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1. 9. 27. 05:48
치킨 쉬쉬케밥으로 점심을 먹고 출발한 데린쿠유.
(사실은 날아드는 벌때문에 거의 먹지 못했다 ㅠ.ㅠ)
데린쿠유는 카이마크르와 함께
'암굴 주거지'라고 불리는 곳으로
개미집같은 방들이 층층히 지하로 뻗어있는 숨겨진 지하도시다.
기원전 400년 경 히타이트 시대의 기록에도 지하도시가 나와있다고 하니 그 장구함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지하도시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여러 설(說)들이 많은 것 같은데
이민족의 침입이나 종교상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관람객이 가장 많이 가는 데린쿠유를 직접 들어갔는데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곳을 비롯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교실, 침실, 주방, meeting room, 식료품 저장고, 포도주 양조장까지
놀라울 정도로 체계적으로 구획이 나눠져 있다.
이곳 데린쿠유에서 무려 4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동생활을 했단다.
카이마크르는 2만 명이 살고.
지리상으로 그래도 상당히 떨어져 있는 이 두 곳은 놀랍게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지하로...
(현재 관광객에게 개방된 지하도시는 이 두 곳뿐이다.) 


앞사람을 따라 좁고 어두운 길을 쫒아가면서 폐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못 들어오겠구나 싶었다.
게다가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머리를 얼마나 많이 부딪쳤는지... 
이렇게 좁고 어두운 곳을 2만 ~ 4만 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다녔을까 싶은데
물론 한번에 여러명이 우루루 다니지는 않았겠지만
체격이 좀 되는 사람이 다니기에는 확실히 좁아보인다.
그런데 이런 좁은 통로로 연결된 구조가 무려 8층까지 있단다.
더 놀라운 건 도시 내부에는 통기 구멍이 있어서 환기 문제까지 자체 해결했다는 사실이다.
곳곳엔 적의 침입에 대비해 입구를 막을 수 있는 거다란 둥근 돌까지 놓여있다.
개방된 두 곳만으로도 놀아운데 카파도키아엔 이런 지하도시가 무려 200여 개나 있다고 한다.
그 처철한 치밀함과 간절한 은밀함이라니!
사람 손만큼 게으른 게 없고
사람 손만큼 무서운 게 없다는데...
데린쿠유 그 좁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면서 지하도시의 서늘함때문이 아니라
이런 곳을 만든 사람의 손이 무서워 등골이 오싹했다.



피죤 벨리.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을까 궁금했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비둘기들이 많아서 ^^ (so cool~~~!)
그런데 정말 많긴 하더다.
(내딴에는 비둘기빛 기암괴석이 많아서 그런가 하고 이쁘게 상상했는데...)
우치히사르 아래 비둘기 깃털같은 포근함이 느껴지던 하얀 피죤 벨리.
그리고 그 아래 모여 있는 작고 소박한 로컬 기념품점들.
역시 어디를 가든 가장 많이 보이는 건 evil eye다.
그렇게 많이 봤는데도 볼 때마다 그 파란눈은 언제나 내 눈을 붙잡는다.
evil eye를 건네면서 터키인들은 이렇게 말한다지!
"Good luck!"
내게 터기가 그랬다.
눈에 보이는 곳,
걸음 옮기는 곳,
우연히 만나진 사람들 모두.
한결같은 good luck이었다.



Good luck!
turkey!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9. 22. 06:41
오전에 괴레메 야외박물관을 다녀온 후
카파도키아 명물이라는 치킨 항아리 케밥(Pottery Kebap)을 먹고 우치히사르 성채를 향했다.
"뾰족한 바위"라는 뜻을 가진 이 곳은 단 한개의 거대한 바위로 된 성채로
(말이 바위산이지 그 크기가 실제로 보면 어마어마하다.)
로마의 핍박을 피해 기독교인들이 숨어살던 곳이다.
예전에는 마을과 연결된 지하 터널까지 있었다니 그 규모와 은밀함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안된다.
괴레메 오토갈에서 네브쉐히르행 돌무쉬(2TL)를 타고 10여분 정도 간 후에 내려서 걸어갔다.
카파도키아의 특이한 지형은 수억 년 전에 생겨난 엘제스 산의 분화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란다.
화산재와 용암이 층층히 쌓이고 그 위에 비바람의 침식작용이 계속되면서
지금과 같은 특이한 모습의 바위산들이 형성됐다.
 



