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3. 3. 06:46

마드리드에서의 첫날.

나는 가장 먼저 세 명의 남자를 만나기로 했고

고맙게도 세 명은 한 곳에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 센터.

세 명의 남자들은...

피카소, 후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그림을 잘 모르긴 하지만 이 화가들의 진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건

문외한의 가슴을 설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 센터.

18세기 만들어진 산 카를로스 병원을 개조한 이 미술관은

건물의 외형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투명 엘리베이터를 건물 바깥으로 빼낸 모습은 

처음엔 이질적이었는데 자꾸 바라보면 묘하게 조화감이 느껴졌다.

(이 미술관을 찾아가느라 얼마나 헤매던지...)

도착한 시간이 마침 일요일 오후여서

무료입장으로 소피아 미술관과 프라도 미술관을 관람했다.



스페인 땅이 아니고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피카소의 <게르니카>.

이 땅의 역사를 알고 작품 앞에 서니 장면 하나 하나가 전부 울음이고 통곡이다.

고백컨데... 아무것도 모르고 이 작품을 봤더라면

나는 분명 재미있는 캐리커쳐쯤으로 치부했을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러더라.

시각이 아닌 청각이 반응하는 작품이라고...

그게 어떤 의미있지 그림 앞에 서니 이해가 됐다.

이 작품은 피카소의 작품이라서 위대한게 아니라

그속에 영문도 모르고 하루아침에 폭격을 당해야 했던 소도시 게르티카의 주민들이

히틀러와 프랑코 장군이 만든 스페인의 비극의 역사가,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피카소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 담겨있어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가로 7.8m , 높이 3.5m의 대작이라 피카소가 이 작품을 그릴때도 사다리를 타고 막대에 붓을 메달아 작업했단다.

그리고 그 과정을 그의 연인이엇던 사진가 도라 마르카가 사진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피카소에게서 시작된건 아니고

세계적인 사진작가 로버트 파커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서 만들어졌는데.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에서 아이의 시체를 붙들고 울부짖는 여인의 사진이 그것이다.

그림이 완성된 후 당시 점령군인 독일 장교가 피카소에게 물었다

"이걸 당신이 만들었나요?"

피카소는 대답한다.

"아니요! 이건 당신들이 만들었소!"

1937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작품 전시가 끝난후 프랑코 군부 독재에 항거하는 의미로 

이 작품의 고국행을 피카소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래서 <게르니카>는 스페인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회복되면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한다는 조건으로

뉴욕 근대 미술관에 무기한 대여된다.

1975년 독재자 프랑코가 사망하고 1981년 스페인 내전이 종결된후

피카소의 바람대로 <게르니카>는 스페인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작품은 단 한 점도 소장하지 않는다는 프라도 미술관의 전통때문에 

프라도 미술관 별관인 "카손 델 부엔 레티로"미술관에 전시된다.

그러다 1992년 보관상의 문제로 현재의 왕립 소피아 미술관으로 이전됐고

이전과 동시에 외부 출입을 금지하는 법안이 스페인 의회에 통과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오직 스페인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이 됐다. 

스페인의 뼈아픈 근대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작품 <게르니카>

또 다시 가슴 끝이 묵직해온다.



예전에 우리나라에 피카소전이 있을때도 일부러 찾아갔었는데

그때 본 작품들과는 배교할 수 없는 작품들을 실제로 보는 기분은 생각보다 훨씬 더 짜릿하고 흥분됐다.

개인적으론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사이에 교착점 같은 화가가 후안 미로인 것 같다.

이들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히 어떤 연쇄적인 영향을 순차적으로 내려가지 않았나 싶다.

사물의 형태를 파괴하는 건 세 화가 모두 같지만

피카소에겐 기괴한 천진함이, 

후안 미로에게는 온화함이, 

살바도르 달리에겐 좋은 의미의 광기와 분열이 느껴졌다.

이 세 명의 남자를 한자리에 모아놓을 생각...

과연 누가 했을까?

그 최소 발상자에게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다.

게르니카를 제외하고는 사진촬영이 허용돼서

아쉬운 마음에 핸드폰으로 사진 몇 장을 찍어 간직했다.



벽의 배색과 액자, 그리고 그림의 색감들이

어쩌면 그렇게 서로를 잘 품고 있던지...

게다가 그림을 향해 바로 떨어지는 조명없어 원작이 갖는 순수성이 그대로 느껴졌다.

