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0. 2. 4. 06:29
 "저 소년은 오직 너제트라는 말만 포옹합니다.
  저 놈의 말 대가리를 제가 뒤집어쓴 것 같습니다. 저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연극 <에쿠우스>의 시작은 이렇다.

얼마나 가슴 떨리게 하고 얼마나 치열하게 바라봤던 연극인가...
내가 기억하는 <에쿠우스>는
"중독"과 "탐욕"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대학로 세번째 연극열전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으로 2009년 다시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많이 두근거렸고 그리고 첫사랑을 재회하는 것처럼 마냥 떨렸다.
송승환과 조재현의 다이사트.
젊은 시절 알런으로 무대 위에 올랐던 그들의 감회에
주책없이 동참하기까지 했다.
김태우와 류덕환, 그들의 알런이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했다.



2005년 김영민 알런에 남명렬 다이사트를 신화처럼 그리고 아직도 현실처럼 생생하고 기억하고 있는 나...
5년만에 보게 된 <에쿠우스>는
그러나 내겐 황무지를 바라보는 것처럼 피폐한 모습이었다.
코믹버전의 에쿠우스를 보면서 10분의 뜬금없는 인터미션에도 불구하고
지루함과 오랜 싸움을 해야만 했다.
조재현 연출의 <에쿠우스>는
그전까지 봤던 집요하고 끈질기고 그리고 실험적인 공연을
과감하게(?) 시장판으로 내돌리기로 결정한 듯 하다.
연극의 대중화를 위해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열극열전 시리즈는
아마도 조재현이라는 배우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으리라.
그래, 그건 정말 인정한다.
그리고 그의 노력과 열정에는 누가 뭐래도 기립박수를 보낸다.
물론 연극열전의 작품들이 전부 괜찮았던 건 아니지만,
어찌됐든 뮤지컬의 대중화에 밀려 침체기에 놓여 있던 연극의 유료관객 수를 엄청나게 늘려놨다는 건
내게도 대단한 이벤트요 혁신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그래도...
에쿠우스를 시장판으로 내돌린 그의 연출에
나는 너무도 너무도 화가 치민다.



송승환, 류덕환
스크린을 압도한 두 배우의 연기는
알몸에 가까운 근육질의 8마리 말들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고 파괴된다.
(2005년에 비해 말 한 마리가 늘었다. 5년 후에는 9마리의 말이 등장하게 되는 건 아닐까???)
"정열을 파괴할 순 있어도 창조할 순 없다"
다이사트의 말이 무색할 만큼 알런의 열정은 그 전에 이미 사라졌고
(그래도 이 연극에서 제일 눈에 띄는 사람이 바로 류덕환이다.
그의 표정과 말투에는 알런이 어쨌든 담겨있다. 행동은 모호했지만... )
다이사트는 마치 TV 브라운관을 통해 드라마를 시청하듯 알런을 향해 내내 심드렁한 모습이다.
(여차하면 체널을 돌릴 기세다)
공연 시작 전에 송승환 다이사트가 먼저 나와 혼자 보란듯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
뭐랄까, 소문 무성한 무당집에서 바람잡이가 순서표를 나줘주며 손님들을 떠보는 액션 같이 불쾌했다.
그래도 아버지에 비하면 다이사트의 불쾌감은 그나마 봐줄만 하다.
철저한 금욕주의의 알런의 아버지는
"개그콘서트"에 출연해도 단박에 인기를 끌 수 있을 만큼 잔인하게 코믹하다.
코믹한 금욕주의자라니...
때때로 아버지로 인해 웃어대는 관객들.
나는 그런 웃음을 이끌어내는 연극이 너무 못마땅하고 너저분하고 난잡하게 느껴졌다.
알런의 아버지는 결코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의 금욕이 비록 겉모습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그런 이유로 더 철저히 냉소적인 비웃음을 안겨줬어야만 했다.
그래야 극의 후반부 포르노 영화장에서 아들을 마주치는 장면에서 이중적인 인간의 근본과의 대면을 보며
관객들 또한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듯 진저리를 쳐야 했다.
그러나 2009년 에쿠우스의 아버지는 처음부터 발정난 인간에 불과했다.
그는 아마 꿈에서도 금욕을 생각하지도 못할 인물이다.
그렇다면 알런의 어머니는?
교사출신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는
과연 자신의 아들에 대해 감정을 가지고 있기는 한건가?
2005년도에 나는 어머니에게서 어쩌지 못하는 "애증"을 느꼈다.
지금은 제멋데로 노는 아이에게 건성으로 대답하는 피곤에 찌든 부모를 보는 느낌이다.
알런의 부모들은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버린 걸까?



