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8. 12. 13. 08:24

 

<랭보>

 

시 : 2018.10.13. ~ 2019.01.13.

장소 : 대학로 TOM1관

작가 : 윤희경

작곡 : 민찬홍

음악감독 : 신은경

연출 : 성종완

출연 : 박영수, 정동화, 손승원, 윤소호 (랭보) / 에녹, 김종구, 정상윤 (베를렌느) / 이용규, 정휘, 강은일 (들라에)

제작 : 라이브(주), (주)데블케이필름앤씨어터

 

아르튀르 랭보(1854~1891).

여덞 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서 스무 살에 절필한 천재 시인.

예전에 대학때 어떤 선배에게 생일 선물로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받았었다.

(예전에는 그랬다. 생일에 시집을 선물하고 그랬다.)

어린 마음에 제목이 주는 압박감이 커서 쉽게 들춰보지 못했었다.

비관주의와 종말론의 끝판을 볼 것 같아서...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제목과는 반대로 아름다운 시와 글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가 뮤지컬로 만들어진다고 해서.

그렇다면 그의 동성연인이었던 폴 베를렌느(1844~1896) 이야기도 빠질 수 없을거고

그의 시들이 어떻게 작품 속에 표현되고 스며들지 궁금했다.

(특히 "모음들"이란 시가 나올지 궁금했는데... 세상에나... 나온다.)

랭보는 시인은 "견자(見者)"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뮤지컬 속에선 "견자(見者)"가 "투시자(透視者)"로 표현된다) 

시인이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게 아니라

왜곡된 시선으로 투시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마약과 술을 비롯해서 온갖 방탕한 생활을 겪어야만 한다고...

스무살에 절필한 시인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상당히 파격적이긴 하다.

랭보는 두 권의 책을 썼는데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랭보가 고작 19살에 쓴 책이다.

그 당시 500부를 찍었다는데 대금 미지급으로 인쇄업자가 보관하고 있다가

랭보가 37에 생을 마감하고 2년 뒤 뒤늦게 빛을 보게 된다.

동성연인 베를렌느와 헤어지고 절필을 한 랭보는

(베를렌느는 정말 랭보를 죽이려고 총을 겨눴을까?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네덜란드 식민지 부대에 용병으로 있다 탈영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무기 장사와 이것 저것 잡다한 무역상을 하기도 했고

막판엔 골수암에 거려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기까지 한다.

(다리를 절단한 진짜 이유가 "매독"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그 당시 많이 그랬으니까...)

시, 산문, 그리고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던 랭보는

확실히 불운한 천재이자 광기의 시인이긴 하다.

어느 시대에 태어났든 순탄하지 못했을 인생이다.

그냥... 다 아프고 가련하다.

랭보도, 베를렌느도.

 

작품은...

기대 이상으로 잘 만들어졌다.

무대를 세 부분으로 나눠 시간, 공간의 구분을 자연스럽게 이끈 것도 아주 좋았고

천천히 바뀌는 무대 조명은 빛도, 색감도 그대로 한 편의 시(詩)였다.

랭보와 베를렌느 두 사람의 시도 이야기 속에 잘 녹아들었고

해설자이자 keyman인 들라에의 존재도 과하지 않고 좋았다.

(개인적으로 해설자가 너무 많이 개입하는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뮤지컬 넘버들이 너무 좋다.

따로 OST도 발매한다는데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이 있는 넘버들이다.

세 배우의 연기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대사톤이 끝장이었다.

그냥 정상윤이 베를렌느인 것 같고, 윤소호가 랭보인 것 같았다.

감정적으로 울컥한 부분들이 많아서 개인적으론 좀 아팠다.

그냥... 뭐 여러가지 것들이 겹쳐져서...

 

랭보가 그랬다.

La vie est aileurs... 라고.

인생은, 여기에 없다.

(어쩌면 정말 그런지도...)

 

* 덕분에 오랫만에 랭보의 시들을 펼쳤다.

  더불어 베를렌느의 시들도.

 

<모음들>  - 랭보

 

검은 A, 흰 E, 붉은 I, 초록 U, 푸른 O, 모음들

내 며칠 너희들의 숨은 탄생을 말하리라.