둘러보는 내내 우리나라 미술관이 떠올라 많이 부러웠다.

우리나라 미술관을 가면 

특별전이나 기획전시일수록

작품이 하나의 데코레이션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두꺼운 화장과 조명으로 진짜 얼굴을 다 가려버린 느낌.


화장한 일요일 오후,

세 명의 남자가 아낌없이 드러낸 말간 민낮은 

그 어떤 청순한 여인의 모습보다 더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그렇게 내 사랑은 세 명의 남자들과 함께 시작됐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2. 1. 11. 05:57
주말을 이 어마어마한 사람과 함께 보냈다.
무료 925 페이지에 달하는 월터 아이작슨의 <Steve Jobs>를 손에 잡은 첫 느낌은,
엄청난 놀라움과 소심한 망설임이었다.
왠만한 책 3권을 합쳐놓은 것 같은 백과사전적 두께가 주는 묵직한 압도감이란!
지하철에 서서 책장을 넘기는데 손목이 시큰했다.
저절로 분책(分冊)의 소망이 간절해지는 무게였다.
다 읽으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구나 싶었는데 이틀만에 읽었다.
이미 거의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여전히 처음 아는 사실처럼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애플 제품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으면서 (그 흔한 아이폰도 없다)
나는 스디브 잡스와 애플의 매니아라고 자처한다.

이 전기의 시작은 스티브 잡스에서부터다.
아인슈타인, 벤저민 프랭클린, 키신저 등 세계적 위인의 전기를 썼던 유명한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에게
스티브 잡스가 오느날 전화를 했단다.
자신의 자서전을 써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 우리 아이들이 나에 대해 알았으면 했어요.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항상 곁에 있어 주진 못했지요. 그래서 아이들이 그 이유를 알기를, 내가 무엇을 했는지 이해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몸이 아프기 시작하니까 내가 죽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한 책을 쓸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그들이 뭘 알겠습니까? 제대로 된 책이 나올 수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직접 내 얘기를 들려주어야겠다 싶었지요 ......
성마른 장작같이 꼬장한 스티브 잡스의 고백에 나는 또 뭉클해졌다.
이 사람, 마지막까지도 인문학적인 감각과 과학적 재능을 결합한 완벽주의자다.
이게 바로 스티브 잡스다!



나는 가끔 스티브 잡스를 생각한다.
어쩌면 나도 그의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에 빠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어이없게도 그가 어딘가에 살아서 계속 혁신적인 제품들을 만들어내고 있을 것만 같다.
이미 발표된 아이디어지만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 사장되어 버린 그것을 지금도 기막히게 찾아내
환상적으로 접목시켜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제품을 비밀리에 만들고 있을 것만 같다.
애플의 페쇄적인 end to end 통합 서비스 방식 일괄 솔루션은
내겐 일종의 미스터리고 신비다.
이런 애플을 두고 폐쇄적인 기업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지만
난 일종의 완벽주의자적인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솔직히 사용자 대부분은 그런 폐쇄적인 서비스로도 어떤 제품보다 훨씬 더 개방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의 시작이 스티브 잡스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영원한 애플의 심장이다.
그가 살아있든, 살아있지 않든!
경쟁에서 이기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게 목표가 아니라
가능한 한 가장 위대한 일을 하는 것, 나아가 거기서 한 발자국 더 아나가는 게 스티브 잡스의 목표였단다.
확실히 스티브 잡스가 복귀한 애플로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이 됐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만큼...)
스티브 잡스는 두 가지 유산을 남기고 싶어 했단다.
혁신과 변혁을 선도하는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과
영구히 지속될 수 있는 회사를 구축하는 것 두 가지가 그것이다.
그는 애플이 스스로 재창조할 수 있는 기업이기를 꿈꿨고 스티브 잡스가 살아 있는 동안은 확실히 그랬다.
현재 애플의 CEO는 스티브잡스가 병가 중에 애플을 훌륭히 이끈 팀쿡이다.
(오늘 아침 인터넷 뉴스에 애플의 팀 쿡이 세계 최고 연봉을 받는 CEO라는 기사가 실렸더라)
스티브 잡스 사후 아직 맥월드 행사도 신제품 출시도 없다.
애플 제품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나지만 지금 기다리고 있다.
스타브 잡스가 부재하는 애플의 새로운 혁신 제품이 과연 무엇일지...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나는 일에서도 삶에서도 행운을 누렸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지요"
멋지다! 이 사람!
세상을 상대로 이런 고백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영원한 구루인 애플은
이제 드디어 신화의 세계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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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굴어라. 그러면 사람들은 그런 줄로 알 것이다.

