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1. 11. 21. 00:04

<연애시대>

부제 : 헤어지고 다시 시작된 그들의 연애
일시 : 2011.09.23. ~ 2011.12.31.
장소 :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출연 : 김영필, 주인영, 이상혁, 김나미, 정선아, 김태근
원착 : 노자와 히사시
각색 : 김효진
연출 : 김태형


요즘은 연극이 참 좋다.
점점 가벼워지고 코믹해지면서 엄청난 물량공세와 스펙타클한 무대효과에 힘을 쏟는 뮤지컬에 눈이 피곤했나보다.
지금 현재도 기대했던 뮤지컬 <엘리자벳>의 가격대를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중이다.
VIP석을 넘어 생전 듣도 보도 못한(이런걸 듣보잡이라고 해야하나?) D-class라는 좌석이 탄생했다.
가격은 무려 15만원!
그것도 금,토,일 주말에는 16만원이란다.
이제 대작 뮤지컬은 돈 좀 있는 사람들만 즐기는 상류층의 진정한 귀족문화로 탈바꿈하려나보다.
항간에는 D-class의 "D'가 대박의 준말이라고 비아냥거린다.
불매운동 하자는 말도 있고...
(EMK의 엄청나게 창의적인 high-class 정신에 경의흘 표하는 바이다)
어쨌든 샛길로 빠지긴 했지만 점점 뮤지컬을 본다는게 여러모로 무서워진다.



연극 <연애시대>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손예진, 감우성 주연의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었다.
본 적은 없지만 꽤나 인기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2권으로 된 소설은 꽤 오래전에 읽었다.
원작자 노자와 히사시는 일본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이자 TV 미스터리 극본가였다.
투박하고 뭉뚝하게 생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감성적이고 세심한 글을 썼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더이상 그 이유를 알 길은 없어졌다.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기이기도 한 그가 2004년 6월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에...
뭐가 그를 못견디게 했을까?
로맹 가리처럼 문학적으로 모든 걸 이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정리해버린건가?
글쓰는 사람의 죽음, 특히 그게 스스로 선택한 자살이라면.
어쩔수없이 명치끝이 오랫동안 묵직해진다.
이런 연애시대를 꿈꾼 사람이 왜?



도망치는 남자 리이치로(김영필),
그리고 싸우는 여자 하루(주인영).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고 아이를 가졌다.
그러나 그 아이는 살아서 태어나지 못했다.
아기가 사산된 날, 남편은 아내 곁을 지키지 않았다.
(사실 남편은 그날 밤 사산된 아이와 함께 있었지만 아내는 그 사실을 모른다)
도망친 남편때문에 아내는 싸우게 됐을까?
남편은 아내와 싸우지 않으려고 도망쳤을까?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리고 속마음을 숨기면서 서로에게 끝없이 빈정대면서
다시, 아니 계속 사랑하고 그리워하면서 서로를 지켜보고 바라본다.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너그럽게 서로를 배려하게 된 두 사람.
이런 줄거리... 사실 신물 제대로다.
하지만 이 연극은 그렇지 않다.
절대 신물 따위 나지 않는다.
두 시간동안 푹 빠져서 이 신물나는 뻔한 신파를 나는 아름답고 황홀하게 지켜봤다.
연출, 배우, 무대, 극의 전개가 전체적으로 잘 짜여졌다.
배우들의 감정 연기와 몰입이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오랫만이다.
6명의 등장인물이 이렇게 완벽하게 무대를 채우는 모습을 목격한 건!
마치 2인극에서나 가능할 그런 집중력이고 몰입이다.
이 연극.
괜찮다. 따뜻하고 다정하다.
툭툭 치고 받는 대사들도 살아있다.
주인공 김영필, 주인영이 11월 중순까지 공연하고 다른 팀이 들어간다기에
서둘러 챙겨봤는데 놓쳤으면 많이 아쉬웠을 뻔했다.
<뷰티플 선데이>의 정선아도, <청춘, 18대1>의 김나미도 배역에 참 잘 어울렸다.
정말 오랫만에 괜찮은 연극배우들이 만든 꽉 찬 빈틈 없는 연극을 만났다. 
풍요로운 포만감에 온 몸이 나른해진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게 "연애"란다.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연애를 하는 사람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싸우는 걸 두려워하지 말 것!
함께 싸우면서 그렇게 알아가면서 또 다시 싸우면서...
그리고나면 시간이 더 많이 흐른 뒤 정말 이런 말을 하게 될지 모른다.
"함께 늙을 수 있어서 참 좋다!"
이럴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누구든, 어떻게 살았든
참 제대로 살았다.

