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0. 8. 17. 06:40
만약 이 책이 뼈가 있고 살이 있는 형이상학적인 존재라면
나는 이 책의 단어 하나 하나까지도 전부 오도독 오도독 탐욕스럽게 씹어 삼켜
그대로 내 몸 안에 고이고이 간직하고 싶다.
탐이 나도록 아름답고
겁이 나도록 관능적인 소설 <은교>
이 이야기를 사랑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심장에 칼을 쑤셔박는 심정으로 쓴 노시인의 긴 고백의 글은
여기 이렇게 한 사람의 심장뿐만 아니라 온 몸에 칼 이상의 것을 쑤셔박았다.
그래, 어쩌면 이 글에는 정말 차가운 폭력성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로병사가 없는, 아니 생로병사를 이기는 관능.
그 관능은 시간을 이키는 칼이며,
그러므로 최종적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부른다.
신생(新生)의 폭설같은....



이 이야기는 <살인 당나귀>라는 제목으로
작가 박범신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wacho)를 통해 연재했던 소설이다.
(당나귀는 소설 속 노시인의 몰고 다니던 오래된 코란도이가도 혹은 시인 자신이기도 하다)
한 달 반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폭풍같이 써내려간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가 제목을 바꿔 <은교>로 출판됐다.
<고산자>를 발표한 후 박범신은 말했었다.
"감수성을 충분히 해방시키는 아름답고 슬픈 연애소설을 준비중" 이라고...
그리고 그는 <은교>라는 작품을 책으로 출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37년 동안의 작가 생활을 주마등처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내 안의 다양한 욕망과 감수성을 반영했기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남는 소설일 것 같다." 라고.
그리고 나 또한 거기에 한 마디를 덧붙인다.
내게도 이 이야기가 그렇다고.....
<촐라체>, <고산자> 그리고 이 책 <은교>까지.
박범신은 3권의 책을 "갈망의 삼부작"이라고 이름 붙였다.
<촐라체>에서는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인간 의지의 수직적 한계를,
<고산자>에서는 역사적 시간을 통한 꿈의 수평적인 정한을,
그리고 <은교>에 이르러, 비로소 실존의 현실로 돌아와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감히 탐험하고 기록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한 마디 당부를 한다.
'밤에만' 쓴 소설이니, 독자들도 '밤에만' 읽기를 바란다고...
나 또한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이 책을 손에 잡고 있을 때는 대부분 밤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은 뜨거웠고
생각은 차가웠다.



69살 노시인 이적요가 17살 계집아이 한은교에게 느끼는 감정을 읽으면서 누구도 감히 비난하진 말자.
부도덕하다고, 혹은 추잡하다고 손가락질하지도 말자.
그걸 "사랑" 아니라면 도대체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시인의 노트와 그의 제자가 남긴 노트, 그리고 시인의 변호사 Q.
이 책은 세 사람의 목소리가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이야기의 중심은 모두 "은교" 였던가?
혹은 노시인 "이적요" 였던가? 아니면 그의 제자 "서지우" 였던가?
모든 예술과 문학의 시작이 질투라면,
그래, 이 세 사람의 관계는 그대로 예술이고 문학이다.
시인의 노트에 남겨진 글들은
그리고 어떤 시들보다도 아름답고 황홀하다.
단어 하나 하나가 전부 살아서 나를 수시로 꿀꺽 꿀꺽 삼켜버려 읽는 동안
많.이.두.려.웠.다.



자신이 사망한지 1주기가 되는 날 발표하라는 시인의 노트.
그 속엔 두 가지 비밀이 쓰여있다.
자신이 은교를 사랑했다는 것과, 그리고 자신의 제자 서지우를 죽였다는 것.
그럼으로 해서 자신이 판 암굴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 죽음을 선택한 노시인.
그의 머리맡엔 은교가 선물한 작은 토끼 인형이 놓여 있었다.
총.총.총. 뛰던 은교의 발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토끼...
평생 시(詩)만을 써온 시인 이적요가
서지우라는 제자의 이름을 통해 발표한 포르노그래피 소설.

...... 어쨌든 나는 사람들이 '천박한 것'이라고 비난하도록 획책해 쓴 그것이, 시인 이적요의 작품이라고 까발겨질 날이 언젠가 올 거라고 예감했고, 그 작품이 마침내 책이 되어 나왔을 때, 본능에 따른 나의 또다른 충동, 예컨대 나와 나의 시세계가 얼마나 하찮은가 하는 것을 세상에 극적으로 까발리는 과정 안에, 돌입했다고 느꼈다.... 결국은, 시인으로 성역화해온 나의 '빛나는 성취'를 스스로 시궁창에 버리고 싶은 자학의 한 수단으로, 서지우를 대리인 삼아 내가 '당신들 문법'에 맞춰 포르노그래피 소설을 썼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

문학은 어떤 이에겐 질병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그런 사람도 있다고...
노시인은 자신의 제자를 두고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자신 또한 고백한다.

...... 내가 세상이라고, 시대라고, 역사라고 불렸던 것들이 사실은 직관의 감옥에 불과했다는 것을, 시의 감옥이엇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시들은 대부분 가짜였다 ......

그리고 이 말은 은교라는 한 아이를 사랑함으로써 시작된 고해성사로 끝을 맺는다.

