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3. 4. 12. 08:25

일본 소설 두 권을 비슷한 시기에 읽었다.

한국에서도 엄청난 메니아층이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에쿠니 가오리.

참 다른 작가인데 이 두 작품은 묘한 서정성을 갖고 있다.

물론 그 서정성이라는 건 확실히 다르다.

<비밀>과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으로도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와 미스터리에 관해서라면 확실하게 독자를 잡아끈다.

전기공학과를 좋업했다고 했나?

그래선지 그의 소설들은 꽤나 과학적이고, 전문가적인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책을 좀 읽었다는 사람들은 참신하다고 생각하진 않을테지만...)

확실한 건 스토리텔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게 글을 쓰는 미스터리 작가임에는 분명하다.

그래선지 그의 신작이 출판되면

구입해서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잘 챙겨서 읽는 편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내가 지금껏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과는 확실히 다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두고 아주 서정적인 이야기였노라고 말하고 싶다.

"서정적"이라는 표현은 통상적으로 쓰는 그런 뜻은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서정성.

내 속의 뭔가를 아주 작게, 그러나 결정적으로 "툭"하고 건드렸다.

책을 번역한 양윤옥의 말대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에서 오래도록 남을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더불어

어딘가 "나미야 잡화점"이 정말로 있어주면 좋겠다는 환상을 품게 한다.

그렇다면 나 역시도 기꺼이 그곳을 찾아가 가게 주인 앞으로 편지를 쓰고 싶다.

다음날 다시 찾아가 우유 배달 상자 속의 답장을 기다리면서...

사람은 참 단순하다.

때로는 어떤 작은 사건이, 한 권의 책이 복잡한 생각들을 가라앉히게 만든다.

이 책이 그랬다.

가슴 진한 감동을 준다거나 위로를 준 게 아니라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뜬금없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주 오래된 내 로망을 건드린 것 같다.

예전에 나는 그랬었다. 

편지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 책은 과거의 한때(That point)를 그리고 나(It's me!)를 생각케 했다.

과거로 부터 도착한 답장!

그 안에는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내가, 그리고 미래의 내가 전부 담겨있다.

그런 의미에서 히가시노 게이코의 이번 추리는 꽤나 용의주도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하느님의 보트>

나는 이 소설의 그녀의 신작인 줄 알았다.

그런데 2003년도 이미 출판된 책이다.

(뒤늦게 주목을 받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내가 너무 늦게 읽은건가?)

에쿠니 가오리는 일본 여류 작가 중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작가다.

그녀의 소설은 뭐랄까, 모든 걸 다 이야기하지 않고 살짝살짝 감추고 있는 느낌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도 그랬고 <도쿄 타워>도 그랬고...

하나님의 보트를 탄 엄마와 딸.

난 이 모녀가 나라를 잃고 생명을 걸고 떠도는 보트피플보다 더 안스럽고 안타깝다.

과거는 "상자 속"에 담아두고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남자의 약속을 믿으며 추억과 상상, 흔적을  안고 어느 곳에도 차마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유랑민.

나는 요코를 결코 이해하지 못하겠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요코는 일종의 직무유기이고 책임회피다.

어른아이 요코와 아이어른 소우코는 둘 다 시간을 잃었다.

 

"우리한테 언제는 있을 곳이 있었나?

"있어."

"엄마가 말했을 텐데. 언젠가 아빠를 만날 거라고, 우리가 있을 곳은 아빠야."

"미쳤어."

"거긴 엄마가 있을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야."

"나는 현실을 살고 싶어. 엄마는 현실을 살고 있지 않잖아."

........

"미안해"

"뭐가 미안하다는 건데?"

"엄마의 세계에 계속 살아주지 못해서."

 

엄마와 딸의 대화를 읽어내면서

난 참 많이 아팠다.

'그 사람이 여기 있다며..." 

단지 상상만으로도 힘을 되는 사랑.

(적어도 나라면 그런 사랑도, 그런 사람도 믿지 않았을텐데.)

책의 결말은 이렇다.

딸은 엄마의 현실과 떨어져 자신의 현실 속을 살기 위해 기숙사로 떠나고

요코는 그를 처음 만났던 도쿄로 돌아간다.

그리고 우연처럼, 운명처럼 

(이 단어... 참 폭력적이다)

그 남자와 재회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렇다면 이건 해피엔딩일까?

 

나는 재회한 두 사람에게 결코 해피엔딩은 오지 않을거라 단언한다.

떠돔을 선택한 사람은 정착할 수 없다.

뼈마다를 녹이는 사랑이 옆에 있다고 해도

그게 선택에 대한 예의다!

요코는 아마도 남은 시간을 정말 보트피플처럼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번엔 남자도, 딸도 함께 해주지 못할거다.

