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끄적 끄적...2013. 6. 3. 08:49

금혼(金婚)

부부가 결혼을 해서 만 50년이 되는 해.

지난 토요일이 엄마, 아빠가 결혼하신지 50년이 되는 금혼의 날이었다.

50년의 시간이라니!

두 분은 어떻게 그 시간들을 감내하며 살아왔을까?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그 시간의 깊이와 굴곡을 이해하지도 이해할 수도 없다.

그저 단지 그 시간들이 무시무시한 존경심으로 다가올 뿐이다.

부모님의 금혼(金婚)의 시간이

내겐 결코 표현되어질 수 없는 금언(禁言)의 시간같다.

태고의 묵시록을 보는 듯한 생경함.

펼쳐진 페이지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막막하게 서있는 나를 본다.

넘길 수도, 덮을 수도 없는 묵시록.

 

두분에게 기념될만한 근사한 이벤트를 해드리고 싶었는데

사정상 이번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도 일요일에 일본에 있는 언니네를 제외하고 온 가족이 모여

나름의 가족행사를 했다.

다들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서 혼자 맘이 많이 상해있었는데

어쨌든 두분 부모님이 기분 좋아 하셔서 다행이다.

14명의 대가족이 함께 야외로 나가서 식사도 하고

집에 와서 자식들이 만든 기념폐도 드리고 케익컷팅도 하고 꽃다발도 드렸다.

리와인드 웨딩도 생각해었고

두분 여행보내드리는 것도 생각했었고

뷔페식당을 예약할까도 생각했었는데

엄마 아빠가 원치 않으셔서 그냥 조용하게 가족끼리 보냈다.

오랫만에 언니랑도 통화하고,

카톡으로 서로 사진도 보냈다.

(이럴때보면 스마트폰으로 바꿔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뭐, 아직 핸드폰이 고장난 것도 아니니까.)

산이랑 여행하는 거 좋아하시는 두 분인데

근 2년 종안 꼽짝도 못하고 계시니 안스럽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하다.

내년쯤에 엄마, 아빠 건강이 회복되시면

무리를 해셔라도 꼭 크루즈 여행을 보내드려야겠다.

 

50년의 시간,

두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자식들이 참 면목이 없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2. 4. 16. 05:59

나는 아직 스마트한 사람이 아니라서 핸드폰도 스마트폰이 아니다.

내가 일하는 곳에 스마트폰 아닌 사람이 나까지 3명이었는데 어느틈에 달랑 나 하나로 줄었다.

자꾸 옆에서 뭐라고 한다.

이제 그만 스마트폰으로 바꾸라고...

워낙에 심한 기계치이기도 하지만

왠지 스마트폰을 쓰면 자투리 시간을 온통 거기에 쏟을 것 같아 아직까지 열심히 고사하는 중이다.

출퇴근길에 전철에서 예전에는 책이나 하다못해 무료신문 보는 사람들이 몇 명은 있었는데

지금은 다들 자신의 스마트폰에 그야말로 머리를 박고 있다.

뻘쭘하고 약각은 고고하게 혼자서 책을 읽는다.

기분 꽤 괜찮다.

내가 다른 사람과 어쩐지 달라보이는 것도 같고...

스마트폰의 어매이징한 터치의 신세계보다

나는 아직 종이냄새 풍기는 책장을 터치하는 게 비교불가하게 황홀하다.

게다가 나는 e-book과도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이다.

책은 역시 한 장씩 한 장씩 손으로 직접 넘겨야 제 맛이라고 생각한다.

슬쩍슬쩍 뒷부분을 훝어보는 재미도 놓치고 싶지 않고...

 

표지 속의 박경철을 보고 일단 놀랐다.

너무 슬림해서 내가 알고 있던 "시골의사" 박경철이 아닌 것 같았다.

일부러 살을 뺐다는데 의지가 대단하다.

다재다능, 박학다식.

박경철이 딱 그렇다.

