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8. 5. 17. 08:50

 

<엘렉트라>

 

일시 : 2018.04.26. ~ 2018.05.05.

장소 : LG 아트센터

원작 : 소포클레스 <엘렉트라>

각색 : 고연옥

연출 : 한태숙

출연 : 장영남(엘렉트라), 서이숙(클리탐네스트라), 박완규(아이기스토스), 백성철(오레스테스),

        박수진(크리소테미스) / 예수정, 이남희, 박종태, 민경은, 류용수, 김언중 (코러스)

제작 : LG아트센터

 

딸을 향한 끔찍한 저주의 말로 시작되는 연극의 임펙트는

생각보다 컸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저주의 말을 내뺏는 클리탐네스트라 서이숙의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그 발성과 그 톤과, 그 감정이라니...

무대를 집어삼킨다는 표현도 오히려 부족하다.

그 첫장면에서 직감했다.

이 작품은 <엘렉트라>가 아니라 <클리탐네스트라>라는걸.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서이숙 밖에 안보였다.

7년 만에 연극에 복귀한 장영남은 존재는 가차없이 잊혀졌다.

실제로 내가 느낀 장영남은 의욕도 대단하고 열심히 하는 것도 분명했는데

어딘지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이었다.

초반엔 딕션도 부정확했고 발성도 불안해서

저러다간 목이 다 나갈텐데 혼자 조마조마했다.

 

여라가지로 기대햇던 작품이었다.

고연옥 각색도 기대했고,

한태숙 연출도 기대했고,

서이숙, 장영남 뿐만 아니라 "코러스"로 출연하는 다른 배우들까지도 다 기대가 됐다.

그런데...

나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엘렉트라를 기대했던건 아니다.

한아름 작가, 서재형 연출의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의 느낌이 아닐까 막연히 상상했는데

아니라서 많이 당황했다.

고대 극작가 소포클레스의 비극에 코러스까지 있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내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기대치였다고 해두자.)

자신이 낳은 딸을 죽음으로 몰어넣은 아가멤논에 대한 아내의 복수도,

그런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향한 딸의 복수도,

지금의 이야기 속에선 너무 막연하고 허술하다.

목적은 사라지고 감정만 남은 느낌.

엑렉트라와 클리탐네스트라의 치열한 2인극이었다면 어땠을까 혼자 생각도 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지만

그래도 서이숙의 카리스마 하나는 분명하고 확실하게 남았다.

그거 하나로,

충분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8. 20. 07:51

<유리 동물원>

일시 : 2014.08.06. ~ 2014.08.30.

장소 : 명동예술극장

극작 : 테네시 윌리엄스

연출 : 한태숙

출연 : 김성녀 (아만다), 이승주 (톰), 정운선 (로라), 심완주 (짐)

        최영(첼로)

기획 : 명동예술극장

 

우리에게 <욕망이란는 이름의 전차>로 유명한 테네스 윌리엄스의 또 다른 작품 <유리 동물원>

내가 이 연극을 관람한건 순전히 배우 이승주 때문이다.

연극배우 이승주.

20대의 이승주는 대견스러우면서도 솔직히 이해가 안되는 연기자였는데

지금 무대에 서있는 30대의 이승주는 아주 건장하고 단단한 배우가 됐다.

SBS 공채 연기자에 합격하고도 무대를 선택한 이승주.

(어떻게라도 TV에 한 번 나오려고 안달복달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이렇게나 많은데...)

이유는 어의 없을만큼 간단 명료했다.

TV보다 연극무대가 본인과 더 잘 맞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이 말은 젊음의 허세도 객기도 아니더라.

연극무대에서 한 인물을 살아내는 이승주를 보는 건 매번 짜릿한 기쁨이었다. 

게다가 작품의 편수가 늘어날때마다 확실히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M. 버터플라이> 이후 배우 이승주를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군에 포함시켰다.

 

아만다, 톰, 로라, 심지어 짐까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는 세상을 피해 숨느라 급급하다.

수다와 잔소리, 과거의 영광 속으로, 영화 속으로, 유리 동물원 속으로,

혹은 거짓과 허세 속으로...

현재를 살아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웅켜쥐고 한사코 놓치 않는다.

또아리가 풀리는 순간 그들만의 세상은 유리로 만든 동물처럼 산산조각난다

작품을 보면서 손님에 불과한 "짐"에게조차도 연민이 일었다.

