 짜맞추려고 했던 의도가 여실하게 보여서...

요양소에서 훈과 아버지가 나뉜 대화가 참 좋던데

장면 자체가 은근히 묻혀버려서 효과적으로 살지 못했다.

송영창의 담담하면서도 쓸쓸한 대사톤도 참 좋았는데 아쉽다.

...... 없어진걸 찾는게 죄냐? ...... 너희한테서 사라졌다고 모두에게서 사라지는거 아니다. 시간이 오래 되었다고 기억에서 멀어져간다고 다 잊혀지는 거 아니다. 난 잊을 수가 없는데... 내 눈앞에 보이고, 내 손끝에 만져지는데 왜 잊으라고만 하냐? 난 잊을 수가 없는데......

김준수와 박호산이 친구로 나오는건 연기래도 참 민망하더라.

그리고 무엇보다 그저 병풍에 불과했던 훈의 캐릭터는 안습이었고...

(참 초라하고 의미없더라.)

 

그냥 다시 보지 말 걸 그랬다.

이렇게 또 다시 실망하고나니 더 막막하고 답답해졌다.

솔직히 이 작품 개인적으론 다시 올라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두루두루 못할 짓이다.

관객에게도, 배우에게도, 김광석에게도!

 

비어있는 객석을 보면서

장진의 발연출은 김준수의 인기보다 훨씬 더 강력했음을 알았다.

JYJ 준수만으로도 안되는 게 있다는 거,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3. 15. 08:11

<광해, 왕이 된 남자>

일시 : 2013.02.23 ~ 2013.04.21.

장소 :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출연 : 배수빈, 김도현 (광해/하선) / 박호산, 김대종 (허균)

        손종학, 김왕근 (조내관), 황만익, 임화영, 김진아 외

제작 : (주)비에이치엔터테인먼트

 

영화 <광해>가 이백만 관객이 들었다던가!

그래선지 엄창닌 흥행기록을 세운 이 영화 가 연극으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많이 됐다.

영화의 성공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서 연극의 성공으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영화에서 1인 2역을 했던 배우 이병헌의 임펙트가 워낙에 강해서 어떤 배우가 됐든 생각보다 쉽게 도전하기 힘든 배역이 되겠구나 싶었다. 

어찌됐든 영화와의 비교는 피할 수도 없는 일일테고...

영화적 기법을 연극 속에서 활용하는 것도 당연히 한계가 있을텐데

하선과 광해의 대면을 어떻게 표현하겠다는 건지 막막하기도 했다.

(실루엣 처리? 마술같은 분장의 효과? ... 모두 정답은 아니올시다!)

암튼 여러가지로 좀 궁금했었다.

솔직히 나는 배우 이병헌이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어쩌면 내 취향이 아닐지도... 돌 날아오는 소리 들린다...)

이 영화에서도 오히려 눈을 띄었던 건 킹메이커 조승룡과

장비같은 오버스런 털분장의 우수꽝스러웠던 도부장 김인권의 연기였다.

그래도 이병헌 때문에 넋을 놓았던 장면이 있긴 했다.

영화 초반에 빨간 옷(?)을 입고 아주 시니컬하고 날선 표정으로 앉아있던 바로 그 모습!

포스... 엄청 대단났다!

사실 이 장면의 전체적인 분위기엔 나도 기가 완전히 죽었었다.

 

이 어마무지한 포스의 주인공을 과연 누가 감당하게 될까 궁금했는데 배수빈, 김도현이란다.

킹메이커 허균은 박호산과 김대종.

어! 얼핏 그려봤는데 그리 나쁘지 않다.

한번쯤 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선택한 캐스팅이 배수빈과 박호산!

사실 김도현과 배수빈을 두고 살짝 고민하긴 했지만 좀 섬세한 표현을 보는 쪽으로 결정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했던 것만큼 좋았던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좋았다.