...... 너를 만나고 비로소 나의 진짜 얼굴을 스스로 보게 된 셈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러므로 나의 '진짜' 얼굴을 보아야 한다. 시인 이적요는 '전략'에 따라 자신의 '우상화'를 염두에 두고 시를 써온 '가짜 시인'이었고, 불과 열입곱 살 된 소녀를 통절하게 간음하고 싶었으며, 질투심에 눈이 멀어 끝내 제자를 죽인 사람이다. 어떻게 그 사실을 다 묻어두고 무덤 속에서나마 그 모든, 시끄러운 우상화를 받아들일 것인가. 인생의 마지막에 너를 통해 만나 경험한 본능의 해방이야말로, 나의 유일한 인생, 나의 싱싱한 행복이었다. 그게 바로 나 이적요다. 이적요는 본능을 가진 인간이었을 뿐 신성을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다. 그러하니, 아무도 더이상 내게 속지 말라...... 그리고 내 무덤에 짐승이라고 침을 뱉고 살인자라고 돌을 던지라. 그것이 나의 마지막 소망이다 ......



책은 지독히도 탐욕적이고 관능적이며
동시에 문학적 은유들로 넘실댄다.
누군들 맘 속에 자신만의 처녀이자 자신만의 등롱인 "은교"가 없을까?
맘 속에 간직한 신성(神性)에 가까운 영원한 신부 "은교"
그렇다면 그 "은교"에게로 향하는 길이
멸망으로 이르는 좁고 어두운 길이라 한들 누군들 간절히 가고 싶지 않을까!

...... 은교를 만나면서 나는 보다 젊어지고 싶었다. 그게 죄인가. 그 애를 통해 아직도 생피처럼 더운 나의 욕망을 확인했을 뿐, 나는 아무런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 나의 은닉된 욕망에게 형벌을 선고할 수 있는 자는 그러므로 나뿐이다 ...... 아니, 청춘이 될 수 없을지라도 청춘인 듯이, 나는 젊은 저들과 오지게 맞장을 뜨고 싶었다 ......
 
숨통을 조여오면서도 숨통을 트이게 하는 문장이다.
이 아름답고 지독한 연애 이야기를 나는 또 어떻게 감당할까?
사랑, 질투 그리고 음모라는 통속적인 단어로 이 소설을 말하고 싶진 않다.
이 소설은...
그대로 한 편이 시이고
그대로 한 점 풍경화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게 되는 이여!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눈빛이다.
그들의 눈빛!
그리고 당신의 눈빛!

은교는 나에게 슬픔과 함께, 생애에 경험해보지 못한, 청춘의 광채와 위로를 주었다.
사.실.이.다.
나는 어느새 이적요가 되어 늙은 관 속에 내 몸을 누인다.
누윈 몸은 고요했으며 더불어 편안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7. 1. 06:35

온다 리쿠.
일본에서는 미스터리, 환타지 작가로 유명한 사람이란다.
이 사람의 책은 몇 년 전에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라는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특이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해리포터의 마법학교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흥미진진한 기숙학교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학교로 전학온 학생이 만나게 되는 수수께끼 사건들과 불길한 전설들.
말도 안돼는 비현실의 세계였지만 흥미진진했었다.
순서가 바뀌었지만 그녀의 첫번째 책이 <밤이 피크닉>이다.
고등학교 전 학년의 학생들이 하얀 운동복을 입고
1박 2일 동안 80킬로미터를 걸아야 하는 보행제.
천 이백 여명이 넘는 사람이 모두 줄지어 함께 걷는다고 생각해보라.
이것 또한 진풍경이 되긴 하겠다
이책은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아주 일본적인)
온다 리쿠 특유의 환타지성을 만날 수는 없어도
단순한 사건(24시간 보행) 속에 보여지는 묘한 관계들을 쫒는 재미가 있다.



아버지가 같은 이복남매가 한 학년의 같은 반이 된다.
(사건의 원인 제공자에 해당하는 아버지는 몇 년 전 위암으로 사망했다)
둘은 서로의 존재를 부인하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못하면서
대화 한 마디 안하는 어쩡쩡한 관계로 지낸다.
이게 오히려 또래의 친구들 눈에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처럼 느껴질 수도 충분히 있으리라. 
묘하게 비슷하다는 말에 흠찍 놀라하는 두 사람.
어쩌면 이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싶고 다가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타인의 눈에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구다 싶다.
결말은 결국 두 사람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친구들에게 자신들이 이복남매인 것을 밝히면서 더 편안해진 관계로의 조짐을 보이면서...
...... 앞으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건 세월.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버린 지금부터, 두 사람의 새로운 관계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 이제는 도망칠 수 없다. 평생 끊을 수 없는 앞으로의 관계야말로 진짜 세계인 것이다.
그것이 결코 감미로운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두 사람은 예감하고 있다.
이 관계를 짜증스럽게 생각하고, 밉게 생각하고, 안타깝게 생각하고, 상관하고 싶지 않다고 생가가하는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두 사람은 알고 있다. 그래도 또 서로의 존재에 상처받고, 동시에 위로받으면서 살아가게 되리라는 것도.....




