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고 끄적 끄적...2011. 4. 23. 06:19
봄이 올 때쯤이면 한상 다짐하는 일 하나.
꽃을 보리라...
더 정확히 말하면
꽃이 터지는 순간을 목격하리라.
어느 날 난데없이 활짝 핀 꽃들을 보면서 난감했던 기억이 몇 번이던지.
언제나 꽃은 나란 존재를 피해서
늘 은밀하고 조용히 핀다.
이상하게 그 모습을 보면 묘한 배신감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번에도 꽃은 여지없이 나를 등지고 피어났다.
그리고 도무지 따뜻한 기미조차 느껴지지 않는 축축하고 찬 비...
오래 앓은 사람처럼 감기로 허덕이다 반쯤 몽롱한 눈으로 세상을 본다.
벗꽃은 이미 눈물처럼 뚝뚝 떨어져 
사람들의 거친 발걸음에 눈물자욱 흥건하고
팝콘처럼 터진 목련의 목은 절단이라도 날 듯 금방이라도 위태롭다.
화단엔 작은 생명들이 색은
그래서 오히려 이국적이다.
아, 꽃의 세상에도 늙음과 신생이 한 뿌리 속에 나란히 공존하는구나...
목격되지 않는 것에 불안했고
확인할 수 없는 것에 가슴이 섬뜩하다.

 

누군가의 과거를 보는 건,
꽃의 과거를 보는 것 만큼이나 안스럽고 강팍한 일.
시간은 아무 것도 말해줄 수 없다.
누가 눈 앞에 있는 걸 다 볼 수 있다고 말할까?
볼 수 있다면 당신이 이미 이 세상을 버린 사람이다.
뚝뚝 떨어져내린 꽃처럼...
꽃은 생명을 다 버릴 때,
그 때가 되야 진짜 피어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3. 17. 05:46

윤대녕의 글을 읽고 있으면 온 몸이 싸늘해진다.
김훈의 그것과는 또 다른 싸늘함.
김훈의 소설 속에 바람을 읽을 수 있다면
윤대녕의 소설 속에는 폭설을 읽을 수 있다.
쓸어도 쓸어도 집요하게 다시 쌓이는 거침없는 하얀 눈발.
그의 소설은 세상의 모든 길을 묻은 길고 오랜 폭설,
그 하얀 풍경(설경)이 담긴 오래된 묵화같다.
그의 소설 속에는 그 폭설을 뚫고 시간을 천천히 통과하는 사람이 있다.
그쪽에서 이쪽으로 찾아오는 그런 시간, 그리고 그런 사람.
동시에 찾아오는 그 두가지를 대면하는 건
오래오래 침묵하게 하고, 오래오래 집중하게 한다.
그의 글들은 앞으로도 얼마나 더 그림같을 것인가!!!
내게 그의 글은 바로 "옛날 영화"다.


연(鳶)
제비를 기르다
탱자
편백나무숲 쪽으로
고래등
낙타 주머니
못구멍
마루 밑 이야기


윤대녕의 네 번째 소설집엔 담긴 8편의 중,단편의 그림들.
(그의 소설은 그림처럼 읽힌다. 그것도 아주 또박또박...)
이 그림들을 읽으면서
나는 책 속에 있는 인물들이 다 내 오랜 피붙이같이 마다마디가 저릿했다.
피붙이에 대한 이야기를 풍문(風聞)으로 듣는 건 또 얼마나 괴로운 일이던가! 
인간사(人間史)!
윤대녕의 단편들에도 장편에서처럼 "시간"이 보인다.
그대로 멈춰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시간.
혹은 상관있어야 하는데 부러 무시하고 계속 흘러가는 시간.
그 시간속에 그들이 있다
..... 낮에 잠깐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여자처럼 보였다. 이미 굳어버린 콘크리트 반죽처럼 도대체 아무 표정이 없는 ......  그들은
이렇게 삶이 뜻하지 않은 각도로 인생을 바꿔놓은 사람들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계기로 작용해 생의 전모를 바꿔놓는 수가 종종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삶의 원리이자 저마다 이면에 감춰진 속박이자 굴레이기도 하다.

