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10. 9. 7. 08:11

<다섯째 아이> -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
먼저 "도리스 레싱"이라는 작가를 살짝 소개해드릴까요?
도리스 레싱은 1919년 10월 22일 생으로 아직까지 생존하고 있는 최고의 여류작가랍니다.
2007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죠. <황금노트북>이라는 무지 방대한 분량의 책으로 수상는데(무지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3권의 분량을 다 읽어내기가 무지 어려운 책입니다....다 읽고 나면... 뭔가 해냈다는 대견한 생각을 스스로 하게 만드는 책이예요.^^) 그것도 역대 수상자 중 최고령이라는 이력까지 남겼죠.
전 그녀가 꼭 여자 마르케스 같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마르케스의 책들도 한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네요.)
영국 여왕이 그녀에게 기사 작위까지 내렸는데(여자 기사라... 흔치 않죠~~~) 그녀가 거절했다고 하네요.
도리스 레싱은 현대의 사상, 제도, 관습 등 이념 속에 담긴 편견과 위선을 냉철한 비판정신과 지적인 문체로 그야말로 속속들이 파헤쳐 문명의 부조리를 고발하는사회성 짙은 작품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20세기에 영어로 소설을 쓰도록 선택받은 몇 안 되는 가장 흥미진진한 지성인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는 현대 영국 문학계의 가장 중심에 있는 작가가 바로 그녀죠...(역시나 대가중의 대가인 분)

이 책 <다섯째 아이>는 꿈꾸던 현실이 공포가 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벌어지는 일은 어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더 무섭고 두려운 이야깁니다. 막연한 공포가 현실이 될 때, 과연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두 남녀 헤리엇과 데이비드가 있었습니다. 둘은 결혼을 해서 둘의 능력으론 좀 버거운 커다란 집을 삽니다. 여덟 명의 아이를 낳기로 했고,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 여기며 감사했습니다. 시외의 커다란 정원이 있는 집과 네 명의 아이들 그리고 연휴면 찾아오는 많은 친척들... 헤리엇과 데이비드는 행복했습니다. 다섯째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다섯째 아이가 어머니의 자궁이 좁은 듯 자꾸만 밖으로 나가려 하고 헤리엇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약으로 진정시키며 태아와의 정말 처절한 사투를 벌입니다.
헤리엇은 자신의 적을 10개월 후 드디어 눈으로 확인하게 되죠. 밖으로 나온 아이는 우량하다기 보다는 이미 커서 나온 듯 이상한 아이였죠.
아이는 세상으로 나온 후에도 전쟁을 멈추지 않습니다.
친척들의 애완동물을 죽이고 사람의 감정을 느끼지 않는 듯한 웃음에 괴성까지 지릅니다.  연휴면 찾아오던 친척들도 드디어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하고 나머지 아이들도 동생을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다섯째 아이 벤을 감당할 수 없게 된 헤리엇과 데이비드.
벤을 요양원으로 보낸 후 잠시 가족에게도 행복(?)이라고 믿고 싶은 시간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헤리엇의 알 수 없는 모성애는 벤을 다시 집으로 데려오고 되죠.(요양원에서의 벤의 현실이라는 게.... 참 참혹합니다......하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학교를 다니는 벤은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리게 되고 나머지 아이들은 이제 뿔뿔히 가족을 떠나 친척들에게 가게 되고 헤리엇과 데이비드가 꿈꾸던 그런 가족은 형체를 잃고 부서져  버립니다
중학생이 된 벤은 불량학생의 우두머리가 되고 헤리엇은 그토록 꿈꾸던 가족을 잃고 그들의 행복에 대한 고민하며 끝이 아닌 끝을 맺습니다.

벤이 태어났을 때 엄마 헤리엇은 말합니다.
'이 아이는 도깨비나 거인 괴물 같아요'........
이제 이 이야기가 왜 공포가 되는지 이해되시겠죠?
이미 태어나면서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어버린 아기라니....결국 가족은 외부의 요인이 아닌, 내부 구성원에 의해서 붕괴되고 맙니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 간의 허술한 연대도 드러나게 되죠.
정말 인간의 최대 가치를 붕괴하는 게 바로 인간이듯 가족을 파괴하는 것도 그 가족 구성원의 마음, 거기서부터 시작이 되는 건 아닌지...

