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여행'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6.01 통영 해안도로와 동피랑 벽화마을
  2. 2015.05.29 통영 이순신 공원
  3. 2015.05.28 통영 연화도(蓮花島)
여행후 끄적끄적2015. 6. 1. 08:38

이순신 공원에서 중앙시장을 가려고 길을 물었더니

짧은 거리가 아니라면서 택시를 타란다.

걸어가고 싶다고 했더니

그러면 해안도로를 따라 쭉 걸어가면 된단다.

해안도로...

그 말이 너무 예뻐서 혼자 설풋 웃었다.

이틀 동안을 그렇게 걸어놓고서도 여전히 걷고 싶은 맘이 남아있었나보다. 

천천히 걸으면서 오래된 기억들을 참 많이 떠올렸고 정리했고 보내줬다.

꼭 겨우내 덮은 무겁고 두꺼운 이불을 두 발로 뽀득뽀득 밟아 햇빛에 널어놓은 것처럼

나는 아주 잠깐 투명해졌다.

 

 

그러고보니 처음이다.

이렇게 배의 바깥에서 아무도 없는 배의 내부를 찬찬히 들여다 보는게.

오래된 피곤함은 나른함으로 물 위에 떠 있었고.

배의 아래를 긁는 물살의 소리가 청명했다.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교통수단으로서의 배가 아니라

살뜰한 내 가족을 먹여살릴 생계의 배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미 거룩하고 육중한 무게였다.

바다를....

이제는 낭만이나 로망으로 바라볼 수는 없겠구나.

텅 빈 배를 기웃거리다 자국을 남기며 내려앉은 붉은 녹을 보니 가슴 끝이 묵직하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밥벌이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나는 홀로 책임지는 밥벌이에도 이렇게 허덕이고 숨이 차는데...

내 고됨은 투정과 사치일 수 있음을

완강하게 매어있는 고갯배 앞에서 절감했다.

 

 

동피랑 벽화 마을.

궁금했다.

좁은 골목 골목 담벼락에 맨 처음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군지...

그 사람은 짐작이나 했을까?

자신이 그린 첫 그림으로 인해 동피랑이라는 마을이 통영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리라는걸...

때론 아무 기대없이 시작한 작은 일이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아이와 함께라면 하루 종일 깡충거리며 뛰어 다닐 수 있는 곳.

그래서 동피랑에서는지루함조차도 속수무책으로 손을 놓아버린다.

 

햇빛도 벽화가 되고,

바람도 벽화가 되고,

바다도 벽화가 되고,

사람도 벽화가 되는 곳.

 

동피랑은 주소는,

그래서 꿈 속 어딘가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5. 5. 29. 08:15

오후 3시 10분 고속버스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다.

아마 배 위에서 만난 일몰의 여운 때문이겠지만

특별한 곳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선택한 곳이 이순신 공원.

넓다란 공원은 통영 시민들의 산책길이자 휴식공간이라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다가...

푸른 바다가 코 앞까지 바짝 다가와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 그렇다면 거기서 오전 한나절을 보내자 생각했다.

 

 

휴일이라 사람이 참 많았는데...

공원이 워낙 넓어선지 사진 속 모습은 그저 고요하다.

고백을 하자면,

난 이 공원을 걸으면서 자주 주저앉았고, 자주 넋을 잃었다.

눈 앞까지 성큼 다가온 바다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나를 놓고 바라보게 되더라.

나무테크가 되돌려즌 내 발걸음 소리에 찬찬히 귀기울이고

마른 흙길에 서성이는 내 그림자를 마주보고

그늘진 벤치에 몸을 부려놓고 이곳도, 저곳도 아닌 곳을 바라보고...

그렇게 나를 놓아버리니 시간이 지나가는 소리가 손에 잡힐듯 선명했다.

 

 

이순신 공원의 나무와 풀은 꼭 보석같더라.

오전 그네들의 꽁무니를 쫒아다니는 건 큰 즐거움이었고 평온이었다.

초록으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만든다던데

정말 그런 모양이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나조차도 아주 착하고 순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초록은,

사람을 투명하게 만든다.

참 많이 부끄럽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5. 5. 28. 08:17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 아침 8시에 통영케이블카로 픽업해주면서 그랬다.

오늘이랑 내일은 당일 배표로 섬에 들어가는건 포기해야 할 거라고.

소매몰도는 이미 매진도 됐지만 물때가 안맞아 등대섬까지 들어가지 못한다고.

그렇구나... 했다.

그래도 통영까지 왔는데...

욕심이 생기더라.

그래서 미래사를 다녀온후 무작정 통영항여객선터미널로 향했다.

남아있는 표가 있다면 어떤 섬이든지 감사한 마음으로 들어가고,

표가 없으면 바로 옆에 있는 서호시장을 둘러볼 생각으로...

 

 

고맙게도 연화도 들어가는 마지막 왕복 배에 자리가 남아 있었고,

더 고맙게도 마지막 배라서 20% 할인을 해준단다.

한 시간 가까이 배를 타고 들어가면서 

반짝이는 물결, 부서지는 물살, 차가운 바람에 두루두루 감사했다. 

참 오랫만이다.

이런 뜻밖의 행운과 호사.

이번 여행 내내 나는 작은 행운을 연속적으로 만났고

그 행운들이 보여주는 풍경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숲 길은 활짝 열려 외지인의 발걸음을 기꺼이 받아줬고

날씨는 단 한 번도 찌푸리지 않았고

기다림이 생각보다 그리 길어지지 않았다.

꼭 수호천사가 곁에 있는 느낌.

 

 

연화도에서 도착해 또 다시 시작한 트레킹.

섬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아 출렁다리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연화봉을 오르면서 주변 풍경에 자주 걸음을 멈췄고 뒤를 돌아봤다.

바람결에 비릿한 물냄새가 출렁였고

졸음겨운 황소의 눈엔 바다가 가득했다.

이런 곳에 살면...

최소한 불면증은 없겠구나.

섬에서 사는 현지분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며 뭐라 하겠지만

그 순간 나는 딱 그랬다.

짧아도 깊은 잠은 잘 수 있는 곳.

아마도 그게 아주 많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내가 그렇게 섬에 들어가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

"일몰"의 목격.

그걸 위해서였다.

그래서 통영으로 돌아오는 1시간 내내

나는 단 한번도 선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해지는 저녁 바닷바람은 생각보다 더 많이 날카롭고 차가웠다.

하지만 저 바다와 저 해를 눈 앞에 두고 도저히 선실로 들어가지지가 않았다.

살짝 자괴감 비슷한 것도 들었지만

이 아름다운 일몰을 본 걸로

내 짧은 여행은 충분히 의미있고,

충분히 아름다웠노라 자축했다.

 

그제서야 숨쉬는게 많이 편해졌다.

...... 다행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