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1. 3. 19. 05:53
김영하를 말할 때 이 작품은 항상 앞자리를 차지한다.
2001년 2월 출판된 <아랑은 왜>
2010년 다시 출판될때까지 한때 잠깐 이 책을 구입하지 못한 때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때 이 책을 찾으려고 잠시 여기저기 뒤적거리기도 했었다.
서평서나 아니면 책 좀 읽는다는 간서치들도 손꼽았던 책 <아랑은 왜>
김영하 작품이라면 왠만하면 다 읽었던 나로서는
너무 늦게 이 책을 읽은 셈이다.
와~~~우!
그런데 이 작품!
물건도 이런 물건이 없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설이 길다~~~~"라고 하는 그 "사설"로
이렇게 기막히고 멋지고 완벽히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이건 확실히 "탄생" 그 자체다!


...... 아랑은 나비가 되었다고 한다 ......

소설은 별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처럼
약간은 심드렁한 말투로 시작된다.
아마도 "아랑은 나비가 되었다"라고 시작했다면 나는 첫 문장부터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나비가 되었다고 한다"라는 말 속에 담겼을 숱한 비화들과 논쟁거리들이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빠져들게 했다.
확실히 뭔가가 있는 있구나 기대감을 잔뜩 품게 한다.
"아랑(阿娘)" 전설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굳이 "아랑"이라는 이름을 모른다고 해도 그 전설 자체는 어릴 적 "전설의 고향"에서도 한 번쯤 봤던 숱한 이야기다.
억울하게 살해된 아랑이 신관사또가 부임하면 첫날 찾아와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하지만
지레 겁을 먹은 사또들은그만 그 밤에 줄줄이 죽어나간다.
그러다 용감한 사또가 부임하면서 아랑의 혼백을 만나 억울함을 듣고 비로소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
(다 아는 이야기를 굳이 쓰려니 참 민망하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작가의 말처럼 아랑전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새롭게 재구성한
아랑 전설의 틈찾기라고 할 수 있다.
작품속에 등장하는 작가는 여기저기 아주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마치 한 편의 시나리오 전체를 총 지휘하는 영화감독이 된다.
연기할 배우를 캐릭터를 설명하고 그 배우와 이야기를 하고...
작품 여기저기에 다른 세상들이 시간과 공간을 오가며, 그것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질서정연하게 펼쳐진다.
이건 무작정 빠져들 수밖에 없는 구조고 이야기 전개고
그리고 모든 것이다.
모두가 아는 익숙한 이야기를 다르게 쓴다는 건 만만찮은 일이라고 작가는 책을 빌어 볼맨 소리를 하지만
이런 페이크조차도 무지 재미있고 흥미롭다.


전설 속 아량 이야기.
작품 속의 연출가(?)인 작가가 만든 현실 속의 가상 인물 "박"과 "영주"
그리고 또 그 작가가 만난 선운사 앞에서 큰줄흰나비 박제를 팔고 있던 현재의 아랑!
거기다가 여기저기서 친절하게 출처까지 밝혀준 각종 문헌 자료들은
은근히 이 이야기를 학구적이고 고증학적이게 만드는 묘미까지 있다.
(어쩐지 이 책에 나온 모든 문헌들이 거짓이라도 나는 진실이라고 끝끝내 믿고 싶어진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아랑 전설의 모든 것을 뒤집는 이야기는
허를 찔리는 기분이기도 하고 농락당하고 있는 기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랑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전설이다.
그러니 아무도 진실이 무엇인지는 결코 알 수 없고
그런 이유로 모든 이야기는 진실일 수밖에 없다.
김영하가 만든 완전히 다른 세계를 덮으면서 책 속의 이 문장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과연 누가 중독자들만큼 지루할 수 있을까? 강력한 자극이 엄습하기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시간은 얼마나 길 것인가. 다가올 환상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더욱 그렇겠지 ....

그렇다!
나는 지금 김영하에게 중독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나는 어쩔 수 없이 지루한 사람이 될 팔자다.
그리고 이건 순전히, 전적으로
김영하 때문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12. 20. 00:33
또 다시 Jekyll & Hyde의 계절이 돌아왔다.
매번 공연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재정상태를 all kill 시킬 정도로 all in하게 만드는 문제작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제대한 조승우의 복귀작이라는 빅뱅과
류정한의 마지막 지킬 선언까지 겹쳐져서 초반부터 열띤 예매 전쟁이 시작됐다.
(그야말로 오디 컴퍼니의 광고 문구 그대로 사상 초유의 티켓 전쟁이다)
이 치열한 전쟁터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은 안도의 숨을 쉬고
살아남지 못한 사람은 인터넷 여기저기를 서성이며 가련한 자신의 처지를 호소함과 더불어 
누군가의 은혜로운 티켓 양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나는?
현재까지는 제발 한 달에 한 번만 보자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웠다.(그러니 제발 지키자...)
그 첫번째가 12월 14일 류정한 J & H였다.
사실 티켓 예매를 할 때 차 떼고 포 떼고 나니까 고맙게도 선택의 폭이 확실이 줄긴 했다.
일단 선민 루시는 내 취향이 아니라 차로 떼버리고
김소현 엠마는 죄송스럽게도 요즘 너무 노쇠한 목소리를 내주시기게 포로 떼기로 했다. 
(이렇게해서 정말 미안하게도 홍광호와 김준헌은 차도 포도 아닌 셈이 되고 말았다...)



공연 초반에 앙상블과 조연들의 호흡이 잘 맞지 않는다는 우려도 있어 내심 걱정스러웠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계속해서 보고 있는 J & H.
공연을 하는 배우에게도,
중독처럼 몇 번씩 관람하는 관객에게도
어쨌든 이 공연은 위험한 함정이고 치명적인 유혹이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이렇게 얼치기 매니아를 자처하게 된 것도
순전히 2004년부터 J & H가 발단이었던 것 같다.
그전까지는  일 년에 몇 편씩 보는 게 전부였는데...
물론 지금까지 보면서 실망했던 공연도 있고 끔찍하게 소름돋았던 공연도 있다.
그래서 고운정 미운정 외에도 다른 정이 있다면 그 모든 정들이 다 들어버린 공연이다.
어쩌면 관 속에 들어있던 나를 벌떡 일으켜 세상으로 나오게 한 게 이 공연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고마움에 매번 애뜻한 심정이 되버리는 건지도...
매번 J & H가 오픈되면 가슴이 묘하게 아파온다.
그리고 그 아픈 마음은 또 묘하게도 공연을 보고 나면 한동안은 다독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도 항상 또 다른 의미의 이중성과 타협하고 싸우는 중인지도 혹시 모르겠다.