생에는 화해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도 엄연히 존재하게 마련이란다.
그걸 인정하면 악마같던 삶이 관대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고...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오래된 작부집의 늙어버린 문희나 고래등을 만든 아버지처럼
많은 시간들이 더 지나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나?
사람은 정화되지 않으면 나이를 먹을 수 없다는데...

윤대녕의 단편 속에 담긴 한 사람의
혹은 한 가정의 전 생애를 들여다보는 일은,
마치 누군가 내 등에 대고 직접 망치를 치는 것처럼 뜻밖의 고통이었다.
어이없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찌할 수도 없는 고통.
윤대녕이 말했다.
...... 나는 '그 모든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그리움을 자주 체험했다. 삶의 정체는 결국 그리움이었을까? ..... 나는 문학이 왜 내게 문학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새삼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들을 밖으로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또한 쓰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삶이 계속되는 한 그리움은 계속될 것이고 또한 누군가 조용히 숨어 글을 바라고 쓰는 일도 계속될 것이다 .....


그리고 누군가는 조용히 숨어 
시간이 담긴 윤대녕의 그림들을 또박또박 읽어나갈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이쪽과 저쪽의 시간이 서로 만나지는 날이 올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11. 2. 14. 06:10
겨울궁이 좋은 이유는
결을  품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대면할 수 있어서다.
코끝이 더 쨍해질수록
손끝이 더 많이 얼얼할수록
겨울궁은 더 많은 숨을 쉬고
그 숨 속에 시간의 흔적을 천.천.히. 발설한다.
차가움 속에도 분명 온기는 있다.
느끼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선택된 권리!
겨울궁 차가운 석물 앞에서 나는 감히 권리를 누린다.
눈으로 쉬어지는 차가운 숨.
손끝으로 물드는 차디찬 돌의 결.







꽝꽁 언 연못 위에 서 있는 경회루는
의연하고 그래서 오히려 더 따뜻해보였다.
그러지 않았을까?
오래전 조선의 임금들도 꽝꽝 얼어버린 연못을 지나
경회루에 올라 차고 두꺼운 얼음 속에 숨어있는 그 모든 것들이
다시 생명 얻어 태어나는 번성의 시간을 그리지 않았을까?
가만히 얼음의 결을 내려다보면서
차가운 얼음의 숨을 들으면서
차곡차곡 응집해야할 모든 힘들에 대해 숙연하지 않았을까?
회색 하늘을 이고 있는 경회루 앞에서
잠시 그 목소리를 추억했다.
험난했겠구나...
위로같은 깊은 묵상과 함께.



찬 바람 속에서
푸르게 혹은 잎을 보내고 가지만 꼿꼿히 세운 나무들.
그 결 속에 숨겨진 건 정말 시간이리라.
푸르러 오히려 비현실적인 소나무.
집현전 앞을 지키는 저 소나무는
항상 그렇게 자신의 숨결을 유지했으리라.
배우기 위해선, 더 많이 알기 위해서는
허리를 굽혀야만 한다는 독경일까?
경복궁을 찾을 때마다 잊지 않고 한참을 보게 되는 영목(靈木)
이들이 본 시간의 일부라도
우리는 온전히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었다면 나무는 더 이상 지치게 푸르지 않아도 됐을지도...



우스개소리로 그랬었다.
전생에 공주나 황후였나보다고...
그래서 궁궐이 그렇게 눈에 담기는 것 같다고...
그런데 이젠 점점 궁궐을 가꾸고 다듬던 나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쪽으로
더 많이 생각이 기운다.
보는 것만으로 아름답고 고요한 게 아니라
거칠고 힘든 숨과 노고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어깨가 묵직하다.
아마도 아주 오래 전에 이 길을 수없이 쓸고 닦았던 건 아닐까?
그랬더라도...
이제 와 행복하니 참 다행이다.
石氷木...
세도 세도 끝이 없는 결(結)의 세계.
전생과 이생을 그 속에 함께
가.두.고.오.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10. 4. 20. 06:27
5백년 왕궁의 뜰을 걷다.
시간 속에 처음부터 그 모습을 지켜내고 있는 것도
안스럽게 모습을 잃었던 것도
쓸쓸히 다시 모습 찾은 것도
흔적을 남기며 서 있다.
시간의 흔적을 느끼는 건
때론 숙연한 고요함이기도 하다.
비록 닳고 닳은 귀퉁이일지라도
그 처음의 시작,
태초를 생각케 하는 여지(餘址)



