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8. 9. 12. 09:42

확실히 난...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이 여행을,

슬로베니아를,

블레드를,

꿈꿨던게 분명하다.

모르진 않았음에도

이렇게까지 미치게 아름다울 줄은...

꿈에서도, 깨어서도 몰랐다.

 

 

2시간 훌쩍 넘은 산책.

하지만 나는

시간 그 이상의 시간을 보냈다.

내가 본 것들,

그 이상의 것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

걷고 또 걸으면서 내 유일한 생각은,

바로 이거였다.

더 많이, 더 깊게, 더 넓게 볼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9. 11. 08:48

사람이 아무도 없는 블레드 호수.

이게 정말 실화인가 싶다.

왜 이 좋은 풍경을 보는 사람들이 고작 한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을까?

혼자 조용히 다닐 수 있는건 감사한데

이 좋은걸 나혼자 독차지하고 있다는건

아무래도 두루두루 황송한 일이다.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새벽 4시에 눈뜨자마자 바로 나올 걸...

살짝 후회도 했다.

 

 

자주 걸음을 멈췄고

그래서 자주 아득했다.

생각보다 사진을 많이 찍지도 못했다.

막연하고 바라봤고,

그 막연함에 발이 묶이고,

몸이 묶이고,

맘이 묶였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

그냥 이 곳의 먼지 한 톨로 남아있다 그대로 사라진대도

두렵거나 무섭지 않겠다 싶었다.

그게 가능만 하다면...

 

 

산책 중 만난 깜짝 선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위로 두둥 떠오르는 커다란 풍선.

벌룬투어 중인 모양이다.

하늘 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블레드 호수는 어떤 모습일까?

잠깐 굼금했다가 또 잠깐 부러웠다가...

블레드성에서 본 것과 비슷은 하겠구나 싶어 위로가 됐다.

세상에 다시 없는 이렇게 아름답고 다양한 새벽빛을 봐놓고서

난 뭘 또 바라는지...

욕심을 놓자.

여기서 더 바라는건,

정말 염치불구다.

 

그래도 한 가지심내자면,

이 산책이 내내 나지 않기를...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9. 10. 13:56

블레드에서의 1박을 계획했던 건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블레드 호수를 걸어서 한 바뀌 돌아보기 위해서!

누군가는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2시간이 걸린다고도 했다.

내 경우는,

중간중간 사진을 찍느라 멈춰야 하기 때문에

2시간 이상을 예상했다.

다행히 전날 일찍 잠이 들어서

새벽 4시경에 잠에서 깼다.

날이 너무 밝아 놀랐다.

새벽의 빛이 아니라 한 낮의 빛이라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밖으로 나오니 확실히 새벽빛이 다르긴 하다.

물빛도 다르고,

물에 비치는 그림자도 다르고...

거의 혼자였고

스쳐 지나간 사람도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이 고요함을 오래 차지할 수 있다는건

더없는 축복이고 감사다.

최대한 천천히 걸어야 겠노라 다짐했다.

다시 오지 못할 시간이고,

다시 오지 못할 곳이고,

다시 오지 못할 걸음이기에

한 걸음 한 걸음이 처음 같았고 마지막 같았다.

 

천지창조의 한 걸음.

최후의 심판인 한 걸음.

^

그러니... 잘 살자.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9. 7. 08:17

블레드성에서 내려오는데

기어이 비를 만났다.

아니 '기어이'란 표현은 옳지 않다.

"드디어"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

gloomy하길 바랬던 부다페스트는 정작 gloomy하지 않았고

shiny하길  바란 블레드가 gloomy 했지만

그 역시 운치있어 좋았다.

뭐랄까?

후두둑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숙소로 걸어가는 길.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단체로 이동이라도 했나 싶을 정도로

텅 비어 있는 거리와 골목들.

여기... 혹시....

잘 만들어진 셋트장인가???

의심 반, 신기함 반.

 

 

 

비 때문이라고...

그래서 사람들이 없는거라고...

뭐 덕분에 나는 주인의식 샘솟아서 너무 좋았지만!

비오는 날의 우울한 산책...이 아닌

빛나는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의 귀환.

단촐하지만 풍성한 저녁 식사로 하루를 마감했다.

햇반과 고추참치, 그리고 컵라면 하나.

따뜻한 밥이 주는 위로와 평온.

오늘 하루,

아주 잘 보냈구나 싶어 평온했다.

오늘의 이 힘이 내일의 새로운 힘으로 찾아오길 바라며...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9. 6. 08:37

개인적으로 블레드성은,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보다는

외부에서 전체를 관망하는게 훨씬 좋았다..