류정한 지킬 그리고 류정한 하이드.
다른 건 말고 그것만 생각하자.
류정한의 지킬은 다정하다. 그러나 폐쇄적일만큼 고집스럽다.
류정한의 하이드는 이기적이다. 그러나 납득이 불가능하진 않다.
류정한의 지킬은 지독히 탐미적이다. 그러나 일방적이진 않다.
류정한의 하이드는 냉혹하다. 그러나 불의하지 않다.
류정한 지킬은 순하다 그러나 결정 앞에 단호하다.
류정한 하이드는 비열하다. 그러나 비겁하지는 않다.
류정한의 지킬은 사랑스럽다. 그러나 너무 많이 외롭다.
류정한의 하이드는 잔인하다. 그러나 잔혹하진 않다.
류정한의 지킬은 섬세하다. 그러나 작게 표현하진 않는다.
류정한의 하이드는 대범하다. 그러나 손끝과 표정까지 치밀하다.
류정한의 지킬은 유하다 그러나 연약하진 않다.
류정한의 하이드는 본능적으로 파괴적이다. 그러나 근거없는 파괴는 결코 아니다.
류정한의 지킬은...
 류정한의 하이드는...
내겐 그랬다.
어찌됐든 매번 실망이 아닌 지독한 감동을 준다.
비록 그가 결정적인 노래에서 삑사리를 작렬한다고 해도
(설령 그 부분이 "This is the moment" 같은 결정적인 노래에서
 "지금 이 순간 나만의 길"이라는 결정적인 부분일지라도...)
그게 최선을 다하는 중에 나오는 실수이기에 조금도 불쾌하지가 않다.
그리고 소위 그 삑사리에 대처하는 류정한의 능숙함과 노련함이 나는 또 좋다.
(편애라고 말한다면... 그렇다! 난 그를 편애한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사실 나는 류정한이 J & H 를 다시 한다고 발표했을 때 새로운 해석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사람!
또 다시 달라졌다.
특히 하이드로 분할 때 모습은 다른 어떤 때보다도 확실히 더 거대해졌다.
더 비열해졌고, 더 파괴적이고, 더 음산해졌고, 더 대범해졌고, 더 유혹적이다.
순간순간 본성을 드러내려는 하이드를 막기 위해 애쓰는 지킬은 또 어떤가! 
안스러움과 함께 어딘가 숨겨주고 싶은 깊은 연민마저 느껴진다.
아마도 그는 "마지막"이라는 자신의 말에 지금 책임을 다하고 있는 중인가보다.
매 장면마다 그게 느껴져 나는 또 섬뜩하고 무서웠다.
이 작품을 떠나보낸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아픈 일인지
객석에 앉아있는 나조차도 분명히 느껴질 정도다.
처음엔 분명 지킬로 시작됐는데 류정한의 눈은 점점
한 쪽엔 지킬을, 또 한 쪽엔 하이드를 담는다.
그 눈빛 속에 치열한 싸움이 무대에서 번득이는 집요한 시선으로 드러난다.
다른 사람도 봤을까?
지킬일 때 그의 눈 속에 하이드를.
그리고 하이드일 때 그의 눈 속에 지킬을...
그닥 좋은 컨디션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눈빛은 강렬함 그 이상으로 빛났고 딕션은 어전히 선명했다. 
고요함 속 굳은 결의 뒤에 압박처럼 점점 상승되는 공포감 "The Transformation"
잔혹한 괴기스러움 뒤에 느껴지는 정당하기까지한 통쾌함 "Alive"
소름돋을 만큼 자극적이고 부러울만큼 관능적인 "Dangerous game"
"The way back"의 안타까운 절망과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선택.
섬득하리만큼 잔인한 충돌 "Confrontation"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나는 어터슨의 대사로 배우 류정한에게 말하고 싶다.
"자넨 할 만큼 했네!" 라고...
그리고 엠마의 마지막 대사까지도 빌리련다.
"이제 편히 쉬세요!"



사실은 김선영 루시의 완벽함에 대해서도
(그녀의 춤은 정말 눈부신 발전이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그 빨간 모자는 꼭 집고 넘어가고 싶다.)
조정은 엠마의 불안함 대해서도 구구절절 말하고 싶지만
(전체적으론 엠마에 잘 어울리긴 하지만 성량이 확실히 딸린다. 
 지고지순함도 느껴지지만 왠지 새침떼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은 류정한, 그에 대해서만 말하련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이미 할 말은 다 해놓고... 쯧쯧!)
아, 참! <스위니 토드>의 비델리 "정현철"을 오랫만에 무대 위에서 만나서 반가웠다.
스트라이드와 스파이더 1인 2역을 하느라 너무 바빴겠다.
(그전까지는 세비지경과 스파이더가 1인 2역이었는데...)
그런데 두 인물의 목소리가 너무 비슷해서 개별화에는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다.
그리고 주교님과 프룹스는 같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볶으신 모양이다.(솔직히 도플갱어인줄 알았다)
새로운 곡 "I need to know"가 추가돼서 기대를 했었는데
(예전에 J & H 내한공연에서 브래드 리틀이 이 노래를 불렀을 때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물과 기름같이 동떨어진 넘버라 정말 깜짝 놀랐다.
너무 많은 내용을 가사에 꾸겨넣어서 랩도 아닌 정체불명이 노래가 되버렸다.
차라리 이 곡을 빼고 예전처럼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애드립같은 코믹 요소가 많이 등장한 건 좀 거슬렸다.
단정해지고 깔끔한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다시 Jekyll & Hyde는 나를 수다쟁이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말하나보다.
"첫 정이 무섭다"고... ^^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6. 7. 05:42




솔직히 이건 좀 된장할 일이긴 했지만
성스러운(?) 지방선거일에 오전 근무를 해야했다.
그 와중에 "못살겠다! 갈아보자"며 6시에 집에서 나와
새벽잠 없으신 동네 어르신들과 나란히 2열 종대로 서서 
부지런한 젊은이 소리를 들으며 성스러운(?) 투표권을 행사했다.
아마도 하늘이 감동하셨나보다.
내 선거 인생 최초로 심히 은혜롭고도 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이런 게 정말 기적이지! ^^)
선거날 오전 근무라는 씁쓸함을 달래기 위해 예매한 <몬테크리스토>
그것도 30%라는 몹시도 은혜로운 할인율까지...
사실 5월 4일 엄기준 몬테크리스토로 인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상처를 받았기에
나름의 정화(淨化)가 간절히 필요하기도 했었다.
류정한 몬테크리스토, 차지연 메르세데스, 조휘 몬데고 라는 캐스팅이 
망설임을 현실화 시키기에 충분하기도 했고...



