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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1.25 <보수를 팝니다> - 김용민
  2. 2009.01.19 달동네 책거리 24 : <붉은 애무>
읽고 끄적 끄적...2012. 1. 25. 05:39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건 정말 죄송스런 일이지만
딱 개그맨같은 비쥬얼을 가진 시사평론가다.
뭐 본인도 스스로 "목사 아들 돼지"라고 소개하지 않던가.
아버지가 목사라면 그 자식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고 생각했다.
아무데서나 주여~~~를 외치는 병적인 예수쟁이던가,
아니면 신학대학교에서 주류관련 동아리를 만어 주(酒)님의 강림을 직접 육화하는 또라이던가.
그런데 김용민같이 이도 저도 아닌 난 놈의 부류가 있다는 걸 요즘 "나꼼수" 덕에 새록새록 알게 된다.
"나는 꼼수다" 4인방(김어준, 정봉주, 김용민, 주진우) 모두 화려한 이력에 범상치않은 외모의 소유자지만
그 중 김용민의 이력만큼 버라이어티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1998년 8월 극동방송국 PD로 입사해서 헌금 유용과 관련해 여의도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사장(사장도 유명한 목사란다)한테 "루터처럼 종교개혁을 하려면 나가서 해라!"는 거룩한 뜻을 전달받고 사직당했단다.
다행히 2001년 2월 CTS 기독교TV의 편성PD로 입사,
그러나 사장의 회계부정 의혹에 격분해 노동조합을 일으켰다가
아름다워야 할 신혼여행 중에 처절하게 구조조정을 당하기에 이른다.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시사평론활동에 뛰어들어 각종 방송국을 제 집 드나들듯 했고
심지어는 목사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불교방송에서까지 마이크를 잡는다.
(해박한 지식과 언변은 종교의 벽을 충분히 허물고도 남는다 ^^)
잠잠하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CBS라디오 '시사자키'에서
"이대통령은.."으로 시작하는 오프닝 멘트 때문에 급기야 잘리고 말았단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뼛속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기독교인이다.
교회의 헌금강요와 자기과시에 지쳐 어느 교회도 나가지 않고 주일을 보내고 있지만
어쨌든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당당히 쓰는 기독교인이다.
한낱 동네 구멍가게 같은 교회도 이러는데 소망교회니, 여의도순복음교회니 하는  대형교회들은 어떨지
생각만으로도 공포스럽다.
이러다 기독교가 절로 가겠다 싶다.
강부자니, 고소영이니 하는 말은 절대로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구정 마지막 날에 가만히 앉아서 두시간만에 후딱 읽은 책이다.
재미도 재미려니와 내용이 한 눈에 그야말로 팍팍 들어온다.
우리나라 보수를 세 부류로 나뉜 부분에선 맞아! 맞아! 추임새와 함께 무릎이 절로 쳐진다.
박근혜로 대표되는 모태보수,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기회주의 보수,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일단 여당을 따라가야 할 것만 같아서 투표를 하는 서민들의 무지몽매 보수.
<닥치고 정치>도 그랬도 <달려라 정봉주>도 그랬고 이 책까지...
이런 책을 읽으면 무지 재미있으면서도 왠지 뒷맛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지랄맞은 시대를 견뎌야 하는가 싶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걸 분명히 알기에
2012년 총선과 대선이 자못 궁금하고 신중하다.
나는 내가 보수인지, 진보인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 보수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무책임하고 부도덕하다고 비난을 하더라도
나는 정말이지 정치에 무관심하게 살고 싶은 1인이다.
그런데 지금은 저절로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솔직히 이 인간들 단체로 뭘 잘못 먹었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종류의 책들이 지금은 내게 일종의 스승이고 멘토다.

책을 읽으면서 진짜 바라게 된 건,
대한민국에서 정말 멋진 보수와 정말 멋진 진보의 싸움 보게 되는 거다.
정말 멋진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라면 그게 막장으로 치닫더라도 열심히 응원하겠다.
예전 같으면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꿈도 못꿨을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꿈을 꾼다.
수시로, 자주, 간절하게.
왜냐하면 너무 고되고 노곤하니까...
잃어버린 10년이라며 전정권을 무참히 깎아내린 그들이 만든 초토화 5년, 몰살의 5년.
그 폐허를 복원하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할까?

젠장할!
춥다.
그러나 봄날은 온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 19. 06:15
 

<붉은 애무> - 에릭 포토리노


붉은 애무 


에릭 포토리노...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프랑스 작가입니다.

이 사람은 작가로써도 유명하지만 2008년 1월 경영난에 허덕이던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지의 회장으로 임명돼 파격적인 구조 조정으로 르몽드지를 구해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 보면 확실히 신이 가끔은 불공평하단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엔 (1월 5일) 이 “르몽드”지에 우리나라 보수신문 “조중동”에 대한 상당히 긴 불량의 정면비판 글이 실려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글의 요지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한국 일간지가 역대 독재정권에 봉사한 댓가로 조세 면책의 특권을 보장받아 왔고 현재도 이들 일간지들이 보수진영과 재벌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꽤 정확한 지적을 하고 있어 오히려 민망하기까지 했답니다.


