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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9 달동네 책거리 64 : <인생 수업>
  2. 2009.03.01 달동네 책거리 32 : <쌍둥이별>
달동네 책거리2009. 9. 29. 05:52
 <인생 수업>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 데이비드 케슬러


인생 수업
 

 

우연히 병원 도서관에서 손에 잡았던 책입니다.

(내가 일하는 곳 도서관에서 이렇게 참 좋은 책들이 볼 수 있어 참 행복하고 다행입니다.)

먼저 작가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라고 하네요.

그녀는 192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세 쌍둥이 중 첫째로 태어났답니다.

어릴 때 이웃의 아저씨가 죽기 전 마을 사람들을 불러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자신 없이 농장을 꾸려 나가는 것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하는데 이 경험이 그녀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고 하네요.

정신의학을 공부하던 중에는 의료진들이 환자의 심박수, 심전도, 폐기능 등에만 관심을 가질 뿐 환자를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고 세미나를 여는 등, 세계 최초로 호스피스 운동을 의료계에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죽음의 여의사라 부른다. 30년 이상 죽음에 대한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나를 죽음의 전문가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내 연구의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핵심은 삶의 의미를 밝히는 일에 있었다."


그런 생각 해 보신 적 있으시죠?

내가 갑자기 죽는다면...... 그걸 어느 날 알게 된다면......

처음엔 “충격”적일 테고 그러다 “부정”하게 될 겁니다. 왜 나인가 하고 수없이 “분노”하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거래”를 하고 싶어질 겁니다.(어떤 의미에서든......)

그러다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될 테고 그러면 자신에 대한 깊은 “우울”의 단계에 빠지게 되겠죠. 그러다 아~~ 그래...... 하고 “수용”하게 되고...... 최후의 순간엔 오히려 편안해지거나 아님 그 반대로 발악의 끝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기에 당연히 죽음의 순간 또한 삶의 순간이라는 걸 자꾸 잊게 됩니다.

타인의 죽음은 죽음이고, 내 죽음은 죽음이 아닐 수 있다면...

그렇다면...

우린 이미 살아있는 사람이 아닐 거예요...


이 책, <인생 수업>

인생이라면 즐겁고, 활기차게 살라고 말해야 하는 건데, 이 책은 오히려 죽음에 대해,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인생을 배우라네요.

“당신은 왜 지금 그렇게 살고 계십니까?”

“왜 좀 더 열심히 살지 않습니까?”

“나처럼 돼야 당신들 정신 차리겠습니까?”

이 책은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수업... 혹 당혹스러울지도 모르겠네요.


죽음을 앞 둔 사람들은 말합니다.

삶은 기회이자, 아름다움이며, 놀이라고요. 그런 삶을 붙잡고, 감상하고, 누리라고 간절히 이야기 합니다.
또한 삶이라는 건 배워야 할 것들로 가득하고, 한 번의 삶으로 그것을 전부 배울 수는 없지만, 진정으로 살아 보기 전에는 절대로 죽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부조리하고, 하찮고, 무의미한 삶 속에서 즐겁지 않은데도 웃고, 마음이 맞닿지 않는데도 관계를 맺고, 절망적이지만 밥을 먹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것을 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4가지 L"을 우리에게 건넵니다.


살고(Live),

사랑하고(Love),

웃고(Laugh),

그리고 배우라(Learn) 고요...


누구나 죽음을 마주하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합니다.

이 배움은 삶을 더 의미 있게 해주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 배움을 얻기 위해 우리는 꼭 삶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할까요?

지금 이 순간 그 배움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없을까요?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배움.

그것은 두려움과 용서입니다.

사랑과 관계에 대한 배움입니다.

그리고 놀이와 행복에 대한 배움이구요...


저자는 말년에 이르러 온몸이 마비되어 휠체어에서 고통스런 시간들을 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마지막 순간에조차도 그녀가 간절히 원하는 일들을 했다고 하네요.

가슴 뛰는 삶을 위해서 여러분은 지금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섬뜩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 마라!”


정말이지,

열심히

살고, 사랑하고, 웃고, 배우고 싶습니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 않기 위해서요.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3. 1. 22:45
 <쌍둥이별> - 조디 피콜트


 쌍둥이별


자, 이제 상상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고 절실하게...

당신은 여자고, 엄마고 그리고 전직 변호사였습니다.

소방관인 남편과 개구쟁이 아들, 인형같은 딸을 가진 당신은 일보다 가정이 더 소중하기에 변호사를 미련 없이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어 있죠(그리고 그 결정에 결코 후회한 적 없이 살고 있습니다)

딸이 두 살이 되던 어느 날,

멍이 든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간 당신은 믿어지지 않는 말을 듣게 되죠.

당신의 사랑스런 딸이 전골수구백혈병이라는 희귀 혈액암에 걸렸다는 사실을요. 이제 막 두 살이 된 당신의 딸에게 지금 의사는 5년여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합니다.

자, 이제 당신은 무얼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야기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어쩌면 드라마에 이에 “또 백혈병” 타령이냐고 이마를 찌푸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책은 그렇게 말하기엔 너무 엄청난 사실을 품고 있습니다.

현재의 생명과학의 성과와 그 진실의 이면에 대한 고발이기도하죠.

과거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현재의 의료과학과 그리고 인간 생명 윤리에 대한 권리가 지금 저울의 양 끝에 서있습니다.

......유전자 조작에 의한 인간 복제......

엄마는 딸을 살리기 위해 전문의를 찾아가 완벽한 유전자 일치자가 될 배아(기증자)를 뽑아 임신을 합니다.

