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9. 26. 08:11

<아버지> 

일시 : 2012.09.07. ~ 2012.09.30.

장소 :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

원작 : 아서 밀러 <세일즈멘의 죽음>

연출 : 김명곤

제작 : (주)아리인터웍스

출연 : 이순재, 전무송 (아버지) / 장은풍, 판유걸 (아들)

        차유경, 전선아, 문영수, 고동업, 계미경,

        우지순, 권재진, 설현석

 

2005년 남산예술극장에서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이 공연됐었다.

그 당시 영화감독으로 한창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장진이 연출로 나섰었고, 배우진도 화려했다.

전무송, 전양자, 박상원, 민성현이 아버지, 어머니, 두 아들로 출연했었다.

개인적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겨져 있는 작품이다.

특히 전무송, 전양자의 두 사람의 연기는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한국적(?)으로 각색한 연극 <아버지>

지난 4월에 대학로에서 공연됐던 작품이 이번에 재공연됐다.

얼마전 드라마 "각시탈"에도 모습을 비췄던 배우 김명곤이 재공연에서도 연출을 맡았다.

대한민국에서 아버지로 산다는 것!

연극은 지난하고 피로한 이 땅의 아버지라는 삶을 짙은 비극으로 그려낸다.

 

“너희 아버진 돈도 많이 벌지 못했고, 신문에 이름이 난 적도 없지만 훌륭한 가장이다.

 평생토록 방방곡곡 다니면서 회사 물건을 팔아줬는데 이제는 나이 먹었다고 폐물 취급을 한단다.

 너희 아버진 폭풍 속에서 항구를 찾고 있는 조각배 같은 분이셔.”

 

극 중 어머니의 대사가 가슴을 친다.

이 땅은...

청년도, 아비도, 그리고 여자도(심지어 아직 어린 아이들조차도) 모두 살기 힘든 땅이 돼버렸다.

뼈아프게 슬프다.

해체되고 부서지는 이 땅의 모든 것들이.

 

대배우 이순재의 연기는...

감히 뭐라고 운을 때지 못할만큼 엄청난 존개감이었다.

1935년생, 77세라는 연세가 도저히 믿기지 않을만큼 어마어마했다.

열정적이었고 동작과 대사 하나하나가 꼼꼼했다.

마이크를 쓰지 않는 연극무대에 자신의 소리를 끝자리 관객에게까지 전달시켜야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만 생각해서 모든 대사를 버럭버럭 큰소리 치며 할 수는 없지 않는가)

간혹 묻혀버리는 대사들도 있긴 했지만

연세와 공연장 환경을 생각하면 크게 문제될 정도는 아니다.

단지 보면서 좀 이물감이 느꼈던건,

다른 배우들과의 발란스면에서 연세가 너무 많지 않았나싶다.

(아들이 아니라 마치 손주 같아서...)

출연한 배우들 전부 다 연기를 잘했지만 특히 아들 동욱역의 장은풍의 연기는 돋보였다.

너에겐 배짱이 있어서 무슨 일을 하던 다 잘할거라며 비행기를 태우던 아버지.

그러나 그런 아들은 자신의 인생이 시간당 4천 5백원짜리 싸구려 불량품이라며

자신이 이렇게 된 건 순전히 아버지때문이라고 소리친다.

우연히 목격한 아버지의 불륜 현장.

세상에서 가장 위대했던 아버지는 이제 아들에게서 남아있지 않다.

한 순간에 무너져버리고 끝장나버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아들의 오열은...

비참했다.

그런 아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아버지.

2억 3천의 보상금이 아들에게, 

남겨진 가족들에게 과연 새 삶을 선사할 수 있을까?

 

연극 속에서 아버지가 죽은 형에게 읽어주는 마종기의 시는...

이 작품 전체를, 이 사회 전체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씁쓸하고 참담한 시다.

이 시대의 모든 며루치떼들의 비명이 귓속에서 펄떡댄다.

생으로 잡혀 온몸을 비틀며 꾸덕꾸덕 말려지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가 눈물겹다.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 마종기

 

(아내는 맛있게 끓는 국물에서 며루치를

하나씩 집어내 버렸다. 국물을 다 낸 며루치는

버려야지요. 불썽도 없고 맛도 없으니까요.)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뜨겁게 끓던 그 어려운 시대에도

며루치는 곳곳에서 온몸을 던졌다.

 

(며루치는 비명을 쳤겠지. 뜨겁다고,

숨차다고, 아프다고, 어둡다고.)

