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5. 1. 08:40

길고 긴 알함브라 궁전의 마지막 포스팅은

왕가의 여름 별장 헤네랄리페(Generalife).

이곳은 "건축가의 정원" 혹은 "천국의 정원"이라 불렸다는데 개인적으론 후자에 한 표!

Generalife.

왕가의 사람들에게 이곳이 확실히 General life의 일부분일 수 있겠지만

이방인인 내 눈에 이곳은  Ungenerall life이자 secret life다.

잘못 들어가는 바람에...

다섯손가락의 새겨진 "정의의 문"을 못봤지만

(다섯 손가락은 이슬람의 5계인 신앙, 자비, 기도, 금식, 메카순례를 뜻한단다;)

따지고보면 가이드없이 돌아다니면서 내가 못 보고 지나간 것들이 수두룩하기에 서운한 마음도 아예 없다.

사전 지식이 충분치 않아도,

여기에 와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니까!

 

 

 

그동안 사진으로만  보면서 마냥 그리워했던 사아프러스 오솔길은

두 발로 걷고 있으면서도 세상에 이런 곳이 정말 있구나 하는 경이의 연속이었다.

꿈도 현실도, 동화도 아닌 세계.

현실도 비현실도 아닌 세계.

죽음을 뜻하면서 영원한 삶을 뜻하는 사이프러스 나무,

이곳에 이토록 많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심겨져 있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삷과 죽음이 다르지 않음을 기억하라는 묵시론적인 경고였는지도 모르겠다.

 

 

 

헤레랄리페의 정수인 아세키아 파티오(Patio de la Acequia).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눈 녹을 물을 이용해서 만든 분수와 기다란 수로 주위로

나무들이 호위병처럼 도열해있다. 

물의 수압차를 이용한 분수를 보면서

햇빛 좋은 날 이곳에 오면 꿈의 궁전을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햇빛과 물줄기가 한바탕 춤을 추는 연회장.

빛도, 떨어지는 물줄기도, 나무도 전부 음악처럼 흐르겠다.

그리고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바닥돌의 패턴까지도.

 

커다란 나무로 둘러쌓인 숲길을 걸어 나오는데

아쉽고 서운한 생각에 혼자 울컥했다.

마치 저 뒤에 연인을 남겨두고 떠나는 심정이다.

이 길에도 음악처럼 되돌림표가 있었으면...

 

세상엔,

끝나지 않는 길이 하나 정도 있어도 괜찮겠다.

그리고 그 길이 여기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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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5. 4. 30. 08:19

나스르 궁전과 헤네랄리페 가는 길목에 자리한 파르탈 정원 (Jadines de Partal).

이곳은 대칭을 이루는 아치형 구조로

이슬람 시대 유세프 3세의 궁전과 귀족들의 저택이 자리했던 곳이었다.

귀부인의 탑(Torre de las Camas) 발코니에 내려다보면

아랍인 거주지 알비아신 지구와

집시들의 거주지 시크로몬테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멀리서 바라보는 시크로몬테의 하얀색 동굴집 쿠에바(cueva)는

마치 보송보송한 눈이 포근하게 쌓여있는 느낌.

다정하고 살갑운 풍경이 조근조근 말을 걸어 온다.

알함브라는...

속삭이듯 걷기에 정말 좋은 곳.

날이 살짝 흐린 날은 더욱 더.

 

 

 

 

잘 다듬어진 나무들 사이로 기웃거리는 사람들은

서로 눈길이 부딪칠 때마다 수줍은 미소는 건넌다.

경사진 수로를 따라 눈길을 옮기고

또 다시 만나는 눈빛들. 눈빛들. 눈빛들...

파르탈 정원에서는,

눈(目)이 꼭 눈(雪)처럼 내린다.

 

경사면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만든 계단 가운데를 뚫고

압력를 조절해 물을 가둬두는 이슬람의 물 저장방식은

금단의 열매같은 신비일 뿐이다.

저 멀리 시에라네바다 설산의 물이

시간과 공간을 관통해 지금 여기, 내 눈 앞에 흐른다.

버려진건, 지워진건, 사라진건, 잊혀진건,

아무것도 없다.