이 연극은 오래 고민중인 내게 선택을 남겼다.
고맙다.
충분히 도움이 됐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8. 22. 08:33


<청춘 18대 1>

극 작 : 한아름
연 출 : 서재형
기 간 : 2011년 7월 23일~2011년 8월 28일
장 소 : 신촌 더 스테이지
출 연 : 오찬우, 김은실, 이원, 김선표, 민대식, 조성호,
         임철수, 김진아, 김나미

또 오랫동안 묵혀놓고 말았다.
잊어버리기 전에 간단하게 기록이라도 해야겠다.
서재형과 한아름 부부.
공연계에 참 괜찮은, 멋진, 그리고 실험적인 젊은 커플이다.
(이런 단어의 조합! 어쩐지 상당히 어색하다. ^^;;)
어찌됐든 이 두 사람이 함께 작업을 한다면 일단 믿고 볼 수 있다.

<청춘, 18대1>
혈기왕성한 건장한 남자가
선량하고 아름다운 한 여자를 위해
18대 1로 싸우는 의협심 가득한 이야기라고 지례 짐작하지는 말자! (그럴 사람도 없겠지만)
그렇다면 이 연극을 나는 뭐라고 말할까?
신파였다가 코믹이었다가 때로는 무성영화같기도 하고...
그러나 이 정체불명의 연극을 보면서 나는 웃고 울고 감동하고 슬펐다.
이런 젠장!


인간은 때론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일에 휘말리면서 의외의 삶을 살게 될 수도 잇다.
죽기를 결심한 사람은 막상 그 순간에 두려움을 느껴 혼자 도망칠 수도 있고
절대 죽지 않겠다는 사람은 웃으며 그 마지막을 즐길 수도 있다.
누가 옳고, 누가 정직한가?
대답은 그 모두가 다 정직하고 옳다!
옮고 그름을 떠나
이 작품은 이 땅의 역사를 살았던
소박하고 성실하고 조금은 미련한 사람들을 위한 구슬픈 진혼가이자 서글픈 살풀이다.
그래서 나는 보는 내내 슬펐고 안스러웠고 아련했고 아팠다.

 

무대 위 배우들의 모습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신인들의 연기를 보는 것 같았다.
서툴렀다는 의미가 아니라 뭐랄까,
뭔가 막 시작하려는 그 첫 결심이 보였다면 이해가 될까?
정말 다들 미친듯이 열심히 해서
나는 이들이 지금 뭘하고 있는지 때때로 혼란스러울 정도다.
일본어와 한국어가 뒤섞이는 대사는
산만할까봐 걱정햇는데 오히려 더 사실적이다.
(기둥을 이용한 한글 자막은 참 괜찮은 아이디어다.)
특히나 이토에 역의 김은실과 취조관 역의 오찬우의 일본어 대사 뉘앙스는 대단하더라.
실제 일본 사람이 들으면 물론 어색한 부분이 많았겠지만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지 생각하니 뭉클해지기까지 한다.
(누군가는 실제로 일본 배우들 캐스팅한 줄 알았단다.)

그야말로 이 작품은 배우들의 "청춘"과 스탭들의 "청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2011년도에 이런 이야기를 무대에 올릴 수 있다는 거,
그리고 관객들에게 찬사를 받고 공감을 받고 있다는 거,
많이 대견하고 그리고 참 아름답다.
MBC 프로그램 "Dance with the star" 때문에 스포츠댄스에 대한 안목들이 많이 높아지긴 했지만
비전문가인 이들이 추는 왈츠, 룸바, 차차차, 퀵스텝도 참 예뻤다. 
물론 어색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긴 하지만
노력이 보이는 작품을 관람한다는 건,
언제나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진심으로 그들이, 그 무대가 참 예뻤다.