아(A), 지독한 악취 주변을 윙윙대며

번쩍이는 파리 떼들 뒤덮인 검은 코르셋

 

어둠의 만(灣)으(E), 증기와 장막의 순진함,

그이의 얼음 창(槍), 하얀 왕들, 산형화(散形花)의 소름,

이(I), 자주빛, 각혈,

분노 혹은 참회의 취기속 그 아름다운 입가 웃음.

 

위(U), 순환, 초록빛 바다의 신성한 동요,

짐승들 뿌려진 방목장의 평화,

근면한 이마에 새겨진 연금술

 

오(O), 이상하게 째지는 지상 최고의 나팔,

지상과 천상을 꿰뚫는 고요,

오(O), 오메가, 그 눈의 보랏빛 광선!

 

<감각(Sensation)> - 랭보

 

여름날 푸른 석양녁에 나는 오솔길을 걸어가리라

밀이삭에 찔리며 여린 풀 밟으며,

꿈꾸듯 내딛는 발걸음. 나는 산뜻한 풀잎들을 발에 느끼며,

들바람이 나의 맨머리를 씻게 하리라.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리,

그러나, 맘 속에 솟아오르는 끝없는 사랑

나는 가리라, 멀리 더 멀리 마치 보헤미안처럼

자연 속을 여인과 함께, 행복에 젖어.

 

<가장 높은 탑의 노래> - 랭보

 

오라, 오라,

도취할 시간이여.

 

얼마나 참았든가!

내 언제까지나 잊었네

공포와 고통도 하늘 높이 떠나갔고

불쾌한 갈증이

내 혈관을 어둡게 하네.

 

오라, 오라,

도취할 시간이여.

 

잊게 되어있고,

더러운 파리떼

기운차게 윙윙거리는데

향과 가라지를

키우고 꽃피우는 들판처럼

 

오라, 오라,

도취할 시간이여.

 

<나의 방랑> - 랭보

 

속이 터진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나는 떠났다.

나의 외투는 더할 나위 없이 닳아빠져 어쩜 그렇게도 어울리는지!

창궁 아래를 걸어가네. 뮤즈여, 나는 그대의 충복.

오! 라, 라, 내가 꿈꾸었던 것은 눈부신 사랑이었노라.

 

한 벌 밖에 없는 나의 반바지는 커다란 구명이 나고

어린 몽상가인 나는 길을 따라가며 시를 뿌렸다.

나의 여인숙은 큰곰자리,

하늘의 내 별들은 다정하고 부드럽게 살랑거렸다.

 

나는 길가에 앉아 별들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 상쾌한 구월의 저녁, 포도주같은

밤이슬 한방울이 이마 위로 떨어진다.

 

환상적인 그림자들의 한가운데서 운을 맞추듯

나는 가슴 가까이에 한쪽 발을 치켜들고

내 닳은 구두의 구두끈을

마치 칠현금을 타듯이 잡아당겼다.

 

<초록> - 베를렌느

 

열매, 꽃 잎, 가지들이 여기 있고.

그리고 오로지 당신만을 향해 고동치는 내 마음이 여기 있고

그대 하얀 두 손으로 찢지는 말아주오.

다만 이 순간 그대 아름다운 두 눈에 부드럽게 담아주오

 

새벽바람 얼굴에 맞으며 달려오느라

온몸이 얼어붙은 이슬방울 채 가시지 않았으니

그대 발치에 지친 몸 누이고

소중한 휴식의 순간에 잠기도록 허락해 주오.

 

그대의 여린 가슴 위에 둥글리도록 해주오.

지난번 입맞춤에 아직도 얼얼한 내 얼굴을,

그리고 이 선한 격정이 가라앉게 그대 달래주오.

그대의 휴식 속에 가만히 잠들 수 있도록.

 

<애수> - 베를렌느

 

장미꽃은 새빨갰었다.

담장의 잎은 시커맸었다.

그리운 이여, 그대가 꼼짝만 하면

나의 절망이 모두 되살아난다.

하늘은 너무나도 푸르고 너무나도 부드럽고

바다는 너무나도 초록이고 공기는 너무나도 달콤하였다.

나는 언제나 두려워한다. 이것이 기다림이라는 것이다.

당신이 무참하게 나를 버리지나 않을까 하고.

옻칠을 한 듯한 호랑가시나무 잎에도

번들거리는 회양목 나무에도

끝없는 광야에도

당신 이외의 모든 것에 나는 진력이 났다

 

<감상적인 산책> - 베를렌느

 

석양이 그 최후의 광선을 내리쬐고 있었다.