 

 

 

파르탈에서 헤네랄리페로 이어지는 길은

하늘 향해 손뻗은 커다란 나무가 장관을 이룬다.

이런 나무들, 이런 길들...

천국이 진짜 있다면,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꼭 여기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 절실해졌다.

정말 그렇다면 

천국이란 곳을 가기 위해

선한 삶을 살겠노라 작정할지도 모르겠다.

 

정말 천국이 있다면,

그렇다면,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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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5. 4. 24. 07:32

왕족의 개인 공간 라이온 궁(Palacios Leones)

이곳은 왕의 후궁들이 기거했던 하렘과

나스르 궁전의 백미 사자의 정원(Patio de los Leones)이 있는 곳이다.

여행객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감탄과 찬사 속에 머무는 곳.

그리고 사자의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세 개의 방 천장 모카라베는 

이슬람 장식예술의 진수을 보여준다. 

 

 

왕의 방(Sala del Rey) 천장 모카라베.

이곳은 술탄이 여인네들에게 마사지를 받은 곳이었단다.

마사지를 할 때에도 왕답게 곁에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들이 있었는데

왕의 벗은 몸은 함부로 볼 수 없는 귀한 지체이기에

아예 맹인 연주자들만 뽑았었단다.

하렘에서는,

왕만이 유일한 남자이고 절대자다.

 

 

아벤세라헤스의 방(Sala de las Abencerrajes)

이곳은 아벤세라헤스 일가의 남자 36명이 참수당한 곳이다.

아벤세라헤스는 보압딜왕과 대립했던 망강한 세력을 가진 왕족 가문이었다는데

이 가문의 남자와 왕비가 사랑에 사랑에 빠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진노한 왕은이 가문의 납자들을 회의를 가장해 이 방에 다 불러 들이고 일제히 목을 베어버린다.

이 방에서 흐른 피가 사자의 정원을 붉게 물들이고 사자의 입에서 피에서까지 피가 흘러 픔어져 나왔다고...

그래서 이 방을 "비극의 방'이라고 부르며 들어가는 것을 꺼려했었단다.

왕비와의 불륜은 정적을 숙청하는 하나의 좋은 방편이었으리라.

뭐가 진실인지는 천장의 별모양 종류석만이 알고 있을 듯.

 

 

두 자매의 방(Sala de las Dos Hermanas).

이곳은 바닥에 깔려있는 대리석 2개가 모양과 크기가 같다고 해서 "두 자매의 방"이라 붙렸단다.

팔각형의 모카라베에는 두쌍씩 16개의 채광창이 나있다.

날씨가 흐려 채광창을 뚫고 쏟아지는 햇빛을 볼 수 없었지만

화창한 날 여기에 오면 엄청난 장관이 연출되겠다.

(날이 흐린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그리고 드디어 사자의 정원(Patio de los Leones).

가느다란 대리석 기둥 124개로 에워쌓여 있는 알함브라 궁전의 진수.

124의 열주는"행운"을 의미한단다.

1+2+4=7

 

 

 

사자의 분수는 물시계 역할도 했다는데

그림자로 시간을 가늠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자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의 수로 시간을 표시했단다.

1시는 한 마리, 3시는 세 마리, 12시는 열 두 마리.

진품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정원에 놓여진건 가품(假品)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아름다운 시계가 정말이지 부럽고 또 부러웠다.

할 수만 있다면,

정원 한가운데로 달려나가 사자 머리를 한 마리 한 마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공간 모두가 그대로 예술의 완성인 곳.

보압딜왕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스페인을 잃는 것은 아깝지 않지만

 알함브라를 다시 볼 수 없는 것은 참혹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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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5. 4. 23. 07:48

메수아르 정원을 지나 들어선 곳은

나스르 궁전의 핵심 코마레스궁(Palacios Comares).

궁전 북쪽 주량 현관은 반원형 아치와 가느다란 열주들이 도열해 있고

가운데 긴 연못 주변엔 "천국의 꽃"이라고 불리는 아랴야네스 나무가 심어져 있다.

