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0. 3. 9. 06:36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쌍둥이 아들로 출연했던 정일우.
그 이후에 일지매로 분했던 청년 정일우가
이번에는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배우에 도전(?)한단다.
"정일우의 연극 데뷔"라는 간판만으로도
이미 어느 정도의 티켓 파워는 이미 예상이 되고
실제로도 지금까지 전석 매진 행렬의 연속이란다.
게다가 그가 맡은 역할이 게이 청년.
카메라를 한 번 거쳐 편집한 TV 연기와
실수조차도 통째로 보여질 수밖에 없는,
그것도 소극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배우의 표현력이라는 거.
물론 배우 정일우에게도 도전이겠지만
보는 입장인 관객에게도 엄청난 도전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연예인들의 뮤지컬, 연극 나들이가 요즘 무슨 붐인가 싶다.
왠만한 가수는 이미 뮤지컬 무대에 서있고
(샤이니의 온유, 동방신기의 시아준수, 소녀시대 제시카, 전혜빈, 슈퍼 주니어의 예성, 성민...
 이 외에도 그야말로 기타등등 기타등등...)
또 연기 잘하는 TV 감초 배우들도 한창 연극 무대를 채우고 있다. 
공연예술은 참 너무하다 싶게 다양화로 달려가는데
그에 비해 깊이감은 자꾸 떨어지는 것 같아 솔직히 어느 때는 속이 상하기도 하다.
(이게 뭐 어디 연예인들의 탓이겠느냐마는...)
정통파 연극배우들의 무대가 그래서 이제는 더 반갑고 놀라울 정도다. (완전 로또지!)
때때로 유명 연예인들의 공연계 접수(?)로
지금까지 좋았던 공연 하나가 송두리째 "허당"으로 전락하는 걸 보게 되면
억지로라도 그 배우를 끌어내리고 싶은 과격한 바람도 솔직히 생긴다.
(또 실제로 그런 모습을 적쟎게 목격한 관계로...)
그래도 일단은 어린 하이틴 배우의 예상치 못한 도전은
사실 놀랍긴 했다.



연극은 참 재미있고 따뜻하다.
정일우의 도전은 물 위에 뜬 기름같이 때론 이질감으로 다가왔지만
(불안한 딕션, 한결같던 톤, 감정없는 대사 처리에 방향감각이 전혀 없던 눈동자,
 잘생긴 얼굴과 상의 탈의로 이 모든 걸 무마하기엔 솔직히 턱없이 부족하더라.)
그래도 다른 두 배우가 참 부지런히 그 부분까지 성실히 덮어주더라.
함께 무대 위에서 연기하면서 배우 정일우는
"하모니"와 "균형"을 배웠을까?
그랬다면 그의 도전은 적어도 본인에겐 플라스 알파가 
충분히 되고 있을테다. 



35살 노처녀 "강은우" 역의 정선아
참 맛깔나게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을 부르던 강은우는
참 구구절절 나같더라.
서러울만큼 놀랍고 두려운 조우였나?
두 남자의 동거기념 3주년 파티,
그녀는 처음엔 분명 불청객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연극의 말미에는 이들은
마치 가족사진을 찍듯 나란히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본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어색하거나 작위적이라는 느낌조차 없다.
강은우가 늘 소원하고 바랐던
함께 할 사람을 이제야 만났는지도 모른다는 묘한 안도감까지 전해진다.
오정진(이상홍)과 이준석(정일우),
이 두 게이커플(?)에게 은우는 여자이면서 동시에 여자가 아닐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 존재의 편안함은 은우의 고백과도 정확히 닿아 있다.
"세상 남자들이 모두 게이였으면 좋겠어. 왜냐면 남자랑 있으면 피곤하잖아
 그런데 오늘은 하나도 안 피곤해!"



피곤하지 않은 인생,
그리고 혼자가 아닌 인생.
누구나 꿈꾸지만 참 쉽지 않고 점점 "진절머리나게 어려워지는 인생"
똑똑 튀는 박장대소의 대사를 들어면서도 나는 어쩐지 명치끝은 자꾸 쨍해진다.
현실을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용기.
어쩌면 "사랑"이라는 걸 하면서 제일 중요한 게 바로 이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만 노력하라며 헤어지자는 준석의 말에 감정을 다치는 두 남자.
은우는 그들에게 말한다.
"왜 부등켜 안고 기뻐하지 않아?
 내가 없어서 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이야!"
그런건가?
그래서 은우는 술에 취해 예전에 살던 아파트를 찾았던건가?
그리고 창문 너머로 부인이 있는 애인의 집을 바라보기 위해서?
혹시 나도 그랬었나?
누군가 나에게 말해주길...
"저 하늘의 별이 다 쏟아져내려도 너와는 절대 헤어지지 않아!"
그런 믿음성 없는 말을 아직까지도 내내 꿈구고 있었던건가?



