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8. 8. 17. 13:20

성 마틴 성당을 등지고 서면

블레드성(Blejski Grad)으로 올라가는 작은 길이 보인다.

처음엔 좁은 산길이었겠지만

지금은 저렇게 반듯한 계단으로 끝까지 이어진다.

살짝 아쉽더라.

풀냄새, 나무 냄새, 흙냄새를 맡으며 올라가는 길이

흙길 그대로였다면 참 좋았을텐데...

 

 

렌트한 자전거를 반납하고

블레드성에 올라간 시간은 오후 4시 45분.

안내책자엔 20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는데 실제론 10분 정도 걸린다.

모든 여행객들이 그렇듯 나 녁시 화창한 날씨를 기대했건만

하늘은 야속하게도 흐리기만 하다.

그래도 혹시 거짓말처럼 구름이 걷히는 기적이 일어날수도 모르니까...

티켓 가격은 11uro 유로.

이곳 역시도 사람이 많지 않아 번잡함과 소란스러움을 피할 수 있었다.

퍽 행복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결국 날은 맑아지지 않았지

그래서 에메랄드빛 호수 위로 보석처럼 빛나는 햇살을 보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레드성에서 내려다 블레드성은

충분히, 아니 그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날씨.

그건 아무 것도 아니다.

적어도 이곳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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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8. 8. 16. 08:07

블레드의 교구성당인 St. Martin church은

1905년에 만들어진 성당이다.

유럽 대부분의 성당들이 몇 백 년 정도됐으니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성당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일종의 현대식 건물^^

정확히 말하면,

최초의 성당은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에 이곳에 지어졌단다.

그러니까 계속 성당터로 어어지면서 블레드를 지키고 있었다는 뜻.

블레드의 터줏대감 ^^

 

 

성당 앞뜰은 경계가 따로 없어 애매하지만

슬로베니아 출신의 유명한 건축가가 디자인한 정원이란다.

성모자상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모습이 흐린 하늘 아래 고요했다.

INRI

가시 멸류관을 쓴 예수의 머리 위에 쓰여진 글의 뜻은,

"유대인의 임금, 나사렛 예수"다.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

뭔가 성스럽고 거룩한 명패같지만 사실은 예수를 놀리기 위한 죄패다.

"빌라도는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달게 하였는데.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사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 - 요한복음 19장

빌라도는 알았을까?

자신이 예수를 조롱하기 위해 쓴 죄패가

이렇게 "성(聖)"의 증거가 됐다는걸...

욕(慾)은 성(聖)을 이기지 못한다.

 

 

주재단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온화했

내부의 프레스코화는 엄격해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카메라에 프레스코화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처음엔 들어가기조차 망설여져

유리문 밖에서 기웃거렸다.

세상과 완전히 구분된 듯한 느낌.

날이 흐리고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되짚게 하는 침묵 속에서

나 역시 침묵으로 한참을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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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8. 8. 14. 08:15

블레드성에서 바라본 풍경.

난 이 뷰가 참 좋다.

깍아지른듯한 절벽 위에 서있는 블레드성과

블레드의 교구성당인 st. Martin 성당이 나란히 보이는 뷰는

보면 볼수록 사람을 평온하게 만드는 풍경이다.

그 높낮이가 주는 미묘한 조화도 아름답고

뒤로 펼쳐지는 눈덮인 알프스 산맥과 구름의 조화도 신비롭다.

거짓말같은 풍경이라지만 이곳은 그 표현조차도 틀리다.

거짓말이어야만 말이 되는 풍경.

정확히 그랬다.

 

 

유럽은 어디를 가든 보수중이다.

멀리 블레드성도 우뚝 솟은 타워크레인이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런데 저 타워크레인은 어떻게 저기에 올라갔을까?

해체해서 조립한게 아니라면

(매우 무식한 소리인가....)

헬기로 올렸다는건데 것도 참 신기하다.

보수중인건 맞나 싶었는데

크레인이 수직이었다 직각이었다 바뀌는걸 보니

열일중인게 맞는것 같다.

나중에라도 보수가 끝난 블레드성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가능하진 않을것 같아 섭섭했다.

 

오후 2시 40분.

돌아가는 뱃시간에 맞춰 아까 탔던 플레트나에 올라탔다.

같이 타고 왔던 사람 몇몇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헐...!

타고 들어온 배만 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여행전에 서칭한 내용은 다 그랬는데...)

어차파 성에 들어온 사람은 다 배를 타고 나가야하니

인원만 차면 어떤 배를 타든 상관이 없었던거다.

실제로 내가 탄 플레트나도 구면과 초면이 7:3  정도였다.

