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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01 월간 <창조문예> 10월호
  2. 2009.07.06 달동네 책거리 53 : <혀> 4
읽고 끄적 끄적...2010. 10. 1. 05:49
정말 백만년만에 읽어본 문예지다.
그냥 눈에 보이길래 잡았던 책인데 뭐랄까... 좀 신선했다.
우리나라에서 월간 문예지가 잘 되나? 하는 생각도 좀 해보고.
시, 수필, 소설에서부터 작가 평론, 서예까지 다양한 부분들이 실려있다.
처음 읽어 본 건데
기독교적인 색채가 아주 강하다.
본격적인 문예지라고 하기에는 좀 종교적인 게 사실이다.
(종교적인 게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도 기독교인이다. 약간 삐딱이긴 하지만...)



맨 발로 봄 길을 걸어가고 있다
윤정구

파래김 몇 장 구워 조선간장에 찍어 먹다가
화롯불에 파래김 구워 주시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까마득한 옛날 옛적에는 우리 모두
파래김 흔들거리는 바닷속에 살았다더라
짭짜름한 파래향기 고향냄새 같지 않으냐
입이 크느라고 입가가 헐고
자라느라 얼굴에 버짐도 몇 송이 피웠던
까까머리 소년은 파란 파래김 바라보며
아득했던 옛날 일을 떠올리려 애를 썼다
그때에도 책 읽는 대신 파래 숲을 헤치며
숨바꼭질하기를 좋아하였을까
파래 숲 그늘 속에 종일 놀기만 하였던가
짭짜름한 고향냄새 파릇한 어머니 냄새
아득히 바다 바라보이던 고향마을에는
소나무그늘이 반쯤 봄 길을 덮었는데
까까머리 소년이 맨발로 걸어가고 있다



마음을 잡았던 시 한 편이 있어 옮겨본다.
제목과 몇 부분이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읽는 순간 마음을 다독거리는 평온함이 느껴졌다.
요즘 아이들은 "버짐"이라는 걸 알까? 그런 생각도 잠깐 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얼굴에 하얗게 버짐 핀 아이들이 한 반에 그래도 꽤 있었는데...
버짐을 없애기위해서
얼굴에 까만 갱엿을 붙였다 뗐다 하기도 했다.
어린 마음들이 고민하지 않았을까?
붙일 것인가 먹어버릴 것인가가...
어르신들이 들으면 웃으시겠지만
내가 초등학교 때만 해도 맘껏 군것질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았던 건 아니었다.
빈 병이 어느정도 모이면 지나가는 강냉이 장수에게 팔아서
소쿠리 가득 강냉이를 담아 오는 것도 행복이었는데...
5형제을 밥상 앞에 앉혀놓고
우리 엄마도 그랬다.
짭조름하게 기름장을 해서 구운 김이 아니라 연탄불에 척척 구워낸 김을 조선 간장에 내주셨다.
그것도 한 사람장 2장씩만.
그걸 아껴 먹겠다고 밥보다  훨씬 작게 김을 잘라 밥 위에 올려 먹었었다.
나중에 밥을 다 먹고 조금씩 뜯어먹던 남은 김의 고소함은 또 얼마나 맛있던지... 
재미있다.
시 한 편으로 내가 잠시 옛날의 나로 되돌아갔다.
번데기 앞에 주름잡는 격이겠지만 어쩌면 이런게 나의 듦의 원칙인지도 모르겠다.
과거로 향햐는 눈이 깊어진다는 거...
갑자기 입 안에 침이 고인다.
단내나는 식욕이 지금 막 시간을 거슬러 입 속에 가득 고이는 중이다.
꿀~~~꺽!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7. 6. 06:25
<혀> - 조경란

혀
 

탐욕적인 소설. 그리고 유혹적이며 관능적인 소설.

조경란의 소설 <혀>는 식욕이라는 본능의 식탁 위에 또 다른 본능인 성욕의 재료를 푸짐하게(?) 그리고 노골적으로 차려놓습니다.

화들짝!

너무 정직하고, 그리고 적나라해서 때론 민망하기까지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읽음직한 구미가 솔솔 당깁니다.

거식과 폭식, 그리고 떠나는 사랑과 시작되는 사랑, 이 모든 관계들....

누군가에게겐 세상의 어떤 맛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맛이 있듯이 어떤 사람으로도 도저히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13년 경력의 33살 요리사 정지원,

그녀는 “WON'S KITCHEN'이라는 자신만의 쿠킹 클래스를 운영하기도 했던, 꽤나 감각적이고 탐미적인 요리사였죠.

