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4. 1. 15. 08:11

2년마다 한번씩 자유여행을 가야겠다고 혼자 다짐했었다.

그리고 두번째 다녀온 자유여행.

원래 예정대로라면 스페인과 포르투칼을 여행하는 거였는데

동생네가 함께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그래도 익숙한 터키로 방향을 수정했다.

그냥 터키 일주를 할지, 이스탄불과 산토리니를 갈지 두 가지로 고민하다

아무래도 조카들이 초등학생이라 터키일주는 무리일 것 같아 이스탄불과 산토리니로 정했다.

결론적으론...

선택은 나쁘진 않았다.

여행하는 내내 날씨는 좋았고

특히 아테네와 산토리니에 머무르는 동안은

지중해의 햇빛 속에 두명하게 헹궈지는 느낌이었다.

walking and warlking의 꿈을 충분히 실행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짬짬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골목길을 기웃거렸던 시간들,

하늘과 바다를 바라봤던 시간들.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들을 몰래몰래 훔쳐봤던 시간들.

길을 찾아 이리저리 우왕좌좡하며 시행착오를 반복했던 시간들이

지금은 다 추억 그 이상이 됐다.

그건 그러니까...

"힘"이다.

앞으로의 2년을 버텨내게 하는 힘.

 

아쉽게도 골목과 길, 풍경같은 다정한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담지 못했다.

이런 것들은 적어도 내게는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그 이야기에 충분히 귀기울이지 못했다.

산토리니에서 만난 "casablanca soul"

이 골목 앞에서 혼자 얼마나 웃었던지!

골목 입구에 앉아있는 상점 주인 아저씨에게도 풍부한 casablanca의 soul이 느껴지더라.

루멜리 히사르에서 한 어머니가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손을 잡고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은

정말 홀릴듯 오래 쳐다봤다.

아름답고, 귀엽고, 따뜻하고, 다정해서...

이런 꿈같은 풍경들에 더 많이 귀길울여야 했었는데

내내 아쉽고 아쉬웠다.

 

 

아마도 변하지는 않을거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전에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은

여전히 서점일 것이고

비행기가 땅을 벗어나면

창문을 통해서 서서히 드러나는 하늘길을 보며 여전히 설랠거고,

골목골목을 목적없이 서성이는 것도 여전할거다.

눈에 담는 것,

눈에 담기는것들에

점점 더 많이 선량해진다.

본다는 것,

그건 느낀다는 것과 동의어다.

한때 제일 절망적인게 시력을 잃는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을 읽으면서 그렇치 않다는 걸 알았다.

그래, 볼 수 없다는 건 확실히 치명적이긴 하다.

그러나 그리웠던 건 한 번이라도 봤다면

그걸 기억하면서 마음 안에서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다.

사람은,

사랑때문에, 사람때문에 살 수도 있지만

기억때문에 살 수도 있다.

 

하여,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나는

내 기억의 힘을 신앙처럼 굳게 믿는다.

그게 나를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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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5. 13:32

햇빛 좋은 Oia는 의외로 사진을 찍기가 버거운 곳이다.

햇빛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도, 뒤로 세우기도 어딘지 어쩡쩡하고

실제로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면 내가 본 색감과 달라 보여 당황하게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없이 찍어대는 나 같은 초보자에게도

기꺼이 훌륭한 피사체가 되어줄만큼 Oia는 넉넉하다.

사진은 skill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렌즈 속 Oia를 보면서 다시 느꼈다.

 

Oia를 처음 찾아 갔을 땐,

낯선 시선을 기꺼이 받아주고 웃어주는 모습이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꾸며진 친절과 소위 말하는 영혼없는 미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데 아마 그 햇빛이 나를 녹여버렸나보다.

그 햇빛은 아주 농염하고, 아주 은밀하고, 아주 끈질겼으며

심지어 아주 해맑고 경쾌하기까지 했다.

그래선지 두번째 Oia를 찾아갔을 때 나는 좀 달라져 있엇따. 

나도 모르게 Oia의 구석구석 골목이 보여주는 속살을 즐겼고

상인들의 거품기 가득한 미소에 손을 흔들며 미소지었다.

그렇게 풀어지니 참 편안했다.

시선과 마음을 놓아버리니 찬란함이 보이더라.

바다 속의 햇빛이,

햇빛 속의 바다가 보이더라.

바람의 흔적까지도...

