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0. 9. 17. 06:23



드디어 봤다.
<빌리 엘리어트>
처음엔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뮤지컬이다.
비영어권 최초 라이센스 공연이라는 것도 
그리고 10세 가량의 아이들이 주인공이라는 것도 다 미덥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 이면엔 "이 어린 것들이 하면 얼마나 한다고,,," 하는 마음이 대분부이었는지도...
그런데 설마 이렇게 괜찮을 줄은 정말 몰랐다.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키 150 cm 미만의소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오디션 조건은 이랬다.
그리고 한국에서 찾아낸 제 1대 빌리.
김세용(13), 이지명(13), 임선우(10), 정진호(12).
김세용과 임선우는 원래 발레를 하던 아이들이다.
김세용은 2009년, 임선우는 2010년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에서 각각 그랑프리와 금상을 받기도 했단다.
그리고 정진호는 SBS "스타킹" 이라는 프로에 탭신동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아직 어리지만 춤에 관한한 칭찬이 자자한 아이들이다.
그렇다면 내가 본 이지명 빌리는?
(캐스팅 보드에는 임선우였지만 컨디션 난조로 갑자기 이지명으로 교체됐다.)
최연소 빌리를 보게되나 기대했는데 급작스럽게 교체되는 바람이 솔직히 조금 실망했었다.
그런데 이지명 빌리!
와! 참 대단하더라.
네 명의 빌리 중에서 유일하게 뮤지컬 경험(라이온킹, 명성황후)이 있는 이지명 빌리는 춤은 조금 약할지 모르지만 연기와 표정, 딕션이 상당히 좋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감정표현도 너무 잘하고...
동선과 읽는 것도, 다른 사람과 발란스를 맞추는 것도 너무 좋다.
춤에 문외한은 내 눈에는 지명 빌리의 춤솜씨도 너무 훌륭하더라.
1년간 노력한 결과라는데
도무지 아이같지 않은 프로다운 모습이 충격적이기까지하다. 
OP석에서 본 이지명 빌리의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은 그대로가 다 감동이었다.
그 땀을 보고 있으면 이지명이라는 13살 어린 소년이
무대위에서 자신의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 아이의 모습... 정말 감동적이다)
절대...절대...절대...
아이들이 주인공이라고 얕보지 말자!
나처럼 큰코 다친다. 것도 아주 제대로...



2000년 깐느 영화제에 초대받은 엘튼 존은
그곳에서 스티블 달트리 감독의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게 됐단다.
자신의 과거와 비슷한 줄거리에 감동을 받은 그는
이 영화를 뮤지컬화하는데 직접적으로 나서기까지한다.
그는 이 영화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영화 하나가 인생을 바꿔놓는 경험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엘튼 존, 스티븐 달트리, 리 홀.
세 사람에 의해 시작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영화와  똑같은 내용이지만 뮤지컬의 느낌은 또 너무나 다른, 꽤 좋은 작품이 탄생됐다.
다른 뮤지컬에 비해 노래가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아이들이 주인공이라 의도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꽤 긴 공연시간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이 없다.
빌리를 비롯한 아이들의 깜직하고 진지한 연기를 보는 건 짜릿한 흥분감이자 계속되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특히 마이클 이성훈의 능청스런 연기는 이 아이의 미래를 빌리만큼이나 궁금하게 만든다.
(어디서 도대체 이런 보물들을 찾았을까??? )
복싱하는 어린 소년들과 발레하는 소녀들.
긴 공연시간에 지치거나 힘들법도 한데 완전히 프로다운 모습이다.
(1막 80분, 2막 80분 모두 160분의 아주 짱짱한 시간의 뮤지컬이다)
중간에 15분 가량의 인터미션이 있긴 하지만
어른이라도 그 긴 시간을 집중하면서 연기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대단한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잘 하고 있는 어른들을 더욱 더 분발하게 만드는 것 같다.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눈 앞에서 직접 봐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황홀하고 아득한 충격이다.



