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1. 7. 15. 05:50
최인호는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K에 대해 언급하더니
황석영은 <낯익은 세상>으로
소비와 생산의 세상이 남긴 인간 세상의 폐허를 이야기한다.
이러다  정말 "낯익은 OOO"이 문학적 화두가 되는 건 아닐까?
최인호, 황석영, 조정래...
요즘 문학계 노장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리고 그 심상치않음이 나는 신명나고 즐겁고 그리고 고맙다.
(장편으로 새롭게 탄생된 조정래의 <황토>도 어여 읽어봐야지!)



그에게 이 소설은 여러 의미로 남다르리라.
작가생활 50년 최초로 전작으로 발표한 장편소설 <낯익은 세상>
작년에 <강남몽>의 표절시비로 구설수에 올랐던 황석영은
이번엔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떠올리게 하는 "꽃섬"이라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작품을 위한 칩거였는지, 구설수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은둔(?)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쓰기 위해 그는 중국 리장(麗江)과 제주도에 거의 머물렀다고 한다.
시간이 멈춘듯한 장소였다는 중국의 리장.
그러나 그곳 역시도 대도시 뉴욕이나 파리처럼 
인간의 욕망에 의해 점령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소설의 모티브를 생각했단다.
뭐 굳이 그걸 중국까지 가서 느낄 필요는 있었을까 싶긴 하다.
왜냐하면 눈만 돌리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딱 그러니까.
소비와 생산의 잔재로 점점 폐해와 쓰레기더미로 변하는 세상.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에 인접한 곳에 터잡고 산지 오래된 나는
어릴 때 문만 열면 온갖 기묘한 쓰레기 냄새가 아침을 그야말로 화끈하게 열어주곤 했었다.
그 쓰레기산이 지금 저렇게 멀쩡한 상암월드컵경기장으로 변신해서
서울시민의 쉼터가 됐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긴 하다.
내가 아는 최고의 before-after 반전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옆길로 들어와버리긴 했지만
어쨌든 그 곳에 사람은 산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소설처럼 김서방네 가족이 사는 제 3의 공간(도깨비 세상)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극히 팡당한 시츄에이션인 도깨비를 등장시킨 이유에 대해 황석영은 말했다.
"욕망의 추악한 냄새와 잿더미, 자연적 치유의 순환 고리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도깨비 정령들을 불러내 하나의 화해의 모티브로 제안했다" 라고...
글쎄...
내 지적 능력이 현격하게 떨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서방네 대가족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다.
"세상에 니들만 사는 줄 아냐?" 라는데
그렇다고 도깨비를 버젓이 등장시킨건 너무 환상적(?)이고 유아적이지 않나?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가 된다는데...
황석영의 친구들도 그랬단다.
만년 문학은 "치매문학"이라고.
그래서 대략 그려려니 하고 이해하기로 했다. (*^^*)



수월하고 쉽게 읽혀지는 소설이다.
환상소설? 성장소설? 어른을 위한 동화? 혹은 재난 소설?
암튼...
읽으면서 코멕 맥카시의 <The Road>와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The Road>가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황석영의 예전 성장소설들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딱히 줄거리가 중요한 것 같지도 않고
깊이감이 있어 읽고 난 후에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류의 책 역시 아니다.
성찰 혹은 반성 좀 하라고 훈계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냥 도깨비 세상 같다.

열심히 필력을 자랑하고 계시는 황석영이 현재 구상하고 있는 책이 있다는데
이게 또 의외다.
"내년이면 등단한 지 딱 반세기인데 50주년 기념으로 《이야기꾼》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쓸 거예요. 황석영을 아바타로 만들어 19세기에 두고 여러 풍랑을 겪는 이야기꾼의 일생을 다룰 예정이죠.연재가 아니라 전작으로 집중해 쓸 겁니다. 저의 80세,90세 때의 모습이 보이시나요?"
그러시단다.
황석영의 아바타라...
그 연세에 참 다양한 시도를 끊임없이 하는 저력은 일단 너무나 놀랍다.
결과물이 그만큼 잘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
혹시 이러다 스타워즈급의 소설 한 편이 탄생하는 건 아닐까?
문득 황석영 아바타가 광선검을 들고 서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대략 난감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6. 29. 06:39