무언가가의 끝은 언제가 무언가의 시작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의 앞으로의 관계가 사뭇 궁금해지기도 한다.
함께 골인함으로써 보행제를 마감하면서 이들의 청춘이라는 것도
어쩌면 한 단계 더 성숙해지게 됐는지도...
그러나 책의 구절처럼 
"현실은 이제부터다"
좀 뜬금없는 감상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마냥 부럽다.
그들의 "청춘"이...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6. 23. 06:32
새벽에 일어나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봤는데.
어쨌든 정말 다행이다.
나이지리아에 2 : 2 무승부.
그러나 골득실로 우리가 B조 2위가 되면서
1위인 아르헨티나와 함께 16강에 진출했다.
(그리스와 아르헨티나가 0:0 상황일테는 얼마나 가슴 졸였던지...)
첫 원정 16강이라 방송도 들썩인다.



물론 남다른 각오로 임했겠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이 초반부터 공에 대한 집착력이 강해 보였다.
그리고 나이지리아의 움직임도 확실히 빠르다.
축구의 문외한인 내 눈에도 그 속도가 놀랍더라
패스 연결은 우리나라 보다도 훨씬 좋아 보이기도 했다.
너무 일찍 첫 골을 허용했지만
그래도 왠지 질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의 첫 골은 그리스전과 똑같은 상황이 만들어낸 세트 플레이
영리한 이영표가 만들어낸 파울.
기성룡이 올린 코너킥이 이정수의 발에 맞고 들어갔다.
마치 그리스전이 리와인드 되는 느낌...
(차이가 있다면 이번엔 머리가 아니라 발이라는 점)




수비수 이정수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이로써 벌써 2번째 골을 넣은 선수가 됐다.
(한 골 더! 한 골 더!)
홍명보 선수 이후 최고의 "골 넣는 수비수"란 찬사까지 받고 있다.
16강 경기에서도 세트 플레이에 의한 이런 멋진 장면이 자주 연출되면 좋겠다.
이번 월드컵에서 누구보다 마음 고생이 심했을 박주영.
후반전에 멋진 골을 드디어...드디어... 선사했다.
(이 골은 정말 너무 너무 멋지고 정확하고 환상적이었다)




함께 뛴 선수들이 모두 축하해주는 모습이 왜지 뭉클하다.
박주영에게 이 경기가 얼마나 절실한 경기였을지...
골을 넣은 이후에도 박주영은 교체되기 전까지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여러 차례 슈팅을 만들어냈고
꽤 위력적이고 아까운 슈팅도 두어 번 나왔었다.


그리고 이번 경기에서 마음 고생 심했을 또 한 사람.
후반전에 교체 투입된 김남일.
골문 바로 앞에서 상대 선수에게 가한 파울이 PK 상황을 만들었다.
고의적인건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지 않았을까?
대한민국이 2:1로 이기는 상황에서 골문 바로 앞에서의 PK라니...
박주영의 자책골보다도 이번 월드컵 통틀어 가장 불운의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푹 숙인 고개와 꽉 다문 입술이 모든 걸 대변해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PK 후 김남일을 열심히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며 어떻게든 만회를 위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직접 슈팅까지 하면서...
다행히 우리가 16강에 진출했으니 망정이지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온갖 비난의 화살이 김남일에게 꽃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축을 하거나 수비를 잘 못해서 골을 먹게 되면 나는 그 뒤에 꽃힐 화살과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인 악플들이 미리부터 걱정스럽고 두려워진다... 그렇게 잘하면 늬가 나가던가...)


2골을 허용하긴 했지만 정성룡 GK의 선방이 여러 차례 보였다.
그리고 우리팀에 행운이었던 상대팀 슈팅도 몇 차례 있었고...
아쨌든 우리나라에서 이번 월드컵으로 정성룡이라는 젊은 GK를 발견해 다행이다.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달리던 박지성과
재치있게 여러 번 파울을 유도해서 우리팀에게 좋은 코너킥 기회를 마련해줬던
노련한 이영표의 플레이가 돋보였다.
역시나 선배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은 늘 아름답다.
박지성 선수에게 집중적으로 가해지던 파울은
내가 봐도 너무하다 싶기도 했다.
상대팀이 밀착수비하는 모습을 보니
박지성이 우리나라 캡틴은 캡틴이구나 싶기도 하고...
세계적인 명성이라는 게 그냥 생기는 건 결코 아닐 테지만,
온 경기장을 누비는 박지성의 모습은 항상 어디서든 돋보이는 것 같다.
만약 박자성의 신발에 물감을 묻힌다면
그라운드는 온통 박지성의 발자국으로 빽빽하게 칠해질 거란 말도 있었는데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다. ^^



우여곡절 끝에 어쨌든 원정 첫 16강 진출이라는 숙원을 이뤄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관건이긴 하겠지만
16강 우루과이 전을 승리로
8강, 4강까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축구를 잘 모르는 나까지도
이렇게 이른 새벽에 일어나 열심히 "대~~한~~민~~국!"을 응원하고 있으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작은 축구공 하나에 이렇게까지 열광하고 즐기는 걸 보니
월드컵이 지구인의 축제가 맞긴 한 것 같다.
그나저나 새벽인데도 거리 응원하는 사람들이 엄청나더라.
다들 저기서 밤 새운건가?
대단한 열정들 ^^
부럽다.. 청춘이... ㅋㅋㅋ