류.정.한.
이 사람에 대해 이제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하나?
이 사람의 무대 위 삶이 시작되면,
나는 그대로 반푼이가 되어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게 된다.
(솔직히 이 순간만큼은 누가 뭐래도 그가 빛이요, 길이요, 생명이다...)
첫공연을 봤을 때 공연장 때문에 나는 울화가 치밀었지만 그의 몬테크리스토 때문에 꾹꾹 참아낼 수 있었다.
(결코 그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나는 유니버설아트센터를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찾지 않았을 것이다)
한 달 보름이 지난 지금,
류정한의 몬테크리스토는 끔찍하고 잔인스럽게 사람을 이리저리 쥐고 흔들어댔다.
결국 나는 또 다시 이 사람에게 완벽하게 놀아나고 말았다.
"이런 악마같은 배우, 세상에 또 있을까?"
특히나 1막 마지막 노래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을 부를 때 느꼈던 전율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생생하고 끔찍스러울 뿐이다
류몬테가 그러라고 말한다면
몬데고도, 당글라스도, 빌포트도 단칼에 내가 다 처리해 줄 수도 있을 것 같은 야쿠자스런 마음까지 생길 판이다.
(너희 셋, 다 주~~~거~~~~써~~~!) 



"류정한 미친 거 아냐?"
함께 관람한 사람이 혀를 내두르며 쏟아낸 감탄사.
그 순간 나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게 인간 맞아?"
(원초적 표현에 민망하긴 하지만 솔직히 내 심정이 딱 그랬다. 암! 인간일리가 없지! 절대로!
 또 모르지, 등딱지를 열면 에너자이저한 밧데리가 우수수 쏟아질지도...)
선거의 뒷끝이라 그랬겠지만
이 사람이 대통령에 출마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찍어야지... 이런 생각까지도 했으니 제대로 홀리긴 한 모양이다.
"문화 대통령 류정한"
그래도 일단 눈은 짝짝이 아니니까 뽀대는 제법 난다. 
(뭐 그 정도면 비쥬얼도 상당히 건전하고...) 
명확한 딕션과 감정의 변화를 그대로 표현하는 그의 목소리는 역시나 황홀경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비록 먼 곳에서 본다고 해도 목소리만으로도 표정까지 읽어내는 게 가능하다.
들음으로써 볼 수도 있게 만드는 배우 류정한의 놀라운 능력!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중독처럼 찾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때는 그가 도저히 끊을 수 없는 강력하고 끔찍한 마약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극심한 금단현상을 겪고 있는 몹쓸 약쟁이들은 상당히, 꽤, 무지, 엄청나게 많다.
어쨌든 그는 무대 위에서 그 날 역시도 충분히 아름다웠고
충분히 찬란했고
그리고 충분히 빛이 났다.
(그래, 그는 확실히 난 놈이다...)



차지연의 메르세데스.
"순수하고 아름다운" 여자였노라 말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솔로 곡은 참 아름답게 부르더라.
(단지 온 몸을 흐느적 거리며 부르는 게 영 어색해서...)
단테스와의 듀엣 곡들은 차지연의 목소리가 좀 강해서인지
옥주현 메르세데스처럼 간절하고 아름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대사 톤이 이상하게 약간 신파조로 느껴지기도...
개인적으로는 옥주현 메르세데스가 이 뮤지컬에는 더 어울리는 것 같다는 결론을...
대신 차지연이 "지킬 & 하이드"의 루시를 하면 정말 딱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차지연 메르세데스가 너무 자신만만한 여장부처럼 보여서였을까?
그녀는 몬테크리스토도 몬데고도 결국은 선택하지 않고
혼자 꿋꿋하게 잘 살아낼 여자처럼 보였다. (원작처럼...)
<영웅> 이후로 오랫만에 무대에서 본 조휘의 모습 역시도 반가웠다.
조휘의 몬데고는 참 처량하고 절절하더라.
그는 메르세데스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구하는 여린 남자였고
그 절망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거칠고 강한 사람으로 보여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최민철 몬데고에게서 느끼지 못한 "연민"을
나는 조휘의 몬데고에서 느꼈다.



2층 발코니석에서의 관람은 나에게 잊지 못할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선사했지만
공연 자체는 전체적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무대 스크린과 조명에 감탄케하는 의외의 성과까지 있었다.
확실히 1층 앞좌석에서 보는 스크린과 조명은
전체적인 조망이 가능한 2층에서의 그것과는 다른 평가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니버설아트센터 발코니석 관람은 
절대로 절대로 다시 감행하고 싶지는 않다.
(허리 제대로 작살난다...)
 


프랑크 와일드혼의 작품도 그렇지만 배우 류정한의 무대는 내겐 그렇다.
꼭 뒷심을 발휘하게 만든다.
프랑크 와일드 혼이 만드는 작품들은 일단 드라마틱하면서도 격정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OST도 "must listen" 필수 아이템으로 등극하고...
거기에 괴물스럽게 완벽히 배역을 진화시키는 "류정한"이라는 배우가 가세한다면?
이겐 정말 끝장인거다.
솔직히 노래를 너무, 제대로, 끔찍히 아릅답게 부른다.
작품 속 인물에 대한 해석도 너무 탁월하고,
회가 거듭될수록 인물과 배우가 갖는 일체감이라는 게 진화 혹은 성숙의 단계 그 이상이다.

