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4. 23. 06:25

<모비딕>

 

일시 : 2012.0320. ~ 2012.04.29.

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원작 : 허먼 멜빌

출연 : 신지호, 윤한 (이스마엘 - 피아노) / KoN, 지현준 (퀴퀘크 - 바이올린) / 황건 (필레그, 에이협 - 첼로)

        이승현, 유성재 (스타벅 - 기타) / 조성현, 유승철 (플라스크 - 클라리넷, 트럼펫)

        황정규 (스텁, 모비딕 - 콘트라베이스) / 이지영, 차여울 (네레이드 - 피아노)

작,작사 : 조용신

작사,작곡,편곡 : 정애경

연출 : 조용신, 이소영

음악감독 : 정애경

 

액터 뮤지션 뮤지컬(Actor Musician Musical)!

참 난해하고 알 수 없는 단어다.

출연하는 배우가 노래와 연기는 물론 무대 위에서 악기까지 직접 연주하는 뮤지컬을 뜻한단다.

여기서 악기는 단순히 음악을 연주하는 도구로 사용되지 않는다.

때로는 소품으로 때로는 감정의 직접적인 표현으로 무대 위에 종행무진한다.

확실히 지금까지 뮤지컬과는 다른 방식의 표현이다.

신선하다 그리고 특별하다.

2011년에 초연됐을 때도 이런 특이한 표현방식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 해 다시 공연된다고 소식을 들었을 때 꼭 봐야지 생각했던 작품이다.

초연때는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1 소극장에서 공연됐었는데

이번에는 중극장 연강홀에서 공연됐다.

공연시간도 인터미션 없이 110분이었다는데

지금은 1막, 2막으로  구분됐고 노래도 추가되면서 공연시간이 140분으로 늘었다.

작품을 보면서 작년 초연은 어땠을까 상상했다.

그래서 일부러 초연 멤버 위주로 캐스팅을 선택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공연장이 커지면서 연기만 전문적으로(?) 해온 배우들이 아니라

확실히 연기적 표현의 한계가 자주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 좋은 연주가들의 연주 분량이 더 많고 풍성했으면 훨씬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음악만큼이나 날 사로잡은 "시선"이다.

전체적으로 관객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피쿼드호는 관객의 시선을 그대로 끌어안는다.

(문득 연극 <해무>가 떠오른다)

관객에게 관음의 시선, 혹은 공동운명체적인 집단적 동일성의 시선을 여지없이 부여한다.

게다가 사이렌을 떠올리게 하는 왼쪽 상단 네레이드의 신비스럽고 초월적인 시선과

왼쪽 하단 에이협 선장의 완강하고 일방적인 시선,

그리고 오른쪽 중간 이스마엘의 천진하면서도 위태로운 시선.

무대 중앙 깊숙한 곳의 스텁과 플라스크의 코믹하지만 현실적인 시선

이성적이여서 누구보다 가장 위태롭과 힘겨웠던 스타벅의 시선까지.

핀조명처럼 그들의 연주와 함께 그들의 시선을 쫒아가다보면 아득하게 황홀해진다.

결코 입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하지 못할 이 모든 것들! 

<모비딕>은 확실히 별종의 존재이고 표현이며 느낌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무대 위에서 클래식한 악기들이 직접 인물이 되어 

그 음악적 연주로 움직이고 대화하는 이 기묘할만큼 환상적인 표현력!

이 매력적이고 차별적인 발상의 시작은 누구였을까? 어디였을가? 무엇이었을까?

 

story가 총촘하지 못한게 흠이라면 흠.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 허멘 멜빌의 <모비딕> 원작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필레그 선주와 에이협, 1인 2역을 연기한 황건에게 감동하다.

두 인물을 너무 확실하게 구분해서 연기했고

그의 첼로 연주는 정말이지 대사같았다.

(그의 첼로 연주를 좀 길게 듣고 싶었는데 내내 아쉽다)

노래 실력도 수준급이다.

네레이드 차여울도 때로는 신비스러웠고 때로는 고요하지만 광폭했다.

유일한 여자였고 그리고 첫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당차고 아름답다.

극의 흐름을 바꾸는 부분에서는 존재감이 확실했고

노래와 피아노 연주 역시 훌륭했다.

정말이지 꼭 뱃사람을 홀리는 사이렌 같이 유혹적이었다.

마초적인 퀴퀘그 KoN의 노래실력에도 깜짝 놀랐다.

단지 어눌한 대사는 (아마도 야만인이라는 인물에 대한 설정이었겠지만) 개인적으로 별로였다.

콘트라베이스 스텁의 사투리도 좀 아닌 것 같고...

황정규의 모비딕을 표현한 콘트라베이스 연주는 짧지만 강렬했다.

가장 저음을 낸다는 악기 콘트라베이스.

가콘트라베이스와 툭툭 치고 들어오는 드럼 소리에 심장 박동이 저절로 맞춰진다.