바람이 있다면 이 좋은 작품이
나이가 들어도 지금처럼 계속 "청춘"스러울 수 있었으면 하는 거다.
그러니 그대들아!
언제까지나 아름답게 건승하시라!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5. 21. 12:48
"연극열전 시리즈3"의 다섯 번째 작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좀 특별하게 기다렸던 연극이었다.
예매도 일지감치 했었고...
공교롭게도 나중에 잡힌 세미나와 겹쳐지는 바람에
세미나 중간에 두시간 정도 도망(?)치는 결과까지 초래하게 만든 연극이다.
(다행히 세미나가 서울대병원이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최고의 드라마 작가 노희경이 1996년도 자신의 동명 드라마를 연극 대본으로 만들고
"베토벤 바이러스"의 PD 이재규가 직접 연극 연출을 했단다.
두 사람만의 조합으로도 끔찍하게 궁금했었다.
(그러면서도 생각했다. 이 연극을 표민수 PD가 연출했다면... 하고) 
1996년 MBC에서 방영했다는 이 드라마를 나는 보지 못했었다.
주현, 나문희, 김영옥, 이민영, 이종수
이들이 한 가족으로 나왔단다.
그리고 2010년 나는
최정우, 송옥숙, 이용이, 박윤서, 이현응이 만든 가족 이야기를
연극이라는 전달 수단을 통해 바라본다.




이 세상 모든 이야기들의 근원은 "가족"이라고 했던가?
함께 있음에 충분히 말하지 못하고 전하지 못하게 되는 모든 감정들이
아내의,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을 통해 전면에 등장한다.
뻔한 이야기에 뻔한 결말인데
그리고 그걸 다 알고 있는데
공연장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통곡보다 깊고 서러운 눈물을 흘린다.
나는 참 많이 불편해졌다.
울어야 하는데... 울어야 하는데...
어쩌면 내게 "가족"이란,
솔직한 감정의 표현조차도 도저히 불가능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느낌은 "감히..."에 닿아있다.
반성보다 더 깊은 죄책감이 오히려 두 눈을 부릅뜨고 버티게 했는지도...
그날 아마도 나는 공연장에서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는
최고로 "독한년"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치매에 걸린 노모, 의료사고로 월급쟁이 의사가 된 남편,
삼수생 아들, 대학졸업 후 피곤한 직장인이 된 딸.
거기다 도박에 빠진 동생에 지지리 궁상 올케까지...
그리고 불현듯 선고된 자궁암 말기의 "며느리이자 아내이자, 엄마이자 누나"인 한 여자.
굳이 노희경식이 아니더라도 신파의 모든 요소가 이 연극 속에는 다 들어있다.
자, 우리는 이미 완벽하게 준비가 다 됐다.
이제 앉아있는 너희들도 울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가....
꼭 그렇게 묻는 것 같다...
극장을 나서면서 "가족"을 생각하면 좋겠다고 연출가 이재규는 말했는데
나는 극장을 나서면서 "가족"이 아닌 "드라마"를 생각했다.
어쩐지 내겐 현실적이지 않다.
자신이 죽은 후 가족들을 힘겹게 할 치매 노모를 생각하며 함께 죽자며 목을 조르는 장면도
아들이 아버지에게 대학 발표날까지만이라도 엄마를 살아있게 해달라고 울먹이는 장면도
딸에게 "말 안해도 알지? 넌 나야!"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대사에도
난 불안한 눈만 껌벅인다.