(영화가 아닌 연극으로 처음 만났다면 아마도 훨씬 더 좋았으리라.)

상황의 전개와 표현에 대한 고민들이 역력히 보인다.

일부러 그랬는지 무대 자체도 오로지 인물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영화와는 다른 인물의 설정과 사건의 전개도 좋았다.

가령 도부장도 가짜 왕을 만드는 공모자에 포함된다는 것과

도부장, 어의, 허균이 결국 폭군 광해군의 칼날에 도륙이 되고 만다는 설정은 의외다.

아마도 환상이었겠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중전의 품에서 하선이 죽는 설정도 꽤 드라마틱하다.

영화에선 하선은 안 죽는다.

(왜? 이병헌이니까! ㅋㅋ)

영화의 미개봉 결말에서도 중전이 등장한다.

하선이 시골마을에서 입담을 자랑하는 장면에서 환한 웃음과 함께 꿈결처럼.

그 장면에서 이병헌의 눈빛!

첫 장면 광해의 그 눈빛만큼이나 좋았다.

그런데 도대체 이 장면을 왜 삭제했을까?

시작부분 광해의 날선 눈빛과 끝부분 하선의 꿈결같은 눈빛을 그대로 대비시키면

훨씬 더 임펙트가 강했을텐데... 

 

 

배수빈은 무대 위에서 성량 조절에는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했다.

그렇게 생소리를 지르다간 조만간 목이 감당해내지 못할 것 같은데 걱정이다.

광해와 하선의 구분도 좀 모호헸다.

"경의 뜻대로 하시오!" 라는 대사와 함께 극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야 하는데

의도만큼 이 장면을 효과적으로 살려내지 못했다.

더 위엄있고 근엄한 톤이었다면 좋았을텐데...

개인적으로 당황스러웠던 건,

광대들이 나와서 18번째 후궁 운운 하면서 퇴장할때까지 배수빈을 못 알아챘다는 거다.

물론 탈을 쓰고 나오니 얼굴을 확인할 수야 없었지만 목소리가 너무 달랐었는데...

광해와 하선 때문에 놀랐던 게 아니라

탈을 쓴 하선과 탈을 쓰지 않은 하선 때문에 놀란 셈이다.

때때로 배수빈의 열정과 열심이라는 in put은 과한 표현이라는 out put 을 남겼지만

배우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무대와 배역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날 공연에서 왕의 의상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연기하면서 계속 의상에 신경쓰는 배수빈의 모습은 좀 그랬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배수빈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

(특히 표정 연기는 정말 좋았다!)

 

허균 박호산.

이 날 나는 배우 박호산의 다른 면을 목격했다.

뭐랄까?

좀 다른 공간의 인물같았다고나 할까?

이쪽에 있으면서 저쪽을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고 표현한다면 이해가 될까!

결말을 몰랐을때는 이런 해석이 좀 혼란스러웠는데

작품을 보고 나니 배우 박호산의 계산된 인물 설정이었는지도 모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톤도 꽤 인상적이었다.

결코 큰소리 치지 않으면서 좌중을 주목하게 만드는 그런 톤이랄까!

박호산이라는 배우가 과연 사극 작품에도 어울릴까 싶었는데 꽤 괜찮았다.

뻔히 보이는 빅그적인 결말을 아주 담담하고 단백하게 표현했다.

이게 또 의외의 여운을 남았다.

대사 타이밍은 또 얼마나 기막히던지!

아무래도 허균이라는 작품 속 인물이

박호산이라는 배우에게 남다른 의미로 남는 배역이 될 모양이다.

(그에게도, 그리고 또 나에게도)

 

조내관 김왕근, 박충서 황만익의 연기와 목소리톤은 참 좋았고

대사할 때 타이밍도 정확했다.

출연한 배우들 모두 대체적으로 안정적이고 좋았지만

다만 중전은 대사와 연기, 발음도 많이 어설펐고

사월이는 영화에 나오는 인물 그대로 복사하듯 표현돼 많이 아쉬웠다.