 

떼거리로 잡혀 생으로 말려서 온몸이 여위고

비틀어진 며루채때의 비명을 들으면.

 

시원하고 맛있는 국물을 마시면서

이제는 쓸려나간 며루치를 기억하자.

 

(남해의 연한 물살, 싱싱하게 헤엄치던

은빛 비늘의 젊은 며루채떼를생각하자.

드디어 그 긴 겨울도 지나고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5. 22. 17:33


정말이지 이 작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놓치고 내내 아쉬워하기에는 공연 기간조차도 너무 짧다.
단 4일 동안 고작 다섯번 공연되는 작품.
진심으로 궁금했다.
단 다섯번의 공연을 위해 이 모든 대사들을 외우는 배우들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게다가 그들이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연기 9단의 내공을 가진 이 어마어마한 배우들이라면...
이호재, 전무송, 윤소정.
1969년생 이명호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연극 배우인데
이 세 명의 대가들 앞에선 어쩐지 그조차도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하단 생각까지 든다.

연극 <응시> 
놀랍게도 초연되는 작품이란다.

"지원의 얼굴"로 알려진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삶이 모티브가 된 작품.
일본에서의 성공적인 미래를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생활고와 소외감에 시달리다
결국 51세의 나이로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조각가 권진규.
그의 테라코타 휴상들는 고요하면서 동시에 극도의 공포심이 느껴질 정도로 섬득하다.
잘 썩지 않는다는 불멸의 테라코타.
차마 마주하고 오래 서있기가 힘든 그의 흉상들.
외면하려 애를 쓰지만
마지막 순간에 최면에 걸리듯 몸 전체를 돌려 다시 한 번 더 적나라하게 대면하게 만들어
결국은 각인하게 만드는 깊고도 무서운 흡인력(吸引力).
몰입과 집중은 그래서 "공포"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길게 늘어진 차가운 쇠사슬, 마치 피가 밴듯한 흉물스러운 붉은 벽돌가마.
생살이 찢겨 뼈가 드러난 것 같은 철조 구조물.
그리고 버려지듯 나뒹그러진 볼품없는 의자.
무대를 마주하고 앉기가 어쩐지 나는 덜컥 두렵고 무서워졌었다.
그 무대를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게 버거웠다. 
어쩌자고 시작부터...



준태(이호재)의 아내 역으로 함께 무대에 오른 윤소정은 말했다.
"이호재씨는 쉽게 말해 힘이 좋고 외적인 표현에 강합니다. 전무송씨는 내적인 연기에 잘 어울리지요"
그래서 연극판에서는 이런 말도 있단다.
"전무송의 긴장, 이호재의 이완"
뭐랄까?
이 작품에서는 두 사람이 긴장과 이완을 교차시키면서 수시로 감정을 교환한다.
두 인물 모두에게서 어쩐지 귀기(鬼氣)가 느껴져 섬득했다.
어릴적 친구 형우(전무송)의 소개로
고향집에 집을 마련하게 된 준태(이호재).
그러나 이사 첫날부터 준태는 이상한 음성과 말울음소리, 글자들의 환영을 보게 된다.


절지(折枝)하여도 포절(抱節)하리라.    
(가지가 잘려져도 품어 지키리라)
포절(抱節)하다가 고사(枯死)하리라.    
(지키다가 차라리 말라 죽으리라)

기억이 한 사람을 근원의 생으로 부른다.
유년의 기억이, 첫사랑의 기억이, 그리고 모성의 기억이 그렇게 한 사람의 일생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다.
암시였을까?
도입부분 준태는 작업실에 홀로 서서 말한다.

"시간은 여기 그대로 있고,
  나는 마침내 올 곳을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빈 집을 가득 채운 부스러진 시간의 조각들.
준태에게 남은 건 이젠 대면의 시간이다.

" 넌 왜 그렇게 너 자신을 짖누르니?
  와서 하고 싶은데로 해!
  어디에도 매이지 마!
  그래 그래, 우린 같이 가야해!"


권진규는 준태의 삶 속으로 어느새 투영된다.
또 다시 시작되는 답습(踏襲)이었을까?
아니면 윤회(輪廻)?
그러나 삶의 봉인이 뜯기면 누구도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
내 것이었던 삶은 철저히 나를 배반하고
나는 그저 하나의 현상이 되버린다.
어디로 가야하나?
중산층을 꿈꾸던 소망은 생의 한귀퉁이로 매몰차게 내동댕이쳐졌다.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본 사람은
그래서 뒷걸음을 치게 되는 건지도...