2010년 10월 27일 집필을 시작해서 그해 12월 26일,
꼭 두 달만에 이 소설을 썼다고 청년작가 최인호는 말했다.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불러주는 것을 받아 적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경외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라고도...
그러나 뭔가에 홀리듯 이 소설을 쓸 때,
최인호는 2008년 5월 발병한 침샘암으로 투병중이었고 지금도 계속 투병중이다.
암치료를 위한 방사선 치료때문에 발톱과 손톱이 빠져 동네 약방에서 고무골무를 사다가
손가락에 끼우고서 20매에서 30매 분량의 원고를 매일같이 직접 만년필로 원고지에 썼단다.
"몸은 고통스러웠으나 열정은 전에 없이 불타올랐다" 는 작가의 말에
나는 문득 벼락이라도 맞은 느낌이다.
이렇게 뜨겁고 치열하게 공포에 가까운 열망으로 업을 사는 사람이 있구나...



한 가정의 모범적인 가장이자, 번듯한 금융회사에 다니던 평범한 사회인 K는
어느날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으러 가면서
이곳 아닌 다른 세계와 뒤섞인다.
아내도, 딸도, 심지어 집안에서 기르던 강아지조차도
왠지 짜여진 극본에 의해 연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매일 눈 뜨고 살았던 일상인데 어느날 이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진다.
울리지 않아야 할 자명종이 울려 잠이 깨고,
항상 쓰던 스킨은 전혀 본 적 없는 브랜드의 제품으로 바뀌어져 있다.
뭔가가 달라졌다. 분명히 어딘가가 틀어졌다.
내 공간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아니 진짜 나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균열을 매우려는 K의 추적은 그렇게 시작된다.

K=K1+K2

...... 나는 곧 '나'가 되었으며 K1과 K2는 합체하여 온전한 하나의 'K'가 되었다. 온전한 K는 하늘과 땅이 가라지기 전의 알파, K를 낳은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머지의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들이 태어나기 전의 태초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


도플갱어(Doppelganger).
뫼비우스의 띠(Ringwanderung)
도플갱어를 만나면 진짜가 죽게 된다고 했나?
Autoscopy 환자에게서 도플갱어 현상이 나타나면
그것 역시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징조라는데...
어느날 갑자가 내가 낯설게 느껴지고
"낯선 나"와 "또 다른 나"가 만나게 된다면?
2박 3일간의 혼돈 속에서 K는 자신의 정체를, 자신의 위치를 찾았을까?
K의 모습은 내 모습의 투영이기도 하다.
끝없이 부정하고, 끝없이 배신하고, 끝없이 새롭게 창조하는,
살아있는 이 시대의 모든 K!
그들이 순간 저벅저벅 일사분란한 병사들처럼 도열해서 일제히 내게 다가오는 것 같다.
K는 월요일 아침 출근하는 지하철역에서 자신이 만났던 모든 사람들과 작별한다.
K는 사라졌을까?
아니면 본래의 K로 비로소 돌아갔을까?
어쩌면 이것 역시도 뫼비우스의 띠인지도 모르겠다.

최인호는 이 소설을 쓰면서
창작욕에 허기가 진 느낌이었다고 했다.
두 달 동안 줄곧 하루하루가 "고통의 축제" 였노라고...
그 하루하루 최인훈 역시도 숱한 K의 분신들과 만났으리라.

최인훈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절박하다.
그리고 삶에서 절박함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최인훈은 소설은 앞으로 더 절박해질지도 모르겠다.
그가 또 다시 시작할 모양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3. 9. 06:02
 

박완서의 글은 그렇다.
오랫동안 깊고 따뜻하게 생각한 마음의 진득함,
꽁꽁 얼어있는 발을 녹여주는 포근함.
그리고 오래오래 고은 뽀얀 사골 국물에 후루룩 밥 말아 먹는 것 같은 꽉찬 포만감까지 느껴진다.
그래서 그분의 책이 꽃혀있는 서점 코너만 들어서도
시골 할머니집 아랫목에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그 할머님은 이제 더 이상 찐고구마를 소반에 담아 내올 수 없게 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기억은 가슴을 따뜻하고 뭉클하게 한다.
갑작스럽게 실감이 된다.
더 이상 그 분의 새로운 자식들을 읽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
이제 아픈 배를 쓸어주고 지친 어깨를 두드려주던 정답던 손길을 마냥 그리워만 해야하는구나.
그랬다. 내게 박완서라는 소설가는,
두터운 가마솥에서 방금 긁어낸 푸짐한 누룽지같았다.
그래서 박경리의 타계 소식보다도
박완서의 타계 소식이 내겐 더 치명적이었다.