경기 끝나고 우리 엄마가 한마디 하신다.
"우라니라 선수들은 창피하게 옷도 없나봐!"
"왜? 엄마?"
"벗어서 쟤네들 도로 주쟎아~~~!"
"......"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5. 17. 06:39
별 생각 없이 손에 잡았던 책이다.
이런 제목...
어째 좀 고민스럽지 않는가?
무지 교과서적이고 입바른 소리 따박따박 할 것 같은 제목이다.
지은이를 살펴봤다.
강상중이란다.
일본에서 경계인, 자이니치로 불리는 제일 교포 2세 한국인이다
이 사람 이력이 좀 특이하다.
1950년 일본 규슈 구마모토 현에서 폐품수집상의 아들로 태어났단다.
그의 부모는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한 재일교포 1세다.
일본 이름을 쓰며 일본 학교를 다녔던 그는 차별을 겪으면서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와세다 대학 정치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2년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고,
한국 방문이 “나는 해방되었다”고 할 만큼 자신의 존재를 새로이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단다.
그후 일본 이름 "나가노 데츠오(永野鐵男)"를 버리고
본명인 "강상중(姜尙中)"을 쓰기 시작했고,
한국 사회의 문제와 재일 한국인이 겪는 차별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하게 됐단다.
1998년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지 않은 한국 국적자로서
최초로 도쿄 대학 정교수가 되었고
현재 도쿄 대학 정보학연구소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목  차
서장. 지금을 살아간다는 고민
1장 나는 누구인가?
2장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3장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4장 청춘은 아름다운가?
5장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6장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7장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8장 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9장 늙어서 '최강'이 되라



고민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 진지하게 고민으로 삶을 성찰하길 당부하는 그의 글은,
담백하고 그리고 단정하다.
호모 파베르(Homo faber,도구를 사용하는 인간)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는
호모 페이션스(Homo patience, 고민하는 인간).
강상중은 이 책에서 일본 근대 작가 나쓰메 소세키(1867)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1984)와 함께 동행한다.
이 두 동시대인은 
"개인"의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 있으면서도 그 흐름에 따르지 않고
각각 "고민하는 힘"을 발휘해서 근대라는 시대와 마주했다는 공통점이 있음을 지적한다.
막스 베버는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을 통해
"근대"라는 것이 인간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설명한다.

청빈에서 태어난 자본주의
부의 밑바닥엔 금욕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지적도 새로웠고,
"청춘"과 "젊음"에 대한 단상에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최고의 지식인으로 대변되는 서울대생들이
아직 20대이면서도 "이미 나이가 많아서..."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성장과 관련한 "원숙함"을 이야기하는 그의 말끝이 절절함이란...
강상중은 조국의 젊은이들이  '청춘적으로 원숙할 것'을 당부한다.
"모른다"는 것에 지나치게 민감하고 수치스럽게 반응하는 조국의 젊음을 보면서
"지성"은 "박식한 사람"이나 "정보통"과 엄격하게 구분된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알고 있다(know)"와 "사고하다(think)"는 다르고,
"정보(information)"와 "지성(intelligence)" 또한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두렵지 않은" 상태가 되기 위해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더 다양하고 더 진지한 고민하기를 당부한다. 
"천재는 뻔뻔한 사람이지만 수재는 뻔뻔함이 없다"
그는 젊은 세대들이 고민을 계속해서 결국 뚫고 나가 뻔뻔해지기를,
만약 그런 새로운 뻔뻔한 파괴력이 없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고
미래도 밝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고민을 피한다면,
결국은 끝없는 두려움에 떨게 될 뿐이라면서...

일기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읽는 느낌이다.
고리타분하고 뻔한 내용이 아니라 은근한 공감과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재일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차별을 겪으면서 그가 젋은 시절부터 했던 진지하고 다양한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이
결국은 한국 국적자로서 최초 도쿄 대학 정교수가 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진지한 고민의 힘"
당분간 내 화두(話頭)가 되어 날 고민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4. 22. 08:19