하늘과 처마가 서로 기댄 곳.
그 곳에 과거가 있을까?
모든 걸 기억하고 있을 것 같은 하늘 아래
모든 게 평등하고 아득해지는 시간.
지금의 것도
더 오래된 것도
더 이상 구별할 수 없는 거리.



기와지붕 끝.
불운을 지켜내는 묵묵한 삼장법사와
함께 호국의 기원하며 줄 선 무리들...
이들이 지켰던 건,
궐내 신성한 옥체였을까?
아니면 그보다 더 긴 역사였을까?
지킬 것 없는 헛헛한 눈에 이들의 위용은
한없이 부럽고 때론 긴 시간만큼 마디마디 아프다.



어쩌면 이 모든 시간도
굵은 쇳대 채워져 내내 감춰질지도...
누가 전해줄까?
빗방울 듣던 마디마디 저린 시간을...
물 속에 잠겨 오래오래  침묵하던 시간을...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 27. 06:29
<4개의 통장>에 이어 읽은 재테크 관련 도서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내가 잘 못하고 있구나 싶어
암담하다.
4개의 통장도 없는 나에게
이 책은 7개의 통장을 만들라고 말한다.
다음엔 10개쯤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닌가 덜컥 겁이 난다.
그러나 꽤나 옳은 이야기가 조목조목 들어있다.
이대로만 하면 목돈을 정말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뭐든 실행이 문제다...)



이 책에선 재테크에 실패하는 요인을
5가지를 꼽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세세한 설명까지...
읽고 있으면 "맞아 맞아!"를 연발하게 만든다.



<재테크에 실패한 5가지 이유>
1. 잘못된 습관이 문제다

 1) 신용카드 없애라. 포인트로 이익을 볼 것 같은가? 오히려 쓰는 돈이 더 많아진다.
 2) 매일 택시를 타고 다녀도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는 사실을 아는가?
    자동차는 재테크의 적이다. 결혼하고 자녀를 낳은 후 구입해도 늦지 않다.
 3) 주변에서 굴러다니는 100원도 허투루 보지 말라. 푼돈 100원을 아낄 줄 알아야 1억 원도 모을 수 있다.
 4) 가계부를 써라. 가계부를 쓰지 않으면 도닝 새는 것을 모르는 채 매번 돈이 없다느 푸념만 하게 된다.
 5)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해서는 부자가 되지 못한다. 저축하고 남은 돈을 쓰자.

2. 얕은 지식이 재테크를 망친다
 1) 세상에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끼고 모으는 것이다.
 2) 정보를 판단하는 자신만의 눈을 길러라.
 3) 공부하고 난 뒤 가입하라.
 4) 내가 모르는 것에는 투자하지 말라.
 5) 좋다고알려진 정보에 대해 일단 의심하라.

3. 돈이 없을 때 시작하라
 1) 돈 없는 사람들이 부자보다 재무 설계가 더 필요하다.
 2)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반드시 돈을 많이 모으는 것은 아니다.
 3) 현명하고 선택적인 소비가 부자를 만든다.
 4) 돈을 모으는 것은 눈동이를 불리는 것과 같다.
 5) 농부가 씨를 뿌리고 물을 준다고 그 다음날 바로 새싹이 돋지 않는다. 자산 관리도 농사와 같은 것이다.

4. 원칙이 우선이다
 1) 욕심을 화를 부른다.
 2) 본업을 무시한 채 재테크에 몰입하면 본업마저 잃게 된다.
 3) 시장이 좋다고 올린 수익을 자기 실력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4) 최고의 재테크 비법은 원칙부터지키고 그 후에 더 효율적인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5) 꾸준하게 관심을 기울이고, 원칙을 지켜 투자하며, 시간의 힘을 믿어라.