 

햇빛과 정면 대결하고 있는 Oia의 바다는

온통 먹빛이다.

극과 극이 보여주는 대비.

아마도 그 대비를 보기 위해 나는 다시 산토리니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산토리니를 다시 갈 일이 있을까 내내 생각했는데

이게 아마도 다시 갈 수 있는 이유가 충분히 되줄 것 같다.

단지 바라는 게 있다면,

산토리니를 두번째 찾을 때는 꼭 혼자이길...

 

외로움!

그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더 위험하고 위태로운 게 있다면.

그리움! 

언제나 항상 그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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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1. 08:21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다는 Oia의 굴라스 성채는

로마시대 때는 망루로 쓰였던 곳이란다.

멀리서 봤을 때는 살짝 초라한 느낌도 들었지만

굴라스 성채 쪽으로 가서 바라본 Oia의 바다는 그대로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굴라스 성채에 도착한 시간이 아마도 오후 5시 경이었을거다.

sun set을 보기 위해선 일찍부터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이른 시간에도 사람들이 꽤 많이 있어 괜히 조바심이 났다.

이곳에 자리잡고 바다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남은건,

"기다림"의 시간뿐이다.

기.다.려.

 

아주 못된 이기심인데.

오래 품고 있는 소망 중 하나가

"혼자서 sun set을 독점하기'다.

순간적으로 "다 비켜~~~!"라고 소치치고 싶은 욕망.

(소리를 지른들 알아들을 사람도 별로 없었겠지만...)

산토리니에 머무는 동안 3번의 sun set을 목격했지만

이날 굴라스 성채에서의 sun set은 일종의 축제였다.

해가 바다로 완전히 넘어가는 순간,

약속처럼 쏟아지던 사람들의 박수와 휘파람 소리들.

나도 모르게 그 소리에 휩쓸려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아팠다.

너무 제대로 넘어져서...

그 와중에도 카메라가 멀쩡한지가 제일 걱정이 됐고!

카메라는... 한쪽 모서리가 좀 패였다.

속이 살짝 상하긴 했지만 어쩌라...이것 역시도 이 여행의 흔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카메라의 흠집을 볼때마다

이날의 축제같은 sun set이 생각나겠지!

 

 

하늘을 향한

그리고 바다를 그리는 해의 강렬한 욕망!

주위는 온통 핏빛 전쟁터다.

아! 참...

강렬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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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3. 10. 31. 08:17

Oia의 아틀란티스 서점(Atlantis Books).

2002년 산토리니에 놀러온 올리버(Oliver)와 크래이그(Craig)가 즉흥적으로 구상해서 만들어진 서점이

지금은 Oia의 또 하나의 land mark가 됐다.

그런데 지금 이곳이 아무래도 재정난을 겪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든, 다른 나라든

책방을 유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어설픈 활자중독자인 나는 이 이쁜 서점이 겪고 있는 현실이 참 아프고 슬펐다.

Oia의 상가 골목들 초입에 있는 이 서점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면?

사람을은 서운해할까?

이곳도 전설처럼 기억되는 기억 속 섬이 되버릴까?

노란 서점의 외벽을 보면서

올리버와 크래이그의 소망이 꼭 이루어지길 나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적어도 나는,

여행을 계획하면서 이곳을 "꿈"처럼 떠올렸다.

이 멋진 서점을 꼭 들러보리라 혼자 작정을 했었다.

책이 없은 세상을...

나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기에..

산토리니에서 돌아온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나는 꿈이 제발 사라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

 

Oia의 해상 박물관 (Martitime Musem of Thera).

이아는 1900년대까지 9000명의 넘는 주민 모두가 어부였단다.

당시에는 선박 회사만도 164개였고 조선소는 7개나 있었는데

1956년에 지진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면서 고작 500여 명만이 이곳에 남아 삶을 지켜나갔다.

이아의 불운한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 남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을까?

잊혀져가는 이아의 선박 역사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을까?

선장이었던 안토니스 다코로니아(Antonis Dakoronia)라는 사람이 산토리니 전통 가옥을 개조해서 이 박물관을 만들었단다.

2층으로 된 이곳은 아주 소박하고 그리고 고적한 박물관이었다.

살짝 시간을 되짚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

"보존"의 흔적들은 지켜온 자들의 마음때문인지 정갈하고 다정했다.

화려함과 대단한 보물들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곳엔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었다.

충분히 귀기울여도 좋을만큼.