사실 누구의 가족도 결코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가족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있지요.(그 문제의 핵심이 나일수도 있고....)
해리엇과 데이비드이 처음에 가졌던 이상적인 가족관이 꼭 나쁘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들은 그들이 꾸려나갈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는 없죠.가장 작은 사회로 불리는 가정이라는 집단.
혈연이라는 특수적인 집단의 구성원을 통해 결국 커다란 사회가 태어납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각기 다른 사람들.
노력하는 이해관계로 맺어지지 않는다면 방관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게 어쩌면 너무 당연한 세상이 아닐까요?
생각해봅니다.
혹 나는 지금 여기 이 자리의 다섯째 아이가 아닌지.....

이 책은 가족을, 가정을 그리고 사회까지도 생각하게 만드는 뭐라고 할까 점점 생각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점층법적인 느낌의 이야기라고 생각되네요.
그리고 더불어 태교라는 중요성도 다시 느끼게 하는 이야기구요.
요즘 뉴스를 보면 정치를 한다면서 서로 몸싸움과 삿대질하기에 바쁜 우리 높으신 양반들이 제겐 아무래도 다섯째 아이들의 집합체인것 같아 씁쓸합니다.
정말 도깨비나 거인 괴물처럼 느껴지네요....
이드은 또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이 거대한 괴물 아이,
다섯째 아이는...
부모에 의해 만들어진걸까요?
아니면 스스로 만든걸까요?
......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8. 25. 05:46


제 목 : 경남 창녕군 길곡면
일 시 : 2010.0730. ~ 2010.09.19
출 연 : 이주원(종철 역), 김선영(선미 역)
장 소 :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극 본 : 프란츠 크시버 크뢰츠
번안, 연출 : 류주연

<연극열전3rd>의 여덟 번째 작품이다.
몇 달 전에 유주연 연출의 <기묘여행>을 인상깊게 보기도 해서 연극열전에서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 공연된다고 했을 때 놓치지 말고 찾아봐야지 생각했었다.
게다가 서울 문화의 밤 행사에 이 연극이 포함되어 있어서
8월 21일 총 2회 공연은 만원이라는 정말 파격적인(?) 가격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솔직히 이게 왠 횡재냐 싶었다.

 
이 연극은 독일작품이다.
프란츠 크시버 크뢰츠라는 사람의 극본으로 도시 하층민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작품이다.
독일 원제는 "오버외스터라이히" 라는데 독일에 실제 있는 작은 도시 이름이란다.
우리나라에선 연출 류주연이 직접 번안을 하면서 제목을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라고 정했다.
(실제로 경남에 창녕군 길곡면이라는 곳이 있긴 하다)
2007년 초연됐고 거의 매년 재공연된 작품이다.
꼭 제목처럼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 아니라도 대한민국 어디든 다 상관이 없다.
아웅다웅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괜찮다.
어차피 인간이 사는 곳은 어디든 다 마찬가지니까.


                          김선영(선미)                                         이주원(종철)       

초연때부터 함께 부부로 출연한 김선영, 이주원은
실제 부부가 아느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완벽한 호흡을 자랑한다.
(그런데 부부라고 해도 정말 믿겠다)
원작자는 각 나라에서 이 연극을 공연할 때는 꼭 사투리로 공연해달라는 조건을 붙였단다.
도시 하층민의 삶을 그린 이야기에 표준말을 또박또박 쓰는 것도 좀 우습긴 하겠지만
사투리가 아니라면 연극의 재미가 아무래도 줄어들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약간은 수다스럽고 구시렁구시렁 거리는 경상도 사투리를 선택했는데
김선영, 이주원 두 배우 모두 고향이 경상도라 사투리의 묘미가 한층 자연스럽고 재미있다.
실제로 이 연극에서 구시렁거리는 부분이 많이 나오는데
100% 전부 두 배우의 애드립이란다.
두 사람도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할지 전혀 모른다고...
그리고 선미 역의 김선영은 실제로 임신중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기에 대한 사랑과 보호본능이 극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역시 엄마는 늘 언제나 강하다.
(그런데 왜 아빠들은 겁쟁이가 많은건지...) 