아버지역의 조원희와 윌킨스 선생님의 정영주,
유방암을 극복한 멋진 할머니 이주실까지
성인 연기자의 탄탄한 연기를 보는 재미도 행복하다.
할머니가 노래를 부르면서 망나니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스윙보이들과 춤을 추는 장면과
(어두운 조명과 자욱한 담배연기는 몽환적인 분위기마저도 느껴진다.)
발레하는 아이들 좌우로 탄광 노조와 경찰의 대치하는 장면도 인상깊다.
솔직히 말해면 인상깊지 않은 장면이 거의 없긴 하다.
아버지의 반대로 발레 교습을 받기 어려운 빌리가 추던 1막의 앵그리 댄스는
아런 소년의 격정과 분노, 그리고 좌절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리고 정말 환상적으로 멋있었다.
백조의 호수 음악에 맞춰 아역 빌리와 성인 빌리가 함께 무대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두 명의 빌리 모두 우아하고 신비롭다.
그리고 일종의 경쟁심같은 것이 느껴질 정도로 치열했다.
공중으로 올라가는 빌리의 모습에 감탄처럼 쏟아지던 박수소리...
(대단하다. 어린 아이가 그렇게 높이 올라가서 춤을 춘다는 거... 무서웠을텐데...)
로얄 발레단 오디션 마지막 장면도...
노래를 부르는 빌리와 춤을 추는 빌리가 교차되는 그 순간! 
어쩌면 무대에서 빌리역을 하고있는 이지명 역시 자신 안에 있는 자유를 느꼈었는지도 모르겠다.



재미있다는 말보다 감동적이라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주조연이 따로 없이 전부 열심히 하는 모습이 진심으로 아름다웠다.
마지막 커튼콜에 남녀 모든 배우들이 발레치마를 입고 나와
마치 축제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모습까지도...
행복하겠지?
그들도?



<빌리 엘리어트>
나를 황홀하게 만든 멋진 작품!
얘들아~~
우리 꼭 다시 만나자~~~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6. 29. 06:30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사람에게는 그 사람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과 고통만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든 생각하게 되죠.

“이건 정말 너무 심한 거 아냐?”

때론 신조차도 그 공평성에서 살짝 벗어나신 게 아닌가 하며 야속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생길 때도 분명 있습니다.

여기 우리가 보기엔 참 힘든 삶을 사는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후 1년 때 앓은 척수성 소아마비로 두 다리의 자유를 잃은 1급 장애인.

2001년 유방암 판정, 방사선 치료로 완치.

그러나 다시 2004년 척추암으로 전이, 2년간의 투병 생활.

1년 만에 다시 간으로의 암 전이....

그렇게 다시 시작된 투병 생활 중에 그녀는 이 책을 씁니다.

결국 책의 출판을 하루 앞 둔 5월 9일 57세의 일기로 타계를 한 문학 전도사.

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로 잘 알려진 서강대 영문학 교수 장영희.

<내 생애 단 한번>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에세이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그렇게 그녀의 유고작이 되어 이 세상에 출판됐습니다.

그녀는 “천형(天刑)의 삶”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 주눅듬 없이 자신의 삶이 “천혜(天惠)의 삶”이었다고 당당하게 고백하며 오히려 그들의 지친 어깨를 다독입니다.

어쩌면 병상에서 이 글을 쓰면서 그녀는 정말로 “살아온 기적”들을 되짚어 보면서 “살아갈 기적”을 간절히 꿈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카르페 디엠!
(carpe diem :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 매 순간이 당신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

그녀는 계속되는 장애와 긴 투병 생활 속에서도 진정으로 카르페 디엠의 삶을 하루하루 실천하며 온 몸으로 느꼈던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세 번째 암 판정 이후 그녀는 말합니다.

"신은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 넘어뜨린다. 나 역시 넘어질 때마다 어떻게 다시 일어서야 할지를 생각한다."

그녀가 찾아낸 방법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냄으로써 아름다운 기적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글 속엔 스스럼없이 장애와 투병의 흔적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글들은 모두 하나같이 밝고 심지어는 유머러스하기까지 합니다.

양지바른 곳에 쪼그리고 앉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던 유년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 만큼요.

