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4. 3. 19. 08:42

<히스토리 보이즈>

일시 : 2014.03.14. ~ 2014.04.20.

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원작 : 앨런 베넷

연출 : 김태형

무대 : 여신동 

출연 : 최용민(헥터), 어명행(어윈), 오대석(교장), 추정화(린톳)

        이재균, 윤나무 (포스너) / 김찬호, 박은석 (데이킨)

        안재형(스크림스), 임준식(럿지), 황호진(팀스)

        이형훈(크라우더), 오정택(락우드), 손성민(악타)

제작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2013년 3월 이 작품이 초연됐을때 관람을 놓쳐서 많이 아쉬워었다.

솔직히 말하면, 관람 여부를 두고 고민하다 어영부영 공연이 끝나버렸고 그 뒤까지도 솔솔 들리는 입소문에 은근히 속이 쓰렸던 작품이다.

그래서 프리뷰를 예매했다.

고백컨데 요근래 관람 도중에 극도의 피곤이 몰려오는 경우가 꽤 많았다.

보통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번째는 작품 자체가 개인의 취향에 맞지 않은 경우,

두번째는 작품은 좋은데 관람 다시 내 몸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그리고 마지막엔 작품도 몸상태도 나쁘지 않은데 의아할 정도로 집중이 안되는 경우.

그래서 이 작품을 보기 전

제발 이 세 가지 경우 중 하나에 해당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이 작품!

3시간 동안 나를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아주 정직하게 유혹적이고 매혹적이더라.

그러니까 페러독스의 관능에 제대로 빠져버린거다.

어떻게 이런 괴물같은 작품이 있을 수 있을까?

아주 오랫만에 불같은 질투에 빠지게 만들었다.

만약에... 만약에...

나도 학창시절에 어위같은 교사를, 혹은 헥터같은 교사를.

그것도 아니면 포스너나 데이킨, 스크림스 같은 친구들이 있었다면,

혹은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내 인생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후회는 환상과 함께 모든 시간들을 휩쓸어버린다.

폭.풍.같.다.

 

그리고 무대 위 배우들.

어쩌자고 그렇게 모든 순간이 다 진심일까?

프리뷰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만큼 배역과 완벽히 몰입하고 있엇다.

배우들간의 신뢰와 결속력은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다.

세상 종말이 와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신뢰감이 느껴졌다면 이해가 될까?

기본적으로 한 명 한 명 다 좋은 배우이긴 하지만

무대에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는 삼승, 사승의 법칙으로도 계산 불가다.

이재균만큼 소년의 이미지가 명확한 배우도 흔치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이런 이미지가 이재균 배우의 한계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이건 그저 이재균이 갖는 필모그라피의 장점 하나일 뿐.) 

특히 박은석 배우는 이 작품으로 처음 알게 됐는데

노련함과 신선함이 함께 느껴져 정말 놀랐다.

작품과 배역에 대한 망설임이 전혀 없다.

중간중간 해설자같은 역할을 했던 스크림스 안재형의 타이밍도 정말 기가 막혔고...

솔직히 이 작품에 출현하는 배우들 연기에 대해 운운하는 거...

참 면목없고 염치없는 짓이긴 하다.

매 순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고

매 순간 각각의 인물들에게 더 깊이 몰입하고 빠져들었다는 고백이 진실일 뿐!

클라세같았던 영화, 시, 문학작품들.

이 작품 속에는 모든 게 다 있다.

연극도, 연극 아닌 것도 모두 다.

 

가치있는 가르침이 남긴 깊은 울림.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가 내게 붉고 진한 화인(化印) 하나 남겼다.

진심으로 가치 있는 작품이고,

진심으로 가치 있는 배우들이다.

 

 

넘겨주어라.

때로는 할 수 있는게 그것 밖에 없다.

받아서 느껴보고 넘겨주는 것.

날 위해서도 아니고

너희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고

다른 어느 곳 누군가에게 어느날 넘겨주는 것.

난 너희가 바로 그 게임을 배우기를 바란다.

넘겨주어라.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10. 24. 08:03

<벚꽃동산>

일시 : 20.12.10.12. ~ 2012.10.28.

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작가 : 안톤 체홉 (Anton Pavlovich Chekhov)

연출 : 오경택

출연 : 이석준, 박호산 (로파힌) / 우현주 (라네프스카야)

        김태훈 (가예프) / 정수영 (바랴) / 전미도 (아냐)

        정동환, 최용민, 정승길, 권지숙, 이재인, 신용진, 박채원

주최 : 극단 맨씨어터

 

안톤체흡의 작품들은,

솔직히 어렵고 힘들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톤 체홉의 작품이 올라오면 꼭 챙겨보는 이유는 너무나 서정적이고 섬세하고 아름다워서다.

이야기와 인물들 속에 빠져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황홀해진다.

맨씨어터는 작년에도 지금까지와 약간 다르게 해석한 안톤 체흡의 <갈매기>를 올렸었다.

