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2.11 <정거장에서의 충고>
  2. 2010.07.08 <인간적이다> - 성성제
읽고 끄적 끄적...2011. 2. 11. 06:22
한때 기형도의 시를 몽땅 외우리라 작정한 때가 있었다.
그때는 나도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인 시절이었고
(그렇다고 지금이 뭐 다채로운 색채를 띄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서 아무도 나를 들춰보지 않았던 때였을지도 모르겠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그의 시집이 너덜거릴 때까지 읽으면서
마지막 시작노트까지 깡그리 외우자 작정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시작노트는 달달 외우기도 했었다.
그는 한번이라도 생각했던 적이 있었을까?
그가 29의 나이에 신화가 되리라는 것을...
기형도의 시는 참혹할만큼 아름답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으면 누구라도 신병(神病)을 앓게 된다.
그는 우리에게 신내림의 형벌을 남긴채 차가운 삼류극장 그 싸늘한 자리에서 세상과 이별했다.
그가 세간의 말처럼 동성애자였는지 아니면 평소처럼 밤거리를 헤매다 발을 쉬기 위해 잠시 들른 곳이
하필 그곳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죽음 자체도 이미 하나의 원형(原形)이 되버린지 오래다.
한창 기형도에 빠져있을 때 성지순례하듯 종로의 낙원상가 뒤 그 극장을 배회했던 적도 많았다.
생각했었다.
그렇게 축축하고 가엾고 힘들고 아름다운 시를 썼으니 몸이 남아나지 않았을거라고...



"기형도의 삶과 문학"이라는 부재가 달린 이 책은
2009년 3월 기형도의 사망 20주기에 맞춰 발간된 책이다.
성석제, 이광호, 박해현 등 그와 특별한 인연이었던 친구 혹은 후배 문인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헌정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 쓸쓸하게 아파서 도대체 이 책을 다 읽을수나 있는건지 의심스러웠다.
겨우겨우 다 읽고 났을때도 또 다시 오랫동안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원래 계획은 바로 이어서 그의 <입 속의 검은 잎>을 다시 읽자는 마음이었는데...
아무래도 그 시집은 3월 그의 22주기쯤에나 시도해야 할 것 같다.
내리 앓을 자신이 너무 없어서...
솔직히 그 시집의 책장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자신이 도저히 없다.



제 1 부,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를 읽는 시간
제 2 부, 기억할 만한 지나침 - 기형도와의 만남
제 3 부,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기형도 다시 읽기 


제일 읽기가 수월한 부분은 2부였다.
그를 알고 있던 지인들이 추억처럼 들춰낸 이야기.
편안하지만 아프게 읽은 부분.
기형도가 좋은 음성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도
그래서 노래를 잘 불렀었다는 것도
(실제로 동료 문인의 결혼식 축가도 불렀단다)
결벽증에 가까운 글쓰기 습관을 가졌었다는 것도
술을 거의 못마셨었다는 것도...
(이제 그는 모두 과거시제가 됐다)
김훈, 이문재, 임우기, 성석제가 쓴 글 속에는 기형도에 대한 벗으로써의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그를 실제로 알지 못하는 나조차도 기형도를 생각하면 아득한데
이들은 얼마나 아득했을까?
이 글을 쓰면서 그들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니 안스럽다.
기형도에 대한 학문적인 평론을 모은 3부는,
상당히 전문적이고 심도있는 글이라 어렵고 지루할 수도 있지만
기형도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봤을 글들이다.
그래서 한 곳에 모여있는 이 글들이 나는 다행스럽고 기쁘다.
특히 신화비평에 탁월한 남진우의 글은 다시 읽어도 새롭고 흥미롭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다 읽고 한참 방황(?)하고 있던 때에
시나리오 작가였던 최고은(32)의 타계소식을 들었다.
요즘 세상에 설마 사람이 아사(餓死) 할 수도 있을까 생각했는데
어쨌든 그녀는 믿기지 않게도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그녀가 문틈에 남겼다는 쪽지...
“창피하지만 며칠 째 아무 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과 김치가 있다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달라......”
만약 이 쪽지가 일찍 발견됐다면 그녀는 지금 이 세상에 있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랬을 수도,
아니면 그렇치 않았을 수도...

