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0. 3. 25. 08:31
플레이 디비에 이벤트 당첨이 됐다.
이벤트가 아니었어도 이번엔 꼭 보리라 생각했던 작품이다.
매번 공연기간도 너무 짧았지만(이번에도 3월 24~28일까지 사흘간 공연이다)
이상하게 나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던 공연이었다.
주변에서 이야기는 참 많이 들었었는데...



1930년대 대중음악 장르 하나였던 만요(漫謠)를 가지고 만든 공연이다.
<오빠는 풍각쟁이>, <엉터리 대학생>, <신접살이 풍경>, <왕서방 연서>, <노들강변> 같은
재미있고 풍자적인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다.
뮤지컬 배우 박준면이야 연기와 노래로 익히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고
내가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건 하림의 모습이었다.
그의 노래를 얼마나 좋아했던가?
"출국", "난치병"(1집), "여기보다 어딘가에",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2집)
감상적면서도 어딘지 시니컬한 그의 노래는 고급스럽기까지 했었다.
2004년 2집이 나온 후 그의 침묵은 참 길어서 궁금했었는데...
<천변살롱>에서 본 그는 외형적으론 홍석천을 떠오르게 한다.
어쩐지 약간 코믹하고 오래된 만평같은 느낌이랄까?



<천변살롱>의 마담 박모단.
"모단"이란 이름은 그녀의 애인 "진일파"가 지어주었단다.
모던한 여성이 되라고...
모던한 여성을 희망하는 박모단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노래들.
향수를 자아내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어리지만(?)
왠지 콧소리 가득한 만요(漫謠)가 정감있고 다정하게 들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확실히 박준면의 콧소리는 매력적이다.



안타까운 건,
이 극이 신세대를 아우르기에도 그렇다고 해서 어른신들의 추억을 아련하게 떠올리게 하기에도
확실히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코믹의 요소로만 전락할 가능성도 다분히 보인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지금까지는 어쨌든 박준면과 하림이라는 축에 의해 잘 이어가긴 했는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이 앞전의 공연들을 보지 못했기에 한 번의 관람으로 뭐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분명 처음과는 달라지지 않았나 싶다.
어디까지나 우려일 수 있겠지만...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걱정거리 또 하나,
두 사람(박준면과 하림)이 빠져도 공연이 지금과 같은 매니아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어쩌면 장기공연을 할 수 없었던 이유가
오랜 공연으로 이 극의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거란 우려 때문은 아닐까?



노래에 맞추기 위해 이야기를 억지로 만들어냄으로써
(가령, 모단의 연인으로 추정되는 진일파와 그의 약혼녀의 죽음이라든가, 기생집 명월관의 등장같은 것들)
어쩌지 극을 작위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차라리 <천변살롱> 마담이 살롱의 손님들의  에피소들 이야기하는 구성이었다면 어땠을까?
(식상했을라나???)
대본을 쓴 사람이 누군가 열심히 찾아봤다
음악평론가 "강헌"씨다.
결국은 스토리를 따라가는 공연이 아니라
요즘 세대엔 쉽게 들을 수 없는 만요(漫謠)에 촛점이 맞춰진 공연이라는 의미다.
유랑극단을 떠올리게 하는 살롱밴드들과
옛스런 소리를 내는 아코디언과 바이올린이 주는 느낌은
아무래도 젊은 시각에서는 독특하고 신선할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나만 해도 이런 만요를 실제로 듣어본 건 처음이었으니까...



공연에 나오는 만요(漫謠)의 가사들은 정말 재미있고 독특하다.
하림의 부르는  "왕서방 연서"나 "개고기 주사"는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쓰디 쓴 막걸리나마 권하여 보았건디
 이래뵈도 종로에서는 개고기 주사
 나 몰라? 개고기 주사를?"
모단걸 박준면이 부르는 "이태리의 정원"이나  "외로운 가로등"은
그녀의 풍부한 감성과 가득한 울림을 듣기에 좋은 곳.
적당히 감상적이기도 하고...



가끔은 나도 살롱문화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건 실제로 경험한 자가 갖는 향수가 아니라
미처 경험하지 못한 자의 동경이리라.
"하늘가 찻집"
정말 그런 곳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나 역시나 기꺼이 모단걸이 되어 질편한 만요를 부르고 싶어지지 않을까?
내게도 오래 품은 이야기가,
쏟아내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하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11. 14. 15:59
오랫만에 대학로에서 소극장 뮤지컬을 봤다.
한동안  큰 작품들만 열심히 본 것 같아서...
연극 <마라, 사드>를 봤을 때는 여름의 끝이었는데
그날의 대학로는 완전히 가을 속에 젖어있었다.



참 좋은 공연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었는데
<판타스틱스>
이제서야 나와 인연이 닿았다.



