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0. 12. 6. 06:26
시인 박노해.
<노동의 새벽> 얼굴없는 시인,
그가 <참된 시작> 이후 12년 만에 시집을 출판했다.
1985년 결성된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 중앙위원 활동,
1989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 결성 주도.
1991년 3월 체포되어 24일간의 불법고문 끝에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수괴’ 죄목으로 사형 구형,
그 후 무기징역형으로 감형.
1998년 8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되었다.
그 후에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국가 보상금을 거부했다.
지금은 반전평화운동도 하고 있고
"생명, 평화, 나눔"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단체 "나눔문화(nanum.com)"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20대들은 그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노동 해방'을 운운하면서 그의 이름을 말하는 건,
기행에 가까운 행동이 되어버렸다.
박.기.평.
그는 희망이었다가 전설이었다가 이제는 무엇이 되었는가!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그의 시들...
아름답고, 가혹하고, 적나라하고, 통쾌하고
그리고 정확하고 분명해서...
읽는 내내 가슴 한 켠이 뭉클뭉클 떨어져나갔다.



한계선

옳은 일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더는 나아갈 수 없다 돌아서고 싶을 때
고개 들어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라

여기서 돌아서면
앞으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너는 도망치게 되리라

여기까지가 내 한계라고
스스로 그어버린 그 한계선이 평생 너의 한계가 되고 말리라

옳은 일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그만 금을 긋고 돌아서고 싶을 때
묵묵히 황무지를 갈아가는 일소처럼

꾸역꾸역 너의 지경(地境)을 넓혀가라


들어라 스무 살에

반항아가 살지 않는 가슴은
젊음이 아니다

탐험가가 살지 않는 가슴은
젊음이 아니다

시인이 살지 않는 가슴은
젊음이 아니다

너는 지금 인류가 부러워하는
스무 살 청춘이다

스무 살 폐부 속에 투지도 없다면
스무 술 심장 속에 정의도 없다면
스무 살 눈동자에 분노도 없다며
알아채라, 네 젊음은 이미지나가 버렸음을

들어라 스무 살에

혁명가가 살지 않는 가슴은
젊음이 아니다


거대한 착각

나만은 다르다

이번은 다르다

우리는 다르다


후지면 지는 거다

불의와 싸울 때는 용감하게 싸워라

적을 타도할 수 없다면
적을 낙후시켜라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크기로 이기는 거다
미래의 빛으로 이기는 거다

인간은, 후지면 지는 거다

웃는 나의 적들아
너는 한참 후졌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세계 속에는 어둠이 이해할 수 없는
빛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거대한 악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야만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정신이
패배와 절망이 이해할 수 없는 희망이
깜박이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고 있다면
저들은 총제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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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여 편의 시들이 어찌 그리 다 진심이던지...
"넌 나처럼 살지 마라" 말하는 부모를 앞에 둔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과
거대기업을 삼성을 향해 
스스로 착해지지 말고
네 주둥이를 묶은 안전망과 목줄로만 착해지란 외침이
지금까지도 부끄러워 참을 수 없다.
최선이 타락하면 죄악이 되고
멈출 때를 모르는 성장은 죽음이란다.
참된 성장은 그래서 성숙이라고...
그러니 정직하게 흔들리고 깨끗하게 상처받으라고 박노해가 말한다.
책을 열심히 보느라 독서할 시간이 없고,
말을 많이 하느라 대화할 시간이 없고
머리를 많이 쓰느라 생각할 틈이 없고
인터넷과 트위터 하느라 소통할 시간이 없는 우리에게
그가 말한다.
참담했다. 눈 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그 참담함 속에서도 나는 조금 안도하고 안심했다.
참담한 자신의 모습 앞에 눈앞이 캄캄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려 무릎을 꿇어보지 않은 자는
무릎 꿇는 힘으로 다시 일어서 전진할 수 없다고 그가 위로하며
초라한 어깨를 다독였다.
어쩌면 나는 이 참담함을 이겨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대여!
우리도 아직은 사라지지 말자.
작은 불빛 아직 깜박이고 있으니
우리는 아직!
나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0. 1. 06:42
 The Winner Stands Alone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의 2권짜리 신작이다.
(예전에 나는 그가 동성애자 아니 적어도 양성애자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자의 심리를 무섭도록 정확히 쓸 수는 도저히 없을거라고... ^^)
사랑하는 여자를 되찾기 위해 세계를 하나씩 파괴함으로써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남자.
남자는 슈퍼클래스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어느날 떠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또 다른 슈퍼클레스 디자이너에게로...
남자는 결심한다.
그녀가 내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그녀가 돌아오게 하기 위해 어떤 위험도 무릎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녀게 깨달을 때까지 누군가의 세계를 하나씩 파괴하겠다고.
그가 선택한 장소는
칸영화제가 열리는 현장
남자는 생각한다.
"우리가 함께 하는 순간을 파괴하는 자는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당신 없이 난 존재하지 않아..."



처음엔 코엘료의 글쓰기가 달라진 줄 알았다.
그런데 다 읽고 난 지금의 느낌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의 전작 <오 자히르>과 <베로니카 죽기를 결심했다>를 떠오르게 한다.
대단히 흥미롭고 재미있다.
탐정소설, 연예소설인 동시에 아주 심미주의적인 소설
단 하루 동안의 사람들의 온갖 심리와
껍질 속에 들어 있는 본성을 읽어낼 수 있는....
"역시 코엘료 스럽다"



이 소설은 그의 작품으로는 최초로 네이버에 91일간 전면 연재됐었다.
2009년 4월 13일부터 7월 12일까지...
어쩐지 그와 인터넷 연재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
그는 말하기도 했다.
"인터넷 덕분에 우리는 서로에게 가 닿는다"고...