그리고 바람은 창백한 수련들을 보듬고 있었다.

커다란 수련들은, 갈대 사이에서

조용한 물위에 슬프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홀로, 내 고통을 산책시키면서

연못을 따라 버드나무 사이를 거닐고 있었다.

그곳에는 희미한 안개가

날개치며 서로 부르는 상오리의 목소리와 함께

울고 절망하는 커다란 유령을 부르고 있었고,

내 고통을 산책시키면서

나는 홀로 버드나무 사이를 걷고 있었다

이윽고 암흑의 짙은 수의가

오더니 익사시켰다

창백한 물결 속에 석양의 마지막 광선을

그리고 갈대 사이의 수련들을,

조용한 물 위의 커다란 수련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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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8. 10. 12. 08:26

 

<1446>

 

일시 : 2018.10.05.~ 2018.12.02.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극본 : 김선미

작곡, 연출 : 김은영

작곡, 음악감독 : 김세용

출연 : 정상윤, 박유덕 (세종) / 남경주, 고영빈 (태종) / 박소현김보경 (소현왕후)

        박한근, 이준현, 김경수 (전해운) / 최성욱, 박정원, 황민수 (양녕대군&장영실) / 김주왕, 이지석 (운검) 외

제작 : HJ컬쳐

 

나는...

아무래도 애국자는 아닌 것 같다.

정말 많이 기대했던 작품인데 보고 난 느낌은 어딘지 헛헛하다.

"1446"이라고 해서 한글 반포 혹은 창제에 포커스가 맞춰졌을거라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뭐랄까, 이씨 왕조의 가정사라고나 할까?

서울예술단의 <뿌리깊은 나무>와 비교하자면

내 취향엔 뿌나가 훨씬 더 좋다.

작품 보다는 무대가,

무대 보다는 의상이,

의상 보다는 배우의 연기가 눈에 더 들어왔다.

단, 소현왕후 김보경은 재앙이었다.

아무래도 김보경의 레전드는 "미스 사이공"이 유일한 모양이다.

(연기도, 노래도 점점 이상해서...)

넘버들도 강강강강의 연속이라 부담스러웠다.

제일 인상 깊었던 배우는 태종 고영빈,

그 다음은 김경수와 정상윤.

제목은 분명 "1446"인데 주인공이 김경수 같기도 하고...

이 작품,

포커스가 참 난해하다.

뮤지컬 보다는 퍼레이드의 느낌.

그야말로 TMI (Too Much Information)

혹시... 내가 피로해서였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8. 9. 5. 08:41

 

<살리에르>

 

일시 : 2018.08.25.~ 2018.09.02.

장소 :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극본 : 정민아

작곡, 음악감독 : 이진욱

연출 : 김규종

출연 : 정상윤, 박유덕 (살리에르) / 강찬, 황민수 (모차르트) / 박정원 (젤라스)

제작 : HJ컬쳐

 

HJ컬쳐 낭독뮤지컬 세번째 작품 <살리에르>는

2014년 초연때 정상윤, 박유덕, 김찬호 캐스팅으로 봤었다.

스토리보다는, 배우들 연기가,

배우들 연기 보다는 음악이 더 인상 깊었던 작품.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애증의 관계는

이제 고전 아닌 고전이 되버렸고,

연극, 뮤지컬로도 정말 많이 나왔다.

모차르트가 주인공이기도 하고, 살리에르가 주인공이기도 하고.

초연때 한 번 보고 2016년 재연때 안 볼 걸로 봐서는 내 취향은 아니었나보다.

사실 이번에도 정상윤만 아니었다면 그냥 넘겼을 작품이다.

 

독특한건 이번 낭독뮤지컬은

모차르트가 살리에르의 일기를 읽는 형태로 진행된다.

<살리에르>가 제목이지만 모차르트를 전면에 내세웠다는게

초연과는 확실히 차별성이 있더라.

(내 기억에 초연에는 살리에르가 해설자의 역할까지 했던 것 같은데...)

모차르트역의 황민수는 무대에서 처음 봤는데 나쁘지 않았다.

젤라스역의 박정원은

조형균이나 김찬호만큼의 야뉴스적인 느낌은 없었지만

요근래 내가 본 박정원 작품 중에서는 제일 좋았다.

그리고 정상윤.