5. 적은 당신 자신이다!
 1) 좋은 부채도 악성 부채도 모두 빚이다.
 2) 돈을 쓸수록 여유 있는 삶은 멀어진다.
 3) 당신이 번 돈만 당신 돈이다. 신용카드를 멀리 하라.
 4) 눈앞에 닥친 것만 해결해나가면 삶은 늘 고통스러울 뿐이다.
 5) 돈을 자연히 불어나는 시스템을 만들면 스트레스 없는 재테크를 할 수 있다.




<당신에게 필요한 핵심 통장>
1. 기본이 중요하다 - 수시 입출금 통장
2. 호황기엔 척덕꾸러기라고? 언제나 효자다 - 예금. 적금 통장
3. 내 집 마련 어찌해야 하나요? - 청약 통장, 장마 통장
4. 역사적으로돈 불리는 데 최고의 상품 - 펀드
5. 홍수와 가뭄에 대비하라 - CMA 통장
6. 어머니를 통해 가입해도 제대로 알고 들면 된다 - 보험
7. 젊을 때 모아 늙어서 여유롭게 - 연금




재테크의 최대적은 자동차와 신용카드!
재테크는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인생을 풍요롭게 살기 위한 수단이란다.
시간과 수익률과의 싸움이기도 하고...
철새처럼 왔다 갔다 하지 말고
본업에 충실하면서 시간의 힘을 믿어야 보상이 따른다는 말.
easy come. easy go!
인내심과 끈기의 결정체 ^^
그러나 최고의 재테크는
바로 직업을 통해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일이라는 말도 남긴다.
정답인긴 한데 정말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잘 몰랐던 부분들, 혹은 섣불리 알고 있었던 부분들에 대히
그래도 나름데로 알게 된다는 게 큰 수확!
체계적인 재테크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는 소망도 생긴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노후를 위해 준비하는 게 자꾸 늘어가는 일 같다.
나중에 이 싸이트에 들어가 재무 상담 한번 해봐야겠다.
(절망적일라나???)
www.hee-mang.com  ☎ 3789-2720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0. 8. 06:08
 <개밥바리기별> - 황석영


개밥바라기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기록...

더 이상 절망적일 수 없을 것 같고, 더 이상 세상이 무의미해질 수도 없는 시기,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좌절, 끝냄에 대한 무한한 동경...

사춘기를 지나 어른도 아이도 아닌 중간자적 시기의 애매함이 주는 결정되지 않는 미래의 불안감, 그리고 추락보다 더 깊을 미지의 시간들에 대한 두려움...

딱히 결론내지 않아도 이야기의 결말을 말할 수 있는 모호함이 주는 신비.

“성장소설”은 이 모든 것들이 녹아있어 마치 반은 도가니처럼 펄펄 끓고 있는데도 나머지 절반은 절대로 녹는다는 것 자체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단한 결빙처럼 차갑기만 합니다.

이런 모순의 결합이 책 속에 나오면 이상하게도 제겐 과학보다 그 내용들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우리의 시간은 기대, 관심, 기억 이 세 가지 순간의 연속이라고 하네요.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없으면 시간은 존재할 수 없다고요. 만약에 우리가 미래를 지향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과거를 읽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시간이라......

어쨌든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있고, 그런 이유로 나 자신이 바로 시간, 그 자체가 되기 때문인가 봅니다.

가끔 생각해봅니다.

왜 작가들은 “성장소설”을 꿈꾸는가...하고요.

예전 같았으면 명랑만화나 청소년 권장도서쯤으로 생각했을 성장소설이 지금은 참 더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일체감이 주는 공감의 형성에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그건 시대가 주는 공감이 아니라 정서가 주는 공감, 달리 말하면 이심전심의 공감이라고 할까요?

다행히 우리 세대는 전쟁도, 그리고 군부독재니, 부정선거니 하는 시국에 대한 대대적인 군중 봉기도 겪지 않아 흐린 시대가 주는 어려움과 울분에 대한 분노가 부족할 수 도 있습니다.(그렇다고 효순, 미선 사건이이나 촛불집회 같은 것들을 과소평가하는 건 절대로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이 책,

<개밥바라기별>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방황과 헤맴은 이유가 있고, 그 떠돔 또한 정착하고자 하는 열망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차마 문을 못 잠그고 잠을 자는 어미의 마음...

