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5. 7. 27. 08:29

<프로즌>

 

일시 : 2015.07.10.~ 2015.07.26.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극작 : 브리오니 래버리(Byrony Lavery)

번역 : 차영화, 우현주

윤색 : 고연옥

무대 : 정승호

연출 : 김광보

출연 : 박호산, 이석준 (랄프) / 우현주(낸시), 정수영(아그네샤)

제작 : 극단 맨씨어터

 

박호산 캐스팅으로 보고 이석준도 궁금했었는데  

다행히 공연장을 바꿔 연장공연에 들어가서 이석준 랄프까지 챙겨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랄프 다 너무 좋았는데

개인적으론 박호산보다는 이석준쪽에 훨씬 집중이 잘됐다.

그런데 두 랄프가 달라도 정말 너~~~~무 달라서... 

 

박호산은 어릴적 폭력의 트라우마가 깊게 자리잡은,

그래서 마음 속에 자라지 않은 아이를 품고 있고 그 아이에 때때로 지배당하는 랄프고 

이석준 랄프는 이유불문의 확실한 사이코패스다.

다중인격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

게다가 박호산 랄프의 자살은 다분히 충동적으로 다가왔고

이석준 랄프의 자살은 아주 계획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선지 죽기 전 이석준 랄프가 주변을 말끔하게 정리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으로 보이더라.

 

좀 어이없는 말인데,

이 작품을 두번째 보고야 알았다.

내가 첫관람때 놓쳤던 부분들이 꽤 많았다는걸.

심지어 각 장이 시작될 때 전명 상단에 나오는 글자를 송두리째 날려버렸더라.

(도대체 눈을 감고 봤던 거니???)

굳이 변명을 하자면,

연기 잘하기로 유명한 세배우들에게 오롯이 몰입하느라

그 이외의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잔혹하기도 하고, 참담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그러다 알았다.

이 작품의 제목이 왜 "프로즌"인지를...

 

* Forozen 

① 얼어붙은

② 냉담한, 차가운

③ 고정된, 불변의

④ 경직된

⑤ 얼어붙은, 꼼짝 못하는

⑥ 멈춘

 

나는 이 작품은 용서가 아닌 복수의 이야기로 기억하려 한다.

랄프도, 낸시도, 아그네샤도 크든 작든 모두 복수를 꿈꿨고

결국 복수에 성공함으로서 멈춰있던,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상태에서 벗어난다.

혹시 누군가 죽는게 벗어나는 거냐고 되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련다.

"확실히!"

랄프에게 낸시의 용서는 칼이 됐다.

그 칼날이 랄프를 몸짝달짝 못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그의 육체를 난도질했다.

만약, 랄프가 죽지 않았다면

낸시는 그의 장례식에서 그렇게 평온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을까?

심지어 친한 친구의 남편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하느냐는 아그네샤의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말하지 말라고, 그냥 고통을 견디라고...

그런 생각도 들더라.

이것 역시도 랄프의 면회를 끝까지 막으려고 한 아그네샤를 향한 복수가 아니었을까 하고...

(내 사고가... 너무 멀리 가버리긴 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면

참혹함은 참혹함만이 상대할 수 있다.

거기에 어떤 옷을 입힐지는 오로지 자신의 선택이다.

낸시도, 랄프도, 아그네샤도 예외는 없다.

 

그저 한 편의 연극이었을 뿐인데

꼭 인류의 빙하기를 건너온 느낌이다.

기분 참 묘하게 얼얼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5. 6. 16. 08:31

 

<프로즌>

 

일시 : 2015.06.09. ~ 2015.07.05.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극작 : 브리오니 래버리(Byrony Lavery)

번역 : 차영화, 우현주

윤색 : 고연옥

무대 : 정승호

연출 : 김광보

출연 : 박호산, 이석준 (랄프) / 우현주(낸시), 정수영(아그네샤)

제작 : 극단 맨씨어터

 

연극 <프로즌>

무겁고 우울한 작품이라는 소문을 듣긴 했는데

직접 관람한 내 느낌은,

너무 치밀하고 은밀하고 그리고 집요한 작품이다.

그리고 배우들이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을것을 같아 안스럽더라.

김광보 연출은...