재미있는건,

호수면에서 절벽 위를 올려다볼때는

난공불락의 큰 요새처럼 보이는

막상 성에 올라가서 보면 생각만큼 그렇지 않다는거다.

살짝 동화적인 느낌이랄까?

아! 그리고 저 붉은 색 깃발.

너무 예쁘다.

요즘 붉은색에 자꾸 꽃힌다. ^^

 

 

사람 없을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다 찍은 사진들.

벽을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 넝쿨의 초록도 싱그럽고

바닥에 총총히 놓여 있는 화분들과

창가의 작은 화분들에도 눈이 간다.

흐린 날씨를 싱그럽게 바뀌는 요술 램프들.

그리고 장생긴 커다란 나무까지.

더없이 다정하고 친밀한 건축물과 자연의 조화.

 

 

살짝 기울어진 저 나무는 몇 번을 다시 가서 봤는지 모른다.

저기 작은 마당에서 내려다보는 블레드섬도 일품.

날은 결국 화창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흐려졌다.

비가 올것 같아 성을 나섰다.

내려오면서 눈마주친 나무와 길들.

화창함을 기대했지만

흐린 날의 블레드성도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았다.

한적하고 고요해서 오히려 풍성했으니

더없이 소중한 한 장면이다.

꽉 차있었으면 얼마나 허둥댔을까?

안단테 같은 풍경.

흐린 날의 블러드성은 딱 그렇더라.

 

Andante... Andante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8. 24. 17:21

사실 나는 이곳이 좀 더 고전적이길 바랫다.

도제(徒弟)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말의 장인정신이 스치길 바랬는데

실상은 그저 상업적인 공간일 뿐이다.

아주 정직히 말하면,

좀 비싼 기념품샾이라 하겠다.

입구에서 와인병을 보고 있는데

어딘지 버려진 느낌이었다.

와인병 위에 쌓인 먼지는 함부로 털어내는게 아니라는것 쯤은 나도 잘 안다.

내가 기대했던건 청결이 아닌 정성이었는데 그게 안느껴졌다.

 

 

안으로 들어갔다면  혹시 다른 느낌을 받았을까?

내부로의 진입(?)이 망설여졌던건..

사실 수도사 복장을 한 저 분 때문이었다.

저 분이 수도사가 아니라는것쯤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겠지만

종교적의 뉘앙스를 판매에 활용한건...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다.

너무 노골적인 판매전략이라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머리 속으론 

"전통적인 수도원 방식 그대로 만든 특별한 와인을 보관하고 판매하는 곳"이라는 광고 문구가 지나간다.

특별함이 평범함에게 자리를 내 준 느낌.

딱 그렇더라.

 

 

성벽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

벽쪽에 붙어있는 철제 손잡이가 인상적이었던 곳.

좁을 계단을 올라가면 골목 덕후인 내게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진다.

좁은 성벽을 걸어가면서 좌우로 보이는 풍경에 간탄이 연발이다.

오른쪽과 왼쪽으로 같은 듯 다른 세상, 다른 듯 같은 세상이 겹쳐진다.

끝에 있는 동그란 곳에는 고렌스카 지방 박물관과 아놀드 리크리 기념실이 있다.

이 곳도 물론 꼼꼼히 둘러보긴 했지만

그래도 좌우에 펼쳐지는 풍경만 못하다.

블레드성 성벽에서 또 다시 체감한 만고의 진리 하나!

 

made는 nature를 이기지 못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8. 23. 13:54

블레드성은 숨은그림찾기 같은 곳이다.

볼만한게 별로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보겠다고 작정하면 이곳만큼 특별한 곳도 없다.

일종의 소확행이랄까?

박물관이 딱 그랬다.

"블레드"라는 명성에 비하면

박물관이 너무 조악한고 유치한것 같지만

그게 오히려 순수하고 귀염성있어 좋았다.

 

그래도 청동기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블레드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둘러보는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들어온 사람들도 이내 금방 나가버렸다.

혼자 돌아다니면서 이거저거 다 살펴보고

마네킹 보면서 빵 터지고

(특히 가발에서...)

창문 밖 풍경에 감탄도 하고,

이날도 나혼자 박물관을 통째로 전세냈다.

 

 

블레드성 예배당.

내가 가장 오래  머물고, 가장 여러번 찾아간 곳.

아주 작은 예배당인

신기하게도 그 안에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따뜻해졌다.

현대조각같은 성모상이 이질감을 주긴 했지만

작은 불이 켜지니 그마저도 스르르 녹아들었다.

문득 이스탄불의 키리예 박물관이 떠올랐다.

왜 그랬는지가...

지금도 가끔 궁금하다.

 

어쩌면 "터키"라는 곳이,

내 여행의 모태신앙이 됐는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8. 22. 08:31

블레드성을 나만큼 샅샅히 둘러본 사람... 있을까?

