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8.04 <숨그네> - 헤르타 뮐러
  2. 2009.02.03 달동네 책거리 26 : <막스 티볼리의 고백>
읽고 끄적 끄적...2010. 8. 4. 06:41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타 뮐러.
스웨덴 한림원은 그녀를 선정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응측된 시와 진솔한 산문으로 박탈당한 삶의 풍경을 그녀내는 작가" 라고.
(정말로 그녀의 글 속엔 이 모든 게 다 들어있다. 시, 산문, 그리고 그림까지...)
그녀는 비밀 경찰의 눈을 피해 남편이자 동료 작가인 리할트 바그너와 함께
조국 루마니아를 떠나 독일로 망명했다.
이로써 루마니아는 위대한 유산인 그녀를 잃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녀의 작품에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낯선 시선" 이라고...
헤르타 뮐러가 200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이 작가를 알 수 있었을까?
그런 이유로 나는 지금 한림원의 선택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1944년 여름 붉은 군대가 루마니아를 깊숙이 점령해 들어가고
파시즘을 신봉하던 독재자 안토네스쿠는 체포되어 처령당했다.
소련에 항복한 루마니아는 그때까지 동맹국이었던 나치 독일을 향해 급작스레 전쟁을 선포했다.
1945년 1월 소련의 장군 비노그라도프는 스탈린의 이름으로,
나치에 의해 파괴된 소련의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을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루마니아에 살던 1세에서 45세 사이의 독일인은 남녀를 불문하고 빠짐없이 소련의 강제수용소로 유형을 갔다.
헤르타 뮐러의 아버지 또한 이차대전 당시 나치 무장친위대로 징집되었다가 돌아왔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의 강제수용소에서 오 년간 노역했다고 한다.
수용소 이야기...
또 다시 안네의 일기의 반복이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생각을 완전히 내려놓게 된다.

책 속의 주인공은 17살에서 22살까지 5년 동안
독일인의 러시아 수용서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있는 상태다.
벌건 양배추스프와 아침에 배급되는 자그마한 빵으로 하루를 연명하면서
밤새 배고픔을 먹어야 하는 생활.
그가 하는 모든 일에는 배고픔이 담겨져 있다.
책 속에서 주인공은 말한다.
"나는 나 자신을 훔친 도둑이었고 단어들이 불시에 나를 덮쳐 붙잡았다" 라고...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잃고 수용소에 갇히게 될 때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가 될까?
바보가 되든, 아니면 체념을 하든, 혹은 깨달은 자가 되든....
그러나 이 책은 다른 선택을 한다.
그리고 단어 선택 하나하나조차도 감탄스럽다.
책 장을 넘길수록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묘한 편안감에 빠져든다.
수용소 이야기를 이렇게 편하게 읽어도 되는 건가 싶어 미안한 마음마저도 든다.
책의 언어는 몹시. 몹시.
아.름.답.다.
줄을 바꿔 짧게 나열하면 그대로 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될 만큼.
그러나 무기력하거나 허물어져 있지도 않다.
"너는 돌아올거야"
떠나는 그에게 남긴 할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그는 생각한다.
"두고 봐, 간단한 계획이지만 오래 버틸테니까."
그 다짐은 아주 건조하고 낯선 언어로 다가온다.
수용소에서 바라보는 모든 사물에 대한 시선이 시적이고 낯설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상황인데도 때론 몽환적일만큼 아름답다.
읽으면서 순간순간 섬득함마저 갖게 된다.
이런 감정을 갖는게 과연 정당한가???



주인공 소년은 청년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돌아왔을 때 그가 느끼는 것 또한 "낯섦" 그것이다.

