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03.17 <제비를 기르다> - 윤대녕
  2. 2011.01.24 잠시 폭설...
  3. 2010.03.10 3월에 눈 내리는 마을
  4. 2010.01.05 41년 만의 대설
읽고 끄적 끄적...2011. 3. 17. 05:46

윤대녕의 글을 읽고 있으면 온 몸이 싸늘해진다.
김훈의 그것과는 또 다른 싸늘함.
김훈의 소설 속에 바람을 읽을 수 있다면
윤대녕의 소설 속에는 폭설을 읽을 수 있다.
쓸어도 쓸어도 집요하게 다시 쌓이는 거침없는 하얀 눈발.
그의 소설은 세상의 모든 길을 묻은 길고 오랜 폭설,
그 하얀 풍경(설경)이 담긴 오래된 묵화같다.
그의 소설 속에는 그 폭설을 뚫고 시간을 천천히 통과하는 사람이 있다.
그쪽에서 이쪽으로 찾아오는 그런 시간, 그리고 그런 사람.
동시에 찾아오는 그 두가지를 대면하는 건
오래오래 침묵하게 하고, 오래오래 집중하게 한다.
그의 글들은 앞으로도 얼마나 더 그림같을 것인가!!!
내게 그의 글은 바로 "옛날 영화"다.


연(鳶)
제비를 기르다
탱자
편백나무숲 쪽으로
고래등
낙타 주머니
못구멍
마루 밑 이야기


윤대녕의 네 번째 소설집엔 담긴 8편의 중,단편의 그림들.
(그의 소설은 그림처럼 읽힌다. 그것도 아주 또박또박...)
이 그림들을 읽으면서
나는 책 속에 있는 인물들이 다 내 오랜 피붙이같이 마다마디가 저릿했다.
피붙이에 대한 이야기를 풍문(風聞)으로 듣는 건 또 얼마나 괴로운 일이던가! 
인간사(人間史)!
윤대녕의 단편들에도 장편에서처럼 "시간"이 보인다.
그대로 멈춰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시간.
혹은 상관있어야 하는데 부러 무시하고 계속 흘러가는 시간.
그 시간속에 그들이 있다
..... 낮에 잠깐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여자처럼 보였다. 이미 굳어버린 콘크리트 반죽처럼 도대체 아무 표정이 없는 ......  그들은
이렇게 삶이 뜻하지 않은 각도로 인생을 바꿔놓은 사람들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계기로 작용해 생의 전모를 바꿔놓는 수가 종종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삶의 원리이자 저마다 이면에 감춰진 속박이자 굴레이기도 하다.

생에는 화해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도 엄연히 존재하게 마련이란다.
그걸 인정하면 악마같던 삶이 관대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고...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오래된 작부집의 늙어버린 문희나 고래등을 만든 아버지처럼
많은 시간들이 더 지나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나?
사람은 정화되지 않으면 나이를 먹을 수 없다는데...

윤대녕의 단편 속에 담긴 한 사람의
혹은 한 가정의 전 생애를 들여다보는 일은,
마치 누군가 내 등에 대고 직접 망치를 치는 것처럼 뜻밖의 고통이었다.
어이없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찌할 수도 없는 고통.
윤대녕이 말했다.
...... 나는 '그 모든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그리움을 자주 체험했다. 삶의 정체는 결국 그리움이었을까? ..... 나는 문학이 왜 내게 문학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새삼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들을 밖으로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또한 쓰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삶이 계속되는 한 그리움은 계속될 것이고 또한 누군가 조용히 숨어 글을 바라고 쓰는 일도 계속될 것이다 .....


그리고 누군가는 조용히 숨어 
시간이 담긴 윤대녕의 그림들을 또박또박 읽어나갈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이쪽과 저쪽의 시간이 서로 만나지는 날이 올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11. 1. 24. 10:11

참 눈이 많은 계절이다.
나란 동물이 참 이기적인게,
창으로 바라보는 눈은 낭만적이고 이쁘고 동화적이지만
그 속에 발을 딛고 서면 그 순간 바로 현실의 불편이 절감된다.
신발 밑창으로 집요하게 파고드는 눈,
그래서 걷는 걸음을 어이없이 삐걱거리고 만들고
때로는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우수운 꼴로 바닥에 내동댕이 치는 눈.
거기다가 바람이라도 작정한듯 합체를 하면...
그런 날은 정말이지 아무리 동화적인 눈이라도 더이상 동화로 보이긴 힘들다.
저절로 느껴지는 추위에 어깨도 우수수 떨린다.
눈이 푸지게 오는 날은 날씨가 포근한 거라는데
이상하지?
눈이 오면 내 체감 기온이 형편없이, 현실감없이 그대로 뚝 급강한다.
어딘지 냉랭하게 낯설고
도도할 정도로 차갑고
살갖에 날카로운게 닿는 듯한 금속성의 쨍한 느낌.
손발이 저릴 정도의 냉기는 그대로 날 선  칼끝처럼 예리하게 다가온다.