(당연히 있겟지만...)

혹시나 날씨가 맑아질까 싶어서

종아리가 터지도록 블레드성을 다니고 또 다녔다.

같은 곳을 최소 세 번 이상씩은 다 들어갔던 것 같다.

단체 광광객들이 우루루 몰려왔다가

똑같은 포즈로 우루루 사진을 찍고

다시 우루루 돌아가는걸 모습을 몇 번을 봤는지...

 

 

블레드성에 있는 인쇄소는

구텐베르크가 포도주 압착기를 착안해 만든 인쇄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신기하긴 하지만,

박물관의 개념보다는 기념샾에 가깝다.

중세시대 옷을 입은 관리인이 직접 시현도 하는데

공방의 의미가 아닌 이벤트 가까웠다.

그래도 구텐베르크 인쇄방식 자체는 정말 신기하더라.

미학적이었고 우아했다.

아주아주 오래전,

인쇄라는 작업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생각하니 감동적이었다.

 

"대장간"이란 곳은

옛스러움도 없고, 시간의 더께도 없는 단지 "샾"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아예 "For Sale"이라 써있어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곳은 아예 관리인도 없고

진열품 위로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다.

그러다 "손으로 만든"이라는 한글을 보고 빵 터졌다.

sale에 대한 간절함 따윈 없지만 손으로 만들었다는건 알고는 있으라는 시크함 ^^ 

(정말???? 에이! 아닌 것 같은데....)

혹시라도 기념품으로 살 만한게 있을까 둘러봤는데

이거다 싶은게 전혀 없어 되돌아 나왔다.

하긴 이곳은 블레드성을 조망하는 뷰가 주연이고

나머지는 다 조연들이다.

조연이 너무 돋보이는건... 난감 있겠다.

 

뷰 하나가 열 일, 백 일을 하고도 남는데

다른게 뭐가 필요할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8. 21. 09:55

블레드성에 올라가면,

진한 커피 한 잔에 크림 케이크를 먹어야겠다 생각했다.

저 멀리 브레드섬을 내려다보면서.

B.U.T.

모든게 꼭 바람처럼 되는건 아니더라.

흩부려진 꽃잎들.

이건 뭐지 싶었는데 내가 원하는 딱 그 자리가 막혀 있다.

사람들로 늘 붐비는 곳인데 손님이 아무도 없다.

뭐지?

오늘 여기 쉬나???

나처럼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딱 나같은 표정으로.

 

 

샴페인과 샴페인 잔.

그리고 단정하고 깔끔하게 꾸며진 주변들.

파티가 있었나 싶었는데

아래쪽에 신랑,신부의 모습이 보인다.

그렇구나...

결혼식이 있었던 거구나.

거짓말같은 상황이다.

아지랑이 같기도 하고, 낮잠 같기도 하고...

 

 

비록 나와는 무관한 사람들이지만

저 행복한 연인들이,

함께 하는 내내 행복하기를 기원했다.

혹 함께 하지 못할 때에도 

행복했던 기억으로 다시 행복하기를...

Amen...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8. 16. 08:07

블레드의 교구성당인 St. Martin church은

1905년에 만들어진 성당이다.

유럽 대부분의 성당들이 몇 백 년 정도됐으니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성당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일종의 현대식 건물^^

정확히 말하면,

최초의 성당은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에 이곳에 지어졌단다.

그러니까 계속 성당터로 어어지면서 블레드를 지키고 있었다는 뜻.

블레드의 터줏대감 ^^

 

 

성당 앞뜰은 경계가 따로 없어 애매하지만

슬로베니아 출신의 유명한 건축가가 디자인한 정원이란다.

성모자상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모습이 흐린 하늘 아래 고요했다.

INRI

가시 멸류관을 쓴 예수의 머리 위에 쓰여진 글의 뜻은,

"유대인의 임금, 나사렛 예수"다.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

뭔가 성스럽고 거룩한 명패같지만 사실은 예수를 놀리기 위한 죄패다.

"빌라도는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달게 하였는데.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사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 - 요한복음 19장

빌라도는 알았을까?

자신이 예수를 조롱하기 위해 쓴 죄패가

이렇게 "성(聖)"의 증거가 됐다는걸...

욕(慾)은 성(聖)을 이기지 못한다.

 

 

주재단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온화했

내부의 프레스코화는 엄격해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카메라에 프레스코화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처음엔 들어가기조차 망설여져

유리문 밖에서 기웃거렸다.

세상과 완전히 구분된 듯한 느낌.

날이 흐리고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되짚게 하는 침묵 속에서

나 역시 침묵으로 한참을 서있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