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10. 10. 5. 05:24

<환상의 책> - 폴 오스터

 환상의 책

폴 오스터...
참 매력적이고 그리고 신비감 가득한 미국 작가입니다.
개인적으로 “폴 오스터”와 터키의 국민 작가 “오르한 파묵”을 자꾸 비교하게 되는데요, 두 사람 모두 신비적 탐미주의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오르한 파묵”은 환상 속에서 현실을 이야기한다면 “폴 오스터”는 정확히 그 반대의 방법을 택하죠. 현실 속에서 환상을 이야기하는...
그러면서도 두 작가의 이야기 방식은 참 묘하게 닮아있습니다.
“오르한 파묵”이 지적이고 명석한 백과사전적인 글을 치열하고 아름답게 쓴다면, “폴 오스터”는 가십거리스러운 사건을 잡아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현실감을 갖게 만듭니다.
둘 다 범접할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낸 작가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두 사람의 책을 우리나라에 번역하는 번역가도 멋진 한 쌍의 페어를 연출합니다.
“오프한 파묵”에게는 번역가 “정영목”이, “폴 오스터”에게는 번역가 “황보석”이...
아마도 두 이국의 작가가 다른 번역가들을 만났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느낌을 전달받을 수는 없을 것이라 감히 단정합니다.

폴 오스터의 소설들...
참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읽기를 쉽게 포기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죠.
소위 말하는 고비를 넘어야만 폴 오스터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단 그 고비를 넘기면 손에서 놓기가 싫어질 정도죠. 그런데 그 고비라는 게 좀처럼 넘기가 힘들다는 게 문젭니다.
읽지 않고 포기하는 자에게는 결코 비밀의 문이 열리지 않으리라는 묵시록 같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현재 그의 소설은 전부 14권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정확히 8권의 소설을 읽었네요.
개인적으로 폴 오스터의 화두(話頭)는 실종과 풍자, 그리고 미스터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읽은 폴 오스터의 거의 모든 주인공들은 결국은 실종을 선택하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숱한 미스터리와 세상을 향한 풍자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길고 긴 실종의 과정은 동양의 선(仙) 사상과 묘하게 닮아있기도 합니다.
2002년 쓰여진 이 책의 원제는 “Book of illusion"입니다.
2008년 우리나라에 발표된 “환상의 책”이라는 제목보다는 “Book if illusion"이라는 원제가 확실히 더 폴 오스터스럽네요.
"illusion"이라는 뜻에는 왠지 은밀하고 비밀스런 느낌이 있는데, "환상"이라는 단어는 허황된 눈속임과 노골적인 드러냄이 느껴지기 때문이죠.
“Book of illusion"의 첫 장은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 “샤토브리앙”의 짧은 글로 시작됩니다.
...... 인간은 하나의 동일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끝에서 끝까지 이르는 여러 다른 삶을 살며 그것이 바로 비극의 원인이다 .....

그러니까 이 책은 두 사람이지만 동시에 같은 사람이기도 했던 누군가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의 같지만 다른 삶 이야기, 그리고 추적과 멈춤, 끌어당김과 거부가 잔잔하지만 집요하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건 모든 인간의 모습, 그것이기도 하죠.

오래 전에 실종된, 그래서 죽었다고 믿어지는 무성 코미디 배우 “헥터 만”, 그리고 얼마 전 비행기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를 잃고 스스로를 불행의 삶 속으로 밀어 넣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대학교수 “데이비드 짐머”.
어느 날, 데이비드는 TV를 통해 헥터 만이 출연한 오래된 무성 코미디 영화 한 편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헥터의 콧수염과 양복은 그에게 깊은 아우라를 남기죠.
절망 속에 살던 대학교수 짐머는 세상에 남겨진 헥터의 무성영화 12편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서 몇 개월 동안 세계를 돌아다닙니다. 그리고는 다시 9개월 동안 칩거하듯 세상과 단절한 체 헥터 만에 대한 집필을 시작하고 드디어 <헥터 만의 무성 세계>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우편함에 배달된 한 통의 편지.
헥터 만의 부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쓴 편지의 내용은 "그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데이비드는 처음에는 이 편지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가 진짜 헥터 만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답장에 그녀는 다시 편지를 보냅니다.
“제 말이 진실임을 아시는 유일한 방법은 초청을 받아들이시는 것입니다.”
편지는 계속 이어집니다.
“그 사람이 1929년 할리우드를 떠난 뒤 여러 편의 장편 특작 영화들을 쓰고 감독했다는 말씀을 드린다면 오시겠다는 마음이 드실는지요? 헥터는 이미 아흔이고 나날이 건강을 잃어 가고 있어요. 그 사람은 제게 남긴 유언장에다 자신이 세상을 뜨고 나서 24시간 내에 그 필름들과 원본을 모두 파기하라고 했는데, 저로서는 그 사람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녀의 편지 내용대로라면 헥터 만은 스스로 자발적인 실종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네요.
이 대목에서 주인공보다 오히려 제가 더 헥터 만의 진실을 추적하고 싶어지는 열망이 가득합니다.
다행히 그를 데리고 가기 위해 한 여자가 등장합니다.
헥터 만의 전기를 쓰고 있다는, 헥터 만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던 카메라맨의 딸 엘머가.
함께 뉴멕시코 블루스톤 농장을 향하면서 데이비드는 헥터 만의 모든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듣게 됩니다.
그야말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나다니엘 호손의 <모반>처럼 그를 산 채로 먹어치워 버렸습니다.
영화배우로서의 헥터 만의 삶, 그리고 스스로 실종을 선택하고 콧수염을 자르고 양복을 벗고 허먼 레서로의 삶,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라이브 포르노 공연배우로 살았던 삶.
그는 그 삶들이 자신에 대한 보복 내지는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음보다 단순하고 파멸보다 더 나은 방법, 끝장을 보지 않고서도 자신을 계속 죽여 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 그는 타락을 선택했던 거죠.
... 만약 내 삶을 구할 생각이라면 그 삶을 파멸시키기 일보 직전까지 가야 한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고 재미있는 건,
헥터 만의 삶이 바로 데이비드의 삶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분명 다른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어쩌면 두 사람의 삶이 이렇게까지 동일할 수 가 있을까요?
“도플갱어” 혹은 “평행이론”이었을까요?