"Try to remember"
여명이 영화 "유리의 성"에서 불러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노래.
이 노래가 바로 뮤지컬 <판타스틱스>의 넘버라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반세기동안 공연된 세계 최장수 뮤지컬이라는 <판타스틱스>
뮤지컬 넘버들도 참 좋다.
소소한 재미와 아기자기함.
그리고 바로 앞에서 느껴지는 배우들의 모습
어쩌면 저렇게 가까이에서 천연덕스럽게 연기할 수가 있을까?



세익스피어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을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
벽을 사이에 둔 애뜻한 두 연인
두 집안 사이에 벽이 놓이게 된  배경은 (실제로 벽이다... 담벼락)
사실 두 아버지들의 합동잔적에 의해서다.
일부러 둘을 연결시켜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계획한 원수지간이라는...
(아버지들은 사실 둘도 없는 "베프"였던 거쥐~~~)
자식들은 부모의 말에 엇나가려는 경향(?)이 다분하기 때문에 두 아버지는 이런 속임수를 쓰기로 한거다.
이제 어떤 사건을 만들어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이 화해하게 만들어 두 연인을 연결시켜줘야 한다.
루이자가 꿈에서 본 모습 그대로 일을 꾸미기로 한 아버지들.
그리하여 LPG  엘가로(가스 배달부 아님 ^^)를 고용해
아주 최신식 버전의 인디언식 겁탈 시나리오가 시작된다.
두 아버지의 모습이 무지 귀엽고 사랑스럽다.
(실제로 극을 보면서 이 두 사람 때문에 정말 많이 웃었다)



11월 8일 casting - 마트 : 김산호    헨리 : 서현철



해설자이자 극의 작가인 김태한의 노래로 시작되는 <판타스틱스>
어쩜 저런 코믹한 얼굴에서 이렇게 감미로운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좀 죄송...)
항상 그의 코믹한 배역에 익숙한 나는
잠시 놀란다.
(뮤지컬 "그리스"에서 케니키의 현란한 춤과 엘비스 프레슬리 같던 목소리가 생각나 혼자 웃었다)
무엇보다 이 뮤지컬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건
헨리 역의 서현철과 머티머 역의 김지훈 때문이었다.
이렇게들 잘 생기신 분들었구나...
의상이 누더기가 될 정도로 가난한(?) 떠돌이 유랑극단의 유일한 단원들.
그 허름한 옷이며, 얼굴이며, 목소리며, 동작이며...
일주일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난다.
"인디언식 겁탈"의 두 주역 (^^) 

관객을 한 명 동참시킨 그들의 연기는
능청을 넘어 오히려 너무 자연스럽더라.
30년 동안 줄리엣만 한 배우라면서 앞 자리에 앉아있는 여성 관객을 무대 위로 불러낸다.

- 니 이름이 뭐야?
- OO요.
(앞에 나온 관객은 실제로 자신의 이름을 댄다)
- OO! 니 이름은 줄리엣이라고 했지? 너는 신입단원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냐?

- 내가 늘 말했지? 배역을 생활화하라고!
- 어째 너는 30년을 해도 연기가 늘지를 않냐...


두 사람의 만담같은 대사가 자꾸 귓 속을 맴돈다.
한번만 로미오를 시켜달라는 머티머에게 죽는 장면을 해보라면서 헨리가 한 말

- 헨리 : 줄리엣이 왜 죽었어?
- 머티머 : 정확한 건 부검을 해봐야 알 것 같은데요...
- 헨리 : 너 땜에 죽었쟎아~~~ 너 땜에~~~ 속 상해서....
(줄리엣의 손에 있는 독약을 마시려는 머티머에게)
- 헨리 : 니꺼 먹어! 니꺼! 왜 남의 꺼 먹어~~~

따지고 보면,
로미오는 정말 줄리엣 때문에 속 상해서 자기가 가지고 온 독약을 먹고 죽었는데
난 왜 이렇게 웃기기만 한건지...

중간에 마트 김산호의 입으로 꽃가루가 들어가 상대역 루이자 최보영까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 장면이 어찌나 재미있었는지 관객들까지 한참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 생생하게 귀여운 모습이여서...


모든 사랑은 "환상"이다.
그리고 모든 공연도 역시 "환상"이다.
사랑과 공연.
두가지 환상이 만났으니 그 궁합 한 번 제대로다.
오랫만에 무대 위에서 본 최보영과 강인영도 너무 반가웠다.
(강인영씨 다리 참 아팠겠어요... 당신의 멋진 노래를 많이 들을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존재감은 좋았어요...)
무대 양 옆에서 초대형 필 하모닉 오캐스트라 못지 않게
멋진 반주를 해줬던 두 대의 피아노까지...
오랫만에
알차고 풋풋한 공연을 봤다는 풍성한 만족감.
소문날만 하다는 생각도 더불어 하게 된다.



맘이 우울한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환상적으로 맘이 풀릴테니까...
극장을 나오면
사랑에 대한 "환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 유쾌한 웃음이라는 동반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꽤 좋은 입소문이 나지 않을까 기대된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