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8. 3. 2. 11:59

 

<리처드 3세>

 

일시 : 2018.02.06. ~ 2016.03.04.

장소 : 예술의 전당 CF 토월극장

원작 : 세익스피어

각색 : 한아름

연출 : 서재형

출연 : 황정민, 정웅인, 김여진, 김도현, 정은혜, 박지연, 이갑선, 임기홍, 김병희 외

제작 : (주)샘컴퍼니

 

개인적으로 한아름 작가와 서재형 연출의 작품 좋아한다.

각자 따로 활동할 때도 좋지만

이 부부가 같이 만든 작품들은 특히 더 좋다.

뭐랄까, 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다.

<메피스토>와 <더 코러스 오브 오이디푸스> 두 작품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 작품더 기대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믿고 보는 천만배우 황정민이 주인공이란다.

비록 부인이 제작하는 샘컴퍼니 작품에만 출연하는거지

몇 년에 한 번씩 이렇게 무대로 돌아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어느 정도 갹색은 했겟지만

세익스피이의 고전 속 대사를 다시 되새길 기회가 생간 것도 개인적으론 너무 좋았다.

세익스피어 희곡의 대사는 한 줄 한 줄이 정말 명문이다.

 

연극은...

다른거 다 필요없다.

황정민의 미친 연기 하나만으로도 시간이 아깝지 않다.

오그라든 왼손에 절룩거리는 다리, 특수 분장을 이용한 기이하게 뒤틀린 굽은 등.

저 상태로 2시간 가까이 연기한다는게 놀랍다.

정말 연기에 미쳤구나... 싶었다.

리처드 3세의 광기도 황정민의 광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까지 했다.

다른 좋은 배우들의 연기도 다 좋았지만

이 작품은,

황정민을 위한, 황정민 의한, 황정민의 작품이라 하겠다.

손과 다리, 허리를 쭉 펴고 걸어나오는 커튼콜의 모습이...

그래도 더 뭉클했다.

 

아쉬움이 있다면,

리처드 3세는 기억에 없고, 오로지 황정민만 기억에 남는다는 사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5. 1. 27. 07:51

<주홍글씨>

일시 : 2015.01.17. ~ 2015.01.25.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원작 :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 "주홍글씨"

대본, 작사 : 한아름

작곡 : 박정아

편곡 : 황호준

음악감독 : 성재

연출 : 서재형

출연 : 오진영(헤스터 프린), 박인배 (아서 딤즈데일),

        박은석 (로저 칠링워스), 김보현, 오찬우, 박지희, 김혜인, 박진아 외

기획 : 극단 죽도록 달린다

 

서재형 연출, 한아름 작가의 두번째 창작뮤지컬 <주홍글씨>

두 사람은 콤비플레이는 확실히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 없다.

 

첫번째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참 독특한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 세계가 다행히 나와는 정말 잘 맞는다.

놀랐다.

내가 알고 있는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가 맞기도 하고, 전혀 아니기도 했다,

황호준의 국악 느낌을 가미한 편곡도 아주 독특하고 특별했고

서재형 한아름 콤비 작품에서 늘 듣게 되는 바람 지나가는 소리도 이 작품에선 유독 더 묘하게 다가왔다.

사실 원작의 드라마가 너무 강해서 이걸 어떻게 무대 위에서 뮤지컬로 풀어갈까 걱정했는데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마치 영화의 클로즈업 기법처럼 한 명에게 감정의 극한대를 포커싱한 연출 방식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무대에 너무 휑하다는 평도 있긴 했는데 나는 오히려 그런 텅비어 있는 무대가 훨씬 좋았다.

셋트로 가득찼다면 인물들이 보여주는 감정에 이렇게까지 집중하지는 못했을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와 감정만으로도 아주 충만하게 채워진 작품이었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우울함이 느껴지던 조명도 그런 감정을 한층 더 배가시켜서

관람이 끝난 후 가혹함이 느껴질만큼 많이 힘들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나를 놀라게 만들었던 배우 박인배.

워낙 좋아하는 배우라 그가 출연하는 작품은 일부러라도 다 찾아보는 편이다.

지금껏 본 작품 중에 실망감을 느꼈던 작품도 거의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서'라는 말을 듣고는 좀 의아했다.

개인적으로 로저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기에...

그랬는데... 박인배 아서가 나를 결국 울게 만들었다.