홀로 설 수 없는, 누군가에게 기대져야만 보이는 야망.

전 체하고 나쁜 남자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그의 삶 역시 유리처럼 부서지기 쉬운 삶이다.

빛을 비추면 화려해보이고 그럴 듯해 보이는 유리 동물원.

차라리 그대로 깨져버린다면 아무 문제가 안된다.

문제는 깨진 조각들이 서로 부딪치며 여기저기 남길 상처들이다.

연극을 보는 내낸 나는 그게 참 버겁고 무겁고 힘겹고 아팠다.

내가 톰이라면...

달아났을거다. 분명히!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참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덫이로구나.

 

아만다, 톰, 로라.

"톰"은 <유리 동물원>의 작중 화자이자 등장인물이다.

갈등관계의 중심에 있는 아들이면서 전지적 시점을 가진 해설자이기도 한다.

흐름을 잘못타면 혼란스럽고 산만하게 보일수 있었을텐데 배우 이승수는 참 페이스 조절을 잘하더라.

딕션은 정확했고 연기는 과정된 표현없이 자연스럽고 안정적이었다.

때로는 헐렁하고 개구진 소년같기도,

때로는 광기에 휩싸인 탕아같기도,

때로는 막다른 골목에 홀로 갇혀버린 사람 같기도 했다.

심정적으로 톰에게 참 많이 동화됐다.

상황이 아주 조금은 비슷하기도 했고...

너무 오래, 너무 자주 침묵중인 배우 정운선을 무대에서 봐서 개인적으론 아주  반가웠다.

그녀는 정말 딱 "로라"같은 분위기를 풍기더라.

작품은 전체적인 무대도, 조명도, 배우들 연기는 아주 좋았다.

간혹 뜬금없이 첼로 연주가 삐걱이는게 좀 흠이긴 했지만 ^^

 

테네시 윌리엄스는 확실히 안톤 체흡보다는 덜 난해하고, 더 재미있다.

조금 더 세련되고 모던하고 흥미롭다고나 할까!

혹시라도 너무 어둡고 너무 어려울까봐 걱정했었는데

묵직함과 유쾌함을 다 가진 아주 괜찮은 작품이었다.

재관람의 유혹이 강하게 느껴질만큼...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4. 12. 06:28


일 시 : 2010.04.06 ~2010.05.05
장 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출 연 : 박지일, 서주희, 김세동, 오지혜
극 본 : 야스미나 레자
연 출 : 한태숙



수컷들의 수다, 연극 <아트>의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또 다른 사회 풍자 코메디 연극 <대학살의 신>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는 그 치열(?)하고도 어이없는 상황에 대한 유쾌하면서도 히스테릭한 이야기다.
출연하는 배우들의 내공만으로도 기대가 됐던 작품이다.
초연이라 망설이지 않았느냐고?
대답은 "Never!"다.
배우도 그렇고 연출가(한태숙)도 그렇고 기본 이상은 일단 베이스에 깔고 생각해도 무방한 작품.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100분 동안 두 부부의 기상천외한 행동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이 코메디가 웃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 현실이라는 걸 절감하게 만드는 그 씁쓸함이라니...
글쎄, 이게 우리나라 상황이라면,
미안하지만 솔직히 상상만으로도 겁이 난다.
결코 코메디가 아닐 것만 같아서...
(아이 문제라면 왜 부모들은 이성과 상식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는 걸까?)



이렇게 멀쩡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거실이
(비록 그게 상대편에게 보여지기 위한 가식일지라도 말이다)
이야기의 끝엔 결국 난장판 초토화가 된다.
아주 고상하고 예의바르지만 그러면서도 묘하게 신경전으로 시작되는 연극 <대학살의 신>
이야기의 발단은 분명 11살 사내 아이들이었다.
"그러니까... 4월 3일 오후 5시30분 뒤낭 공원에서 막대기로 중무장한 열한 살의 페르디낭이 우리 아들 브루노의 안면을 정통으로 가격했습니다. 이 결과로 우리 아들 브루노는 앞니 두 개가 나갔고 그 중에서도 오른쪽 앞니는 신경이 끊어졌습니다."
검사가 사건 개요를 읽어나가듯,
피해자 브루노의 엄마 베로니카(오지혜)가 두 부모가 이렇게 모이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고 가해자 페르디앙 부모는 지금 그 "중무장"이란 단어가 몹시 거슬리는 중이다.
그러니까 브루노의 부모는 이 사건을 명백한 "아동 폭력 사태"로 보고
재발 방지를 위해 마녀사냥을 하겠다는 의도가 숨겨져있다.
그러나 모르시는 말씀!
자기 자식이 "마녀사냥"의 희생물이 되는 걸 그냥 보고만 있겠는가?
그 자식이 비록 야만인(?)일지라도 말이다.
페르디앙의 부모는 오히려 철저한 진상규명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폭력의 원인을 누가 유발했는가?"가 중요하다는 입장.
(그 이면엔 당신 아들이 원인제공자라는 노골적인 질책이 담겨있다.)