<잃어버린 여행가방>
박완서의 기행산문집.
노구의 몸을 한 발 한 발 움직여 찾았던 곳.
그 장소보다도 그 곳을 말하는 그분의 시선이 너무나 따뜻하고 정겹다.
챕터 시작 첫 페이지에 작게 담겨 있는 얼굴 사진은...
책 장을 넘기고 싶지 않을 만큼 오랜시간 다정하게 마주하게 한다.
문득 궁금하다.
누가 찍었을까?
풍요롭고 따뜻한 당신의 미소는 지금도 여전히 수줍은 소녀같다.
내게 박완서는 분명 로망이다.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로망...
어느날은 나도 박완서처럼 남도땅을 하나하나 밟으며 폭삭폭삭한 흙의 결을 느끼고 싶고
젖은 낙엽이 풍기는 냄새에 오랫동안 안겨있고 싶다.
비가 품은 냄새처럼 은근하고 약간은 비릿한 그 냄새...
벌써부터 이 모든것들이 당신처럼 그저 그립다.

...... 모든 것은 돌고 돈다. 가장 앞서갔다고 생각되는 게 가장 처진 게 될 수도 있다. 지금 가장 낙후된 고장처럼 보이는 것이 가장 앞선 희망의 땅이 될 수도 있다. 발전이란 이름으로 만신창이가 된 국토에 마지막 남은 보석 같은 땅이여, 영원하라 ......

박완서는 말했다.
...... 타는 사람보다도, 나는 사람보다도, 뛰는 사람보다도, 달리는 사람보다도, 기는 사람보다도, 걷는 사람이 난 제일 좋다 ......

이 글귀처럼
그분은 생전에 우리나라의 남도땅 구비구비를,
바티칸을, 중국을 통해 백두산을, 상해를
에티오피아와 인도네시아를
세계의 지붕 티베트를, 가트만두를 걷고 또 걸었다.
걷는 육신의 피로함은
말간 정신의 청명함으로 지금 내 눈 앞에 활자화되어 있다.
겸손하고 나직한,
그러나 선연하고 강인한 그분의 글을 나도 다리품하듯 읽고 또 읽었다..

"그립다"는 말...
참 두고두고 서럽구나......



한때 최인호의 이 에세이가 서점의 베스트셀러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오히려 읽을 생각을 안 했었는데...
책을 손에 잡은 건,
아마도 표지에 있는 사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강에 떠 있는 나룻배 한 척.
그리고...
책 속에 담긴 사진들은 내가 퓨파인더로 보던 시선 그대로다.
솔직히 책의 내용보다는 사진이 눈에 밟힌 책이다.
이렇게 말하면 턱없는 소리라 생각되겠지만
꼭 내가 찍은 사진들 같다. (^^::)

"인연"이라고 단어때문에
나는 이 책이 작가 최인호가 만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다.
하긴, 따지고 보면 "인연"이라는 게 어디 사람하고만 맺을 수 있는 건가!
사람에 대한 인연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사람 아닌 것과 맺는 관계이리라.
꽃들과 나무들, 그리고 작은 것들을 바라보는 최인호의 시선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겐 최인호의 책들이
아직은 여전히 낯설다.

* 공교롭게도 이 두 책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한 사람이 있다.
   영화배우 "안성기"
   내겐 "안성기"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같은 게 있다.
   문화예술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라고 말하면 이해가 될까? 
   따뜻하고 바른 사람에게는
   누구라도 악한 감정이 생길 수 없다는 걸 안성기를 통해 느끼게 된다.
   참 보석같은 사람이다.
   어쩔 수 없이 빛나는 사람.
   그런데 그 빛은 과하지 않고 언제나 영롱하고 깨끗하다.
   "카리스마"라는 단어조차도 왠지 주눅들게 만드는 그런 사람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