청춘을 이겨내야 참 어른이 된다면, 그 청춘을 이길 수 있는 궁극적인 힘이 바로 고요한 머뭄을 제공하는 어미의 마음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모든 여자들은 꿈꿉니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전 개인적으로 여자의 성장소설은 내가 남자였다면... 하는 그 불가능의 바람에서부터 시작이 되고, 남자의 성장소설은 내가 어미였다면... 하는 결론으로 종착되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축이 여러 가지 이야기와 생각거리를 만들어 서로 얽히게 되는 거죠.


<개밥바리기별>은 작가 황석영의 자전적인 성장소설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작가들 중에서 이 사람처럼 파란만장했던 사람도 흔치 않을 거라 생각되네요.

방북사건으로 제 나라로 돌아오지 못하고 몇 년을 헤맸던 사람.

1993년 귀국했지만 5년간의 수감생활을 해야 했던 사람.

그리고 그 이후에 그야말로 미친 듯이 써내려간 엄청난 분량의 책들...

발표한 글의 양만큼 질적으로도 진화되어 가는 그의 글쓰기가 한때 심한 질투심으로 다가오기도 했더랬죠.

그래, 당신 참 대단하다. (더 솔직한 표현은 당신 참 잘났다...는 마음)

뭐 유치한 감정의 폭발도 살짝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이 책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5개월간 연재했던 소설을 다시 손봐서 8월에 출판됐습니다. 작가는 “지난 몇 달간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광장에서 이들과 소통하면서 글을 쓸 수 있었던 점은 행운"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글쓰기가 원고지나 컴퓨터 안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적인 작업의 차원을 넘어섰다는 의미겠죠. 그 즉각적인 반응들이 65세 작가 황석영의 눈엔 참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의 반짝거리는 눈을 상상하니, 마치 그 눈이 “개밥바리기별(=샛별=금성=나그네별)”처럼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네요.

이 책은 참, 똑똑한 책입니다.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훨씬 우리보다 똑똑한 지성이며 동시에 이유 있는 행동가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작가들은 과연 이런 대사들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을까? 생각하게 할 만큼요.

작가 황석영은 억압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말합니다.

“억압이라는 것도 하나의 공감대에서 출발한다”고요.

그야말로 개인적인 체험에서 나온 말이죠.

그는 억압이라는 압박의 요소를 판소리의 추임새처럼 만들어 오히려 격려와 신명의 장단으로 바꿔버리는 그런 작가였던 겁니다.

어쩌면 대가라는 말조차도 무색한 그런 글쟁이죠.

 

"먼 길을 돌아 문예반으로 돌아온 느낌이 든다"

책을 출판하고 그가 한 말입니다.

그 신선한 발언이 17권 째의 장편을 발표한 65살의 그를 마치 이제 막 등장한 팔팔한 청년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아~ 이 사람, 이제 다시 시작하려나 보다...

글을 쓴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제 팔자를 남에게 내주는 일이라네요.

어쩌면 작가란 유목민의 다른 이름인 것 같습니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유목민...

그러나 전 좀 다르게 말하고 싶네요.

어느 곳을 가든 정착하고 뿌리내리고 마는 질긴 생명력을 소유한 유목민이라고..,

세상 어느 유목민보다 간단한 생사도구를 꾸리고 이 길을 내 길로 바꿔 그대로 삶을 진행해가는 사람들...

그건 자유롭게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 어느 곳을 가든 책임감 있게 살겠다는 치열함의 고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또한 황석영의 말을 빌려 말하고 싶네요.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고...


* 책보다는 작가 황석영에 대한 개인적인 고백의 글이 되어 버린 셈이네요.

변명을 하자면, 이분의 책은 누구를 통해 만나는 것보다는 직접 읽음으로 해서 만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에...

