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8. 12. 13. 08:24

 

<랭보>

 

시 : 2018.10.13. ~ 2019.01.13.

장소 : 대학로 TOM1관

작가 : 윤희경

작곡 : 민찬홍

음악감독 : 신은경

연출 : 성종완

출연 : 박영수, 정동화, 손승원, 윤소호 (랭보) / 에녹, 김종구, 정상윤 (베를렌느) / 이용규, 정휘, 강은일 (들라에)

제작 : 라이브(주), (주)데블케이필름앤씨어터

 

아르튀르 랭보(1854~1891).

여덞 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서 스무 살에 절필한 천재 시인.

예전에 대학때 어떤 선배에게 생일 선물로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받았었다.

(예전에는 그랬다. 생일에 시집을 선물하고 그랬다.)

어린 마음에 제목이 주는 압박감이 커서 쉽게 들춰보지 못했었다.

비관주의와 종말론의 끝판을 볼 것 같아서...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제목과는 반대로 아름다운 시와 글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가 뮤지컬로 만들어진다고 해서.

그렇다면 그의 동성연인이었던 폴 베를렌느(1844~1896) 이야기도 빠질 수 없을거고

그의 시들이 어떻게 작품 속에 표현되고 스며들지 궁금했다.

(특히 "모음들"이란 시가 나올지 궁금했는데... 세상에나... 나온다.)

랭보는 시인은 "견자(見者)"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뮤지컬 속에선 "견자(見者)"가 "투시자(透視者)"로 표현된다) 

시인이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게 아니라

왜곡된 시선으로 투시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마약과 술을 비롯해서 온갖 방탕한 생활을 겪어야만 한다고...

스무살에 절필한 시인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상당히 파격적이긴 하다.

랭보는 두 권의 책을 썼는데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랭보가 고작 19살에 쓴 책이다.

그 당시 500부를 찍었다는데 대금 미지급으로 인쇄업자가 보관하고 있다가

랭보가 37에 생을 마감하고 2년 뒤 뒤늦게 빛을 보게 된다.

동성연인 베를렌느와 헤어지고 절필을 한 랭보는

(베를렌느는 정말 랭보를 죽이려고 총을 겨눴을까?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네덜란드 식민지 부대에 용병으로 있다 탈영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무기 장사와 이것 저것 잡다한 무역상을 하기도 했고

막판엔 골수암에 거려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기까지 한다.

(다리를 절단한 진짜 이유가 "매독"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그 당시 많이 그랬으니까...)

시, 산문, 그리고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던 랭보는

확실히 불운한 천재이자 광기의 시인이긴 하다.

어느 시대에 태어났든 순탄하지 못했을 인생이다.

그냥... 다 아프고 가련하다.

랭보도, 베를렌느도.

 

작품은...

기대 이상으로 잘 만들어졌다.

무대를 세 부분으로 나눠 시간, 공간의 구분을 자연스럽게 이끈 것도 아주 좋았고

천천히 바뀌는 무대 조명은 빛도, 색감도 그대로 한 편의 시(詩)였다.

랭보와 베를렌느 두 사람의 시도 이야기 속에 잘 녹아들었고

해설자이자 keyman인 들라에의 존재도 과하지 않고 좋았다.

(개인적으로 해설자가 너무 많이 개입하는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뮤지컬 넘버들이 너무 좋다.

따로 OST도 발매한다는데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이 있는 넘버들이다.

세 배우의 연기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대사톤이 끝장이었다.

그냥 정상윤이 베를렌느인 것 같고, 윤소호가 랭보인 것 같았다.

감정적으로 울컥한 부분들이 많아서 개인적으론 좀 아팠다.

그냥... 뭐 여러가지 것들이 겹쳐져서...

 

랭보가 그랬다.

La vie est aileurs... 라고.

인생은, 여기에 없다.

(어쩌면 정말 그런지도...)

 

* 덕분에 오랫만에 랭보의 시들을 펼쳤다.

  더불어 베를렌느의 시들도.

 

<모음들>  - 랭보

 

검은 A, 흰 E, 붉은 I, 초록 U, 푸른 O, 모음들

내 며칠 너희들의 숨은 탄생을 말하리라.

아(A), 지독한 악취 주변을 윙윙대며

번쩍이는 파리 떼들 뒤덮인 검은 코르셋

 

어둠의 만(灣)으(E), 증기와 장막의 순진함,

그이의 얼음 창(槍), 하얀 왕들, 산형화(散形花)의 소름,

이(I), 자주빛, 각혈,

분노 혹은 참회의 취기속 그 아름다운 입가 웃음.

 

위(U), 순환, 초록빛 바다의 신성한 동요,

짐승들 뿌려진 방목장의 평화,

근면한 이마에 새겨진 연금술

 

오(O), 이상하게 째지는 지상 최고의 나팔,

지상과 천상을 꿰뚫는 고요,

오(O), 오메가, 그 눈의 보랏빛 광선!

 

<감각(Sensation)> - 랭보

 

여름날 푸른 석양녁에 나는 오솔길을 걸어가리라

밀이삭에 찔리며 여린 풀 밟으며,

꿈꾸듯 내딛는 발걸음. 나는 산뜻한 풀잎들을 발에 느끼며,

들바람이 나의 맨머리를 씻게 하리라.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리,

그러나, 맘 속에 솟아오르는 끝없는 사랑

나는 가리라, 멀리 더 멀리 마치 보헤미안처럼

자연 속을 여인과 함께, 행복에 젖어.

 

<가장 높은 탑의 노래> - 랭보

 

오라, 오라,

도취할 시간이여.

 

얼마나 참았든가!