포인트를 똑똑 찍어서 말하는 대사 톤과 호흡 조절은 가히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한 번도 그가 무대 위에서 헉헉대며 숨차 하는 모습을 본 적도, 들은 적도,  느껴본 적도 없습니다.
과감한 액션 히어로가 되어 과거엔 하지 않았던 엄청난 몸쓰기를 보여주는 현재까지도 말이다.
(진심으로 묻고 싶다. 숨을 쉬긴 쉬느냐고...)
부러우면 지는 건데...
차라리 부러운 걸로 끝나면 오히려 다행이다 싶다.
부러움이 파산으로 직결되는 게 이 몹쓸 약쟁이들의 현실인지라...
내가 당글라스도 아닌데
류몬테는 자꾸 나를 파산을 선물한다.
그리고 이건 정말이지 너무나
"공정치 못한 일" 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2. 4. 06:29
 "저 소년은 오직 너제트라는 말만 포옹합니다.
  저 놈의 말 대가리를 제가 뒤집어쓴 것 같습니다. 저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연극 <에쿠우스>의 시작은 이렇다.

얼마나 가슴 떨리게 하고 얼마나 치열하게 바라봤던 연극인가...
내가 기억하는 <에쿠우스>는
"중독"과 "탐욕"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대학로 세번째 연극열전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으로 2009년 다시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많이 두근거렸고 그리고 첫사랑을 재회하는 것처럼 마냥 떨렸다.
송승환과 조재현의 다이사트.
젊은 시절 알런으로 무대 위에 올랐던 그들의 감회에
주책없이 동참하기까지 했다.
김태우와 류덕환, 그들의 알런이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했다.



2005년 김영민 알런에 남명렬 다이사트를 신화처럼 그리고 아직도 현실처럼 생생하고 기억하고 있는 나...
5년만에 보게 된 <에쿠우스>는
그러나 내겐 황무지를 바라보는 것처럼 피폐한 모습이었다.
코믹버전의 에쿠우스를 보면서 10분의 뜬금없는 인터미션에도 불구하고
지루함과 오랜 싸움을 해야만 했다.
조재현 연출의 <에쿠우스>는
그전까지 봤던 집요하고 끈질기고 그리고 실험적인 공연을
과감하게(?) 시장판으로 내돌리기로 결정한 듯 하다.
연극의 대중화를 위해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열극열전 시리즈는
아마도 조재현이라는 배우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으리라.
그래, 그건 정말 인정한다.
그리고 그의 노력과 열정에는 누가 뭐래도 기립박수를 보낸다.
물론 연극열전의 작품들이 전부 괜찮았던 건 아니지만,
어찌됐든 뮤지컬의 대중화에 밀려 침체기에 놓여 있던 연극의 유료관객 수를 엄청나게 늘려놨다는 건
내게도 대단한 이벤트요 혁신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그래도...
에쿠우스를 시장판으로 내돌린 그의 연출에
나는 너무도 너무도 화가 치민다.



송승환, 류덕환
스크린을 압도한 두 배우의 연기는
알몸에 가까운 근육질의 8마리 말들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고 파괴된다.
(2005년에 비해 말 한 마리가 늘었다. 5년 후에는 9마리의 말이 등장하게 되는 건 아닐까???)
"정열을 파괴할 순 있어도 창조할 순 없다"
다이사트의 말이 무색할 만큼 알런의 열정은 그 전에 이미 사라졌고
(그래도 이 연극에서 제일 눈에 띄는 사람이 바로 류덕환이다.
그의 표정과 말투에는 알런이 어쨌든 담겨있다. 행동은 모호했지만... )
다이사트는 마치 TV 브라운관을 통해 드라마를 시청하듯 알런을 향해 내내 심드렁한 모습이다.
(여차하면 체널을 돌릴 기세다)
공연 시작 전에 송승환 다이사트가 먼저 나와 혼자 보란듯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
뭐랄까, 소문 무성한 무당집에서 바람잡이가 순서표를 나줘주며 손님들을 떠보는 액션 같이 불쾌했다.
그래도 아버지에 비하면 다이사트의 불쾌감은 그나마 봐줄만 하다.
철저한 금욕주의의 알런의 아버지는
"개그콘서트"에 출연해도 단박에 인기를 끌 수 있을 만큼 잔인하게 코믹하다.
코믹한 금욕주의자라니...
때때로 아버지로 인해 웃어대는 관객들.
나는 그런 웃음을 이끌어내는 연극이 너무 못마땅하고 너저분하고 난잡하게 느껴졌다.
알런의 아버지는 결코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의 금욕이 비록 겉모습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그런 이유로 더 철저히 냉소적인 비웃음을 안겨줬어야만 했다.
그래야 극의 후반부 포르노 영화장에서 아들을 마주치는 장면에서 이중적인 인간의 근본과의 대면을 보며
관객들 또한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듯 진저리를 쳐야 했다.
그러나 2009년 에쿠우스의 아버지는 처음부터 발정난 인간에 불과했다.
그는 아마 꿈에서도 금욕을 생각하지도 못할 인물이다.
그렇다면 알런의 어머니는?
교사출신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는
과연 자신의 아들에 대해 감정을 가지고 있기는 한건가?
2005년도에 나는 어머니에게서 어쩌지 못하는 "애증"을 느꼈다.
지금은 제멋데로 노는 아이에게 건성으로 대답하는 피곤에 찌든 부모를 보는 느낌이다.
알런의 부모들은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버린 걸까?



알런을 다이사트 박사에게 부탁하는 판사는.
아무래도 직업이 잘못 표기된 것 같다.
내가 느낀 그녀의 모습은 다이사트 박사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지는 여비서에 불과했다.
늘씬한 다리를 보란 듯이 꼬고 앉아서
심각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태도로 알런을 부탁하고 종종 찾아와 경과를 듣는 그녀는
당황스러웠고 깊이감이 없었다.
마치 가십기사를 대하는 여비서의 포즈 그대로였다.
그녀가 구하고 싶었던 건 불쌍한 알런의 영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판사가 유부남 정신과 의사를 상대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조용히 그녀의 손을 붙잡고 다른 정신과 의사를  만나게 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돈많은 재벌 노인네라도 소개시켜줘야만 할 것만 같다.



...... 혼란스러웠다. 연극 《에쿠우스(Equus)는 비극인데 관객은 숭고한 주인공이나 좌절이 아니라 다른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넋을 낚아챈 건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말(馬)들이었다. 절대 다수인 여성 관객은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때 온통 말 이야기뿐이었다. 그들이 숭배하는 것은 근육질의 말 같았다. 그렇다면 연극이 변한 것인가, 관객이 달라진 것인가...... 이 연극은 미완성이다. 비극을 사랑한 관객은 실망했을 수도 있다. 말들을 강조한 이번 《에쿠우스》는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서성이는 것 같았다. 대중성을 얻었지만 작품의 정신까지 전달됐는지는 모르겠다. 즐기다가도 서글퍼졌다......