"그 악마가 나입니다..."

아서가 된 박인배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까!

그가 무대 이에서 보여준 모습은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 그 이상의 것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무언가를 지켜내기 위해서

일생동안 비난을, 비밀을 견뎌내야 한다는 건...

사람을 이렇게까지 참혹하게 만드는 일이구나.

그 뼈를 갂는 참혹한 고통 때문에 아서의 교수형 장면이 나는 오히려 편안했다.

원하던 자유...

정말 그렇더라.

그래서 다행이었고 안도했다.

배우 박인배는 이 작품에서 아서라는 인물을 통해 내게 엄청난 무게와 감정의 서사를 보여줬다.

나도 모르게 숙연해지더라.

박인배뿐만 아니라 오진영, 박은석, 그리고 모든 배우들이 다 한결같이 진심이었다.

그들 모두에게 받은 감동을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게 미안할 뿐이다.

(그러기엔 박인배 배우가 내게 너무 깊게 들어왔다.)

 

인간의 삶이...

자신이 원하는 결말대로 가는건 참 어렵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에 용기를 낸다면, 진실을 놓지 않는다면,

적어도 비겁해지지 않을 순 있다.

그게 마지막까지 끝끝내 지켜주고 싶었던 무언가를, 누군가를 위한 최선의 결말이 될수도 있기에...

삶이 끝났다고 모두 비극으로 돌아서는 건 아니다.

비극 속에서 다시 부활하는 삶도 있다.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가 보여주지 못한 결말을

서재형, 한아름 콤비의 "주홍글씨"가 내게 보여줬다.

그리고 "박인배 아서"가 그걸 느끼게 했다.

 

꼭 다시 한 번,

박인배 아서 딤즈데일을 만날 수 있다면...

그의 선택에 나도 기꺼이 함께 하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4. 16. 06:12

<메피스토>

일시 : 2014.04. ~ 2014.04.

장소 :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

원작 :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대본 : 한아름

무대 : 여신동

작곡 : 황호준

연출 : 서재형

출연 : 정동환(파우스트), 전미도 (메피스토), 이진희(그레첸) 외

주최 : 예술의 전당

 

난 서재형과 한아름 콤비의 작품들을 정말이지 미치도록 좋아한다.

<왕세자 실종사건>, <메디아>, <더 코러스;오이디푸스>,

이 작품들을 보고 받었던 충격은 가히 해비톤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내겐 이 둘의 조합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황홀하다.

그런데 거기에 황호준이 음악을, 여신동이 무대까지 가세했으니 " Must see"  해야 할 이유가 더 생겼다.

(사족이긴한데 황호준은 소설가 황석영의 아들이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무지 좋아하는 고전 중 한 편인 <파우스트> 원작이라니!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 작품을 여성성이 강한 메피스토펠러스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더 강렬하지 않을까 하고...

그러면 이 "유혹"이라는 부분이 훨씬 더 강렬하고 필사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다니...

묘하게 섬득해지는 반가움이 느껴졌다.

 

 

작품은 원작의 깊이를 충분히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신선했고 게다가 꽤 도발적이기까지 했다.

특히 삼류건달을 떠올리게 하는 메피스토 전미도에게 놀랐다.

성실하게 꾸준히 성장하는 배우라는 건 매번 느끼고 있었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 확신했다.

이제 그녀는 몸과 소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아는 배우가 됐다는 걸!

쇠를 긁어내는 듯한 가공되지 않은 불편한 소리와 백발의 머리,

껄렁껄렁한 자세와 기괴한 표정들, 움직임들을 보면서

그녀가 이 작품을 위해 쏟은 열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느껴져 뭉클했다.

(검정 배바지 정장과 붉은 블라우스 셔츠는 또 왜 그렇게 작품과, 배역과 잘 어울리던지...)

쉽게 감당하기 힘든 작품이고, 역할이었을텐데...

놀랍다.

감탄스러울만큼 매혹적인 메피스토였다.

능수능란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그 악 속에 순진한 선이 보이더라.

그건 아마도 역할과 별개로 전미도라는 배우가 갖고 있는 필모그라피 때문이었으리라.

의도되지 않은 그 느낌이

의외로 극의 표현과 꽤 적절하게 어울리더라.

("악"인들 방황하고 주저하지 않을까! 비록 그게 절대악일지라도...)