내 언제까지나 잊었네

공포와 고통도 하늘 높이 떠나갔고

불쾌한 갈증이

내 혈관을 어둡게 하네.

 

오라, 오라,

도취할 시간이여.

 

잊게 되어있고,

더러운 파리떼

기운차게 윙윙거리는데

향과 가라지를

키우고 꽃피우는 들판처럼

 

오라, 오라,

도취할 시간이여.

 

<나의 방랑> - 랭보

 

속이 터진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나는 떠났다.

나의 외투는 더할 나위 없이 닳아빠져 어쩜 그렇게도 어울리는지!

창궁 아래를 걸어가네. 뮤즈여, 나는 그대의 충복.

오! 라, 라, 내가 꿈꾸었던 것은 눈부신 사랑이었노라.

 

한 벌 밖에 없는 나의 반바지는 커다란 구명이 나고

어린 몽상가인 나는 길을 따라가며 시를 뿌렸다.

나의 여인숙은 큰곰자리,

하늘의 내 별들은 다정하고 부드럽게 살랑거렸다.

 

나는 길가에 앉아 별들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 상쾌한 구월의 저녁, 포도주같은

밤이슬 한방울이 이마 위로 떨어진다.

 

환상적인 그림자들의 한가운데서 운을 맞추듯

나는 가슴 가까이에 한쪽 발을 치켜들고

내 닳은 구두의 구두끈을

마치 칠현금을 타듯이 잡아당겼다.

 

<초록> - 베를렌느

 

열매, 꽃 잎, 가지들이 여기 있고.

그리고 오로지 당신만을 향해 고동치는 내 마음이 여기 있고

그대 하얀 두 손으로 찢지는 말아주오.

다만 이 순간 그대 아름다운 두 눈에 부드럽게 담아주오

 

새벽바람 얼굴에 맞으며 달려오느라

온몸이 얼어붙은 이슬방울 채 가시지 않았으니

그대 발치에 지친 몸 누이고

소중한 휴식의 순간에 잠기도록 허락해 주오.

 

그대의 여린 가슴 위에 둥글리도록 해주오.

지난번 입맞춤에 아직도 얼얼한 내 얼굴을,

그리고 이 선한 격정이 가라앉게 그대 달래주오.

그대의 휴식 속에 가만히 잠들 수 있도록.

 

<애수> - 베를렌느

 

장미꽃은 새빨갰었다.

담장의 잎은 시커맸었다.

그리운 이여, 그대가 꼼짝만 하면

나의 절망이 모두 되살아난다.

하늘은 너무나도 푸르고 너무나도 부드럽고

바다는 너무나도 초록이고 공기는 너무나도 달콤하였다.

나는 언제나 두려워한다. 이것이 기다림이라는 것이다.

당신이 무참하게 나를 버리지나 않을까 하고.

옻칠을 한 듯한 호랑가시나무 잎에도

번들거리는 회양목 나무에도

끝없는 광야에도

당신 이외의 모든 것에 나는 진력이 났다

 

<감상적인 산책> - 베를렌느

 

석양이 그 최후의 광선을 내리쬐고 있었다.

그리고 바람은 창백한 수련들을 보듬고 있었다.

커다란 수련들은, 갈대 사이에서

조용한 물위에 슬프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홀로, 내 고통을 산책시키면서

연못을 따라 버드나무 사이를 거닐고 있었다.

그곳에는 희미한 안개가

날개치며 서로 부르는 상오리의 목소리와 함께

울고 절망하는 커다란 유령을 부르고 있었고,

내 고통을 산책시키면서

나는 홀로 버드나무 사이를 걷고 있었다

이윽고 암흑의 짙은 수의가

오더니 익사시켰다

창백한 물결 속에 석양의 마지막 광선을

그리고 갈대 사이의 수련들을,

조용한 물 위의 커다란 수련들을.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8. 7. 19. 08:17

 

<R&J>

 

일시 : 2018.07.10.~ 2018.09.30.

장소 :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

원작 : 세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극작 : 조 칼라코 (Joe Calarco)

우리말 대본 : 정영 

연출 : 김동연

출연 : 문성일, 손승원(학생1:로미오) / 윤소호, 강승호(학생2:줄리엣, 벤볼리오, 존 수사)

        손유동, 강은일(학생3:머큐쇼, 캐풀렛 부인, 로렌스 수사) / 이강우, 송광일(학생4: 티볼트,유모,발사자) 

제작 : (주)쇼노트

 

amo, amas, amat, amamus, amatis, amant.

네 명의 남학생이 주문처럼 읖조리던 라틴어.

나는 사랑한다, 너는 사랑한다. 그(그녀)는사랑한다. 우리는 사랑한다. 너희는 사랑한다. 그들은 사랑한다.

금기에 대한 도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력적인 도발임에는 분명하다.

그건 일종의 꿈이고,

꿈을 열망한다는 건,

꿈을 실현하겠다는 거고

꿈을 실현한다는건,

그 꿈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세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

이보다 더 매혹적이고 해석이 가능할까?

그리고 이보다 더 매혹적인 배우들이 또 있을까?

수시로 바뀌는 배역에 순간적으로 몰입하는 이 괴물같은 배우들을...어찌하면 좋을까!

경외감을 넘어 두려움까지 느껴질 정도다.

문성일은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집중력과 표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이 녀석은 아무래도 천재인것 같다.)

윤소호도 자칫하면 동성애 코드로만 보일 수 있는 역할을 과장없이 잘 표현했다.

단지 줄리엣이었다.

진심으로.

손유동은 로렌스 신부일때 발성과 표현이 너무 좋았고

송광일은 수시로 씬스틸러였고 그래서수시로 놀라웠다.

하긴, 다 소용없다.