드디어 가족의 세 번째 아이가 태어나죠.

여자(엄마)는 스스로 고백합니다.

“내가 이 앨 계획한 건 이 아이의 언니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야”라고...

이제 이 목적에 합당한 딸, 안나의 삶이 시작됩니다.

태어나자마자 재대혈을 시작으로 언니 케이트가 재발했을 때, 다섯 살 어린 안나는 림프구를 세 번이나 뽑아 기증해야 했습니다. 림프구가 소용이 없어지면 이식을 위해 골수를 뽑아야 했고, 케이트가 감염이 됐을 땐 과립구를 기증해야 했으며, 또 다시 재발했을 땐 말초혈액 줄기세포를 기증해야 했습니다.

몇년간 호전의 기미도 보였지만 가족의 바람과는 달리 케이트의 몸 기관들이 하나하나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이제 13살이 된 안나는 언니에게 신장을 기증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안나는 말합니다.

“언니에게 기증할 때마다 난 아파도 참아야했어. 몸에 주사를 꽂은 채 골수가 뽑히는 걸 그저 바라만 봐야 했지. 멍이 들고 뼈가 욱신거려도 어쩔 수 없었어. 내 몸속 줄기세포를 더 많이 발화시키는 주사를 맞을 때도 입 다물고 있어야 했지...... 난 기니피그가 되는 게 지긋지긋해. 내 기분이 어떤지 아무도 묻지 않는 게 지긋지긋해...”

안나는 급기야 부모를 상대로 의료 해방 청구소송을 하게 됩니다. 자기 몸의 권리를 위해 부모를 고소하게 된거죠.

상대편 변호사는 엄마!...

........이쯤 되면 이 가족....

해체를 넘어서 파괴가 되어 간다고 생각되시겠죠!

하지만 만약 당신이라면,

이 상황 속의 엄마가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어요????


이야기는 한 단락씩 서로 다른 화자에 의해 서술되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 안나, 케이트, 제시(아들), 변호사, 법정후견인...

그래서 어쩌면 이 모든 사람들의 말에 다 공감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읽을수록 나도 모르게 화가 났습니다.

아무리 아픈 아이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해도 자신이 낳은 또 다른 아이에게(철저한 계획으로 만들어진 자식이라 해도) 무조건적이고 계속적인 희생을 요구해도 되는 걸까?

자식을 위한 최선이란 명목으로 부모가 하는 결정이 자식들 중 한 아이만 위한 일이라면 그게 정말 옳은 결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엄마에게 저 역시도 단단히 화가 났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돌덩이 밑에 깔린 희생자 안나가 너무 안타까워 가슴이 답답했던 건지도...

그러나 책을 읽어갈수록,

엄마를 더 이상 비난하지 못하게 되는 나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엄마의 선택과 결정이 옳지 않다고 말하기가 점점 힘겨워 집니다.

그리고 혼돈에 빠지게 되죠.

정말 뭐가 옳은 거고, 누가 정당한지가....


누군가는 고작 13살 아이가 어떻게 변호사를 만나 소송을 걸 수 있느냐며 아이에 대한 “조숙”에 대해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속의 안나라면 그럴 수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안나는 누구보다도 언니 케이트를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언니의 치료로 인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지 못하는 안나에게 언니는 가족이면서 동시에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안나가 어떻게 언니에게 “이제 그만 하겠다!!!”고 외칠 수 있었을까요?

여러 차례 주저하기도, 후회하기도 하면서도 안나는 결코 그 생각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고백하죠.

“내 속에는 언제나 언니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내가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자유롭기를 바라는 무서운 나도 있다. 나는 언니가 살아 있기를 원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언니에게서 헤어나기를 원한다. 언니는 어른이 되지 못한다 해도 나는 어른이 되어 살고 싶다”

그런 이유로 언니의 죽음은 안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이자, 또한 가장 좋은 일이 되기도 하죠.

이런 말을 듣는다면 이제 안나가 섬뜩하게 느껴질 차롄가요?

어린 13살 안나가 이런 말을 하면서까지 소송을 계속 이끌어 나가는 이유는 바로 다름 아닌 “언니” 케이트의 소망이 그 원동력입니다.

케이트는 안나에게 말합니다.

“더 이상 괴물로 살고 싶지 않아, 이제 그만 가고 싶어...”

그리고 점점 망가져 가는 신장으로 인해 중환자실에서 누워 있는 케이트를 몰래 찾아간 안나는 언니에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고맙다!”고...

(울컥, 안나와 케이트 때문에 마음이 아립니다...)


“쌍둥이별”

밤하늘을 보면 다른 별들보다 유독 더 밝아 보이는 별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 별들이 바로 쌍둥이별이라네요. 두 별은 서로의 궤도를 도는데, 때로는 한 바퀴를 도는 데 거의 백 년이 걸리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이 두 별은 엄청난 중력을 일으켜 다른 것들이 들어올 여지를 주지 않는다고 하네요.

마치 몸의 일부를 공유하는 샴쌍둥이처럼...

안나와 케이트.

누가 남아 세상을 살아가든 어쩐지 그 둘을 분리해 낸다는 건 이제 영원히 불가능할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남아 세상을 살게 될까요?


* 이 이야기도 역시나 지금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고 합니다.

<노트북>의 닉 카사베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주인공 엄마 역은 카메론 디아즈. 안나역엔 애비게일 브레슬린, 그리고 안나의 변호사론 알렉 볼드윈이 나온다고 하네요.

제목은 원작 그대로 <My sister's keeper>로, 6월 미국 개봉 예정작입니다.

아무래도 꼭 챙겨보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