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 독살사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2.17 문학동네 키워드 한국문화 2 <정조의 비밀편지> - 안대회
  2. 2008.12.05 달동네 책거리 8 : <원 행>
읽고 끄적 끄적...2010. 12. 17. 05:50
기사를 기억한다.
2009년 2월 9일 성균관대학고 600주년 기념관에서
심환지에게 보낸 정조의 어찰 297통이 공개됐다는 기사를.
그때는 임금이 신하한테 보낸 편지가 뭐 그리 특별하다고...하면서 자세히 읽지 않았었다.
지극히 편애하는 정조와 관련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조어찰첩(正祖御札帖)
흩어져 있는 것까지 합치면 모두 350편이나 되는 방대한 양의 편지다.
그것도 정조와 대립했던 인물로 알려진 노론 벽파의 핵심 인물 심환지 한 사람에게만 보낸 비밀편지.
정조는 편지에서도 폐기하라고 몇 번씩 명령했으나
심환지는 어떤 이유에선지 왕명을 거슬리고 이 편지들을 보존했다.
편지를 받은 날짜과 시각까지 따로 세세히 기록하면서까지... 
정조 독살의 주도자로 알려진 심환지에게 정조가 그토록 많은 비밀편지를 보낸 이유는 뭘까?
그리고 심환지 역시 폐기를 명령한 편지를 온전히 보존한 이유는 뭘까?
시작부터 이 책은 내 흥미를 완벽하게 잡아 끌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같은 공식적인 사료와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과는 사뭇 많이  다르다.
정조는 심환지를 조종하여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관철시키거나 사건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실제로 심환지를 비롯한 많은 대신들의 상소문이
사실은 정조의 지시에 의해 올려졌다는 사실도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정조는 여론을 청취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이런 편지들을 이용했는데 이 편지들은 비밀스럽게 오고갔으며 
완벽히 폐쇄적인 형태의 의사소통이기도 했다.
(아마도 계산된 정치적 의도가 아니었을까?)
학구적인 성군으로 알려진 정조는 의외로 어찰에서는 거친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김매순에 대해선 "입에서 젖비린내 나고 미처 사람 꼴을 갖추지 못한 놈"이라고  표현했고
김이영을 향해선 "경박하고 어지러워 동서도 분간 못 하는 놈"이란 평가를 내렸다.
또 어용겸의 자제들에게는 "개돼지보다 못한 물건"이라는
상당히 걸죽한 표현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말 새로운 정조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 많이 봤다.)
또 주둥아리를 놀린다든가, 호로자식이라는 욕설이라고 할 수 있는 표현까지도 서슴치않고 사용했다.
한 나라의 국왕쯤 되면 항상 격있는 문장으로만 편지를 썼을 것 같은 내 생각과는 다르게
정조는 이두문자와 한글까지도 함께 혼용해서 사용했다.
(아래 사진의 어찰을 자세히 보면 한글이 보일 거다. "뒤쥭박쥭"이라는....)
이 사람이 문예반정을 추진한 그 정조가 맞나 싶을 만큼 새로운 발견이다.
자신이 비판했던 소품문의 문체를 그대로 비밀편지에 사용한 정조!
개인적으로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편지를 쓰면서 혼자서 껄껄 웃지 않았을까?)



...... 정조는 개혁을 추진한 학자풍 군주로서, 조선 전기의 세종과 더불어 성군 이미지로 한국인에게 각인되어 있다. 그런 정조가 보낸 비밀편지는 자신을 독살했다고 오해할 만큼 적대적 관계로 알려진 심환지를 적극적으로 회유하고, 막후에서 비밀스런 지시와 조정을 주도하는 노련한 정치가의 수완과 동태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민감한 정치적 사인이 담겨 있어서 국왕이 없애라고 명령한 문건인데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 관심을 한층 증폭시켰다. 게다가 비밀편지는 국왕 정조의 가볍고 다혈질적인 성미까지 폭로했다 ......

정조어찰은 정치사 사료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만
문학과 서예, 궁정의 문화와 생활사 같은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다고 한다.
그리고 정조의 사망과 관련된 숱한 의혹들에도 단서를 제공한다.
정조는 독살됐는가? 아니면 오랜 지병으로 인한 자연사인가?
1800년 6월 28일 사망한 정조는 6월 9일, 15일에도 심환지에게 편지를 보내 병세의 심각함을 알렸다.
책을 쓴 저자 안대회는
이덕일이 <조선왕 독살사건>에서 주장한 정조 독살설에 대해  6가지 논리를 들어 반론한다.
(이덕일의 책 역시도 오래전에 재미있게 봤었다)
어쩌면 사실 심환지는 정조의 명으로 노론 벽파의 핵심인물이 된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모든 게 다 정조의 놀라운 정치적 계획이었다면?
이 책을 읽고 정조에 대해 내가 실망했을까?
정답은 "No" 다. 그것도 Never!
성군 정조가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다면 이해가 될까?
덕분에 정조에 대한 애정이 더 생기고 말았다.
이러다 편애가 극심을 넘어 지극해질까봐 심히 걱정스럽다.


                               <정조>                                             <심환지>

* 정조의 초상화는 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없단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조의 초상화는 거의가 현대에 제작된 것들이다.
  문화의 르네상스를 만들었던 정조 입장에서 볼 때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5. 22:17

정권 교체기의  영원한 아이콘 “정조”

<원행> - 오세영


 


“팩션” 소설의 시작을 알린 작가 오세영.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결합시킨 새로운 장르의 문학형태인 팩션(fact + fiction = faction )

지금이야 완전히 자리 잡은 문학장르가 됐지만 1993년 <베니스의 개성상인>이 출판될 당시만 해도 팩션이라는 용어는 아직 낮선 용어였습니다.