영화, 패션, 배우, 모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갖게 되는 wanner-be
그 실랄한 비판과 내면의 거짓을 순간순간 파헤치기도 한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나니..."
결국 모든 건
한 여름 밤의 꿈.




슈퍼클래스
"세상을 지배하는 소수의 사람들!"
힘은 그들이 가지고 있고
그리고 그 힘은 결코 그 누구와도 협상하지 않는다
.
사실은 세상이 공포스러운 건 바로 이 사실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에 의해서 조정되는 세상...

코엘료의 메시지는 언제나 극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모호하다.
그게 바로 코엘료다.




일과 건강, 그리고 기거할 집과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수백만 정직한 사람들의 삶을 망치는 자들이다.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고, 부족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슈퍼클래스의 유령은 화려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권력이라는 불가능한 꿈들을 팔기 위해 찾아온다. 그렇게 가정은 붕괴된다.

아버지는 며칠 밤을 새가며 연장근무를 해야 한다. 아들에게 최신 모델의 운동화를 사주기 위해 그게 없으면 아들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말없이 흐느낀다. 친구들은 모두 고급 브랜드의 옷을 입는데 자기만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십대 자녀들은 신앙과 희망의 진정한 가치를 배우려 하지 않고 연예인이 되기를 꿈꾼다. 시골마을 소녀들은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려 하지 않고 대도시로 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선망하는 그 보석을 손에 놓을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뭐든 해보리라 결심하면서, 정의를 향해 나아가야 할 세계가, 육 개월 후면 다른 것으로 대체될 아무 쓸모없는 물건들 주위를 돌고 있다. 이 따위 한심한 서커스 덕분에 지금 칸에 모여 있는 이 경멸스러운 무리가 세상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슈퍼클래스.
그들은 모두 교양인이고부자고 너무나도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하루를 마감할 때가 되면 그들은 모두 자문한다.
'이제는 멈춰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 모두 이렇게 대답한다.
'그러면 내 인생은 의미를 잃고 말 거야.'
 


권력의 길이란 돌어설 수 없는 길이었다. 그는 자신이 내린 선택의 영원한 노예로 남게 될 테고, 만일 모든 것을 내던지겠노라는 그 꿈을 정말로 실현하게 된다면 깊은 우울에 빠지게 될 터였다.

어떤 정신병자 하나가 무고한 사람들을 칼로 찔러 죽이고 다니면 온 세상이 두려움에 휩싸이죠. 하지만 칸을 지배하고 있는 이 지적 폭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요. 지금 저들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자들이 우리의 영화제를 죽이고 있어요. 저들이 하는 일이 뭔지 압니까? 저들은 최고의 영화를 뽑는 게 아니라, 반인류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거란 말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원치도 않는 작품들을 사게 만들고, 패션을 예술 위에 두게 만들고, 시사회는 내팽개치고 런치파티, 디너파티에나 돌아다니게 만들고 있어요. 이건 정말이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그래, 세계를 파괴한다는 게 무슨 뜻이오?

한 생명을 파괴하는 거지. 그 순간 온 우주가 사라지는 거야. 그 사람이보고 느낀 모든 것, 그가 인생길을 걸으며 만났던 좋고 나쁜 모든 것, 그의 꿈들, 희망들, 패배들과 승리들, 이 모든 것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거지

 

워커홀릭은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전이나 문제해결에 골몰해 있지 않으면 깊은 우울증에 빠질 위험이 있다, 우리는 이 장애의 원인이 무엇인지 잘 몰라요. 단지 유년기에 겪는 불안전서에 대한 공표, 그리고 현실을 거부하고자 하는 욕구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죠. 이것은 마약만큼이나 심각한 의존증입니다. 하지만 마약은 생산성을 감소시키는데 반해, 워커홀릭은 나라의 부에 크게 기여하고 있지요. 그래서 이걸 국이 치료하려고 애쓰지 않는 거지요. 가장 심각한 결과는 가정생활에 끼치는 해악이죠.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8. 10. 06:06
이상하지?
개인적으로 참 맘에 들지 않은 작가 중 한 사람인 공지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책들은 모두 읽게 된다.
(참 모순인긴 한데....)
그녀의 글이 싫은 건,
문제의식은 있지만 어쩐지 깊이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단점 때문.
약간 무책임한 까발림성 폭로문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그녀가 인터넷 포탈 싸이트 다음에 연재했던 소설을
책으로 출판했다.
그리고 무서운 속도로
소설 <도가니>는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그리고 이야기의 내용은 펄펄 끓으며 모든 것을 녹여내는
도가니보다 더 처절하고 비참하다.



이 시대를 나처럼 살아가고 있는 염연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그리고 어쩌면 너무나 당연히 무시되고
한쪽으로 치워지는 장애우들.
소리치지 못하는 청각과 입을 가진 어린 생명
그들에게 향하는 온갖 추잡한 행위들, 시선들, 폭언들...
마치 내가 그들을 더럽힌 그 손의 주인인 것 같아
죄스럽고 부끄러웠다.

공지영...
그녀가 나를 더 처절하고 부끄럽게 만들어줬다면
그랬다면 오히려 내가  덜 죄스러웠을텐데...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무겁다.
그리고
그 한장의 무게가 너무 힘겹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