누군가 이런 기사를 썼다.
그리고 나는 전적으로 이 기사에 동의하며
이렇게 동의해야만 하는 게 너무 화가 난다.
"과연 나는 누구를 숭배해 본 적이 있는가?"
알런을 치료하며 스스로 던지는 다이사트의 질문은 공허해지고 말았다.
더불어 알런이 미치게 부럽다고 말하는 그의 고백 또한 정당성을 잃었다.
말의 성전에서 의식을 치르고 널브러진 알런을 부등켜 안으며
내가 널 치료해주겠다고 했을 땐
"너나 잘하세요!"라며 친절한 금자씨가 되어 말해주고 싶었다.
피곤에 찌든 다이사트가 자신의 힘으로 구할 수 있는 건 과연 뭘까?



2005년 내가 그토록 정열적으로 봤던 에쿠우스는
성적인 판타지를 주는 애로물도
턱없는 웃음을 주는 코믹물도 아니었다.
내 기억 속 알런과 너제트가 의식을 치루듯 달리는 장면은
성스러웠고 장엄했었다.
(그리고 나는 분명 그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었다)
그러나 떡칠(?)을 하고 나온 건장한 보디빌더들이 취하는 과한 동작들은
경박한 섹스코드를 눈 앞에 들이대는 것 같아 불쾌하고 난감하기까지 했다.
남창처럼 외부에 전시된 썬텐된 그들의 몸을 보며 나는 연극 <에쿠우스>의 비극성을
연극이 끝난 로비에서 느닷없는 느꼈다.
(그나마 그들 얼굴이 두꺼운 분장으로 덮여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맨 얼굴로 그렇게 서있었다면 얼마나 서로 난감했을까?)



2005년 포스터를 찾아 보면서 
같은 작품도 누군가에 의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걸 실감하며
나는 심각하게 <에쿠우스>에 대해 현재진행형으로 당황하고 있다.
어쩌면... 어쩌면...
김영민 알런과 남명렬 다이사트가 너무 강렬했기에 내게 <에쿠우스>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긴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결코 그 고정관념을 나는 결코 깨고 싶지 않다.
2005년 <에쿠우스>는 내겐 분명 구원같은 작품이었는데
2009년 <에쿠우스>는 내겐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 연극에 진심으로 칭클창클을 메고 싶다.
너접한 푸줏간을 다녀온 느낌이다.



    -----  only 퍼포먼스 <에쿠우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2. 29. 06:12
 <오 해피데이> - 오쿠다 히데오


 오 해피데이


오쿠다 히데오, 요시다 슈이치, 시마다 마사히코!

이 세 사람들이 바로 현재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중년 남성 작가입니다.

세 명의 작가 모두 이력이 특이하고 글 쓰는 스타일도 다르죠. 우리나라에 상당히 많은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세 명 모두 얼마 전 신작을 발표했습니다.

오늘은 이 세 명의 작가 중 가장 연장자인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오 해피데이>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1959년 출생한 오쿠다 히데오는 기획자, 잡지 편집자, 카피라이터, 구성작가 등으로 일하다가 불혹의 나이에 소설가로 등단했습니다.

무림의 고수까지는 아니지만 산전, 수전, 공중전을 어느 정도 경험하고 본격적인 글을 쓰기 시작한 셈이죠.

그의 매력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유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중그네>, <인더풀>, <면장 선거>...

이 일련의 시리즈 제목만 들어도 웃음이 절로 나지 않나요?

환자보다 더 정신병자 같은 엽기 정신과 의사 이라부와 사계절 육감적인 핫팬츠 차림으로 비타민 주사를 엉덩이에 힘차게 내리꽃는 간호사 마유미.

이 등장인물을 가지고 3년 동안 무려 3권의 책을 쓴 작가죠.

오쿠다 히데오의 장점은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은 이야기로 뻔뻔하게 탈바꿈시킨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거 혹시 내 이야긴가?”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죠.

머릿속으로 급행열차가 지나가거나, 혹은 이유없이 기분이 가라앉아 땅이라도 뚫을 기세인 사람이 읽으면 기분을 UP 시키는데 즉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죠.

(어쩐지 애들은 가~~ 애들은 가~~~라고 말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


<오 해피데이>는 일상의 묘한 부분(?)에서 특이한 행복감에 빠져 있는 6명의 남녀가 6편의 옴니버스 속에 등장합니다.

인터넷 경매 싸이트 옥션에 중독된 42살 전업 주부 노리코.

물건 구매자가 상품평에 좋은 말을 써 주면 그녀는 변비도 사라지고 눈가에 주름도 사라집니다. 젊어졌다는 주위의 찬사도 듣다 보니 없던 자신감도 마구 샘솟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만 있다 돌아오던 학부모 간담회에서 꽤나 날카롭고 예리한 질문을 던져 학교 관계자들을 쩔쩔매게 만듭니다. 뒤따라 이어지는 꿀 먹은 주변 아줌마들의 선망의 시선들...

옥션 아이디처럼 그녀에게 비로소 “Sunny Day"가 찾아 온거죠.

급기야 남편이 아끼는 한정판 텐테이블을 일종의 응징(?)으로 옥션에 올리기에 이릅니다.

옥션을 통해 젊음을 되찾고 자신감을 얻는 주부라...

어쩐지 좀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고백은 정곡을 찌릅니다.

“ ...... 타인에게 칭찬받은 적이 없는 주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칭찬 하나에도 기뻐한다. 그리고 그런 충족감을 느끼고 싶어 매번 옥션에 참가하게 된다..... ”

좀 뜨끔한 부분 아닙니까?


14년 동안 근무했던 회사의 도산하는 바람에 36살 유스케는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됩니다. 다행히 아내가 결혼 전 다니던 회사에서 재취업하라는 제안을 받게 되고 유스케는 아내의 자리, 전업 주부가 되기로 결정하죠.

그런데 이 남자! 여기서 유토피아 비슷한 걸 발견합니다.

유치원 다니는 아들의 도시락을 싸고, 매끼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에 빨래, 다림질까지...

