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작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6.29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 최인호
  2. 2011.01.17 <비지니스> - 박범신
읽고 끄적 끄적...2011. 6. 29. 06:39

2010년 10월 27일 집필을 시작해서 그해 12월 26일,
꼭 두 달만에 이 소설을 썼다고 청년작가 최인호는 말했다.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불러주는 것을 받아 적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경외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라고도...
그러나 뭔가에 홀리듯 이 소설을 쓸 때,
최인호는 2008년 5월 발병한 침샘암으로 투병중이었고 지금도 계속 투병중이다.
암치료를 위한 방사선 치료때문에 발톱과 손톱이 빠져 동네 약방에서 고무골무를 사다가
손가락에 끼우고서 20매에서 30매 분량의 원고를 매일같이 직접 만년필로 원고지에 썼단다.
"몸은 고통스러웠으나 열정은 전에 없이 불타올랐다" 는 작가의 말에
나는 문득 벼락이라도 맞은 느낌이다.
이렇게 뜨겁고 치열하게 공포에 가까운 열망으로 업을 사는 사람이 있구나...



한 가정의 모범적인 가장이자, 번듯한 금융회사에 다니던 평범한 사회인 K는
어느날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으러 가면서
이곳 아닌 다른 세계와 뒤섞인다.
아내도, 딸도, 심지어 집안에서 기르던 강아지조차도
왠지 짜여진 극본에 의해 연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매일 눈 뜨고 살았던 일상인데 어느날 이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진다.
울리지 않아야 할 자명종이 울려 잠이 깨고,
항상 쓰던 스킨은 전혀 본 적 없는 브랜드의 제품으로 바뀌어져 있다.
뭔가가 달라졌다. 분명히 어딘가가 틀어졌다.
내 공간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아니 진짜 나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균열을 매우려는 K의 추적은 그렇게 시작된다.

K=K1+K2

...... 나는 곧 '나'가 되었으며 K1과 K2는 합체하여 온전한 하나의 'K'가 되었다. 온전한 K는 하늘과 땅이 가라지기 전의 알파, K를 낳은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머지의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들이 태어나기 전의 태초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


도플갱어(Doppelganger).
뫼비우스의 띠(Ringwanderung)
도플갱어를 만나면 진짜가 죽게 된다고 했나?
Autoscopy 환자에게서 도플갱어 현상이 나타나면
그것 역시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징조라는데...
어느날 갑자가 내가 낯설게 느껴지고
"낯선 나"와 "또 다른 나"가 만나게 된다면?
2박 3일간의 혼돈 속에서 K는 자신의 정체를, 자신의 위치를 찾았을까?
K의 모습은 내 모습의 투영이기도 하다.
끝없이 부정하고, 끝없이 배신하고, 끝없이 새롭게 창조하는,
살아있는 이 시대의 모든 K!
그들이 순간 저벅저벅 일사분란한 병사들처럼 도열해서 일제히 내게 다가오는 것 같다.
K는 월요일 아침 출근하는 지하철역에서 자신이 만났던 모든 사람들과 작별한다.
K는 사라졌을까?
아니면 본래의 K로 비로소 돌아갔을까?
어쩌면 이것 역시도 뫼비우스의 띠인지도 모르겠다.

최인호는 이 소설을 쓰면서
창작욕에 허기가 진 느낌이었다고 했다.
두 달 동안 줄곧 하루하루가 "고통의 축제" 였노라고...
그 하루하루 최인훈 역시도 숱한 K의 분신들과 만났으리라.

최인훈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절박하다.
그리고 삶에서 절박함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최인훈은 소설은 앞으로 더 절박해질지도 모르겠다.
그가 또 다시 시작할 모양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1. 17. 06:00
작가 박범신이 말했다.
...... 작가로 36년을 살았지만, 문학은 내게 여전히 자유의 다른 이름이며 또 방부제이다. 일부 독자들은 아직도 '청년작가'라는 이름으로 나를 부른다. 나의 소망은 청년작가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강력한 '현역작가'로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쓰는 행위를 멈추지 못하는 게 최근 나의 딜레마다. 소설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 '순직'하고 싶은 욕망이 내 속에서 날로 커지는 걸 보는 건 황홀하면서, 동시에 두렵다 ......