그래서 정원 이름도 아라야네스 파티오(Patio de los Arrayanes)

이 나무가 향수, 로션, 약용으로 쓰이는 허브라는 말에.

지나가면서 손으로 잎을 문질러 향을 맡아봤는데 내 코엔 흔한 허브향 ^^

아라야네스 정원은 물, 대기, 식물을 모티브로 만든 전형적인 그라나다식 정원이란다.

이곳이 알함브라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고

인도의 타지마할에 영감을 준 곳이기도 하다. 

눈 앞에 펼쳐지는 화려한 데깔코마니.

물을 경계로 위 아래 두 개의 건축물이 내 눈을 훔친다.  

고대에서 현대까지를 통틀이 이들만큼 물을 잘 이용한 민족이 과연 또 있을까?

물에 비친 잠영(潛影)이 너무나 황홀해 넋을 놓고 머물렀던 곳.

성수기에는 사람 머리로 빽빽해서 사진찍는게 불가능할 정도라는데

지금은 2춸이라 그나마 관광객이 적은 편이란다.

사람 한 명 없이 혼자서 이 풍경을 바라보는 방법은

정녕 엽서를 앞에 놓고 보는 것밖에는 없는 모양이다.

 

 

코마레스탑 안쪽은 모카라베스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종유석으로 장식된 대사의 방(Salon de Embajadores)이 있다.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가득한 금빛 천장은

"알라"를 상징하는 기하학 무늬로 수천개의 나무 조각을 하나하나 짜맞춘 것이란다.

방에 들어섰더니 극강의 아름다움에 숨이 저절로 멈춰졌다.

그건 가히 폭력에 가까운 탐미(貪美)였다.

황홀경을 선사하는 이곳은

이슬람의 마지막 왕 보압딜이 카톨릭왕에게 그라나다를 넘겨준 치욕의 장소이기도 하다.

과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데

아름다움은 결국은 결국 그렇게 종말을  맞았다.

 

그러나 나는 황금빛 천정 아래에서,

신의 위대함을, 종교의 절대성을 뼛속까지 실감했다.

그리고 이 위대한 경이를 만든 사람들을 장인정신 그 너머에 있는 존재들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들에겐 이슬람 왕조의 멸망 조차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으리라.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신과 함께 있었으므로...

그들에게 신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살아있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5. 4. 22. 08:16

알함브라 궁전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잇는 "나자르 궁전(Palacios Nazaries)

그래서 티켓팅을 할 때도 이곳만큼은 입장시간을 띠리 지정해야 하고

그 시간에서 15분 이상 늦으면 입장이 불가하다.

처음엔 살짝 빈정이 상했지만

그런 엄격한 제한덕분에 이곳이 유지될 수 있었겠다 생각하니 금새 누그러졌다.

알함브라의 모든 전설과 이야기가 시작된 곳.

한창 때는 7개의 궁전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메수아르궁과 코마레스궁, 그리고 라이온궁 세 곳만 남아

옛 왕조의 영광을 추억할 뿐이다.

 

Machuca Garden을 지나 나자르 궁전에 들어서면

가장 오래된 메수아르궁(Palacios Mexuar)을 만날 수 있다.

바닥돌의 석류 문양은 이곳이  "그나라다"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한다.

왕의 집무실로 들어서니

커다란 창을 통해 시크로몬테와 알바이신 지구가 한 눈에 들어온다.

타일로 장식된 벽과 대리석을 흙처럼 깎아낸 부조물들.

지구의 4원색인 검정, 녹색, 노랑 파랑의 타일에 새겨진 아라베스트 문양들과 조각들은

눈으로 직접 보고 있음에도 그 섬세함이 실감되지 않더라.

이 모든 것을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었다니...

어쩌면 나스르 왕국은 그래서 무너졌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보호할 화려한 궁을 만드는데 열중한 왕은 백성들을 돌보지 않았고

결국은 새벽 기도시간 정신이상자의 칼에 의해 어이없는 죽음을 맞는다.

불멸의 꿈이 멸망의 화가 되어 일격을 가한 셈.

 

 

천정의 장식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 눈 앞에 금세기 최고의 우주쇼가 펼쳐지는 느낌이다.

이 모든 것이 그림이래도 기겁했을텐데...