<그건, 사랑이었네> -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저는 개인적으로 목소리 크고 수다스러운 사람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왠지 시비를 걸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죠.
그런 저의 기준으로 따진다면 일단 "한비야"는 좋은 점수를 받기가 아무래도 어려운 사람이죠.
참 많이 일을 만들어서, 참 많이 지치지도 않고, 참 많이 치열하게, 참 열심히 하면서 사는 사람, 한비야!
얼마 전에는 가을에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싶은 지식인 2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1위는 안철수, 3위는 공지영이었죠)
“바람의 딸”로 지구를 걸어서 세 바퀴 반이나 돌아야 했고, 돌아와서는 다시 우리나라도  돌아줘야 했고, 그 뒤엔 불혹의 나이로 주위의 반대를 뿌리치고 중국으로 날아가 어학공부도 해야 했고, 그런 과정들을 또 몇 권의 책으로 열심히 써내야 했고...  다행히(?) 그 책들이 나란히 베스트셀러에 올라서 어느 정도 수확도 있었겠지만 말이죠.
참 복 많은 사람이라고 무작정 생각하기도 했었죠.
그녀의 책들을 차례차례 읽으면서도 솔직히 별다른 감흥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도 했었죠.
“한비야와 나는 참 궁합이 안 맞는 상대구나” 라고...
이제와 10년 넘게 안 맞았던 궁합이 돌연 한 권의 책으로 찰떡궁합이 된 건 아니지만 분명 그녀에게 받은 메시지가 있음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던가요!
“무릎팍 도사”에 나와 강호동 앞에서 “조조조조~~~”을 외치던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자주 “울울울울~~~”에 빠져 있던 저는 웃을 수밖에 없었죠.
우리 둘이 만나면 완벽한 “조울증”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예전에 읽었던 그녀의 책 <중국견문론>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길을 모르면 물어보면 될 것이고, 길을 잃으면 다시 돌아가 처음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라고...
그러니까 일단은 떠나보라는 말이었죠.
떠나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온 몸이 저릿저릿했던 저는 그녀를 향한 노골적인 부러움과 시기심만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둘의 궁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을 거란 생각도 이제와 하게 되네요.
<여행서>로만 익숙했던 한비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온전히 여행서 같지 않았던 그녀의 글들.
투박하고 촌스러운 문체, 심지어는 너무나 개인적인 말투들을 남발하는 걸 보면서 사이비 작가라는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급기야 더 개인적인 책을 냈네요.
<그건, 사람이었네>
책의 서두에서 밝혔듯 그녀는 이 책을 언니로써, 누나로써 동생들에게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썼다고 밝혔습니다.
“청춘”들을 위한 글!
아마 이 책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내가 지금 청춘인가?’하는 애매한 시기의 사람들(?)에겐 어쩌면 이 책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제가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녀의 눈부신 “청춘” 때문입니다.
40의 나이에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날 때도 기겁을 했었는데, 51살의 나이로 미국 보스턴 테프츠 대학에서 본격적인 구호 이론을 공부하겠다며 또 다시 작년 9월 유학의 길을 떠났습니다.
....... 현실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단 한 번도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어보지 않은 청춘, 단 한 번도 현실 밖의 일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 청춘, 그 청춘은 청춘도 아니다.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해 보이는 꿈이라도 가슴 가득 품고 설레어보아야 청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눈부신 젊음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
그녀의 글처럼 도무지 그녀의 “청춘”은 끝이 날 줄 모르네요.
9년간 함께 했던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도 그만 두고 그녀는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갔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청춘”이라는 건 “나이”와는 하등 상관관계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청춘”은 생동감과 활기참, 그리고 도전 정신이라면, 시간을 지나온 “성숙된 청춘”은 지식과 지혜, 명석함으로 비롯된 현실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늦은 시작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을 아마도 그녀 한비야는 알아버린 것 같습니다.
이기지 못했다면 적어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동행하는 방법을 알게 됐는지도요.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에는 그녀가 항상 말하는 “1년에 100권 책읽기”도 분명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책”
제게는 심장이 뛰고 가슴이 설레는 최고의 단어입니다.
어릴 적 제 꿈 중의 하나는 책을 읽다 눈이 멀어버리는 것이었죠. 그리고 이 어린 꿈이 “오르한 파묵”이라는 터키작가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품게 만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참 어이없고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그런 소망을 품었던 때가 정말 있었습니다.
제가 “책”이라는 세계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생각을 그녀 한비야도 하고 있습니다.
...... "독서"의 즐거움이란 책 읽는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는 기대감, 찾아내서 빌려올 때의 뿌듯함, 이미 대출된 책의 차례를 기다리는 설렘, 점심을 굶어가며 모은 돈으로 서점에 가서 내 책을 사는 기쁨, 그 책을 책장에 꽃아 놓고 보는 흐뭇함, 그 책을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돌려받는 날까지 괜히 조마조마해지는 조바심까지를 포함한다......
저는 이런 마음을 “판타지”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아르바이트해서 받은 돈으로 제일 먼저 한 일은,
조정래의 <태백산맥> 10권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종로서적에서 이틀에 나눠 5권씩 구입해 들고 오면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된 것만 같았습니다. 얼얼했던 손의 기억도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그리고 그 책은 여전히 지금까지도 제 손길을 받고 있죠.(이 책 정말 많이 읽었네요......)
사람이 사람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물의 최소량은 하루에 15리터라고 합니다.
저는 그 자리에 하루에 “15장의 책읽기”가 포함되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고 꿈꿉니다.
책이 없었다면,
아마도 저는 참 재미없게 그리고 참 많이 힘들게 세상을 살아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책은,
저에게 있어 생명의 또 다른 숨구멍입니다...

* 문득 궁금해집니다.
  당신에게 “책”은 무엇입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10. 1. 19. 05:54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덕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에게도 젊음이 있었다는 걸 쉽게 잊습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단 한 번이라도...
여자였던 적도, 청춘이었던 적도,
친구와 함께 깔깔 웃는 꿈 많은 소녀였던 적도
결코 없었던 것처럼
처음부터 엄마는
 그저 엄마였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외할머니의 영면 소식을 들으며
엄마... 엄마... 를
낮게 부르며 우는 내 엄마를 보며
나는 어이없게도 생경한 그 모습이 낮설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엄마가 엄마를 부를 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고서는
문득 두렵고 서러웠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엄마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고
맘 속에 정의를 내리고 있었던걸까요?
사실은... 사실은...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사람이었는데...
엄마의 오래된 청춘을 들여다보며
나는 감히 목조차 매이지 못합니다.
엄마...
고운 소녀였던 엄마는
하필이면 이 모진 딸의 엄마가 되어
아픈 시간들 내내 가슴 치며 감내하고 있을까요?
엄마라는 존재 앞에
나는 고개조차 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당신 때문에...
못난 내가 아직 딸일 수 있음이
한없이 죄스러워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엄마...
다음 생을 기약할 수만 있다면
나는 꼭 당신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0. 8. 06:08
 <개밥바리기별> - 황석영


개밥바라기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기록...

