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10. 10. 5. 05:24

<환상의 책> - 폴 오스터

 환상의 책

폴 오스터...
참 매력적이고 그리고 신비감 가득한 미국 작가입니다.
개인적으로 “폴 오스터”와 터키의 국민 작가 “오르한 파묵”을 자꾸 비교하게 되는데요, 두 사람 모두 신비적 탐미주의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오르한 파묵”은 환상 속에서 현실을 이야기한다면 “폴 오스터”는 정확히 그 반대의 방법을 택하죠. 현실 속에서 환상을 이야기하는...
그러면서도 두 작가의 이야기 방식은 참 묘하게 닮아있습니다.
“오르한 파묵”이 지적이고 명석한 백과사전적인 글을 치열하고 아름답게 쓴다면, “폴 오스터”는 가십거리스러운 사건을 잡아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현실감을 갖게 만듭니다.
둘 다 범접할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낸 작가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두 사람의 책을 우리나라에 번역하는 번역가도 멋진 한 쌍의 페어를 연출합니다.
“오프한 파묵”에게는 번역가 “정영목”이, “폴 오스터”에게는 번역가 “황보석”이...
아마도 두 이국의 작가가 다른 번역가들을 만났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느낌을 전달받을 수는 없을 것이라 감히 단정합니다.

폴 오스터의 소설들...
참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읽기를 쉽게 포기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죠.
소위 말하는 고비를 넘어야만 폴 오스터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단 그 고비를 넘기면 손에서 놓기가 싫어질 정도죠. 그런데 그 고비라는 게 좀처럼 넘기가 힘들다는 게 문젭니다.
읽지 않고 포기하는 자에게는 결코 비밀의 문이 열리지 않으리라는 묵시록 같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현재 그의 소설은 전부 14권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정확히 8권의 소설을 읽었네요.
개인적으로 폴 오스터의 화두(話頭)는 실종과 풍자, 그리고 미스터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읽은 폴 오스터의 거의 모든 주인공들은 결국은 실종을 선택하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숱한 미스터리와 세상을 향한 풍자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길고 긴 실종의 과정은 동양의 선(仙) 사상과 묘하게 닮아있기도 합니다.
2002년 쓰여진 이 책의 원제는 “Book of illusion"입니다.
2008년 우리나라에 발표된 “환상의 책”이라는 제목보다는 “Book if illusion"이라는 원제가 확실히 더 폴 오스터스럽네요.
"illusion"이라는 뜻에는 왠지 은밀하고 비밀스런 느낌이 있는데, "환상"이라는 단어는 허황된 눈속임과 노골적인 드러냄이 느껴지기 때문이죠.
“Book of illusion"의 첫 장은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 “샤토브리앙”의 짧은 글로 시작됩니다.
...... 인간은 하나의 동일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끝에서 끝까지 이르는 여러 다른 삶을 살며 그것이 바로 비극의 원인이다 .....

그러니까 이 책은 두 사람이지만 동시에 같은 사람이기도 했던 누군가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의 같지만 다른 삶 이야기, 그리고 추적과 멈춤, 끌어당김과 거부가 잔잔하지만 집요하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건 모든 인간의 모습, 그것이기도 하죠.