 

파우스트 정동환.

파격적인 전미도에 의해 오히려 포커스가 덜 맞춰지는 느낌이 있지만 역시나 노련하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

정동환 파우스트가 아니었다면 전미도가 이렇게까지 날개를 활짝 펼 수 있었을까?

다음 세대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기위해

뒤를 확실하게 서포트를 해주는 노장의 연기를 본다는 건,

관객 입장에선 극진한 감동이다.

(몇 년 전 공연된 <벚꽃동산>까지 오버랩된다. 그 연극에서 정동환의 모습, 참 아득했었는데...)

젊음을 되찾은 파우스트의 모습이 충분히 젊지 않아 당황스럽긴 햇지만

정동환의 연기는 명확했고 확실했다.

 

발푸르기니의 밤은 다소 과하게 표현되긴 했지만

(오히려 더 극단적인 몽환의 느낌이었다면 어땠을까?)

육중한 쇠가 갈리는 소리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마치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느낌이더라.

무참하게 도륙되는 육체 위에 펼쳐지는 악의 향연.

어쩌면 구원받은 파우스트를 보면서 신에게 외친 메피스토의 물음은

자기방어같은 최후변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에게 달라붙었습니까? 아니면 그가 날 불러들였습니까?

 대답해주십시오! 그가 옳은가요? 난 항상 틀린가요?"

우리가 선하다고 믿는 신(神)은

생각해보면  단 한 번도 선했던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제 신께서도 "메피스토"에게 대답을 해야 할 것 한다.

 

바로 지금이다!

악마가 될 시간.

가장 행복한 시간이 바로 파괴의 시간이다.

그러니 기억하자.

선이란 아직 저지르지 않은 악일 뿐이라는 걸.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10. 25. 11:39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

일시 : 2013.10.09. ~ 2013.10.20.

장소 : LG아트센터

원작 : 소포클레스

대본,작사 : 한아름

작곡 : 최우정

연출 : 서재형

출연 : 박해수(오이디푸스), 박인배(코러스장), 임강희(이오카스테),

        이갑선, 임철수, 오찬우, 김선표, 김중오, 박지희, 김정윤, 이천영,

        김재형, 인진우, 지석민, 김혜인

주최, 제작 : LG 아트센터 

 

이 대단한 작품에 대해 도대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더 코러스;오이디푸스>

이 작품은 내게 2013년 최고의 작품으로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거다.

솔직히 말하면 대사 한 줄 한 줄을 내 살과 뼈 마디마디에 새기고 싶은 심정이다.

모든 장면들과 모든 대사들을 날 것들처럼 그대로 살아서 내 속에서 춤을 춘다.

이 작품...

충격과 감탄, 경악과 흥분이란 단어로는 이 작품의 발끝조차도 표현할 수 없다.

마치 내가 그대로 매장되는 느낌이었다.

죽은 아오카스테의 황금브로치로 스스로 눈을 찔러 검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다름아닌 나같다.

그런데 어쩌면 좋나!

뽀족한 죽창이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느낌.

이 뻐근하고 잔인한 아픔을 도대체 어떻해야 감당해야 할까?

어떤 방법으로든 결코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다.

아니! 빠져나오지 않으련다!

 

결정과 선택은 피할 수없는 인간의 숙명!

인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매순간마다

나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오는 그 운명을 향해

나는 과연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운명은 화살과 같아서 자신이 쏜 방향으로 날아간다는데...

내가 운명지어진 신탁(神託)이 나는 두렵다.

 

태어나서는 안 될 운명이 태어나

죽여서는 안되는 사람을 죽이고

결혼해서는 안되는 사람과 결혼을 해

낳아서는 안될 자식들을

낳고 알아서는 안될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구나 

부은 발 "오이디푸스"의 내려진 신탁은 얼마나 가혹하고 잔인하고 극악무도한가!

이 모는 것들,

결코 그가 원했던 것도 아닌데...

그가 알고 행한 일도 아닌데...

아니 오히려 그 비극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 걷고 또 걸었는데...

정해진 운명의 수레바퀴에 갈갈이 찢겨 결국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찌른채 지팡이에 의지에 테베를 떠난 오이디푸스.

그의 마지막 대사를 나는 통곡처럼 삼켰다.

 

"나는 살았고, 그들을 사랑했고,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더 코러스'오이디푸스>

이 작품은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다.