알런을 다이사트 박사에게 부탁하는 판사는.
아무래도 직업이 잘못 표기된 것 같다.
내가 느낀 그녀의 모습은 다이사트 박사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지는 여비서에 불과했다.
늘씬한 다리를 보란 듯이 꼬고 앉아서
심각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태도로 알런을 부탁하고 종종 찾아와 경과를 듣는 그녀는
당황스러웠고 깊이감이 없었다.
마치 가십기사를 대하는 여비서의 포즈 그대로였다.
그녀가 구하고 싶었던 건 불쌍한 알런의 영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판사가 유부남 정신과 의사를 상대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조용히 그녀의 손을 붙잡고 다른 정신과 의사를  만나게 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돈많은 재벌 노인네라도 소개시켜줘야만 할 것만 같다.



...... 혼란스러웠다. 연극 《에쿠우스(Equus)는 비극인데 관객은 숭고한 주인공이나 좌절이 아니라 다른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넋을 낚아챈 건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말(馬)들이었다. 절대 다수인 여성 관객은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때 온통 말 이야기뿐이었다. 그들이 숭배하는 것은 근육질의 말 같았다. 그렇다면 연극이 변한 것인가, 관객이 달라진 것인가...... 이 연극은 미완성이다. 비극을 사랑한 관객은 실망했을 수도 있다. 말들을 강조한 이번 《에쿠우스》는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서성이는 것 같았다. 대중성을 얻었지만 작품의 정신까지 전달됐는지는 모르겠다. 즐기다가도 서글퍼졌다......

누군가 이런 기사를 썼다.
그리고 나는 전적으로 이 기사에 동의하며
이렇게 동의해야만 하는 게 너무 화가 난다.
"과연 나는 누구를 숭배해 본 적이 있는가?"
알런을 치료하며 스스로 던지는 다이사트의 질문은 공허해지고 말았다.
더불어 알런이 미치게 부럽다고 말하는 그의 고백 또한 정당성을 잃었다.
말의 성전에서 의식을 치르고 널브러진 알런을 부등켜 안으며
내가 널 치료해주겠다고 했을 땐
"너나 잘하세요!"라며 친절한 금자씨가 되어 말해주고 싶었다.
피곤에 찌든 다이사트가 자신의 힘으로 구할 수 있는 건 과연 뭘까?



2005년 내가 그토록 정열적으로 봤던 에쿠우스는
성적인 판타지를 주는 애로물도
턱없는 웃음을 주는 코믹물도 아니었다.
내 기억 속 알런과 너제트가 의식을 치루듯 달리는 장면은
성스러웠고 장엄했었다.
(그리고 나는 분명 그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었다)
그러나 떡칠(?)을 하고 나온 건장한 보디빌더들이 취하는 과한 동작들은
경박한 섹스코드를 눈 앞에 들이대는 것 같아 불쾌하고 난감하기까지 했다.
남창처럼 외부에 전시된 썬텐된 그들의 몸을 보며 나는 연극 <에쿠우스>의 비극성을
연극이 끝난 로비에서 느닷없는 느꼈다.
(그나마 그들 얼굴이 두꺼운 분장으로 덮여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맨 얼굴로 그렇게 서있었다면 얼마나 서로 난감했을까?)



2005년 포스터를 찾아 보면서 
같은 작품도 누군가에 의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걸 실감하며
나는 심각하게 <에쿠우스>에 대해 현재진행형으로 당황하고 있다.
어쩌면... 어쩌면...
김영민 알런과 남명렬 다이사트가 너무 강렬했기에 내게 <에쿠우스>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긴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결코 그 고정관념을 나는 결코 깨고 싶지 않다.
2005년 <에쿠우스>는 내겐 분명 구원같은 작품이었는데
2009년 <에쿠우스>는 내겐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 연극에 진심으로 칭클창클을 메고 싶다.
너접한 푸줏간을 다녀온 느낌이다.