보고 싶었던 작품인데  예매를 해놓고도 보지 못해서 이번 <벚꽃동산>은 놓치지 말자 생각했었다.

안톤 체홉의 마지막 작품 <벚꽃동산>

안톤 체홉의 작품 중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작품을 체홉은 스스로 "코미디"라고 정의했고,

1904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을 올린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는 "비극"이라고 정의했다.

나는 이 작품을 화사하고 찬란한 비극이라고 말하고 싶다.

원작을 읽고 봤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원작을 꼭 챙겨보는 편인데 이상하게 안톤 체홉의 작품은 무대뽀 정신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출연배우들!

도대체 이 대단한 배우들을 어떻게 이 한 작품에 전부 섭외할 수 있었을까?

분명히 이 작품엔 뭔가가 확실히 있으리란 기대감.

솔직히 출연진에 기가 팍 죽었었다.

 

20세기 초 러시아.

농노제 폐지로 시작된 러시아의 변혁은 러시아의 모든 것들을 빠른 속도로 바꿔놨다.

과거 부유한 영주의 자손이었던 라네프스카야(우현주)와 가예프(김태훈)의 벚꽃동산도

급기야 경매에 넘어갈 처지가 되버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직 평온하다.

그런데 어쩌지!

난 이 오누이의 평온과 순수가 너무나 눈물겹게 아름답고 예뻤다.

벚꽃동산을 별장지로 임대해서 돈을 벌라고 권유하는 로파힌(박호산).

두 오누이의 환상을 현실에 끌어오기 위해 끝없고 집요한 설득을 거듭하지만

오누이는 너무나 태평해서 심지어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마지 꽃비 내리는 따사로운 봄날 벚꽃동산에 피크닉이라도 와있는 느낌이다.

오히려 절박하고 간절한 건 로파힌이다.

오누이와 로파힌의 대비되는 모습이 연극을 보는 내내 참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주변의 사람들.

뭔가 깊숙히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그냥 지나가면서 무슨 일이 생겼나 잠깐 시선을 주고 곧 제 갈 길 가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오직 로파힌만이 절박할 뿐이다.

실제로 이 "벚꽃동산"을 지키고 싶은 사람은 사실 로파힌 한 사람 뿐인 것 같다.

이 아름다움 벚꽃동산의 벚꽃들이 잘려나가든,

품위없는 별장지가 되어 사람들의 소란 속에 묻혀버리든 상관없다.

어쨌든 지켜낼 수는 있으니까.

 

박호산의 로파힌은 참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이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석준은 로파힌을 어떤 인물로 해석했을지 궁금하다.)

사실은 작품 속 인물 들 중에서

벚꽃동산을 제일 지키고 싶어한 사람, 너무나 벚꽃동산을 원했던 사람은 로파힌이 아니었을까?

변화를 보는 시선에 옳고 그름을 정의하긴 어렵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지금 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잊혀진고 없어진다.

그리고 인간은 그 잊혀진 것들을 또 서럽고 아프게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정말 바보같이...

  

벚꽃동산에 있던 모든 사람이 떠나고 홀로 남겨진 피르스(정동환)의 독백,

그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그리고 별 비중없어 보이는 피브스에 왜 정동환이라는 배우가 필요했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툭툭 베이지는 벚나무와 생의 마지막 안식을 향해 걸어가는 피르스의 발자욱 소리.

 "떠나셨어! 날 잊어버리셨어!

  괜찮아!, 그래!

  ...... 산 것 같지도 않은 게 한평생이 다갔군.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아무것도. 에이... 이런 바보"

피르스의 마지막 대사가 주는 무게감은

누워있는 피르스 위로 관뚜껑처럼 닫히는 무대 장치와 함께 가슴 속에 턱 얹힌다.

희극과 비극을 오고 간 <벚꽃동산>을 결국

이렇게 깊은 무게잠과 존재감으로 맘 속 깊이 파고 들었다.

파괴와 변화 뒤엔 그 폐허를 딛고 새로운 희망과 미래가 태어난다.

어쩌면 벚꽃동산에 춤추던 그 무수한 꽃잎들은 일종의 팡파레였을지도 모르겠다.

눈물나게 아름답고 서럽게 찬란한 결말을 보면서 나는 눈이 부셨다.

 

무대는 아름다웠고

배우들의 딕션은 정확했으며,

연기는 진중하고 섬세했다.

작품과 무대에 대한 깊은 경외심이 느껴졌다.

(정말 진심으로 멋있었다. 이 배우들...)

커틑콜에서 정동환 배우를 향해 출연 배우 모두가 박수치며 존경의 모습을 보이는 장면은,

뭉클할만큼 감동적이었다. 

이 작품...

아마도 오래동안 간직될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7. 9. 08:46

<콩칠팔새삼륙>

 

부제 : 봄날 경성 연애사

일시 : 2012.06.29. ~ 2012.08.05.