완전히 미친 작품이다.

1000여석의 LG아트 객석을 텅텅 비우고 무대 위에 360석 규모의 객석을 만든 것도 미친 짓이고

고대의 그것처럼 코러스를 이렇게까지 살려낸 서재형 연출도 미쳤고

이 어려운 작품에 이런 가사를 붙인 한아름도 미쳤고

이 느낌을 멜로디로 만든 최우정도 미쳤고

피아노와 사람의 소리로만 이렇게 가차없이 몰아부치는 배우들도 미쳤다.

고통스럽지만 행복했겠다.

이 모든 미친 사람들은!

심지어 이 사람들은 소리를 아주 선명히 보이게, 잡히게 만들었다.

그건 두 가지 감각이 공존하는 공감각의 영역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감각의 탄생이었다.

광기(狂氣) 그 이상의 작품.

 

열린 문을 통과해 어두운 객석을 따라 들어가면서도

검은 장막이 내려진 무대로 올라가면서도

마치 무언가에 홀리고 있다는 느낌때문에 한걸음 한걸음이 난처하고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아주 제의적이고 주술적인 아우라가 무대를 넘어 비어있는 객석까지도 가득하다.

자리에 찾아 앉기조차도 어딘지모르게 망설여졌다.

뇌쇄적이라는 말.

이 작품은 내 뇌 전체를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녹여버렸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내 시선과 심장과 머리와 온몸을 다 움켜쥐고 조여온다.

처음이다.

배우도 아니면서 이 작품의 대사 전채를 통째로 외워버리고 싶다는 생각!

아마도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나는 이 작품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홀로 길을 떠나야했던 오이디푸스의 뒷모습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이 작품은...

원죄처럼 영원히 내 가슴이 남겠다.

 

...... 그는 누군가? 오이디푸스

       자식들을 위해 , 형재를 위해 스스로 길을 떠났다.

       오이디푸스를 보라!

       저 뒷모습을 본 자라면 명심하라.

       누구든 삶의 끝에 이르기 전에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사람으로 태어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지 말라 ......

 

어차피 다가올 멸망이라면...

일말의 망설임 없이 가차없이 다가와주면

좋.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5. 13. 08:33

<윤동주 달을 쏘다>

일시 : 2013.05.06. ~ 2013.05.12.

장소 : CJ 토월극장

극본, 작사 : 한아름

작곡 : 오상준

미술 : 윤정섭

무대디자인 : 최수연

연출 : 권호성

출연 : 김수용, 박영수 (윤동주)/김형기, 이사후, 김백현, 하선진 외

        서울예술단원

 

이 작품...

참 나쁘다.

그리고 너무나 못됐다.

그래서 울컥울컥 설움이 복받친다.

설움보다 더한 눈물과 참혹함으로 도무지 말을 할 수가 없다.

모든 장면이 고통스러웠고, 모든 장면이 황홀했다.

이 좋은 작품을...

이 좋은 내용을...

어쩜 그렇게 고작 일주일만 무대에 올릴 수 있으냔 말이다.

까닥하다가는 못 볼 수도 있었단 말이다.

정말 죽도록 달리고 달려서 겨우 에술의 전당에 도착해서 착석했다.

작년에도 입소문보다 짧은 3일이라는 공연기간 때문에 이 작품을 놓치고 말았었다.

그래서 올해에는 절대로,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이 나이에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런데 어쩌나!

이 작품때문에 아직 나는, 내 마음은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달을 쏘기 위해서,

전속력으로!

그리고 누군가 자꾸 내게 묻는다.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

"사람!"

 

서울예술단의 작품은,

정말이지 아름답고, 처연하고, 그리고 고결하다.

게다가 한아름 작가와 오상준 작곡가의 만남은 뭉클한 감동과 함께 파도같은 희열을 안겨준다.

이 작품은... 이 작품은...

도저히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다.

너무나 죄스럽고 너무나 송구스럽고 너무나 안타까워 

나는 여러번 고개를 숙였다.

또.로.록.

눈물이 떨어진다.

내가 감히 울어도 되나 싶어 나는 또 고개를 숙였다.

윤동주의 시가 이렇게 가슴을 치고 들어올줄은 몰랐다.

청년 윤동주로 분한 박영수의 입에서 낭독되는 시들은 그대로 절규였고,바람이었고, 희망이었다.