누구보다 열혈청년처럼 열심히 쓰고 있는 현역작가 박범신!
이야기로 만들어낸 꺼리들이 아직 그에게는 무궁무진한 모양이다.
그저 놀랍다.
어느 때는 너무나 순식간에 그가 책을 내는 것 같아 읽어내는 것 자체에 무섬증이 일기도 한다.
그의 몸이 전부 언어가 되어 책 속에 콕콕 들어 박힐 것 같아서...
작은 계집아이 "은교"를 만난 떨림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어느 틈에 <비지니스>가 눈 앞에 펼쳐져있다.
끔찍하게 자본주의적이면서
끔찍하게 서글픈 현실을 담고 있는 <비지니스>
간교하고도 잔인한 독재자인 자본의 품 안에서
사람들은 단지 실패한 자와 성공한 자, 두 종류만으로 구별된단다.
그리고 교육도 일종의 '비지니스'의 일종이고...
자식의 과외비를 위해 몸을 파는 유부녀와
부잣집의 숨겨놓은 잉여 재산만을 훔치는 전직 강력계 형사 타잔.
그 둘의 관계는 윤리적으로 공평하다.
소설속 그녀는 말한다.
"내가 원죄를 가졌든 그에게도 감춰온 원죄가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뻤다..."



이 책을 재미있다고 말해야 하나 섬뜩하다고 말해야 하나.
많이 다르긴 하지만 영화 <황해>를 생각나게 한다.
평범한 사람이 살인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자본주의가 무서운 게 여기에 있다.
평범한 사람을 살인자로, 범죄자로 만들어 간다는 것에...
그것도 아주 쉽게!
이제 세상의 주인은 자본이고
그래서 삶의 유일한 전략은 비지니스란다.
섬뜩하고 무섭지만 그러나 확실히 진실이다.



평범한 주부가 몸을 파는 창녀가 되는 과정도 섬득하지만
강력계 형사가 도둑이 되는 과정이 씁쓸하다.

... 경찰에 몸담고 있던 그 시절의 그는 타협이라곤 할 줄 모르는 우직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업소에서 뇌물을 주면 뇌물죄를 추가했고, 업소들과 내통하거나 뇌물을 받는 동료들은 가차 앖이 감찰부서로 넘겼다. 결과적으로 불법 영업을 일삼는 업주들은 물론 동료들에게까지 그라는 존재는 눈엣가시가 되었다. 그를 쫓아내려고, 업주들과 동료 경찰들이 짜고 파놓은 함정은 도처에 있었다. 그는 결국 음모에 말려들었고, 마침내 비리경찰로 몰려 경찰복을 벗지 않을 수 없었다. 터무니없는 모함이었지만 업주들과 동료 경찰들이 짜 맞춘 너무도 교묘한 함정이어서 빠져나올 길이 없었다 ...

몸을 팔아가면서 아들의 과외비를 내는 여자는 
아들이 자면서 이 가는 소리를 들으며 몸을 부르르 떤다.

... 아이가 이를 갈면서 걸어가야 할 벼랑길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내가 몸을 팔면서까지 부추기고 내몰아온, 자본주의 무한 경쟁 사이로 난 광포하고 가파른 벼랑길이었다. 패배하면 죽는다, 라고 말해온 것이 나였고, 아비가 갔던 길을 답습하면 안 된다, 라고 채찍질해온 것이 나였다. 나는 그 애가 오로지 전사가 되기를 바랐다 ...

소설은 읽으면 읽을 수록 목줄기를 잡아챈다.
숨을 쉬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적나라한 현실을 들여다보는 건 참 참혹하다.

... 대도(大盜)로 알려진 '타잔의 정부'가 되는 일과 '자식의 과외비를 위해 몸 파는 어머니'가 되는 일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비윤리적인 일인지를 알 수 없었다. 다른 게 있다면 '타잔의 정부'는 하나뿐이고 '과외비를 위해 몸 파는 어머니'는 이 도시에 여럿이라는 사실뿐이었다. '여럿'이라는 사실이 죄를 더는 길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도시에서의 윤리성이란 안팎에서 일관되게 지켜지는 가치가 아니라, 지켜지고 있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어 얻어내는 가치였다. 쉽게 말해 들키면 반윤리, 안들키면 윤리라 할 수 있었다 ...

더군다가 작가 박범신이 작가의 말에 남긴 글이 더 가슴을 옭죄온다.
그는 지금  자본주의적 폭력성을 좀더 적극적으로 다룬 장편 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를 쓰고 있단다.
뭘 더 보여주고 싶은걸까?
"좀더 적극적으로"라는 표현이 문득 섬득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