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0. 2. 16. 06:17
몇 년 전 배우 최민식이 연극 <필로우맨>을 하게 될 거라고 해서 기대했었다.
천재 작가 "마틴 맥도나(Martin McDonagh)"의 가장 유명한 작품 <필로우맨>
그러나...
결국 나는 기대하고 있던 연극을 보지 않았다.
(것도 다분히 의도적으로...)
연극은 LG아트센터에서 공연이 됐고
나는 연극을 이런 규모의 대극장에서 올릴 수도 있다는
새로운 사실에 놀라 기겁했었다.



<뷰티퀸>
영국의 천재적인 작가 마틴 맥도나가 25살 되던 해(1996년),
그것도 8일만에 쓴 처녀작이란다.
"포스트 세익스피어"라는 말을 듣고 있는 1970년생의 젊은 작가.
한때 이 작품을 포함해서 그의 작품 4개가 동시에 런던에서 공연되기도 했단다.
단편영화로 아카데미상을 수상도 하고...
참 여러모로 다재다능하시다... ^^
사실 <뷰티퀸>을 보기로 한 건
<필로우맨>의 천재작가 "마틴 맥도나"의 능력보다
연극배우 김선영의 무대가 오랫만에 탐이 나서였다.
 


“아마 엄마는 절대 죽지 않을 거야. 영원히 거기 버티고 있을 거야. 날 괴롭히기 위해서”
“난 절대 안 죽어. 일흔 살이 돼서야 내 장례식을 치르게 될 걸."

모녀간의 대화라고 하기엔 좀 섬뜩하지 않나!
마흔이 되도록 이렇다 할 연애도 못해본 노쳐녀 모린(김선영)
우울증과 방광염을 앓고 있으면서 딸을 곁에 두기 위해
끊임없이 간섭하는 엄마 매그(홍경연). 
아일랜드 언덕배기 외따로 떨어진 곳에 사는 이 두 모녀의 이야기는
이렇듯 치열하고 그리고 섬뜩하다.
연쇄살인범에게 엄마를 도끼로 내려치라는 부탁을 하겠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딸과
그 전에 널 먼저 죽일거라고 말하는 엄마.
(그것도 아주 고소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는 이 모녀의 관계에 심한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드문드문 어쩔 수 없이 공감하게 된다.



연극을 보면서 오래 전 봤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이 영화, 정말 끔찍하게 아름답고 슬픈 영화였는데...)
연극은 끊임없이 악을 쓰듯 대화하고 
영화는 끊임없이 침묵같은 독백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에 스며있는 정신 착란과 
주인공들의 이해할 수 없는 이상 행동들이 묘하게 닮아 있고 
그리고 그 행동들이 몽상처럼 아득하다.
모린이 착각 속에서 파토를 만나는 기차역 장면과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영화 속 주인공이 작업장에서 추던 상상 속의 춤.
희망과 절망을 함께 품고 있던 그 두 장면은
묘하게 일치하면서 씁쓸한 이면을 남긴다.
어쩐지...
사람이 미쳐가는 게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장면들.



이렇게 사소한 일로 늘 티격태격 다투던 모녀에게 진짜 큰 사건이 발생한다.
매그의 방해도 불구하고 모린이 고교 남자동창 파토(신안진)와
자신의 침실에서 하룻밤을 보낸 것.
다음 날 아침 모녀는 파토 앞에서 서로의 치부를
그야말로 경쟁적으로 살벌하게 폭로한다.
엄마는 단 한 번도 딸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말을 건네지 않는다.
소리를 지르며 딸의 정신병동 입원 병력을 낱낱히 날카롭게 들춰낸다.
게다가 딸은 일부러 엄마에게 시비를 걸 듯
한마디 한마디를 가시같은 말투로 여기저기 사정없이 찔러댄다.
굳이 그렇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상황에서도
그녀는 교묘하게 엄마에게 끊임없이 날카로운 가시를 박는다.
조용히 그리고 집요하게...
세상 모든 모녀의 관계는,
그래, 어쩌면 이런 끔찍한 집요함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연극을 연출한 이현정 연출가,
그녀의 런쓰루는 다른 연극연습에 비해 길기로 유명하다.
대부분 1~2주의 런쓰루 기간을 갖는게 보통이라는데
이 작품에서 그녀는 4주간의 런쓰루 기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연극은 촘촘하고 그리고 빽빽하게 꽉 차 있다.
(토막 난 생선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는 게 얼마나 좋았는지...) 
오랫만에 머릿속이 치열해지는 느낌.
결국 딸은,
엄마도 파토도 떠난 집에서
엄마가 앉았던 낡은 흔들의자에 앉아
엄마가 둘렸던 낡고 더러운 긴 숄을 꼭 엄마처럼 어깨에 감싼체
엄마와 똑같은 자세로 발을 구르며 의자를 흔든다.
그 안으로 엄마의 목소리가 노래로 흐른다.
(극의 시작은 정확히 그 반대다.
 흔들의자에 발을 구르고 있는 노모의 머리 위로 딸의 노래가 흐른다)
등장인물과 흐르는 노래만 바꿔있는 두 장면이
머리속에 선명히 대비된다.
그리고 완벽히 합치된다.
모린은 매그가 됐을까?
그래, 어쩌면... 그랬을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6. 21. 22:02
비오는 토요일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을 찾다.