네 명의 배우 모두 다 결정적이었고,

네 명의 배우 모두 다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감이라

모든 장면이 크라이막스였고

모든 장면이 카타르시스였다.

붉은색 천에 공꽁 감춰둔 금서(禁書)를 이들이 열었다.

극 중에서도 그랬고,

내게도 그랬다.

오랫만에 텍스트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이 작품 속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봐야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6. 12. 28. 09:45

 

<SMOKE>

 

일시 : 2016.12.16. ~ 2016.12.22.

장소 : 현대카드 UNDERSTAGE

작, 연출 : 추정화

작곡, 음악감독 : 허수현 

큐레이터 : 김수로

출연 : 김경수, 박은석 (초) /  이용규, 윤소호 (해) / 정연, 유주혜 (홍)

주최 : 현대카드 

 

음... 고백하면,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시놉도 전혀 모르고 공연장에 갔다.

추정화 허수연 부부의 전작 <인터뷰>가 너무 좋기도 했고

김수로의 작품을 보는 안목도 믿음직스러웠다.

그러면서도 포스터를 볼때마다 뭔가 눈에 익숙하다 싶었는데...

세상에나!

짙은 담배연기 속 드러난 모습이 비운의 천재 시인 이상의 얼굴었다니!

요즘 시인님들이 공연장에서 열일 중이시다.

개인적으론 침 반갑다.

(정지용, 김소월의 시들도 언젠가 이렇게 재탄생된다면 참 좋겠는데...) 

 

 

이상(李想)의 시 <오감도 - 제 15 호>에서 시작된 <스모크>는

시를 아는 사람에게는 전혀 어렵지 않지만

나처럼 뭣모르고 해맑게 있으면 이게 뭔가... 고민될 작품이다.

다행히 나는 빨리 상황파악을 해서 어렵지는 않았다.

실제로 이상은 작품에서도 보여준것처럼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고

그림을 그릴때는 "하융(河戎)"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신문에 발표된 <오감도 제 7호>에 그려진 삽화가 바로 이상, 아니 하융의 그림.

그러고보니 참 재미있다.

김햬경이란 본명의 한 사내는

시인일 때는 "이상(李想)"으로 화가일 때는"하융(河戎)"이 됐다.

하나 이면서 둘 이고, 둘 이면서 셋인 사내.

그리고 그의 연인 기생 금홍까지.

 

잘 만든 작품이고 좋은 작품이다.

하지만 정리는 필요할 듯.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넘버도 좋았다.

그리고 정말 정말 오랫만에 윤소호가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흐뭇했다.

(<트레이스 유> 이후 처음인듯...)

기대했던 김경수는 기대보다 훨씬 좋았고

정연은 초반엔 좀 흔들렸지만 중반 이후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2017년에 본공연이 올라오면

<인터뷰>만큼은 아니지만 호평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때는 무대와 음향도 제대로 갖춰질테니 

2017년 본공연을 기다려보자.

  

오감도 제 15 호

 

1
나는거울없는실내에있다. 거울속의나는역시외출중이
다. 나는지금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있다. 거울속의
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음모를하는중일까.

 2
죄를품고식은침상에서잤다. 확실한내꿈에나는결석하
였고의족을담은군용장화가백지를더럽혀놓았다.

 3
나는거울있는실내로몰래들어간다. 나를거울에서해방
하려고. 그러나거울속의나는침울한얼굴로동시에꼭들어
온다. 거울속의나는내게미안한뜻을전한다. 내가그때문에
영어되어있드키그도나때문에영어되어떨고있다.

 4
내가결석한나의꿈. 내위조가등장하지않는내거울. 무능
이라도좋은나의고독의갈망자다. 나는드디어거울속의나
에게자살을권유하기로결심하였다. 나는그에게시야도없
는들창을가리키었다. 그들창은자살만을위한들창이다. 그
러나내가자살하지아니하면그가자살할수없음을그는내게
가르친다. 거울속의나는불사조에가깝다.

 5
내왼편가슴심장의위치를방탄금속으로엄폐하고나는거
울속의내왼편가슴을겨누어권총을발사하였다. 탄환은그
의왼편가슴을관통하였으나그의심장은바른편에있다.

 6
모형심장에서붉은잉크가엎질러졌다. 내가지각한내꿈
에서나는극형을받았다. 내꿈을지배하는자는내가아니다.
악수할수조차없는두사람을봉쇄한거대한죄가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5. 6. 24. 08:17

 

<Bare the musical>

 

일시 : 2015.06.17. ~ 2015.08.23.

장소 : 두산아트홀 연강홀

작사 : Jon Hartmere

작곡 : Damon Intrabrtolo

한국어 가사 : 이정미

음악감독 : 원미솔

연출 : 이재준

출연 : 정원영, 윤소호, 이상이 (피터) / 성두섭, 전성우, 서경수 (제이슨)

        문진아, 민경아 (아이비), 배두훈 (맷), 이예은(나디아), 백주희,

        송이주, 전역산 외

제작 : (주) 쇼플레이, 밸류컬처앤미디어

 

이 작품 참 묘하다.

엄청나게 매력적인것 같기도 하고, 매력이 전무한것 같기도 하고...

사실 요근래 몇 년간 동성애 코드 작품들이 많이 쏟아져 나와

이런 내용들이 더이상 파격적으로 느껴지지 않기도하다.

시놉만으로도 결말까지가 예상이 됐고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래도 음악 하나는 정말 끝내주더라.

게다가 이경미 작가의 한국어 가사에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배우들의 연기는,

주연보다는 조연과 앙상블의 연기가 더 눈에 들어왔다.

가장 돋보였던 배우는,

전미도의 데뷔때 모습을 떠올리게 한 이예은과

산텔 수녀, 성모 마리아, 피터 엄마 세 케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한 백주희였다.