이 이야기는 일종의 “미궁”입니다.
비극적이면서 동시에 희망을 주는 결말.
어쩌면 “믿거나 말거나”류의 황당한 결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면 말이죠. 이런 생각을 심각하게 하게 됩니다.
“이게 정말 허구일까?”
폴 오스터의 이야기의 끝은 항상 그렇습니다.
“당신들이 이 책을 읽고 있을 때면 이 책을 쓴 사람이 벌써 오래전에 죽었다고 믿어도 좋다.”
이런 신비주의가 무책임의 한 형태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 모든 사람의 삶은 어쨌든 모두 익명성의 보장이고, 실종이고 그리고 은밀함의 추구임에는 분명하죠.
“나는 빌려다 쓰는 삶을 살고 있었다.”
폴 오스터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매번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읽는 이에게 당신의 지금 삶은 어떠며 은밀한 질문을 던지죠.
만약에 빌려다 쓰는 삶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단지 잠시 동안의 실종이라고 말합니다.
조만간 누군가에 의해 진실이 담긴 삶의 문이 열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야기는 맨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될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잘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고 충고하는 셈이죠.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느낌.
그러데 그 이야기는 앞으로도 결코 끝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알아야 할 이야기가 있고 알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좋은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알고난 전과 후가 극명하게 달라지는 경우에는 더더욱 말이죠.
저는 말이죠. 책을 읽으면 매번 그 책 속으로의 실종을 간절히 꿈꿉니다.
내 책이라는 소유욕보다 내 이야기라는 소유욕이 백배는 더 강하죠.
그래서 늘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폴 오스터의 <환상의 책>
그 속에서 제 맘 같은 구절이 있어 에필로그로 남겨봅니다.

...... 여기까지 온 당신들은 실로 위대하다 ......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2. 25. 06:00

오늘 같은 날씨에 읽기에 딱 좋은 소설.
그동안 폴 오스터의 책들을 그래도 꽤 읽었고
그 책들 모두 재미있었지만
이번에 읽은 <환상의 책>이 제일 마음에 든다.
왠지 묘한 이질감과 미궁 속에 빠지는 느낌.
책을 읽는 내내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의 "미궁"을 떠올렸다.
그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괴기스러운 음악을 차마 끌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
말 그대로 나는 완전히, 그리고 완벽히 얼어있었다.
그대로 고정돼버렸던 무시무시한 기억.
내가 간직한 최고의 아름답고도 섬뜩하고도 그리고 끔찍했던 음악 "미궁"
물론 그 정도의 충격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이 책도 왠지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관음의 시선과 귀를 갖게 한다.



"Book of illusion"
원제가 더 매력적이고 직접적인 책.
"illusion"이라는 뜻에는 왠지 은밀하고 비밀스런 느낌이 있는데
"환상"이라고 번역했을 땐 왠지 허황된 눈속임같은 느낌가 강하다.
그래서 번역된 책을 볼 때는 항상 그 원제를 찾아보는 게 중요한 포인트!
탐정소설과 연예소설이 영화적으로 뒤섞여 있는 책.
책을 보면서 스크린을 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책.
그러면서도 열렬히
인간의 주체성과 자아에 대한 깊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
스스로에 대한 진실성에 연타를 가한다.
그래서 읽는 사람을 당혹하고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는 책.



오래 전에 실종된 무성 코메디 영화배우 헥터 만과
평행이론 같은 삶을 사는 대학교수이자 작가 데이비드 짐머.
그 두 사람의 같지만 다른 이야기, 그리고 추적과 멈춤, 끌어당김과 거부들...
책의 시작에는 샤토브리앙의 글이 헌사처럼 적혀있다.
...... 인간은 하나의 동일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끝에서 끝까지 이르는 여러 다른 삶을 살며 그것이 바로 비극의 원인이다 ..... 

