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8. 12. 08:28

내가 유럽을 좋아하는 이유는,

골목을 돌때마다 나타나는 크고 작은 광장들 때문이었다.

첫 유럽 여행때 골목을 돌어서는데 느닷없이 광장이 나타나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골목길을 들어설때마다

혹시 이 다음에 광장이 나오는건 아닌가 은근히 기대하는 정도까지 됐다.

햇빛이 사태처럼 쏟아지는 광장도 아름답고,

갑자기 내리붓는 비로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 텅빈 광장도 아름답고,

계단에 앉아 삼삼오오 이야기를 사람을의 뒷모습을 훔쳐 보는 것도 즐겁다.

피렌체에 있는 동안,

그야말로 하루에도 열 두 번은 더 지나갔던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은

내겐 아주 강력하고 확실한 랜드마크였다.

길을 잃으면 항상 베키오 궁의 길다란 종탑부터 찾았고

그렇게 시뇨리아 광장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면 길은 언제나 새롭게 열렸다.

 

 

광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

이 궁전은 요새의 기능도 했었다는데

그래선지 스페인에서 익숙하게 봤던 알카사르처럼 벽 끝의 모양이 볼록볼록하다.

현재는 일부는 정부 청사로 사용되고 있고

일부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는데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베키오 궁전의 친퀘첸토홀 천장화가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 곳답게

이곳 입구도 메디치 가문의 상징인 사자 조각이 좌우로 웅립해있다.

광장 한켠엔 이탈리아 종교 개혁자 사보나롤라 수도가가 화형당한 장소를 알려주는 둥그런 표지도 눈에 띈다.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1498)는

교회의 권위와 귀족정치를 반대한 인물로

교회와 메디치 가문과의 충돌이 잦았던 수도사였다.

결국 교황에게 파문을 당하고 메디치 가의 모략으로 민심까지 잃으면서

1498년 시뇨리아 광장에서 화형을 당하기에 이른다.

 

 

위의 그림은 사보나롤라 화형식을 그린 그림이다.

그가 주장한 종교개혁 중에는 "동성애 금지"도 있었다는데

당시 피렌체와 메디치 가문은 공공연하게 동성애에 빠져 있어서

사보나롤라의 개혁이 눈에 가시처럼 느껴졌을테다.

사실 사보나롤라가 수도사로 피렌체에 처음 오게 된 것도 메디치 가문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메디치 가문을 맹렬하게 비판하는 수도사가 있다는 보고를 받은 가문의 수장 로렌초가

사보나롤라를 바로 눈 앞에서 감시하기 위해 일부러 피렌체로 오게 만들었다.

두 사람 사이의 엎치락 뒷치락하는 권력 이동으로 피렌체는 한동안 몸살을 앓게 되고

어찌됐든 표면상 최후의 승자는 메디차 가문에게 돌아갔다.

사보나롤라는 베키오 궁전의 기다란 종탑에 갇히게 됐고

일종의 "마녀사냥"처럼 피렌체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화형을 당한다.

"사보나롤라는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부당한 판결을 받아 처형되었으며

 그를 추모하기 위해 이 기념비를 세운다..."

시뇨리아 광장의 둥그란 표지 안에 적혀 있는 내용은 이렇다.

하지만 교황까지 배출한 엄청난 메디치가문도 결국은 후사가 없어 대가 끊기게되니

사보나롤라의 저주 운운하는 소문이 생길만도 했겠다..

 

 

베키오 궁전 왼편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상이 위풍당당하게 서있다.

바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아쉽게도 모사품이고 진품은 아카데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다비드상은 미켈란젤로가 제작할 당시 두오모 대성당 버팀목 높은곳에 설치될 예정이었단다.

그런데 완성시키고 보니 조각상의 크기와 무게가 문제가 돼서 베키오 궁전으로 설치 장소가 바뀌게 된다.

다비드의 손과 머리 비율이 어긋나게 보요지는 이유도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시각으로 제작됐기 때문이라고.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미켈란젤로의 정확성이여!) 

오른쪽에는 헤라클레스 조각상이 있는데 다비드상의 유명세에 밀려 어딘지 주눅이 들어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돌리면 회랑 "란치 로지아(Goggia del Lanzi)" 조각상들이 무더기로 여행자들의 시선을 강탈한다.

사방이 뻥 뚫린 곳이라 전부 모사품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두 작품만 제외하면 나머지 전부 진품이란다.

(사자상이랑... 다른 하나는... 기억이 안 난다... ㅠ.ㅠ)

란치 로리아 회랑의 대리석 조각상은 낮에 보는 것도 물론 좋은데

해가 질 때쯤 찾아가면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 시작될 때,

회랑 뒷쪽으로 깊숙히 들어가 점점 변하는 하늘빛과 함께 조각상의 뒷모습을 바라보노라면

나도 이곳에 조각상으로 영원히 서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특히 첼리니의 청동상 "페르세우스"의 뒷모습은... 너무 황홀해서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을 정도다.