몇몇 장면들은 연출의 묘미가 돋보였다.

가령 대신들의 윤대 예행 연습(?) 장면과

"경의 뜻대로 하시오!"와 함께 연결되는 장면의 전환,

하선이 꿈속에서 진짜 광혜와 대면하는 장면은 특히나 인상적이다.

배수빈의 열연도 아주 좋았고....

이 장면을 감내하면서 배우 배수빈은 고독하지 않았을까?

"너는 나의 과거고, 나는 너의 미래다! 결국 너는 네 안에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엄청난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대사라 듣는 것만으로도 섬득했었다.

극의 완급을 이끌고 해석해주던 고수의 북장단은 섬세했고

무대를 감싸던 오묘한 색감과 핀조명을 이용한 명암의 구획도 효과적이었다.

영화에서 느껴진 강한 임펙트는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요한 중심이 간곡하게 담겨있다.

아예 다른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만큼!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영화보다 연극의 은근함과 고요함이 훨씬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어쩌면 내겐 영화가 "광해'였고

연극이 "하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아마도 나는 진짜보다 가짜가 더 그럴듯한 세상에 사느라 많이 힘들었나보다.

  일순간 단번에 깨부수는 광폭함보다

  작은 정으로 오래 깨서 부서뜨리는 인고의 희망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오래 견디는 건 결코 무능때문이 아니다.

  그건 "어쩌면..."과 "혹시...." 로 연결되는 희망 때문이다.

  간곡함이란 놈은,

  힘이 쎄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11. 9. 08:27

<빨래 2000회 기념 공연>

부제 : The Memory

일시 : 2012.10.12. ~ 2012.11.11.

장소 : 학전그린 소극장

대본 : 추민주

작곡 : 신경미, 한정림, 민찬홍

제작 : 명랑씨어터 수박

출연 : 박호산 (솔롱고) / 이보라 (서나영) / 강정임 (주인할메) 

        김송이 (희정엄마) / 윤성원 (구씨) / 김지훈 (빵)

        최호중 (마이클) / 송은별 (여직원)

 

창작 뮤지컬 <빨래>가 벌써 2000회가 넘었단다.

올 초에 12차 팀 이진규 솔롱고와 최주리 서나영을 봤었는데 특별한 기념 공연을, 게다가 박호산이 솔롱고로 몇 번 출연한다고 해서 일부러 예매를 했다.

몽고에서 온 불법체류 노동자 솔롱고와 서점 계약직 직원 강원도 처녀 서나영의 힘겹고 서러운 서울살이 이야기.

사회의 주류가 아닌 소외받고 무시받는 쪽방살이 군상이 만들어내는 서럽고 뜨거운 이야기 <빨래>

예전 관람 때도 보는 내내 좀 막막하고 서글펐었다.

극적인 효과를 위한 과장된 이야기라고 말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실제 현실은 작품 속 내용보다 훨씬 더 비루하고 남루하고 서럽다.

게다가 이 뮤지컬을 본 직후 손에 잡은 책이 공교롭게도 박범신의 <나마스테>였다.

불법체류자 신세로 아무 말도 못하고 뭇매를 맞는 몽골 청년 솔롱고에 눈이 맑은 페루의 청년 카밀은 정확히 겹쳐진다.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다.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우리 자신이 솔롱고였고 카밀이었다.

코리안 드림보다 더 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대한민국의 솔롱고와 카밀.

그런데 이제는 다 잊었다.

......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좀 더 잘 살자고 데려오고, 오게 만든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배고프지 않은 우리가 하기 싫는,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들을 시키기 위해, 온갖 불법적인구조와 착취의 시스템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놓고서 그들을 불러들인 후, 이제 구조개선을 명분 삼아 그들을 무자비하게 내몰겠다는 뻔뻔하고 잔인한, 내 조국에 대해 그 순간 나는 너무도 화가 났다 ......