비극적이면서도 동시에 유쾌한 희망을 함께 건네는 결말에
유난히 나는 신나했다.
"믿거나 말거나"의 뉘앙스로 끝을 맺는 폴 오스터의 글들은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이 모든 이야기가 마치 사실이었던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어딘가  헥터 만이 출연한 <마틴 프로스트의 내면적인 삶>, <투명 인간> 같은 영화가 있을 것만 같고
어딘가 데이비드 짐머가 쓴 <헥터 만의 무성 세계>라는 책이 있을 것만 같아
그것들을 찾아 나서고 싶은 욕구마저 안긴다.
마치 삼원색 같은 책,
그러면서도 어느새 무지개의 다채로움까지 선사한다.
폴 오스터의 세계.
늘 유사하면서도 결코 한번도 같지 않았던 그의 세계.
그가 만들어내는 환상의 세계들이 나는 아직도 많이 궁금하다.



그의 세계를 하나하나 섭렵해나가는 재미는 그래서 항상 새롭고 신비롭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읽은 세계들이 더 많다는 사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게 되는 이유는
내게 늘 실종을 꿈꾸게 한다는 사실.
그게 포인트다. ^^

<국내에 소개된 폴 오스터의 작품>

  • 고독의 발명 (The Invention of Solitude) (1982)
  • 뉴욕 삼부작 (The New York Trilogy) (1987)
  • 폐허의 도시 (In The Country of Last Things) (1987)
  • 달의 궁전 (Moon Palace) (1989)
  • 우연의 음악 (The Music of Chance) (1990)
  • 거대한 괴물 (Leviathan) (1992)
  •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Auggie Wren's Christmas Story) (1992)
  • 공중 곡예사 (Mr. Vertigo) (1994)
  • 빵굽는 타자기 (Hand To Mouth) (1997)
  • 동행 (Timbuktu) (1999)
  • 환상의 책 (The Book of Illusions) (2002)
  • 신탁의 밤 (Oracle Night) (2004)
  • 브루클린 풍자극 (The Brooklyn Follies) (2005)
  • 어둠속의 남자 (Man in the Dark) (2008)
  •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1. 18. 06:09
    <너는 모른다> - 정이현

    너는 모른다

    “가족”이면서 “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

    이 이야기를 저는 이렇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읽은 책 중 가장 끔찍한 공포소설이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혼자 생각해봤습니다.

    “가족”이라는 것이 실존적인 의미인지, 가치의 의미인지, 혹은 구성원 개개인이 가지는 익명성의 비밀을 완벽하게 보장해주는 철저한 이기주의자들의 집합체인지를...

    <달콤한 나의 도시>, <오늘의 거짓말>로 대한민국 칙릿소설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정이현이 2년 만에 내놓은 신작입니다.

    그녀의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는 드라마에 이어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지금 초연 중에 있을 만큼 성공가도를 열심히 달리고 있죠.

    솔직히 놀랐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치밀하면서도 냉소적인 소설을 썼다는 게...

    2008년 8월부터 2009년 6월까지 근 1년간 인터넷교보문고에 연재했던 장편소설 <너는 모른다>. 그 모르는 타인들의 삶 속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모든 걸 알게 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책을 읽는 바로 “당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읽는 이의 개입을 전적으로 그리고 지배적으로 선동합니다.

    이제 선택만이 남은 셈이네요.

    공모자가 되든, 은폐자가 되든, 혹은 폭로자가 되든 말입니다.

      

    2008년 2월, 서초구 방배동 서래마을의 고급빌라.

    중국을 상대로 무역업을 하는 김상호와 화교 출신 부인 진옥영, 초등학교 4학년인 바이올린 영재 딸 김유지. 그리고 김상호와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큰 딸 은성과 둘째 아들 혜성.

    타인보다 더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진 “가족”이란 테두리.

    전날 진옥영은 대전 친정에 다녀오겠다며 의붓아들 혜성에게 유지의 바이올린 레슨과 강습비를 부탁하죠. 아버지 김상호는 사업상 만날 사람이 있다며 혜성에게 집과 유지를 맡기고 일요일 낮부터 집을 비웁니다.

    집에 있던 혜성은 또 다시 듣게 된 누나 은성의 자해 소식에 그녀의 오피스텔을 찾아가 함께 병원 응급실로 향하죠.

    이렇게 가족들 모두가 집을 비운 일요일 오후,

    딸 유지는 바이올린 과외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레슨을 취소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혼자서 집을 나섭니다.

    그리고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지 않죠.

    유지의 실종을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은 뒤늦게 돌아온 아버지 김상호였습니다.

    뒤이어 집으로 돌아온 아들 혜성.

    순간, 그들의 얼굴에 당혹감과 깊은 절망감이 엄습하죠.

    유지는 도대체 어디로 실종된 걸까요?

    유지의 실종은 스스로 선택한 가출이었을까요? 아니면 누군가의 목적을 위한 유괴였을까요?

    유지가 실종되던 시간에 가족들 모두는 또 어디에 있었던걸까요?

    잠시 이야기의 시선이 나에게 멈춰지는 것만 같습니다.