집안일을 하면 할수록 점점 재미를 느끼고 더 잘하고 싶어져 요리책도 사고 일의 노하우도 하나씩 터득하고, 매일의 식사 메뉴를 생각하는 등 주부의 일상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죠.

한 입만 베어진 체 남겨진 아들의 도시락 속 반찬을 보면서 남자는 생각합니다.

“ ...... 자신이 만든 반찬이 맛없다는 것은 설 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세상 여자들은 자신이 만든 반찬에 내려지는 심판을 어떻게 견뎌 낼까? ...... ”

성실한 전업 주부가 된 남자는 사물을 보는 시각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죠.

비록 놀이터에서 만난 노인에게 <역경을 이겨내기 위한 50가지 명언>이라는 책과 함께 동정의 눈길을 받기도 하지만 다른 시선을 경험하게 하는 역할 바꾸기라면, 그리고 그 자리가 당사자에게 "happy”하다면 기꺼이 응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내와의 별거로 혼자 남게 된 38살 마사하루는 자신의 집을 점차 남자들의 로망인 꿈의 아지트로 만듭니다.

아내는 잘 꾸며진 남편의 집을 방문하고 충격을 받습니다. 여자를 끌어들인 것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고 아내는 말하네요. 함께 산 8년의 세월에 싹 무시된 기분이었다고...

남자에게 진짜 자기 방이 필요한 것은 삼십 대가 지나서라고 책 속의 남자들은 말합니다. 번듯한 집도 있고 CD나 DVD, 오디오 세트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그걸 즐길 수 있는 내 공간이 없다는 게 서글프다는 거죠.

그런데 둥지를 짓는다는 건 또 여자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하다네요. 그래서 달랑 하나밖에 없는 집을 남자의 왕국으로 만들 수는 없는 거라고, 집이란 여자들의 성역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던 사실입니다. 서른을 넘긴 남자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걸 말이죠. 곰곰 생각해보면 구구절절 맞는 말인데도 말이죠.

사람들은 누구나 “우리 집에 놀려와!”라고 말할 수 있는 아지트를 소망한다는 거.

딱 내 이야기다 싶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부업 일거리를 가져다주는 10살 연하의 남자를 꿈속에 등장시켜 은밀한 즐거움을 누리다 그야말로 헛물만 켜게 된 전업 주부가 등장하는가 하면, 남편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겠다며 사표를 낼 때마다(아내는 그런 남편을 “성실한 한탕주의자”라고 표현하더군요) 묘하게도 놀라운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게 되는 일러스트 아내 이야기, 젠체하면서 환경과 미래를 생각한다고 으스대는 로하스 예찬자를 삐꼬는 소설을 쓴 소설가도 등장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로하스 예찬자 중엔 아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편은 가정의 평화라는 절대절명의 생존(?)을 위해 아내의 침묵 속에서 거친 현미밥을 꼭꼭 씹어 삼기며 출판사에 전화를 합니다.

“그 원고 제발 파기해주세요~~~” 라고...


6개의 에피소드 하나하나 읽다 보면 재미도 있지만 은근히 짠한 마음도 듭니다.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 모두가 그대로 내 삶의 모습이고 당신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죠.

“모든 주부는 언제나 혼자다!”

<오 해피데이>는 그러니까 늘 혼자인 주부를 향한 작은 위로와 다독거림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따지고 보면 주부가 “오 해피데이!”라고 말 할 수 있다면 가정 역시도 절로 “오 해피데이!”스러워지는 거 아닌가요?

가정이 “happy”해지면 사회도 "happy”해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역시 “happy”해지고... (정치도 “happy”해질거라는 공상만화스러운 전망은 차마 못하겠습니다.)

세상의 숱한 주부들에게 어쩐지 한 번 묻어 보고 싶어집니다.

“지금 행복하세요?” 라고 말이죠.


Oh! Happy한 당신의 모든 Day를 위하여~~~

Bravo~!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2. 4. 06:11
<공중그네>의 작가 오쿠다 히데오.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마니아 층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 일본 작가.
이 사람의 소설은 톡 쏘는 탄산 음료 같다.
입 안의 맛과 배 속에서 느껴지는 맛이 다르다.
마냥 재미있다고 말하기엔 미안한 그런 내용.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데도 뭔가 사람을 끌어들인다.
소시민의 매력과 능청이라고나 할까?
계산된 웃음이 아니라 일상의 단면을
아주 기발하고 재치있고 캐치한다.



그의 신착 <오 해피데이>
소소한 일상에서 의외의 순간에 해피함을 느끼는 6명의 사람을 그리고 있다.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며 동의하게 된다.
"맞아! 맞아!" 하면서...
30, 40대 중년의 문턱에 서 있는 사람들이 꿈꾸는
일탈, 그리고 생활!
일탈과 생활을 나란히 써 놓고 보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같지만
여기에 코믹과 상상이 첨가되면서
놀라운 재미를 선사한다.



인터넷 경매가 삶의 낙이 된 주부,
그 삶의 낙은 여자에게 활기를 주고 젊음을 되돌려준다.
여자는 온 집을 뒤적이며 옥션에 올린 물건이 없는지 고심한다.
그녀 일생에 포인트가 된 옥션 경매..,
느닷없는 회사의 도산에 전업주부가 된 남자.
이런데 이런!
"전업주부"가 그 남자의 "청산"이 될 줄이야...
별거를 선언한 아내 덕분에 남자의 로망인
아지트를 만든 남자.
로하스에 빠진 아내.
그 이야기를 소재로 소설을 썼으나 가정의 평화(?)를 위해
출판사에 원고 파기를 간청하는 소설가...
읽다보면 참 재미있는 군상들이란 생각도 하게 되지만
딱 내 옆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더 공감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표지에 있는 이 아이의 표정이 너무 재미있어
자꾸 책을 덮게 된다.
상당히 "개죽이(?)"스럽게 느껴지는 아이의 표정.
귀엽기도 하고, 의뭉스럽기도 하다.
책의 내용과 딱 어울리는 그런 표정을 얼굴 가득 짓고 있는 아이...
딱 오쿠다 히데오 스러운 표정이 아닐 수 없다.
담장 위에 앉아 있는 고양이의 표정도 결코 예사롭지 않고...
이거 은근히 중독성 있다.
오쿠다 히데오처럼...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9. 7. 05:55
8월 30일 VIP 석에서 처음 관람한 후
지난 토요일 무작정 세종문화회관을 찾아 낮공연을 관람하다.
그것도 3층에서... ^^
급격한 자리 이동이긴 했지만  단지 노래만 들어도 좋을 것 같아서 찾아간 곳.
그리고, 확실히 그랬다.
3층까지 울리는 브래드 리틀의 목소리는 여전히 소름을 넘어 공포로 다가온다.