장소 :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극작 : 이수진

작사,작곡 : 이나오

음악감독 : 신경미

연출 : 주지희

프로듀서 : 조용신

출연 : 신의정, 최미소, 조휘, 최용민, 김정연, 김준오, 김보현, 유정은

제작 : 충무아트홀, 모비딕프로덕션

 

문화체육관광부 주최하고 명동예술극장 지원하는 2011 창작팩토리  뮤지컬 부분 1위를 차지하면서 우수작품제작지원 선정작이 된 창작 뮤지컬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작품에 대한 기대감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오랫만에 조휘의 공연을 보는구나 뭐 대략 그런 정도의 감흥(?)이었다.

프리뷰 티켓이 2만원이라는 것도 관람에 한 몫을 했다.

(아무리 소극장 공연에 초연 프리뷰라지만 이런 은혜로운 가격이 정말 얼마만인지...)

부제는 봄날 경성 연애사란다.

대놓고 촌스러움을 드러내는 그 과감성이라니...

게다가 요즘 공연계에서 한창 뜨고 있는(?) 동성애란다.

솔직히 보기 전부터 살짝 식상할 기미가 다분했다.

그.랬.드.랬.는.데...

 

이 작품 꽤 괜찮다.

동성애 코드가 진한 것도 아니고 내용 자체도 오히려 신선하고 재미있다.

(사실 이게 동성애가 맞나 싶다)

모든 여학생들의 데자뷰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도 예전 학창시절에 친한 친구와 애뜻한 감정을 가지기도 했었다.

고등학교가 다른 곳으로 배정돼서 맨날 전화하면서 울었었다.

근데 그렇게 애뜻한 친구가 지금은 뭘하고 사는지 전혀 모른다.

산다는 게 참, 그렇다.

이 작품은 1931년 영등포 역에서 기차선로에 뛰어든 두 여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단다.

작품의 제목 <콩칠팔새삼륙>은 홍난파가 작곡한 동요의 제목에서 따왔는데

홍난파는 자신의 조카가 쓴 동시를 보고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조카가 바로 작품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홍옥임이라고.

홍옥임은 조선 최초로 의사 면허를 획득했던 일곱 명 홍석후 박사의 외동딸이고

김용주는 종로에서 유명한 사업가 김동진의 장녀였단다.

뭐 두 인물을 제외하고 모두 픽션이라지만 어쩐지 있을 법한 이야기이긴 하다.

실제로 두 여인은 동반자살을 했다는데

극의 내용처럼 동성애 때문이 아니라

여성의 지위와 사회진출이 허락되지 않은 시대상황에 대한 비관이었으리라.

어쨌든 실제 사건과 인물을 끄집어내 이렇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솔직히 유치찬란할까 걱정도 됐었는데

상당히 집중력있고 개연성있게 작품을 만들었다.

제목이 낯설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는데

남의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댄다는 뜻의 우리말이란다.

그래, 누가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있겠는가!

다 나름으로 살아지는 건데...

 

작품은 전체적으로 섬세하고 부드럽고 그리고 앙증맞다.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여자의 작품이라고 말한다면 성차별적인 발언일까?

극작, 작사(작곡), 음악감독, 연출 4인방의 우먼 파워에

시종일관 열심히 제 몫을 하던 4명의 여배우들까지...

그렇다고 남자배우들의 활약상이 빈약하다는 소리는 결단코 아니다

4인의 남성 동지들도 멋졌다. 진심으로!

그리고 8명 배우가 원캐스트로 출연한다는 점에는 정말 큰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요즘 공연은 더블캐스팅만 해줘도 얼마나 감지덕지한지...)

무대 뒤에는 5인조 밴드가 숨어있어 직접 스윙, 재즈, 탱고를 연주한다.

밴드의 라이브 연주에 맞춰 다양한 장르의 뮤지컬 넘버를 들을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다.

연주도 괜찮고, 노래도 괜찮다.

촌스럽지 않게 편곡도 잘 된 것 같다.

덕분에 자칫 악극처럼 촌스러울 수 있는 노래들이 꽤 세련되게 들린다.

특히나 아름다운 건 스텝과 배우의 열정과 노력이다,

역할에 깊게 몰입되어 있는 배우들의 눈빛을 보는 건

관객으로써 지극한 행복이고 깊은 감동이다.

게다가 젊은 배우 일색의 무대가 아니라는 것도 개인적으로 맘에 든다.

연세 지긋한 배우 최용민의 활약은 그래서 더 아름답고 든든하다.

홍옥임, 김동주를 제외한 6명 배우는  전부 멀태맨이라고 하겠다..

다양한 캐릭터들을, 그것도 잠깐의 등장하는 인물조차도 전부 자기 몫을 충분히 한다.

 

한창 뜨고 있는 hot한 배우가 있는 것도,

소녀팬들을 몰고 다니는 아이돌 스타가 있는 것도,

그렇다고 무대가 화려해서 눈이 호사하는 것도 아닌데도 이 작품.

참 착하고 이쁘고 매력적이다.

작지만 섬세하고 성실한 창작품의 탄생이다.

그러니 부디 성실하고 섬세하게 잘 발전했으면...

어쩐지 나도 모단걸이 되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