오랫만에 무대에서 본 이승현은 많이 아쉽다.

그러나 어쨌든 참 신비롭다. 이 작품!

배우들의 연기적 표현은 많이 부족하고

연주자의 음악적 표현은 짧아서 아쉬웠지만

보는 사람을, 듣는 사람을, 느끼는 사람을 점점 더 잡아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공연장을 나오는 발걸음에 남는 아쉬움조차도

결핍과 부족함에 대한 찜찜함보다는

공연장에 들어갈 때보다 어쩐지 더 기대감에 차게 만든다.

 

기이하다, 이 작품!

앞으로의 진화가 몹시 기대된다.

내년에 다시 공연된다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까?

기대감을 가지고 충분히 기다릴만한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12. 21. 06:33
백만년 만에 다녀온 클래식 음악회.
5~6년 전에 예술의 전당에서 피아노 연주를 듣은 게 마지막 클래식 공연이라
어디까지나 나 때문에 조금 걱정스러웠다.
Anima 라니 여성 맴버들로만 구성됐을텐데
너무 부드럽고 유해서 혹시라도 꿈나라를 여행하지나 않을까 싶어서....



<Program - " Eight Seasons">

A. Viavldi "The Four Seasons"
   -
Concerto No. 1 in E major, Op. 8, ‘Spring’
    - Concerto No. 2 in G minor, Op. 8, ‘Summer’
    - Concerto No. 3 in F major, Op. 8, ‘Autumn’ 
    - Concerto No. 4 in F minor, Op. 8, ‘Winter’


B. Piazzolla "The Four Seasons"

    - Primavera portena (항구의 봄) 
    - Verano porteno (항구의 여름)
    - Otono porteno (항구의 가을)
    - Invierno porteno (항구의 겨울)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비발디와 현대 탱고음악을 대표주자 피아졸라의 사계.
프로그램을 보면서 살짝 가슴이 설랬다.
바이올리니스트 조영미 교수가 제자들과 함께 만든 바이올린 앙상블이라고 한다.
조영미 3남매는 "조트리오"를 만들어서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다.
(피아니스트 조영방, 첼리스트 조영창, 바이올리니스트 조영미)
1부는 신민경, 이승연, 김유리, 최고은의 협연으로 비발디 사계를
2부는 조영미 교수가 메인 바이올린 주자로 나서 아니마 체임버와 피아졸라의 사계를 연주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곡을 연주할 때는 연주자들도 부담감이 있겠구나 싶다.
아마도 협연자들이 그러지 않았을까?
이미 훌륭한 명반들도 많이 나와 있는 상항이니까...
1부는 기대했던 것보다 조금 미흡한 공연이었지만 (내가 그런 평가나 내릴 주제나 되는진 모르겠지만... ^^;;)
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 더블베이스로만 구성된 비발디의 사계를 듣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2부 피아졸라는 참 좋았다.
연주자들도 꽤 많았고 악기도 제법 많이 구성돼 풍성한 소리가 느껴졌다.
둔탁하면서 날카롭게 시작된 메인 바이올린 연주는 색다른 탱고의 느낌을 안겼다.
제일 호응이 좋았던 무대는 앵콜 연주 무대.
센스있게 크리스마스 캐롤을 연주했다.
특히나 남자 베이스 연주자 한 분이 자기 체격과 꼭 잘 어울리는 조그마한 벨들(? 무식의 소치다...)을 흔들며
흥을 돋우듯 "헤이~~!"하고 외쳐서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한동안 너무 뮤지컬과 연극만 눈과 귀에 담았던 것 같다.
어쩌면 1부를 집중하지 못한 게 꼭 연주의 탓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째뜬 편식이든, 편애든 한쪽으로 치우치는 게 그닥 바람직하지 않은 일인데...
열심히 기회를 만들어서 연극, 뮤지컬을 본 것 처럼
클래식한 무대도 종종 찾아가야 겠다.

처음 가본 세종 체임버홀에서의 연주.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좋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3. 23. 21:51

<향수>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페이퍼북)

 
파트리크 쥐스킨트!

이 매혹적인 작가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요?

<좀머씨 이야기>, <콘트라베이스>, <비둘기>, <깊이에의 강요>

우리나라에 번역된 그의 작품 모두 하나같이 다 문제작이긴 하지만 <향수>라는 책을 읽었을 때의 그 강렬함이라니...

작가가 만든 “신세계”의 미궁에 제대로 빠져버렸다고 한다면 이해가 되실까요?

이 책,

사연도 참 많습니다.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이 책은,

1991년 12월 국내 초판 됐고(제가 가지고 있는 책이 파란 표지의 그 오래된 초판, 바로 그 거랍니다) 1995년, 2000년 두 차례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영화 개봉과 더불어 다시 신판이 출판되면서 폭발적인 판매 기록을 보였죠. 초스테디셀러에 등극한 이 소설은 지금까지 30쇄 이상 재판됐다고 합니다.