형우는 준태를 기어이 데려가고 싶었던 걸까?
어쩐지 나는 준태의 회귀(回歸)가 철저히 자발적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준태는 스스로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귀신에 홀렸든, 노구의 심장이 진실을 견뎌내지 못했든 간에 말이다.

나는 여기 있습니다.
안락했지만 허전했던 나날들.
가만히 눈을 감고 바라보면,
잠시 숨을 멈추고 참을성있게 지켜보면 
모든 것이 다 저 뒤의 뒷쪽까지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을 젊어서는 왜 몰랐을까요?
결국 버려도 버려지지 않고,
가져도 가져지지 않는 것들이었는데..
바람이 부네요. 
내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에 내가 처음 생겨나고 멸했던,
또 생겨나고 멸했던 거기로....

                     <자소상 1969~1970>                                   <지원의 얼굴 1967>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11. 13. 05:54

연극 <프루프>

장 소 : 대학로예술마당 3관
기 간 : 10월 12일(화)~12월 12일(일)
극 본 : 데이비드 어번

연 출 : 이유리
출 연 : 로버트 - 남명렬, 정원종, 
         캐서린 - 윤지, 강혜정 
         클레어 - 하다솜, 김태인
         해롤드 - 김동현



나무 액터스와 악어 컴퍼니의 야심작(?)
"무대가 좋다"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자
타블로와 결혼 후 아기를 낳고 한동안 쉬고 있던 강혜정의 복귀작 연극 <프루프>
그러나 난 이윤지 캐서린을 선택했다.
2 년 전에 김지호와 남명렬이 부녀로 나왔던 <프루프>를 보면서 그 느낌이 얼마나 좋았던지...
그때 이 작품을 보면서 김지호가 나이가 좀 더 어렸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김지호 자체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연기를 잘했었고 집중력도 놀라웠었다.
단지 그녀가 25살로 나오는 게 나홀로 어색했었는데...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윤지의 캐서린을 선택한 건.
그리고 왠지 그녀는 똑 부러지고 야무지게 연기를 할 것 같았다.
아버지 로버트역은 전혀 망설임이 없이 배우 남명렬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무대 위에서 존재감 있다는 표현,
배우 남명렬만큼 적절하게 들어맞는 경우가 또 있을까?
그의 딕션과 톤은 가히 환상적이다.
연극을 보는 내내 나는 로버트가 내 아버지가 아니라는사실에 불같이 질투가 났다.
(이게 말이 되느냐 말이다)



천재 수학자 로버트는 20대에 이미 학계가 깜짝 놀랄 수학적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 천재성이 오히려 그에게 견디기 힘든 독이었을까?
말년은 정신분열 증세와 불안장애로 혼란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캐서린의 보호를 받으며...
아버지의 수학적인 천재성을 물려받은 캐서린은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학업도 포기한다.
...... 캐서린은 분명 내 삶을 구원해주었다. 
       그 아이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결코 그 아이에게 보답하지 못할 것이다 ......

캐서린의 21살 생일에 쓴 로버트가 일기.
문득 두 부녀의 관계에 또 다시 질투가 난다.
로버트에게 딸 캐서린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연극은 우리에게 무엇을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우울증마저도 너무나 수학적인 딸 캐서린,
아버지 로버트는 혼자 남겨진 그 딸에게 환영으로라도 나타나
새 삶을 시작할 힘을 남겨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겟다.
네 삶에 새로운 삼페인을 스스로 떠뜨리라고...
스스로를 죽은 사람임을 인정하면서 퇴장하는 아버지의 탈육체화된 모습을 보면서
난 그 어떤 실체보다 더 현실적으로 만져지는 로버트의 존재감를 느꼈다.
마지막 유산, 혹은 찬란한 유산이라는 식상한 표현이라도 꼭 해야할 것 같다.
부재가 분명한 한 사람이 버젓이 현실로 변하는 그 시점.
아버지는 딸에게 모든 걸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늘 모녀관계에만 익숙했는데 무대에서 만나는 부녀관계는 참 뜨겁고 사랑스럽고
그리고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부녀의 사랑은 할과 캐서린의 사랑마저도 유치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캐서린과 클레어의 관계까지도.
캐서린은 정말 그랬을까?
아버지의 천재성이 가장 번득이던 20대 중반,
지금 그 나이를 지나야 하는 자신에게도 혹시 아버지의 정신병이 유전되는게 아닐까 불안했을끼?
작품 속에서는 그런 뉘앙스가 아주 많이 풍기지만
난 결코 아니라도 말하련다.
딸이자 보호자이자 협력자이자 간병인이었던 캐서린.
그 부녀의 관계는 무엇으로도 증명될 수 없고
그 누구라도 감히 끼어들 여지가 없다.
연극은 마치 그것을 증명하는 어렵고 난해한 공식 같다.