(오랫만에 백주희 배우가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나서 반갑더라)

 

전성우 제이슨과 윤소호 피터는.

아직 공연 초반이라 그랬겠지만 기대만큼의 호흡을 보여주진 못했다.

특히나 듀엣곡이 매끄럽지 않아 좀 놀랐다..

그래도 윤소호는 연기에 일관성이 있었는데

전성우는 설정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기복이 심해서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까지 들었다.

워낙 소년의 이미지가 강해서 작품과도, 배역과도 잘 어울릴거라 예상했는데... 

개인적으론 의외의 반전이었다..

아이비 문진아는 노래와 연기 다 좋았는데

예전보다 "ㅅ발음"이 강해져서 좀 놀랐다.

전역산을 비롯한 앙상블의 연기는 정말 반짝반짝 빛을 발했고

이 녀석들과 백주희 덕분에 유쾌하고 즐겁고 따뜻하고 숙시원한 순간들이 많았다.

 

카톨릭 고등학교에 다니느 학생들 이야기라

이 나이에 보기 참 막막한 작품인데

가슴에 담기는 가사들때문에

아마도 한 번쯤은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그때는 필히 다른 캐스팅으로!)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4. 29. 08:22

<Trace U>

일시 : 2014.03.04. ~ 2014.06.23.

장소 :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작사 : 윤혜선

작곡 : 박정아

연출 : 김달중

출연 : 최재웅, 이지호, 이율, 이창용, 최성원 (이우빈)

        장승조, 김대현, 문성일, 서경수, 윤소호 (구본하)

제작 : (주)장인엔터네인먼트

 

홍대 최고의 락클럽 "Debai"가 다시 돌아왔다.

작년 프리뷰와 초연을 너무 인상 깊게 봐서 재공연 소식이 무척 반가웠다.

게다가 새로운 배우들도 대거 캐스팅이 대서 기대감도더 생겼다.

하지만!

락공연 관람이 이제는 버거운 나이인지라 딱 한 번 관람으로 끝낼 생각이라 캐스팅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라고 하기엔 첫정이 너무 강력하다.

그 딱 한 번 관람을 또 다시 최재웅 이우빈과 윤소호 구본하로 선택한 걸 보니...

(나란 사람 첫정에 이렇게까지 약하구나! 도무지 일탈이라는게 없구나...)

세번째 시즌 <Trace U>

익숙해진다는 건,

때로는 좋기도 하고 때로는 나쁘기도 한 것 같다.

이 작품도 확실히 예전만큼의 신선함과 충격은 현저하게 줄었다.

배역에 너무 능숙한 배우들을 보면서

다른 캐스팅으로 봐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핵심은 일종의 "낯섬"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덩시앙 "낯섬"을 느끼기엔 나도, 배우들도 너무 익숙했다.

그래도 여전히 넘버들은 몸서리치게 좋다.

경계성 해리의 분위기를 마구마구 풍기는 무대도, 영상도, 조명도 여전히 좋다.

단지 문제는 내가 너무 익숙해졌다는 거.

거기에 있었다.

 

세 번의 시즌 중 가장 좋았던 건

역시나 전공연이 프리뷰였던 첫번째 공연이지 싶다.

이번 공연은 솔직히 산만해진 것 같아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개그콘서트 같은 구성을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우빈과 본하의 즉흥베틀같은 장면은 너무 장황하고 유치했다.

해가 지기 전에 ~~~~낮이었지!

긴 밤 지새우면~~~~졸려!

폼클렌징~~~

난감했다.

어디서 웃어야 하는지 몰라서...

유니플렉스의 음향 상태는 적쟎은 절망감을 안겨줬고

그래선지 최재웅과 윤소호의 합도 예전과 다르게 살짝씩 삐걱거렸다.  

어느 정도는 연출적인 의도였던 것 같은데

우빈의 과거의 공연과는 달리 뒤로 좀 빠지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인물 자체룰 복선으로 보이게 만들고 싶었던 모양인데

의도만큼 연출되지 않은듯.

덕분에 본하의 동선이 많이 산만해졌다.

 

그런데 사실...

이런 마음이 드는 건 작품때문이 아니다.

뭘 하든 간에 요즘은 

모든 게 다 끝없는 죄책감이다.

감당하기 힘든 기억을 지워버린다는 구본하.

할 수만 있다면,

나는 구본하가 되고 싶다.

그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10. 10. 09:39

<번지점프를 하다>

일시 : 2013.09.27. ~ 2013.11.17.

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대본 : 이문원

작사 : 박천휴

작곡 : 월 애런슨 (Will Aronson)

무대 : 여신동

연출 : 이재준

출연 : 강필석, 성두섭 (인우) / 전미도, 김지현 (태희)

        이재균, 윤소호 (현빈), 임기홍 (대근), 진상현 (기석)

        박란주 (해주),  이지호 (재일) 외

제작 : (주)뮤지컬해븐, CJE&M

 

이 작품을 관람할 땐 스스로에게 경고한다.

절대로 깊이 빠져서는 안된다고!

누군가의 애뜻함과 절실함은 다른 누군가에겐 무례한 기억이 될 수 있으니까.

인우와 태희의 17년.

왜 하필이면 17년인가!

이 작품은 나를 데자뷰와 싸우게 한다.

그래서 피해야만 한다.

빠지지 않게... 공감하지 않게... 인정하지 않게...

빠지게 되면 나는,

위험해진다.

지금도 충분히 위험한데!

 

작년 초연때보다 무대가 많이 정리됐고 2층까지 아기자기하게 더 정성을 들였다.

무대를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추억을 떠올리게 할 만큼 그렇게.