    마치 이들을 지금까지 지켜본 사람이 바로 당신 아니냐며 노골적으로 묻는 것 같은 시선.

    순간 내가 유지를 데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어쩔 수 없이 주위를 확인하게 됩니다.


    막내딸이 실종됐던 바로 그 순간 그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요?

    이제 가족들의 숨겨진 알리바이가 하나씩 들춰집니다.

    화교 출신 엄마는 그 시간 대전 친정이 아닌 대만에서 그녀의 오랜 연인을 왕명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예감에 서둘러 서울로 돌아온 진옥영은 딸의 실종을 알게 된 후 친정 식구들에게 부탁을 합니다. 그녀가 대전에서 그들과 있었노라고 말해달라고...

    응급실에서 누나의 치료가 끝난 후 혜성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자 친구 다은을 만납니다. 사건이 터지고 며칠 후 혜성 역시 친구 다은에게 부탁을 하죠. 그날 늦게까지 둘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해달라고...

    의대에 합격했지만 등록만 하고 학교를 나가지 않던 혜성은 실제로 그 시간에 길거리를 배회하다 주차된 차에 불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습관성 방화는 늘 같은 말로 끝을 맺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뒤늦게 여동생의 실종 소식을 들은 큰 딸 은성은 오래전 X-boy friend와 계획했던 엄청난 장난(?)을 떠올립니다.

    부자 아버지에게 돈을 뺐기 위해 여동생을 납치한다는 계획...

    그리고 얼마 전 급히 돈이 필요하다며 전화를 해온  X-boy friend의 통화를 떠올리며 그가 여동생 유지를 납치했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수사를 위해 김상호와 함께 온 형사 문영광.

    가족들 모두는 그가 경찰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사립형사였죠. 김상호는 그 사실을 가족들에게 철저히 숨긴 체 사건을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하며 문형사를 가족들에게 소개합니다.

    자신의 아이가 사라졌는데 경찰이 아닌 고작 사립 형사라니...

    이 집안 어쩐지 서로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히 있긴 한 것 같네요.

    김상호의 직업은,

    그러니까 불법 장기 밀매 브로커였습니다. 한국에서 의뢰가 있을 때마다 “신선하고 건강하게 살아있는(?)” 장기를 중국에서 공수해 넘기는 일을 하고 있었죠. 가족들은 김상호가 어떤 무역업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그리고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쨌든 그는 집 안에 상당한 돈을 가져다 주는 착실한 가장이었으니까요.

    그 착실한 가장이 지금 금쪽같은 딸의 실종을 경찰에 알리지 못하고 혼자 해결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가족 모두는 생각합니다.

    유지의 실종은 자신 때문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습니다.

    갑갑하고 막막하고 미련한 시간들이 그들 곁을 부지런히 지나가고만 있죠.


    작가 정이현은 말합니다.

    " ...... <너는 모른다>에서 빠진 목적어는 바로 ”나“다. 한 가족이라도 서로 굳게 마음을 닫고 있지만 어느 날 폭탄이 떨어진다면 마음이 밖을 향하게 되는 미묘하고 작은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

    그녀는 가족이라는 상징적인 단위 속에 느슨하게 묶여있는 개인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 ...... 흔히 가족이라고 하면 끝까지 서로를 보듬어주는 따뜻한 존재라는 환상을 갖고 있는데 사실 대부분의 가족이 그렇지 않잖아요. 다 드러내는 것 같으면서도 감추고, 동시에 무언가 숨기는 것 같지만 진심을 내보이기도 하는 개인들을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관찰하려고 했습니다...... "

    작가 정이현의 이 말 때문에 저는 이 소설을 공포소설로 분류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소설은 결말까지 꼭 읽어내야 하는 소설을 아닙니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약간 실망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읽는 동안 “가족”이라는 이름의 “타인”때문에 극도로 선명해지는 두려움을 대면하는 일은 분명 버거운 일이 될 것입니다.

    다중의 화자들에 의해 꾸역꾸역 고백되는 이야기들은 때로는 충격적이기도 때로는 비상식적이기도 때로는 넌더리가 나기까지도 합니다.

    처음엔 제도권 안에 포함되지 못하는 소수자를 대변하는 소설인가 생각했다가, 다음엔 우리사회에 암암리에 퍼져있는 불법의 사업과 불륜에 대한 고발인가 생각했다가, 또 다시 현대인의 부서지고 파괴된 주체성에 대한 애도인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사건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또 다른 문제, 도시인들의 부스러진 일상을 그리려 했다는데 이 말 또한 도통 이해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네요.

    단지 책 속의 한 마디 말이 기억에 선명합니다.

    자신의 딸일지도 모르는 유지의 실종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들어온 진옥영의 오랜 연인 밍은 유지를 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스스로 위험을 자처합니다.

    마지막 결정을 내린 그의 입에서 나온 말,

    "어차피 나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정말 무엇일까요?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긴 마음 끝이 이제는 많이 어지럽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 12. 06:29

    한겨울에 만나는 섬뜩함은 공포보다 더 절실하고 집요했다.
    <오늘의 거짓말>의 작가 정이현.
    그녀가 이런 글을 썼던 사람인가?
    시작부터 고개를 가우뚱하면서 이야기 속으로
    전적으로 빠져들게 된다.
    재미있다. 그리고 끔찍하다...