어.쩌.지?
난 참 많이 불편해지고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내겐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2. 5. 06:10
프랑스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젊은 작가 기윰 뮈소.
우리나라도 그의 팬들이 많다.
<완전한 죽음>, <스키다마링크>,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구해줘>에 이어
이 책 <당신 없는 나는?>까지
총 7권의 책이 출판된 상태다.
그의 책은 표지만 봐도 딱 알아볼 수 있다.
프랑스판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표지는 항상 느낌이 동일하다.
이윤미라는 일러스트가 만든 표지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맘에 안 든다.
가벼운 책의 내용을 더 가볍게 만드는 것 같아서...



그의 소설들은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사후세계와 인연, 그리고 사랑
뭐 대략 성인을 위한 적당한 하이틴 로맨스라고 할 수 있다.
아닌 것 같은데 의외로 다 큰 어른들은 그야말로 소설같은 로맨스를 아직 꿈꾼다.
기윰 뮈소가 성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죽음도 어쩌지 못하는 사랑" 운운하면서...
재밌다. 이야기의 재미를 말하는 게 아니라 다 큰 어른들의 소녀스러움이 재밌다.



가브리엘이라는 여자가 있다.
그녀에겐 결코 포기하지 못할 두 남자가 있다. (양다리를 상상하지는 마시라...)
유명 명화를 그것도 그 화가의 사망일에 훔치는 도둑 아키볼트와 
전설적인 그를 잡기 위해 세상 끝까지 추격하는 형사 마르탱.
결론을 말하자면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
일방적인 "의사소통"의 폐단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ㅋㅋ
뭐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 두 남자가 금문교 다리에서 몸싸움을 벌이다 아래로 떨어진다.
코마 상태... 
이승과 저승의 중간쯤 되는 곳에서 이 둘은 서로 대화를 나눈다.
가브리엘의 아버지인 명화 도둑 아키볼드는 말한다.
" ...... 자네가 나를 뒤쫓게 만든 것도, 샌프란시스코까지 유인한 것도 모두 가브리엘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꾸민 일인데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단 말인가? 가브리엘이 자네를 잊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 꾸민 일인데...... "
뭐 대략 아빠가 뒤에서 이 모든 걸 조정했다는 이야기다.
딸의 키다리 아저씨였던 셈.
아버지는 딸을 위해 자신의 "삶"이라고 적혀있 보딩패스를
"죽음"이라고 적혀 있는 마르탱의 보딩패스와 교환한다.
그 보딩패스를 마르탱은 다시 앞날이 창창한 십대 소녀에게 건네며
깨어난다면 가브리엘에게 이 말을 전하라고 부탁한다.
"이저씨는 언니에게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꼭 찾아낼 거라고 했어요"
(솔직히 대단한 신파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에 반전이 한 번 등장한다.
죽을 줄 알앗던 가브리엘의 엄마가 오랫동안 코마상태였다는 사실.
과거에 가브리엘과 마르탱이 재회하기로 했던 날,
가브리엘은 엄마가 코마상태로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차마 약속장소에 가지 못하고 어머니가 누워있는 병원으로 향한다.
그게 그 둘을 헤어지게 만들어 버렸고...
결론이 짐작되는가?
가브리엘 엄마의 프리 보딩패스가 마르탱의 손에 건네지고 이야기는 두 커플 모두에게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완벽한 신파다.
그런데 이 완벽한 신파가 매번 먹힌다.
이번엔 좀 다른 내용인가 하면서 기대하지만
여지없이 비슷한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윰 뮈소가 소위 먹히는 작가가 되어
써내는 책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기록한다면
아직 세상은 로맨스를 꿈꾼다는 말이니까 뭐 그닥 나쁘지는 않다고 하겠다. (정말?)
이쪽과 저쪽 세상의 중간 지점을 공항으로 설정한 게 재밌다.
더구나 이쪽 세계와 똑같이 돈을 지불하고 음식을 먹고, 물건을 구입한다는 것도
정해진 시간까지 삶과 죽음 어느 한쪽의 비행기를 탑승해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이쪽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프리 보딩패스가 있다는 것도 재밌다.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짐작된다.
비현실적인 로맨스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가슴 뛰며 읽을 수도 있겠다.
나는 뭐...
워낙 인간이 무뎌서...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