미리 알았더라면 성모 승천 성당에 들어가서 종도 쳐보고

탑에도 올라가봤을텐데.... 

다시 내리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아재 출발할거라고 앉으란다.

젠장! 망했다.

하긴 배를 타면서 왕복요금(14uro)도 지불했으니 다시 달라고 하기도 좀 난감하다.

아쉬움과 섭섭함을 또 남겨둘 수밖에...

선착장에 돌아오니 나무테크 한켠에 세워둔 자전거가 나를 맞이한다.

세상에...

저 자전거가 뭐라고 이렇게 반가울수가...

걱정했더랬는데 혼자서도 잘 놀아 스스로 기특해하는 중이다.

두루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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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8. 8. 13. 09:06

오후 1시 20분 플레트나를 타고 블레드섬에 들어갔다.

40분 조금 더 걸렸던 것 같다.

요금은 나오는 배편에 계산하면 된단다.

헤엄쳐서 나올게 아니라면 어찌됐든 다시 배는 타야 하니까.

내릴때 플레트나 선장(?)님께서 돌아가는 배 시간을 말해줬는데

2시 40분이란다.

작은 섬이라 둘러보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지만

천천히 둘러보길 좋아하는 내겐 너무 빠듯한 시간이다.

방법이 없다.

서두르는 수밖에...

 

 

우리가 내린 곳은 블레드섬의 뒷쪽이었다.

처음 도착했을땐 사진으로 본 것 보다 계단이 좁아 놀랐었다.

사진과 실물이 참 많이 다르구나 생각했는데

올라가서 보니 사진으로 봤던 넓은 계단은 반대쪽이더라.

(살짝 실망할뻔^^)

 

 

일단 1일 1젤라토(2uro)부터 실행했다.

망고맛을 선택했는데 당충전하기에 제격인 맛이었다.

섬을 한바뀌 천천히 걸어다녔더니 시간이 벌써 25분이 지났다.

성모 승천 성당과 그 옆의 탑은 별도의 입장료를 냐여 들어갈 수 있는데

기다리는 줄을 보고 빠른 속도로 포기했다.

성당 안엔 "소원의 종"을이 좀 아쉽긴 했지만

유리벽을 통해 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40분이란 시간은 짧아도 너~~무 짧다.

 

 

"수영금지" 안내판이 너무 귀여워 한 컷 담았고,

햇빛에 따라 물빛이 변하는 모습에 한찬 넋을 빼았겼다.

가능만 하다면...

이대로 이 섬에 숨어있어도 좋을 것 같다.

그래볼까?

정말!

어차피 날 찾을 사람 아무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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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8. 8. 10. 13:53

자전거를 세워두고 자물쇠를 채웠다.

블레드섬을 가기 위해서.

날씨도 너무 좋았고

마침 플레트나 선착장을 지나가는 중이었고,

그리고 눈 앞에 저렇게 광광객을 기다리는 플레트나가 보이고...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이

플레트나 타기 딱 좋은 순간!

 

 

블레드섬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블레드의 전통 나룻배 플레트나를 타는 것.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소박함이 오히려 더 다정스러운 플레트나.

배 하나 하나마다 정성껏 관리하고 있다는게 느껴져 따뜻했다.

니까지 10명이 한 배에 탔고

뱃살 두둑한 저 아저씨가 우리를 블레드성으로 안내했다.

100%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플레트나.

아주아주 정직하고, 아주아주 착실한 동력에 절로 감사함이 느껴졌다.

 

 

오후 1시 20분 출발한 플레트나.

40분 가까이 가는 동안 함께 탄 사람들의 어깨를 피해가며 찍은 사진들.

까마득한 절벽 위의 블레드성과

블레드의 성모 마리아 승천 성당은 렌즈를 몇 번씩 바꿔가며 최대한 당겨 찍었다.

출발하기전,

그렇게 무섭고 겁을 내면서도

이렇게 매번 여행을 꿈꾸고 희망하고 떠나는 이유는

다 이것 때문이다.

나를 소중한 사람이라 느끼게 해주는 이 풍경들.

살고 싶고, 건강하고 싶고,

돈을 많이 벌고 싶게 만드는 단 하나.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일했다.

다시 떠나기 위해서!

또 다른 풍경을 꿈꾸기 위해!

 

Cheer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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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8. 8. 9. 10:11

블레드에서 내가 제일 처음 한 건,

바로 bike rental.

다행히 hostel reception에서 쉽게 빌릴 수 있었다.

요금은,

기본 2시간은 5uro,

6시간은 10uro, 하루 24시간은 15uro.

