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5. 05:42
새하얀 석회층을 올라가야 볼 수 있는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기원전 190년 페르가몬 왕국의 고대 로마 시대 유적지가 남아있는 곳이다.
히에라폴리스는 '성스러운 도시'라는 의미가 있다는데
예전에 이곳에서 신탁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빈손으로 올라가서 길치의 본문에 충실하게 여기저기 해매고 있었는데
그런 내 모습이 안스러웠나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지나가는 여행자가 travel guide 라는 지도 한 장을 건네줬다.
이 지도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싶을만큼 열심히 체크해가면서 유적지 찾아다녔다.
(물론 땡볕아래... 달랑 물 한 병 들고...)
별로 믿음직스럽지 않지만 그래도 역시 믿을 건 내 두 다리뿐.



* 아폴로 신전(Temple of Apollo)
페르가몬 왕국이 주신으로 모셨던 태양신 아폴로의 신전.
신전 안에 플루토니움(Plutonium)이라는 동굴신전이 있는데
지하의 신 플루토(Pluto) 즉,  하데스(Hades)에게 바친 곳이다.
이 동굴에서 유독가스인 일산화탄소가 분출되었는데
신관이 이 가스를 마시고 최면상태에서 신탁을 전했다고....
플루토니움 외엔 온전한 건물이 남아있지 않고 대리석 기둥 몇 개만 남아있어 아쉬웠다.
그래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대리석 색은 정말 이쁘더라.



* 원형극장 (Roman Teratre)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기원전 2세기에 세워진 로마 극장.
1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는데 보존 상태도 너무 좋고 전망도 멋지다.
파사드 부분에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조각되어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원형극장의 위엄과 웅장함에 개인적으로 많이 놀랐다.
가파른 계단을 굳이 내려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본 모습도 웅장했다.
한창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듯한데 인부는 한 명도 안 보였다.



* 성 빌립 순교 기념당(Martyrium of St. Philip the Apostl)
이 길이 맞나 의심하면서 무성한 풀길을 따라 꽤 올라가야 볼 수 있는 건물.
사도 빌립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단다.
빌립은 80년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이곳에서 자신의 딸과 포교활동을 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히에라폴리스 전체적인 모습은 정말 아름답웠다.
(그리고 여기서 대충의 이동동선을 그릴 수 있었다.)
외따로 떨어진 곳이라 혼자 올라가려니 좀 무섭긴했지만 어쨌든 안 갔으면 후회됐을 곳.
다행히 가다가 다른 여행자 2명을 만나 두려움이 좀 가셨다.
땡볕 아래 숨어있는 거북이도 보고...
(굳이 와서 보라고 해서 또 굳이 가서 봤다.)
팔각당이 조금만 더 남아있었다면 좋았겠다는 바람이...
더불어 술래잡기 하기에 딱 좋은 곳이라는 엉뚱한 생각도 잠깐. ^^



* 도미티아누스 문 (Domitianus Gate)
3개의 연속 아치가 잘 남아있는 문으로 
총독 율리우스 프론티누스가 85년에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로마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로만 게이트(Roman Gate)라고도 불린단다.



* 로마 욕탕(Basilica)
도미티아누스 문을 통과하면 바로 보이는 거대한 두 개의 아치가 있는 전형적인 로마 시대 건축물.
온천을 이용한 치료와 휴양을 위해 만들어진 욕탕 시설.
보수공사를 하는 중인지 완벽하게 돌로 막혀 있어 내부를 볼 수는 없었다.



*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죽은 자의 도시"라는 뜻으로 1000 개가 넘는 묘지가 늘어서 있는 고대의 공동묘지.
병약한 환자들이 히에라폴리스 온천수에 희망을 걸고 많이 찾아왔는데
결과적으로 사망자도 많아지면서 대규모 공동묘지가 형성됐단다.
터키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라고...
처음엔 석관들이 신기해서 한참을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다녔는데
(심지어 신기해하면서 뚜껑이 열린 석관을 들여다보기까지 했다.)
아무도 없이 혼자 걷고 있다는 걸 알고 등골이 섬뜩했던 곳.
땡볕아래 꽁꽁 싸매고 다니느라 꽤나 더웠는데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었다.
서둘러 걸어 나오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깊게 들어갔었나 싶어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던 기억이...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자 절로 큰숨이 쉬어지더라.