시뇨리아 광장 분수대의 거대한 포세이돈 조각상도,

그대로 달려 나갈 것 같은 생동감으로 가득한 코시모 1세 청동상도,

미켈란젤로의 걸착 다비드도,

그 순간만큼은 메두사의 목을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의 당당함을 이길 수 없었다.

은은한 조명아래 그대로 별빛처럼 장엄하게 빛나던 "페르세우스" 덕분에

다른 숱한 조각상들이 조연으로 잠시 자리를 내준다.

열심히 찾아본 백과사전적인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더라.

"타이밍"

가장 중요한건 내가 직접 눈을 마주치는 그 시점이더라.

그게 걸작을 만들고 감동을 만든다.

 

시뇨리아 광장.

내게 장엄한 걸작을 선사한 이곳이

피렌체에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바로 그 곳.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5. 7. 23. 08:53

바실리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Basilica Santa Maria del Fiore).

정식 명칭보다는 두오모로 불리는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 성당은 1296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산타 레파라타(Santa Reparata) 성당이 있던 자리에 짓기 시작해서

1436년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완성했다.

그 뒤 정면 파사드는 19세기에 원래의 것을 허물고 다시 재건해 지금의 모습이 갖추게 됐단다.

건축 당시 삼색 대리석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대리석만을 사용했다.

흰색 대리석은 카라라(Carrara)산, 분홍색은 마렘마(Marremma)산, 녹색은 프라토(Prato)산.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세를 치루고 있는 쿠폴라는

역시 브루넬레스키의 작품으로 거대한 붉은 타일로 덮여 있다.

15.5m의 거대한 지름을 가진 쿠폴라는 당시 사다리 없이 지어진 가장 큰 건물이었단다.

베드로 대성당의 쿠폴라 공사를 맡은 미켈란젤로가 두오모 쿠폴라를 보고 그랬단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쿠폴라는 피렌체 두오모의 쿠폴라보다 크게 지을 수는 있어도 아름답게 만들 수는 없다"

 

 

160m 높이의 두오모 쿠폴라는 463개의 계단을 올라야 정상에 이를수 있다.

하지만 당연한 말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쿠폴라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고래 뱃 속에서 고래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없듯이)

부지런히 내려와 옆에 있는 조토의 종탑 414개의 계단을 또 부지런히 올라간다. 

드디어 확 트인 피렌체의 전경과 함께 그림같은 두오모 쿠폴라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진다.

카메라 셔터를 쉴새없이 눌러댄다.

말 그대로 아무렇게나 눌렀는대도 엽서같은 사진이 쏙쏙 찍혀 나오는 기적을 경험한다.

낮게 내려앉은 구름은 환상적이었고.

구름 사이로 한줄기씩 내려오는 햇살까지 축복같다.

잔인하게...

아름다운 풍경이다.

 

 

때마침 머리 위에서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종치기가 시간맞춰 나와서 의식처럼 묵묵히 줄을 당길거라 기대한건 아니지만 

그대로 드러난 기계장치로 울리는 종은 살짝 당황스럽더라.

한 집 걸러 한 집이 성당인 유럽에서 종소리를 듣는건 여러모로 장관이다.

근데 이게 또 일제히 같이 울리고 같이 멈춰주면 모르겠는데

미묘한 시간 차이를 두고 주체적으로 울려댄다.

일종의 불협화음에 웃음이 절로 났다.

조카녀석이 귀를 막으며 농담처럼 말한다.

"이거 하나 딱딱 못맞추나???

조카녀석 귀에도 산발적으로 울리는 종소리가 좀 이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난 그 불협화음이 참 귀엽고 경쾌하더라.

마치 소풍 온 초등학생들의 소리같아서...

 

 

조토의 종탑에서 내려다본 피렌체의 모습은

두오모 쿠폴라에서 내려다본 모습과 높이감도 거리감도 완전히 다르다.

역시나 우뚝 솟은 베키오 궁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 레푸블리카 광장의 회전목마도 보인다.

시뇨리아 광장을 가다 길을 잘못 들어 레푸블리카 광장에 들어갔는데

움직이는 회전목마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었다.

탈까 말까 망설이다 돌아섰는데 이제와서 뒤늦은 후회가...

보수 중이라 가림막에 덮여있는 산 조반니 세례당도 보이고

또 역시나 빼곡한 낙서들도 보인다.

심지어 한글로만 채워진 부분도 있다. 

 

형준, 석규, 수현, 윤빈, 선호, 희주...

우리...

제발 이러지 말자.

눈치보며 새겼을 당신들 이름이

당신들의 추억을 보장하진 않는다.

눈에 담고, 마음에 새기고, 머릿속에 간직하면

그게 훨씬 더 오래, 더 깊게 남는다.

여기에 새긴 당신들 이름이

다른 사람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흉물이 되고 있다는거,

꼭, 꼭, 꼭 기억해줬으면...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