오래 전에 실종된, 그래서 죽었다고 믿어지는 무성 코미디 배우 “헥터 만”, 그리고 얼마 전 비행기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를 잃고 스스로를 불행의 삶 속으로 밀어 넣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대학교수 “데이비드 짐머”.
어느 날, 데이비드는 TV를 통해 헥터 만이 출연한 오래된 무성 코미디 영화 한 편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헥터의 콧수염과 양복은 그에게 깊은 아우라를 남기죠.
절망 속에 살던 대학교수 짐머는 세상에 남겨진 헥터의 무성영화 12편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서 몇 개월 동안 세계를 돌아다닙니다. 그리고는 다시 9개월 동안 칩거하듯 세상과 단절한 체 헥터 만에 대한 집필을 시작하고 드디어 <헥터 만의 무성 세계>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우편함에 배달된 한 통의 편지.
헥터 만의 부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쓴 편지의 내용은 "그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데이비드는 처음에는 이 편지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가 진짜 헥터 만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답장에 그녀는 다시 편지를 보냅니다.
“제 말이 진실임을 아시는 유일한 방법은 초청을 받아들이시는 것입니다.”
편지는 계속 이어집니다.
“그 사람이 1929년 할리우드를 떠난 뒤 여러 편의 장편 특작 영화들을 쓰고 감독했다는 말씀을 드린다면 오시겠다는 마음이 드실는지요? 헥터는 이미 아흔이고 나날이 건강을 잃어 가고 있어요. 그 사람은 제게 남긴 유언장에다 자신이 세상을 뜨고 나서 24시간 내에 그 필름들과 원본을 모두 파기하라고 했는데, 저로서는 그 사람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녀의 편지 내용대로라면 헥터 만은 스스로 자발적인 실종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네요.
이 대목에서 주인공보다 오히려 제가 더 헥터 만의 진실을 추적하고 싶어지는 열망이 가득합니다.
다행히 그를 데리고 가기 위해 한 여자가 등장합니다.
헥터 만의 전기를 쓰고 있다는, 헥터 만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던 카메라맨의 딸 엘머가.
함께 뉴멕시코 블루스톤 농장을 향하면서 데이비드는 헥터 만의 모든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듣게 됩니다.
그야말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나다니엘 호손의 <모반>처럼 그를 산 채로 먹어치워 버렸습니다.
영화배우로서의 헥터 만의 삶, 그리고 스스로 실종을 선택하고 콧수염을 자르고 양복을 벗고 허먼 레서로의 삶,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라이브 포르노 공연배우로 살았던 삶.
그는 그 삶들이 자신에 대한 보복 내지는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음보다 단순하고 파멸보다 더 나은 방법, 끝장을 보지 않고서도 자신을 계속 죽여 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 그는 타락을 선택했던 거죠.
... 만약 내 삶을 구할 생각이라면 그 삶을 파멸시키기 일보 직전까지 가야 한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고 재미있는 건,
헥터 만의 삶이 바로 데이비드의 삶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분명 다른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어쩌면 두 사람의 삶이 이렇게까지 동일할 수 가 있을까요?
“도플갱어” 혹은 “평행이론”이었을까요?

이 이야기는 일종의 “미궁”입니다.
비극적이면서 동시에 희망을 주는 결말.
어쩌면 “믿거나 말거나”류의 황당한 결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면 말이죠. 이런 생각을 심각하게 하게 됩니다.
“이게 정말 허구일까?”
폴 오스터의 이야기의 끝은 항상 그렇습니다.
“당신들이 이 책을 읽고 있을 때면 이 책을 쓴 사람이 벌써 오래전에 죽었다고 믿어도 좋다.”
이런 신비주의가 무책임의 한 형태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 모든 사람의 삶은 어쨌든 모두 익명성의 보장이고, 실종이고 그리고 은밀함의 추구임에는 분명하죠.
“나는 빌려다 쓰는 삶을 살고 있었다.”
폴 오스터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매번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읽는 이에게 당신의 지금 삶은 어떠며 은밀한 질문을 던지죠.
만약에 빌려다 쓰는 삶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단지 잠시 동안의 실종이라고 말합니다.
조만간 누군가에 의해 진실이 담긴 삶의 문이 열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야기는 맨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될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잘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고 충고하는 셈이죠.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느낌.
그러데 그 이야기는 앞으로도 결코 끝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알아야 할 이야기가 있고 알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좋은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알고난 전과 후가 극명하게 달라지는 경우에는 더더욱 말이죠.
저는 말이죠. 책을 읽으면 매번 그 책 속으로의 실종을 간절히 꿈꿉니다.
내 책이라는 소유욕보다 내 이야기라는 소유욕이 백배는 더 강하죠.
그래서 늘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폴 오스터의 <환상의 책>
그 속에서 제 맘 같은 구절이 있어 에필로그로 남겨봅니다.