시가 모든 것이 될수 있다는 걸,

그 시가 또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아프게 아프게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았다.

"시(詩)"라는 단어가 이렇게 서럽고 아프고 눈물나게 참혹한 아름다움이라는 걸

예전엔 몰랐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내가 지금껏 알고 있었던 윤동주의 시를 완전히 다시 새롭게 알았다.

서시도.

비 오는 날의 인사도.

참회록도,

별 헤는 밤도...

다 아프고 아프고 아픈 시다.

 

뮤지컬 넘버들이 주는 감동은 정말 엄청난다.

윤동주의 솔로곡 "내가 잊었던 것들"과

이선화와의 듀엣곡 "얼마나 좋을까?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부르던 노래 "시는 무엇인가"

형무소에서 송몽규와의 듀엣 "먹고 버텨야 한다"

혼몽한 정신으로 마지막 절규처럼 부르는 마지막 넘버 "달을 쏘다"까지

모든 넘버들이 하나같이 깊은 울림과 떨림이 있다.

이런 작품.

다시 또 만날 수 있을까?

윤동주가 후쿠오마 형무소에서 생채실험 주사를 맞는 장면은

차마 바라볼 수가 없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흑인영가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사이에 몽규와 동주가 나누던 짧은 대사는

무딘 칼로 살을 저며내는 아픔이었다.

오늘은 언제고, 내일은 언제지?

고통스러운 건 오늘이고, 평온한 건 내일이 아닐까?

내일도 고통스런 태양이 뜨면 어쩌지?

서서히 의식을 잃는 윤동주를 보면서

눈물흘리는 것도 죄스러워 나는 참고 참고 또 참았다.

윤동주를 연기한 박영수는

도대체 이 장면들을 어떻게 견뎌낼까?

아무래도 이 작품 끝내고 나면 이 녀석 참 많이 힘들어지겠구나...

안스럽고 안스럽다.

박영수라는 녀석!

탄탄한 기본기를 가진 엄청난  배우가 될 것 같다.

표정도, 연기도, 노래도, 딕션도, 목소리 톤도 배역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20대 청년 안중근의 풋풋함과 젊은 고뇌, 그리고 비탄을 너무나 잘 표현했다.

(이 역할을 노련하게 표현했다면 과연 지금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을까?)

묘한 필모그라피를 갖고 있는 배우다.

연기할 땐 김재범과 정상윤의 섬세함을 떠올리게 하고

노래부를 때는 임태경의 부드러움과 깊이를 떠올리게 한다.

ㅅ발음이 살짝 부정확한 것까지도 임태경과 유사하다.

그러나 연기나 감정표현 면에서는 확실히 임태경보다 훨씬 좋다.

아직 어린 배우라는 걸 생각하면 그의  미래가 무서울 정도로 기대된다.

또 다시 반복해야만 하겠다.

이 녀석을 주시하자!

 

오랜시간 함께 작업을 한 서울예술단원들이 만들어내는 합(合)은 아름답워서 황홀했다.

한 장면 한 장면을 어쩜 그렇게 정성껏 연기를 하던지!

한 사람 한 사람 전부 정성껏 곱게곱게 씀다듬고 보듬어 주고 싶었다.

무대도, 영상도, 음향과 효과도 너무나 좋았다.

일주일이라는 공연 기간이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원망스러울수가 없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곁에 있어주지.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더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더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게.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무사의 마음으로

시리고 차가운 저 달을 쏠 수 있게...

 

좀 더 탄탄한 갈대로 화살을 삼아

무사의 마음으로

무사의 맘으로 달을 쏜다.

통쾌하다

부서지는 저 달빛이

우습구나

쪼개지는 저 그림자

오늘도 내일도 나는 무사의 마음으로

너를 쏜다

시를 쓴다

삶이 쓰다

달을 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8. 22. 08:33


<청춘 18대 1>

극 작 : 한아름
연 출 : 서재형
기 간 : 2011년 7월 23일~2011년 8월 28일
장 소 : 신촌 더 스테이지
출 연 : 오찬우, 김은실, 이원, 김선표, 민대식, 조성호,
         임철수, 김진아, 김나미

또 오랫동안 묵혀놓고 말았다.
잊어버리기 전에 간단하게 기록이라도 해야겠다.
서재형과 한아름 부부.
공연계에 참 괜찮은, 멋진, 그리고 실험적인 젊은 커플이다.
(이런 단어의 조합! 어쩐지 상당히 어색하다. ^^;;)
어찌됐든 이 두 사람이 함께 작업을 한다면 일단 믿고 볼 수 있다.