더 이상 절망적일 수 없을 것 같고, 더 이상 세상이 무의미해질 수도 없는 시기,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좌절, 끝냄에 대한 무한한 동경...

사춘기를 지나 어른도 아이도 아닌 중간자적 시기의 애매함이 주는 결정되지 않는 미래의 불안감, 그리고 추락보다 더 깊을 미지의 시간들에 대한 두려움...

딱히 결론내지 않아도 이야기의 결말을 말할 수 있는 모호함이 주는 신비.

“성장소설”은 이 모든 것들이 녹아있어 마치 반은 도가니처럼 펄펄 끓고 있는데도 나머지 절반은 절대로 녹는다는 것 자체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단한 결빙처럼 차갑기만 합니다.

이런 모순의 결합이 책 속에 나오면 이상하게도 제겐 과학보다 그 내용들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우리의 시간은 기대, 관심, 기억 이 세 가지 순간의 연속이라고 하네요.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없으면 시간은 존재할 수 없다고요. 만약에 우리가 미래를 지향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과거를 읽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시간이라......

어쨌든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있고, 그런 이유로 나 자신이 바로 시간, 그 자체가 되기 때문인가 봅니다.

가끔 생각해봅니다.

왜 작가들은 “성장소설”을 꿈꾸는가...하고요.

예전 같았으면 명랑만화나 청소년 권장도서쯤으로 생각했을 성장소설이 지금은 참 더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일체감이 주는 공감의 형성에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그건 시대가 주는 공감이 아니라 정서가 주는 공감, 달리 말하면 이심전심의 공감이라고 할까요?

다행히 우리 세대는 전쟁도, 그리고 군부독재니, 부정선거니 하는 시국에 대한 대대적인 군중 봉기도 겪지 않아 흐린 시대가 주는 어려움과 울분에 대한 분노가 부족할 수 도 있습니다.(그렇다고 효순, 미선 사건이이나 촛불집회 같은 것들을 과소평가하는 건 절대로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이 책,

<개밥바라기별>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방황과 헤맴은 이유가 있고, 그 떠돔 또한 정착하고자 하는 열망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차마 문을 못 잠그고 잠을 자는 어미의 마음...

청춘을 이겨내야 참 어른이 된다면, 그 청춘을 이길 수 있는 궁극적인 힘이 바로 고요한 머뭄을 제공하는 어미의 마음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모든 여자들은 꿈꿉니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전 개인적으로 여자의 성장소설은 내가 남자였다면... 하는 그 불가능의 바람에서부터 시작이 되고, 남자의 성장소설은 내가 어미였다면... 하는 결론으로 종착되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축이 여러 가지 이야기와 생각거리를 만들어 서로 얽히게 되는 거죠.


<개밥바리기별>은 작가 황석영의 자전적인 성장소설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작가들 중에서 이 사람처럼 파란만장했던 사람도 흔치 않을 거라 생각되네요.

방북사건으로 제 나라로 돌아오지 못하고 몇 년을 헤맸던 사람.

1993년 귀국했지만 5년간의 수감생활을 해야 했던 사람.

그리고 그 이후에 그야말로 미친 듯이 써내려간 엄청난 분량의 책들...

발표한 글의 양만큼 질적으로도 진화되어 가는 그의 글쓰기가 한때 심한 질투심으로 다가오기도 했더랬죠.

그래, 당신 참 대단하다. (더 솔직한 표현은 당신 참 잘났다...는 마음)

뭐 유치한 감정의 폭발도 살짝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이 책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5개월간 연재했던 소설을 다시 손봐서 8월에 출판됐습니다. 작가는 “지난 몇 달간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광장에서 이들과 소통하면서 글을 쓸 수 있었던 점은 행운"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글쓰기가 원고지나 컴퓨터 안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적인 작업의 차원을 넘어섰다는 의미겠죠. 그 즉각적인 반응들이 65세 작가 황석영의 눈엔 참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의 반짝거리는 눈을 상상하니, 마치 그 눈이 “개밥바리기별(=샛별=금성=나그네별)”처럼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네요.

이 책은 참, 똑똑한 책입니다.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훨씬 우리보다 똑똑한 지성이며 동시에 이유 있는 행동가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작가들은 과연 이런 대사들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을까? 생각하게 할 만큼요.

작가 황석영은 억압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말합니다.

“억압이라는 것도 하나의 공감대에서 출발한다”고요.

그야말로 개인적인 체험에서 나온 말이죠.

그는 억압이라는 압박의 요소를 판소리의 추임새처럼 만들어 오히려 격려와 신명의 장단으로 바꿔버리는 그런 작가였던 겁니다.