 


결혼 3년차!
여유돈이라고는 통장에 들어있는 120 만원이 전부이고
두 사람의 한 달 수입은 대략 300만원 정도. (아내는 그나마  비정규직이다)
그래도 알콩달콩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살아가던 두 부부에게 변화가 닥친다.
계획하지 않았던 임신.
아내는 생명을 지키고 싶어하지만
남편은 아내에게 낙태를 하자며 설득 아닌 설득을 한다.
소위 돈 없으면 애 낳기도 힘든 세상에 남편은 덜컥 겁이 나버린거다.
남편은 말한다.
"아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아빠냐가 중요하다" 고...
왜 끊임없이 나쁜 것만 찾으려고 하느냐는 아내의 질문에
남편은 "그게 현실이다!" 며 무시할 수 없는 한 마디를 내뱉는다.
남편의 말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보는 입장에서도 솔직히 할 말은 없다.
이 말이 사실이긴 하니까...
김용택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자녀에 관한 문제라고...
맞는 말이다.
연극 속에서 남편 역시나 그 현실이 덜컥덜컥 겁이 날 수밖에 없었을거다.



급기야 아내와 남편은 한 달 지출을 조목조목 종이에 적어가며 계산기를 두드린다.
집세, 자동차, 대출금, 보험금에 심지어 부모님 용돈, 화장품, 미장원비, 술, 담배, 우유 값까지 끄집어내 계산한다.
(이 부분이 이 연극에서 가장 롱테크로 진행된다. 유치하지만 그야말로 사생결단으로 점점 치열해지는 장면 ^^)
월 300만원 수입에 지출은 2,955,000 원.
아내가 직장을 그만 두는 전제하에 한 달 수입을 200만원으로 잡고
(그러기 위해선 남편은 야간 운전까지 해야한다)
이제는 줄일 수 있는 목록들을 하나하나 삭제하기 시작한다.
차를 팔고, 술 담배를 끊고, 물만 마시고,
화장품은 립스틱만 바르고 머리를 기르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거의 모든 것을 안 하기로 작정했는데도 나온 금액은 1,934,000 원.
눈 앞에 남은 건 잔액 66,000 원의 현실이다.
(보는 나까지도 어쩔 수 없이 씁쓸해진다)


결론은,
어쨌든 아기를 낳기로 하니까 등장조차 하지 않는 아기 입장에서는 더없는 헤피엔딩이다.
하지만 엔딩에서 남편이 연주하는 루이 암스트롱의 어설픈 섹소폰 연주처럼 과연 부부의 현실도 누부신 "What a wonderful world" 가 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심스럽다.

유쾌하고 즐겁게 보고 나오긴 했지만
정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현실에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다.
아이 없이 두 사람만 행복하고 즐겁게 살겠다는 딩크족이 아니라면 결혼한 부부는 자녀를 낳아 함께 키우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걸 우리는 일반적으로 "평범"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점점 우리가 알고 있는 이 평범이라는 기준이 점점 평범 이하로 자리이동이 되고 있으니 부모 입장이라면 퍽퍽한 세상살이가 될 수밖에 없다.
아이의 세상을 wonderful world로 만들어주기 위해 부모는 소위 삑사리 가득한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는 장 담그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라
내 항아리에서 자생으로 생기는 구더기는 그런데로  봐줄 수 있어서 기껏 장을 담궜는데
멀쩡한 내 장에다가 누가 자꾸 구더기를 넣으려고 하는 사회에 있다.
그래서 연극의 말미에 나온 "절망에서 살인! 이라는 신문기사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재미있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너무 좋았고.
연출과 무대도 너무 좋아서 전체적으로도 상당히 좋았던 작품임에는 분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나와서는 너무 많이 참담해지는 연극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연극을 보면서 단지 코메디라고만 여길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그 참담함이 배가 된다.
에이! 그만 생각하자!
열심히 연습하면 삑사리 없는 "What a wonderful world"를 연주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 살자... 살자... 살자...
치열하게 살든, 연습하듯 살든, wonderful 하게 살든. 삑사리가 작렬하게 살든,
어쨌든 살기나 하자!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