이야기가 끝날까봐 조마조마하며 “그래서~~~”로 되묻던 그 어린 기억...

60을 바라보는 여자가 도대체 이렇게 귀엽고 순수해도 되는가 싶은 만큼 깨끗하고, 밝고 그리고 심지어 장하기까지 합니다.

장영희! 이 여자!

급기야 깰 수 없는 내공으로 집을 짓고 말았네요.

가끔 우리는 저울질을 합니다.

마음의 장애와 신체의 장애 둘 중에 어느 게 더 치명적인가를...

그딴 저울질이나 하고 있는 제게 “날 좀 봐라! 나는 그 두 가지를 완벽하게 다 가지고 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를 처음 알게 됐을 때의 당혹감이라니...

내 “배부름의 옹졸함”이 드러나는 걸 보면서 스스로 얼굴 화끈거리기도 했더랬죠.

문학 전도사, 희망 바이러스, Positive thinking 의 실천가!

그녀의 이름 앞에 붙는 이 단어들이 제게는 문학박사, 교수, 영미문학사의 간판보다 더 애뜻하게 다가옵니다.


그녀가 타계했다고 했을 때,

저는 그녀의 어머니가 걱정됐습니다.

두 다리를 못 쓰는 둘째 딸을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매일 업어서 등하교시켰던 어머니. 비가 오면 부서진 우산살이 딸에게 향할까봐 그 우산살의 방향을 매번 자신에게 향하게 해 옴 몸을 적셨던 어머니. 진눈깨비 내리는 날이면 행여 딸을 학교에 못 데려다주게 될까봐 새벽에 일어나 연탄재를 부숴서 집 앞 골목길에 뿌려놓았던 그 어머니.

역시 그녀도 어머니가 마음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임종 직전 노트북 컴퓨터로 어머니 이길자(82) 여사에게 남긴 짧은 편지에 그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이 몇 줄의 글을 그녀는 혼미한 정신과 싸워가며 3일간 아주 힘겹게 썼다고 합니다.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에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도 “엄마 !...”

이 두 글자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 또한 옴 몸의 힘이 빠졌습니다.

세상의 모든 딸은 모든 어머니에게 빚을 지며 살고 있다는데......

저 역시도 어머니의 두 손에서 다시 삶을 시작했기에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말한다면 허세일까요?

그녀는 짧지만 참 긴 삶을 성실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살아냈습니다.


“흔적이 남는 사람”

저는 장영희라는 사람을 그렇게 기억하렵니다.

지치고 힘들어 혼자 징징거리고 있을 때 그녀는 어느새 제게 말합니다.

"...... 그렇게 야단법석 떨지 마라. 뼈만 추리면 산다.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 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살이 아프다고 징징대는 시간에 차라리 뼈나 제대로 추려라. 
 그게 살 길이다......"

먼저 간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고 떠난다고 합니다.

남겨진 사람들이 자신이 못 다한 사랑을 해주리라는 믿음, 진실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아주리라는 믿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 주리라는 믿음, 그래서 나중에 다시 만날 때까지 이곳에서의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는 믿음....

그 믿음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은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기도 하지만 또 서로 도와 가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이 세상.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인생을 내내 살금살금 걷듯이 살아간다면 좋은 운명 또한 평생을 살아도 깨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 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걸으며 살아내라고 평생을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해 살았던 한 여자가 말합니다.

두 발의 자유를 잃고 신체의 구석구석을 원치 않았던 동반자에게 차례차례 내주면서도 매 순간을 세상 누구보다 큰 걸음으로 걸었던 한 사람...

그녀가 “살아온 기적”을 보면서

저 또한 “살아갈 기적”을 부지런히 탐하게 됩니다.

이제 넘어져 또 다시 뼈가 부서진다고 해도 더 이상 징징대지 않으렵니다.

그 시간에 오히려 더 열심히 뼈를 추려야겠죠.

하나라도 더 잘, 더 제대로 추려내야 잘 맞춰질 수 있을 테니까요...


모든 사람의 모든 순간이

전부 온전한 “기적”임을 기억하며...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