(영화 예술의 힘! 작년에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를 베스트셀러 2위에 올려놓는 걸 보면서 또 다시 절감했죠)

그런데 이 사실도 아세요?

이 책이 “19금 이야기”의 선정 도서가 됐었다는 사실도요.

책의 후반부쯤에 나오는 사형집행장에서의 집단 난교 부분과 마지막 충격적인 결말들이 이런 영예(?)를 안겨준 셈이죠.

그것도 출판된 지 한참이 지난 후에 이런 에피소드가 생긴 걸 보면, 책은 정말 살아 있다는 환상을 여전히 품게 합니다.

“환상”이라는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요,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작가에 대한 극단적인 환상을 심어주는 사람이기도 하죠.

전세계의 집요한 매스컴의 추적을 거의 완벽하게 피하면서 숨어있는 사람.

대인공포가 있다는 소문, 동성연애자라는 소문, 그리고 흉한 장애가 있다는 소문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사람들과의 만남도 싫어해 문학상도 거절하고 인터뷰도 거절하며 철저하고 은둔하고 있는 작가!

그는 자기 작품에 대한 관리 전체를 형에게 맡긴 채 현재 프랑스 남부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에 잠금장치까지 하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동료 작가도 없고 심지어 자신의 신상에 대해 발설한 사람이면 친구와 부모를 가리지 않고 누구와도 절연해 버릴 정도라고 하니 오래된 사진 한 장으로만 알려진 그를 세상에 불러낸다는 건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네요.

그러나 생각합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작은 오두막에서 지금 <향수>보다 더 매혹적인 작품에 몰두하고 있을 거라고...

(사실 그의 새로운 책의 출판을 전 아주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책 <향수>의 줄거리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 거예요.

질긴 생명력으로 생선 내장 더미 위, 아무 냄새도 갖지 못하고 버려지듯 태어난 아기 그르누이.

그의 삶의 목적, 그건 사람의 “냄새”를 내 몸에 갖겠다는 강렬한 탐욕이었습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탐욕”이라는 의미는 그러나 그에겐 적절치 않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품은 “탐욕”은 소유에 대한 집착보다 오히려 생명에 대한 무심한듯하지만 강렬한 집착에 가깝기 때문이죠.

“생명”이라는 거,

“향기”를 품지 않는 생명이란 죽음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그르누이는 그의 살인 행각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가장 가까운 동반자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하죠.

그를 피해 달아나는 향기가 그에게 무사히 채집되기를 나 또한 간절히 바라는 마음.

향기를 채집하는 그의 섬세한 행동 하나 하나가 성스럽고 예술적으로 느껴지는 그 순간,

이제 그의 옆에 제 2의 그르누이의 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겁니다.

25명의 향기가 채집되기까지 저 역시도 그의 동조자가 되어 가만가만 숨을 죽입니다.

어쩌면 결말 혹은 끝장을 보고 싶다는 저의 또 다른 탐욕인지도 모르겠네요.

그의 향기에 취해 그를 탐하는 무리에 둘러싸이게 되는 마지막 결말.

악마적인 황홀경에 빠져 그의 향기를 먹어치우는 무리 속에 나 자신이 없다고 과연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함께 한 사람들은 이미 무언의 합의를 끝낸 듯 합니다.

그건 “구원”의 행위였다고......

그의 향은 우리를 구원했고 그리고 우리는 그를 각자의 몸 안에 조각내 피난시킴으로 구원을 해줬다고......

이제 남겨진 사람을 우리는 누구라고 불러야 할까요???.......


서번트 신드롬 (savant syndrome)!

지능은 보통사람들보다 떨어지지만 음악연주나 달력계산, 암기, 암산 등 어떤 특별한 부분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을 간혹 보게 됩니다.

프랑스어로 이 말은 배우지 않고(바보 idiot) 터득한 기술(석학 savant)이라는 뜻이죠. 특히 발달장애나 자폐증 같은 뇌기능 장애를 가진 이들이 그 장애와 대조되는 천재성이나 뛰어난 재능을 보일 때 이 서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 석학증후군 이란 말을 하게 됩니다.

영화 <레인 맨>에서 톰 크루즈의 형으로 나왔던 더스틴 호프만이 바로 서번트 신드롬을 가진 자폐인을 연기했었죠. 

말하자면,

그르누이도 서번트 신드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흔히 천재성은 그 “광기”로 인해 인생 전체를 “파괴”하기도 하죠.

“Utopia”가 아닌 “Destopia”의 탄생.

철저하게 파괴함으로써 이상향을 만들겠다는 “Destopia”

<향수>

그 위험한 Destopia의 세계.

그 세계가 섬뜩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매혹적이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네요.


만약, 

당신에게 아직 향기가 있다면....

조심하길 진심으로 당부합니다.

조각난 그르누이가 혹 당신을 탐할 수도 있으니.....


                                                      <유일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사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