    -----  only 퍼포먼스 <에쿠우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1. 17. 06:27
칙릿소설이라고 해두자.
모든 여자들은 아니 모든 직장인들은 꿈꾼다.
자신이 신데렐라가 되기를...
누군가 내 진짜 모습을 발견하고 큰 프로젝트를 맡김으로써
신분상승을 꿈꾸는...
누군가가 나를 조용히 그러나 긍정적으로 지켜보면서
경영인으로써 비밀스럽게 테스트를 하고며 만족하고 있기를....



조그만 소도시에서 광고일로 성공을 거둔 도로시는
함께 일한 헨리 아저씨의 추천으로 도시에 있는 거대 홍보회사 오즈 컴퍼니에 입사하게 된다.
크리에이티브팀의 새로운 캡틴으로...
빨간 구두를 둘러싼 자존심 싸움 결과
엄청난 자금의 궁핍 속에서 프로젝트를 멋지게 성공시키는 도로시.
그 과정 속에서 그녀는 팀웍의 시너지 효과를 최대한 발휘한다.
자금의 부족을 아이디어와 협업,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간의 우정과 이해로 해결하면서...(정말 동화적인 이야기다...)
급기야 새로운 사장의 자리를 놓고
자금 압박을 해왔던 재무팀의 웨스트와 경쟁을 하게 된다.
당연히 주인공이니까 그녀가 멋지게 승리를 한다.
그것도 또 다른 프로젝트의 최종일과 연례총회일을 정확히 일치시켜서
시각적으로도 엄청난 이팩트를 보여주면서...
(그러니까 일종의 도랑치고 가재잡고... 꿩먹고 알먹고... 식으로 ^^)
그런데...
예상했던 그대로
이 모든 것들이 그녀를 경영인으로 올리기 위한 일종의 도제수업이었던 거다.
웨스트마저도 계획된 내부의 적이었고,
자신을 추천한 헨리 아저씨는 사실은
오즈 컴퍼니의 사장이었던 거다.
이렇게 끝이 났으면 무지 재미없었을 거다.
다행히 그녀는 자신에게 신겨진 유리구두를 벗겠다고 선언하다.
"신데렐라"가 되기 보다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가 되기로 결정한거다.
자신의 세계에서
직접 허수아비를, 겁장이 사자를, 깡통 로봇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최종 선택이다.
누구나 그런 것 같다.
신데렐라를 꿈꾸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로시를 꿈꾸고 있기도...
당신의 현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당신의 모습은?
잠시 일터에서의 내 모습에 대한 고민을 하게 했다.
이 책의 장점을 일단은 "건전함"이라고 해두자.
^^



헨리, 당신이 직원들에게 인간적인 가치를 강조하고, 그들의 능력을 키워주고 그러면서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거 잘 알아요. 당신은 가상의 적을 만들어서 직원들이 서로 협력하고 팀워크를 이룰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했어요. 나에게 이런 기회를 줌으로써 나를 프로로, 인간으로서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왔고,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극한의 상황을 경험하게 해주었어요. 이제 나는 누가 뭐래도 최고가 되었고, 이 모든 게 당신 덕분이에요. 내가 당신을 많이 존경했으며, 평생 존경하리란 것도 잘 아실 거예요. 지금까지 아저씨의 행동이 어떤 악의가 있었던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나는 다른 모델을, 당신이 놓장에서 나에게 가르쳐준 모델을 택하겠어요.
오늘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출근할 때마다 내가 누군가의 거짓말 덕분에 이 자리에 있다는 걸 떠올리게 될 것 같아서예요. 당신과 웨스트 씨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절대 이 자리를 얻지 못했을 테니까요. 내가 가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서는 동료들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이 회사의 역사에는 지나치게 많은 가짜 인물이, 지나치게 많은 걸림돌이, 지나치게 많은 속임수가 있었어요. 당신 역시 가짜 인물로 인해 현재의 상황까지 이르렀고요. 나도 똑같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나는 빛나는 사람이며,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걸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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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를 처음으로 속였을 때는 당신의 잘못이다. 그러나 두 번째는 내 잘못이다. - 아랍 속담
      
놀라운 것은 잠시뿐이지만 감탄스러운 것은 영원하다. - 조제프 주버트

성공을 거둔 기업에서는 누군가 한때 용감한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 - 피터 드러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