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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23 <대한민국 개조론> - 유시민
  2. 2009.05.28 허락한다면.... 2
읽고 끄적 끄적...2009. 7. 23. 13:17
요즘 내가 열심히 읽고 있는 사람
유시민.
뒤늦게 그의 책들을 읽기 시작하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시
가장 서럽게 울던 노란 넥타이의 그를 기억한다.
그의 글들은 무섭다.
진실이기에... 그리고
그 진실을 너무 모른 척 하며 살아왔기에...



정치를 욕하고 사회를 비판할 때,
우리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언론에 휘둘려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는지.
진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알고 있다고 자부하며 욕설을 품었는지...



바르게 알지 못하면서 말하는
그 입들로 인해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는 걸
새삼 뼈 아프게 느끼게 된다.



물론 한 사람의 의견이 모두 옳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적어도 관심을 가지고
바르게 알기 위해 노력하려는 최소한의 의무조차
완전히 잊어버리고 살았던건 아닌지....



유시민.
이 사람은 이 책을 25일만에 썼다고 한다.
직접 읽어보면 그 사실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다.
거침없는 독설의 대가로
자칭 사회주의자 진중권
유하지만 꼭꼭 집어내는 명확한 글로
마치 다독이듯 깨우쳐주는 유시민
그 둘의 글을 읽고 있으면
바라게 된다.
지적인 해박함, 이유있는 고집
그리고
엄청난 필력(筆力)까지...

그들의 글빨을
나는 진심으로 깊게깊게 존경한다.

유시민.
나는 지금 이 사람을 통해
나는 대한민국을 다시 앍기 시작했다.
첫걸음마가 아프다.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09. 5. 28. 06:37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살지, 살아서 싸우지 왜 죽어”

경향신문 | 오도엽 | 시인



이소선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는 없다. 전태일의 분신항거 뒤로 이소선에게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소선에게 중요한 것은 살아야 할 때 어떻게 살 것이고, 죽어야 할 때 어떻게 죽느냐다.

전태일 이후로 숱한 사람이 소외된 사람과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쳐 항거하였다. 그 소식을 접할 때 이소선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소리는 긴 한숨과 함께 "살지, 살아서 싸우지 왜 죽어"였다.
이소선이 지난 25일 누무현
전 대통령의 덕수궁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지난 토요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이소선은 긴 한숨만 내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봉화 마을까지 가려면 얼마나 가야 하냐?"
네다섯 시간은 가야 한다는 말에 이소선은 덕수궁 앞으로 가자한다. 도저히 그곳까지 갈 몸 상태가 아니라고...

이소선이 덕수궁 앞 분향소로 가겠다는 이유가 또 있다.

"야, 분통이 터져서라도 덕수궁으로 가야겠다. 뭐, 국민장이라고? 지랄한다. 칼로 찔러야만 죽인 거냐? 잘못했으면 조사해서 밝히고 처리하면 되지, 검찰이라는 것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만 새면 낮이든 밤이든 가리지 않고, 언론 불러 모아놓고 이리 씹고 저리 볶아대는 게 검찰이 할 짓이냐? 이건 죽게 만든 거야. 이명막하고 검찰이 죽게 만든 거 아니냐? 이제 와서 사과도 안 하고 국민장 한다고. 순서가 맞지 않잖아. 말로만 국민장 한다면 다냐? 경찰차로 분향소 똘똘 가로막고, 이게 무슨 국민장이냐. 이명박이 죽게 한 거 먼저 사과하고 시민들 참여할 수 있게 경찰차 치우고 나서 국민장을 하든 시민장을 하든 해야지. 태일이 떠나고 40년 됐는데, 이런 정권 이런 대통령, 이리 주책없고 도리도 없는 대통령 첨 봤어. 언론들도 마찬가지야. 받아 적는 게 언론이냐. 저기 장자연인가 연예인 죽을 때도 진실도 못 밝히는 것들이 만날 죽은 사람 얼굴만 떡 하니 갖다 놓고 씨부리다 말고. 이번에는 검찰이 지랄한다고 덩달아 춤만 추고. 이게 언론이냐?"

이 말을 하기 위해서라도 덕수궁 분향소에 가는 게 맞겠다고 한다. 25일에 이소선은 덕수궁 분향소 고인의 영정 앞에 앉아 민주화 운동을 함께했던 노 전 대통령을 위해 기도를 했다. 그리고 기자들 앞에서 위에서 한 말보다 더 '세게' 욕까지 덧붙여 말했다. 말을 마치고는 청와대를 쳐다보며 "나도 잡아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소선에게는 가신 님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가득하다. 1987년 옥포 대우조선소 이석규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했을 때, 이소선은 장례위원장을 맡으며 노무현 당시 변호사와 함께하지 않았던가. 원진레이온 산업재해 사건 때도 마찬가지고.

"이석규 할 때, 노무현 변호사 할 때야, 장지로 출발하기 전에 변호사 주머니에 남아 있던 돈 2만원을 내가 홀랑 뺏지 않았냐. 변호사니까 돈 없어도 갈 수 있잖아, 하며. 내가 한푼도 없었거든. 장지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고성 삼거리에서 경찰이 몰려나오니까, 변호사가 나한테 내가 나가서 알아볼 테니 내 짐 좀 가지고 있으라며 차 밖으로 나갔는데 경찰한테 딸랑 잡혀가지 않았냐. 나는 얼른 산 속으로 도망가고. 나중에 대통령 되고 나서 무슨 기념식에서 만나니까, 이러는 거라. 엄마는 내 짐 맡아달라니까 혼자 도망가. 그래서 대통령님 이런 데서 주책없이 옛날 일을 그렇게 말하면 되겠냐고 했어. 그라니까 그런가, 하며 자기 자리로 가서 앉더라고. 참 인간적으로 격식 없이 좋은 분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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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위대하게 생각하고 있는 분,
이소선 여사 !
젊은 아들을 타는 불길 속에 보내놓고
다시 그 아들이 된 어미 !
고령의 나이에 청춘으로 되돌아가 노동운동의 어머니가 된 이소선 여사.
그 분에게도 노무현 대통령과 관계된 일화가 있다는 걸 기사를 통해 알았다.
두 아들을 잃은 어미의 심정 !
덕수궁 분향소를 찾아 사진을 어루만지는 그 분의 심정이
얼마나 불꽃처럼 일렁였을까 생각하니 또 고개가 숙여진다.
"엄마는 내 짐 맡아달라니까 혼자 도망가!"
아마도 그 말이 목에 걸려 그렇게 사진을 쓸어 내리지 않았을까?

허락한다면,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나는 자꾸 편하게 살아내려고만 하는데...
하루하루가 조금 덜 부끄럽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내기를 다짐하기 위해서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두 아들을 잃은 어미를...
그리고
어미를 남긴 두 아들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