책 속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한국 정부가 우리에게 불법체류자가 되라고 권한다."

산업 연수생으로 들어왔다 불법체류자가 되어 여권도 월급도 받지 못하고 끝없는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

한국인보다 얼굴색이 조금 더 검기 때문에,

한국인보다 가난한 나라에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인이 하지 않으려고 하는 더럽고, 위험하고, 힘들 일을 하는 그들의 코리안 드림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무너뜨렀던가!

정확히 말하면,

대한민국의 산업, 그 가장 밑바닥을 채우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스리랑카, 네팔, 가차흐스탄, 방글라데시, 필리핀, 베트남...

이들이 우리 산업의 근간이다.

우리는 이들에게 "너네 나라로 가!" 라며 함부러 말 할 자격이 없다!

그들이 너네 나라로 가버리는 순간 우리 산업의 근간은 무너지고 흔들린다.

우리는 왜 이렇게 빨리 말리는 시누이같은 존재가 됐을까?

우리가 그들이었었는데...

<빨래>의 한 구절처럼 그들도 때리면 아프고, 슬프면 눈물 흘리는 사람들인데...

참으라는 말,

이들에겐 너무나 잔인하고 무책임한 폭력의 언어다.

<빨래>도 <나마스테>도 참 절망적이고 아픈 현실이고, 처절한 삶이다.

그나마 뮤지컬 <빨래>는 일말의 희망을 꿈꾸고 있어 다행이다.

비록 그 꿈이 현실에서 도무지 실체적인 형상으로 나타나주지 않을지라도...

Korean dream은 도대체 언제까지 impossible dream이 될까!

 

배우들은 솔롱고 박호산과 서나영 이보라를 빼고는 전체적으로 좋았다.

박호산은 솔롱고를 하기에는 사실 불혹을 넘긴 나이가 너무 부담스럽다.

(보면서 내내 기념 공연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했다.)

이날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박호산의 노래는 많이 힘겨웠고

대사는 난감할 정도로 어색했다. 

한국말을 못하는 외국인이 아니라 뭐랄까 지능이 좀 떨어진 지적장애우의 느낌이랄까?

그래도 다행인 건,

극이 진행될수록 두 주인공이 점점 자리를 잡아갔다는 사실.

(내가 지금까지 본 박호산의 작품 중에서 최고의 컨디션 난조를 보인 작품이다.)

확실히 현재 공연중인 12차 팀에 속해 있는 김송이(희정엄마)와 송은별(여직원)은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제 역할을 충실해 해줬고

주인할머니(강정임), 마이클(최호중), 구씨(윤성원), 빵(김지훈)도 참 잘 해줬다.

두 주인공을 제외하면 모든 배우가 멀티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많은 배역들은 참 능청스럽게 잘 해낸다.

아무리 생각해도 <빨래>의 주인공은 확실히 누가 뭐래도 이들임이 분명하다!

이들이 아니었으면 난 참 지루하고 힘들었을 것 같다.

 

기념 공연...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기념 공연일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10. 24. 08:03

<벚꽃동산>

일시 : 20.12.10.12. ~ 2012.10.28.

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작가 : 안톤 체홉 (Anton Pavlovich Chekhov)

연출 : 오경택

출연 : 이석준, 박호산 (로파힌) / 우현주 (라네프스카야)

        김태훈 (가예프) / 정수영 (바랴) / 전미도 (아냐)

        정동환, 최용민, 정승길, 권지숙, 이재인, 신용진, 박채원

주최 : 극단 맨씨어터

 

안톤체흡의 작품들은,

솔직히 어렵고 힘들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톤 체홉의 작품이 올라오면 꼭 챙겨보는 이유는 너무나 서정적이고 섬세하고 아름다워서다.

이야기와 인물들 속에 빠져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황홀해진다.