작가의 궁핍은...
여전히 맹수처럼 잔인하고
오랜 지병처럼 서럽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7. 8. 06:40
정말 인간적으로 재미있는 책이다.
책 표지부터 얼마나 인간적(?)이던지...
앞표지의 그림 자체가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다 말해주는 것 같다.
한쪽으로 밉지 않게 살짝 돌아간 눈이며,
누군가의 시덥잖은 비밀을 듣느라 잔뜩 집중된 귀,
벌름거리리는 건수를 찾는 듯한 코,
금방이라도 별 생산적이지 않는 우스개소리를 쏟아낼 것 같은 입매.
거기다가 상당히 주관적으로 편안한(?) 원초적인 의상에
두루뭉술한 배둘레, 겹겹히 쌓인 친숙한 지방질까지...
정말 한 마디 안 할 수 없다.
"야~~ 참, 인간적이다~~~"
그러면서 문득 궁금해진다.
표지는 성석제의 의도였을까? 출판사의 디자인이었을까?



49편의 콩트같은 단편들이 담겨 있는 책이다.
아주 소소하고 일상적이고 이야기들
게다가 몇몇은 거의 허무개그의 수준이다.
박장대소를 노리고 보다는 삐질삐질 새어나오는 웃음을 노린 그런 이야기다.
개그콘서트를 책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 ^^
이 중에 또 몇 편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되어 지금 성석제의 머릿속에 구상 중일지도 모르겠다.
성석제의 글들은 가벼운듯 하면서도
묘한 뒷끝이 있다.
읽는 사람을 뒤가 구리게 하고 캥기게 하는 그런 반갑지 않은 마음도 들게 한다.
하지만 그의 재치와 유머러스함은 정말 명불허전이다 싶다.
손꼽히는 스토리텔러에 들어가는 이유를
이 사람의 책을 읽으면 매번 확인하게 된다.
2시간 정도 진득하니 앉아 있을 수 있는 책.
것도 아니면 아무 페이지나 펼쳐들고 겅중겅중 읽어도 무방한 책.
책이 주는 자유로움을 맘껏 즐길 수 있는 단편집이다.



열 두 번째 소설집을 낸 50에 들어선 작가 성석제는 말한다.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문장으로 포착해 소설로 만들어내는 순간,
 소설과 비소설 사이에 있는 그 아슬아슬한 긴장이 좋다"
라고...
그래서 그의 글 속에는 사람 냄새가 진동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제일 중요한 건 독자와의 소통이거든요. 
 내 소설이 구현하려는 바와 독자들이 가지고 가려고 하는 것이 맞아떨어지면 문학적 거래,
 즉 소통이 성립하죠.
 이 때 형식적 시론은 중요치 않아요."

성석제의 글을 읽고 있으면
내 일상같은 단편들로 인해 세상 다들 별 다를 것 없이 사는구나 싶어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안도감이 나는 "소통"이라고 생각된다.
살다보면 담배값 깍는 인간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대단은 하다...ㅋㅋ)
후진하는 차를 인도하는 신부님을 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철부지없는 시부모를 만날 수도 있을거다.
또 모르지, 종계(種鷄)를 서리해서 씨를 말리는 참사를 빚게 될지도...
읽으면 읽을수록
나만 시덥잖은 게 아니구나,
나만 지지리궁상인 건 아니구나.
나만 팍팍한 게 아니구나...
웃으면서 공감하하게 되고 절로 악수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가볍지만 그러나 그 가벼움 속에 똬리 틀고 있는 예리한 일상들 역시도 다정하게 다가온다.
그래, 인생 뭐 별 거 있나?
이렇게 인간적으로 사는 거지!
어딘가에 있을 49편 단편의 주인공들과
인간적으로도다 소주 한 잔 기울이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