...... 여기까지 온 당신들은 실로 위대하다 ......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10. 3. 19. 08:31

그림 관련 책을 읽다보니 문득 궁금해져서 찾아봤다.
2006년도에는 클림트의 그림이 1위였는데
지금은 미국의 현대미술 작가인 잭슨 플록의 작품이 1위에 자리하고 있다.
잭슨 폴록이 드리핑(물감 떨어뜨리기) 기법으로 만든 작품이란다.
뉴욕 소더비 경매사에서 헐리우드 음반 미디어업계 재벌 데이브드 게펜에게 팔렸다고 한다.
1억 4000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1330억 원이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1위. 잭슨 폴록 (1912~1956)의 넘버 5, 1948년작 (1,800억 원)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이 미술계의 중심으로 떠오르던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로 추상표현주를 이끌었던 미국 미술계의 슈퍼스타. ’액션 페인팅’이라 불리는 크고 정력적인 폴록의 작품들은 그를 추상 표현의의 선구자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내적인 정신성의 표출뿐만 아니라 엉클어진 실타래의 형상을 만들어 내는 폴록의 드리핑 회화는 현대 회화의 방향을 급속도로 변화시킨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잭슨 폴록의 작품과 행동 자체가 미국 미술로
대변될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1956년 음주사고로 현장에서 사망.


2위. 윌렘 드 쿠닝 (1904~1997) 1953년작 (1,780억 원)



이 작품은 쿠닝이 1951년부터 1953년 사이에 작업한 6부작 중 중심테마 작품이다.
쿠닝 역시 잭슨 폴록과 함께
가장 미국적인 회화로 일컬어지는 추상표현주의에서 ’액션 페인팅’ 계열의 선구자였다.
네덜란드 출신의 
쿠닝은 뉴욕을 이주한 후 1940년대 내내 폴록과 함께 추상표현주의 그룹에서 중심적인 인물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여인> 시리즈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과 비교되면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모습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자유롭고 격렬한 붓질에 의해 형태가 해체되고 침범되었지만 형태를
암시하는 흔적들도 엿보인다.
여인의 인체를 연상시키는 형상들과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형태와 공간, 색채 등이 
한 화면 위에서 만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 작품.

3위, 구스타프 클림트 (1862~1918) 1907년작 (1,720억 원)



관능적인 여성 그림으로 유명한 클림트, 그의 작품은 세기말과 완벽하게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품 속에 탐미주의와
쾌락예찬에 빠진 빈의 상류층 사회의 종말론적인 분위기를 에로틱하게 표현한 클림트는, 섬세한 기교와 화려한 장식,  상징으로 가득 찬 작품을 창조했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은 빈의 부유한 은행가 모리츠의 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그녀의 남편은 자신의 아내의
초상화를 당시 빈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였던 클림트에게 의뢰를 했다. 클림트는 바우어의 신분과 재력을 상징하기 위해 작품의 재료로 금은박을 입혀 정교하게 장식하여 3년 여에 걸쳐 완성했다. 그녀는 클림트와 정신적, 육체적 사랑을 나눈 여성으로도 유명하며 클림트의 유명한 작품 속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4위,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가셰박사의 초상 1890년작 (1,660억 원)



고흐가 자살하기 전에 남긴 작품들 중 하나로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파리를 시작으로 전 유럽을 돌아 뉴욕, 일본까지 긴 여행을 했고 그림 주인도 13명이나 바뀌었다.
1897년 당시 이 그림의 
가격은 고작 58달러였지만 1990년 8.250만 달러에 낙찰되어 전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당시의 경매는 예술 시장의 황금기를 알리는 동시에 일본의 엄청난 경제력을 전 세계에 과시한 일대 사건이었다.
구매자인 로에이 사이또는 이 작품을 엄청난 보안 속에 도쿄로 가지고 와 죽을 때까지 이 작품을 공개하지 않은 채 기온과 습도가 완벽하게 조절되는 특수 전시실에 보관했다고 한다.