 

깍지 낀 두 손을 놓을 때가 왔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2. 3. 14. 06:28



입소문으로 들었던 <다, 그림이다>를 드디어 읽다.
책에 "드디어"라는 수식어를 달고 읽기 시작해서 그 느낌을 책을 덮을 때까지 그대로 가지고 갈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
전통 회화와 동양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 감칠맛 나면서도 다정한 필력을 가진 손철주,
서양 미술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다양한 에피소드, 그리고 통찰을 가진 이주은.
두 사람이 주고 받는 편지글로 되어 있는 이 책은 보는 재미가 참 많다.

1. 첫 번째, 그리움
2. 두 번째, 유혹
3. 세 번째, 성공과 좌절
4. 네 번째, 내가 누구인가
5. 다섯 번째, 나이
6. 여섯 번째, 행복
7. 일곱 번째, 일탈
8. 여덟 번째, 취미와 취향
9. 아홉 번째, 노는 남자와 여자
10. 열 번째, 어머니, 엄마

이 책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까지 포함해서 전부 67점의 그림이 담겨있다.
눈의 호사도 호사지만 더 재미있는 것은,
편지글이 독립된 형태가 아니라 정말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연결된는 소통의 글이라는데 있다.
한 사람이 편지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다른 사람이 그 편지를 정성껏 읽고 찬찬히 생각한 후에
그에 상응하는 그림을 찾아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는 방식.
문득 비밀일기를 교환하는 사춘기 소녀의 감수성이 떠올라 나까지 괜히 수줍어진다.
손철주기 말하는 유혹의 종류(유혹, 매혹, 고혹)와
유혹의 단계(끌림 -> 쏠림 -> 꼴림 -> 홀림)에 절감하며
어쩌면 이렇게 글을 유익하고 재미나게 잘 쓸 수 있을까 감탄했다.
그래, 이 책은 뜻밖의 매혹으로 나를 유혹하더라.
이런 은근한 유혹이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걸 또 한 번 절감했다.
손철주가 말하는 동양화란 이렇다.
닮지 않은 닮음, 그것이 참다운 닮음이다.
그림의 닮지 않음으로 실재의 닮음에 다가가는 것이 바로 동양화의 충심입니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단어 하나하나에 동양화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이 그대로 느껴져 저절로 겸손해졌다)
이주은이 말하는 서양화는 또 어떻가!
서양의 그림은 공존하기 어려운 것을 동시에 보게 해주는 그 무엇일 것입니다.
서양 미술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그리는 대상을 설득력 있게 실물처럼 그리는 환영(iillusionism)일 겁니다.
모든 디테일이 완벽할 때에만 현실에 대한 강한 환영이 생겨날 수 있어요.
그러므로 환영의 본성은 세세한 완벽함입니다.


                                               엔드루 와이어스 <결혼>


                                           이인상 <와운>


                                           엔드루 와이어스 <비상>


                                           빈센트 반 고흐 <아몬드 꽃>


                   장 뒤뷔페 <사팔뜨기>                                               낭세령 <취서도>

마음으로 수직활강했던 그림들.
엔드루 와이어스의 그림은 때로는 공포를 때로는 호기로운 광활함을 안긴다.
<비상>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신비하게도 옆구리가 간지러워진다.
순간 저 독수리의 날개와 눈을 단호히 훔치고도 싶어졌다.
이인상의 <와운>은 내 머릿속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아 혼자 민망해 웃었고
고흐의 <아몬드꽃>에 담긴 조카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 또 덜컥 공감하며 웃었다.
(아마 고흐도 나처럼 조카바보였나보다. 하긴 사랑하는 동생 태오의 자식이었는데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장 뒤뷔페의 <사팔뜨기>는 낯선 신비감에 자세히 들여다봤는데
그 하나하나가 나비 날개를 찢어부친 콜라주라니 문득 섬득해진다.
선교사로 중국에 왔다가 3대에 걸쳐 중국 황제를 모시는 궁정화가가 됐다는 이탈리아인 낭세령.
그의 <취서도>는 동양화와 서양화가 묘하게 뒤섞여 있어 독특한 운치를 준다.

그림이란 그런 것인가?
그리움을 향한 세세한 닮음.
그걸 동양화는 여백으로, 서양화는 디테일로 표현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좁은 깜냥으로 그림 속 그 무궁무진한 디테일과 품은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겠지만
그저 찬찬히 들여다봄으로써 다른 곳을 꿈꿔볼 수는 있지 않을까?
그림은 환영(幻影)을 환영(歡迎)한다.
그런 이유로 그림은,
그리는 자도, 보는 자도, 읽는 자도 모두 환(幻)쟁이로 만든다.
책장을 넘기면서,
보여지는 그림 앞에 외경심으로 잠시 멈짓했고
읽혀지는 그림 앞에 황홀경으로 오래 머물렸다.
아! 보이는 것을 읽는 것은 이렇게 곡진하구나.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10. 5. 05:24

