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2.17 문학동네 키워드 한국문화 2 <정조의 비밀편지> - 안대회
  2. 2010.06.24 <충신> - 마르크 함싱크
읽고 끄적 끄적...2010. 12. 17. 05:50
기사를 기억한다.
2009년 2월 9일 성균관대학고 600주년 기념관에서
심환지에게 보낸 정조의 어찰 297통이 공개됐다는 기사를.
그때는 임금이 신하한테 보낸 편지가 뭐 그리 특별하다고...하면서 자세히 읽지 않았었다.
지극히 편애하는 정조와 관련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조어찰첩(正祖御札帖)
흩어져 있는 것까지 합치면 모두 350편이나 되는 방대한 양의 편지다.
그것도 정조와 대립했던 인물로 알려진 노론 벽파의 핵심 인물 심환지 한 사람에게만 보낸 비밀편지.
정조는 편지에서도 폐기하라고 몇 번씩 명령했으나
심환지는 어떤 이유에선지 왕명을 거슬리고 이 편지들을 보존했다.
편지를 받은 날짜과 시각까지 따로 세세히 기록하면서까지... 
정조 독살의 주도자로 알려진 심환지에게 정조가 그토록 많은 비밀편지를 보낸 이유는 뭘까?
그리고 심환지 역시 폐기를 명령한 편지를 온전히 보존한 이유는 뭘까?
시작부터 이 책은 내 흥미를 완벽하게 잡아 끌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같은 공식적인 사료와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과는 사뭇 많이  다르다.
정조는 심환지를 조종하여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관철시키거나 사건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실제로 심환지를 비롯한 많은 대신들의 상소문이
사실은 정조의 지시에 의해 올려졌다는 사실도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정조는 여론을 청취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이런 편지들을 이용했는데 이 편지들은 비밀스럽게 오고갔으며 
완벽히 폐쇄적인 형태의 의사소통이기도 했다.
(아마도 계산된 정치적 의도가 아니었을까?)
학구적인 성군으로 알려진 정조는 의외로 어찰에서는 거친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김매순에 대해선 "입에서 젖비린내 나고 미처 사람 꼴을 갖추지 못한 놈"이라고  표현했고
김이영을 향해선 "경박하고 어지러워 동서도 분간 못 하는 놈"이란 평가를 내렸다.
또 어용겸의 자제들에게는 "개돼지보다 못한 물건"이라는
상당히 걸죽한 표현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말 새로운 정조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 많이 봤다.)
또 주둥아리를 놀린다든가, 호로자식이라는 욕설이라고 할 수 있는 표현까지도 서슴치않고 사용했다.
한 나라의 국왕쯤 되면 항상 격있는 문장으로만 편지를 썼을 것 같은 내 생각과는 다르게
정조는 이두문자와 한글까지도 함께 혼용해서 사용했다.
(아래 사진의 어찰을 자세히 보면 한글이 보일 거다. "뒤쥭박쥭"이라는....)
이 사람이 문예반정을 추진한 그 정조가 맞나 싶을 만큼 새로운 발견이다.
자신이 비판했던 소품문의 문체를 그대로 비밀편지에 사용한 정조!
개인적으로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편지를 쓰면서 혼자서 껄껄 웃지 않았을까?)



...... 정조는 개혁을 추진한 학자풍 군주로서, 조선 전기의 세종과 더불어 성군 이미지로 한국인에게 각인되어 있다. 그런 정조가 보낸 비밀편지는 자신을 독살했다고 오해할 만큼 적대적 관계로 알려진 심환지를 적극적으로 회유하고, 막후에서 비밀스런 지시와 조정을 주도하는 노련한 정치가의 수완과 동태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민감한 정치적 사인이 담겨 있어서 국왕이 없애라고 명령한 문건인데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 관심을 한층 증폭시켰다. 게다가 비밀편지는 국왕 정조의 가볍고 다혈질적인 성미까지 폭로했다 ......

정조어찰은 정치사 사료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만
문학과 서예, 궁정의 문화와 생활사 같은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다고 한다.
그리고 정조의 사망과 관련된 숱한 의혹들에도 단서를 제공한다.
정조는 독살됐는가? 아니면 오랜 지병으로 인한 자연사인가?
1800년 6월 28일 사망한 정조는 6월 9일, 15일에도 심환지에게 편지를 보내 병세의 심각함을 알렸다.
책을 쓴 저자 안대회는
이덕일이 <조선왕 독살사건>에서 주장한 정조 독살설에 대해  6가지 논리를 들어 반론한다.
(이덕일의 책 역시도 오래전에 재미있게 봤었다)
어쩌면 사실 심환지는 정조의 명으로 노론 벽파의 핵심인물이 된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모든 게 다 정조의 놀라운 정치적 계획이었다면?
이 책을 읽고 정조에 대해 내가 실망했을까?
정답은 "No" 다. 그것도 Never!
성군 정조가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다면 이해가 될까?
덕분에 정조에 대한 애정이 더 생기고 말았다.
이러다 편애가 극심을 넘어 지극해질까봐 심히 걱정스럽다.


