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7. 4. 19. 13:48

 

<맨 끝 줄 소년>

 

일시 : 2017.04.04. ~ 2017.04.30.

장소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원작 : 후안 마요르카 (Juan Mayorga) 

번역 : 김재선

연출 : 김동연 / 리메이크 연출 : 손원정

출연 : 박윤희, 우민화, 백익남, 김현영, 유승락, 전박찬 / 코러스 : 나경호, 유옥주

제작 : 예술의 전당

 

묘한 작품이다.

한없이 끌리면서도 보면 볼수록 왠지 모를 화가 치미는 그런 작품.

관음과 상상이 주는 폭력성은

가히 정유정의 <종의 기원>을 떠올리게 한다.

혼자 생각해봤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상상하는게 허용해야 될까?

이 질문의 핵심은,

상상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닌 상상을 해도 되느냐, 안되느냐의 문제다.

가능의 아니라 범위의 문제.

 

지금껏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않았던 맨 끝 줄에 앉아 있는 소년 클라우디오.

그러나 한 편의 작문숙제로 이 소년의 존재감은

맨 끝 줄에서 조금씩 맨 앞 줄로 위치 이동하더니

급기야 교사 헤르만의 자리까지 위협하는 상황까지 직면한다.

그야마로 파란(波瀾)이 아닐 수 없다.

 

클라우디오를 연기는 전박찬의 무의건조한 표정과 대사에는

소년의 활기가 아닌 세상을 다 살아버린 노파의 염증이 느껴진다.

다른건 다 죽었는데

눈(目)과 머리만 살아 끝임없이 누군가를 관음하고 있는 조로(早老)의 소년.

그 시선과 사고가 범죄로까지 이어지는건 아니지만 

범죄 그 이상의 찜찜함과 불편함이 덕지덕지 들러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작품도, 배우들의 연기도, 코러스의 활용도 나무랄데 없는데

이 묘한 찜찜함에서 벗어날 길이 도무지 없다.

절대 악(惡)이 아닌 절대 오(誤)의 공모자가 된 듯한 느낌.

이 느낌을 어찌할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6. 2. 17. 08:03

 

<나무 위의 군대>

 

일시 : 2015.12.19. ~ 2016.02.28.

장소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원작 : 이노우에 하사시

대본 : 호라이 류타

연출 : 강량원

출연 : 윤상화, 김영민 (분대장) / 성두섭, 신성민 (신병) / 강애심, 유은숙 (여자)

제작 : (주)연극열전

  

예당 오페라극장에서 3시 <레베카>를 본 후에

자유소극장으로 내려와서 연달아 연극 한 편을 봤다.

연극열전 시즌 6 첫번째 작품 <나무 위의 군대>

개인적으론 일본 작품은 잘 안보는 편인데 (코드가 나랑 정말 안맞아서...)

김영민이 출연한다니 그냥 지나쳐지지가 않더라.

보고 난 느낌은...

확실히 일본 작품은 나랑 잘 안맞는다는거!

재미있는건지, 슬픈건지, 아픈건지, 심각한건지... 모르겠다.

사전 정보없이 가긴 했지만

처음엔 식인나무에 대한 이야긴가 생각했고,

그 다음엔 나무의 정령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이야기인가 생각했고,

그러다 간혹 스탠딩 허무 개그 같다는 생각도 했고,

인간의 수치심에 대한 이야기 싶다가 허깨비같은 국가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기도 하고...

뭐가 됐든 무대를 꽉 채운 커다란 나무의 존재가

어딘지 무색하게 느껴지더라.

 

톡특한 작품이라는 것도 알겠고,

주옥같은 좋은 대사들도 정말 많았고,

배우들의 연기도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좋았지만

보는 내내 뭔가 개운치 못한 이 느낌적인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마치 벵골나무 위에 있는 사람이 나인것 같다.

나무에서 내려가야 하는지, 그대로 있어야 하는지.

솔직히 지금까지도 결정을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작품 속에서 신병은 대사가 딱 내 심정이다.

"완전히 뒤죽박죽입니다.

 지켜주고 있는게 무섭고, 무서우면서도 매달리고, 매달리면서도 미워하고, 미워하면서도 믿는 겁니다.

 완전히 뒤죽박죽입니다"

이 말을 하고 신병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소리를 낸다.

나무의 정령은 그걸 "모순의 소리"라고 부르더라.

 

모순의 소리,

이 작품이 말하고 싶었던게 이거이지 않았을가!

"모순(矛盾)"

그래서 이런 형식과 이런 대사들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끝나도 끝난게 아니라는 말,

진심으로 진심이다.

 

* 찌질한 연기에 관해서라면 김영민은 비교불능 갑(甲)이다. 

  김영민의 찌질함은 격(格)이 다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5. 5. 7. 07:57

 

<변신 이야기>

 

일시 : 2014.04.28.~ 2014.05.17.

장소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연출 : 변정주

무대 : 여신동

안무 : 권령은

출연 : 김준원, 정태민, 손지윤, 오정택, 이형훈, 진성민, 이효림,

        유주혜, 경지은,

연주 : 고래야

제작 : 노네임씨어터 컴퍼니

 

노네임씨어터 컴퍼니의 6번째 작품 <변신 이야기>

워낙에 노네임씨어터 작품과 배우들을 좋아해서 예당 자유소극장임에도 불구하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말 그대로 열심히 달렸다. <리어왕>을 보고 명동에서 예당까지 후다닥...)