    아버지, 화교인 새어머니, 친누나, 그, 그리고 이복동생.
    다섯의 가족이 갖는 익명성과 은밀함들.
    그들을 가족이라고 말 할 수 있기는 한건가????
    모든 가족이 집을 비운 시간.
    초등학생 여자 아이는 탁자의 레슨비를 집어들고  홀로 집을 나와 그대로 사라진다.
    아이의 실종에 모두 관여된 듯한 가족들.
    그들 스스로 자신때문에
    아니 자신의 비밀들로 인해 아이가 유괴됐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정말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퍼즐 조각처럼 산산히 부서지고 흩어져
    오히려 더 비밀을 감추려고 치열해지는 가족들...
    그들은 정말 가족이었을까?



    중국과의 무역업으로 상당한 돈을 집으로 가져다 주는 아비,
    그러나 가족은 그 아비의 무역업 품목을 알지 못한다.
    아비는 직업은 장기밀매...(그것도 싱싱한...)
    가족들은 어쩌면 서로 모른 척 하기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비는 딸의 실종을 유괴로 단정하면서도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다.
    사립형사를 고용해 가족에게 그가 경찰이라고 말하며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맡기라고 말하는 아비.
    그리고 대만에 오랜 연인을 두고 있는 새어머니.
    몰래 주차된 자동차에 불을 지르고 달아나는 아들,
    그리고 남자때문에 매번 자해를 하는 큰 딸.
    가족은 모두 위태롭고 그리고 불법의 비밀들로 가득하다.
    스스로 과외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레슨을 취소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을 떠난 아이는
    정말 어디로 가버렸을까???

    이 이야기의 모태는 아무래도 안양 여자 초등학교 실종사건이었을테다.
    하루 평균 164명의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대한민국.
    어쩌면 정말 가족의 비밀로 인해 스스로 실종을 택하는 사람이
    정말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한다.
    이 책이 무서운 건 그런 현실감을
    내 앞으로 너무 바짝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미치 아이의 실종에 내가 깊이 관여된 것 같아 불편하기까지 하다)
    읽고 난 마음 끝이 막막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0. 22. 05:57
    오랫만에 황홀하게 지적이며, 탐욕스럽게 흥미롭고
    문학적으로 탐미적인 책을 만나다.
    아직도 손과 머리 속에 끈적거리며 달라붙어 있는
    치명적이게 관능적인 소설
    클라스 후이징의 <책벌레>



    책 속에서 길을 읽고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
    책장을 펼친 사람은 극도로 조심해야만 한다.
    잔잔한 긴장감이 온 몸의 숨통을 서서히 조이는 그런 느낌.

    요한 게오르크 티니우스 그리고 팔크 라인홀트.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반드시
    공평하게 동행해주어야만 하는 두 사람!
    단 한명이라도 손을 놓치거나 감정적으로 치우치게 된면
    아마 미궁 속으로 깊게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빠져나올 수 있다고 믿는가?
    그렇다면 그건 단지 당신만의 착각일 뿐이다.



    요한 게오르크 티니우스!
    "책을 펼칠 때면 언제나 그의 주변세계는 베일에 가려졌다"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시키는 하나의 힘이었던 "독서"
    책에 대한 지독하고 집요한 애착,
    중독에 가까운 도서수집벽을 가진 목사.
    그는 급기야 책을 소유하기 위해 목사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살인을 저지른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심지어 그의 장모까지도... 아주 태연하고 자연스러워 심지어 경건함까지 느껴진다.)
    더 많은 책을 사기 위한, 더 많은 책을 소유하기 위한 살인.
    그의 목사관 윗층은 책의 천국으로 지상 위에 재림한다.



    다른  한 사람, 팔크 라인홀트!
    우연히 고서점에서 구입한 티니우스의 전기를 읽은 그는  
    의도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티니우스의 복제품으로  변한다.
    (물론 그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요소까지 모방하지는 못하지만, 거의 치명적인 상태로까지는 만든다.)
    티니우스가 쓴 책 5권을 전부 소유하게 된 팔크 라인홀트.
    그는 티니우스의 책들을 텍스트화시켜 열개의 글의 양탄자를 탄생시킨다.
    기호학적이며, 비밀스럽기까지 한 텍스트들.
    방 안에 홀로 칩거한 채 오로지 텍스트에만 빠져드는 라인홀트.
    그 모습은 한창 열렬한 연애에 빠진 사람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전희, 사랑, 애무, 쾌락과 욕정, 그 뒤에 남은 허무와 극도의 피로감.
    그는 티니우스가 남긴 텍스트 전부를 컴퓨터 안에서 분석하면서
    또 다른 텍스트들를 출산한다.
    드디어 열번째 출산으로 독서의 비밀을 알아낸 라인홀트.
    그리고 그는 비밀을 혼자만 간직하고
    자신이 만든 열번째 양탄자를 타고 그곳을 떠난다.
    방 안에 홀로 남겨진 컴퓨터가 켜지면
    커서와 같은 모습의 그가 화면 가장자리 저쪽으로 서서히 사리진다.