이번에도 배우들을 편하게 해주지 않았구나... 싶었다.

출연 배우들과 포스터의 느낌만으로는 <디너>가 떠올랐는데

실제로 연극을 보면서 떠올린 작품은 김광보 연출의 또 다른 연극 <스테디 레인>이었다.

두 작품은 분위기도, 뉘앙스도, 아주 유사하다.

 

용서할 수 있는 것과 용서할 수 없는 것.

용서받을 수 있는 것과 용서 받을 수 없는 것.

같은 말 같지만 명확히 따지자면 다른 의미다.

왜냐하면 용서의 주체가 완전히 다르니까.

"용서"라는게 그렇게 쉬울까?

자식을 처참하게 죽인 사람을 용서한다는게

정말 가능할까?

그걸 세상 사람 모두가 "죄"가 아닌 "증상"이라 한대도

가족에게는, 엄마에게는 "죄"여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들이 진실을 다 말했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아니 아주 계획적으로 비밀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선 랄프를 찾아간 낸시의 행동은,

용서를 가장한 타살일 수 있지 않을까?

아무런 형체도 담겨져 있지 않는 까만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그래선지 나는 참 섬뜩했다.

감춰진 사진 처럼 그 둘의 관계의 진실도 감춰져 있는 것 같아서..

랄프 역시 죄책감에서 비롯된 자살이 아니라

분열된 자아를 감당하지 못한 최후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랄프의 장례식에서

넨시가 아그네샤에게 남긴 마지막 말.

"그냥 고통스러워하세요..."

그 말이...

날 자꾸 그렇게 몰아간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3. 5. 08:13

<은밀한 기쁨>

일시 : 2014.02.07. ~ 2014.03.02.

장소 :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극본 : 데이빗 해어 (David Hare)

연출 : 김광보

출연 : 추상미 (이사벨), 이명행 (어윈), 우현주 (마리온)

        유연수 (톰), 서정연 (캐서린), 조한나 (론다)

제작 : 맨씨어터

 

추상미의 출산 후 첫복귀작이라는 홍보성 문구는 사실 관람 여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추상미보다는 이명행과 우현주, 유연수가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에 대한 기대감이 내내 관람일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이명행은 전작에서는 이석준과 연기하더니만 이번엔 추상미다.)

데이빗 해어의 탄탄한 원작에 대한 믿음도 있었고.

게다가 김광보 연출까지!

이조합은 어찌됐든 무조건 봐줄 필요가 있다.

예상하고 기대했던 그대로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아주 제대로 황홀했다.

안타깝게도 추상미가 제일 약하고 부자연스럽더라.

다른 배우들은 배우라는 생각이 잊게 만들만큼 자연스럽고 치열했는데

이사벨 추상미는 지금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게 여실히 보였다.

대사톤도 신파조 비슷하면서 좀 작위적이었고 딕션도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떨지는 편이다.

장밀 너무나 열심히 "연기"를 하고 있어서 오히려 좀 민망했다.

그리고 이명행 배우!

후반부로 갈수록 <푸르른 날>을 떠올리게 했다.

그의 보여준 어윈은 아주 섬득했고 소름끼쳤고 그리고 아주 정직했다.

감정표현과 딕션, 연기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척.척.척.

<은밀한 기쁨>은 "~~척"에 대한 삼엄하고 경고이자 심판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주위 모든 사람이 착한 이사벨에게 착한 선택을 강요한다.

그것도 매번 일방적으로.

"넌 착하니까..."

그런데 사실 이 모든 사건과 결말은 순전히 이사벨의 무한 이기심과 환상이 만들어낸 참혹함이다.

아주 무책임하고, 아주 잔인하고, 아주 교묘하게....

모든 분란의 중심은,

그러니까 아버지의 젊은 미방인 캐서린이 아니라 착한 둘째딸 이사벨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사벨의 모습에서 나는 결코 구원될 수 없는 "악마"를 봤다.

나쁜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받지만

착한 사람은 주변 사람을 욕먹게 한다.

 

극의 후반부 이사벨을 던진 통곡같던 어윈의 외침.

"당신은 지금 악마를 상대하고 있어!"

그런데 어윈은 알고 있었을까?