그런 지원과 7년 간 사귀던 건축가 석주가 그녀를 떠납니다.

그것도 그녀의 쿠킹 클래스에서 요리를 배우던 젊고 도발적인 모델 출신 이세연이라는 여자와 새로운 사랑에 빠져서 말이죠.

네, 이야기 자체는 참 진부한 치정관련 연예소설이죠.

그런데 그 표현이라는 게...

섬뜩할 만큼 사실적이고 노골적입니다.

함께 같은 꿈을 꿨던 그 사람을 잃은 그녀는 다시 예전에 일했던 “노베”로 돌아가 다시 요리를 합니다.

그곳에서 그녀가 만드는 하나하나의 요리 속에는 그녀 자신의 모든 심리상태가 함께 녹아들어갑니다.

그녀는 식욕에 대한 욕구마저 점점 사라지죠.

먹는 것에 대한 거부,

그것은 곧 관계에 대한 거부이며 더 심각해진다면 모든 인간관계에 대한 극단적인 파괴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식욕을 가진 자는 적어도 살아갈 의욕을 가진 자라고 말 할 수 있으니까요...

입으로 향하는 욕망을 스스로 거세시켜버린 사람.

그리고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이 새롭게 사랑하게 된 그녀의 혀를 잘라(이것도 일종의 거세) 요리를 한다는 그로테스크한 결말.

심지어 그렇게 요리된 혀는 아무것도 모르는 옛 연인의 마지막 만찬이 되어 그의 입 속에 한점한점 집어 삼켜집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황홀한 맛을 남기면서요...


일류 요리사에겐 그들만의 묵시론적인 비밀이 있다고 하네요.

고객의 식욕을 채워주고 미각을 즐겁게 해주되 결코 만족시켜서는 안 된다는 묵시록.

한번 만족을 하게 되면 그 다음엔 더 큰 것을 원하게 되는 게 사람의 마음이기에 다음에 대한 기대를 반드시 남겨둬야 한다고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 100% 만족이 찾아온다면 결국은 금이 간 창유리를 통해 세상을 보게 되는 순간이 시작됩니다.

그리다 누군가 한 사람이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되면 남은 한 사람은 비참하고 함구적이고 잔인해지게 되죠.

그리고 남는 건 허기처럼 찾아오는 “분노” 뿐이죠.

그럴 때 입은 두 가지 중 한가지를 선택합니다.

폭식 혹은 거식

사람에게 사랑과 굶주림, 이 두 가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나타나게 되는 극단적인 자기 파괴의 방법!

한쪽은 입 안에 몰아넣음으로 인해 속을 채워 마침내 터뜨리겠다는 폭발의 자기 파괴.

한쪽은 입을 닫음으로 인해 내부를 태우겠다는 발화의 자기 파괴.

둘 다 막상막하의 막장 스토리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극단적인 건 주인공 지원처럼 그 분노를 타인에게 쏟아내는 것일 겁니다.

이별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어쩌면 누구와도 사랑을 해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엄마 뱃속의 태아에게서 가장 먼저 생기는 기관이 바로 “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맛은 “쓴맛”이구요.

그러고 보니 사람이 나이를 먹어 간다는 건, 입 속으로 쓴맛의 기억을 자꾸 더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입이 갖는 사회성과 책임감!

어쩐지 좀 입이 천근 무게로 다가오네요.

온순해보여도 입 속엔 칼과 맞먹는 무기가 있다고 합니다.

치아와 혀.

당신이 입이 기억하고 있는 맛은 무엇입니까?

문득 그게 궁금해지네요.... ^^

 

* 이 책의 내용이 파격적이고 충격적인만큼 문단에서도 큰 파란을 일으킨 문제작입니다.

  다름 아닌 “표절” 시비로요.

  현재까지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논란의 핵은 주이란이란 신인 작가가 조경란의 <혀>가 자신의 신춘문예 응모작인 동명의  단편소설 <혀>
  를 표절했다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그 단편소설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바로 작가 조경란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소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심사위원의 모든 소설을 다 심사하는 건 아니라
  면서요....)

  왠지 주이란의 단편소설 <혀>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표절논란에 시비를 논할 깜냥은 되지 못하지만 어쩐지 흥미진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까지나 문학적인 궁금증이죠.

  어설픈 활자증후군, 호모 북커스의 호기심 발동이긴 합니다만...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