어쩌면 대가라는 말조차도 무색한 그런 글쟁이죠.

 

"먼 길을 돌아 문예반으로 돌아온 느낌이 든다"

책을 출판하고 그가 한 말입니다.

그 신선한 발언이 17권 째의 장편을 발표한 65살의 그를 마치 이제 막 등장한 팔팔한 청년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아~ 이 사람, 이제 다시 시작하려나 보다...

글을 쓴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제 팔자를 남에게 내주는 일이라네요.

어쩌면 작가란 유목민의 다른 이름인 것 같습니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유목민...

그러나 전 좀 다르게 말하고 싶네요.

어느 곳을 가든 정착하고 뿌리내리고 마는 질긴 생명력을 소유한 유목민이라고..,

세상 어느 유목민보다 간단한 생사도구를 꾸리고 이 길을 내 길로 바꿔 그대로 삶을 진행해가는 사람들...

그건 자유롭게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 어느 곳을 가든 책임감 있게 살겠다는 치열함의 고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또한 황석영의 말을 빌려 말하고 싶네요.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고...


* 책보다는 작가 황석영에 대한 개인적인 고백의 글이 되어 버린 셈이네요.

변명을 하자면, 이분의 책은 누구를 통해 만나는 것보다는 직접 읽음으로 해서 만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에...

그의 글들을 읽으면 잊어버린 세대에 대한 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동시에 치열함을 잃은 자신에 대한 반성도 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다른 형태의 고해성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혹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8. 30. 15:30
"내가 찍은 사진들로 글을 쓴다면 이렇게 만들어야지!"
혼자 생가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는....



마치 내 생각들을,
누군가 여기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던 책
<끌  림>
내가 이 단어에 항상 얼마나 절절매는지 아마 이 책은 알리라.



이.병.률.
이 젊은 작가의 고백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자신의 느낌을 담담히, 때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써 내려간 글.
이 책을 여행서에 넣는 건 아무래도 옳지 않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담다.



"열정"이라는 말에는
한 철 태양이 머물다 지나간 들판의 냄새가 있고,
이른 새벽 푸석푸석한 이마를 쓸어올리며 무언가를 끼적이는 청년의 눈빛이 스며 있다...
열정은 그런 것이다.
그걸 모르면 숨이 막힐 것 같은 어둠에 놓여 있는 상태가 되고,
그걸 갖지 아니하면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낯선 도시에 떨어진 그 암담함과 다르지 않다.
사랑의 열정이 그러했고 청춘의 열정이 그러했고 먼 곳을 향한 열정이 그러했든,
가지고 있는 자와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그런 것,
이를테면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것이 아니라, 몸을 맡게 흐르는 것이다.




쓸쓸한 그 사람은 먼 타국에 혼자 살면서 거북이 한 마리를 기른다.
근데 왜 하필 거북이었을까?
"거북이의 그 속도로는 절대로 멀리 도망가지 않아요
그리고 나보다도 아주오래 살테니까요?
도망가지 못하며, 무엇보다 자기보다 오래 살 것이므로
내가 먼저 거북이의 등을 보는 일은 없을 거라는 것.
이 두 가지 이유가 그 사람이 거북이를 기르게 된 이유.
사람으로부터 마음을 심하게 다친 사람의 이야기....



탱고...
잘못하면 스텝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추면 돼요.
스텝이 엉키면 ,
그게 바로 탱고지요...




좋은 계절이라는 핑계로 당신은 그들과의 여행을 계속했고
한 아궁이에서 지은 여러 끼니를 나누어 먹으며
낮선 풍경에 놀라 단체 사진을 수없이 찍으며 각별한 감정들을 나눴죠.
심지어 돌아오기 싫었던 거예요.

그래요.
삶은 그런 거예요.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그런 것.




내게도 또 한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나를 견디듯 아니 모른척 하듯 스쳐가고 있다.
티베트 속담이라고 했던가?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우리는 결코 알 수가 없다"
때론 뭔가가 찾아올거라는 허황된 환상상이라도 아직 품고있다면 좋겠다는 바람.
정말 그게 뭐든 상관없겠다고....
뭔가를 아직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아직 살아갈 자신이 조금은 있는 사람이니까....


 
치열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보며
공허한 눈빛를 섞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내내 추방으로 죄를 물어도 부족하리라는 생각.
그 최초의 유배자가 내가 될거라는 확신에
얕은 시선을 자꾸 아래로 아래로 숨긴다.



그럴 수 있다면....
나 역시도 일생을 품고 살 좋은 풍경 하나
가슴에 넣을 수 있다면...
비록 조금 아름답고 많이 슬픈 얘기일지라도
기꺼이 담고 싶다.

이제 금방 꺽여진 모퉁이 끝에 서 있는 느낌.
모퉁이를 지나면 뭐가 있을까?
내 눈은 아직 슬프다...

그리고 이야기 하나...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6. 15. 06:30
 <탱고> - 구혜선


탱고
 

먼저 “의외다, 놀랐다”는 말부터 하고 싶은 책입니다.