톰 행크스를 떠올리게 하는 Jekyll의 목소리.
(선량하고 장난기마저 느껴지는 다정한 Jekyll~~~)
그러나 Jekyll일 때도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장면에서는 일부러  Hyde의 거친 목소리를 낸다.
가령 이사회 장면의 거친 논쟁과 일기를 보는 엠마의 모습을 보고 다그치는 장면 등.
그럴 때 듣게 되는 목소리가 개인적으로 참 좋다.
Hyde가 살짝 섞여있는 Jekyll의 그 목소리.



비록 먼 곳에서의 관람이었지만
첫번째 관람 시 놓쳤던 부분들 몇 개를 찾아내고 혼자 놀라기도 한다. 
확실히 더 안정적이고 전체적으로 풍부하면서도 가득찬 소리의 울림.
거칠다 못해 야만적이기까지 한 Hyde의 목소리.
3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만 해도 그랬다.
"어디, 여기에서 어느 정도까지 느낌이 전달되나 보자!"
그런데 결국 혼자 유치한 겨루기를 했던 셈.



루시와 엠마의 목소리도 역시 좋았다
3층에서 배우들의 목소리 떨림까지 다 전달받았다는 건
역시나 환상적인 즐거움에 속한다.
3층 관람에서 절대적으로 놓칠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는
무대를 전채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는 사실
조명의 변화하든가, 무대배경의 이동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실험실 장면에서는 무대 전체를 서서히 실험실로 축소시켜 집중시킴으로
관객들의 시선 하나하나를 그 안으로 응축시킨다.
우리나라 공연의 조명과 무대효과들을 떠올리게 한다.
극적으로 확실하게 구분됐던 "The confrontation"의 조명과 인공적인 기계음
배우의 역량에 따라 이 모든 것들이
2차, 3차적인 요소로 한발짝 물러날 수 있음을 절감한다.



문득, 브래드 리틀의 <오페라의 유령>이 간절히 보고 싶다.
그 역시나 한국에서 "팬텀"으로 다시 공연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는데....
<Jekyll & Hyde>를 연기하는 그의 손끝을 보면서
"팬텀"을 연기하는 그의 손끝은 과연 어떨지 궁금해졌다.
"I Need To Know!"
<Jekyll & Hyde>에서 그의 손끝을 따라가는 게 얼마나 숨막히던지...
좋겠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목소리와 손끝을 가지고 있어서.

홀로 열심히 중독 중이다.
그리고 그게 지금은 꽤나 심각한 문제로 대두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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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The Moment


This is the moment
This is the day
When I send all my doubts and demons on their way
Every endeavor I have made ever
Is coming into play is here and now today

This is the moment this is the time
When the momentum and the moment are in rhyme
Give me this moment this precious chance
I'll gather up my past and make some sense at last


This is the moment when all I've done
All the dreaming scheming and screaming become one
This is the day see it sparkle and shine
When all I lived for becomes mine


For all these years I've faced the world alone
and now the time has come to prove to them I made it on my own


This is the moment
My final test
Destiny beckoned I never reckoned second best
I won't look down I must not fall
This is the moment the sweetest moment of them all


This is the moment damn all the odds
This day or never I'll sit forever with the gods
When  I look back
I will always recall
Moment for moment
This was the moment
The greatest moment
Of them all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09. 8. 19. 10:38
정말 무지 많이 엄청나게 인내심을 가지고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영화의 개봉소식이 들린다.
2009.09.24. 개봉 예정
(그러나 OTL ---> 아직 한달이라는 긴 시간이 남았다.. 흑흑)
드디어... 드디어....
포스터가 공개됐다.



<너는 내 운명>, <그놈 목소리>를 만든 박진표 감독의 세 번째 휴먼스토리
김명민, 하지원 주연.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마친 김명민이
72kg 이었던 몸을 52kg으로 말려가며 찍은 영화.
이 사람의 집념과 열의가 무섭고 섬뜩하다.
(이건 거의 공포의 수준이다....그렇지 않은가?)



서서히 몸이 마비되어 가는 루게릭 환자를 살아냈던 배우 김명민.
어떤 느낌일까?
의식과 감각은 그대로이지만
온몸의 근육이 점점 마비되어 간다는 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이라고 말하는
루게릭병과의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는 "종우"를
배우 "김명민",
그가 살아냈다.



180cm, 72kg의 건장한 그를
앙상한 마른 나무로 만들어 버린 영화.
사람이 이렇게까지 말라 비틀어질 수 있다는 걸
무섭게 깨달았다.
김명민,
그는 모든 생활과 모든 감성,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전부 "종우"라는 인물에게 완벽히 내주고
자신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 처럼
마치 무명의 그림자로 남아버린 것 같다.
정말... 김명민은 거기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 없는 그 사람을 다행히 알아볼 수 있다.)



처음에 이 영화의 주인공 "종우"는  한류스타 "권상우"였다.
아마 지금쯤 권상우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지 않을까?
그가 아무리 앙상하게 살을 뺀다고 해도 김명민처럼 되진 못할테니까...
물론 이 말은 초대형 한류스타 권상우를 폄하하기 위한 표현은 아니다.
권상우의 엄청난 노력과 열심으로 만든 
비현실적일만큼 조각같은 근육 역시나 그 무엇보다 멋지고 대단한 것이기에...
(권상우 같은 몸을 갖는다는 건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개인적으로 확신하기에... )
그리고 무엇보다 권상우 본인은 six-pack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건장한 six-pack 들은 결코 권상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기에... ^^



연예인의 길은 자칫 잘못하면 "마약에 중독되는 삶"과도 같은 길이라고 하는데....
"명민본좌" 그에겐 "그의 연기" 자체가
극도로 독한 "마약"처럼 느껴진다
그는 이 중독을 매번 어떻게 살아나올까?
생사를 거는 그의 연기자로서의 삶이
문득 최고의 공포로 다가온다.



