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6.14 <영란> - 공선옥
  2. 2011.03.10 <명랑한 밤길> - 공선옥
읽고 끄적 끄적...2011. 6. 14. 05:47
누군가는 그랬다.
공선옥의 소설속 인물들이 너무 구질구질하고 우울하다고.
그래서 그 기분이 꼭 자신한테까지 퍼지는 것 같아서 읽다가 그만두게 된다고.
그렇다. 공선옥의 인물들은 정확히 이런 모습이다.
그런데 나는 그 인물들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내 살 같고, 내 뼈 같아 마디마디가 저리고 손톱끝까지 아파온다.
한참을 붙들고 울고 싶은 심정...
그러나 그 인물들은 지친 울음 끝에서 항상 새롭게 시작할 힘을 보여준다.
절망 속에서 희망이 피어날 수 있다는 걸 난 그녀가 만들어낸 인물을 통해 절실하게 깨닫는다.
그녀는 나에겐 하나의 현실이며 동시에 극적인 다큐다.
1년 사이에 자폐아 아들과 남편을 모두 잃은 여자!
이야기 속에서도 단 한번도 본명을 내비치지 않는 여자!
막걸리와 빵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여자!
아이와 남편이 좋아했던 작은 정원엔 이제 이웃 건물에서 버린 쓰레기로 가득차고
그 집에서 살아있지만 철저히 죽어있는 여자!
이 여자가 나는 안스러워 자꾸 내 가슴을 쓸어내리고 또 쓸어내렸다.
어쩌면 좋을까... 이 여자...
그리고 이 여자때문에 아픈 나는 또 어쩌면 좋을까...
...... 사는 동안은 눈물 흐르는 소리를 견디며 살아야 할 것이었다.
눈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사는 것은 삶이 아니라 일종의 형벌일 터였다.
그 형벌을 달게 받기로 했다. 달게 받기로 한 때부터 고요해졌다 ......

그녀의 고요는 죽음보다 더 적막하다.
죽음보다 깊고 죽음보다 더 차다.



영란과 이정섭!
체기같은 마른 울음을 몸 안에 담고
길고 지루한 장마같은 생을 살아가는 사람.
매혹은 힘겨움을 이기지 못한다는데
나는 이들의 힘겨운 삶에 어이없이 매혹당하고 말았다.
때로 사랑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환별 또한 그럴 수 있다는 사실 앞에
나 역시도 전율했다.
누구를 향한 환멸이건, 환멸이 사람을 살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공선옥이 말한다.
...... 이 이야기는, 한 슬픔의 사람이 어떻게 슬픔을 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가에 관한 것이다.
누구나의 생애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겪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숙명이다. 아프더라도 또한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하니, 산다는 것은 고해(苦海), 고통의 바다를 건너가는 것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나는 '지금 슬픈 사람'들이 자신의 슬픔을 내치지 않기를 바란다. 외면하지 말기를 바란다. 슬픔음 방치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는 슬픔을 돌볼 시간이다. 내 글의 독자들이 슬픔을 돌보는 동안 더 깊고 더 따스하고 더 고운 마음의 눈을 얻게 된다면, 그리하여 더욱 아름답고 더욱 굳건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슬픔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쓴 사람으로서, 많이 기쁠 것이다 ......
어쩌면 이 이야기가 상처받은 두 남녀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식상한 구조였다면
나는 가차없이 외면했을 것이다.
변하는 건 없다.
본명을 드러내지 않는 여자는 "영란"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허름한 영란집에서 간재미회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사랑은 다시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 떠나버린 사랑이 남긴 상처는 남은 사람의 일생을 관통한다.
그러니, 사랑한다면 떠나지 않아야 한다. 떠날 거면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한다 ......

생명은 태동할 때도 눈물겹고
살아갈 때도 눈물겹고
소멸할 때도 눈물겹다단.
그래서 세상의 모든 생명은 눈물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단다.
<영란>을 읽으면서 나는 끝없이 "영란"을 불러 세웠고
그렇게 불러 세운 "영란"은 나를 위로한다.
내가 불러서 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세상에서 내가 부르면 달려올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대답을 알고 싶다고 직접 불러봐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차마 그러지 못하는 건,
아무도 달려오지 않을까봐서다.
차디찬 한기만이 우뚝 서있을까봐 두려워서다.
내 속으로 키운 한기를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아서다.
공선옥은 어떻게 견뎠을까?
어떻게 견디면서 울음같은 글들을 내내 썼을까?
그녀는 언제나 내게 서러운 눈물을 심는다.