그의 글들을 읽으면 잊어버린 세대에 대한 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동시에 치열함을 잃은 자신에 대한 반성도 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다른 형태의 고해성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혹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09. 8. 21. 06:06
오랜 비가 지나간 하늘.
눈부시게 투명해 처연한 모습
그대로 울컥
눈 속으로 담길 것 같은
맑은 서러움



짧은 시간의 틈 속으로
한 세계가 닫히고
다른 한 세계가 열리는 순간,
그 틈 속에 살짝
기억 하나 몰래 묻어두면,



후...두...둑
비 떨어지는 어느날
그 기억
나를 찾아 땅으로 내려올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6. 16. 13:09

간송미술관에서 "정선화파전" 보고
잠시 들렀던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유택 <심우장>
한용운 선생이 마지막 눈을 감은 곳.
그 한 켠에는 사람이 여전히 살고 있다.
(예전엔 후손이 직접 살았는데 바라다보이는 일본대사관이 도저히 보기 싫어 관리인을 두고 이사를 갔다고...)
한옥의 고풍스러움과
신비하게도 지붕을 피해 뻗어나간 소나무
마치 소나무 한 그루가 한용운 선생의 정신을 호위하고 있는 것 같아
왠지 숙연한 느낌마저 든다.



사람의 발걸음을 거부하지 않고
한사람 한사람 맞이하는 고택의 다정함.
처마밑에 앉아 있는 느낌이 따뜻했다.
아이의 사진을 찍고 있는 이국(異國 )의 가족
그 모습까지도 낯설지 않게 품는 마음.



만해 한용운의 절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곳의 흔적들.
액자에 곱게 담겨져 있던 그의 친필들,
그리고
나를 향하는 그의 얼굴은 단호히 묻는 것 같다.
"바르게 살고 있는가!"를....



두런두런,
아이와 함께 무릎걸음으로 앉은 어머니,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까?
살짝 엿듣고 싶은 욕심도...



내려오는 길에 만났던 골목길들, 대문들, 시멘트 담벼락들.
어릴 적 깨복쟁이 시절을 생각나게 해
눈을 뗄 수가 없었던 추억들.



"성북동 아름다운 나무"라는 푯말이 붙어 있던,
밑둥 부분이 붙은 연리지.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아 절로 웃음이 가득.

성북동!
골목 골목마다 비밀을 품고 있는 동네.
운이 좋다면 걸음 속에서
우연히 지나간 시간을 만날 수도 있는 곳.



"심우장"의 편액은 위창 오세창이 쓴 것이란다. 
‘심우(尋牛)’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선종(禪宗)의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로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일제시대에 호적도 올리지 않고 배급도 받지 않은 채
이곳 심우장에서 영양실조로 66세의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당시 이곳 일대 20만평의 땅으로 그를 회유하기 위해 찾아온 청년은
뺨을 맞고 돌아갔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럴 수 있는 사람!
지금 이 시대에 아직 있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5. 18. 06:30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 윤대녕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은어낚시통신>으로 유명한 작가 윤대녕의 첫 장편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원래 1995년에 발표됐었는데 작년에 몇 군데 손을 본 후에 다시 개정판으로 출판했습니다.

좀 무서운 내용이죠.

왜냐하면 외면하고 싶은 그래서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을 들춰내는 이야기이니까요.

어느 한 때의 시간을 송두리째 도려내고 싶다는 소망!

그런 소망을 품었던 사람에겐 이 책이 참 아프고 힘든 책이 될 지도 혹 모르겠네요.

<기억>을 이야기 할 때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끝나지 않고 반복되는 <시간>일 겁니다.

나는 끝장이 나도 결코 끝장나지 않을 <시간>!

이 소설의 시작도 이렇게 시간에서 비롯됩니다.

되새떼... 

겨울이 되어 찾아온 이놈들은 이듬해 봄이면 다시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또 겨울이면 찾아오죠. 어찌 보면 새라는 건 반복되고 순환되는 시간의 분신인지도 모르겠네요.


한 남자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번역 에이전시를 통해 간간히 들어오는 번역일을 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벼랑 끝에 서 있는 듯 위태위태해 보입니다.

이 사람에겐 세 개의 시간이 있네요.