                               <정조>                                             <심환지>

* 정조의 초상화는 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없단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조의 초상화는 거의가 현대에 제작된 것들이다.
  문화의 르네상스를 만들었던 정조 입장에서 볼 때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6. 24. 06:29
영조 시대가 배경인 팩션 소설을 읽다.
저자 마르크 함싱크(Marc Hampsink )는 1973년 부산에서 출생,
7살에 벨기에로 입양돼 유럽에서 완벽하게 외국인으로 성장한 사람이다.
그는 모국에인 네덜란드어 외에 영어,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한문 등
총 13개 국어를 그것도 능통하게 구사할 줄 아는 멀티링구어란다.
(그런데 여기에 한국어는 없다...쩝!)
이 책은 한 가지 언어로 쓰여진 게 아니라
마르크 함싱크가 구사할 수 있는 온갖 언어로 쓰여졌다고 한다.
(아마도 표현의 묘미에 더 적합한 언어를 선택했겠지만)
그래서 원고가 번역가의 손에 들어왔을 때 그녀는 경악을 했다고...



글의 서두에 밝힌 내용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이 글은 영국계 보험회사에 다니는 저자의 일,
즉 보험 조사에서 시작됐단다.
보험 의뢰기 들어오면 그것이 가치가 있는지 조사하고 판단하는 것이 
작가가 하는 일이란다.
극동의 조그만 나라 한국에서 대략 18세기 경에 쓰인 <진암집(晉菴集>이라는 책 역시
그런 절차를 밟기 위해 작가의 손에 들어왔다.
책의 저자는 조선의 21대 왕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진암 이천보였다.
그런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막 시작된 시기 조선에서 벌어진 비밀스런운 사건이
이 책 속에 도사리고 있었던 거다.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천보가 67세의 나이로 천수를 누리고 조용히 병사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 외의 다른 기록들은 모두 끔찍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기록되어 있단다.
그리고 이천보뿐만 아니라 당시 좌의정 이후, 우의정 민백상도 그 자살 행렬에 합류했고...
250년 전 삼정승의 잇따른 자살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비밀은 무엇일까?
이 책은 그러니까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다.



어느 늦여름 밤.
조정의 최고 권력인 영중추부사, 좌의정, 우의정이 비밀스런 회동을 한다.
깊어진 세자의 병과 증세에 대한 의논을 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어느날, 어의 한 명이 집에서 죽은 체로 발견된다.
죽은 어의는 바로 세자의 병이 무엇인지 단서를 가지고 있던 유일한 목격자였다.
총명하고 어진 세자를 고통과 광기로 내몰게 한 병의 정체는 도대체 무었이었을까?
급기야 아비의 노여움까지 받아 좁은 뒤주 속에 갇혀 죽는 운명까지 이르게 한 병의 정체는?
충격적인 내용이지만
이 책에는 세자의 지병이 성병, 즉 매독이었다고 밝힌다.
그리고 그 배경엔 다름 아닌 화완옹주의 사가에서 출입한 한 여승이 연계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권력에 욕심을 낸 화완옹주가 자신의 동생을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하려고
사가의 여자를 끌어들인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이쯤 되면 좀 독하지 않는가?
권력의 향기라는 게...

이야기는 아주 참신하다거나 흥미진진하지는 않다.
다만 이 모든 이야기를 이국의 이방인에 의해 쓰여졌다는 사실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작가는 한국어도 모를 만큼 한국에 대해 무지한 완벽한 외국인으로 성장한 사람이다.
이국의 눈엔 동양의 역사는 어느 정도 신비로 보이겠겠지만
우리의 옛 역사와 관련된 명칭과 단어들을 찾느라 여러 날 고심했을 것을 생각하니 숙연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수고를 생각하고 읽으면 
이야기 구성도 꽤나 치밀하고 꽉 차있다.
다만 인물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지 못한 약점이 있긴 하지만
한 번 손에 잡고 읽어보라고 권할 만한 책이다.
작가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읽는다면
오히려 놀라움을 느끼게 될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