<원행>이란 소설은 2006년도에 출판됐고, 전 작년에 읽었는데 우리 도서관에 2월 신작도서로 올라와 반가운 마음에 글을 올립니다.


정권교체기가 되면 항상 “정조”라는 아이콘이 등장을 하는 것 같아요.

아마도 조선의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운 그의 강력한 개혁군주 이미지를 닮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요..

2년 전 쯤 인가?

이 “정조”라는 아이콘이  문화 아이콘으로 대대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구요.(드라마 이산의 시청률에 공감을 하게 됩니다 ^^)

“화성에서 꿈꾸다”라는 창작뮤지컬이 제가 정조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라면 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작품에서 정조의 본명이 이산이라는 것도, 사도세자의 본명이 이선이라는 것도 알게 됐으니까요.

현재 수원 화성은 다 아시는 것처럼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어 있고, 매년 대대적인 정조 수원행차(을묘원행) 시연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작년에 다녀왔는데 한번 권해드리고 싶네요)


정조대왕이 10년만 더 치세를 했다면 우리나라 역사가 달라졌을 거란 말이 있습니다.(정조는 49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독살됐다는 설이 있습니다)

당연히 거센 변혁의 모후엔 기존 보수세력의 거센 반발이 있었을 거구요

시파의 수장 체제공과 개혁 물결의 교두보 적약용, 벽파의 수장 심환지 그리고 세상을 뒤엎을 역성혁명을 꿈꾸는  문인방(옥포선생), 이 4인과 정조와의 8일간의 암투 과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그야말로 흥미진진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그 다음 장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책입니다. 약간 두꺼운 분량의 책이지만 아마도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정조는 실제로 목숨을 위협하는 수많은 자객 속에서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단련(?) 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어느 정도의 위협에는 까딱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번은 자신을 살해하러 온 자객을 그냥 보낸 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신념을 가진 사람을 살해한 폭군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죠.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그는 왕의 자리에 서려있는 피냄새의 의미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어떤 왕이 되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뇌했던 군주였습니다.

이 책은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한  8일간의 수원 화성 행차를 통해 수구세력(벽파)을 제압하고 왕권을 더욱 확고히 하여 개혁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을묘원행은 표면상은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축하한다는 의미였지만, 그 속뜻은 사도세자의 추모였다고 하네요(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는 동갑이었습니다)

정조가 즉위하고 처음으로 한 말은,

“내가 누구더냐?”라는 물음이었습니다.

만조백관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겠죠.

“이 나라를 이끌어갈 상왕이십니다~~~”

이어지는 정조의 섬뜩한 한 마디....

........................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

아비를 죽게 한 이들 앞에서 그가 남긴 한마디의 섬뜩함...

항상 정조를 생각하면 전 이 장면이 슬로우 모션처럼 그러나 강렬하게 떠오릅니다.

벽파들의 서늘해졌을 등줄기와 앞으로 닥칠 복수에 대한 공포도 함께 떠오릅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의 제목에도 있지만 정조는 스스로 달이길 원했다고 합니다.

임금은 달이요, 백성은 흐르는 구름이라 생각하고 구름이 달을 가린다고 해서 어지러워지거나 미혹되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고 하네요.

(역시 “달”은 여러 가지로 이미지가 참 좋네요 ^^)


정조의 또 다른 매력은....(지극히 제 개인적인 매력)

후궁이 단 4명밖에 없었다는 사실...(할아버지 영조는 엄청난 후궁과 자식을 거느리고 있었죠. 영조와 정순왕후와의 나이 차이는 40살 정도였다고 하니....  부러워하시는 분들 계시는 것 같은데..... ^^)

그것도 3명은 주위의 강압(?)에 의한 간택후궁이었고 스스로 승은을 입힌 후궁은 의빈성씨 한명이었다고 합니다.

의빈성씨는 할머니, 즉 정순왕후 처소의 궁인에서 소위 일약 신데렐라가 된 셈이죠. 거기다가 정조의 지극한 총애를 입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조강치처 효의왕후에 대한 마음도 극진했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정조 11세, 효의왕후 10세 때 서로 혼인) 함께 어려움을 겪은 조강지처이기에 후사가 없었어도 그 지위를 박탈하거나 소위 구박하거나 하지 않았다는...

정말 알면 알수록 멋진 남자 정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정조보다는 주변 인물, 특히 적약용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만 제 개인적으로 정조를 너무 아끼고 좋아하다 보니 정조 중심의 글이 되버리고 말았네요 ^^ ( 죄송~~~)


여기서 보너스 팁 하나~~~

청계천에 다들 한번쯤은 가 보셨죠?

청계천에 가시면 정조의 화성행차 모습을 그린 <정조능행반차도>라는 그림이 청계천변가를 따라 쭉 그려져 있습니다.(종로쪽 방향으로..)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는 행차에서는 비가 와도 절대로 가마를 타지 않고 직접 어머니를 호위하며 갔다고 하니 그 효성 또한 감동이 아닐 수 없죠..

그림을 보시면서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가는 정조의 모습을 한번 찾아보시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 되실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나 참고로... 찾기 무지 어렵습니다~~~~

(일단 그림이 너무 길고, 그래서 등장인물등 너무나 많이 나와 주시고,  거기다 아주 결정적으로다 그림속의 인물들이 전부 그놈이 그놈인 것 같아서.... ^^)


보너스 팁 하나 더~~~
이덕일이라는 작가가 쓴 <조선왕 독살사건>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유난히 독살설이 많았던 조선의 왕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아주 재미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정조”도 여기에 속해 있구요.

꼭 한번 읽어보시길 강력 추천하며...

이상 달동네 책거리였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