연극은 다채롭고 그리고 확실히 재미있다.
자기 아들을 다치게 한 아이의 부모에게
우리는 이렇게 교양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일종의 기선 제압 목적으로...)
일부러 비싼 꽃을 사서 집안을 꾸미고 차와 파이를 대접하는 브루노 부부의 교양을 가장한 속물근성과
어찌됐든 사과하기 위해 찾아온 브로노 집에서
끊임없이 전화를 받는 변호사 알랭(박지일)의 모습.
게다가 페르디앙의 엄마 아네뜨(서주희)는 급기야 추대라고 할 수 있는 행동까지 보인다.
멋지게 꾸며놓은 거실에 토사물을 뿜어놓는가하면
젠 체하기 위해 꾸며놓은 꽃들로 거실 여기저기를 그야말로 완벽하게 패대기친다.
(근데 도대체 왜 내 속이 다 시원한거지??? 어찌됐든...)



품격과 교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네 사람.
(순전히 희망사항이지만)
그러나 이야기는 점점 어이없는 분노와 폭력성에 사로잡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고상과 교양이 서서히 분노와 이기의 본능으로 바뀌는 걸 바라보는 건,
유치하면서도 솔직히 뜨끔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식의 문제에 관해서라면
명확한 이성과 지성의 작용이 쉽진 않겠지만
이런 상황이 심심치 않게 현실로 나타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다소(사실은 많이) 민망하고 부끄러워지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부부로서 대비되는 두 커플의 성향(?)도 참 재미있지만
순간순간 편이 바뀌는 모습도 독특한 재미를 준다.
부부로서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어느 순간 남자 대 여자로 또 다시 으르렁거리고
약과 관련되서는 소비자와 공급자의 관계로 으르렁거리고...
이 연극은 일종의 거짓과 은폐.
그리고 교양인의 탈을 쓴 위선에 대한 유쾌한 조롱이라고 할 수 있다.
까발려지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물론 있지만
그것으로 인한 통쾌함은 솔직히 속을 시원하게 만든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남편의 휴대전화를 화병속에 담그는 장면이라던가
붉은 토사물을 거침없이(?) 뿜어내는 야만에 가까운 분출이 주는 즐거움은
분명 엄청난 대체 만족을 주는 카타르시스다.
코믹하면서도 야비함까지 느껴지던 배우 박지일의 핸드폰 받는 표정이라든가
그걸 바라보며 어이없어 하던 브루노 부부의 표정,
그리고 민망해하면서도 어딘지 고소해하는 알랭의 부인 아네트의 표정까지
네 명의 표정 속에 스스럼없이 나 자신의 표정이 겹쳐진다.



<대학살의 신>이란 제목은 지성인인 척 고상을 떨지만,
결국 다들 서로 헐뜯고 싸우는 인간의 잔인함을 조롱하는 말이란다.
연극적인 코믹이 주는 불편함과 유쾌함은
기본기 빵빵한 네 배우들을 만남으로써 그 재미가 한층 더해진다.
나 자신에 대한 속물근성과의 불쾌한 마주침이기도 하지만 
더불에 유쾌한 반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토사물...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게, 제대로, 손 쓸 수도 없을만큼,
대책없이, 황당하게 뿜어낼 수 있었을까?
그게 연기라면... 이건 정말 완전 대단한거다. ^^



오늘 하루의 "지랄 같음"을 호소하는 아네트의 마지막 모습.
한쪽 알이 빠진 선그라스를 쓰고 철퍼덕 퍼져 앉아 있던 모습이 아직도 임펙트 강하게 남아 있다.
그 모습이 하도 나 같아서...
나 역시도 숱한 지랄 같은 하루 속에 대책없이 퍼질러 앉아 있는 중이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