    황당한 소설이라고 느껴질까?
    그러나 이 책을 다 마셔버리고 나면(책의 표현데로)
    분명 충격적이라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되리라.
    활자 증후군들의 식욕을 제대로 자극하는 책.
    거북한 소화불량에 빠지더라도
    탐욕스럽게 남김없이 먹어버리고 싶은 그런 책이다.



    누군가는 신성모독에 대한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예수를 떠올리게 하는 티니우스의 행적들.
    그리고 12제자를 떠올리게 하는 라인홀트.
    단지 신비주의 소설이라고 단정짓지는 말기를...
    그러기엔 이 책이 가진 것들이 너무 깊고 넓다.

    후후훅 이 책을 마셔라!
    죽음을 이기는 독서의 환희와 전율.
    당신의 최후의 책벌레가 된다.


    책을 읽고 나면 이 말에 적적으로 공감하면서
    심지어 두 사람의 가장 가까운 동행자가 되기를 자처하게 될지도...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는 한 대목.
    가만 보고 있으면 이 공통점들은 정말로 적절하다.

    * 책과 창녀(정부)의 공통점
    1. 책과 창녀는 둘 다 침대로 데려갈 수 있다.
    2. 책과 창녀는 시간을 뒤바꾸어놓는다. 그들은 낮을 밤처럼, 밤을 낮처럼 만든다.
    3. 책과 창녀에게는 일분일초가 귀중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과 좀더 가까워질 때에야 그들에게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그들 안에 잠겨드는 동안 그들은 시간을 재고 있다.
    4. 책과 창녀는 예전부터 각각 불행한 사랑을 하고 있다.
    5. 책과 창녀 - 그들에게는 빌붙어 살면서 괴롭히는 남자들이 있다. 책에게는 비평가가 있다.
    6. 책과 창녀는 공공건물에서 산다 - 특히 대학생에게 그렇다.
    7. 책과 창녀 - 그들이 맞이한 종말을 본 사람은 드물다. 그들은 퇴락하기 전에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8. 책과 창녀는 어떻게 해서 지금처럼 되었는지 얘기하길 좋아하고, 그럴 때면 거짓말도 잘한다.
       그들 스스로 그 거짓말을 믿어버릴 때도 적지 않다.
       여러 해 동안 '사랑하는 마음에서' 모든 것에 열중하다가 어느날부터인가 비대히진 몸뚱이를 안고 거리를 나선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엇인가 알아보려고' 그 주변을 돌아보기 위한 것이라는 식이다.
    9. 책과 창녀는 손님을 끌 때 등을 내보이길 좋아한다.
    10. 책과 창녀는 자식을 많이 낳는다.
    11. 책과 창녀 - '허구한 날 기도하는 늙은 어멈도 젊었을 땐 창녀'였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필독서 중에서 한때 평판이 나빴던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12. 책과 창녀는 꼭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드잡고 싸운다.
    13. 책과 창녀 - 책의 각주는 창녀의 양말 속에 감추어진 지폐와 같다.



    "Habent sua fata libelli"
    책들은 저마다 운명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독자가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서 책들은 운명을 달라진다.
    건전한 애서벽과 병적인 장서벽!
    이제 내가 선택한 차롄가?
    나 역시나 내가 만든 양탄자 속으로
    하나의 텍스트가 되어 실종되고 싶다.

    모든 독서의 끝은 결국 
    지독한 그리고 완벽한
    "실종"으로의 희망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4. 15. 23:19
     
    그가 말했다.

    "열심히 하고자하는 성실함보다 절박함이 더 큰 동기가 됐다" 라고....
    그는 그때 한창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에서 "강마에"라는 도무지 비현실적인 인물을 너무나 현실적으로 살아내고 있을 때였다.

    일부러 기억하겠다 작정한 것도 아닌데 우연히 보게 된 인터뷰 기사가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담겨있다.

    엄청난 이슈와 함께 "강마에 신드롬"을 만들어낸 <베토벤 바이러스>
    이 드라마가 방영될 때,

    신기하기도 하고 우습기까지도 했다.
    전적으로 나라는 인간 때문에.


    TV를 거의 보지 않는 나는 시간이 생기면 오히려 책을 손에 드는 편에 속한다.

    그리고 확실히 책은 거의 모든 TV 방영물보다 훨씬 더 나를 웃게 만들었고, 그리고 내게는 훨씬 더 적극적이고 환상적이었기에...


    그런 나를 늦지 않았을까 조바심치며 TV 앞에 주저앉게 만들고, 시간이 맞춰 귀가하게 만들고, 행여 놓쳤을 땐 기를 쓰고 다시 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게 만들었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으로 그의 이름이 세간의 입에 오르내릴 때도, <하얀거탑>의 천재 외과 의사 "장준혁"을 연기했을 때도 난 한 번도 그 드라마들을 찾아보지 않았다.