애플의 마케팅 철학 - 공감, 집중, 인상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단순화에 목숨을 건다.

기능은 형태를 따라간다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인생의 중대한 선택들을 도운 그 모든 도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기대와 자부심, 망신 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는 퇴색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더군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은 아까운 게 많다고 생각하는 덫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미 알몸입니다. 가슴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자신이 쓰고 싶은 물건을 만든다

필요성조차 못 느끼다가 어느 순간 그것 없이는 살 수 없게 되는 기기들이 있다. 그는 이런 기기들을 요리해 내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졌다. 애플은 기술과 선(禪)이 결합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를 제공하는 유일한 방법은 폐쇄형 시스템일 것이다.

폐쇄형 시스템은 혹평을 받긴 하지만 매우 효과적이며 사용자들에게 이익을 안겨 준다. 기술 업계에서 스티브 잡스보다 더  확실하게 이를 입증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애플은 하드웨어와 스프트웨어, 서비스를 일괄 제공하고 그것들을 철저히 통제함으로써 끊임없이 경쟁자들을 앞지르고 빛나는 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

여정 자체가 보상이다

잡스가 만든 제품들에는 그의 성격이 반영되었다. 스티브 잡스 자신의 철학도 그러했다. 그의 성격과 열정, 즉 완벽주의, 비범한 재능, 열망, 예술성, 악마성, 통제에 대한 집착은 그의 비즈니스 접근 방식 및 거기에 기인한 혁신적인 제품들과 얽혀 있다.

잡스의 성격과 제품들을 한데 묶는 통일장 이론은 그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 즉 맹렬함으로 시작한다.

내 열정의 대상은 사람들이 동기에 충만한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영속적인 회사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 밖의 다른 것은 모두 2순위였다. 물론 이윤을 내는 것도 좋았다. 그래야 위대한 제품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윤이 아니라 제품이 최고의 동기부여였다..... "고객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줘야 한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 우리의 일은 고객이 욕구를 느끼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직접 보여 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것이 내가 절대 시장조사에 의존하지 않는 이유이다. 아직 적히지 않은 것을 읽어 내는 게 우리의 일이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의 노고와 우리가 올라설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 준 사람들의 성과에 의존한다. 그리고 우리 중 많은 사람들 역시 인류에게 무언가를 기여하기를, 그러한 흐름에 무언가 추가하기를 바란다. 이것의 본질은 우리가 각자 알고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능을 사용해 깊은 감정을 표현하고 이전 시대에 이뤄진 모든 기여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 흐름에 무언가를 추가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나를 이끌어 준 원동력이다.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까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래서 뭔가는 살아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은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전원 스위치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딸깍!' 누르면 그냥 꺼져 버리는 거지요. 아마 그래서 내가 애플 기기에 스위치를 넣는 걸 그렇게 싫어했나 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1. 6. 05:59

□ 공연명 : 연극 '트루웨스트'
□ 극   본 : 샘 셰퍼드

□ 연   출 : 유연수
□ 기   간 : 2010년 11월26일~2011년 2월26일
□ 장   소 : 서울 종로구 컬처스페이스 nu
□ 출   연 : 리 (오만석, 배성우, 김태향)
              오스카 (조정석, 홍경인, 이율, 김동호)
              제작자 사장 & 엄마 :
임진순

"무대가 좋다" 시리즈 그 네 번째 작품 <트루 웨스트>
어쩌다 보니 무대가 좋다 시리즈를 다 봤고
그리고 앞으로 2 작품(아트, 대머리 여가수)도 볼 예정이지만
지금까지 본 무대가 좋다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맘에 들었다.
개인적으론 오랫만에 조정석과 오만석의 연극 무대를 보는 거라서 기대가 컸다.

이상하게도 조정석은 연극, 뮤지컬 다 괜찮은데
오만석은 뮤지컬보다 연극 무대에서 보는 게 훨씬 더 잘 어울린다.
너무 진지하게 몰입해서 그런가???