그의 지독한 마약성분에 한번 빠져든 사람들은
그만큼의 지독한 "금단현상"을 벗어나기 위해 또 사투를 벌여야 한단다.
그런데 배우 김명민,
그에게선 누군들 벗어나고 싶겠는가?
연기자는 오직 연기로 말해야 한다는데.....
할 말 많은 그의 언어를
우리는 아마도 내내 열심히 경청하게 되지 않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6. 15. 06:30
 <탱고> - 구혜선


탱고
 

먼저 “의외다, 놀랐다”는 말부터 하고 싶은 책입니다.

내가 아는 “구혜선”은 인터넷 얼짱으로 한동안 메스컴을 타기도 했던, 무슨 복을 타고 났는지 무명의 설움도 없이 하룻밤 자고 났더니 갑자기 스타가 되어 버린, 노래도 그림도 조금 하는 신세대 연예인 정도였는데....

그리고 한창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로 상종가를 치고 있는 캔디 걸!

그런 그녀가 책을 출판했다고 했을 때,

솔직히 전 그랬습니다.

“연예인 그거 참 좋은거구나!. 치열하게 살아보지도 않고 책씩이나 낼 수 있어서... 이름값 한다고 그래도 팬들이 기본적은 판매부수는 채워주겠네!”

어쩌면 “새파랗게 어린 나이에......”라는 괴씸죄까지 덤으로 얹었는지도 모르죠.

인터넷을 찾아봤습니다.

1984년생, 이제 25살....

휴~~, 피고 싶지 않아도 향기까지 절로 나는 나이. 왠지 명확한 이유 없이도 사람 주눅들게 만들어 버리는 이제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나이.

그런 25살의 한 여자가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 나이를 한참 전에 지나온 한 여자가 그 글을 읽습니다.

제게 <탱고>는 그렇게 시작되는 리듬이었습니다.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한 사랑하는 남자 종운, 그리고 물질적인 풍요를 가진, 젊음을 살 수 있다면 목숨도 버릴 수 있을 것 같이 다가오는 남자 민영, 그리고 어느새 소울메이트로 스며들어 버린 또 한 남자 시후.

그리고 한 여자 “연”

삼각, 사각관계를 넘어 급기야 원만한 관계가 형성되는 연예소설이 그려지나요?

연예소설이 맞긴 한데, 이게 참 묘한 느낌입니다.

소설을 읽는 두 가지 방식!

줄거리 혹은 등장인물을 따라가는 방식과 감성을 따라가는 방식.

이 책은 그러니까 후자에 속하는 소설입니다.

분명 줄거리를 가지고 있긴 한데 별로 중요하진 않습니다. 유치한 부분에 극도의 환상과 신파가 버젓이 등장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 유치함을 관통하는 감성으로 무장한 묘한 성장통이 있습니다.

어른아이의 성장일기.

어릴 때 그랬습니다.

담배와 커피가 자유로워지는 때가 어른이 되는 시기라고...

게다가 둘 다 중독의 위험을 가지고 있기까지 하죠.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건, 하나씩 하나씩 중독되는 것들의 가짓수를 늘리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탱고”

자유분방하면서도 절도마저 느껴지는 춤. 상대방을 무심하게 바라보면서도 때론 집요하게 들러붙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시선, 그리고 완벽하게 일치되는 발동작과 호흡.

보는 사람의 심장까지도 설레게 만드는 치명적인 유혹!

그러나 알고 있나요?

설렘은 단지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요.

설렘을 선택한 사람은 그런 이유로 대부분 다시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요.

탱고가 시작되기 전, 빨간색 장미가 강렬함으로 당신에게 말을 걸어올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게 언젠가는 다 지나가는 것”이라고...

탱고를 멋지게 추기 위해선,

자신을 놓을 줄 알아야 한다네요, 함께하는 상대를 믿어야 하기에 더더욱 자신을 놓아야 한다고요.


설탕이 듬뿍 들어 있는 커피에 익숙해지면,

에스프레소의 순수한 정수의 맛은 결코 느낄 수 없다는 사실.

사람이 가장 먼저 느끼게 된다는 쓴맛.

이 첫맛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일상은 더 이상 달달하지 않을 것이고,

그리고 예기지 않은 일들이 기본적인 간격조차 주지 않은 채 무차별적으로 일어날 때 무작정 도망을 꿈꾸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춘”이라는 달달함 속에 숨겨진 방황과 헤맴의 쓴맛.

그 사실과 현실을 깨닫는 순간.

그토록 믿었던 사실조차도 판타지의 일부였음을 인정하게 될지도 모르죠.

누군가는 말합니다.

잠시 흔들리고 방황하는 것일 뿐, 우리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돌아가서도 당신은 또 다시 길을 잃을 수 있고 그리고 또 다시 자신을 의심하게 될 수도 있을 거라고.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건,

순수하기 때문에 헤매는 거라고 “연”이라는 인물의 입을 빌어 25살의 당돌한 아가씨가 말을 하네요.

그러면서 덧붙입니다.

헤매는 자신을 질책하지 말고 흔들리는 자신을 아껴주라고...

어떠한 일 앞에서도 자신을 신뢰하라고 25살 그대로 꽃인 청춘이 당부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반드시 행복해질 거라고...
25살 이 당돌한 아가씨의 당부가 단지 환상 혹은 건방으로 다가올지라도,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적어도 이 당돌한 아가씨는 하나의 감성을 잃지 않고 한 권의 책에 그대로 담아냈으니까요.
어느날,
류이치 시카모토의 "탱고"를 들었는데 번쩍 눈이 뜨였다. 한마디로 꽂힌 거다. 
구혜선,
그녀에게 소설의 모티베이션이 됐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탱고!


묻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은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무언가에 꽂혀 있나요?

그렇다면 이제 저도 궁금해집니다.

당신의 리듬이 어떻게 시작될지.

또 다른 “탱고‘ 혹은 다른 무언가를 들을 수 있길 기다리면서......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09. 5. 17. 22:35
아무리 완벽한 날이라도
언제나
그 끝은 나게 되어 있고...



한쪽이 욕망으로
괴로울 때,
다른 한쪽은 고통으로
똑같이 괴롭고....



모든 규칙에 맞설 용기 !
그러나,
도를 넘어서면
용기는
광기로 돌아서고......



허락될 수 없는 것을 향한
중독된 탐닉,
결코
단 한 번도 채워지지 않을
지독한 허기.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