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18. 05:31
터키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그랜드 바자르와 이집션 바자르를 들러본 후
이집션 바자르에서 가까운 자미 몇 군데를 보고
트램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서 그랜드 바자르까지 걷기로 했다.
가는 길에 국제공중전화 카드도 샀다.
그러나 몇 번의 도전 끝에 결국 give up을 선언했다.
(카드는 결국 그대로 한국까지 친히 따라왔다. 지금도 가끔 공중전화 카드 쳐다보면서 혼자 웃는다.)
터키 현지인들이 여러번 도와줬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매번 못 걸던지...
도저히 미안해서 나중에 하겠다고 하고 도망쳤다.
이렇게 심한 길치에 엄청난 기계치임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무사히 터키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음을 감사하면서...



술탄아흐멧에서 트램을 타고 이동한 곳은 이집션 바자르(Misir Carsi).
입구가 시장처럼 보이지 않아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뻔 했다.
열심히 헤매다 바로 앞에서 또 현지인에게 물어봤다.
정말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서...
그랜드 바자르보다 규모는 작지만 보다 서민적이이라 오히려 정겨운 느낌이다.
이집션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옛날 이집트에서 온 물품의 집산지가 이곳이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이곳은 과거에 실크로드를 따라 동방에서 온 향신료가 주로 거래된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그 역사가 고스란이 남겨져 여전히 향신료 시장이 유명하다.
그래서 스파이스 바자르(Spice Bazar)라고 불리기도.
예전에는 향신료만 전문적으로 파는 상점만도 무려 100여 개가 넘었다는데
지금은 몇몇 가게만이 명백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향신료 말고도 견과류, 씨앗, 꿀 등 주로 먹거리와 관련된 품목들이 많았다.
특히 이곳에서 파는 파스차티오는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단다.
향신료나 파스타치오를 못 사서 아쉬웠지만
기념품으로 선물할 악마의 눈 열쇠고리와 악세사리, 올리브 비누를 샀다.
그리고 애플티도!
가끔 여행사진 보면서 애플티 마시면 정말 당장이라고 날아가고 싶을 만큼 그립다.



구시가지에 위치한 터키 최대의 재래시장인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r)!
1461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에 의해 조성됐다니 그 역사만도 엄청나다..
(술탄 메흐메트 2세란 인물, 터키 이곳 저곳에 참 많은 역사와 건물들를 남긴것 같다.)
터키어로는 '카팔르 차르쉬(Kapali Carsi)'로 '지붕이 있는 시장'이란 뜻이란다.
이곳은 유럽과 아시아의 온갖 물산이 넘나들던 교역의 메카였다.
이곳을 통해 유럽의 부가 아시아에 전해졌고
실크로드를 따라온 아시아의 물품 역시 그랜드 바자르를 통해 유럽으로 흘러들어갔다.
지금까지 12번의 지진과 9번의 화재를 겪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더 큰 규모로 복구돼서 지금과 같은 어마어마한 도시같은 시장이 됐다.
남쪽은 베야즛, 서쪽은 이스탄불 대학교, 동쪽은 술탄아흐메트와 접해 있는데
한 번 들어가면 같은 출입구로 나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출입구만도 20개가 넘는단다.
그래서 일단 기준이 되는 통로를 정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이동하는게 그나마 덜 헤맨다고...
확실히 이집션 바자르보다 물량도 엄청났고, 품목도 엄청났고, 사람도 엄청나서 조금 몽롱했다.
미로같은 길을 걷는 것도 보통이 아니고...
귀금속부터 카펫, 가죽, 도자기, 옷감, 골동품 상점,
그리고 매나아샾같은 장난감 자동차 가계까지.
이곳을 제대로 보려면 하루 온종일이 걸려도 모자라겠다 싶다. 
그래도 역시 시장은 시장이다!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두 분이 장기(?) 같은 걸 두시는 모습은 우리네 풍경이랑 똑같다.
(두 분은 물담배 내기를 하셨을까? 아니면 차이 한 잔? ^^)
그렇게 서로 비슷하게 통하고 연결되는 게 사람 사는 모습인지도 모르겟다.
먹고 사는 생존의 분주함과 노력이
문득 거룩하고 신성한 종교처럼 다가온다.
아! 밥벌이의 위대함이여!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11. 06:32
오늘은 시간 여행이다!
개인적으로 박물관이나 옛 궁궐터를 오래 걸어다니며 보는 걸 정말 무지 좋아한다.
아마도 그게 "길"의 연장선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길을 뚜벅뚜벅 내 두발로 걸으면서 넘나든다는 건,
늘 생각하는거지만 참 뭉클한 축복이고 행복이다.
(그래서 꿈꾸는 여행 중의 하나가 "유럽 박물관 투어"다.)
더더군다가 이스탄불이 너무 이쁜 건,
술탄 아흐멧에서 한 정거장만 걸어가면
(트램따라 걸어가는 이 길도 참 이쁘고 재미있다)
고고학 박물관과 고대 동방 박물관, 도자기 박물관 세 곳을 한꺼번에 볼 수가 있다.
요금은 통합 입장료로 10TL.
일단 들어가면 모두 한 곳에 모여있어 티켓을 다시 보여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고고학 박물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곳.
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 석관이 있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그런데 알려진 것과 달리
이 석관의 주인이 알렉산더가 아니라는 설도 있다.
BC 333년 알렉산더가 이수스에서 페르시아를 물리친 뒤 이브달로니모스를 왕으로 만들어줬는데
이 석관이 바로 그 사람의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브달로니모스는 알렉산더의 후견으로 왕이 된 사람이라
자신의 관에도 평생의 은인인 알렉산더의 모습을 새겨넣은 것이라고.
(어느게 진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암튼 분홍빛을 띠는 대리석은 무지 아름답고 조각들의 정교함에 내 손이 다 떨릴 정도다.
조명과 명암, 채도의 배려가 눈에 띈다.
어두운데도 유난스럽지 않게 돋보이는 석관은
조각의 작은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보여지도록 전시되어있다.
우리나라 박물관에서 반사광때문에 가오리눈이 된 적이 많아서
이런 배려를 보니 참 민망하게 감동적이기까지했다.