이 배우는 어쩌자고 매번 진심인지...

악연인듯 아악 아닌 악역 같은 배역에도 연민과 공감을 느끼게 해서

엉성한 지휘조차도 절로 용서가 된다.

무대 위에서의 정상윤의 진심은

향후의 <1449>와 <랭보>까지도 기대하게 만든다.

커튼콜과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정상윤이 보여준 눈빛과 표정.

그게 참 안 잊혀진다.

모차르트의 비극 속에,

살리에르 역시도 비극적인 삶이었다는게...

성큼 다가왔다.

살리에르도... 죽을만큼 힘들었겠다.

토닥토닥.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8. 7. 20. 08:18

 

<붉은 정원>

 

일시 : 2018.06.29.~ 2018.07.29.

장소 : CJ 아지트 대학로

원작 : 이반 투르게너프 <첫사랑>

작, 작사 : 정은비

작곡 : 김드리

음악감독 : 이진욱

연출 : 성재준

출연 : 정상윤, 에녹 (빅토르) / 이정화, 김금나 (지나) / 박정원, 송유택 (이반)

제작 : CJ 문화재단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줄거리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고 대략 짐작도 된다.

러시아 작가 특유의 방대하고 서사적인 구성이.

일단 제목을 <첫사랑>이 아닌 <붉은 정원>이라는 정한건 훌륭하다.

제목만으로도

비밀, 뜨거움, 사랑, 순수, 파괴... 이 모든게 다 느껴진다.

가슴이 막 설래고 그래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건 먹을만큼 먹은 내 나이 탓 ^^

 

각설하고,

이 작품은

이정화의, 이정화에 의한, 이정화를 위한 작품이다.

리딩공연부터 참여했다는데

작품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느껴진다.

스토리는 아침드라마 단골 소재지만

넘버와 연주가 아름다워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이반 역이 조금 더 어린 배우였으면 좋았겠다는 개인적인 바람 ^^

 

아름답고 위험한 사랑.

전부이지만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사랑.

이루어지지 않는대도 기억 속에서 수없이 피고 또 피는 사랑.

먹먹해서 덤덤해진 사랑.

채워진 적도 비워진 적도 없는 사랑.

사랑이지만 사랑이 아닌 사랑.

첫사랑.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7. 8. 10. 17:25

 

<나폴레옹>

일시 : 2017.07.13. ~ 2017.10.22.

장소 : 샤롯데 씨어터

극작, 작곡, 작사 : 티모시 윌리엄스(Timothy Wiliams) & 앤드류 새비스톤(Andrew Sabiston)

각색 : 오리라 / 가사 : 채한울

한국연출 : 김장섭 

편곡, 음악감독 : 김성수

출연 : 임태경, 마이클리, 한지상 (나폴레옹) / 정선아, 박혜나, 홍서영 (조세핀) / 김수용, 정상윤, 강홍석 (탈레랑)

        김법래, 박송권, 조휘 (바리스) / 백형훈, 진태화, 이창섭, 정대현 (뤼시앙) / 김주왕, 박유겸, 기세중 (앤톤)

        황만익, 이상화 (가라우) / 임춘길 (푸셰), 김장섭 (헨리), 김사라, 방글아 외

제작 : (주)쇼미디어그룹, (주)롯데엔터테인먼트, (주)이에스에이

 

2년 여 동안 뮤지컬 무대에 서지 않았던 임태경이 복귀작으로 선택한 작품 <나폴레옹>

그동안 황태자 역할을 많이 했으니 이젠 황제를 할 때가 됐다는 우스개 소리도 했었다.

황제를 했으니 다음엔... 현실에 없는 인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임태경의 복귀도 반갑고, 공개된 캐스팅도 화려했고,

기자간담회에서 들은 넘버들도 괜찮아서 사뭇 기대가 컸다.

 

그런데 이 작품...

스토리도 그렇고, 인물도 그렇게 참 밋밋하다.

물론 임태경의 노래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가 노래를 부르면 뭐가 됐든 한순간에 귀가 집중되는것도 여전했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깔끔하고 부드럽고 올라가는 고음도 여전히 스윗했고,

연기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데 뭐지?

뭔가 이 미묘한 불협화음은????

"ㅅ" 발음의 "th화"가 유난히 귀에 거슬렸고

간혹 한지상스러운 허세도 느껴져 개인적으론 좀 곤혹스러웠다.