잠시 폭설...
어제 순간적으로 서울에 쏟아진 눈은
고립을 생각케 했다.
뭘 그렇게 잊고 싶었을까?
새하얗게 새하얗게 지워내려는 눈발의 의지가 너무 독해
순간 덜컥 겁이 난다.
혹시 나를 찾는 거였나?
거친 눈발이 고립시키겠다 작정한 건
혹 내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눈발은 답할 이유가 없다며
여지없이 성큼성큼 폭력처럼 쌓인다.

이대로 이 순백의 폭력을 그대로 견뎌야 하나?
어쩌면 나는 
너무 깊고 큰 원죄를
품었었나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10. 3. 10. 12:22
처음엔 까탈스런 노처녀의 심술 같았다.
방향을 알 수도 없었고
그리고 눈송이의 정도도 알 수 없었다.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는
3월의 눈 내리는 마을은
그렇게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론 당황스러웠다.
사춘기 소녀들의 구슬진 웃음처럼
즐거우면서 때론 마음을 심난하게 하는 눈.



마지막 눈일테지.
생각만으로 울컥 가여워진다.
희고 고운 백설탕을 정성껏 뿌려 놓은 것 같은
하얀 처녀지를 바라보며
햇빛을 반사되는 그 빛이 고와
자꾸 "미안하다 미안하다"만 반복한다.
장독대 위에 소담하게 올려진 눈을 손으로 밀어내
그 밑에 잘 익은 간장, 고추장, 된장을 퍼올리듯
그렇게 살아내고 싶었는데...



늘 어깨위로 털어내지 못한 눈을 소복히 올리고
살고, 살고, 또 살고...
어느날은 영영 겨울만 계속될 것 같아
차라리 눈을 꽉 감아버리고도 싶기도 했는데...
털어내지 못한 눈을 마음 위에 올리고
그저 바라보는 햐얀 생명은
수줍고 곱고
그리고 처연하다.
차가워서... 서늘해서...
그래서
꼭 내 맘 같기만 한 마지막 눈.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10. 1. 5. 06:21
거짓이라고 말해도 믿을 것 같았다.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소르라치게 쏟아지고 쏟어지던 하얀  눈.
서울에 내린 눈 25.8cm
1969년 1월 28일 25.6 cm 이후 41년 만의 대설이란다.
적설 관측 이래 가장 많은 양의 눈이 내렸다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발표했다.
재설 작업을 꿈도 꾸지 못하게 만든 눈 
눈이 공포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때론 위태롭고 아슬아슬하다.
이상하지?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가 생각났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백색 공포에 온 도시가 휩쓸리는 이야기.
그 백색의 암흑에서 유일한 눈이었던 한 여자의 이야기...
어쩐지 내가 그 여자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장의 유리를 통해 보는 세상은
그러나 너무나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저 햐얀 눈 속에 오롯이 들어가 안기면
그대로 햐얀 온기가 스며들 것 같은 편안함과 그리고 따뜻함.
그건 단지 시선의 왜곡일 뿐인데,
한 장의 유리를 두고
나는 그 곳을 향해 끝없는 그리움을 보냈다.
오.도.카.니...
나 역시 장독대처럼 그대로 눈을 쌓고 싶다는 간절함.
조금 있으면 저것들도 흔적을 잃겠구나 하는 생각에
자꾸만 맘이 조급해졌다.
털어내야 하는데... 털어내야 하는데...
누군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까???


나란히 빛과 함께 있는 눈은
그리고 또 한 세상이었다.
그 찬란함이 가늘게 몸을 떨게 한다.
단지 눈일뿐이라고, 풍경일뿐이라고
꾹꾹 다져진 위로를 건넨다.
이 눈발 속을 버텨내고 싶다면
단지 두 발의 단단함만 있으면 된다고...
그래서 그 단단함만
차곡차곡 눈처럼 쌓고 있던 시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