파묵칼레는 아무래도 하루  반나절 일정으로 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곳이다.
나중에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면
남쪽에 Roman Gate 부터 북쪽 Necropolis까지 좀 찬찬히 둘러보고 싶다.
메인 도로와 중간중간 있던 교회터와 다른 유적들을 보는 것도 참 좋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수박 겉햩기 식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사이프러스같은 키 큰 나무들이 가득한 Agora 터에도 좀 머물고 싶었었는데...
거짓말처럼 초록 나무들 위, 파란 하늘 속에서 샛노란 페러그라이딩이 보였다.
그 색이 주는 느낌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언젠가 또 이 길을 걸을 날이 있겠지.
새햐얀 석회층을 다시 맨발로 걸어내려오면서
나는 '다음번에..." 라는 약속을 몰래 묻어두고 왔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4. 05:48
아름답고 행복했던 "길"의 기억을 안겨줬던 카파도키아를 떠나 출발한 곳은
하얀 석회층의 도시, 목화의 성 파묵칼레.
8시에 출발한 매트로 야간버스는 10시간을 후에 데니즐리(Denizli)에 도착했다.
워낙에 호객행위가 많고 버스회사에서 운영하는 세르비스가 많디 않다고 해서
메트로 세르비스를 호객차량으로 오인해 약간의 언성(?)이 오갔다.
나중에 티켓을 확인해보니 데즈즐리가 아니라 파묵칼레까지 가는 버스가 맞았다...
도착해서 칼레호텔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메뉴에 신라면이라고 써있어서 주문했는데 먹어보니까 확실히 신라면은 아닌 것 같고...)
주인이 한국인이라  한국음식을 많이 파는 숙소겸 음식점인 칼레호텔.
음식점 메뉴판도 한글로 귀염성있게 써있다. (닭볶음탕, 수제비, 비빔밥, 신라면 등등등)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숙소으로 유명하다.
칼레호텔 테라스에서 보는 석회층의 일몰도 아름답기로 소문이 났고...
게다가 이곳에서 파묵칼레 입장료를 사면 2TL 할인된 가격인 18TL에 살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세계문화유산 관강지 입장료를 그냥 호텔겸 음식점에서, 그것도 10%나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다니...
정말 이게 가능한가???
원래 일정은 파묵칼레에서 1박을 하고 셀축,에페스로 넘어갈 계획이었는데
여차여차해서 그날 바로 이즈미르에서 비행기로 이스탄불에 가야만 했다.
그래서 일단 파묵칼레라는 버스회사에서 이즈미르행 버스를 예약(42TL)하고 짐을 무료로 맡겼다.
(데니즐리에도 짐보관소가 있긴한데 3TL의 보관료를 받는다.)
이곳 사장님이 자기 부인이 일본인라면서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이라고 대답하니 "안녕하세요?" 라며 무지 해맑게 인사를 하셨다.
(칼레호텔에서 일하시는 나이 지긋한 터키 아주머니가 이분 누님이시라고.)
어쨌든 아침도 든든히 먹고, 버스표도 예약하고, 짐도 맡기고,
간편한 복장과 마음으로 석회층을 향해 올라갔다.



파묵칼레의 볼거리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석회층(Travelten)과
고대 로마 시대 유적지인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고고학 박물관과 카클륵 동굴, 일몰도 보고 싶었는데...
이런 조급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새하얀 석회층의 신비는 바쁜 여행자의 발길을 붙들기에 충분했다.
신비감으로 가득한 이곳의 나이는 무려 1만 4000년 정도라나!
지하에 있는 석회 성분의 따뜻한 물이 땅 위로 솟아나와 언덕을 흐르면서 1만 4000년 동안계속 쌓여
지금과 같은 거대한 석회 언덕이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지금은 석회층 보호와 온천수량 감소로 출입을 일부 통제하고 온천수도 소량만 내보내고 있다는데
낯선 여행자의 눈엔 그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온 것 같다.
(그렇다면 과거엔 이것보다 더 많은 물이 흘렀다는 의미? 와~~~)
이곳에서 나오는 물은 칼슘과 이산화탄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어서
예전엔 카펫과 비단을 직조할 때 표백제로도 쓰였다니 참여러가지로  다재다능하신(?) 온천수가 아닐 수 없다.



한참을 보고 있으니 순간 시간과 공간의 감각이 모호해진다.
새하얀 눈밭 위에서 비키니를 입은 사람을 보고 있다는 신비감에 가까운 착각!
한쪽은 분명 하얀 설원인데, 살짝 고개만 돌려서 초록빛 나무들이 무성한 곳이 눈 앞에 보이고...
신발을 벗고 올라가면서 이 믿어지지 않는, 대단히, 엄청나게 신비한 나라를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온천수가 고인 연못(?)엔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온천욕을 즐기고 있다.
수영복 천지인 곳에서 꽁꽁 싸매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우습기도하고 살짝 민망하기도 하더라.
(햇빛 알러지만 아니었으면, 나도 비키니를 입었을까? 글쎄... 그건... 아무래도... ^^)
석회층을 올라갈 때 썬크림과 물, 선글라스가 필수라는데
선글라스는 과감히 포기하고 가방에 넣어버렸다.
아무래도 선그라스를 끼면 색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까...
대신 모자를 있는데로 푹 눌러쓰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이곳에서 넘어지면 정말 대형사고다 싶어 무지 조심했다)
꼭대기에 올라가서 신발을 신고 내려다본 모습은
내가 방금 지나온 곳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비감이 가득했다.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석회층!
내게 또 다른 색다른 느낌의 길과 걸음을 안겨준 곳이다.



터키 여행을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된 건,
내가 산이나 바다, 계곡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걸을 수 있는 길.
내 두 발로 도장찍듯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가는 길!
그 "길"의 목록에 이곳 목화의 성, 파묵칼레 석회층 오르는 길도 단단히 한 몫을 했다.
아름다운 길!
Travelten!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