 

사이렌을 떠올리게 하는 뱃머리 조각상을 보면서

엔진의 가속 정도를 알리는 표시판을 보면서,

배를 정박했을 때 쓰였음직한 밧줄과 닻을 보면서

튼튼하게 묶인 여러 종류의 메듭들을 보면서

나는 조금 나른하고 몽롱했다.

마치 오래고 긴 항해를 이제 막 마치고 이제 막 땅에 발을 디딘 사람처럼.

균형감과 현실감이 살짝 흔들렸다.

 

아틀란티스 서점의 "꿈"과

해상 박물관의 "이야기"

아마도 이 둘이 Oia를 지키는 무언의 파수꾼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많이 든든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0. 30. 09:10

산토리니의 이아(Oia)

이온음료 포카리스웨트 CF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한때 로망처럼 여겨졌던 곳.

나도 역시나 그랬다.

산토리니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곳을 직접 본다는 생각을 하니 설랬다.

TV를 통해 본 Oia는 그 자체가 완벽한 파라다이스였으니까.

Fira에서 로컬버스를 타고 도착한 Oia의 첫인상은 "눈부심"이었다.

어쩐지 그곳에 서있기가 민망한 정도의 찬란함 앞에서 나는 잠깐 망설였던 것도 같다.

그 찬란함속을 더 찬란하고 발랄게 뛰어내려 좋아했던 조카녀석이 없었다면

나는 도로 차를 타고 Fira로 되돌아왔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그랬지.

햇빛 속에 서 있으면 저절로 살의(殺意)가 느껴진다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Oia의 햇빛 속에서 나는 그 뜻을 완벽히 이해하고 인정했다.

 

참 이상하지!

여행을 가면 모든 골목길을 기웃거리게 된다.

Oia가 좋았던건 기웃거릴 수 있는 골목들이 아주 많았다는 거.

작은 골목길 하나하나가 내겐 전부 다 하나의 세계다.

꿈 꿀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곳.

그림같은 풍경보다 나는 골목이 숨긴 풍격에 자꾸만 눈이 갔다.

그 곳엔 누군가에게 발갈되길 바라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만 같아서.

나는 Oia를 그렇게 맘 속에 숨겨두고 싶었나보다.

 

정교회 센터 광장 종탑앞에 앉아 있는 햇빛을 올려다 보면서

Oia의 골목길을 서성이면서

나는 폭력같은 햇빛의 습격 속에서 밀려오는 "그리움" 때문에 손발이 저렸다.

그리움 없는 외로움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그건 그냥 지나게 버리는 허상일 뿐이다.

하지만,

외로움에 그리움이 쌓이기 시작하면...

그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온 몸을 뚫고 나간다.

제대로 관통당해 또 다시 너덜해지는 마음.

 

눈부신 건 햇빛 때문이 아니다.

관통당한 마음,

그것 때문이다.

 

Oia는 참 잔인한 햇빛을 품고 있구나...!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0. 29. 08:33

산토리니에 머무는 동안 조카들에게 물놀이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숱한 beach 중에서 심사숙고 끝에 결정했던 Red Beach.

관광객들이 제일 많이 가는 곳이 Perissa와 Kamari beach라서 이곳을 갈까 하다가

Fira에서 가깝기도 하고 아담하고 소박한 beach라서 조카들과 놀기에 좋을 것 같아 이곳을 선택했다.

(그때까지는 정말 몰랐었다... 이게 개인적인 재앙이 될 줄을...)

Fira 버스 정류장에서 아크로티리(Akrotiri)행 버스를 타고 20여분을 달려 정류장에 내렸다.

이정표를 따라 10여분 걸어서 도착한 Red beach.

그런데 얼마전에 태풍이 지나갔는지 입구가 폐쇄되어 있었다.

비치 파라솔도 전혀 안 보이고...

산길을 따라 beach까지 내려갈 수는 있을 것 같고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그렇게 하던데

조카들 신발이 슬러퍼라 포기하기로 했다.

여기서 동생과 약간의(?) 의견 충돌이!

욱하는 마음에 혼자서 사진을 찍고 가겠노라 주장했다.

그게 비극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채!

 

혼자 사진을 찍으면서 두어시간 머물다

버스 정류장에 있는 아크로티라 유적지를 가려고 일어섰다.

입장료를 내려고 가방을 찾으니 아뿔싸!

지갑이 없는거다.