악마를 상대하는 이사벨 그녀가 사실은 더 큰 악마, 악의 근원이었다는 걸.

강요된 살인자가 되버린 어윈의 절규.

그게 나는 내내 살려달라는 마지막 조난신호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의 분노와 욕망 그리고 더 깊은 본능적인 추잡함까지도 다 끄집어 발가벗겨버렸던 이사벨.

아무렇지 않은듯, 등을 떠밀려 이렇게 밖에는 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든 표정들이

나는 참아내기가 참 힘들었다.

 

"은밀한 기쁨"이란 단어는

수녀가 죽을 때 신을 만나는 희열을 뜻한단다.

그렇다면 타살처럼 보이는 자살을 실현한 이사벨도

은밀한 기쁨을 지나왔을까?

그리고 마침내 신을 만났을까?

악마를 상대하는 건,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천사인척하는 악마를 상대하는 것에 비한다면

오히려 쉽다.

 

그녀는 모든 걸 망쳐놨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10. 24. 08:03

<벚꽃동산>

일시 : 20.12.10.12. ~ 2012.10.28.

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작가 : 안톤 체홉 (Anton Pavlovich Chekhov)

연출 : 오경택

출연 : 이석준, 박호산 (로파힌) / 우현주 (라네프스카야)

        김태훈 (가예프) / 정수영 (바랴) / 전미도 (아냐)

        정동환, 최용민, 정승길, 권지숙, 이재인, 신용진, 박채원

주최 : 극단 맨씨어터

 

안톤체흡의 작품들은,

솔직히 어렵고 힘들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톤 체홉의 작품이 올라오면 꼭 챙겨보는 이유는 너무나 서정적이고 섬세하고 아름다워서다.

이야기와 인물들 속에 빠져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황홀해진다.

맨씨어터는 작년에도 지금까지와 약간 다르게 해석한 안톤 체흡의 <갈매기>를 올렸었다.

보고 싶었던 작품인데  예매를 해놓고도 보지 못해서 이번 <벚꽃동산>은 놓치지 말자 생각했었다.

안톤 체홉의 마지막 작품 <벚꽃동산>

안톤 체홉의 작품 중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작품을 체홉은 스스로 "코미디"라고 정의했고,

1904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을 올린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는 "비극"이라고 정의했다.

나는 이 작품을 화사하고 찬란한 비극이라고 말하고 싶다.

원작을 읽고 봤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원작을 꼭 챙겨보는 편인데 이상하게 안톤 체홉의 작품은 무대뽀 정신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출연배우들!

도대체 이 대단한 배우들을 어떻게 이 한 작품에 전부 섭외할 수 있었을까?

분명히 이 작품엔 뭔가가 확실히 있으리란 기대감.

솔직히 출연진에 기가 팍 죽었었다.

 

20세기 초 러시아.

농노제 폐지로 시작된 러시아의 변혁은 러시아의 모든 것들을 빠른 속도로 바꿔놨다.

과거 부유한 영주의 자손이었던 라네프스카야(우현주)와 가예프(김태훈)의 벚꽃동산도

급기야 경매에 넘어갈 처지가 되버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직 평온하다.

그런데 어쩌지!

난 이 오누이의 평온과 순수가 너무나 눈물겹게 아름답고 예뻤다.

벚꽃동산을 별장지로 임대해서 돈을 벌라고 권유하는 로파힌(박호산).

두 오누이의 환상을 현실에 끌어오기 위해 끝없고 집요한 설득을 거듭하지만

오누이는 너무나 태평해서 심지어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마지 꽃비 내리는 따사로운 봄날 벚꽃동산에 피크닉이라도 와있는 느낌이다.

오히려 절박하고 간절한 건 로파힌이다.

오누이와 로파힌의 대비되는 모습이 연극을 보는 내내 참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주변의 사람들.

뭔가 깊숙히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그냥 지나가면서 무슨 일이 생겼나 잠깐 시선을 주고 곧 제 갈 길 가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오직 로파힌만이 절박할 뿐이다.

실제로 이 "벚꽃동산"을 지키고 싶은 사람은 사실 로파힌 한 사람 뿐인 것 같다.

