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12. 12. 08:16

<로맨티스트 죽이기>

부제 : 2012 국립극단 삼국유사 프로젝트

일시 : 2012.11.24. ~ 2012.12.09.

장소 : 백성희장민호 극장

극작 : 차근호

무대감독 : 변오영

무술감독 : 이국호

연출 : 양정웅

출연 : 한윤춘(김달), 전중용(임종), 정승길(도화), 오민석(진평왕),

        이승주(비형), 이국호, 김남중, 성민재, 계지현, 김도완, 풍성호,

        권신우, 송준석, 이창규, 영인

 

<루시드 드림>의 차근호 작가와 <한여름 밤의 꿈> 양정웅 연출의 만남!

삼국유사 프로젝트의 마지막 작품은 정말 마지막답게 끝장이었다.

2시간 동안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 속에서 황홀하고 또 황홀했다.

이로써 9월 <꿈>으로 시작된 3개월간의 삼국유사 프로젝트 대장정도 모두 끝났다.

<꿈>, <꽃이다>, <나의 처용은 밤이면 양들을 사러 마켓에 간다>, <멸>, <로맨티스트 죽이기>

이상하다...

다 끝났다고 생각하니 내가 뭐라고 가슴 한 켠이 휑~~하다.

황홀했고, 경외감이 들만큼 엄청난 여행이었다.

이 여행의 종착지였던 <로맨티스트 죽이기>

이 작품은 삼국유사 "도화녀와 비형량" 설화가 그 모티브란다.

작품의 거대함과 묵직함은 가히 언급하기 힘들 정도의 묵시론이었다.

뭐라고 운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속.수.무.책.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나는 확실히 그런 상태였다.

 

로맨티스트가 꿈꾸는 세상과 리얼리스트가 꿈꾸는 세상!

우리는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그리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왕족과 귀족의 나라, 그 1500년전 신라가

우리가 사는 이 아비규환의 세상과 똑같은 현재의 모습으로 무대 위에 그려진다.

(게다가 같은 편 같은 왕족과 귀족은 또 자기들끼리 권력을 위해 또 열심히 싸운다.)

감각적인 영상과 심플한 무대.

클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조명과 음악.

그리고 15명의 남자들이 보여주는 현란하고 격동적인 아크로바틱의 세계는 눈을 휘황찬란하게 만든다.

(저건 사람이 할 수 있는 몸놀림이 아니야... 등짝을 열면 분명히 에너자이저가 들어있을거야...)

개인적으로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작품을 싫어하는데

이 작품은 거부감 전혀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봤다.]

 

로맨티스트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단다.

그래서 로맨티스트는 언제나 리얼리스트에게 죽임을 당한단다.

섬뜩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했던 로맨티스트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라서... 

로맨티스트는 수평과 대칭의 세상을 꿈꾸는데

리얼리스트는 수직과 대립의 세상을 꿈꾼다.

리얼리스트의 세계는 그래서 자기 밥그릇이 중요하다.

그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그렇게 기를 쓰고 남의 밥그릇 뺏기에 혈안이다.

그 밥그릇 싸움에 국민들 등짝은 갈라지고 피고름이 흐른다.

명예라는 건 개나 물어가라지!

리얼리스트의 세계에서는 로맨티스트는 도깨비가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탈을 쓴 귀면(鬼面)의 도깨비.

도깨비로 태어나 도깨비로 죽는 이 땅의 숱한 풀잎들의 흔들림이 서럽다.

 

세상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

로맨티스트, 리얼리스트, 그리고 로맨티스트를 가장한 리얼리스트.

김달과 비형, 그리고 도화로 대변되는 그 세계가,

어쩌자고 이 세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가 말이다!

조직폭력단의 비호를 받는 건설사업과 끊이지 않는 통치자의 친인척 비리.

정치와 경제의 오래고 끈질긴 유착관계.

그래서 사보타주(sabotage)가 생존의 필수조건이 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로맨티스트 죽이기>

이 작품은 어쩌면 이 세계를 향한 격정적이고 간절한 외침이자 경고인지도 모르겠다.

 

배우가 무대 크루이기도 했던 이 작품.

아주 의도적인 구성이었다는 걸 작품을 보고 난 후 이해했다.

배우들은 한 번 무대 위로 오르면

공연이 끝날때까지 계속 무대 위에 머무른다. 

양쪽 사이드에 앉아서 무대 크루 역할을 하거나 의상을 교체하면서 다음 장면을 준비한다.

자칫하면 산만해질 수도 있었을텐데 동선과 무대 이용을 참 효과적으로 잘 다듬었다.

밥 딜런의 노래 "Knocking On Heaven's Door"도 끝장날만큼 멋진 활용이자 상징이었다.

(이렇게 멋져도 되는 건가!)

 

배우들의 연기는...

감히 뭐라 말도 못하겠다.

특히 김달 역의 한윤춘 배우는 경외심 그 이상이다.

단지 파격적인 노출을 했대서가 아니다.

왜 한윤춘이라는 배우를 지금에서야 알았나 가슴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완전히 장악했고 끝까지 놓치 않았다.

솔직히 무시무시한 공포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거대하고 위험한 배우, 한윤춘!

김달보다 배우 한유춘이 더 도깨비같다.

 

아무래도 난 도깨비불을 봐버린 것 같다.

오랫만에 제대로 홀렸다...

 

* 비형 역의 배우 이승수도 놀랍다.

  <내 심장을 쏴라!>에서도 인상적이었는데 어느 틈에 이렇게 멋진 배우가 되버렸을까?

  많이 놀랐다.

  이름은 그 이승수가 맞는데 정말 그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과 연기라서...

  이 작품!

  안 본 사람들은 땅을 치고 후회할거다!

  배우들의 목소리에 홀린 기회를 잃어버린 건 정말이지 애통한 일이 될거다.

  (작품에 나오는 모든 배우들의 목소리... 와... 이건 정말 꿈이다!)

  갑자기 루저에서 승자가 된 듯한 이 승리감!

  정말 두고두고 손에 꼽을 작품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