초연때는 파스텔톤의 조명이 은은함과 함께 여백의 미를 느끼게 했다면

이번 여신동이 만든 무대는 추억을 쫒는 "시간여행" 을 체감케한다.

주렁주렁 매달려 그로테스크하게 보였던 1막 초반의 우산과 2층에 동동 떠있던 2막 침대 장면이 없어진 건 아주 현명했다.

장면 전환도 초연보다 훨씬 좋았고

2막에서 태희와 현빈이 서로 교차되는 순간의 연출은 정말 압권이다.

이재준의 감각적인 연출이 그야말로 빛을 발하는 순간!

영화속 대사가 더 많이 들어간 것도 아주 좋았고...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인우의 독백 전에 인우와 태희의 나누는 대화가 초연때는 빠졌었는데

지금은 다행히 제위치를 찾아서 그것도 좋았다.

(이 대화를 듣고 있으면 이은주의 개구진 목소리까지도 겹쳐서 떠오른다. 참 좋아했던 여배우였는데...) 

대부분 재연공연보다 초연공연이 더 좋았었는데

(그래서 초연으로 올라왔을 때 꼭 챙겨보는 편이다) 

이 작품은 초연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좋아졌다.

산만했던 부분들도 과감하게 삭제했고

태희와 현빈의 연결고리 표현은 초연때보다 훨신 더 잘 살려냈다.

개인적으로 초연을 보면서는 영화거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영화보다 뮤지컬이 훨씬 좋다.

윌 애런슨의 곡도, 박천휴의 가사도 여전히 좋았고

강필석의 섬세한 인우, 전미도의 사랑스런 태희도 참 좋았다.

특히 강필석은 배우로서 이 작품과 정말 사랑에 빠져버렸버렸다는게 그대로 보여진다.

(이병헌의 인우보다 강필석의 인우가 나는 훨씬 더 좋다. 비교가 불가할만큼...)

강필석, 전미도, 윤소호.

초연배우들의 연기는 아련했고 더 짙고 깊어졌다.

프롤로그 왈츠만으로도

가슴을 이미 울컥하게 만드는

아주 아름답고, 그리고 아주 위험한 작품.

 

커튼콜이 끝나고 마술처럼 나타난 오케스트라.

무대 안쪽 사이드에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2층 객석보다 훨씬 더 높은 왼쪽편에서 정말 생각치도 못했던 오케스트라가 꿈처럼 아주 조용히 나타났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러면 안되는데 

이 작품은 나를 자꾸 끌어당긴다.

위험해지기전에 피해야 하는데...

 

인우가 내 귀에 대고 말한다.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야!"

정말일까?

정말 그런걸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9. 14. 09:37

<블랙메리포핀스>

일시 : 2013.08.01. ~ 2013.09.27.

장소 :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

대본,작곡,연출 : 서윤미

프로듀서 : 김수로

출연 : 김재범, 이경수, 박한근 (한스)

        김성일, 윤소호 (헤르만) / 문진아, 이하나 (안나)

        김도빈, 최성원 (요나스) / 홍륜희, 최정화 (메리)

제작 : 아시아브릿지켄턴츠

 

프리뷰 이후에 다시 본 <블랙메리포핀스>

일부러 김재범 한스와 홍륜희 메리를 빼고 전부 다른 캐스팅으로 선택했다.

김재범과 김성일이 합이 워낙에 좋아서 다시 볼까 했었데 윤소호와의 느낌도 어떨지 궁금해서 선회했다.

지난 두 번의 관람은 시야장애석이어서 디테일한 모습들을 몰 수 없었는데

이번 관람은 1열 가운데여서 무대와 배우 모두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일단 뒤에서 관람했을 때보다 무대가 훨씬 깊이감 있었고

조명의 색감과 다양한 조도도 훨씬 풍부하게 보여서 놀랐다.

(이건 완전히 원근법을 무시하는 관점인데...)

가장 좋았던 건 배우들의 손동작을 자세히 볼 수 있었던 것!

김재범과 윤소호, 김도빈은 키가 서로 비슷해서 마주보는 장면의 시선도 훨씬 편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두번째 관람했을 때가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았던건 왜였을까?

프리뷰 공연이 중반기 공연보다 더 노련하고 완숙하게 느껴졌다면???

 

일단 김재범 한스는 더 깊어졌다.

트라우마에 대한 강박감도 아주 잘 느껴졌고,

그 강박을 버티내기위해 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도 여실히 보여졌다.

연기도 표정도, 디테일과 타이밍도 모두 정말 좋았다.

그러나 헤르만과의 합은 윤소호보다 김성일과 더 격렬하고 치열하고 따뜻하다.

김재범때문이 아니라 윤소호가 어딘지 좀 이상하다.

이 작품에서 깊게 개입하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

대사가 종종 꼬이고 표정도 가끔 애매했다.

(헤르만과 윤소호는 확실히 잘 안맞는 것 같다)

그리고 안나역의 이하나.

<완득이>에서 참 인상깊게 봤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전체적으로 빠르다.

대사와 감정 모두.

그래도 몸으로 표현하는 부분은 문진아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고 좋았다.

김도빈 요나스는.

일단 막내처럼 보이지는 않아서...ㅠ.ㅠ

멀리서 봤을 때는 요나스의 움직임과 얼굴 표정이 안 보여서 몰랐었는데

혼자서 아주 할 일이 많은 어려운 역할이라는 걸 실감했다.

확 드러나지 않지만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

성실한 표현이었고 무던한 노력과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능숙함과 완벽함과는 별개의 문제긴 하지만..)

홍륜희는 메리는 너무 깊어졌다.

어머니를 뛰어 넘는 힘겨운 모성애.