이 아름다움 벚꽃동산의 벚꽃들이 잘려나가든,

품위없는 별장지가 되어 사람들의 소란 속에 묻혀버리든 상관없다.

어쨌든 지켜낼 수는 있으니까.

 

박호산의 로파힌은 참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이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석준은 로파힌을 어떤 인물로 해석했을지 궁금하다.)

사실은 작품 속 인물 들 중에서

벚꽃동산을 제일 지키고 싶어한 사람, 너무나 벚꽃동산을 원했던 사람은 로파힌이 아니었을까?

변화를 보는 시선에 옳고 그름을 정의하긴 어렵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지금 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잊혀진고 없어진다.

그리고 인간은 그 잊혀진 것들을 또 서럽고 아프게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정말 바보같이...

  

벚꽃동산에 있던 모든 사람이 떠나고 홀로 남겨진 피르스(정동환)의 독백,

그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그리고 별 비중없어 보이는 피브스에 왜 정동환이라는 배우가 필요했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툭툭 베이지는 벚나무와 생의 마지막 안식을 향해 걸어가는 피르스의 발자욱 소리.

 "떠나셨어! 날 잊어버리셨어!

  괜찮아!, 그래!

  ...... 산 것 같지도 않은 게 한평생이 다갔군.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아무것도. 에이... 이런 바보"

피르스의 마지막 대사가 주는 무게감은

누워있는 피르스 위로 관뚜껑처럼 닫히는 무대 장치와 함께 가슴 속에 턱 얹힌다.

희극과 비극을 오고 간 <벚꽃동산>을 결국

이렇게 깊은 무게잠과 존재감으로 맘 속 깊이 파고 들었다.

파괴와 변화 뒤엔 그 폐허를 딛고 새로운 희망과 미래가 태어난다.

어쩌면 벚꽃동산에 춤추던 그 무수한 꽃잎들은 일종의 팡파레였을지도 모르겠다.

눈물나게 아름답고 서럽게 찬란한 결말을 보면서 나는 눈이 부셨다.

 

무대는 아름다웠고

배우들의 딕션은 정확했으며,

연기는 진중하고 섬세했다.

작품과 무대에 대한 깊은 경외심이 느껴졌다.

(정말 진심으로 멋있었다. 이 배우들...)

커틑콜에서 정동환 배우를 향해 출연 배우 모두가 박수치며 존경의 모습을 보이는 장면은,

뭉클할만큼 감동적이었다. 

이 작품...

아마도 오래동안 간직될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3. 20. 14:02

<디너>
원작: 도널드 마글리즈(Donald Marguiles)
연출: 이성열
공연기간: 2011. 3. 4 ~ 4. 3
공연장소: 대학로 예술극장3관
출연: 이석준, 정승길, 우현주, 정수영


작년에 산울림 소극장에서 초연됐을 때 꼭 보자고 생각하고 어이없이 놓쳐버린 연극이다.
미국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작가로 손꼽히고 있다는 도널드 마글리즈(Donald Margulies)의 "Dinner With Friends’가 연극의 원작이다.
이 작품은 1998년 휴마나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이후 2000년 퓰리처 희곡상을 비롯해 루실 로르텔 상, 드라마티스트 길드 상, 미국 평론가 협회 신작희곡상 등을 수상했단다.
(참 모르는 이름의 상들이 많기도 많다...^^)
이후 미국 여러 도시에서 공연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단다.
물론 이런 이력들이 작품의 질을 전적으로 말해주는 건 아니겠지만(특히나 그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경우엔...) 제목만 들었을 때도 느낌이 좋았었다.

거기다 박정환을 오랫만에 뮤지컬이 아닌 연극 무대에서 볼 수 있어서 궁금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놓쳤다!
그의 게이브를 놓친 건 아무래도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다.
(아무래도 이래저래 뮤지컬 "광화문 연가"를 보게 될 것 같다. 
 순전히 박정환 때문에...
 그가 부르는 이영훈의 노래들이 무지 궁금하다. 윤도현이나 송창익, 김무열 보다도 더...
 옛날 가요를 부르는 박정환의 모습은 참 좋다. 
 생각해보니 뮤지컬 <동물원>을 본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

 
12년 차 부부 이야기!
산전수전에 공중전, 그리고 원수같은 지겨움과 묘한 동지애 등등등...
참 설정 자체만으로도 할 말 많기도 그리고 할 말 없기도한 구조다.
신선함도 떨림도 흥미진진함도 난해한 숨은그림 찾기 처럼 점점 찾기 어려워지는 시간의 경과!
사랑이라는 거, 부부라는 거, 가족이라는 거...
더불어 개인이 갖는 인관관계 전반에 대해 되집어 생각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들을 소처럼 우직하게,
그리고 꾸역꾸역 되씹게 한다.