<환상의 책> - 폴 오스터

 환상의 책

폴 오스터...
참 매력적이고 그리고 신비감 가득한 미국 작가입니다.
개인적으로 “폴 오스터”와 터키의 국민 작가 “오르한 파묵”을 자꾸 비교하게 되는데요, 두 사람 모두 신비적 탐미주의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오르한 파묵”은 환상 속에서 현실을 이야기한다면 “폴 오스터”는 정확히 그 반대의 방법을 택하죠. 현실 속에서 환상을 이야기하는...
그러면서도 두 작가의 이야기 방식은 참 묘하게 닮아있습니다.
“오르한 파묵”이 지적이고 명석한 백과사전적인 글을 치열하고 아름답게 쓴다면, “폴 오스터”는 가십거리스러운 사건을 잡아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현실감을 갖게 만듭니다.
둘 다 범접할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낸 작가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두 사람의 책을 우리나라에 번역하는 번역가도 멋진 한 쌍의 페어를 연출합니다.
“오프한 파묵”에게는 번역가 “정영목”이, “폴 오스터”에게는 번역가 “황보석”이...
아마도 두 이국의 작가가 다른 번역가들을 만났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느낌을 전달받을 수는 없을 것이라 감히 단정합니다.

폴 오스터의 소설들...
참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읽기를 쉽게 포기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죠.
소위 말하는 고비를 넘어야만 폴 오스터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단 그 고비를 넘기면 손에서 놓기가 싫어질 정도죠. 그런데 그 고비라는 게 좀처럼 넘기가 힘들다는 게 문젭니다.
읽지 않고 포기하는 자에게는 결코 비밀의 문이 열리지 않으리라는 묵시록 같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현재 그의 소설은 전부 14권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정확히 8권의 소설을 읽었네요.
개인적으로 폴 오스터의 화두(話頭)는 실종과 풍자, 그리고 미스터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읽은 폴 오스터의 거의 모든 주인공들은 결국은 실종을 선택하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숱한 미스터리와 세상을 향한 풍자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길고 긴 실종의 과정은 동양의 선(仙) 사상과 묘하게 닮아있기도 합니다.
2002년 쓰여진 이 책의 원제는 “Book of illusion"입니다.
2008년 우리나라에 발표된 “환상의 책”이라는 제목보다는 “Book if illusion"이라는 원제가 확실히 더 폴 오스터스럽네요.
"illusion"이라는 뜻에는 왠지 은밀하고 비밀스런 느낌이 있는데, "환상"이라는 단어는 허황된 눈속임과 노골적인 드러냄이 느껴지기 때문이죠.
“Book of illusion"의 첫 장은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 “샤토브리앙”의 짧은 글로 시작됩니다.
...... 인간은 하나의 동일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끝에서 끝까지 이르는 여러 다른 삶을 살며 그것이 바로 비극의 원인이다 .....

그러니까 이 책은 두 사람이지만 동시에 같은 사람이기도 했던 누군가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의 같지만 다른 삶 이야기, 그리고 추적과 멈춤, 끌어당김과 거부가 잔잔하지만 집요하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건 모든 인간의 모습, 그것이기도 하죠.

오래 전에 실종된, 그래서 죽었다고 믿어지는 무성 코미디 배우 “헥터 만”, 그리고 얼마 전 비행기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를 잃고 스스로를 불행의 삶 속으로 밀어 넣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대학교수 “데이비드 짐머”.
어느 날, 데이비드는 TV를 통해 헥터 만이 출연한 오래된 무성 코미디 영화 한 편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헥터의 콧수염과 양복은 그에게 깊은 아우라를 남기죠.
절망 속에 살던 대학교수 짐머는 세상에 남겨진 헥터의 무성영화 12편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서 몇 개월 동안 세계를 돌아다닙니다. 그리고는 다시 9개월 동안 칩거하듯 세상과 단절한 체 헥터 만에 대한 집필을 시작하고 드디어 <헥터 만의 무성 세계>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우편함에 배달된 한 통의 편지.
헥터 만의 부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쓴 편지의 내용은 "그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데이비드는 처음에는 이 편지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가 진짜 헥터 만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답장에 그녀는 다시 편지를 보냅니다.
“제 말이 진실임을 아시는 유일한 방법은 초청을 받아들이시는 것입니다.”
편지는 계속 이어집니다.
“그 사람이 1929년 할리우드를 떠난 뒤 여러 편의 장편 특작 영화들을 쓰고 감독했다는 말씀을 드린다면 오시겠다는 마음이 드실는지요? 헥터는 이미 아흔이고 나날이 건강을 잃어 가고 있어요. 그 사람은 제게 남긴 유언장에다 자신이 세상을 뜨고 나서 24시간 내에 그 필름들과 원본을 모두 파기하라고 했는데, 저로서는 그 사람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녀의 편지 내용대로라면 헥터 만은 스스로 자발적인 실종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네요.
이 대목에서 주인공보다 오히려 제가 더 헥터 만의 진실을 추적하고 싶어지는 열망이 가득합니다.
다행히 그를 데리고 가기 위해 한 여자가 등장합니다.
헥터 만의 전기를 쓰고 있다는, 헥터 만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던 카메라맨의 딸 엘머가.
함께 뉴멕시코 블루스톤 농장을 향하면서 데이비드는 헥터 만의 모든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듣게 됩니다.
그야말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나다니엘 호손의 <모반>처럼 그를 산 채로 먹어치워 버렸습니다.
영화배우로서의 헥터 만의 삶, 그리고 스스로 실종을 선택하고 콧수염을 자르고 양복을 벗고 허먼 레서로의 삶,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라이브 포르노 공연배우로 살았던 삶.
그는 그 삶들이 자신에 대한 보복 내지는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음보다 단순하고 파멸보다 더 나은 방법, 끝장을 보지 않고서도 자신을 계속 죽여 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 그는 타락을 선택했던 거죠.
... 만약 내 삶을 구할 생각이라면 그 삶을 파멸시키기 일보 직전까지 가야 한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고 재미있는 건,
헥터 만의 삶이 바로 데이비드의 삶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분명 다른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어쩌면 두 사람의 삶이 이렇게까지 동일할 수 가 있을까요?
“도플갱어” 혹은 “평행이론”이었을까요?