5위, 르누아르(1841~1919)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1876년작 (1,570억 원)



당시 파리인들의 일상을 담은 풍속화로 사실적인 화풍이 한층 도드라져 보이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 중에서도 유명한 작품. 반짝이는 햇빛 아래 노천 카페의 분주한 정경을 담고 있다.
부드러운 햇빛을 받으며 즐겁게 춤추는 청춘 남녀들의 모습을 교묘한 소용돌이 구도 속에 배치 시킴으로써, 경쾌한 왈츠의 리듬이 화면 곳곳에 담고 있다.

6위, 파블로 피카소 (1881~1973년)의 파이프를 든 소년, 1905년작 (1,430억 원)



이 작품은 피카소가 전성기 때인 장미시대 그린 명작으로 그의 작품들 중 가장 아름답고 강한 필치를 느낄 수 있는 그림으로 평가 받고 있다.
화관을 쓴 소년이 그려진 이 빛나는 유화는 2004년 당시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며 고흐의 아성을 무너뜨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구입자인 존 훼이 휘트너는 19세기에 늘린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아 아름다운 명화들로 저택을 꾸몄던 컬렉터.

7위, 빈센트 반 고흐 (1853~1890)의 우체부 조셉 룰랭 (1,210억 원) 



고흐가 아를 체류 시절 유일한 친구로 귀를 자른 반 고흐를 돌봐주었던 우체부 조셉 룰랭의 초상화.

8위, 파블로 피카소 (1881~1973)의 도라마르의 초상, 1941년작 (1,220억 원)



여인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분해한 뒤 재조립하는 피카소 특유의 표현법이 잘 드러난 피카소의 걸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은 도라 마르를 반추상형으로 화폭에 담은 초상화다.
검은 고양이와 함께 드레스를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도라마르.
주인공인 도라마르는 지적이고 교양 있는 여인으로 고통스러운 시기에 피카소에게
큰 힘이 되어준 여인이기도 하다.
스페인 내전을 주제로 전쟁의 비극성을 표현한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에
많은 영향을 준 그녀는 피카소에게 버림받은 뒤 정신병원을 전전하다 자살을 했다.

9. 빈센트 반 고흐 (1853~1890)의 붓꽃, 1890년작 (1,210억 원)



이 그림은 아를 주민들의 비난을 피해 요양원에 와서 안정을 얻게 된 고흐의 푸근한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10. 앤디 워홀의 여덟명의 앨비스 (1,200억 원)



팝아트의 선구자로 불리우는 앤디 워홀의 작품.

* 현재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세계 최고가의 그림은,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모나리자.
  추정가로는 40조원 정도.




이 그림들 다 실제로 한번씩 꼭 보고싶다...
내가 꿈꾸는 유럽 미술관 나들이.
언젠가는 제발 꼭 이룰 수 있기를...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1. 12. 05:47
내가 알랭 드 보통을 좋아하는 정도는?
보통 - 조금 - 많이 - 무지 많이 ^^
이 독톡한 글쓰기 작가를 몰랐다면 무척이나 서운하지 않았을까 싶다.
"알랭 드 보통-정영목"의 조합은 묘한 흥분감과 짜릿함을 안긴다.
알앵 드 보통의 글들을 정영목이 아닌 다른 번역가에 의한 책으로 읽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그를 좋아하게 됐을까?
극도록 지적이며 탐미주의적인 완벽한 조합



현대 사회의 일에 대한 에세이.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생각을 했을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그가 쓴 소설들을 읽으면서 그 독특함이 너무 신선해서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그가 쓴 에세이들은 소설보다 그 풍미가 훨씬 더 놀랍다.
<행복의 건축> <여행의 기술>, <동물원에 가기>에 이어
이 책 <일의 기쁨과 슬픔>까지...
처음엔 그가 무지 나이 많은 작가일거라 생각했었는데
고작 1969년 생이란다.
그의 재능과 박학다식함이 부럽다.
훔치고 싶은 재능.
이 사람의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불가능한 범죄를 꿈꾸게 된다.
지독하게 매력적인 나쁜 사람... ^^



이런 제목을 가지고 글을 쓸 엄두를 누가 낼까?
전문적으로 쓰면 독자를 외면하고 지식 자량만 했다고 비난받을 테고
소개하듯 대강의 것들을 쓰면 새롭지 않다고 비난받기에 딱 좋은 재료들.
도저히 대중화된 소재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의 향연.
10개의 글들 전부의 맛과 향이 독특하고 유별나다.
사랑에만 기쁨과 슬픔이 있는 게 아니라
일에도 분명 기쁨과 슬픔이 있다는 거...
찬찬히 오래 돌아보며 생각하게 하는 에세이다.
나는 내 일에 대해 어떤 의미와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내 일에 대한 고백서 같은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바람도.
어렵겠지만...