생각해보니 레드 비치 초입에서 조카들 음료수를 사주면서

동생 가방에 지갑을 넣었던 게 생각났다.

그러니까 내 수중에 단 1 Uro도 없다는 뜻이 되는 거다!

낯선 이국에서,

숙소와 한참 떨어진 곳에서,

달랑 혼자서,

그것도 완벽한 빈털털이가 된거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버스 정류장에서 동양인으로 보이는 여자분께 사정을 이야기했다.

"I'm lost my poket ! give me 2 Uro, Please!"

아무래도 남자에게 구걸(?)하면 오해의 여지가 있을것 같아서...

(그 와중에도 이런 생각을 한 걸 보니 아마 정신이 완전히 나간 건 아니었나보다.)

다행히 그 여자분께서 "Oh my God!"을 연발하며 지갑에서 2Uro를 흥쾌히 꺼내줬다.

"You save me! thank you so much, so~~ so~~~"

정말 수도 없이 so~~~so~~~를 연발하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Fira행 버스에 무사히 올라타니 그제서야 웃음도 나더라.

개인적으론 참 난감하고 민망한 상황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사건이 그래도 개인적으로 제일 큰 기억이 된 것 같다.

레드비치에서 수상택시가 들어와서 "화이트비치"를 외치며 호객할 때마다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만약 돈없이 수상택시를 탔었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그때 망설였던 거 정말 잘한거다!. 다행이다!)

 

붉은 자갈과 모래로 가득했던 비치는 낯선 모습때문에 더 신비로웠다.

물도 깨끗하고 수심도 깊지 않아 쬐그만 꼬마들도 꽤 멀리까지 나가 수영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

더불에 1달 다니다 결국 깨끗하게 포기힌 수영 생각도 간절했고...

내겐 여전히 그렇다.

수영과 운전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내 기준에서 제일 미스터리한 건 이정표 보고 길 찾아가는 거랑 사람이 물에 뜨는 거!) 

비록 물 속에 발도 못 담그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혼자 레드 비치에 남았던건  잘한 일 같다.

멋진 (?) 구걸의 추억도 생기고!

 

싱거운 일탈과 위기 탈출로 끝난

나의 Red beach 표류기!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0. 28. 08:16

산토리니에서 두번째로 높은 피르고스(Pyrgos) 언덕.

그 언덕 위에 세워진 13세기 비잔틴 성채를 둘러봤다.

피라(Fira)에서 페리샤(Perissa)행 로컬버스로 20분정도 걸리는 피르고스는

아주 한적하고 고적했다.

OIA나 Fira에 비하면 관광객들도 적어서  

골목골목을 통째로 차지하며 걸을 수 있었다.

게다가 정말 산토리니에 왔음을 실감케하던 눈부시게 하얀 건물과 파란 지붕들

그리고 찬란하다 못해 눈을 찌를듯 느닷없이 달려들던 햇빛들.

아마도 나는 그 햇빛 속에서 "통증"을 느꼈던 것 같다.

뭉근하게 전신으로 퍼져오는 알싸하고 묵직한 느낌.

햇빛속에 이렇게 깊은 무게가 있구나... 알아챘을 땐

너무 멀리, 그리고 너무 구체적으로 피르고스 햇빛속에 들어가 있었다.

동화속 주인공처럼 발랄하게 뛰어다니는 조카의 보는 내 눈이 시리다.

지금도 피르고스를 햇빛을 생각하면,

가슴 한 켠에서 시작한 묵직한 통증이 전신을 휘돈다.

여전히 아프다.

 

피르고스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오른편으로 바로 보이는 친절한 CASTELLI 화살표.

그 길을 따라 쭉 올르다보면 만나게 되는 작은 개인 공방들.

소박한 작은 공예품들도 피르고스에선 그대로 풍경이 된다.

사람의 흔적보다 진열된 공예품들이 더 많았던 곳.

그 골목과 골목들...

골목을 하나 하나를 지나칠 때마다 설래고 또 설랬다.

눈 앞에 보여질 그 다음 풍경들 때문에...

"천국" 혹은 "평화"

어쩌면 나는 피르고스에서 개구진 아이 같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피르고스의 하얀 벽들과 파란 지붕, 원색의 문들이 손에 잡힐듯 가깝다

잠깐 스치고 지나갔던 바람의 물기까지..

머리와 심장에 각인된 풍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을 뜨기가 힘겹다.