바위 표면에는 수많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전부 비둘기 집이다.
여기에 있는 비둘기 똥을 모아 포도밭의 비료로 사용했단다.
비둘기 둥지 입구에는 붉은색 페인트가 칠해져있는데 비둘기가 붉은색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나!
입장료(5TL)를 내고 성채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볼때는 언제 올라가나 싶었는데 막상 오래 걸리지도 않고 별로 힘들지도 않았다.
(카파도키아에서의 3일은 강도 높은 트레킹의 연속이라 이 정도쯤은...)
우치히사르 정상은 카파도키아 일대를 조망하기 가장 좋은 장소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눈 앞에 펼쳐지는 그 유명한 360도 괴레마 파노라마의 비경이란!
(괴레메 파노라마 : 계곡 한쪽 면에 하얗고 매끄러운 바위 표면의 물결이 펼쳐져 있는 곳)
그리고 정상에서 만났던 두 아이.
빨간색 터키 국기 아래 꺄르르 웃으며 뛰어다니는 게 어찌나 귀엽고 천진하던지.
터키의 아이들은 살아 움직이는 인형같다.
여러가지 이유로 카메라가 무지 바빴던 곳.



우치히사르 성채에서 바라보는 석양이 멋있다는데
저녁에 로즈벨리가 예정된 상태라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려왔다.
성채 아래 기념품 파는 곳에서 조카녀석에게 줄 터키전통인형 하나도 샀다.
카파도키아가 터키의 다른 지역보다 부담없는 가격으로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무게가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연세 많으신 할머니가 파는 전통인형 하나(3TL)로 만족했다.
(여행하다보면 제일 무서운 게 짐이 늘어나는거다.)
괴레메 마을까지 1시간 가량의 길을 걸어서 내려왔는데
땡볕을 그대로 머리 위로 받으며 걸어야해서 힘들긴 했지만
주변 풍경이 황홀할만큼 아름다워서 다 참을 수 있었다.




오도칼에 도착하자 날 맞아주던 정말 이쁜 반달 ^^
생각해보니 터키에 있는 동안 정말 징글징글하게 많이 걸었다.
한국에서라면 아마도 진즉에 다리가 사단이 났을테지만
별로 힘들거나 아프지 않아 스스로도 의아해했었다. 
걸으면서 아무 곳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도 그림같은 사진이 나오던 터키!
(순전히 내 생각에 불과할지라도...)
그래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세세하게 기록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최대한 오해 기억하고 싶어서.
최대한 많이 간직하고 싶어서.
이 기록이 끝날때쯤 비로소 내 터키 여행도 끝이 날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3. 23. 21:51

<향수>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페이퍼북)

 
파트리크 쥐스킨트!

이 매혹적인 작가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요?

<좀머씨 이야기>, <콘트라베이스>, <비둘기>, <깊이에의 강요>

우리나라에 번역된 그의 작품 모두 하나같이 다 문제작이긴 하지만 <향수>라는 책을 읽었을 때의 그 강렬함이라니...

작가가 만든 “신세계”의 미궁에 제대로 빠져버렸다고 한다면 이해가 되실까요?

이 책,

사연도 참 많습니다.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이 책은,

1991년 12월 국내 초판 됐고(제가 가지고 있는 책이 파란 표지의 그 오래된 초판, 바로 그 거랍니다) 1995년, 2000년 두 차례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영화 개봉과 더불어 다시 신판이 출판되면서 폭발적인 판매 기록을 보였죠. 초스테디셀러에 등극한 이 소설은 지금까지 30쇄 이상 재판됐다고 합니다.

(영화 예술의 힘! 작년에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를 베스트셀러 2위에 올려놓는 걸 보면서 또 다시 절감했죠)

그런데 이 사실도 아세요?

이 책이 “19금 이야기”의 선정 도서가 됐었다는 사실도요.

책의 후반부쯤에 나오는 사형집행장에서의 집단 난교 부분과 마지막 충격적인 결말들이 이런 영예(?)를 안겨준 셈이죠.

그것도 출판된 지 한참이 지난 후에 이런 에피소드가 생긴 걸 보면, 책은 정말 살아 있다는 환상을 여전히 품게 합니다.