오랫동안 너무나 기다리고 보고 싶었던
뮤지컬 <바람의 나라>



매번 보고싶어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항상 인연이 없었던 공연



내가 선택한 캐스팅
<바람의 나라> 초연부터 계속 "무휼"을 살아낸 고영빈
그의 댄디한 작품만 봤던 나로써는 그의 무휼이 미스터리다.
<오페라의 유령>의 히어로,
양준모의 "해명"!
아비의 뜻에 의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동생 무휼의 머리 위에 얹힌 비운의 태자
연극 <아일랜드>로 정극을 경험한 그의 변화도 궁금하다.
그리고 <쓰릴미>의 그, 김산호
역시 댄디한 이미지가 강한 김산호라는 배우가 강인한 천상의 무사 "괴유"를 어떻게 만들어 낼지...



결론은,
숨쉬는 게 아까울 만큼
그리고 인터미션이 너무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소름끼치게 아름답고 황홀했다.



무대 뒤
빔 프로젝터를 이용한 에니메이션 배경들.
절대로 한순간도 유치하지 않았고
극의 내용에 맞게 너무나 충실하게 변화를 줬다.
조명, 음향, 음악, 의상 모든 것이
내 눈과 귀, 그리고 심지어 생각과 숨,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잡아 먹었다.



서울예술단의 작품들은
역시 실망을 시키지 않는다는 믿음감!
혜암역의 고미경, 이지역의 도정주, 연비역의 박석용
그들이 받쳐주는 무대는 그야말로 든든했으며 환상 그 자체였다



예전엔 "무휼"이라는 배역이 그닥 매력적이지 않다고,
그래서 배우로써는 별로 탐나지 않는 역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단지 대사와 노래가 없더라도
몸짓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이 만들어 질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생각을 품는다.
"무휼"이라는 역할!
남자 배우라면 정말 탐나는 역할이겠구나 하고....



"괴유"
후반부 20여분 동안 펼쳐지는 전쟁씬은 한마디로
괴유의 난장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야말로 임펙트 강한 역할.
그의 거친 숨소리마저도 끔찍하게 아름다웠다.
군주를 위한 충성심
그리고 소름끼치는 맹렬함까지!



김진의 만화 <바람의 나라>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창작 뮤지컬!
우리 작품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의 의무보다 
작품 그 자체에 대한 애정이 담기게 된다.
어쩌면 그렇게 소홀하게 다룬 부분들이 한 군데도 없을까?
원작 만화를 이용한 배경과
클래식, 락, 힙합, 테크노, 클래식,
그리고 국악을 넘나드는...
음악적인 성찬만으로도 배가 부르고도 남는 작품!
(특히 이 작품의 메인 테마는 드라마 <하얀거탑>에서도  배경음악으로 쓰였단다)
웅장하고 아름답다.



게다가 자극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던 조명,
그러면서 극 내내 끊임없이 말을 전달하던 조명,
모든 게 꿈을 꾸는 느낌이다.
결코 깨고 싶지 않은 꿈.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 할지라도
진심으로 그곳에 나도 있고 싶었다.
하늘 나무 위 혹은 하늘 나무 아래
그들이 꿈꾸는 "부도"에....



막으려해도 피할 수 없는 일
독을 품은 꽃이 씨를 뿌리네
그 꽃이 결국 활을 쏘네
운명은 눈감지 않으리.

피지 말았어야 할 꽃이여!
독을 품어야만 할 꽃이여!
칼날 위를 걸아가는 자여!
활을 뽑아야만 하는 자여!


내겐 너무 치명적이고 매혹적인 작품
<바람의 나라>
그 꽃이 결국 나에게 활을 쏜다.
가슴 한 복판을 향해
그대로 꽃.힌.다....
정..확..하..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