읽고 난 후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는 내게
번역가 정영목의 글의 눈에 들어온다.

알랭 드 보통은 타의에 의해 관찰자가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관찰자의 자리에 서게 된 경우다. 그가 스스로 그런 자리를 택하고 또 그 자리의 이점을 충실히 살려나가는 점도 훌륭하지만, 그의 장점은 일을 원경으로 포착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자재로 줌을 당겼다 놓았다 하면서도 초점을 놓치지 않는 것처럼, 원경, 중경, 근경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입체감을 살려가면서 일을 명상한다는 것이 그의 진짜 장점인 듯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우리 마음의 미세한 떨림에 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동시에 그 떨림이 놓인 크고 웅대한 맥락까지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 딱 이거다.
내가 지금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이유...
그의 zoom in, zoom out에 완전히 내가 놀아난 상태.
어떻게 글 하나 가지고 사람을 이렇게 들었다 놨다를 할 수 있는 거지?
또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된다.
"알았다구요! 이번에도 내가 완벽히 졌다구요!'
결국 또 인정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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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선 관찰하기 :
나는 이 책의 부두에서 신전에 이르기까지, 의회에서 회계 사무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18세기의 도시 풍경화와 비슷한 기능을 하기를 바란다..... 이 포괄적인 장면은 일이 인간의 벌집 안에서 우리 각자에게 부여하는 자리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비스킷 공장 :
정신이 고결하고 도덕적인 야심이 있는 구성원들은 사회의 방종에 경악했다. 그들은 소비주의를 매도하면서 대신 아름다움과 자연, 예술과 우애를 찬양했다. 그러나 비스킷 회사는 초콜릿 비스킷의 효율적인 생산을 무시하고, 사회의 가장 유능한 구성원들이 혁신적인 마케팅 프로모션 기법을 기밸하면서 인생을 보내는 것을 엄하게 막는 나라들이 너무 버거워 감당하기 힘든 문제에 늘 직면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는 점ㅇ서 의미 있는 곳이다. 그런 나라들은 가난하다. 너무 가난해서 정치적 안정을 보장할 수도 없고, 가장 취약한 상태에 있는 국민을 돌보지도 못한다. 그 결과 이런 나라의 국민은 기근이나 전염병에 목숨을 빼앗긴다. 고상한 나라들은 국민이 굶주리게 놔두는 반면, 자기중심적이고 유치한 나라들은 도넛과 6천 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 덕분에 산과 병동과 두개골 스캐닝 기계에 투자할 자원을 갖추고 있다.
암스테르담은 건포도와 꽃의 판매를 기반으로 건설도이ㅓㅆ다. 베네치아의 궁들은 양탄자와 향료 교역에서 생긴 이윤으로 지었다. 설탕은 브리스틀을 건설했다. 상업적인 사회는 종종 비도덕적인 정책을 펼치고, 이상을 무시하고, 이기적인 자유주의에 빠져들지만, 그럼에도 물건이 많은 상점과 돈이 그득한 금고를 갖추어 신전이나 고아원을 건설할 자금을 댈 수 있다.

직업 상담 :
인문적 기술을 이미자신의 찬가를 부를 만큼 불렀으니, 이제 기계적 기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기계적 기술은 편견 때문에 너무 오래 격하되어왔는데, 인문적 기술은 기계적 기술을 그런 상태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항공산업 :
할 일이 있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금기라기보다는 그냥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긴다. 일은 그 본성상 그 자신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다른 데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일은 우리의 원근감을 파괴해버리는데, 우리는 오히려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에 감사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