<청춘, 18대1>
혈기왕성한 건장한 남자가
선량하고 아름다운 한 여자를 위해
18대 1로 싸우는 의협심 가득한 이야기라고 지례 짐작하지는 말자! (그럴 사람도 없겠지만)
그렇다면 이 연극을 나는 뭐라고 말할까?
신파였다가 코믹이었다가 때로는 무성영화같기도 하고...
그러나 이 정체불명의 연극을 보면서 나는 웃고 울고 감동하고 슬펐다.
이런 젠장!


인간은 때론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일에 휘말리면서 의외의 삶을 살게 될 수도 잇다.
죽기를 결심한 사람은 막상 그 순간에 두려움을 느껴 혼자 도망칠 수도 있고
절대 죽지 않겠다는 사람은 웃으며 그 마지막을 즐길 수도 있다.
누가 옳고, 누가 정직한가?
대답은 그 모두가 다 정직하고 옳다!
옮고 그름을 떠나
이 작품은 이 땅의 역사를 살았던
소박하고 성실하고 조금은 미련한 사람들을 위한 구슬픈 진혼가이자 서글픈 살풀이다.
그래서 나는 보는 내내 슬펐고 안스러웠고 아련했고 아팠다.

 

무대 위 배우들의 모습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신인들의 연기를 보는 것 같았다.
서툴렀다는 의미가 아니라 뭐랄까,
뭔가 막 시작하려는 그 첫 결심이 보였다면 이해가 될까?
정말 다들 미친듯이 열심히 해서
나는 이들이 지금 뭘하고 있는지 때때로 혼란스러울 정도다.
일본어와 한국어가 뒤섞이는 대사는
산만할까봐 걱정햇는데 오히려 더 사실적이다.
(기둥을 이용한 한글 자막은 참 괜찮은 아이디어다.)
특히나 이토에 역의 김은실과 취조관 역의 오찬우의 일본어 대사 뉘앙스는 대단하더라.
실제 일본 사람이 들으면 물론 어색한 부분이 많았겠지만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지 생각하니 뭉클해지기까지 한다.
(누군가는 실제로 일본 배우들 캐스팅한 줄 알았단다.)

그야말로 이 작품은 배우들의 "청춘"과 스탭들의 "청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2011년도에 이런 이야기를 무대에 올릴 수 있다는 거,
그리고 관객들에게 찬사를 받고 공감을 받고 있다는 거,
많이 대견하고 그리고 참 아름답다.
MBC 프로그램 "Dance with the star" 때문에 스포츠댄스에 대한 안목들이 많이 높아지긴 했지만
비전문가인 이들이 추는 왈츠, 룸바, 차차차, 퀵스텝도 참 예뻤다. 
물론 어색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긴 하지만
노력이 보이는 작품을 관람한다는 건,
언제나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진심으로 그들이, 그 무대가 참 예뻤다.

바람이 있다면 이 좋은 작품이
나이가 들어도 지금처럼 계속 "청춘"스러울 수 있었으면 하는 거다.
그러니 그대들아!
언제까지나 아름답게 건승하시라!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11. 1. 06:10

<왕세자 실종사건>

극본 : 한아름
연출 : 서재형
작곡, 편곡 : 황호준
출연 : 조휘(왕), 김지현(중전), 
        김대현(이구동), 전미도(홍자숙)
        태국희(감찰상궁), 안세호(하내관), 김선표(의관)
        박지희(보모상궁), 오찬우 (자객)
장소 : 두산아트센타 SPACE 111
일시 : 2010.10.19 ~201.3011.07.
제작 : 극단 죽도록 달린다

한아름 작가와 서재형 연출.
두 부부가 자신들의 동명의 연극을 뮤지컬로 만들었다.
그리고 연극 연출가 서재형의 첫번재  뮤지컬 연출작!