한 편의 연극을 보면서
내 맘은 참 많이 다치고 생채기가 나버렸다.
상처를 들여다 봐야 하는 거?
그래 어쩌면 그것도 공포체험의 일종일수도 있겠다.
서른 다섯이 넘은 여자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마른 논바닥같은 푸석함처럼.
예기치 않지만 집요하고 다가오는 이 구체적인 공포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11. 2. 05:45
궁금하긴 했다.
김훈의 동명소설 <남한산성>이 창작뮤지컬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쉽게 만들어지기 힘든 작품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배경이며, 대사며, 심난한 독백같은 모든 느낌을 전달한다는 게
책의 표현데로 가파르지 않을까 우려했다.
오래 고민을 하다 겨우 공연이 끝 무렵에 결국 찾아 봤다.
지금은 내 심정은...
다행이구나 싶다.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서...



묘하게도 나와는 항상 인연이 없던 배우였던.
김수용, 성기윤, 손광업, 배혜선
드디어 이 모든 사람들을 한 작품 속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들은 명성만큼이나
무대 위에서 꽤 인상적인 그리고 꽤 괜찮은 모습을 남겨줬다.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모습엔 어딘지 묘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느껴진다.
특히 초연의 무대일 경우에는 더욱 더.
어쩌면 그들의 역량에 따라 이 초연의 무대가
초연이자 막공이 될 수도 있다는 절박함을 품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영웅>과 <남한산성>
지금 공연되고 있는 두 개의 대형 창작 뮤지컬은
그래서 기특하면서 동시에 절박하다.
그리고 그 양면성은 무대 위에서 그대로 긍정적인 적나라함으로 드러난다.



원작 김훈, 극본 고선웅, 연출 조광화
꽤 괜찮은 아니 상당히 괜찮은 조합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후 고선웅, 조광화 
두 사람의 멋진 콤비네이션을 다시 한 번 보게 되다.
그리고 의상과 무대...
전체적으로 대나무를 무대 배경으로 삼아 묘한 신비감을 준다.
텅 빈 대나무의 옹골찬 꼿꼿함과 수직성.
결국은 모든 이의 마음이었으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조(성기윤)의 마음.
청과의 화친으로 살 길을 도모하자는 최명길(강신일)의 마음.
청과의 무력 충돌로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김상헌(손광업)의 마음.
자신을 버린 조국을 똑같이 배반하고 청의 길라잡이가 되어버린 정명수(이정열)의 마음.
청을 찾아가 화친의 편지를 전하고 목숨을 버리는 오달제(김수용)의 마음.
그 모든 대쪽같은 마음들이 산성을 만들어 머무르게 했을 거라고...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이 모순된 명제 앞에 누구들 절박하지 않을까...
"당면한 문제를 당면할 뿐"이라 했던가...



청의 황제 홍타이지(서범석)의 등장의 웅장함과 섬뜩함은
내리는 눈을 맞으로 초라하게 남한산성으로 피접하는 인조와의 운명과 대비된다.
눈발 속에서 인조의 음성은...
날리는 눈처럼 분분했고 심난했고 아득했다.
"그것이 왕이 결정한 일이더냐?"
그 짧은 말 속에는 힘 없는 왕의 어쩔 수 없는 무력감과
최후의 결정에 대한 절망감이 묻어 있다.
청의 황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인조의 모습.
어쩌면 그 고개를 다시는 들고 싶지 않았으리라.
땅의 찬 기운과 함께 차라리 사늘히 굳어지길 바라지 않았을까?
서러운 기운에 내 몸까지도 가늘게 떨린다.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이 여기까지 왔구나...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된다.
<영웅>도 그렇고 <남한산성>도 그렇고...
특히 <남한산성>의 무대와 음악은 참 많은 걸 느끼게 한다.
더 좋은 작품으로 진화되길 지금 초연의 무대를 보면서
희망하게 됐다.
주연같은 열정의 앙상블까지...
그들 한명 한명에게 아름다웠다 말해주고 싶다.
당신들이 모두가 쌓은 견고한 <남한산성>은
사실은 극의 결말과는 다르게
몹시 아름다웠노라고 말해주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