이 이야기는 일종의 “미궁”입니다.
비극적이면서 동시에 희망을 주는 결말.
어쩌면 “믿거나 말거나”류의 황당한 결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면 말이죠. 이런 생각을 심각하게 하게 됩니다.
“이게 정말 허구일까?”
폴 오스터의 이야기의 끝은 항상 그렇습니다.
“당신들이 이 책을 읽고 있을 때면 이 책을 쓴 사람이 벌써 오래전에 죽었다고 믿어도 좋다.”
이런 신비주의가 무책임의 한 형태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 모든 사람의 삶은 어쨌든 모두 익명성의 보장이고, 실종이고 그리고 은밀함의 추구임에는 분명하죠.
“나는 빌려다 쓰는 삶을 살고 있었다.”
폴 오스터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매번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읽는 이에게 당신의 지금 삶은 어떠며 은밀한 질문을 던지죠.
만약에 빌려다 쓰는 삶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단지 잠시 동안의 실종이라고 말합니다.
조만간 누군가에 의해 진실이 담긴 삶의 문이 열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야기는 맨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될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잘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고 충고하는 셈이죠.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느낌.
그러데 그 이야기는 앞으로도 결코 끝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알아야 할 이야기가 있고 알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좋은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알고난 전과 후가 극명하게 달라지는 경우에는 더더욱 말이죠.
저는 말이죠. 책을 읽으면 매번 그 책 속으로의 실종을 간절히 꿈꿉니다.
내 책이라는 소유욕보다 내 이야기라는 소유욕이 백배는 더 강하죠.
그래서 늘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폴 오스터의 <환상의 책>
그 속에서 제 맘 같은 구절이 있어 에필로그로 남겨봅니다.

...... 여기까지 온 당신들은 실로 위대하다 ......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6. 16. 05:55
이정열, 서범석, 박건형, 박은태, 박정환, 윤형렬, 배해선, 차지연
쟁쟁한 뮤지컬 배우 8인이 특별한 프로젝트 앨범을 만들었다.
<Intermission>
제목이 주는 의미가 남다른 가요 명반.
흔히 공연 1막과 2막 사이의 10~20분 정도 쉴 수 있는 시간을 intermission이라고 한다.
아마도 뮤지컬이라는 무대에 익숙한 이들 8명에게
이번 앨범을 만드는 작업이 intermission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바쁜 무대 공연 중에서
(정말 이들만큼 바쁜 뮤지컬 배우들도 없을 것이다)
앨범을 만들고 이렇게 3일간의 콘서트 무대까지 만들었다.
정말 몸이 많이 아팠는데도 너무 보고 싶었던 공연이라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수록곡>

01. 같은 하늘 아래 - 이정열

02. 그 사람 - 배해선 & 이정열
03. 소원 - 윤형렬
04. 바람이 분다 - 배해선
05. 서커스 - 박건형
06. 편지 - 박은태
07. 그대 내 품에 - 차지연
08.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 박정환

09. 너에게 - 서범석


담겨있는 곡들은 개인적으로 한결같이 내가 과거에 참 많이 좋아했던 곡들이다.
항상 무대 위를 에너자이저하게 뛰어다니던 배우들의 감성 가득한 노래를 듣는 건... 그래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퍽이나 다정하기까지 하다.