반듯한 성격의 모범생 동생 오스틴과 껄렁한 양아치 형 리.
그 둘의 역지사지(?)스런 모습은 재미있고 그리고 은근히 사실적이다.
(나만 그렇게 느꼈을까?)
90분 남짓의 시간이었는데 이상하게 2시간 처럼 느껴지는 연극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그 시간이 전혀 지루하거나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사실.
두 형제의 사생결단을 보고 있노라니 시간도 약간 다르게 흐른 모양이다.
처음엔 오스틴 조정석의 연기에 반했고
그리고 조정석을 점점 끓어오르도록 열심히 빈정대며 부추키는 리 오만석의 연기에도 반했다.
(정말 한 대 확 때려주고 싶더라...)
난장판이 되는 형제의 모습과
똑같이 난장판이 되는 집 안의 모습을 보는 건
대리만족이자 거한 살풀이 굿 같기도 하다.
일렬로 쭉 나열되어 있던 온 동네 토스트기와
(어느 놈이 가장 바삭하게 구워지나 지켜보는 조정석의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자신이 밟은 토스트를 우걱우걱 씹어대던 적나라한 리의 모습.
그리고 형의 목에 전화선을 감고 죽일 듯이 조르는 오스카의 절묘한 간절함까지...
이 모든 모습을 지켜보는 건 일종의 관음적 즐거움이기도 했다.



어딘가 한 군데쯤 정상적이지 못한 가족의 모습.
오스카도, 리도
그리고 죽은 화가 피카소가 동네에 왔다며 보러 가자고 말하는 엄마까지도
일종의 정신착란의 상태에 놓여있다.
그리고 그건 모든 사람들의 일상이기도 하다.
착각을 현실로, 그리고 가보지 못한 길을 희망하고 꿈꾸는 평범한 모든 이들의 바람.
제목이 주는 느낌과 딱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다.
2003년 영국에서 공연됐을 때는 
안전상의 이유로 앞열 3열을 모두 비워두기까지 했단다.
그만큼 두 형제의 싸움이 리얼하고 치열했다는 의미다.
원래 연극 <트루웨스트>는 전통적으로 리와 오스틴 역의 배우들이
매일 역할을 바꿔가면서 공연을 해 화제가 됐던 연극이다.
우리나라에서 초연된다고 했을 때도
이런 방식으로 공연되겠거니 기대했는데
마지막까지 나온 스케쥴상엔 크로스되는 캐스팅은 없다.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운 부분이다.
하긴 조정석이 형 역할을 하기엔 초동안이긴 하다.
(당췌 누가 이 인간을 32살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넌 도대체 어느 별에서 왔니???)
그래도 서로 바꿔서 연기했다면 그 재미도 만만치 않았을까?

네 작품만에 처음으로
"무대가 좋다"에서 괜찮은 작품을 봤다.
그래서 또 다시 기대하기 시작했다.
<아트>와 <대머리 여가수>를...
(7,8년전에 봤던 권해효의 "아트"는 정말 아트였는데...)
그리고 이 두 작품에는 대중적인 스타 마케팅이 현지까지는 없다.
아무래도 나무 액터스 배우들이 요즘 바쁜가 보다.
미안한 말이지만 참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좀 진중하고 충실한 작품을 보게 되지 않을까 혼자 기대하는 중이다.
그래 이제 네 작품까지 왔으면
진심으로(그리고 양심적으로다) 무대가 좋아 질 때도 되긴 했다.
늘 궁금하긴 했었다.
누구한데 좋은 무대인지가... ^^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10. 5. 25. 05:44
지난 5월 4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소에서 세기의 경매가 진행됐다.
파블로 피카소가 1932년 연인 마리 테레즈를 모델로 그린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이라는 작품이 이날 경매작으로 등장한 것!
이 작품의 최종 낙찰가는 1억 640만달러였다. (한화로 약 1,188억 원)
이로써 피카소는 2004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1억 410만 달러에 낙찰됐던
자신의 작품 <파이프를 든 소년>의 가격뿐만 아니라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까지 새롭게 갱신하게 됐다.
전작처럼 이번 작품도 대리인에 의해 전화응찰로 낙찰이 됐다.
그 당시 배후에 대한 소문이 분분했었다.
진짜 낙찰자가 누군지 나도 궁금하긴 하다.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의 경매 예상가는 7,000만~9,000만 달러로 책정됐지만
이날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전화 응찰자가 호가를 올려 작품을 가져갔단다.
이 그림은 미국 부동산개발업자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프랜시스 라스커 브로디가
1951년 피카소에게 직접 1만9,800달러를 주고 사들였으며,
이후 1961년 딱 한번 전시됐을 뿐 50년간 공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즉, 컬렉터들의 수집욕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조건들을 다 갖추었다는 뜻이다.
그림 경매시 주의할 점은,
① 독창성 있는 작품을 구입하라.
② 같은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질이 좋은 작품(대표작)을 구입하라.
③ 진품을 구입하다. (유난히 싸게 나왔다면 의심하라)
④ 작품의 보존 상태를 확인하라.(제작 연도가 오래된 작품 구입시는 전문가와 상의)
⑤ 일반에게 공개된 이력이 적고 소장 이력이 적은 작품을 구입히라. 