깊게 깊게 울고 싶다.
그러나 또 깊게 깊게 참는다.
울어도 편치않을 울음이라면
울지 않는 게 나을테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3. 10. 06:19
공선옥의 글을 읽으면 소름이 오싹오싹 끼친다.
그녀의 글들은 아름답고 절절하고 측은하다.
뭔가 내 것이 있다면 그대로 퍼주고 싶은 인물들을 읽으며
나는 여러번 작고 조용히
그러나 결정적으로 위로받았다.
그녀의 글들은 때론 내겐 몸에 좋은 약이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소설 공모에 당선하고 받은 첫 상금으로
그녀는 조그만 밥상을 샀노라 말했다.
그때까지 움막같은 샛집에서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맨 바닥에 밥과 찬을 부려놓고 밥을 먹었노라 말했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울컥했다.
그랬구나...
그래서 그녀의 글이 이렇게 뜨거운 김이 펄펄 나는 밥처럼
사생결단으로 치열하고 처절하고 서글펐구나.
폭력보다 더 파괴적인 것이 내 속에 정통으로 어퍼컷을 날린다.
아파라... 아파라...
그런데 나는 그 뭇매를 앞으로더 한참을 더 받아내고 싶다.
그것도 철저히 일방적으로...



꽃 진 자리
영희는 언제 우는가
도넛과 토마토
아무도 모르는 가을
명랑한 밤길
빗속에서
언덕 너머 눈구름
비오는 달밤
79년의 아이
지독한 우정
폐경 전야
별이 총총한 언덕



전남 곡성 출생, 전남대 국문과 졸업.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전남 곡성군 삼기면 의암 110번지!
살아본 적은 없지만 주민등록에 적혀있는 내 본적지.
그래서 그녀의 글들은 구절구절이 대를 이어 연결된 핏줄과 뼈마디가 내지르는 외침같이 느껴졌는지도.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내가 가장 예뼜을 때>
공선옥의 소설 제목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문득 서럽고 고되다.
그리고 <명랑한 밤길>에 담겨있는 12편의 단편들을 읽으면서도
나는 꺼이꺼이 속울음을 울며 가슴을 쳤다.
윤자, 경자, 문희, 인자, 연희......
어쩌자고 인물들은 이름조차도 서럽게 촌스럽고 보잘 것 없는지...
심지어 이름조차 갖지 못한 아내와 남편들을 읽으면서
나는 이 희망없는 사람들이,
구석을 찾아들어가는 게 습관인 사람들이 마치 내 몸의 일부인냥 아팠다.
재혼가정의 아비의 아들 쉽쇅끼와 어미의 아들 괴쇅끼의 엉겨붙음은
차라리 인간적이고 정직해서 생의 활기마저 느껴졌다.
결손가정, 가난, 물난리, 치매, 우울증...
눅눅하다 못해 물에 온 몸이 담겨 축축 가라앉는 이야기.
그럼에도 그 속에 어김없이 생의 떳떳함과 결연함이 있다.
어쩌면 그건 생의 변방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치열하고 구질구질하기 한 이야기는
그 궁색함과 초라함으로 오히려 장관을 이룬다.
12편의 단편들을 다 읽고 나서
나는 그만 울고 싶어졌다.
곡을 하듯 서럽게 서럽게 울음을 토해내고 싶었다.

...... 그려, 울어라, 울어, 하먼, 밥 묵고 살라면 울어야제. 울어야 밥맛 나고 밥 묵어야 심이 나제. 별것이나 있간디. 암것도 없어. 태나서 우는 놈이 사는 벱이여. 울어야 산 목심이여. 그저 내 울음이 내 묵심줄이여. 뜨건 눈물 퐁퐁 쏟아가매, 팥죽 같은 땀 펄펄 흘려가매. 아이갸, 죽을 목심은 울지도 못헌단게. 나는 울지도 못혀. 심이 없어 울지도 못혀. 젊어 울제 늙어 못 울어. 울지도 못허는 나는 갈랑게 너거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석달 열흘간을 션허거 울어부러라 ......

실껏 울고나면,
이 말 때문에 또 위로가 되지 않을까?
진심으로 나는 산 목심이고 싶어,
죽을 것처럼 석달 열흘간을 울고 싶다.
손바닥으로 땅을 치고 온 몸으로 발버둥치면서...
또 모르지,
몸을 산발로 풀어헤치고 억척스럽게 울고 나면
살아낼 새로운 힘이
오도독 오도독 독하게 생겨날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