... 수용소로 가기 전 우리는 십칠 년을 함께 지냈고 문, 장롱, 탁자, 양탄자 같은 커다란 물건들을 공유했다. 접시와 컵, 소금통, 비누, 열쇠 같은 작은 물건들도 그랬다. 창과 전드의 빛도. 그러나 지금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우리는 서로 더이상 우리가 아님을. 다시는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낯선 존재가 된다는 것은 분명 부담이지만, 믿을 수 없이 가까운 거리에서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었다. 내 머리는 트렁크 안에 있었고, 나는 러시아식으로 숨을 쉬었다. 나는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낯선 냄새를 풍겼다. 하루 종일 집 안에 있을 수가 없었다. 침묵을 떠나기 위해 일이 필요했다. 나는 스물두 살이었지만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숨그네>는 인간의 숨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네처럼 가쁘게 흔들리는 것을 상징하는 제목이라고 한다.
스웨덴 한림원이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그녀를 선정하지 않았다면
헤르타 뮐러의 책은 결코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않았을 거다.
(노벨상 수상으로 올해 그녀의 책이 2권 출판됐다. <숨그네>와 <저지대>
 내게는 더없이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시의 옷을 입은 비극"
숨그네를 말하는 또 다른 이름이다.
헤르타 뮐러는 말한다.
"...... 상황은 처참했다. 문자는 아름다웠다. 나는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처참함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 문학의 명예였다 ......"

글은 소제목에 따라 아주 잘게 부서져 있다.
어떻게 이런 제목들을 가지고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쓸 수가 있었을까?
명아주, 시멘트, 손수건과 쥐, 슬래그 벽돌, 지팡이, 공책...
직물적인 것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목격하는 건 심지어 경이에 가까웠다.
마치 일기를 읽는 것 같기도, 아름다운 산문시를 읽는 것 같기도 한,
그러면서 아주 잘 만들어진 거부감 없는 예술영화를 감상하는 것 같기도 한 소설.
그래, 확실히 아름다운 건 분명 힘이다.
그리고 헤르타 뮐러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아름답고 강한 무기의 소유한 작가다.
찾아봐야겠다.
그녀의 또 다른 강한 무기가 세상의 어떤 것을 막아서고 아름답게 정화시키는지...

<숨그네>를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나는 그녀의 <저지대>를 눈독들이기 시작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2. 3. 22:18
 <막스 티볼리의 고백> - 앤드루 손 그리어


막스 티볼리의 고백 


오늘은 참 특별하고 슬픈 사람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

“시간 역행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혹 있으신가요?

70세 노인의 몸으로 세상에 태어나 갓난 아기의 몸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그러나 마음과 생각은 시간의 흐름 그대로인 사람... 35살 지점에서만 자신의 몸과 생각이 유일하게 만나지는 그런 사람이요...

일생동안 “앨리스”란 여자와 세 번의 사랑에 빠졌던 사람...

그리고 자신이 아들 “새미”를 키우는 그녀의 집에 양자로 입양돼 살아야만 했던 사람...


주인공 “막스”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아이의 몸이 신의 저주를 받은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조금씩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의 삶이 어떠하리라는 것을요...

그가 아이였을 때 어머니는 말합니다.

“사람들이 네 나이가 얼마쯤이라고 생각하면 그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라고.


이 이야기는,

1930년 4월 어느 날, 꼭 열두 살 소년처럼 보이는 막스가 쓰는 편지로 시작됩니다.

......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열두 살 소년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때는 총을 들고 가스 마스크를 쓴 스물두 살의 멋진 청년으로 보였다. 그전에는 지진이란 재앙 속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나선 삼십대 남자였다. 그리고 그전에는 열심히 일한 사십대, 세상을 두려워한 오십대, 그렇게 세상에 태어난 시기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늙어갔다.” ......

그는 이 편지를 통해 남들과 다른 이유로 고독과 슬픔 속에서 일생을 살아야 했던 비극적인 날들과 평생 동안 계속됐던 앨리스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고백합니다.

처음 막스가 앨리스에게 반한 건 그의 나이 17살, 앨리스가 14살 때였습니다.

앨리스에게 “아저씨”란 호칭으로 불려야 했던 막스는 그녀의 어머니와의 충동적인 사랑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딸마저 유혹하려고 하는 파렴치한이라 생각한 앨리스의 어머니는 결국 이사를 하게 되고 그들은 그렇게 스치듯 헤어지죠.

시간이 흘러 막스의 몸과 마음이 딱 일치하는 35살 무렵에 두 사람은 우연히 재회하게 됩니다. 그가 어린 시절 알았던 아저씨라는 걸 모르는 앨리스는 그를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 그 둘은 결혼을 합니다.(그때 막스는 앨리스 앞에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게 되거든요.)

행복한 시간도 역시 흘러가기에 막스는 앨리스보다 점점 더 어려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피하지 못합니다.(피할 방법이 있었다면 그는 정말 뭐든 했을 겁니다.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파는 파우스트처럼요...)