이 악몽에서 제일 먼저 구원해야 할 사람이 메리여야만 할 것 같다.

 

전체적으로 이번 관람은 좀 애매하고 이상했다

김재범을 제외한 모든 배우에게서 위태함과 다급함이 느껴져서...

나쁘진 않았는데...

어딘지 낯설다.

 

* 김재범이 연극 <연예시대>를 한단다.

  "동진"도 나쁘진 않지만

   개인적으론 그가 <번지점프를 하다>의 "인우"를 해주길 은근히 바랬었는데...

   그랬다면 깊은 감정의 끝을 보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도 김재범 덕분에 <연애시대>를 다시 보게 생겼으니 그것도 나쁘진 않다.

  

 

매번 느끼는거지만 <블메포>의 커튼콜 참 엄숙하다.

배우들의 표정도 그렇고....

조금만 덜 엄숙했으면 좋겠는데...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8. 9. 08:08

<블랙메리포핀스>

일시 : 2013.08.01. ~ 2013.09.27.

장소 : 동국대학교 이해랑 예술극장

대본,작곡,연출 : 서윤미

프로듀서 : 김수로

출연 : 김재범, 이경수, 박한근 (한스)

        김성일, 윤소호 (헤르만) / 문진아, 이하나 (안나)

        김도빈, 최성원 (요나스) / 홍륜희, 최정화 (메리)

제작 : 아시아브릿지켄턴츠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불행과 기꺼이 동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네 사람의 대답.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

난 이 말은 틀린 명제라고 생각했다.

불행과 동행하겠다면,

행복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에 불과할 뿐이라고...

그런데 2012년 5월 이 작품이 대학로에서 처음 봤을 때,

나는 이 장면에서 완벽하게 무장해제 되버렸다.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도 지금처럼 프리뷰 공연어었고

작품이 끝났는데도 나는 한동안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마도 그때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위로을 받았던 모양이다.

시티컬하고, 우울하면서 어딘지 유치하게 파괴적인 이 작품이 나를 다독였다.

"괜찮다, 괜찮다"고...

그리고 내내 이 작품을 그리워하다 재공연 소식을 듣고 너무나 반가웠다.

혹시 또 다시 내게 위로가 필요해졌다는 뜻일까?

대답은!

설마... 혹은 어쩌면... 이다.

 

그런데 재연으로 올라온 <블랙메리포핀스>는 어딘지 조금 낮설었다.

편곡이 달라서였을까?

아니면 배우들이 완전히 달라져서?

그것도 아니면 공연장의 차이 때문에?

이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짙게 깔린 안개 속에 홀로 서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안개 속에서 순간순간 깊은 무게감을 목격했었다.

그런데 다시 본 이 작품은 가볍고 소란스러워졌다.

어쩌면 배우들이 작품 속에, 인물 속에 충분히 동화되지 못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기대했던 이경수 한스는 <셜록홈즈>의 에릭 앤더슨을 다시 보는 것 같다.

목소리톤도 딱 에릭 앤더슨이다.

사투리처럼 느껴지는 발음도 여전히 신경 쓰이고...

때때로 <미스 사이공> 투이의 모습도 보인다.

알코홀릭에 빠진 제대로 시니컬한 변호사 모습이었다면 좋을텐데...

 

윤소호 헤르만은 배역에 깊게 들어가지 못하고 어딘지 주변을 맴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배우가 인물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배역에 배우가 끌려가는 느낌!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타인에게 이해시킨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게다가 윤소호의 큰 키는 적어도 이 작품에서만큼은 불리함으로 작용한다.

그 키가 문진아 안나와의 장면에서 균형감을 제대로 흔든다.

두 사람의 동작을 보고 있으면 내가 다 위태위태하다.

초연때 안나와 헤르만의 손동작에서 받았던 그 느낌들이

적어도 아직까지는 살려내고 있지 못하다.

 

문진아 안나와 최성원 요나스, 홍륜희 메리는 나쁘지 않았다.

애늙은이 같을 줄 알았던 최성원 요나스는 의외로 귀염성 있었고

홍륜희 메리는 모성애를 부각시킨 게 오히려 새로운 표현이라 좋았다.

 

무대와 조명은 초연때보다 훨씬 더 좋아졌고

편곡은 살짝 가벼워진 것도 같다.

개인적으로 이상하게 자꾸 행진곡이 떠올라 몇 번 난감했다.

혹시 내가 초연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걸까?

자꾸만 정상윤과 전성우가 그리워진다.

(한스는 정말 정상윤이 딱인데!)

어딘지 뭔가 좀 부족하고 자꾸 덜커덕거리는 느낌!

그래도 아직 프리뷰니까...

기다려보면 훨씬 더 좋아지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래도 될만큼 충분히 좋은 작품이니까.

적어도 내겐!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2. 27. 08:07

<Trace U>

일시 : 201.02.05. ~ 2013.04.28.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대본, 가사 : 윤혜선

작곡 : 박정아

연출 : 김달중

음악감독 : 신경미

출연 : 최재웅, 이창용, 김대현 (이우빈) 

        이율, 윤소호, 손승원 (구본하)

 

작년 말 3주라는 긴 기간 동안 프리뷰 공연을 한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그 프리뷰 공연을 정말 무시무시하게 성공리에 마친 뮤지컬 <Trace U>

이 멋지고 괴물같은 2인극이 본공연으로 돌아왔다.

스탠딩의 압박은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결코 놓칠 수 없는 작품 <Trace U>

본경연을 앞두고 김달중 연출이 그랬다.

"프리뷰 공연때보다 더 친절해졌다고"

이게 무슨 뜻일까 궁금했는데 직접 관람하니 이해됐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프리뷰의 불친절한 전개가 훨씬 마음에 든다.

