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2. 4. 16. 05:59

나는 아직 스마트한 사람이 아니라서 핸드폰도 스마트폰이 아니다.

내가 일하는 곳에 스마트폰 아닌 사람이 나까지 3명이었는데 어느틈에 달랑 나 하나로 줄었다.

자꾸 옆에서 뭐라고 한다.

이제 그만 스마트폰으로 바꾸라고...

워낙에 심한 기계치이기도 하지만

왠지 스마트폰을 쓰면 자투리 시간을 온통 거기에 쏟을 것 같아 아직까지 열심히 고사하는 중이다.

출퇴근길에 전철에서 예전에는 책이나 하다못해 무료신문 보는 사람들이 몇 명은 있었는데

지금은 다들 자신의 스마트폰에 그야말로 머리를 박고 있다.

뻘쭘하고 약각은 고고하게 혼자서 책을 읽는다.

기분 꽤 괜찮다.

내가 다른 사람과 어쩐지 달라보이는 것도 같고...

스마트폰의 어매이징한 터치의 신세계보다

나는 아직 종이냄새 풍기는 책장을 터치하는 게 비교불가하게 황홀하다.

게다가 나는 e-book과도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이다.

책은 역시 한 장씩 한 장씩 손으로 직접 넘겨야 제 맛이라고 생각한다.

슬쩍슬쩍 뒷부분을 훝어보는 재미도 놓치고 싶지 않고...

 

표지 속의 박경철을 보고 일단 놀랐다.

너무 슬림해서 내가 알고 있던 "시골의사" 박경철이 아닌 것 같았다.

일부러 살을 뺐다는데 의지가 대단하다.

다재다능, 박학다식.

박경철이 딱 그렇다.

예저에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을 읽으며 이런 소망을 적었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도 소설 쓰는 의사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의학서적이나 에세이, 기고문이 아닌 진짜 문학을 하는 의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

아쉽게도 박경철은 문학을 하는 의사는 아니지만

문학 작품같은 그의 글들은 간혹 보게되면 또 다시 꿈꾸게 된다.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이제 이런 책을 읽기엔 점점 늙어가고 있지만(?)

나는 이 글 속에 있는 박경철의 도발과 혁명이 아름답다.

이 사람은 내내 청년인채로 살겠구나 싶어 정신이 번쩍 차려진다.

...... 청년은 끊임없이 반해야 한다. 세상에 반하고 문학에 반하고 친구에 반하고 이성에 반하고 자연에 반하고 꿈에 반해야 한다. 그렇게 반함을 혹은 뜨거움을 충분히 발산하고 만끽함으로써 나를 억압하는 규제나 금기로부터 오는 곤혹스러움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

안밖으로 아름다운 문장이다.

그러나 나 역시 아직 반할 수 있는 것들이 남아있다.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해 반해보리라.

<태백산맥>의 거장 조정래 선생님이 말했다.

"최선이란 자기의 노력이 스스로를 감동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쓸 수 있는 말이다" 라고.

박경철처럼 정말 뇌가 녹아버릴 것 같이 무언가에 몰두하고 열심이었던 적이 있던가!

그게 자의였든, 타의였든 그랬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직 청년이다.

나도 아직 반할 것들이 남아있기에

내 청년도 끝난 게 아니다.

다행이다. 

세계 분쟁 지역을 다니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김영미 PD.

그녀가 카메라가 아닌 글로 기록한 아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은 평온했다.

그래서 더 안스러웠다.

아프가니스탄 여성 시인 나디아 안주만.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가족에게 살해됐다.

사랑과 아름다움이라는 입에 담을 수 없은 단어를 사용해서

그것도 감히 여자가 시를 지었다는 이유로 명예살인을 당했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거나 죄를 지은 아내나 딸, 여동생을 죽여 가문의 위신을 세운다는 "명예살인"

그렇다면,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은 어떤 단어를 써야만 하나?

가족에게 죽임을 당할 당시 그녀의 나이는 고작 25살이었다.

이보다 더한 비이성과 야만의 세계가 과연 있을까?

노래하는 사람을 참수형시키는 탈레반 정권.

밥을 먹고 있는 일가족을 한꺼번에 쓸어버린 폭탄.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비의 기억은 멈췄다.

이미 세상에 없는 가족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아비의 눈은 과연 무엇을 보는가?

 

전쟁의 목적과 이유가 도대체 뭘까?

인간의 삶이 어디까지 피폐해질 수 있는지 그 바닥을 기필코 보고 싶다는 마음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희 PD는 말한다.