공연장에 들어서니 무대 한가운데 커다란 하늘색 수조가 놓여져 있었고

수조 뒤 양쪽으로는 퓨전 국악 그룹 "고래야"의 연주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조를 설치했다는건 이미 알고 갔지만

들어가자마자 바로 보이는 푸른 수조는 적잖이 당황스럽더라.

뭔가 의뭉스럽기도 하고....

도대체 이 커다란 수조 안에서 배우들은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까?

 

이 연극은 고대 시인 오비디우스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쓴 "변신 이야기"를

미국의 연극인 메리 짐머맨(Mary Zimmerman)이 재구성했다.

2001년 오프 브로드웨이 공연됐을 당시,

9.11 테러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줬다는 평가를 받았던 작품.

인간의 사랑과 욕망이 빚어낸 10가지 "변신 이야기"

 

 

아무래도 같은 날 먼저 관람한 <리어왕>의 영향이 너무 큰 모양이다.

만약 <리어왕> 보다 먼저 이 작품을 봤다면 지금보다는 더 파격적인 작품이라 생각하며 감탄했을지도 모르겠다.

10편의 에피소드들은 각각의 편차가 상당히 컸다.

세번째 알퀴오네와 케윅스, 일곱번째 뮈므라 이야기, 열번째 바우키스와 필레몬은 아주 좋았고,

첫번째 천지창조, 두번째 마이다스, 여덟번재 파에톤은 살짝 과했고

나머지 이야기들은 좀 평범했다.

그리고 이 날만 컨디션이 안좋았는지는 모르지만 고래야의 보컬이 참 밋밋하더라.

(나는 연주와 노래가 뭔가 몽환적이고 신화적이길 바랬는데...)

물 속이라 그런지 배우들의 몸동작들도 많이 위태위태했고

그 때문에 때때로 의도치 않게 흐름이 끊기기도 했다.

그런 욕심이 들더라..

이 작품을 나레이션과 음악, 그리고  전문 무용수로 구성해서 올렸다면 어땠을까 하고...

아주 색다른 작품이고,  새로운 시도였고, 구성과 연출도 나쁘지 않았는데

그걸 몸의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아무래도 배우들이 갖는 한계가 확실히 있더라.

 

그래도 이 작품을 하겠노라 나선 노네임씨어터도

이 어려운 작품을 어떻게든 몬으로 표현해내려고 노력한 배우들도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들이긴 하다.

물 속에서 이런 대사와, 이런 연기들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 속에 온몸을 담궈야만 하는 이 작품을 하루에 2회 공연한다는건,

정말이지 미친 짓이다.

공연후에 퉁퉁 불어 있을 배우들의 몸을 생각하니,

작룸과 관계없이 그게 자꾸만 맘에 쓰인다.

 

배우라는 직업은...

누구도,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어쩌지 못하는 평생의 업이로구나.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11. 18. 08:15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 Tribes)

일시 : 2014.11.08. ~ 2014.12.14.

장소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극작 : 니나 레인 (Nina Raine)

번역 : 이인수

연출 : 박정희

출연 : 남명렬(크리스토퍼), 남기애(베스), 김준원(다니엘)

        방진의(루스), 이재균(빌리), 정운선(실비아)

제작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나는 정말이지 노네임씨어터 작품을 너무나 사랑한다.

작품을 선택하는 안목도 너무나 탁월하고 연출가과 배우 캐스팅 역시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만큼 환상적이다.

매 작품마다 깊이와 재미를 동시에 쥐고 있는 현실이라 감정적으로도 쉽게 동화된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이 작품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역시도 그랬다.

가족...

그 가깝고도 먼 관계.

정말 그렇더라.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가족이

사실은 세상 그 누구보다 일방적인 소통을 강요하더라.

그걸 사랑이라고, 관심이라고, 애정이라고 말하면서...

사람이 가장 외로워지는건

가족 안에서 혼자됨을 느끼는 그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각자의 발언은 마치 선사시대 원시인들이 질러대는 괴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 말을 하고 있지만,

사실 아무도 말하지 않고, 아무도 듣지 않는다.

"이해" 보다는 내 입에서 나오는 "말" 자체가 행동의 전부다.

극 속에서 가족들이 실제로 하는 말과 자막에 비쳐치는 말이 갖는 괴리감이 절실했다.

이해될 수 없는 기호들의 끝없는 나열...

그게 가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기에 우리는 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각자의 소리를 내고,

비소통으로 소통하지만 돌아온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 속에 속해 있으니까.

 

다니엘의 대사가 가슴에 꽃혔다.

"너 자신을 지키고 싶다면 거리를 둬!

 누군가에게 네 마음을 주면 그 사람을 그걸 버스에 두고 내려.그 다음엔 이리저리 밟히고 채이지"

그래서 광신도 집단처럼 폐쇄성에 기대 울타리를, 소속을, 공동체를 만들게되나?

옆에 빈의자 하나씩 남겨놓고!

소수의 세계도, 다수의 세계도 정답이 될 수는 없다.

빈의자는 여전히 남아있으니까. 

 

빌리의 빈자리에,

다니엘의 빈자리에,

루스의 빈자리에,

크리스토퍼의 빈자리에,

베스의 빈자리에.

누군가 성큼성큼 다가와 앉아준다면 좋겠다.

그리고 나에게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