그래도 오랫만에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조세핀은 캐릭터도 낭비고, 배우도 낭비다.

개인적으론 "정선아 활용의 나쁜 예"로 기억될 것 같다.

무대 연출도 엔딩의 대관식 장면에 물량공세를 퍼부은것도 옥의 티다. 

임태경의 망토를 두르고 나오는데 웅장하고 멋지다는 생각보다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머, 저 언니 파마 엄청 잘 나왔네...."

남성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유한 마담이 앞에 서있어 깜짝 놀랐다.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 같기도 하고...

주위에서 임태경을 향해 눈으로 하트를 뿅뿅 날리는데 나 혼자 그 장면에서 빵 터졌다.

(물론 속으로만... )

차라리 조세핀에게 나폴레옹이 직접 왕관을 씌우고 끝냈으면 좋았을것 같다.

그러면 victory in my mind도 중이적으로 느껴졌을텐데...

 

솔직히 이날 공연에서 제일 눈에 들어온 캐릭터는

아이러니하게도 나폴레옹도 조세핀도 아닌 달레랑과 앤톤이었다.

정상윤 탈레랑은 가발이 많이 안습이긴 했지만

연기도, 노래도, 해설자의 역할로도 손색이 없었다. 

기세중은 팬텀싱어 말고 진짜 무대에서 본 건 처음이었는데 딕션도 좋고, 노래도 시원시원하게 잘하더라.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 ^^

그런데 타이틀이 <나폴레옹> 이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면 좀 이상한거 아닌가????

 

넘버들도 분명 좋은데

묘하게 귀에 꽂히는 넘버는 없고

내용은 나폴레옹의 영웅성을 부각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세핀과의 사랑에 촛점을 맞춘 것도 아니고,

비참한 최후에 방점을 찍은 것도 아니고...

참 애매히다.

 

혹시 내 기대가 너무 컸던걸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7. 6. 28. 08:05

 

<프라이드>

 

일시 : 2017.03.21. ~ 2017.07.02.

장소 : 대학로 아트원 씨어터 2관

극작 : 알렉시 켐벨 (Alexi Kaye Campbell)

각색 : 지이선

연출 : 김동연

출연 : 이명행, 배수빈, 정상윤, 성두섭 (필립) / 오종혁, 정동화, 박성훈, 장율, 박은석 (올리버)

        임강희김지현, 이진희 (실비아) / 이원, 양승리 (멀티)

기획 : 연극열전

 

또 봤다.

프라이드를...

그런데 어쩌지?

또 보고 싶다.

이 작품은 내게 실비아 같은 존재다.

작품 속에서 올리버가 필립에게 말한다.

"나 실버아한테 위로받았어. 개 복 받을거야"

정말 복받을거다. 이 작품은.

매번 날 이렇게까지 위로해주니.

 

내겐 코린트만의 바다 같은 작품.

올리버처럼 나 역시도 신성한 최면에 걸린다.

 

 

괜찮아.

모든 것이 다 괜찮을거야.

기나긴 시간이 흐르면

우리에 대해, 자신에 대해 어렵고 불행했던 순간들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지금의 잠 못 드는 밤들도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오십 년 아니 오백 년 후에도 이 시간을 사는 사람들은

그 시간들로 인해 더 현명하고 더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니 괜찮아

모든 것이 다 괜찮을거야.

마치 먼 미래에 모든 거친 거친 내가 나를 위로하듯

다정한 속삭임. 위안처럼.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7. 6. 7. 08:27

 

<프라이드>

 

일시 : 2017.03.21. ~ 2017.07.02.

장소 : 대학로 아트원 시어터 2관

극작 : 알렉시 켐벨 (Alexi Kaye Campgell)

각색 : 지이선

연출 : 김동연

출연 : 이명행, 배수빈, 정상윤, 성두섭 (필립) / 오종혁, 정동화, 박성훈, 장율 (올리버)

        임강희김지현, 이진희 (실비아) / 이원, 양승리 (멀티)

기획 : 연극열전

 

죽을만큼 힘이 들거나,

누군가의 위로가 간절히 필요할 때,

나는 목소리가 아닌 이 연극이 필요하다.

이 연극의 대사들이면 충분하다.

지난번 기획사의 티켓배부 운영 잘못으로 1막을 통째로 날려버려서 내내 허기졌었다.