전체적으로 더 싸이코틱해서...

캐스팅 선택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다.

최재웅 이우빈과 윤소호 구본하!

띠동갑인 이 두 배우의 호흡은 정말이지 믿어지지 않을만큼 환상적이다.

프레스콜에서 윤소호가 그랬단다.

"최재웅 연기학원에 다니는 것 같았다고...."

확실히 윤소호 구본하는 프리뷰때보다 훨씬 더 자유로워지고 대담해지고 명확해졌다.

그리고 넘버 소화력도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최재웅 이우빈!

심리극의 대가답게 장면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터치하면서 드러나지 않게 주도해간다.

매번 감탄을 거듭하게 되지만 딕션은 정말 소름까칠만큼 좋다.

최재웅이 연기하는 걸 보고 있으면

대사톤이나 감정표현, 표정, 성량의 조절과 액팅 타이밍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걸 열심히 쫒아가다보면 어느틈에 "황홀"에 빠진다.

2인 심리극에서 최재웅만큼 명확하고 섬세한 느낌을 주는 배우는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누가 뭐래도 최재웅이 단연코 top이다!

 

해리성 인격 장애를 가진 이우빈과 구본하.

프리뷰때부터 누가 주인격인지 고민이 되긴 했는데

주인격이 구본하고 부인격이 이우빈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본공연을 보고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혼자 이 엄청난 반전에 뒷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극중 이우빈의 대사처럼 불feel요한 feel에 혼자 빠져있었던거다.)

김달중 연출의 "더 친절해졌다"는 표현이 이걸 뜻하는 거였나보다.

그런데 구본하가 주인격이라고 생각하는 관객 꽤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이해를 돕기 위해 더 친절해지진 않았으면 좋겠다.

관객들에게 끊임없는 혼란과 혼동을 주는 게 훨씬 <Trace U> 스러우니까!

무대나 영상은 개인적으로 필링때가 훨씬 좋았던 것 같다.

가령 시작부분은 사족같은 느낌이 들었고

무대위 두 배우를 되비추던 영상도 색감이 너무 화려해졌다.

반면에 우빈의 회상장면에서 빈객석에 홀로 앉아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여준 건 이번 공연이 더 좋았다.

그리고 밴드가 전면으로 나와준 것도 훨씬 좋았다.

구본하의 의상은 프리뷰 공연때보다 좋아졌다.

공연장 앞에 프리뷰 의상이 전시돼 있기도하지만

구본하의 의상은 너무 화려해서 살짝 밤무대 트롯가수스러웠다.

이우빈 의상은 프리뷰때가 조금 더 좋았던 것 같고...

 

<Trace U>의 넘버들!

이 징글징글하게 멋진 넘버들을 진정 어찌할까!

데스크에 OST 제작 계획을 물었더니 없단다.

(너무 명랑하게 "아직 없다"고 말해서 진짜 참담했다.)

특히 최재웅 이우빈의 넘버들은 압권이다.

곡마다 느낌이 전부 다르고,

그 변화되는 느낌을 따라가면 극의 흐름이 명확히 파악된다.

주인격이 이우빈이라는 것도..

이우빈의 미세한 표정과 그에게 향하는 조명의 명암을 유심히 보는 것도 극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꽤 도움이 된다.

어느 소년 이야기 -> 태양에 눈이 멀어서 ->그 여잔 널 버렸어 -> Trace U reprise

특히 이 네 곡은 이우빈의 표정과 눈빛을 놓치지 말고 봐야만 한다.

그리고 최재웅 이우빈이 표정과 얼굴빛을 싹 바꾸고 구본하를 향해

"나는 너야. 내가 너야, 바로 너!~~"라고 찌르듯 노래하는 장면,

정말 섬득함이 느껴질 정도다.

우빈이 약이름을 되뇌이며 하나씩 세차게 내던지는 모습는

정신착란적인 불안감과 떨림이 그대로 전달된다.

우빈이란 인물을 최재웅이 안 했다면?

글쎄... 아마도 나는 지금같은 강력함을 느끼지 못했을거다.

그만큼 최재웅의 존재감은 이 작품에선 가히 절대적이다!

처음 등장부터 마지막 커튼콜의 깨알같은 재미까지...

커튼콜에서는 까마득한 후배 윤소호를 향해 아빠미소를 지으며 얼마나 흐뭇해하던지.

(윤소호처럼 발전이 눈에 보이는 후배를 앞에 두면 선배로써 기쁘고 뿌듯하긴 하겠다.)

두 배우의 커튼콜 호흡은 본공연과는 또 다른 모습과 느낌으로 환상적이다.

신선하고 재미있고, 에너지 넘친다.

 

이 작품,

확실히 사람을 "또라이"로 만들어 버리는 강력함이 있다.

그것도 아주 과감히, 그리고 확실하게!

10여분 동안 이어지는 커튼콜 스탠딩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정말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중독성 강한 작품이다.

특히 최재웅 이우빈 때문에 더욱 더!

다음 시즌에도 최고령(?) 최재웅 우빈을 볼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면 한번쯤은 더 봐야 할 것도 같고.

물론 구본하는 윤소호!

최재웅과 윤소호 페어!

이 둘은 정말 최고라는 표현이 턱없이 부족할만큼 최고다!

이 작품도, 이 두 사람의 호흡도 정말 할 말을 잃게 한다.

정말 최고다!

 

* 나, 이 작품 정말이지 너무너무 사랑한다!

  진정으로 사람을 crazy하게 만드는 본좌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11. 23. 08:03

<Trace U>

일시 : 2.12.11.03. ~ 2012.11.25.