원래 <왕세자 실종사건>은
2005년과 2006년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젊은연극시리즈로 선정되었던 연극이다.
연극으로 공연될 당시에도 참신함과 특이함으로 집중을 많이 받았었는데
(안타깝게도 연극은 보지 못했다)
뮤지컬로 모습을 바꾼 <왕세자 실종사건> 역시도 특이하고 특별하다.
작, 편곡은 소설가 황석영의 아들 황호준이 참여했다.
국악뿐만 아니라 재즈와 클래식, 타악기들가 적절히 결합된 음악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뮤지컬을 나름대로 정의한다면,
"동선(공간)과 소리의 미학"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서재형 연출은,
"특별한 구조장치 없이 단순해 보이는 무대를
배우들의 음악과 노래, 동선과 연기, 조명과 효과음을 이용해
궁궐 내에 수많은 공간들을 만들어
대극장 뮤지컬의 막전환보다 더 역동적으로 느껴지는 장면 변환을 연출하겠다"고 말했는데
전체적으로 그 의도와는 아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처음엔 많이 낯설었다.
만약 연극을 먼저 봤었다면 달랐을까? 생각할만큼...
그런데 극이 진행될수록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그건 스토리나 인물에 대한 매력이 아니라
극의 전개와 사건을 풀어가는 특이한 방식이 주는 독특한 매력이다.
바둑판같은 모양의 무대.
그리고 어찌보면 우스광스러운 배우들의 액션과 과장된 톤의 대사들.
영화의 플래쉬 백 기법을 차용했다는 반복적인 사건의 추적.
이런 묘한 입체감이 처음엔 분명히 당혹스러웠다.
그러다 점점 필름을 돌리는 사람이 바로 나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일체감을 느끼게 만든다.



딱히 왕세자의 실종은 이 작품에서 큰 의미가 없다.
그걸 계기로 여기 저기 밝혀지는 인간 군상들의 비밀과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들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
왕은 왕대로, 중전은 중전대로,
그리고 상궁이나 내관, 궁녀는 또 그들 나름대로
각자 치열하게 숨기려고 하는 비밀이 있고
한편으로는 그 비밀을 기필코 파헤치려는 의도가 있다.
그러니까 극 속에서 왕세자는 또 다시 완벽하게 실종되는 셈이다.
이런 걸 보고 낚였다고 해야하나???



북소리, 바람소리가 제 2의 화자처럼 등장하면서 극의 긴장감을 더해준다.
거기에 구동의 개짓는 소리에 화답하는 자숙의 새소리는
천진하면서도 어쩌지 구슬프다.
(정말 너무 똑같다. 이런 말 좀 그렇긴 하겠지만 개인지 사람인지 구분하기 어려울만큼 똑같다...)
노래는 많이 부족하지만 땀을 뚝뚝 흘리며 구동을 연기하는 김대현의 모습은
연기의 완숙과 미숙을 논하기 이전에 감동적이다.
기복이 심했던 자숙 전미도 덕분에 나까지도 기복이 심해지고 말았지만...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이후에 오랫만에 무대에서 본 중전역의 김지현,
<리틀샾 오브 호러스>의 식인풀 오드리 태국희도 오랫만에 무대에서 만나 반가웠다.
(그녀가 첫 곡 "수상해! 수상해!"를 너무 수상하게 불러서 처음엔 못 알아봤다.)
사실 이 뮤지컬을 예매한 건 순전히 배우 "조휘" 때문이었는데
오랫만에 한동안 못봤던 반가운 배우들을 봐서 혼자 추억에 빠지기도 했다.
뮤지컬을 보면서 저 사람이 누구였지? 계속 가물가물했는데
하나씩 떠오르는 것도 신기했고...
천연덕스럽게 대사를 하던 조휘의 모습도 배우로써 새로운 발견이었다.
(이 배우 목소리톤 참 좋다.)
가벼우면서도 진중하고, 위엄있으면서도 하찮기까지 했던 왕의 모습.
따지고 보면 그게 다 인간의 모습이다.
"왕이라는 게 힘들구나!' 대사처럼
"인간이라는 게 참 힘들구나!" 싶다.

극과 극의 평가가 엇갈릴 작품인 것 같긴 한데
나는 새로운 시도와 접근이 좋았다.
애매한 부분들도 있고,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방황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참신하고 새로운 느낌이었다.
음악과 음향은 아마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있을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꼭 연극 ,왕세자 실종사건>도 챙겨봐야 겠다.
또 다른 좋은 느낌을 줄 것 같아서...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