또 다시 떠나야 했던 막스는 이제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앨리스” 옆에 있습니다.

그녀와 자신의 아이 “새미”의 친구로, 그리고 아내의 양자로...

그런 그가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너무 짧은 인생. 슬픔만 가득한 인생. 그러나 난 내 인생을 사랑했소"라고 적혀 있습니다.

도저히 세상을 제대로 살아 낼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이런 최후의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건...

역시나 “사랑”이라는 통속의 그러나 절실한 이유 그 하나였습니다.

겉모습은 반바지를 입은 어린 아이의 모습이지만 지혜로운 노인의 시선으로 삶을 관조하는 막스의 고백은 시간이라는 상대성과 외모의 허망함, 그 교차와 어긋남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이 세상 어딘가에 시간 역행자가 꼭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꾸며낸 사실인지, 정말 역사적인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책의 내용 중 일정 부분은 시간 역행자들이 실제로 소개되어 있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런 사람이 어딘가에 살고 있다면...

그건 분명 뚜렷한 공포가 될 겁니다.

그것도 자기 자신만이 평생 끌고 가야하는 비밀스런 공포...

이런 생각을 해 보면 비록 소설 속의 인물이긴 하지만 그런 인생을 살아낸 “막스”가 위대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비록 토막난 인생일지라도 “막스”는 순간순간 분명 누군가의 삶에서 소중한 존재였음을 저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각각의 장마다 주인공은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죠.

1부에서는 “티볼리”로, 2부에선 “막스”로, 3부에선 “아르가스”라는 이름으로 불려 졌던 주인공은 4부에서는 “리틀 휴이”가 되어 여전히 앨리스의 곁에 있습니다.(휴이는 그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친구 휴이의 아들 행사를 하면서까지 사랑하는 이의 곁에 남고 싶었던 그의 마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그는 친구 휴이에게 자살을 종용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야만 아비를 잃은 그가 앨리스의 양자가 되어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끔찍한 상황까지 만들어가면서 사랑하는 이의 곁에 남고 싶어 했던 주인공의 마음...

휴이에게 어린 모습을 가진 막스가 말합니다.

"난 이제 남편이 될 수 없어! 아버지도 못 된다고!" "쉬잇! 난 아들이 될 거야. 잠시 동안이라도."

분명 그는 끔찍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로서는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는 절실한 마음이었기에 차마 응원한다고는 말하지 못할지언정 잠시 눈길을 돌림으로써 그를 인정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샛강 갈대숲 사이를 떠돌던 작은 배에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는 리틀 휴이 “막스”.

시간을 거슬러간 남자, 티볼리이자 막스이며, 아르가스이자 리틀 휴이로 평생을 한 여자만을 사랑하며 비밀을 간직한 체 죽음을 택한 그의 마지막 모습.

그에게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모두에게(심지어 우리에게까지) “사랑”이란 뭐였을까를 묻게 만듭니다.

“비극”이라고 이름 붙여진 모든 것들...

그러나 저는 결코 그를 비극적으로 살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 또한 그의 “선택”이었음을 인정해야 그가 덜 비극적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사람들을 꿈꿉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내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그러나 누군가에겐 그 타임머신의 꿈이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거, 혹시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모든 상상과 환상은 공포와 절망의 바탕 위에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는 작은 배 안에 누워 꿈을 꾸고 있지 않을까요?

그의 아들 새미와 사랑하는 여인 앨리스와 함께 다정하게 손잡고 산책하는 모습을요.

혹 어는 샛강 작은 배 안에 아직 그의 꿈이 누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희망합니다.

이제 그 꿈은 더 이상 시간 역행자의 모습이 아니었으면 하고요...

* 2월 12일에 드디어 영화도 개봉을 하네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브레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 주연으로 올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라와 있는 작품입니다.
   <조디악>과 <패닉 룸>을 만든 데이빗 핀쳐 감독이 매가폰을 잡았습니다.
   어쩐지 기본 이상은 해 줄 것 같은 예상이네요.  지금 브레드 피트는 이 영화 홍보를 위해 안젤리나
   졸리, 그리고 그들의 숱한 아이들과 함께 일본에 머물고 있다고 하네요.
   좀 잠깐 여기도 들려주지 싶긴 한데...
   브레드 피트가 연기할 시간 역행자의 모습...
   일단은 매력적이긴 할 것 같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