...... 나는 다시 그런 기회가 오면 겁나더라도 또 그곳을 가고 싶다. 전쟁터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떤 기자가 왜 전쟁터만 가느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나는 전쟁터여서가 아니라 그곳에도 사람이 있어서 간다고 대답했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 나의 카메라는 갈 수 있다 .....

그곳이 전쟁터여서가 아니라 사람이 있기에 간단다.

그래, 여전히 사람이 희망이다.

희망은...

그러나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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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구호 단체들

 

o 유엔난민기구(UNHCR) www.unhcr.or.kr  whth@unhcr.or.kr / 02-773-7272

o 유니세프 (UNICEF) www.unicef.or.kr  psfr@unicef.or.kr 02-723-8215 

o 적십자 (Red Cross, Red Crescent) www.redcross.or.kr  master@redcross.or.kr 02-3705-3705

o 플랜 코리아 (Plan Korea) www.plankorea.or.kr  kno@plandorea.or.kr  02-790-5436

o 세이브더칠드런 (Save the Children) www.sc.or.kr  webmaster@sc.or.kr  02-6900-4400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10. 08:29

<천 개의 찬란한 태양> - 할레드 호세이니

 

책 이미지

 


할레드 호세이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의사 작가입니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이란, 프랑스 등에서 체류했던 그의 가족은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조국이 공산국가로 변하자 이듬해 미국으로 망명을 했다고 하네요.

2003년, 그는 첫 소설 <연을 쫓는 아이>를 발표했고(달동네 책거리에서 지난번에 소개했던 책이기도 하구요) 4년 후인  2007년 두 번째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발표했습니다.

전작이 아프가니스탄 남자의 이야기였다면 이 소설은 아프가니스탄에 남겨진 여성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말합니다.

“내 글쓰기가 아프가니스탄의 문제에 대한 논의를 일으켜 대중적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길 희망한다”라고.....

(그리고 그는 충분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단지 두 권의 책만으로도요....)


이 책에는 1959년부터 2003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의 끔찍했던 현대사를 관통해 온 두 여자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왜냐면 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정말 현실이니까요.

자, 그럼 이제 그 두 여자를 만나볼까요?


* 마리암

모계의 지위가 자식에게 이어지는 아프가니스탄.

부잣집 하녀였던 어머니와 주인 사이에 태어난 아이 마리암.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라미(후레자식)’란 이름으로 배척받는 아비 있는 사생아. 그것이 그녀의 위치였고 이름이었습니다.

가족에 편입되지 못하고 평생 좌절감에 몸부림치던 어머니 나나는 마리암이 열다섯 되던 해 딸이 아비의 집을 찾아가 그 집 앞에서 밤을 지세우던 날 자살을 합니다.

어머니는 두려웠겠죠. 혹시 혼자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리고 딸의 곧 느끼게 될 현실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거부 그리고 말로 표현되어질 수 없는 모든 것들이요...

혼자가 된 마리암은 아버지의 본가에서 잠시 생활하지만, 그들에게 이 아이는 단지 망신스럽고 부끄러운 존재일 뿐입니다.

그들은 마치 엄청난 은혜인양 서른 살 많은 홀아비 구두공 라시드에게 그녀를 시집보냅니다. 마리암의 나이 15살, 라시드는 45살....

남편(이 말의 끔찍스러움이여~~~) 라시드는 처음엔 다정했습니다.

아들을 몹시 바라던 그는 마리암의 유산이 계속되자 점점 본성을 드러내게 되죠.

폭행과 학대의 끝없는 시작...(이 단어는 그러나 절대...절대...절대로 부족한 표현입니다....)

밥을 제대로 짓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는 마리암에게 조약돌을 씹으라고 합니다.

마리암은 눈물을 흘리며 입 안에서 조약돌과 함께 자신의 부러지는 이를 함께 씹게 됩니다.

그녀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는 전혀 의미가 없는 말입니다.

이게 그녀의 삶입니다. 어쩌면 평생 동안 이어질지도 모르는.....


* 라일라

9살 라일라는 두 오빠가 전쟁터로 끌러가기 전까진 행복한 아이, 그리고 다정한 가정을 가지고 있던 사랑스런 어린 아이였습니다.

두 아들을 읽은 라일라의 엄마는 소련의 몰락만을 희망으로 아무 의미도 가치도 느끼지 않고 살아갑니다. 소련의 몰락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카불을 떠날 준비를 하던 그들의 집으로 떨어지는 로켓 유탄.....