연극 <프루프>는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천재수학자 존 내쉬와 그의 가상 딸을 소재로 쓰여진 작품이다.
2001년 드라마부문 퓰리처상과 토니어워즈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데이비드 어번의 극본은 아름답고 치밀하다.
아쉬움이 있다면 부녀를 제외한 다른 두 사람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는 점이다.
언니 클레어 역의 하다솜은 너무 신경질적이여서 오히려 정신과적인 진료를 받을 사람은 캐서린이 아니라 바로 그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2년 전 봤던 클레어는 이지적으로 도시적인 느낌이 강했었는데...
초반에 캐서린과 머리 영양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마치 미장원 종업원이 손님에게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강매하는 느낌까지 들더라.
그리고 그 옆에서 손톱 손질하면서 함께 수다떨기에 딱 제격이었던 캐릭터 할까지!
목소리와 외모에서 지석진을 떠올리게 했던 김동현 할은,
아무리봐도 수학자같은 이미지는 아니여서 보는 내내 당혹스럽웠다.


클레어와 할 덕분에
순간순간 이 연극이 이렇게 수다스러운 작품이었나 생각했다.
(놀랍도록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윤지 캐서린은...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앗다.
목소리 톤이 급작스럽게 변한다거나 과장되게 표현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첫 연극 무대라는 걸 감안한다면 앞으로의 모습도 기대가 된다.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끌고 나가야 하는 캐서린.
그 역할을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끊임없이 감정의 변화를 조율하는 일도 쉽지 않았으리라.
스스로도 어느정도 대견해하고 있지 않을까?
젊은 배우들의 연극 무대 도전!
지금까지 "무대가 좋다" 시리즈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았던 작품이다.



"다 됐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야!'
연극 속에서 논문 초고를 들고 찾아온 할에게 로버트가 던진 말이다.
모든 증명의 완성은 항상 이런 반추가 아닐까?
살면서 우리가 증명해야 하는 모든 것들에게 마지막으로 던지는 화두!
그게 사랑이든, 학문이든, 집착이든, 두려움이든. 정신병이든,
다 됐다고 생각하는,
가장 위험한 그 때를 지나오는 증명만이
오직 위대하고 완벽한 증명이 될 수 있듯이...

한 편의 연극을 보고...
어쩌자고 또 다시 이렇게  멀리 와버렸는지...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10. 21. 05:52


일 시 : 2010.10.07 ~ 2010.10.24.
장 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원 작 : 정유정
극 본 : 고연욱
연 출 : 김광보
출 연 : 김영민, 이승주, 이남희, 윤영걸, 손진환, 이용근, 
         문욱일, 박노식, 강   일, 윤다경, 정승길, 권택기, 
         백지원, 최현숙, 김송일, 김순애, 최하영

제 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었던 정유정의 소설 <내 심장을 쏴라>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인데 연극으로 만든다는 소리를 들어 기대하고 있었다.
내년 개봉 예정으로 영화로도 만들고 있다는데...
특별한 느낌을 갖게 했던 건 공연하는 장소 때문이기도 하다.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드라마센터에서 다른과랑 연합으로 철학 수업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졸업하고 거의 10년이 지난 후에 드라마센터를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연극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전무송, 전양자, 박상원이 출연했던 <세일즈맨의 죽음>이었다..
그때도 학교는 이미 용인으로 이전했지만 드라마센터 여전한 모습이라 놀랐었다.
그런데 이번에 찾은 드라마센터도 여전히 똑같더라.
로비는 리모델링을 해서 깔끔해보이긴 했는데
극장 내부는 의자가 교체된 것 말고는 별로 바뀐 게 없다.
특히나 로비에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쌀쌀한 날씨에 밖에서 기다리느라 많이 추웠다.
연극도 기대됐지만 오랫만에 모교를 찾은 마음에 구석구석 돌아다녀봤다.
참 많이 변했다.
창작 수업을 듣기 위해 숱하게 오르락 내리락 하던 계단들과
축제때마다 각과의 천막으로 안 그래도 좁았던 뒷뜰(?)이 빽빽해졌던 모습.
또 거기서 전을 부치고 골뱅이를 무치돈 어설픈 모습들이 떠올라 웃었다.
(그때 나 하트 모양 전 부쳐서 팔았는데...)
매점이 있던 자리는 황량해졌고...
하긴 내 추억과 기억도 황량해지긴 했다.
뭐 벌써 20여 년이 다 되가고 있으니...