어찌어찌 2막부터는 보긴 했지만

1막이 없는 2막은 허기를 넘어 아사(餓死)의 문턱을 넘나들게 하더라.

그래도 그 와중에 다시 돌아온 정상윤 필립에게 여지없이 몰입됐다.

1958년의 필립은 정말 힘들었겠구나.

진실을 숨기고 끝없이 자신을 기만하느라 진이 다 빠졌겠구나.

그래서 치료라는 명목으로 모욕과 수치심 속에 뒹구는 걸 선택할 수 밖에 없었구나.

아직까지도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데

과거의 사람들은 어떻게 버티고 견뎠을까를 생각하니 안스럽다. 

"그때 그 사람들 다 숨어서 애인 만났을거 아니예요? 죄짓것도 아니데.."

정말 그랬겠네.

그 사람들 참 많이 아팠겠다.

남자라서 사랑한게 아니라 그 사람이라서 사랑한건데.

그걸 알아봐준 실비아는 또 얼마나 아팠을까?

실비아도 사랑이었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갈 수 있도록 떠나주는 사랑.

궁금하다.

실비아... 그 뒤로 행복했을까?

나를 나로서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사람, 만났을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는 진실된 삶.

몇 번을 살아도, 아니 단 한 번을 살아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그게 참 힘들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7. 5. 19. 08:17

 

<쓰릴미>

 

일시 : 2017.02.14. ~ 2017.05.28.

장소 : 백암아트홀

대본, 작사, 작곡 : 스티븐 돌기노프 

연출 : 박지혜

출연 최재웅, 정상윤, 이창용, 강필석, 정욱진, 김재범 (나 ; 네이슨)

        김무열, 에녹, 송원근, 이율, 정동화, 정상윤 (그 ; 리처드)

피아노 : 오성민, 이범재

제작 : 달컴퍼니

 

이번 시즌 네번째 <쓰릴미>는

최재웅, 김무열 페어만큼이나 피켓팅이었던 김재범, 정상윤 페어.

두 배우 모두 이 작품에 여러 차례 출연했고

심지어 네이슨과 리처드를 두 역할을 다 연기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같은 역할이라 두 사람을 한 무대에서 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몇 년 전에 on stage라는 콘서트가 생각난다.

두 사람이 <쓰릴미>의 한 장면을 선보였는데 웃음바다가 됐었다.

서로 같은 음으로 불러서 듀엣이 전혀 안되는 바람에....

그때 두 사람이 그랬다.

이래서 두 사람이 "쓰릴미"를 같이 못하는거라고...

게다가 두 사람이 너무 친하다는 것도 함정이라면 함정 ^^

 

와. 근데 이 두 배우,

프로는 프로다.

혹시라도 연기하다 웃음이 터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엄청난 케미고, 엄청난 집중력이고, 엄청난 흡인력이다.

처음엔 아주 꽁냥꽁냥해더니

중반 이후부턴 치밀하고 치열해지더니 밀고 당기는 힘이 아주 엄청나더라.

그전까지만해도 정상윤은 리처드보다 네이슨일 때가 훨씬 좋다고 생각했는데

김재범 리처드와 만나니 네이슨도 포텐이 확 터졌다.

관람하는 중에도

또 보고 싶다, 다시 보고 싶다... 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두 배우의 회차도 적고,

남은 좌석은 전무하다.

심지어 이번 시즌을 끝으로 2년간 재정비에 들어간단다.

그러니까 2019년이 되야만 <쓰릴미>를 볼 수 있다는 뜻.

그런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많이 잔인하다.

(숱한 폐인들 어떻게 버티라고...) 

 

다 반칙이다.

최재웅, 김무열도 반칙이고

김재범 정상윤도 반칙이다.

 

고로 <쓰릴미>는 늘 반칙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7. 3. 14. 15:58

 

<쓰릴미>

 

일시 : 2017.02.14. ~ 2017.05.28.

장소 : 백암아트홀

대본, 작사, 작곡 : 스티븐 돌기노프 

연출 : 박지혜

출연 : 최재웅, 정상윤, 이창용, 강필석, 정욱진, 김재범 (나 ; 네이슨)

        김무열, 에녹, 송원근, 이율, 정동화, 정상윤 (그 ; 리처드)

피아노 : 오성민, 이범재

제작 : 달컴퍼니

 

젠장.

이럴 수가...