연극 <풀 포 러브> 때문에 박건형이, 그리고 열심히 훈련병 생활중인 윤형렬을 제외한 6명이
김광석의 "나의 노래"로 콘서트의 문을 열었다.
워낙 화음과 발란스를 잘 맞추는 뮤지컬 배우들이다보니
조화롭게 경쾌하고 아름다웠다.
확실히 김광석의 목소리로 들었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1부는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2부는 뮤지컬 넘버나 다른 가요들을 부르는 무대로 꾸며졌다.
앨범을 듣지 못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콘서트에서는 차지연, 박은태, 박정환, 배해선아 부른 노래들이 기억에 담긴다.
특히나 하림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는 현재까지도 내가 애뜻하게 좋아하는 곡이다.
박정환이 부른 노래...
노래를 아주 썩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사람의 노래 부르는느낌이 나는 참 좋다.
기타를 치면서 노래 부를 때 확연히 달라지는 표정과 얼굴 가득 피어오르는 평온한 만족감은
보는 사람까지도 부럽고 질투나게 한다.
물었다.
"기타 칠 때 많이 행복하신가봐요?"
잠깐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가 대답한다.
"네, 정말 행복합니다"



박은태가 부른 김광진의 "편지"는 살짝 눈물이 베일 정도로 아름다웠고
차지연이 부른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는 그녀의 목소리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었다.
약간 끈적거리면서 짙은 여운이 남는 목소리.
배해선의 "그사람"은 정말 오래된 노래인데
(30년이 더 된 곡이란다. 근데 난 이 노랠 끝까지 다 안다. ㅋㅋㅋ)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없던 첫사랑도 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그녀의 매력 ^^
참 아름다운 배우다. 배해선은.
2부에서 부른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도 참 멋졌고... 
차지연은 그날 <몬테크리스토> 낮공연을 마치고
오토바이로 배달(?)되어 콘서트에 참가했단다.
2부에서 관객을 뒤흔들며 뮤지컬 <헤드윅>의 넘버들을 열창한 후
<몬테크리스토> 막공 인사를 위해 다시 바람처럼 왔던 곳으로 배달됐다.
(후문에 그녀는 몬테크리스토 막공 무대인사에서 옥주연과 함께 엄청난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트롯트를 열창한 범사마 서범석과 박은태의 모습도 새로웠고...
나름데로 뽕짝 Feel를 연출했는데 어설프면서도 서툰 모습이 오히려 귀염성 있었다.
(서범석의 2:8 가르마와 박은태의 주황색(?) 남방은... 어쩔거야~~~)
서범석이 부른 라만차의 넘버 "impossible dream"은 잠시 그의 돈키호테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괜찮을 것 같다는 결론까지...)



<inermission> 앨범은 가수 출신 배우인 이정렬의 제안으로 시작됐고
"더 클래식" 벰버 박용준이 편곡에 참여해서 만들어졌다.
익숙한 노래를 무대 배우들의 감성으로 다시 듣는 것,
그것도 현장에서 직접 듣는 즐거움은
참 특별하고 아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몸이 조금만 덜 아팠더라면 아마 나도 힘껏 그들과 함께 열광했으리라...
개인적인 아쉬움이...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으로 앓고 있다.
오뉴월에 개도 안 걸린다는 감기에 걸려 심하게 골골거리는 중.


                                                    박정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녹음 모습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09. 12. 24. 06:12
조카가 가족들에게 이쁜 크리스마스 카드를 썼다.
가끔 생각한다.
이 녀석들이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까?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 미소와 행복을 주는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런 조카들.



조카들이 카드나 편지를 쓸 때 재미있는 사실 하나!
너무 이쁘게 존댓말을 또박또박 쓴다는 거.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는 이렇게까지 쓰지 않는데...
다른 아이들도 다 그런가????



할머니랑 엄마한테 쓴 카드를 보고 삐진 척 했더니
(사실 이제부터 이모 안 한다고 협박을 좀 하긴 했다... ^^)
다음날 급조한 크리스카스 카드를 내 방에서 발견했다.
아직도 이모의 협박이 먹힌다는 건...
음... (조카들이 이모를 봐주는 건가?)
카드에 적힌 내용들을 보면
어느새 이 녀석들이 이렇게 훌쩍 커버렸나 싶어 뭉클하다.
초등학교 2학년 녀석이 할머니에게
"할머니는 저에겐 잊을 수 없는 인물 중에 한 명이요..."
라고 말한다면,
"언제나 전 할머니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초등학교 1학년을 본다면.
어찌 아니 사랑스럽고 이쁘지 않을까?
조카들이 철이 다 든 것 같아 기특하기도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위의 두 카드들과는 다르게 많이 소박(?)하고 겸손(?)한 이모에게 보내는 카드.
그림을 잘 못 그려서 미안하다고 조카가 말했다.
그럼 뭐 어떤가!
색동 목도리를 한 멋진 눈사람이면 충분한데...
것도 무려 셋이나 있다. (좀 춥긴 하다... ^^)
매일 이모에게 투정만 부리고 소원만 말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이쁜 마음을 또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이쁘고 사랑스러운 조카의 이모, 고모인 게
다행이고 행복하고 즐겁고 기쁘고... 참 좋다... 아이처럼...