현실, 그리고 과거, 그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더 먼 과거.

과거가 없는 사람은 나이테 같은 성장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멈춰 서면 곧장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된다고요....

기억나지 않는 시간을 가진 사람의 삶이란 그렇다면 온전한 삶이라고 말할 순 없을 듯 하네요.

내가 날마다 남이 되는 삶...

이 사람, 그래도 잘 살아가는 듯 합니다.

머릿속 퓨즈가 끊어지기 전까진 말이죠.

어느 날, 에이전시를 통해 그에게 3개월의 기한을 준 번역이 의뢰됩니다.

그리고 그날 그는 “E"라는 이니셜의 인물로부터 한 장의 팩스를 받게 되죠.

E는 말합니다.

“과거로 돌아오는 벌레 구멍을 찾게....."

이제 그는 연속적으로 찾아오는 기이한 일들을 하나씩 겪으면서 잊어 버렸던 기억과 만나게 됩니다.

그는 고백하죠.

“먼 과거로부터 누군가 내게 다가오고 있어. 누군가 밧줄을 이용해서 나를 잡아끌고 있는 것 같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가 완전히 잠에서 깨지 않을 정도의 조용한 완력으로”

이 남자가 기억을 찾아내는 일은 참 더디고 그리고 심지어 몽환적이기까지 합니다.

순간순간 남자는 데자뷰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지독한 혼돈이고 그리고 더 지독한 고통이죠.

그러다 “꽝!” 하는 정오의 대포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곧 그가 잊었던 먼 과거는 어느새 “현실”로 성큼 다가와 버리게 되죠.


우리 몸속에는 누구에게나 시계가 하나씩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면 과거의 나를 볼 수 있다고 하네요.

단지 누구도 더 이상 돌리고 싶어 하지 않을 뿐.

그 기억이란 게 나를 움켜쥐고 할퀴고 상하게 한 기억이라면 차라리 시계바늘을 뽑아내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 정삼각형의 균형은 여지없이 무너지게 될테지만요.

(이런 생각들, 저는 참 공포스럽습니다....)

시간은 곡선운동을 한다고 합니다. 둥그렇게 말리면서 원을 형성한다고요. 그래서 그 시작과 끝이 서로 이어지면서 무한히 되풀이 된다고요.

“우리가 무엇을 하든 간에 시간은 끊임없이 우리를 어딘가로 데리고 간다. 아무리 무덤 속에 앉아 있다 하더라도 시간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우리는 “시간”을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잃어버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분명 찾을 수 있지만 굳이 찾으려 하지 않는 거지도요.

하지만 시간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그 소유에 대한 책임까지도 함께 잃어버려지는 건 결코 아닐 겁니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

영화를 보러 가기 전과 후의 세계는 이제 완전히 달라져 버립니다.

옛날 영화가 끝이 나면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회복된 새로운 공간 안에 서 있게 될지도 혹 모르겠습니다.

“옛날”과 “오래된”의 차이.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둘 다 과거의 시점을 말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옛날“이란 단어가 왠지 더 구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된”이란 말 속엔 망각 혹은 잊음에 대한 일말의 허용이 보였기 때문이죠.

어쩌면 “옛날”을 “오래된”으로 교묘하게 바뀌고 싶은 제 내면의 고백인지도 모르죠.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내 “옛날”을 추궁하는 것 같아 맘이 많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

제 과거에 대해서 아직 전 관대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완전히 동일한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그래서 과거의 나와 완전히 동일한 나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요.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고 우리 또한 모두 그걸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 “평등”을 믿는 거라고 하네요.

이제부터는 결코 잃어버리지 않겠다 다짐하면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용서되지 않는 시간, 이 추운 겨울의 막막함, 혼자라는 두려움 혹은 서툰 사랑 하나하나까지도 뜨겁게 가슴에 끌어안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게 살아가는 방법이라네요.

“살아가야지! 살아가야지!”

이 책은 그렇게 나를 다독거리며 응원합니다.

그렇다면,

응원 받은 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마도 당신이 대답할 차례가

이제 온 것 같습니다.


부디 산 자가 되어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길...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