“환상”이라는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요,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작가에 대한 극단적인 환상을 심어주는 사람이기도 하죠.

전세계의 집요한 매스컴의 추적을 거의 완벽하게 피하면서 숨어있는 사람.

대인공포가 있다는 소문, 동성연애자라는 소문, 그리고 흉한 장애가 있다는 소문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사람들과의 만남도 싫어해 문학상도 거절하고 인터뷰도 거절하며 철저하고 은둔하고 있는 작가!

그는 자기 작품에 대한 관리 전체를 형에게 맡긴 채 현재 프랑스 남부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에 잠금장치까지 하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동료 작가도 없고 심지어 자신의 신상에 대해 발설한 사람이면 친구와 부모를 가리지 않고 누구와도 절연해 버릴 정도라고 하니 오래된 사진 한 장으로만 알려진 그를 세상에 불러낸다는 건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네요.

그러나 생각합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작은 오두막에서 지금 <향수>보다 더 매혹적인 작품에 몰두하고 있을 거라고...

(사실 그의 새로운 책의 출판을 전 아주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책 <향수>의 줄거리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 거예요.

질긴 생명력으로 생선 내장 더미 위, 아무 냄새도 갖지 못하고 버려지듯 태어난 아기 그르누이.

그의 삶의 목적, 그건 사람의 “냄새”를 내 몸에 갖겠다는 강렬한 탐욕이었습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탐욕”이라는 의미는 그러나 그에겐 적절치 않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품은 “탐욕”은 소유에 대한 집착보다 오히려 생명에 대한 무심한듯하지만 강렬한 집착에 가깝기 때문이죠.

“생명”이라는 거,

“향기”를 품지 않는 생명이란 죽음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그르누이는 그의 살인 행각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가장 가까운 동반자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하죠.

그를 피해 달아나는 향기가 그에게 무사히 채집되기를 나 또한 간절히 바라는 마음.

향기를 채집하는 그의 섬세한 행동 하나 하나가 성스럽고 예술적으로 느껴지는 그 순간,

이제 그의 옆에 제 2의 그르누이의 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겁니다.

25명의 향기가 채집되기까지 저 역시도 그의 동조자가 되어 가만가만 숨을 죽입니다.

어쩌면 결말 혹은 끝장을 보고 싶다는 저의 또 다른 탐욕인지도 모르겠네요.

그의 향기에 취해 그를 탐하는 무리에 둘러싸이게 되는 마지막 결말.

악마적인 황홀경에 빠져 그의 향기를 먹어치우는 무리 속에 나 자신이 없다고 과연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함께 한 사람들은 이미 무언의 합의를 끝낸 듯 합니다.

그건 “구원”의 행위였다고......

그의 향은 우리를 구원했고 그리고 우리는 그를 각자의 몸 안에 조각내 피난시킴으로 구원을 해줬다고......

이제 남겨진 사람을 우리는 누구라고 불러야 할까요???.......


서번트 신드롬 (savant syndrome)!

지능은 보통사람들보다 떨어지지만 음악연주나 달력계산, 암기, 암산 등 어떤 특별한 부분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을 간혹 보게 됩니다.

프랑스어로 이 말은 배우지 않고(바보 idiot) 터득한 기술(석학 savant)이라는 뜻이죠. 특히 발달장애나 자폐증 같은 뇌기능 장애를 가진 이들이 그 장애와 대조되는 천재성이나 뛰어난 재능을 보일 때 이 서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 석학증후군 이란 말을 하게 됩니다.

영화 <레인 맨>에서 톰 크루즈의 형으로 나왔던 더스틴 호프만이 바로 서번트 신드롬을 가진 자폐인을 연기했었죠. 

말하자면,

그르누이도 서번트 신드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흔히 천재성은 그 “광기”로 인해 인생 전체를 “파괴”하기도 하죠.

“Utopia”가 아닌 “Destopia”의 탄생.

철저하게 파괴함으로써 이상향을 만들겠다는 “Destopia”

<향수>

그 위험한 Destopia의 세계.

그 세계가 섬뜩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매혹적이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네요.


만약, 

당신에게 아직 향기가 있다면....

조심하길 진심으로 당부합니다.

조각난 그르누이가 혹 당신을 탐할 수도 있으니.....


                                                      <유일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사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