모두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행복하고 따뜻한 성탄 되시길...
그리고 이쁜 조카들의
다정한 이모, 고모, 삼촌들 되시길...
^^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09. 8. 13. 09:32
총 맞은 것처럼....
연인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14살 조카에게서 느끼고 있다.
정말 가슴 안으로 총알이 뚫고 지나간 것처럼
마음 한 복판이 휑하다.
그리고 가만가만 아리다.



퇴근하고 들어갔더니
일본으로 다시 떠난 조카의 편지들이
내 방 안에 가득하다.
병속의 캡슐 편지들, 냅킨 편지, 그리고 카드까지...
혼자 앉아
조그만 병 안
작은 알약을 하나 하나 열어본다.
다독...다독....
한 알 한 알 약을 먹는 것처럼 맘이 점점 따뜻해진다.

한국말은 말하고 읽는 건 잘하는데
아무래도 맞춤법이 어려운 모양이다.
일본에서 인터네셔날 스쿨을 다니는 조카는
이미 글로벌한 아이가 되었다.
오히려 영어, 일어가 훨씬 더 수월한 아이...
(외국인이 한글 배우기 어렵다고 하는 걸 이 녀석은 완전히 이해하고 동감한다.)



"이모는 고름보다 이쁘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앙상하게 나오는 내 모습에
"이모 꼭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 같다"고 했더니
골룸 (<-- 고름)보다 이쁘다고 정색했던 조카.
주위 사람들이 모두 웃었었다.
"정말 이모는 고름보다 이뻐요...."



아주 사소한 일에도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달고 사는 조카
그리고 귀염성 있는 웃음과 포옹까지...
한동안 이 녀석 그늘에서 벗어나기가 많이 힘들 것 같다.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이미 아득해진다.
그리고 이 녀석이 무지 보고싶다.
언제까지 이 이쁘고 사랑스런 조카에게
"채고" "체고"의 이모가 될 수 있을까?
걱정스런 마음도 어쩔 수 없다.



"의사는 아니지만 병원에서 일하는 채고에 이모"
내가 가져본 타이틀 중
단연 최고가 될 타이틀
아직은 조카에거 "채고"의 이모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집을 나서기전 급하게 냅킨에 남긴 또 다른 편지
우습게도 읽는 순간
그만 뭉클했다.
"서럽"도 열어보세요.....
그럼! 그럼! "서럽" 그것도 열어봐야지!





옷장 서랍을 열었더니 카드가 한장 들어있다.
누군가 한 이야기를 잘 못 듣고
9월 1일이 이모 생일이라고 생각하고 카드를 남겨 놓은 조카
(난 12월 7일인데..... 그것도 음력으로... ^^)



"셍일추카" 카드
이모가 좋아하는 꽃이 그려진 카드
(전등사에서 같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는 조카)
알까? 이 녀석
내 모든 날들을 이 녀석이 눈부신 "셍일"로 만들어줬다는 걸.
남들은 갖고 있지 않는 "셍일"을
본의아니게 이모에게 선사한 조카.

보고싶다. 보고싶다. 보고싶다.
그 생각 끝이 아리다.
총 맞은 것처럼....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7. 27. 06:25
 <메신저> - 마커스 주삭


메신저


마커스 주삭!

2008년 <책도둑>이란 2권의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상당히 새파랗게 젊은 작가! (고백컨대 개인적인 시기심 엄청 심난하게 들어있습니다)

순서가 좀 많이 뒤바뀌긴 했지만 <책도둑>보다 먼저 쓴 그의 책 <메신저>가 뒤늦게 번역돼  우리나라에 소개됐네요.

<메신저>라....

제목에서부터 이미 너무 많을 걸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문득 걱정부터 앞섭니다.

“어라! 이 사람, 도대체 메신저라는 제목을 이렇게 대놓고 정면에 내세우고 얼마나 재미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그런데 이 걱정은 역시나 쓸데없는 기우였습니다.(그리고 이 부분에서 한 번 더 개인적인 몹쓸 놈의 시기심 등장합니다....)

재미! 

여기서 개그콘서트 달인 김병만의 말투를 잠시 빌리렵니다.

“재미요? 그거 안 읽어 봤으면 말을 마세요~~”


에드 케네디.

19년 동안 내내 별 볼일 없이 오히려 한심의 축에 더 많이 몸을 담그고 살아온 불법 택시 운전사를 이제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더불어 소위 노는 물이 같은 세 명의 절친들까지도요.

2명의 남자 친구들 리치, 마브, 그리고 1명의 여자 친구 오드리(비록 일방통행이긴 하지만 에드가 짝사랑하고 있는 오랜 친구랍니다 ^^)

우연히 은행 강도를 붙잡아 졸지에 잠시 동네 우상이 된 에드는 어느 날 우편함에서 세 개의 주소가 적힌 다이아몬드 에이스 카드 한 장을 받게 됩니다.

