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12.09 흑산 (黑山)
  2. 2009.11.18 달동네 책거리 71 : <다 산 1, 2>
읽고 끄적 끄적...2011. 12. 9. 06:20
집 - 병원 - 다시 병원 - 그리고 집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 유일한 위로와 휴식은 김훈의 <흑산>이었다.
비교적 책을 빨리 읽는 편이지만 이 책은 조금씩 조금씩 사흘에 걸쳐 읽었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간이 그래도 가장 오랫동안 책을 붙들고 있을 수 있는 시간.
간절하니 모든 게 절박해진다.
김훈의 문체 역시도 그런 간절한 절박함이 날숨과 들숨으로 들낙거렸다.
처음 김훈의 글을 읽을 때
그의 문체는 마치 어려운 상전을 대하듯 허리가 절로 굽혀졌다.
읽으면서 때로는 비굴했고 때로는 난감했다.
나는 이유도 모른체 멍석말이 당해는 하인처럼 주인의 벼락같은 매질 앞에 쩔쩔맸다.
역사와 나란히 말을 주고 받는 허구의 세계가 손을 뻗으면 잡히듯 가까워 두려웠다.
군더더기를 용서치 않는 가차없이 잘려진 강팍한 문장이 단정해 섬득섬득했다.
글이란 이런 거구나 턱없는 비굴에 혼자 아득히 절망했다.
아무렇게도 잡아 올려지는 잡어(雜魚)처럼 나는 일순간 비천한 몸이 되어 버둥댔다.
대체 김훈이 뭐라고!



그런데 지금...
나는 지금 오롯이 그의 문장 안에서 위로받고 있다.
사학죄인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길을 함께 건너며
나는 비릿한 해풍에 빳빳하게 말려지는 느낌이었다.
비린 것이 지천인 곳에서 그 비린 삶 속에 뒹구는 인간과 버려진 생이 부러워 몸둘바를 몰랐다.
나는 비릿한 생물의 펄덕임을 바라보는 것도 죄스러웠다.
김훈은 하쟎았다.
그러나 그 하찮음이 거친 풍랑처럼 배를 흔들었다..
그러니 김훈의 하찮음은 더 이상 하쟎음이 아니다.
하쟎음일 수 없다.
그 하쟎음은 위대했고 거대했다.

성근 눈발이 눈에 밟힌다.
그 눈발을 목격하며
나는 내내 하찮음에 대해 생각했다.
강팍함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병(病)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언제쯤 병(昞)해지는가?
나의 병(病)을 병(昞)하지 못함에서 비롯됐다.

흑산도 홍어같은 아침이다.
톡 쏘는 독기가 차갑게 매섭다.
나는 아직
멀.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1. 18. 06:14
 <다산1, 2> - 한승원


 다산. 1


“나는 왜 영·정조 시대에 몰입하는가?”

늘 궁금한 부분이긴 한데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미친 듯이 그 시대의 인물들과 그 시대의 역사가 좋습니다.

다산 정약용만 해도 그래요.

영조, 정조, 순조, 헌종까지 모두 4대의 왕을 두루 거친 인물이고 그 4대에 걸쳐 벼슬을 했던 사람입니다.

18년간의 강진 유배시절 동안 엄청난 분량의 책을 집필했던 사람.

그리고 조선시대 진정한 의미의 지식 아카데미를 형성했던 사람이기도 한 다산 정약용.

그에 관한 책을 69세의 노구의 작가 한승원이 펴낸다고 했을 때 솔깃했습니다.(물론 저는 또 다시 살짝 흥분모드 됐겠죠!)


먼저 이 책은,

팩션이라고 하기에는 확실히 2%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쉽게 읽혀지는 소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다가오는 글은 절대로 아닙니다.

전 개인적으로 정약용의 정보력, 박학다식함, 여러 사람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가르쳤던 엄청난 지도력, 그리고 쉼 없는 활동력 등이 늘 불가사의했습니다.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 75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이뤘던 일들의 양이 참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지금처럼 클릭 한번에 온갖 정보가 주루룩 나왔던 시대도 아니고...