    이후에 그가 출연했던 <불량가족>, <꽃보다 아름다워> 두 편의 드마라 역시도 전혀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감히 그에게 열광한다.
    그리고 나는 그 열광앞에 당당히 "감히"라는 말을 붙인다.

    배우 김명민!
    거기 없는 배우, 김명민!

    그를 나 역시도 말하고 싶다.
    2001년도 장진영과 함께 주연했던 <소름> .
    내가 그를 배우로 처음 알게 된 영화.
    영화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덕분이긴 해도 <소름>을 보고나서 궁금했다.

    “뭐지? 저 사람...”
    그런데 아무도 그를 아는 사람이 없단다.
    그리고 그의 불운은 잘 짜여진 극본처럼 배우를 향한 그의 노력들을 무참히 강타했다.
    도박같은 삶...
    어쩌면 배우들은 도박처럼  “단 한 번” 그 한탕의 희망에 목숨을 거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은 엑스트라, 카페 손님, 행인 1에 불과할지라도 언젠간 그래도 잭팟을 터뜨리게 될거란 은밀하고 처절한 희망 그리고 질투.
    혹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 여지없이 파괴되는 육신과 그리고 육신보다 더 피폐해지는 정신의 소유자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
    누군들 절망하는 삶을 꿈꿀까?
    그게 배우의 삶이라면 누군들 그걸 원할까?
    배우의 업은 평생을 떠도는 "유목민의 업"이란다.
    나는 그 떠돔이라는 게 정처없는 방황이나 헤맴을 뜻하는 게 아니라 어디서든 정착하여 일구어내는 생명력의 다른 표현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배우의 책임감은 "정착",
    바로 그곳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에 대한 다큐를 봤다.

    무...서...웠...다....

    한번도 그를 두고 무서움을 생각했던 적이 없었는데, 그는 이제 내가 아는 최고의 공포가 됐다.

    차이가 있다면 그가 주는 공포의 밑바닥에는 깊고 숙연한 존경심이 내재한다는 사실...

    배우를 깊게 존경할 수도 있다는 사실,

    이제 알게 됐다......

     <내사랑 내곁에>라는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그는 지금 루게릭병으로 몸이 마비되가는 "백종우"가 되어 있다.
    그의 얼굴은 푹 꺼져 초췌했으며, 그의 육신은 힘을 잃었으며, 그의  눈빛엔 이미 그늘이 가득했다.
    그의 모습에서 더이상  누구라도 이순신을, 장준혁을, 강마에를 떠올리진 못할 것이다.
    정말 그는 완벽히 실종되버렸다.
    단지 "백종우"만 있을 뿐....
    그렇다면 그는 왜 매번 실종을 택하는가???

    급기야 이제 나는 그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왜  그는 매번 현실에서 사라져버리는가?

    그가 그려낸 인물들은 “똥덩어리”를 외치는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인물들조차 너무나 현실적으로 변해버리는데 그는 왜 도무지 현실적이지 않을까?

    그가 현실적이면 그가 창조한 캐릭터들이 비현실의 세계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영화를 찍고 있는 박준표감독은 말한다.
    "미친 것 같아요....연기에"
    미친듯이 그를 몰입하게 만드는 연기자의 길을 그는 떠나려고도 했단다.
    과거의 기억을 말하는 그의 눈가는 이미 젖어있다.


    50:50의 법칙!
    나는 이걸 밑바닥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50:50의 상황을 뒤집은 건 단지 1% 노력뿐이라고...
    일단 49:51의 상황으로만 만들어 놓으면 그게 추진력이 되어 100:0이라는 불가능의 영역에 내 깃발을 꽂게 될 것이라는 믿음...
    밑바닥에 내려온 사람은 겁이 없단다. 
    더이상 나빠질 것이 없기에.
    그러나 내 두 발로 그 밑바닥에 차고 다시 튀어오른다면 그 곳에서 반전이 시작될지도 모르는 일.
    마치 그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정말 많이 말랐다"
    지금 그와 함께 영화를 촬영하고 있다는 배우 김여진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글을 남겼다.
    얼마전 찍은 응급실 씬에서  그는 정말 환자 같았다. 온몸에 핏기라곤 하나도 없었고 추위를 탔다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몇번이나 '괜찮으세요?'라고 진심으로 묻게 되었다고 말한다.
    57kg 그는 말한다.
    "이건 무조건 말려야돼요!"
    그의 최종 몸무게는 54kg이란다. 180에 가까운 그의 키를 생각할 때 그쯤 되면 그는 정말 앙상한 종우가 될 것이다.
    또 다시 두렵다.
    자신의 몸을 이미 백종우에게 그대로 다 내준 그가 아무렇지 않게 무조건 말려야 된다고 말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마저도 감동하게 만들고 숙연하게 만드는 그가.... 
    어떻게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사람,
    어쩌면 연기를 통해 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조차도 나는 이제 그와 관련을 시킨다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것 같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연습하는 건 정말 강심장을 가진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거라고 말한다.
    자기는 그러지 못해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거라고.
    그가 말하는 그 "연습"이라는 곳에서 허구에 불과한 인물이 디테일을 갖는 실제 사람으로 변해 현실 속을 이렇게 뚜벅뚜벅 걸어다니게 되는 건가....
    아니면,
    우리는 정말 무시무시한 <괴물>을 한명 알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혹, 그가 정말 괴물일지라도
    나는 그를 위해, 그가 입김을 불어 살려내는 캐릭터들을 위해 괴물같은 응원을 보낼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히 거기 없는 배우가 되어 줄 것이기에...