예저에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을 읽으며 이런 소망을 적었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도 소설 쓰는 의사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의학서적이나 에세이, 기고문이 아닌 진짜 문학을 하는 의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

아쉽게도 박경철은 문학을 하는 의사는 아니지만

문학 작품같은 그의 글들은 간혹 보게되면 또 다시 꿈꾸게 된다.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이제 이런 책을 읽기엔 점점 늙어가고 있지만(?)

나는 이 글 속에 있는 박경철의 도발과 혁명이 아름답다.

이 사람은 내내 청년인채로 살겠구나 싶어 정신이 번쩍 차려진다.

...... 청년은 끊임없이 반해야 한다. 세상에 반하고 문학에 반하고 친구에 반하고 이성에 반하고 자연에 반하고 꿈에 반해야 한다. 그렇게 반함을 혹은 뜨거움을 충분히 발산하고 만끽함으로써 나를 억압하는 규제나 금기로부터 오는 곤혹스러움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

안밖으로 아름다운 문장이다.

그러나 나 역시 아직 반할 수 있는 것들이 남아있다.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해 반해보리라.

<태백산맥>의 거장 조정래 선생님이 말했다.

"최선이란 자기의 노력이 스스로를 감동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쓸 수 있는 말이다" 라고.

박경철처럼 정말 뇌가 녹아버릴 것 같이 무언가에 몰두하고 열심이었던 적이 있던가!

그게 자의였든, 타의였든 그랬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직 청년이다.

나도 아직 반할 것들이 남아있기에

내 청년도 끝난 게 아니다.

다행이다. 

세계 분쟁 지역을 다니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김영미 PD.

그녀가 카메라가 아닌 글로 기록한 아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은 평온했다.

그래서 더 안스러웠다.

아프가니스탄 여성 시인 나디아 안주만.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가족에게 살해됐다.

사랑과 아름다움이라는 입에 담을 수 없은 단어를 사용해서

그것도 감히 여자가 시를 지었다는 이유로 명예살인을 당했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거나 죄를 지은 아내나 딸, 여동생을 죽여 가문의 위신을 세운다는 "명예살인"

그렇다면,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은 어떤 단어를 써야만 하나?

가족에게 죽임을 당할 당시 그녀의 나이는 고작 25살이었다.

이보다 더한 비이성과 야만의 세계가 과연 있을까?

노래하는 사람을 참수형시키는 탈레반 정권.

밥을 먹고 있는 일가족을 한꺼번에 쓸어버린 폭탄.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비의 기억은 멈췄다.

이미 세상에 없는 가족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아비의 눈은 과연 무엇을 보는가?

 

전쟁의 목적과 이유가 도대체 뭘까?

인간의 삶이 어디까지 피폐해질 수 있는지 그 바닥을 기필코 보고 싶다는 마음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희 PD는 말한다.

...... 나는 다시 그런 기회가 오면 겁나더라도 또 그곳을 가고 싶다. 전쟁터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떤 기자가 왜 전쟁터만 가느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나는 전쟁터여서가 아니라 그곳에도 사람이 있어서 간다고 대답했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 나의 카메라는 갈 수 있다 .....

그곳이 전쟁터여서가 아니라 사람이 있기에 간단다.

그래, 여전히 사람이 희망이다.

희망은...

그러나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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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구호 단체들

 

o 유엔난민기구(UNHCR) www.unhcr.or.kr  whth@unhcr.or.kr / 02-773-7272

o 유니세프 (UNICEF) www.unicef.or.kr  psfr@unicef.or.kr 02-723-8215 

o 적십자 (Red Cross, Red Crescent) www.redcross.or.kr  master@redcross.or.kr 02-3705-3705

o 플랜 코리아 (Plan Korea) www.plankorea.or.kr  kno@plandorea.or.kr  02-790-5436

o 세이브더칠드런 (Save the Children) www.sc.or.kr  webmaster@sc.or.kr  02-6900-4400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