        
                                              - 2010. 05.04. 새기의 경매가 이루어졌던 실제 모습

컬렉션은 인간의 결핍을 채워주는 방법이고
인간의 수집 본능이 이 결팝의 소산이란다.
그러나 컬렉션은 "돈"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열정과 안목이 함께 따라야만 성공할 수 있다.
정조 대왕은 수원 화성을 지을 때               
불만을 가지고 있던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어리석은 자들이로다. 아름다움이 바로 힘이니라"

다음 달에 우리나라에서도 또 하나의 "아름다운 힘"이 최고 경매가를 갱신하게 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
이중섭의 <황소>가 박수근의 <빨래터>가 세운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45억 2000만원에 도전한단다.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은 6월 메이저 경매를 통해
이중섭의 유화 <황소>를 추정가 35억∼45억원에 출품한다고 지난 5월 17일 밝혔다.
이 작품 역시 피카소의 세기의 경매처럼
1972년 현대화랑(현 갤러리 현대)에서 열렸던 이중섭 전에 출품된 뒤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유화 작품이다.
(지금쯤 유명 컬럭터들은 절로 손끝이 저릿저릿 하겠다)

 - 이중섭 "소"

게다가 "소"를 소재로 한 이중섭의 유화는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 등 10여점만 알려져 있을 정도로 희소성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중섭이 통영에 머물렀던 1953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것도 이중섭이 통영에서 맨 먼저 그린 "소"란다)
경매 출품자는 부동산 관련업을 하는 박태헌(87)씨로
1955년 미도파화랑에서 열린 이중섭 개인전에서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 3점을 샀지만
이중섭이 자신의 가족에게 그 작품을 선물하기를 원해서
<황소> 그림과 교환한 이후 지금까지 소장해 왔다고 한다.
(그때 당시 그림 가격은 쌀 10 가마니에 해당되는 금액이었단다)
지금까지 이중섭의 그림 중 최고가는
2008년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된 10호 크기의 유화 <새와 아이들>로 15억원에 낙찰됐었다.

 - 이중섭 "새와 아이들"
  - 박수근 "빨래터"

미술 작품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작품의 혁신성에 있단다.
혁신을 이루는 화가는 크게 "실험적 혁신가(Experimental Innovotor)"와
"관념적 혁신가(Conceptual Innovator)"로 구분된다고 한다.
후기 인상파 같은 실험적 혁신가들은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자기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말년에 이르러 성과를 거두게 되는 반면,
입체파 같은 관념적 혁신가들은
초기에 작품을 그리는 방법이나 해석하는 방식에서 혁명적인 쾌거를 이룬다는 의미란다.
불우한 생애를 보낸 이중섭과 박수근도
그렇다면 "실험적 혁신가"에 해당하는 작가들이라 할 수 있겠다.
힘이 넘치면서 해학성 가득한 이중섭의 "소"가
과연 어떤 새주인을 만나게 될지 많이 궁금하다.
컬렉터가 누구냐에 따라 오랫동안 비공개 작품으로 남을 수도 있기에...

주말에는 현대 갤러리에서 하는 "박수근전"을 다녀와야겠다.
이번 달까지라고 하니 놓치지 않으려면 서둘려야 할 듯...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4. 3. 06:18
읽으면서 참 많이 울었던 책이다.
아이가 너무 예뻐서, 그리고
그 가족이 너무 아늑하고 애뜻해서...
한 가족이 사랑하는 한 생명을 떠나보내며서 쓴 256일간의 기록은
나를 무너뜨리고 허물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자식을, 그것도 고작 여섯살 밖에 되지 않은 자식을
앞서 보내야 하는 부모의 심정.
그 날마다 찢어지는 가슴을 쓸어안으며 이 가족들은 더 큰 사랑을
매일매일 발견하고 깨닫는다.