연극은 출연 배우만으로도 탐이 났다.
무대는 정신병원인 수리 희망 병원 502호
오랫만에 무대에서 보는 김영민이 주인공 이수명으로
신인 이승주가 또 다른 주인공 류승민으로 나온다.
거기다 연극 이(爾)의 연산군 이남희가 최간호사로
"향숙이 이뻤다"라는 대사 하나로 존재감을 드러낸 배우 박노식,
개인적으로는 연극 <짬뽕> 이후에 정말 오랫만에 본 윤영걸,
그리고 손진환, 이용근까지...
어디서 이런 배우들을 다 모았나 싶게 출연진이 좋다.
아마도 김광보 연출의 힘이 컸으리라.
그의 섬세한 연출은 연극계에 이미 정평이 나있다.
거기다가 최상의 콤비라고 불리는 고연욱 극본과의 세 번째 작품.
김광보의 연출은 항상 그렇듯 나쁘지 않다.
애매한 극장때문에 공간을 이용하는데 한계가 있었다는 게 솔직히 치명적이다..
그걸 스크린으로 어찌어찌 대처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조잡한 스크린 때문에 오히려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자주 고민하게 한다.
비전문가적인 소견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벽 전체를 스크린처럼 이용하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다.
페러그라이딩 장면은 극에서 아주 상징적이고 의미있는 부분인데
스크린에 무더기로 날아가다 점점히 사라지는 모습은 너무 작위적이라 보기가 불편했다.
그래도 스크린이 요트 장면에 비하면 이건 양반이다.
솔직히 이 장면은 대략 난감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열악한 무대 상황을 감안한다면 나쁘지 않았다.
이 연극.
참 극과 극의 평가가 엇갈리는 작품이겠다 싶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극 자체가 산만해서 이해하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남희가 연기한 최간호사의 어투가 거슬렸을지도.
그런데 나는 최간호사 캐릭터가 너무 맘에 들었고 극에 딱 맞는 어투였다고 생각한다.
사무적이고 변화가 전혀 없는, 시종일관 같은 톤을 유지하는 대사들,
어떻게 보면 첫무대를 선 초보 배우같은 어투기도 하다.
그런데 극의 중간 중간 이 어투들이 아주 살짝 무너질 때가 있다.
대비되는 그 순간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배우 이남희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정말 너무 심하다 싶게 어려 보이는 배우 김영민.
불혹의 나이에 외형적으로 25살의 공황장애 역할이 이렇게 잘 어울리다니...
본인도 이런 얼굴이 한방에 간다고 걱정하던데
나도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도대체 배우 김영민이 언제쯤에 나이가 들어보일지가...
<추적>에 이어 두번재 연극 무대였던 탈렌트 이승주의 연기도 놀라웠다.
기라성같은 연극 배우들 앞에서 제 몫을 너무 잘해내더라.
자칫하면 코믹하고 우습게 보일 것 같은 엔딩의 패러그라이딩 장면도
본인이 워낙 진지하게 연기해서인지 몰라도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딕션과 톤이 좋다.
드라마로 돌아간다면 두 편의 연극이 확실히 그에게 좋은 자산이 되주겠다 싶다.


전부 21명의 배우들이 출연한다.
이 중에 제대로 된 대사조차 없는 배우들이 상당수다.
대사없이도 2시간 동안 계속 정신병자 연기를 해야했던 배우들.
아름답다는 생각을 할만큼 그 모습 자체가 감동적이었다.
연극은 기대했던 것 만큼 잘 나오진 않았다.
결말은 다소 신파적이이고 매우 교훈적(?)이다.
절규하듯 소리지르는 수명의 대사!
"날 쓰러뜨리고 싶다면 내 심장을 쏴라. 그렇지 않으면 난 절대로 안 죽어!"
그래도 이 소설 자체를 연극으로 만든 것 자체가는 정말 장하다.
영화는 모르겠지만 연극적으로 풀어내기가 참 난해했을텐데...
아마도 연출의 힘, 배우의 힘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만약 이 연극에 김영민이나 이남희가 출연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객석이 휑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왠지 씁쓸하다.
아무래도 내게도 "트위스트 어게인"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심장이 뛰는 소리!
나도 정말이지 미치게 듣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