이곳은 유난히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들이 많다.
처음엔 신기해하면서 이곳저곳 매혹되서 들여다 봤는데
또 나 혼자라 등골이 서늘해져 버렸다.
급기야는 대리석상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오는 듯한 어처구니 없는 착각까지도...
이 현실적인 비현실감이란!
(어이없겠지만 경험할 당시엔 무지 섬득하더라)



고대 동방 박물관!
고고학 박물관 바로 앞에 있는 건물로
터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각지에서 출토된 고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벽화들과 청동상, 스핑크스와 미라를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
무덤에서 출토된 것들이 대부분인듯.
역시나 좀 무섭긴 했지만 귀염성있는 청동상들이 가끔씩 나타나줘서 다행스러웠다.
아주 오래된 유물인데도 조각의 표정이 다양해서 보면서 많이 놀랐다.
아무래도 고대 사람들이 지금 우리보다 표정이 훨씬 더 풍부하고 밝았던 것 같다.



왼쪽편이 위치한 도자기 박물관은 처음에 입구를 못 찾아 혼자 헤매고 있었다.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손가락으로 바로 옆을 가르킨다.
길치는 또 민망한 표정으로 "thank you!'를 연발할 수밖에...
(하필 그렇게 찾던 입구가 바로 앞에 있을걸 뭔지. 에효~~)
이곳엔 12~20세기까지 셀주크, 오스만 제국의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 16세기 이즈니크 도자기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전시품이라는데
가사 및 살림에 문외한인 나는 거의 눈뜬 장님 수준이다.
그래도 이쁜 그릇(이게 딱 내 수준이다)을 봐서 나쁘진 않았다.
이 그릇들에 밥 먹으면 정말 맛있겠다는 무지 원초적인 생각도 잠깐! ^^
전시실이라는 느낌보다는 집을 개조한 것처럼 느껴졌는데
(문턱이랑 창문의 위치도 그렇고...)
술탄의 별관으로 쓰였던 곳이란다.
1472년에 건립됐다는데 그렇다면 보존을 상당히 잘 한 것 같다.

시간을 들여서 보자면 아마 한나절로도 모자라겠지만
여행자의 눈은 가능하면 많은 것을 담고 싶은 욕심이라
고작 반나절로 이 멋진 시간 여행을 마무리했다.
나중에 이스탄불에 다시 가게되면
이번에는 꼭 해지는 오후에 이곳을 찾아보리라!
지는 해를 받은 대리석들이 어떤 빛을 띄는지 꼭 보고 싶어서...
차가운 돌의 따뜻한 끌림.
그걸 다른 시간의 품에서 꼭 한 번 확인하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