내가 아는 “구혜선”은 인터넷 얼짱으로 한동안 메스컴을 타기도 했던, 무슨 복을 타고 났는지 무명의 설움도 없이 하룻밤 자고 났더니 갑자기 스타가 되어 버린, 노래도 그림도 조금 하는 신세대 연예인 정도였는데....

그리고 한창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로 상종가를 치고 있는 캔디 걸!

그런 그녀가 책을 출판했다고 했을 때,

솔직히 전 그랬습니다.

“연예인 그거 참 좋은거구나!. 치열하게 살아보지도 않고 책씩이나 낼 수 있어서... 이름값 한다고 그래도 팬들이 기본적은 판매부수는 채워주겠네!”

어쩌면 “새파랗게 어린 나이에......”라는 괴씸죄까지 덤으로 얹었는지도 모르죠.

인터넷을 찾아봤습니다.

1984년생, 이제 25살....

휴~~, 피고 싶지 않아도 향기까지 절로 나는 나이. 왠지 명확한 이유 없이도 사람 주눅들게 만들어 버리는 이제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나이.

그런 25살의 한 여자가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 나이를 한참 전에 지나온 한 여자가 그 글을 읽습니다.

제게 <탱고>는 그렇게 시작되는 리듬이었습니다.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한 사랑하는 남자 종운, 그리고 물질적인 풍요를 가진, 젊음을 살 수 있다면 목숨도 버릴 수 있을 것 같이 다가오는 남자 민영, 그리고 어느새 소울메이트로 스며들어 버린 또 한 남자 시후.

그리고 한 여자 “연”

삼각, 사각관계를 넘어 급기야 원만한 관계가 형성되는 연예소설이 그려지나요?

연예소설이 맞긴 한데, 이게 참 묘한 느낌입니다.

소설을 읽는 두 가지 방식!

줄거리 혹은 등장인물을 따라가는 방식과 감성을 따라가는 방식.

이 책은 그러니까 후자에 속하는 소설입니다.

분명 줄거리를 가지고 있긴 한데 별로 중요하진 않습니다. 유치한 부분에 극도의 환상과 신파가 버젓이 등장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 유치함을 관통하는 감성으로 무장한 묘한 성장통이 있습니다.

어른아이의 성장일기.

어릴 때 그랬습니다.

담배와 커피가 자유로워지는 때가 어른이 되는 시기라고...

게다가 둘 다 중독의 위험을 가지고 있기까지 하죠.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건, 하나씩 하나씩 중독되는 것들의 가짓수를 늘리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탱고”

자유분방하면서도 절도마저 느껴지는 춤. 상대방을 무심하게 바라보면서도 때론 집요하게 들러붙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시선, 그리고 완벽하게 일치되는 발동작과 호흡.

보는 사람의 심장까지도 설레게 만드는 치명적인 유혹!

그러나 알고 있나요?

설렘은 단지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요.

설렘을 선택한 사람은 그런 이유로 대부분 다시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요.

탱고가 시작되기 전, 빨간색 장미가 강렬함으로 당신에게 말을 걸어올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게 언젠가는 다 지나가는 것”이라고...

탱고를 멋지게 추기 위해선,

자신을 놓을 줄 알아야 한다네요, 함께하는 상대를 믿어야 하기에 더더욱 자신을 놓아야 한다고요.


설탕이 듬뿍 들어 있는 커피에 익숙해지면,

에스프레소의 순수한 정수의 맛은 결코 느낄 수 없다는 사실.

사람이 가장 먼저 느끼게 된다는 쓴맛.

이 첫맛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일상은 더 이상 달달하지 않을 것이고,

그리고 예기지 않은 일들이 기본적인 간격조차 주지 않은 채 무차별적으로 일어날 때 무작정 도망을 꿈꾸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춘”이라는 달달함 속에 숨겨진 방황과 헤맴의 쓴맛.

그 사실과 현실을 깨닫는 순간.

그토록 믿었던 사실조차도 판타지의 일부였음을 인정하게 될지도 모르죠.

누군가는 말합니다.

잠시 흔들리고 방황하는 것일 뿐, 우리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돌아가서도 당신은 또 다시 길을 잃을 수 있고 그리고 또 다시 자신을 의심하게 될 수도 있을 거라고.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건,

순수하기 때문에 헤매는 거라고 “연”이라는 인물의 입을 빌어 25살의 당돌한 아가씨가 말을 하네요.

그러면서 덧붙입니다.

헤매는 자신을 질책하지 말고 흔들리는 자신을 아껴주라고...

어떠한 일 앞에서도 자신을 신뢰하라고 25살 그대로 꽃인 청춘이 당부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반드시 행복해질 거라고...
25살 이 당돌한 아가씨의 당부가 단지 환상 혹은 건방으로 다가올지라도,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적어도 이 당돌한 아가씨는 하나의 감성을 잃지 않고 한 권의 책에 그대로 담아냈으니까요.
어느날,
류이치 시카모토의 "탱고"를 들었는데 번쩍 눈이 뜨였다. 한마디로 꽂힌 거다. 
구혜선,
그녀에게 소설의 모티베이션이 됐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탱고!


묻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은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무언가에 꽂혀 있나요?

그렇다면 이제 저도 궁금해집니다.

당신의 리듬이 어떻게 시작될지.

또 다른 “탱고‘ 혹은 다른 무언가를 들을 수 있길 기다리면서......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