<붉은 애무>... 제목 참 강렬하죠?

처음 이 책을 알게 됐을 때, 그 제목의 강렬함에 당황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죠. 대중교통 안에서 읽고 있으면 사람들이 좀 쳐다보겠구나...(그런데 실제로 정말 그러던데요~~~)

그 사람들, 어떤 내용을 상상하면서 절 바라봤을까요?

프랑스의 대표적인 립스틱 브랜드명이기도 한 “붉은 애무”는 프랑스어로 잔잔하게 불에 타 들어가는 상태를 뜻한다고 합니다.

불에 타 들어가는 데 잔잔하다니요......

어쩐지 꽤나 치명적일 거란 확신이 들긴 하네요.


이 소설은,

네,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이고 파괴적이기까지 한 사랑이죠.

이렇게 고백하는 남자가 있습니다.

“홀로 된 여자의 아들에게는 아이가 될 권리가 없다”라고...

정상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 이름도 모르는 아비와 아이를 짐스러워하는 어미,

그렇게 아이인 적 없이 커버린 한 남자.

어느 날, 그 남자에게 마리라는 여자가 나타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아이를 낳아서 걸을 때가 되면 아이를 당신에게 주고 떠나겠다...”

실제로 그녀는 정확히 아이가 첫 걸음을 떼는 날  두 사람 곁을 떠나죠.

아이인 적이 없이 자라버린 남자는 이제 자신의 힘으로 어린 아들을 키워내야 합니다.

엄마의 부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남자...

아직 어린 아이에게 있어 부모의 존재라는 건, 거의 엄마의 존재가 대부분이라는 걸 이 남자는 너무 잘 알고 있었죠.

“엄마 보고 싶어!”

엄마를 찾으며 떼를 쓰는 아들에게 손찌검을 한 남자는 아이에게 말합니다.

“약속할게. 매일 저녁 엄마가 와 있을 거야”

아들을 위해, 이 남자는 그토록 혐오하던 게이샾에 들러 원피스를 사고, 금발의 가발을 사고, 포근하고 따뜻한 2개의 스펀지 공을 사고, 얼굴과 다리의 털을 면도합니다.

그리고 매일 밤 아들에게 선택권을 주죠.

엄마, 아빠 중 누구를 원하는지...


처음엔 밤에만 엄마로 변장했던 남자는 아이의 요구에 따라 점점 낮에도 엄마의 모습이 됩니다. 그리곤 함께 외출을 하고 공원으로 소풍을 가고 그리고 써커스를 보러 가죠.

잠이 깬 아들에게 “엄마 여기 있어, 푹 자!”라고 말하면서 이 남자는 느낍니다.

자신이 점점 엄마로 변한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아들이 3살이 되는 날, 평온하게 유지됐던 두 사람의 가정에 누군가가 찾아옵니다.

그녀... 아이의 진짜 엄마인 “마리”가요.

여자는 말합니다.

“이제 아이를 위해 엄마로 살기로 했다”고... (아내의 역할은 제외하고 말이죠)

그 순간 그 남자는 자신이 방금 잃어버린 모든 것을 떠올립니다. 금발의 가발, 시폰 원피스, 스펀지 공, 머플러......

이제 아이는 일주일의 반은 아빠와, 일주일의 반은 엄마와 생활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는 이제 점점 진짜 엄마를 더 많이 요구하게 되죠.

마리로 변장한 남자를 보며 3살 아들은 웃어버립니다.

그 순간, 남자는 깨닫습니다.

자신이 아버지의 수렁으로 되돌려 보내졌다는 걸......

아들이 마리와 보내게 되는 날이면 남자는 엄마가 되어 마치 아들이 집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다 엿보기가 시작되죠.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남자는 마리 집 창문 맞은편에 주차한 체 자신의 아들과 그 아들의 엄마를 훔쳐봅니다.

그 남자의 눈길....

뭐였을까요?

엄마의 시선? 아니면 아빠의 시선?

어쩐지 참 잔인하기까지 한 시선이라 섬뜩함조차 느껴집니다.

엄마(진짜 엄마)의 손을 잡고 유아원으로 향하던 이른 아침,

남자는 두 사람의 깍지 낀 손가락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때, 갑자기 울린 핸드폰을 받기 위해 엄마가 잠시 잡은 손을 놓은 사이 아이는 콩콩 거리를 뛰어다닙니다.

그러다 돌진해오는 스포츠카에 순식간에 뺑소니 사고를 당하죠.

범인은 밝혀지지 않고...

결국 이 남자는 아들을 잃고 맙니다...


이 남자....

이제 어떻게 될까요?

이제부터 “붉은 애무”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남자의 마지막 모습은, 그리고 마지막 시선은, 그리고 마지막 증거는.....

아빠여야 할까요? 엄마여야 할까요?


책을 덮으면,

마치 독한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느낌입니다.

잔잔하게 불에 타 들어가는 느낌이네요.

부드럽지만 겉잡을 수 없는 광기.

당신은 지금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나요?

그 눈길이 진짜 자신의 눈길이라고 정말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