    김명민!
    그는 확실히 거기 없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1. 27. 12:07

    <사랑하기 때문에> - 기윰 뮈소


     사랑하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은 어쩐지 우리네랑 감성이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이상하게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영혼과 프랑스인들이 생각하는 영혼은 같은 서구라고 해도 참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제가 정말 무지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는 고전 작가 “빅토르 위고”와, 현대 작가 “알랭 드 보통”입니다.

    “기윰 뮈소”라...

    참 재미있고 그리고 쉽게 글을 쓰는 작가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참 제목이 말캉말캉하지 않나요?

    게다가 우리에겐 동명의 유재하의 노래가 있어 왠지 더 친밀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언뜻 보면 “아! 연인간의 이야기겠구나...”하고 나름 유추할 수도 있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땡!” 되시겠습니다. ^^ (오랜만에 원맨쇼 시츄에이션 나왔습니다..)


    자, 당신에겐 아름다운 아내와 어여쁜 딸이 있습니다.

    사랑스런 가족을 가진 당신의 자리에 이제 뭔가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면 어떨까요?

    그게 다름 아닌 당신의 다섯 살 어린 딸이라면...

    이야기는 이제 시작됩니다.

    이제 당신이 할 일을 말해야겠죠.

    잃어버린 딸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당신은 모든 걸 버리고 알코올 중독에 노숙자가 되어 거리를 헤매다닙니다. 당신의 아내는 당신도 잃고, 그리고 딸도 잃었지만 명성은 잃지 않은 채 바이올리니스트로 공연까지 하며 살아내고 있습니다.

    그 둘의 방식이 누군가를 덜 사랑해서라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하나를 잃었을 때 모든 걸 잃는 사람과, 하나를 잃었을 때 남은 것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 중 누가 올바르다고 말 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세상엔 찾지 않아도 돌아오는 게 있고, 죽을 듯이 찾아다녀도 결국은 찾아지지 않는 것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우연한 실종처럼 딸은 5년 전 실종됐던 바로 그 자리에 다시 기적처럼 나타납니다. 말을 잃을 채 말이죠.

    아빠는 딸을 찾아 함께 비행기를 탑니다.

    이제 모두 끝났다. 아빠가 네 곁에 있단다..

    결말이 이런 평온한 안식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의 끝엔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반전에 대해 말한다면 참 센스 없는 행동이겠죠?)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세 명의 사람들은 서로의 삶과 운명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딸을 잃고 방황하는 주인공 마크. 엄마를 의사의 욕심에 의해 잃고 그 의사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에비. 그리고 자신의 잘못한 행동으로 인해 마음속에 죄책감을 가지고 자신을 망치려는 재벌 상속녀 앨리슨.

    누군가의 행동이 원인이 되어 누군가의 삶이 달라지죠. 그러나 그들은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전 이런 내용들을 만나면 공포스럽습니다.

    내가 한 행동의 누군가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도화선이 된다면...

    어쩐지 자꾸 내 모습을 뒤적여보게 만들어 영 불편하기도 합니다.


    아직 젊은 작가, 기윰 뮈소(35살)은 이 소설에서 뭘 말하고 싶었을까요?

    작가는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하네요.

    “나는 사랑 이야기가 없는 작품을 상상할 수 없다. 사실 인간의 행동은 사랑 혹은 사랑의 결핍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따라서 사랑이라는 독특한 감정을 기술하는 것은 작가인 나에게 일종의 도전인 셈이다."

    작가가 출판 기념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실종과 증발, 그리고 결핍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작가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도 감정의 실종 혹은 증발로 이야기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끝없는 결핍으로 인해 찾아내 소유하고픈 마음.

    어쩌면 사람들은 “사라짐”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에 우리 내면이 반응하는 건지도요.

    이 책의 내용처럼 내가 사라질 때 누군가가 치유될 수 있다면 “사라짐”이 별로 서러울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과 자꾸 비교하게 됩니다.

    아빠와 딸이 만나는 모습...

    <철도원>쪽이 훨씬 더 서정적이고 아름답지만, 파란 눈의 프랑스인에게도 이런 정서가 있다는 게 참 낯설면서도 신선하네요.

    어떠세요???

    동양의 거장의 감성과 서양의 젊은 감성을 함께 만나보시는 거...

    두 이야기 모두엔 “사라짐”이 주는 치유가 있습니다.

    비교해 보시라는 게 아니라 그냥 만나보시라구요...

    분명한 건 그 책의 내용과 함께 비밀스런 “온기"도 함께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이제 따뜻함이 그리울 때잖아요...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