벌써 다섯 번째 커플 연기란다.
이석준과 정수영의 탐과 베스.
추상미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두 사람, 정말 부부같다.
그것도 징글징글한 부부!
그러면서도 이 부부의 관계는 충분히 이해가 되고 공감된다.
분노가 최고의 최음제가 될 수 있다는 탐(이석준)의 대사도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
10년 이상 된 부부들을 보고 있으면
일상이 싸움같과 그 싸움은 또 어이없는 슬랩스틱 코미디스럽다.
끝장과 새로운 시작!
뫼비우스의 띠처럼 참 오묘한 관계다.

 

게이브 정승길.
예전에 남산에서 <내 심장을 쏴라>에서 철학자로 나온 모습이 그와의 첫 대면이었다.
그때도 참 느낌이 좋았었는데
<디너>에서는 정말 맞춤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
(정승길의 <루시드 드림>을 봤어야만 했었다... 또 다시 때늦은 안타까움이라니...)
사실을 고백하자면 작품을 보면서
공감이 가장 많이 됐던 인물도, 그래서 위태로움을 가장 많이 느꼈던 인물도 게이브였다.
끝장을 선택하는 부부보다 피아노를 배우는 걸 선택한 게이브가 나는 더 측은하고 안스럽다.
그래도 그런 선택이 부부를, 가족을,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온전하게 유지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탐과 베스, 게이브와 카렌.
두 부부 중 누구의 가치관과 선택이 옳은 건지는 알 수 없다.
또 옳다 한들 꼭 그게 정답이 될 수도 없다.
막막하지만 그게 삶이고 일상이다.
함께 식사를 하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놀라고 괴로워하지만
다시 또 다시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밥을 넘기게 되는 게 일상이다.

사랑과 음식!
이 두 가지는 공통점이 많다.
준비하는데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하고, 적당한 장식으로 시각적인 즐거움도 줘야하며, 유쾌하게 함께 나눌 이야기도 한두개쯤은 꼭 생각해둬야 하고, 그리고 결국엔 꽉 찬 포만감으로 마무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다 유효기간이 지났음을 알게 되면,
선택이라는 것도 해야 한다.

‘사랑이...어떻게 안 변하니?’
영원히 함께함의 공포!
포스터의 문구들은 순간순간 그 선택이라는 걸 섬득하게 만든다.

부부라는 건,
그리고 부부로 산다는 건,
더 이상 남자와 여자라는 생물학적인 성의 결합이 아니다.
어쩌면 부부는 제 3의 성(性)으로 새롭게 분류되어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탐의 선택도 게이브의 선택도 나는 결코 인정하지 않으련다.
그리고 베스와 카렌도...
문득 차가운 물을 벌컥이며 사납게 마시고 싶어진다.
왠지 목구멍으로 달게 넘어갈 것 같다.
그들의 식탁속에 내가 잠시 끼어 앉아있었던 게
잘 한 짓이었을까? 아니면 그 반대였을까?
많은 생각을 두서없이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부부(夫婦)라는 인간관계의 접경지대가 문득 불모지처럼 황량하다.
불모지엔 생명이 없으리라는 확신은,
그러나 매우 위험하고 옳지 않은 믿음이다.
뜻밖의 일은,
어느 곳이라도 의외의 모습으로 파고들 수 있다.
그러니 확신은 끝장보다 더 황폐한 불모지다.

* 암전 속에서 끊임없이 그러나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무대 크루들의 모습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소음에 유난히 민감한 몹쓸 귀를 가진 나지만,
  이들이 내던 무지 조심스럽고 정성이 담긴 소음은 달콤한 디저트 같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