잃어버린 한쪽 청력과 그리고 사랑하는 티리크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로 그녀의 의식은 점점 흐려집니다. 

마리암과 라시드에 의해 구출되는 라일라는 그들의 집에서 잠시 생활하게 되죠.

그리고 며칠 후 타리크가 피난길에 나머지 한쪽 다리도 잃고(한쪽은 이미 지뢰폭발로 잃어 의족을 하고 있었죠)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러나 이 소식은 모두 라시드가 꾸며낸 거짓말이었습니다)

이제 그녀도 혼자 남습니다.

(참고로 1996년 집권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세력은, 여성들의 교육 및 취업 기회를 완전히 박탈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은 채 집 밖으로 나온 여성들에게는 집단폭행을 가하는 등 극단적인 여성차별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절망한 라일라에게 라시드는 자신의 두 번째 부인이 되든, 거리로 나가든 선택을 하라고 말합니다. 거리는 강간과 살육이 범람하는 지옥으로 변한 지 이미 오래죠. 라일라는 그의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그녀의 몸 속엔 지켜내야 할 생명이 있었으니까요.

15살의 나이에 환갑도 넘긴 남자의 후처가 된 라일라....


증오의 상대로 만나게 된 마리암과 라일라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남편과 종교 근본주의로 퇴행한 사회와 맞닥뜨리면서 점차 동지적 관계를 맺게 됩니다.

남성의 소유물로 남성에 의지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들이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없었습니다.

남성들에게 부여된 이러한 우월적 지위가 전쟁의 혼란 상황과 맞물리면서 남성의 가학적 폭력성은 가정 내에서 무자비한 폭력과 학대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여성들은 그것을 고스란히 당하게 되죠, 즉 이 책의 두 주인공이 그 희생물의 대표적 전형인 셈입니다.


마리암과 라일라는 한 남자의 아내로서 엄청난 나이차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두 여인은 남편의 폭력을 똑같이 감내해야 하는 같은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처음엔 서로 증오하고 미워하고 대면대면했던 그녀들은 점점 같은 상황을 감내하는 아프가니스탄에 남겨진 여인으로 동지애를 느끼게 되죠.

특히 라일라에게 자식이 생기면서 마리암은 그들 모두에게 진한 모정을 갖게 됩니다.

결국 남편의 극단적 폭력과 학대로 죽음 직전까지 몰린 라일라를 구하기 위해 마리암은 남편을 살해하게 되죠. 그리고 자신의 아들딸들을 살리기 위해 라일라를 그녀의 옛 애인 타리크와 탈출시키고 모든 죄를 스스로 감당하며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타리크와 행복한 새 삶을 살던 라일라는 결국 탈레반이 미군에 쫓겨 북부로 달아난 시점에 자신의 고국 아프가니스탄으로 되돌아옵니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 앙상한 뼈다귀만 남겨준 그 폐허의 현장으로요.

아마도 라일라는 자신만의 편안한 삶을 위해 남은 생을 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다시 폭력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길일지라도 그녀를 필요로 하는 많은 아프가니스탄의 아들딸들의 소리를 외면할 수는 도저히 없었겠죠. 

그녀는 전쟁의 상흔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에게 마리암이 자신의 마음속에 심어준 찬란한 사랑을 나눠줄 것입이다.

이제 이 책의 제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라일라의 베품 속에서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계속 떠오르게 되겠죠.....

벽 뒤에 숨어서도 떠오를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요...


이 소설을 결코 편하게 읽을 수는 도저히 없는 책입니다.

통곡을 하게 만드는 그래서 솔직히 책을 읽는 중간중간 참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힘들고 아픈 책을 꼭 읽어야 하느냐고 물으면서요...

혹 누가 제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저는,

네, 꼭 읽어달라고, 그리고 제발 제발 제발 읽어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너무 우울해서, 너무 안타까워서, 너무 서러워서, 그리고 너무 아파서 그래서 끝없이 내 온 몸이 침몰하는 느낌이 든다고 해도 꼭 읽어 보라고요....

끝없이 가라앉더라도 그 바닥에 도달하면 마침내는 그 깊은 곳을 차고 올라올 수 있게 만드는 책이니까요.

그리고 느끼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다행인 존재고, 그리고 행복한 존재고, 그리고 아름다운 존재인지를요...

책 장을 덮으면서,

부르카로 나를 가리지 않겠다고 그리고 어떤 분노에든 약해지지 않겠다고 저 또한 함께 다짐했습니다.

저는 참 행복하고 다행한 사람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