최재웅, 김무열 쓰릴미가 너무 강렬했나보다.

정상윤, 에녹 캐스팅이 이렇게까지 밋밋하게 느껴진걸 보니.

개인적으로 정상윤 네이슨을 엄청나게 좋아하거

지금껏 최고의 네이슨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한동안은 웅무 페어의 후유증이 크게 작용할 것 같다.

 

그래도 역시 정상윤의 확실한 한 방은 있다.

정상윤 네이슨은 리처드를 향한 절절한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래서 고통스럽고 슬프다.

네이슨은 그렇게라도 해서 리처드와 함께 있고 싶었구나... 공감이 된다.

함께 하기 위한 배신.

그러니 그렇게 뚝뚝 굵은 눈물이 떨어질 수밖에...

 

최재웅, 김무열 페어가 사생결단의 육탄전이라면

정상윤, 에녹 페어는 미묘한 심리전이다.

두 페어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디 두 페어뿐일까마는...)

그리고 오랫만에 들은 오성민의 피아노 연주는 참 반갑더라.

확실히 처음 참여하는 이범재보다는 기술적으로 능수능란해서 듣기에 좋았다.

(개인적으로 오성민과 정상윤의 케미를 내가 좀 좋아라해서...)

 

강필석-이율, 김재범-정상윤 페어도 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웅무의 여운이 가실때까지 좀 기다려야 할 듯.

쎄도 너무 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6. 6. 23. 08:07

<Edgar Allan Poe>

 

일시 : 2016.05.26. ~ 2016.07.24.

장소 : 광림아트센터 BBCH홀 

대본, 작사, 작곡 : 에릭 울프슨 (Eric Woolfson)

음악 : 김성수

연출 : 노우성

출연 : 마이클리, 김동완, 최재림 (에드거 앨런 포) / 최수형, 정상윤, 윤형렬 (그리스월드)

        정명은, 김지우 (엘마이라) / 오진영, 장은아 (버지니아) / 최윤정, 안유진 (엘리자베스)

        최종선, 유승엽 (레이놀즈), 조남희, 최병광 외

제작 : (주)SMG, 후너스엔터테인먼트

 

마이클리의 복귀작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대됐던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우>를

드디어 봤다.

그리고 역시나 마이클리의 노래는 너무나 좋았다..

개인적으론 노래만 놓고 보면 스티브 발사모 포우보다 마이클리의 포우가 훨씬 더 좋았다.

문제는 어색한 한국어 발음.

그래도 지금은 초반보다는 발음이 훨씬 좋아졌단다.

공연 초반에는 전혀 못알아듣겠다는 비난이 쇄도했었는데 지금은 그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물론 어색한 발음들이 아직 많긴 하다.

하지만 마이클리의 근성 하나는 정말 어마 무시하다.

그의 습득력과 엄청난 노력은 하루가 다르게 발음의 정확도를 늘려가고 있다.

그래서 매번 고민하게 된다.

한 번으로 관람을 끝낼지, 재관람을 할지를...

 

작품은...

솔직히 정체를 모르겠다.

어떤 장면은 너무 좋고, 어떤 장면은 아니다.

특히 정상윤이 연기한 그리스월드는 너무 유아적인 질투의 화신이다.

나는 더 금욕적이고 냉혹하길 바랬는데 찌질이에 가깝더라.

전체적인 분위기도 지금보다 더 다크했으면 좋았을텐데...

뮤지컬 넘버도 포오의 넘버 외엔 귀를 확 사로잡는 넘버가 없다.

그 와중에 마이클리가 부르는 "관객석 그 어딘가"와 "영원"은 너무나 훌륭하고, 

김성수 음악감독이 추가로 만든 "갈까마귀"도 미치도록 좋다.

그야말로 에드거 앨렌 포우의 <갈까마귀> 구절처럼

"Never-nevermore"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계속 고민중이다.

이 작품을 파고들지 말지에 대해서.

그러기 위해선 아무래도 포우의 작품을 좀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그러니 일단은 잠시 보류하는 걸로.

 

* 그런데 이 작품,

   라이선스임에도 불구하고 이지나 연출의 <JCS>를 소환케 한다.

   커튼콜 사진을 보니 느낌이 확신으로까지 기운다.

   저 뒤에 조명도 그렇고, 의상도 그렇고. 전체적인 조명도 그렇고.

   혹시... 나만의 착각일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