소아뇌종양에 걸린 엘레나와 가족들의 256일 담인 일기, <남겨진 쪽지>
여섯 살 어린 엘레나에게 찾아온 뇌종양.
엘레나는 자신의 죽음을 가족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집안 곳곳에 수백 통의 편지를 숨겨놨단다.
그 쪽지를 처음 발견한 아빠는
일주일동안 울음을 참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암의 진행으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엘레나는
그렇게 엄마, 아빠 몰래 가방, 서랍장, 책장, 찻장, 앨범 속에 수백 통의 쪽지를 숨긴다.
이 쪽지들은 엘레나가 하늘나라로 떠난 이후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엘레나의 엄마 아빠는 이 편지를 펼쳐 읽지 않고 봉한 채로 보관한다.
아직 읽지 않은 편지가 남아 있다는 위안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어느 날 상자들을 옮기다가 책들 사이에서 쪽지가 떨어졌다.
그런 쪽지를 볼 때마다 엘레나가 나를 껴안아주는 것 같다”

엘레나에게 뇌종양 진단이 내려진 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9개월.
데저리크 부부는 종양 진단을 받은 2006년 11월 29일부터 아이가 세상을 떠난 2007년 8월 11일까지
256일간 번갈아가며 일기를 적어 내려갔다.
이 일기는 엘레나의 동생 그레이시에게 언니에 대한 기억을 남겨주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의 일기, 더 많은 사람들의 쪽지로 변해있다.



* Day 92일 - 2월 28일
아빠의 임무는 지켜주는 것이다. 엘레나가 처음 운동장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갈 때도, 처음 MRI를 찍을 때도 나는 늘 그렇게 말했다. 그것이 내 모토다. 아빠가 해야 하는 일이 뭐냐고 물어보면 엘레나는 아마 주저 없이 “지켜주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빠는 자식을 보호하고 구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믿었고,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 딸을 괴롭히는 녀석들, 어둠과 악몽 모두 내가 혼내주었다. 딸을 보호하는 일에서는 내 손이 번개보다 빠르고 내 피부가 갑옷보다 단단하다고 믿었다. 어떠한 위협이 닥치든 내가 안전하게 지켜주겠노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때는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쳐올지 전혀 알지 못했으므로.

* Day 219일 - 7월 5일
엘레나 옆에 있으면 나는 항상 아이 같은 기분이었다. 나이는 내가 훨씬 많지만, 지난 6년간 엘레나는 세대를 능가하는 지혜의 소유자였고 감정과 상식이 독특한 균형을 이룬 어른이었다. 엘레나가 갓난아기였을 때도, 내가 엘레나에게 평가받고 있으며 더 나은 아버지가 되도록 지도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분명히, 엘레나는 탁월한 코치였다. 먹고 말하는 게 온통 투쟁인 오늘도, 엘레나는 다른 사람을 개선시키려고 애쓴다. 자기 상태보다 내 손가락을 더 걱정한다. 엘레나는 언제나 내게 선생님이자 엄마이자 천사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운 엘레나는,
뇌종양이 점차 진행되면서 말하는 기능, 걷는 기능, 먹는 기능을 차츰 잃어버린다.
그러나 엘레나는 가족과 소통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했다.
그 중 “사랑해요(i love you)”라는 그림은
신시내티 미술관에 엘레나가 좋아하는 피카소 그림 옆에 전시되었다.
비록 아이의 외모는 병마의 지배를 받았을지라도
그 천사같은 마음은 그대로 모두에게 남아있다.
엘레나가 세상을 떠나자,
데저리크 부부는 여러 친구와 친지의 도움을 받아 신시내티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치료는 이제 시작이다(The Cure Starts Now)"라는 재단을 설립했다.
그리고 이 책의 인세 전액 역시나 소아암 환자를 위해 쓰이게 된다고 한다.
키스 & 브룩 데저리크 부부는
지금 세상에 더 많은 엘레나를 사랑으로 보듬고 치료하는 중이다.
여섯살 어린 한 아이의 생명은
그렇게 수많은 다른 생명의 희망으로 지금 자라나고 있다.
한 평생을 살아내도 할 수 없는 일을 여섯살 천사는 아직도 계속 하고 있는 중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09. 6. 25. 06:25
피카소가 말했다.
"어린이는 모두 화가다
화가란 커서도 바로 그 어린이의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소풍가는 날>


                                                  <로봇 대전>


                                                   <해 뜨는 모습>

때로는
그 아이의 마음 앞에
섬돌 하나 세워두고 싶다.

곱게 간직하고 잃지 말라고
사악한 것들 결코 범접하지 말라고
잘 지켜내라고...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