혼자 놀던 바람이 종을 치고 지나간다.

이제 그만 깨어나라고!

 

땡그랑~~~! 땡그랑~~~!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0. 14. 08:06

그리스의 환성의 섬 "Santorini"

공식 명칭인 "Thira"보다 산토리니로 더 알려진 이곳은 결혼하는 사람들이 신혼여행으로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이기도 하다.

면인들의 섬인 이곳을 조카녀석들과 정말 용감하게 다녀왔다.

아테네에 피레우스 항구에서 아침 7시 10분에 출발하는 고속페리.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비행기를 이용할지 페리로 갈지를 두고 꽤 오래 고민하다

그러다 좀 힘들어도 조카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시켜주고 싶어서 산토리니로 들어갈 때는 고속페리로

나올 때는 야간페리 침대칸을 선택했다..

혹시 배멀미가 심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바다가 잔잔해서 약간 울렁거리는 정도로 그쳤다.

이번 여행에서 날씨가 참 많은 도움을 줬다.

맨 앞자리 좌석이라 창으로 밖이 잘 보이겠구나 싶어 좋아했는데

그 자리가 하필이면 여행객들의 짐을 올려놓는 곳이었다.

정말 야무지게 차곡차곡 가려지는 시야를 보면서 참 여행객이 많구나... 생각했다.

하긴 나도 지금 여행중이니까!

 

신항구 Athinios port에서 내려서 Fira로 가기 위에 로컬버스를 탔다.

굽이굽이 산길을 넘는 버스를 통해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 꿈결 같다.

방금 내가 내렸던 페리에 산토리니를 떠나는 사람들이 타는 모습과

더 먼저 떠난 페리가 남긴 비행운같은 물결의 흔적들.

아마 그 순간이었을거다.

이 여행에서 처음으로 여행자의 마음이 됐던 게!

아마 나는 그때 그 물결속에 풀어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무심한 마음을 가지기 시작한 것도...

 

Fira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지도를 보고 숙소를 찾아갔다.

지금도 신기한 게 난 결코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 아니다.

그게 코 앞의 길일지라도...

그런데 지도를 보고 찾아갔다!

조카들의 말똥말똥한 눈망울이 그걸 가능하게 하더라.

산토리니는 어디를 가든 꼭 Fira 버스정류장에서 로컬버스를 타고 이동해야만 하는데

다행히 숙소가 이 버스 정류장에서 그리 멀리 않은 곳에 있었다.

탁 트인 호텔 앞 뷰도 너무나 좋았지만

문만 열면 바로 수영장이라 조카들이 너무나 좋아했다.

도착하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풍덩!

게다가 길만 건너면 바로 "카르푸"라서 그것도 너무 좋았다.

(3박 4일 동안 참 알뜰하게, 자주 이용했던 곳!)

 

그리스는 바다를 가를듯 쑥 밀고 들어간 곳이라서 늘 거센 바람이 그칠 줄 모른단다.

그 바람이 포도와 오이, 올리브를 익게 만들고

종을 치는 사람이 없어도 교회 종탑에서 종이 울리게 한다.

산토리니를 다니면서 정말 많이 봤던 종탑들...

때로는 교회였고, 때로는 음식점이었고, 때로는 묘지이기도 했던 곳.

그러니까 이곳들이 모두 바람이 드나드는 길이었던거다.

산토리니가 메마르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섬 도처에 바람의 통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바람 속에 물의 기운도 함께 이동하기 때문에...

뜨거운 지중해의 햇살을 감당할 수 있는 이유가 이 바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여행에서 아크로폴리스에 이어 두번째 대면한 "바람")

 

초등학생 조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다보니 아무래도 무리하게 움직일 수 없어서

도착 첫날은 피라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걸로 만족했다.

(페리 보딩때문에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부산을 떨었던 탓에...)

그리스의 섬들이 다 그렇겠지만 이곳 산토리니의 피라는 "햇살"이 유난히 좋았다.

눈을 뜨고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기가 힘들만큼 강렬했지만

그 강렬함은 주변을 넓고 부드럽게 감싸안는 포근함이었다.

어쩐지 피라의 햇살 속에 서있으니 나까지도 말갛게 행궈지는 기분이다.

조카들의 웃음소리도 발랄하게 사방을  뛰어다닌다.