별 볼일 없던 에드가 메신저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네요.

카드에 적힌 주소로 찾아간 에드는 그곳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받게 될 세 명의 사람들을 한명씩 만나게 됩니다.

밤마다 자신의 아내를 강간하는 남자와, 이미 한참 전에 죽은 남편 지미를 그리워하며 살고 있는 노년의 밀라, 그리고 매일 아침 맨 발로 달리기를 하는 소녀 소피까지...

어쨌든 이 세 명에게 성공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 에드. (그 과정은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라고 말한다면 좀 얄미울까요? 그래도 그리 하렵니다... ^^)

왠지 모를 평온함과 행복감에 잠깁니다.

매일 밤 엄마가 아빠에게 강간당하는 모습을 봐야만 했던 딸 안젤리나가 어느날 에드에게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우릴 구해주러 왔나요? 노력은 해줘서 고마워요”

애드가 첫 번째로 전달한 메시지는 아마도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모든 "노력", 그 자체였는지도 모르겠네요.


집으로 돌아온 에드에게 또 다시 클럽 에이스 카드 한 장과 짧은 편지가 건네집니다.

“고향의 돌에게 기도하라”

에드는 이 일에 선택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잠시 소망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 일이 자신에게 주어졌음을 점점 인정하게 되고 결국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나하나 실행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렵게 찾아낸 “고향의 돌”에 적혀 있는 세 명의 이름.

토마스 오라일리 신부의 텅 빈 성당을 사람으로 가득 찬 축제의 장으로 만들고, 아이스크림 하나로 생계에 지친 어린 어머니 앤지 카루소의 마음을 위로하고, 그리고 비록 온 몸에 멍이 들긴 했지만 개빈 로즈의 금이 간 형제애를 회복시키는데도 성공합니다.

두 번째 메시지는 "관심"이었을까요?


세 번째 카드인 스페이드 에이스도 에드를 찾아 왔네요.

역시나 3명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작가들 이름이네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온 에드는 책 제목과 책에 표시된 페이지를 연결해 드디어 세 개의 주소를 알아냅니다.

이 메시지 안에는 어쩌자고 에드의 어머니도 포함되어 있네요.

살짝 금이 간 부분을 애써 외면하며 지내고 있는 어머니와 아들.

“왜 날 그렇게 미워하세요?”

아들의 질문에 어머니는 답을 합니다.

“왜냐하면 널 보면 그 사람이 생각나거든. 넌 여기 있어. 바로 그게 문제야”

어머니는 자신의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아들이 이 구질구질한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죽게 될까봐 싫었던 겁니다. 오히려 둘째 아들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한 게 말이죠.

망연자실해있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한 마디 말을 더 남깁니다.

“사랑이 아주 커야만 너를 이렇게 미워할 수 있는 거야”

세 번째 메시지는 이해를 통한 "감사"였던 것 같네요.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힘들긴 하겠지만 에드는 어머니를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결국은 감사하게 될 거라는 걸 믿습니다. 다른 두 명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에드는 혼자 생각합니다.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예요. 만일 내가 이곳을 떠난다 해도 먼저 여기서 더 나은 사람이 된 다음에 떠날 거예요.”라고...


네 번째 카드, 에드의 손에 남겨진 하트 에이스에는 세 개의 영화 제목이 적혀 있습니다.

<옷가방>, <캣 벌루> , <로마의 휴일>

어쩐지 드라마틱하고 로맨틱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그런데 이 세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혹은 배우의 이름이 바로 에드의 별 볼일 없는 세 명의 친구들 이름과 일치합니다.

영화 순서대로 리치, 마빈, 오드리까지...

이제 에드는 순서대로 이들의 메신저가 돼야만 합니다.

늘 함께 너저분한 방에 모여 허접한 카드놀이로 시간을 보냈던 친구들.

항상 너무나 친하기에 잘 알고 있었다고 내내 착각했던 친구들에게서 고백되는 "진실"들.

그러네요. 세상 모든 사람에겐 누구나 비밀이 한 가지씩은 있다는 거.

그 비밀을 폭로가 아니라 고백해야만 비로소 진실이라는 자유와 만날 수 있게 된다는 거.

어쩐지 이 네 명의 친구들이 이제는 우정 그 이상의 울타리를 얻게 될 것만 같습니다.


에드는 이제 마지막 카드가 될 조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안에 담길 세 명의 사람은 과연 누가 될지....

그러나 전달 된 마지막 카드 조커에는 지금까지의 방식과는 다르게 3명이 아닌 단 한 사람의 주소만이 쓰여 있습니다.

“시핑 스트리트 26번지”, 바로 에드 자신의 집 주소죠.

책의 남은 페이지가 얼마 없는데 이 이야기는 이제야 진짜 시작되려는 것 같습니다.