다산 정약용은 말합니다.

“사람의 머릿속에 책이 5천권 이상 들어 있어야 세상을 제대로 뚫어보고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다.”고...

5천권 이상을 읽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5천권 이상이 들어 있어야 한답니다. 그건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쟎아요.

솔직히 일생동안 5천권의 책을 읽는 사람이(이해는 고사하고)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이 말의 의미 속에는 내 삶을 부지런하게 이끌라는 또 다른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정약용의 말을 한마디 더 인용해볼까요!

“이불 속의 달콤한 맛을 꿈지락거리며 즐기는 것은 게으름이다. 게으름은 세상을 반만 살게 하는 악귀다.”

정말 이쯤은 돼야 500여권이 넘는 책을 저술할 수 있었겠죠.


이 책은 1801년 신유사옥으로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귀양살이를 하게 된 다산이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이겨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회상과 꿈의 형태로 과거의 이야기와 바램들이 여러 개의 액자소설처럼 곳곳에 끼워져 있어 재미를 더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주자학을 읽은 다산은, 성년이 된 다음에는 천주학에 심취했지만 나라에서 금하고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천주학을 버리고 정학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시기했던 노론 벽파들은 천주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여 순교한 그의 셋째 형 정약종을 근거 삼아 둘째형 정약전과 그를 태형에 처하고 유배를 보냅니다.

노구의 몸으로 유배를 떠나는 두 사람은 그 길로 다시 만나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죠.

다산에게 둘째형은 멘토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다산은 책을 완성하면 둘째형에게 보내 감수하게 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한 첨삭을 전해 받기도 했을 정도니 그 둘의 애틋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되시나요?

그런 둘째형이 유배 중 사망하게 되고 역시 유배중이라 차마 찾아가지 못하는 정약용은 애끓는 탄식을 하게 됩니다.

형제이면서, 스승이며 아비이기도 했던 형.

그런 형을 잃은 그의 상실감과 절망이 읽는 동안 가슴 아리게 만들었습니다.

애뜻한 혈육의 정은 자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강진에 유배되어 있으면서도 다산은 자식들에게 살뜰한 편지를 자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게으르고 나태한 자식들을 호되게 야단치기도 했죠.

닭을 키운다는 아들의 말에 “양계”에 대한 체계적인 책을 만들어 보라며 그와 관련된 자세한 조언까지 하는 걸 보면 그의 박학다식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전 정약용은 신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종교적인 표현은 아닙니다. 그저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길을 그야말로 지극한 경지까지 스스로 만들어 간 사람이기에 위대함 그 이상을 느끼게 되는 거죠.

제게 있어 다산 정약용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가는 지도 모르겠네요.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닌 말은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닌 말은 입에 담지 말며,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

이 말은 한사코 예를 외면하고 있는 지금의 위정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잠언인 것 같습니다.

“물은 배를 뜨게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임금은 배다. 임금도 잘못하면 백성들이 그를 정치하고 바꿀 수 있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나만은 아닐 것이다....”라고.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러한 나태하고 편협한 이기심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참 다정하다는 느낌입니다.

멀게만 생각되는 역사 속의 인물 정약용을 내 바로 옆에서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니까요.

글이 다정할 수 있다는 거...

저처럼 또 다는 누군가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네요. ^^


* 참고로 정민의 <다산 선생 지식 경영법>과 이덕일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2> 권이 있습니다.

앞의 책은 분량도 꽤 되고 좀 전문서적의 느낌이라 쉽게 손에 잡히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조목조목 읽다보면 정약용의 신비감에 완전히 매료되게 만듭니다. 심지어 읽는 이를 진정한 정약용 마니아로 환골탈태시키는 매우 위험한(?) 책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후자에 소개한 책은 2권으로 되어 있긴 하지만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이덕일이라는 작가가 쓴 책들은 개인적으로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역사를 참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해주는 사람입니다. 역사의 신비감과 아련함이 내 옆의 현실감으로 바짝 다가오는 느낌이죠.
혹 관심이 가신다면 한번 읽어보심이......
(후회는 없을 것임을 확실히 보증하는 바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