장소 : 대학로 컬쳐스페이스 엔유

대본, 가사 : 윤혜선

작곡 : 박정아

연출 : 김달중

음악감독 : 신경미

출연 : 최재웅, 이창용 (이우빈) / 이율, 윤소호 (구본하)

 

창작 뮤지컬 <Trace U>

이 녀석 정말 멋지고 대단하다.

그야말로 작은 거인이다!

도대체 이게 얼마만인가!

이렇게 폐부를 찌르고 심장을 강한 비트로 뒤흔드게 하는 작품을 만난 게!

사실은 좀 망설였었다.

락뮤지컬을 본다는 게 이제는 점점 버거워져서.(아! 스탠딩의 압박이라니~~)

그런데 이 작품은. 정말 정말 잘 컸음 좋겠다.

그래준다면 난 기꺼이 초로의 모습으로도 기꺼이 스탠딩의 압박을 감당하겠다.

 

작품을 보고 제일 먼저 한 일은,

"trace"라는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를 송두리째 찾아본거였다.

* Trace   -    1. (동물이 남긴 잇단) 발자국

                  2. (남겨진) 자취, 흔적, 형적

                  3. (경험, 경우 따위의) 영향, 결과, 지색, 증표

                  4. 아주 조금, 미량, 소량, 미미한 조짐, 기미

                  5. 선, 도형

                  6. (지진계, 카이모그래프 따위) 자동 기록 장치가 그리는 선

                  7. (기억의) 흔적

제목 참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

홍대 락클럽 "드바이"의 구본하(윤소호)와 이우빈(최재웅).

둘은 서로의 흔적이고, 서로의 자취고, 서로의 결과이고, 서로의 조짐이고, 서로의 발자국이다.

그리고 서로를 연결하는 선이다.

둘이면서 하나인 존재,

이런 관계는 너무 강력하고 위험해서 서로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엄청난 트라우마!

 

흔히 다중인격이라고 알고있는 해리성 정체성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자신의 고통스런 경험(trauma)을 잊기 위해 둘 또는 그 이상의 누군가를 만들어내

그 고통을 피하고 숨는 극단적인 정신의 이분화 도피방법.

그들은 완전히 다른 인격과 다른 성격을 보인다.

심지어는 목소리조차도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끊임없이 서로를 부정하며 충돌한다.

비록 평화로운 순간에조차도...

(나는 너야! 내가 너야! 바로 너!)

 

그저 신나고 즐거운 락뮤지컬일거라고 생각했다.

공개된 짧은 시놉시스상으로는 조금 뻔한 스토리겠구나 속단도 했다.

물론 이 작품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탁월하게 크리에이티브하다는 뜻은 아니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낯설지 않다는 느낌도 든다.

그건 아마도 <Thrill me>, <Stoy of the my life>, <Hedwig>, <Next to normal>의 영향이리라.

(작품을 만든 사람도 이 작품들에서 결코 자유롭지는 못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너무나 엄청난 뮤지컬 넘버와

모든 걸 그야말로 쏟아붓고 들이붓는 배우들의 투혼때문이기도 하다.

두 배우는 가히 전투적인인 열정을 보여준다.

치열하고 무차별적이었으며,

엄청나게 파괴적이었다.

배우 최재웅은 이런 류의 자기파괴적이고 사이코틱하고 편집증적인 작품에서는

가히 독보적이고 탁월한 존재감인 것 같다.

자신보다 12살이나 어린 윤소호와 함께 끝까지 너무나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

21살과 동급의 패기였고, 열정이었고, 끈질김이었고, 화려함이었다.

중반 이후부터 수시로 변하는 그의 눈빛을 대면하는 건 일종의 공포였다.

모든 게 일종의 예고된 충격이었다고나 할까?

작품의 처음과 마지막의 넘버 "Trace U"는

처음은 구본하가, 마지막은 이우빈이 부르는데 가사가 조금 다르다.

내용을 이해하고 들으니 이 노래가, 이런 구성이 문득 섬득하게 다가왔다.

뮤지컬 넘버들의 연결도 상당의 의미심장하고

노래가 시작되고 끝날때마다 베일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두 사람의 실체가 드러나는 모습도 상당히 감각적이고 흥미롭다.

모든 게 사라져도 난 너를 포기못해!

난 너를 찾을거야!

time to trace you!

 

 

어지러운 세상, 깊은 곳에 갇혀있는 나를 꺼내줘!

여기 내가 있어!

내가 원하는 건 자유!

띠동갑 최재웅과 윤소호 페어는

최재웅 이우빈의 완벽한 지배와 윤소호 구본하의 혼란, 분열이 부각된다.

뭐랄까, 종의 숨겨진 힘의 주종관계가 서서히 드러나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동갑내기 이창용, 이율 페어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좀 더 강하고, 좀 더 대립적이고 좀 더 불꽃 튀게 팽팽하지 않을까?

두 페어의 <trace U>도 기대된다.

(그러니 아마도 내 눈과 귀로 직접 확인하게 되지 않을까?)

 

* 11월 3일부터 25일까지 26회차 공연 전체를 프리뷰로 정한 이 작품은

   내년 2월 정규공연을 앞두고 있다.

   감각적인 무대와 조명, 카메라를 이용한 실시간 영상도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하다.

   이 느낌이 본공연때도 그대로 갔으면 참 좋겠다.

   무대 규모도 컬처스페이스 엔유 정도면 적절할 것 같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의 배우들이 본공연도 그대로 출연해야만 한다.

   (아마도 그럴테지만... 그래도 '설마'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음반도 나오면 정말 좋겠고. ^^

   노래! 완전 대박이다!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Tradce U> 

   단언컨데, 중독성 마니아들 꽤 많이 양산되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