에드는 과연 마지막까지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에드의 집,
한 남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자신이 준비했다며 그 남자는 에드에게 말합니다.

“내가 그런 건 네가 평범함의 전형이기 때문이야.

 너 같은 녀석이 일어서서 그 모든 사람들을 위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할 수 있을 거 아냐.

 모두가 자신의 능력 이상의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거 아냐.

 어쩌면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거 아냐”

에드는 묻습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남자는 대답합니다.

“계속 살아, 에드! 책만 여기서 멈출 뿐이야”

소설에 나오는 대사 치곤 꽤 독하네요.

그러나 이 책이 환상 혹은 한 여름 밤의 꿈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길 당부드립니다.

왜냐하면 에드가 받은 마지막 카드 조커는, 사실은....

에드드가 아니라 책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에게도 전달된 메시지니까요.

자, 지금쯤이면 당신은 에드의 메시지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준비가 되어있다면 당신이 받은 마지막 메시지는 과연 무얼 품고 있을까요?

이쯤 되면 저 역시도 당신이 받았을 그 메시지가 진심으로 궁금해집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09. 7. 15. 06:37
내일이면 일본에서 살고 있는
언니네 가족들이 온다.
형부랑, 언니랑, 이쁜 조카랑
(조카라는 말은, 그리고 의미는 말랑말랑한 사랑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 ^^)

같이 사는 조카들이
편지들들들(?)을 무지 많이도 써 놨다.
너무 귀엽고 재미있는 내용들.



오빠가 뭘 하고 있으면
그걸 또 빤히 보고 그대로 따라 하는 동생
둘이 머리 맞대고 이 편지들을 썼을 생각을 하니
그냥 절로 미소가 난다.



두서없이 이거 저거 생각나는 그대로 쓴 편지들
순수하고 깜찍한 것들.
그냥 내 편지라고 보관하고 싶어진다.



얼마전이 자기 생일이었다고 은근히
말하는 조카녀석
언니랑 형부랑 이 편지 받으면 어떤 기분이실라나????



소개팅, 맞선 분위기에 심지어 버럭 컨셉까지
그리고 뜬금없는 퀴즈쑈도 ...ㅋㅋ
이 몸이야 이미
조카녀석들에게 단란이 된 몸이지만
형부랑 언니는
적쟎이 당황스럽겠다.
환영사 한번 거하네~~~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09. 7. 3. 06:26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말>에도 분명 생명이 있고 유효기간이 있다는 생각.
어쩌면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메일"이라는 단어 속에 "편지"라는 단어는
사장되버리지 않을까?
단어의 뜻은 알지만 이미 사용되지 않는 단어의 하나로...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문득 서럽다.



<편지>
가만히 그 단어를 되뇌고 있으면
까닭없이 왠지 슬퍼진다.
예전 박신양, 최진실 주연의
최류성 강했던 영화 <편지>가 생각나서일까?
왠지 강한 햇빛 속에 눈 못 뜨고 서 있는 것 같은 막막함.
그런 날에는
누군가 톡톡 어깨 두드려주는 그런 내용의 편지
한 통 받았으면 힘나겠다....

빨간 편지함.
이제는 각종 영수증과 고지서 혹은 영업 전단지만 담겨 있는 곳
하루 종일
그 안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을 그리움.



쓸 곳도
받을 곳도
이제는 너무 희미해진...
이제 누가 내 속을 <편지>로 읽어줄까?
세상의 모든 편지는
그런 이유로
전부 행운의 편지.

기적처럼 그런 행운 한 번 품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09. 7. 2. 13:23
늦게 집에 갔더니
컴퓨터 책상 위에 두 장의 편지(?)가 놓여 있다.
무지 이뻐하고 사랑하는 두 조카의 편지



위의 오빠가 하는 걸 보고
동생이 그대로 따라 했을 걸 생각하니
혼자 미소가 절로...
하루의 피로가 씻기는 기분 !



블로그에 간혹 녀석들 그림을 올리고 보여주면
자기들 그림이 컴퓨터에 나온다고
무지 신기해하며 좋아하는 조카들.
이제는 먼저 이렇게 선수를 치기도 한다.
나도 어쩔 수 없는지라
내 조카들이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예쁘기 그지 없어서.....

아침엔 엄마가
두 녀석들이 썼다며 편지를 보여주신다.



가끔은 (사실은 너무 자주)
이 녀석들이 이모보다 더 할아버지, 할머니께 애뜻하구나 싶어
많이 민망하고 부끄럽다.
"아이는 어른의 교사"라던데....
이 녀석들
이렇게 자꾸 나를 가르친다.

딸의 자리가
이모의 자리가
고모의 자리가
그리고 내가 차지하고 있는 그 모든 자리가
새삼 은근한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이 녀석들 알까?
이모가 참 많이 반성하고 있다는 걸...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