맨씨어터는 작년에도 지금까지와 약간 다르게 해석한 안톤 체흡의 <갈매기>를 올렸었다.

보고 싶었던 작품인데  예매를 해놓고도 보지 못해서 이번 <벚꽃동산>은 놓치지 말자 생각했었다.

안톤 체홉의 마지막 작품 <벚꽃동산>

안톤 체홉의 작품 중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작품을 체홉은 스스로 "코미디"라고 정의했고,

1904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을 올린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는 "비극"이라고 정의했다.

나는 이 작품을 화사하고 찬란한 비극이라고 말하고 싶다.

원작을 읽고 봤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원작을 꼭 챙겨보는 편인데 이상하게 안톤 체홉의 작품은 무대뽀 정신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출연배우들!

도대체 이 대단한 배우들을 어떻게 이 한 작품에 전부 섭외할 수 있었을까?

분명히 이 작품엔 뭔가가 확실히 있으리란 기대감.

솔직히 출연진에 기가 팍 죽었었다.

 

20세기 초 러시아.

농노제 폐지로 시작된 러시아의 변혁은 러시아의 모든 것들을 빠른 속도로 바꿔놨다.

과거 부유한 영주의 자손이었던 라네프스카야(우현주)와 가예프(김태훈)의 벚꽃동산도

급기야 경매에 넘어갈 처지가 되버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직 평온하다.

그런데 어쩌지!

난 이 오누이의 평온과 순수가 너무나 눈물겹게 아름답고 예뻤다.

벚꽃동산을 별장지로 임대해서 돈을 벌라고 권유하는 로파힌(박호산).

두 오누이의 환상을 현실에 끌어오기 위해 끝없고 집요한 설득을 거듭하지만

오누이는 너무나 태평해서 심지어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마지 꽃비 내리는 따사로운 봄날 벚꽃동산에 피크닉이라도 와있는 느낌이다.

오히려 절박하고 간절한 건 로파힌이다.

오누이와 로파힌의 대비되는 모습이 연극을 보는 내내 참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주변의 사람들.

뭔가 깊숙히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그냥 지나가면서 무슨 일이 생겼나 잠깐 시선을 주고 곧 제 갈 길 가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오직 로파힌만이 절박할 뿐이다.

실제로 이 "벚꽃동산"을 지키고 싶은 사람은 사실 로파힌 한 사람 뿐인 것 같다.

이 아름다움 벚꽃동산의 벚꽃들이 잘려나가든,

품위없는 별장지가 되어 사람들의 소란 속에 묻혀버리든 상관없다.

어쨌든 지켜낼 수는 있으니까.

 

박호산의 로파힌은 참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이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석준은 로파힌을 어떤 인물로 해석했을지 궁금하다.)

사실은 작품 속 인물 들 중에서

벚꽃동산을 제일 지키고 싶어한 사람, 너무나 벚꽃동산을 원했던 사람은 로파힌이 아니었을까?

변화를 보는 시선에 옳고 그름을 정의하긴 어렵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지금 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잊혀진고 없어진다.

그리고 인간은 그 잊혀진 것들을 또 서럽고 아프게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정말 바보같이...

  

벚꽃동산에 있던 모든 사람이 떠나고 홀로 남겨진 피르스(정동환)의 독백,

그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그리고 별 비중없어 보이는 피브스에 왜 정동환이라는 배우가 필요했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툭툭 베이지는 벚나무와 생의 마지막 안식을 향해 걸어가는 피르스의 발자욱 소리.

 "떠나셨어! 날 잊어버리셨어!

  괜찮아!, 그래!

  ...... 산 것 같지도 않은 게 한평생이 다갔군.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아무것도. 에이... 이런 바보"

피르스의 마지막 대사가 주는 무게감은

누워있는 피르스 위로 관뚜껑처럼 닫히는 무대 장치와 함께 가슴 속에 턱 얹힌다.