인간의 손이란,

이토록 위대하고 이토록 무섭다.

문득 가혹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뻣뻣해진 목을 잡고 천천히 밖으로 나온다.

 

실연의 아픔에 잠겨 있던 작곡가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arrega).

그는 똑.똑 떨어지는 알함브라의 물소리를 들으며 세기의 명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한다.

그렇다면 타레가는...

이곳에서 실연의 아픔을 달랬을까?

 

일함브라는....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참 아프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5. 4. 21. 07:57

호기로움도 자신감도 아니었다.

이 거대한 알함브라 궁전을 가이드없이 돌아다니겠다고 결정했던건!

사실 현지 한국어 가이드 투어를 신청할 생각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원하는 곳이 그날만 투어 일정이 없었다.

유럽은 현지 한국어 로컬 가이드 투어가 워낙 많아서

다른 곳을 쉽게 찾을 수도 있었지만 고민하다 그냥 우리까지 다니는 걸로 결정했다.

우루루 몰려가서 가이드 설명에 따라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또 우루루 이동해야 한다는게 싫었다.

다 둘러보지 못하더라도,

중요한 곳을 놓치게 되고,

지도를 제대로 못읽고, 

입구와 출구를 못찾아 헤매게 되더라도

알함브라 궁전만큼은 나만의 시선과, 나만의 시간 간격으로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역시나 옳았다.

 

 

알카사바를 둘러본 후 발걸음을 옮긴 곳은 카를로스 5세 궁전.

이곳은 "알함브라 궁전의 이단아"라고 불리는 곳이다.

아랍 건축물에 홀로 서있는 르네상스 양식이라니..,

주위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렇게 용감무쌍한 궁전을 지은 인물은

궁전 이름에 나와 있듯 카를로스 5세다.

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복은 타고 났는지

친가쪽에선 신성로마 제국을, 외가쪽에선 스페인을 물려받아 거대한 영토의 주인공이 됐다.

공식명칭은 신성로마제국에서는 카를로스 5세로, 스페인에서는 카를로스 1세.

이 궁전은 1526년 결혼한 카를로스 5세사 이곳으로 신혼여행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왕 짓는거 주변과의 관계를 좀 고려하면 좋았을테데

바쁘신 왕께서는 당시 유행한 스타일과 스케일에만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코르도바에 있는 이슬람사원(메스카타)에 대성당을 지은 인물도 바로 카를로스 5세였다.

아무래도 이 왕께서는 "조화와 균형"이라는 개념도 "종교" 앞에선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모양이다.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시간이 많이 흘러 건축 당시만큼의 이질감은 느껴지진 않는다.

(그걸 온전히 이해하기엔 나의 지적, 미적 감각이 기준이하겠지만...)

 

 

이 궁전은 특징은 겉에서 보면 분명 사각형 건물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눈 앞에 커다란 둥근 홀(hall)이 열린다는 거다.

내부는 2층 구조로 되어 있고

예전에는 1층 원형홀에서 투우 경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바닥이 돌로 덮여져 있어 투우의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대신 매년 여름마다 그라나다 국제음악제가 개최되고

회랑 1층은 알함브라 박물관이, 2층은 순수 예술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별도의 입장료를 내고 관람이 가능한데

미술보다 건축에 혼이 뺏겨 있는 상태라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광장 한가운데는 중심점에 해당하는 동그라미가 있는데 그곳에 조카녀석을 데리고 갔다.

"아~~~"하고 소리를 내보라고 했더니 미심적은 얼굴로 따라한다..

조카가 낸 소리는 이내 커다란 홀을 지나면서 점점 크게 공명된다.

그렇게 한동안을 조카와 소리를 내면서 놀다가 다른 여행객이 오길래 자리를 양보히고 돌아섰다.

손을 잡고 걸는데 조카녀석이 갑자기 물어온다.

"정말 신기하다! 근데 고모는 이런걸 어떻게 다 알아?"

책에서 봤다고 말하려는데 조카가 또 한마디를 한다.

"하긴 고모는 모르는게 하나도 없더라!"

 

...................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카에게 정체가 들통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휴~~~우!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