하늘을 보는 것도, 바다를 보는 것도 눈부시게 예뻐서

이곳에서라면 풍경 속에 한 입에 삼켜져도 진심으로 행복할것 같았다.

하얀 풍경 속에 서 있어보니 

왜 흰색이 무채색인지 정확히 알겠다.

흰색은 주변의 색에 쉽게 흡수되고, 주변의 색에 쉽게 번진다.

흰색이 눈부신 건 아마도 그래서가 아닐까?

하얀 건물이 뿜어내는 햇살의 빛남은

그 어떤 보석의 반짝임보다 화려하고 눈부셨다.

아마도 그 순간이었나보다.

"햇살"을 향한 불같은 질투가 시작된 게!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9. 22. 05:40

조카들에게 산토리니 해변에서의 수영을 추억으로 만들어주려고 선택한 레드비치.피라 로컬 버스 정류장에서 아크로티리행 버스를 타고 20여분을 가서 다시 도보로 10여분. 그런데 입구가 폐쇄됐다. 가자고 작정하면 줄을 넘어서 갈수는 있는데 동생이 반대한다. 의견충돌(?)로 개인플레이를 하기로 했다. 조카랑 동생은 오다가 봤던 해변으로 가고 나는 사진을 찍고 싶어서 레드비치에 남았다. 햇살 좋은 해변가... 온몸이 이미 익어버린 나는 뜨거운 햇살 아래 수영복만 걸친 사람들 앞에서 온몸은 꽁꽁 싸매고 퍼포먼스처럼 카메라셔터를 눌러댔다.한참 지나고 나서야 수중에 돈이 한푼도 없다는걸 깨달았다.엄청난 맨붕이 왔다.머릿속은 블랙이 되버렸고 안절부절 못하다가 지나가는 동양여자분께 사정을 말하고 2유로를 얻었다."you save me! thank you so much" 몇번이나 thank you를 연발했는지 모른다.짧은 영어실력으로 정말 용썼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 

크래커에 크림치즈를 발라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혼자 피라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쁘티호텔을 카메라에 담는데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찔한 절벽위에 그림같은 새하얀 건물들은 햇살속에 눈이 부실 정도다.산토리니의 화이트! 이상하다! 신비감을 자아내니...

구항구에서 이어지는 588계단도 올라가다 중간에 그 유명한 동키택시도 봤다.근데 당나귀들 냄새 정말 장난 아니다. 게다가 그놈들 배설물도 요리저리 피해가야하고...

전망좋은 카페에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조카들이  눈에 밟혀서 포기하고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시 주변을 들러보며 셔터를 눌렀다.전문가가 들으면 웃겠지안 괜찮은 사진을 몇장 찍었다. 

이아  마을에 이어 피라의 선셋을 찍으려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붉은 해가 수평선으로 사라지는 순간은 모든게 매직이다. 카메라의 한계,  렌즈의 한계, 나의  한계가 여실히 느껴지는 좌절의 순간이기도 하고... 아마도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 오늘이 돼지 않을까? 혼자라는  사실에 내가 아주 익숙해져버렸구나...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내가 측은하다. 괜찮아! 지금껏 그래도 잘 버텼잖아!

내일은 피라에서의 마지막 날.밤 12시에 야간페리를 타야 하니까 꼬박 하루가 남은 샘이다. 이아  마을에 다시 갈지 피라에 있을지는 아직 결정을 못했다.짐도 꾸려야하고... 어쨌든 최대한 좋은 순간을 만들자! 산토리니에 다시 오게 될지는 미지수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9. 19. 22:38
우여곡절끝에 아침 7시에 눈도 못뜨는 조카들을 깨워 산토리니행 페리를 타고 섬에 도착했다.이곳에서 3박5일을 보낼 예정.호텔에 짐을 풀고 까르푸에 들러 장을 보고 쉬고 있는 중. 조카들을 호텔에 있는 수영장을 차지하고 물놀이 중! 어제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는 강행군이었지만 세계문화유산 1호인 파르테논 신전은 정말 신비롭고 장엄했다. 엄청난 모래바람은 왠지 사람의 접근을 저어하는 신의 뜻처럼 느껴졌다. 어디서든 파르테논 신전이 보이던 신아크로폴리스 박물관도 인상적이었고...동생과 조카들과의 자유여행! 쉽지 않지만 지금까지는 그런데로 잘 찾아다녔다(?) 길치인 내가 이정도 헤맸으면 아주 양호한 편^^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