희극과 비극을 오고 간 <벚꽃동산>을 결국

이렇게 깊은 무게잠과 존재감으로 맘 속 깊이 파고 들었다.

파괴와 변화 뒤엔 그 폐허를 딛고 새로운 희망과 미래가 태어난다.

어쩌면 벚꽃동산에 춤추던 그 무수한 꽃잎들은 일종의 팡파레였을지도 모르겠다.

눈물나게 아름답고 서럽게 찬란한 결말을 보면서 나는 눈이 부셨다.

 

무대는 아름다웠고

배우들의 딕션은 정확했으며,

연기는 진중하고 섬세했다.

작품과 무대에 대한 깊은 경외심이 느껴졌다.

(정말 진심으로 멋있었다. 이 배우들...)

커틑콜에서 정동환 배우를 향해 출연 배우 모두가 박수치며 존경의 모습을 보이는 장면은,

뭉클할만큼 감동적이었다. 

이 작품...

아마도 오래동안 간직될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4. 27. 05:49

 

<해마>

 

일시 : 2012.03.31. ~2012.06.03.

장소 : 소극장 모시는 사람들

극본 : 김인경

연출 : 김정숙

출연 : 윤상호, 정종후, 오현석, 차명옥 (어르신)

        윤영걸, 이재훤, 박호산, 고훈목 (자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일요일 연극 한 편을 봤다.

hippocampus.

인간의 두개골 속에 보호되어 있고 중추 신경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뇌의 기관 해마.

해마는 온 몸의 신경의 지배하는 부분으로 기억 중추의 핵심이다.

인간의 기억은 극 속 어르신의 대사처럼 "부조리"하다.

일방적인 왜곡과 오류를 의도적으로 반복할 수 있다.

예전에 감동 깊게 본 연극 <염쟁이 유씨>의 김인경 작가의 또 다른 작품 <해마>

대학로의 장기 공연 작품이었던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 작전>의 김정숙 연출.

등장인물은 어르신과 자네 두 사람뿐이다.

무대로 심지어 조금은 조악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연극.

꽤 흥미롭고 재미있다.

만 원의 관람료가 퍽이나 미안해질만큼 배우들의 연기는 성실하고 섬세하다.

총 4팀이 페어를 이뤄 열린가격으로 3월 말부터 공연 중이다.

연극판에서 거의 20년을 넘긴 배우들의 연기와 해석을 찬찬히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솔솔할 것 같다.

게다가 재관람시는 50% 할인이란...

솔직히 이런 가격으로 극단이 운영 될까 싶다.

vateran 해마(윤영걸, 윤상호), analyze 해마(이재훤, 차명옥), detail 해마(오현석, 박호산), active 해마 (정종훈, 고훈목)

모든 페어를 다 본 게 아니라 타이틀의 의미를 이해할 순 없지만

오현석, 박호산 페어의 해마는 확실히 섬세하고 팽팽했다.

예상된 반전과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주는 묘미도 확실히 재미있다.

배우들의 표정 변화를 쫒으며 극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도 꽤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2인극의 묘미의 완성은

두 배우간에 서로 주고 받는 모든 연극적 요소와 더불어 관객의 집중도에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연극 <해마>의 완성도는 상당하다.

기억은 부실하고 부조리하다.

그래서 왜곡을 일삼기도 하고 타인의 기억을 자기화 시키기도,

때로는 의도된 기억상실을 불러오기도 한다.

잊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고 싶어서...

나눠준 팜플렛에서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아버지의 극단적인 마지막 선택에 대한 이야기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나는 좀 다르게 봤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인간의 삶에 대한 갈망 이야기다.

그래서 마지막 결말이 안스럽다.

기억을 있든, 없든

자네는 마침내 살아 남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 연극은 여지를 남기며 우리 뇌의 해마에 더 많이 혹은 더 오래 각인됐으리라.

물론 완전한 기억은 없다.

모든 기억은 결국은 왜곡된다.

그게 기억의 의무이자 책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