이번 여행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이기도 했다.

슬로베니아 블레드에서 자전거 타는게.

그래서 가방을 맡기고 자전거부터 렌트했다.

2시간은 어딘지 많이 섭섭할 것 같아 6시간을 선택했다.

파란 자전거에 헬멧과 자물쇠까지 건네 받고

브레이크와 기어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호기롭게 출발했다.

 

 

자전거 성능이 얼마나 좋은지

발을 몇 번 구르지도 않았는데 쌩~~ 하고 나간다.

자전거 도로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산책로로 가는거라 오가는 사람들도 피해야 하고

높지는 않지만 오르락 내리락하는 길이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내가 다치는건 상관없는데

낯선 타국에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건 아닌가 싶어서...

처음 자전거를 빌릴때만해도

사진따위 찍지도 말고 그냥 한 바퀴 돌아보자 작정했는데

결룩은 그러지 못했다.

겁도 났고, 얇은 바지 때문에 충격이 심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풍경이 눈에 밟혀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블레드성과 블레드섬.

그리고 블레드에만 있는 무동력배 플레트나.

예쁜애 옆에 예쁜애 그 옆에 또 예쁜애.

넋을 잃게 하는 풍경이다.

블레드의 포토포인트 중 한 곳인 빨간 하트.

저곳에서도 멈췄는데 어쩌다보니 내가 사진사가 되어 있더라.

각국에서 온 연인들과

한 무리의 한국인 단체 관광객까지.

열 다섯장 정도 찍은것 같다.

그 중에 한국 관광객 한 분이 내게 여기 사느냐고 묻는다.

맨얼굴에 운동복입고 자전거 끌고 다니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관광객처럼 보이진 않았나보다.

"저도 여행왔어요"

라고 했더니 "혼자서?"라고 묻는다.

"네" 라고 했더니 멋지단다.

젊을때 혼자 많이 다니라고...

근데요,

죄송하지만 왜 자꾸 전한테 반말하세요?

저도 나이로 치면 어디가서 안빠지는데...

라고! 말하진 않았다.

그냥 멋지다는 말만 기억하는 걸로!

Ha Ha Ha~~~!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8. 8. 14:05

원래 일정은 Bled 2박이었는데 마지막에 1박으로 바꿨다.

새벽에 이동하는게 부담스러워 내린 결정이었는데

결론적으론 잘 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2박에서 1박으로 줄어든 블레드 숙소를 찾아가는 길.

Ace of Spades hostel

https://www.aoshostel.com/the-hostel 

이번 여행에서 두번째로 어렵게 찾은 숙소.

(첫번째는 Piran)

내리쬐는 땡볕에 살은 타고, 땀은 흐르고,

숙소는 못찾겠고,..

같은 길을 도대체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 했는지 셀 수조차 없다.

버스터미널에서 도보 7분이라고 했고

구글맵도 도착했다고 나오는데

아무리봐도 "Ace of Spades hostel" 라는 이름이 안보이는거다.

마켓 주인에게 물어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물어보고

버스터미널로 다시 가서 되짚어보고...

족히 1시간은 헤맸던 것 같다.

 

 

세상에...

이러니 못찾지.

난 그래도 입구에 호스텔 이름 정도는 써있을 줄 알았다.

저기 보이는  Reception이 일종의 office 였다.

castle hostel 1004, Ace of Spades hostel, Qeen of hearts hostel.

세 곳의 호스텔을 통합해서 관리하는 리셉션.

저 앞을 그렇게 여러번 지나다녔으면서 안내판을 너무 늦게 발견했던거다.

현지 투어 예약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맨 호스텔이 저 하얀 건물이다.

도대체 저 숙소를... 어떻게 찾느냔 말이다.

텅 비워둔 하얀 벽에 호스텔 이름이라도 써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제발 좀 그렇게 해주세요....저 정말 힘들었어요...)

 

 

Ace of Spades hostel은 더도 덜도 말고 딱 호스텔스러웠다.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 독실로 예약은 했지만

어떤 방에 묵든 주방, 샤워실, 화장실은 공용이다.

(난 뭐 이런거 개의치 않으니까)

예약한 3층 방에 올라갔더니 좁은 방을 가득 채운건 이층 침대가 날 맞이한다.

헐... 몹시 좁구나.

그래도 2층에 작은 창이 있어서 누우면 하늘이 보여 아주 좋았다.

주방도 깔끔했고,

야외 테이블과 벽을 채운 그림도 인상적이다.

그런데... 이게 뭐지???

그렇게 한참을 찾았던 호스텔 이름을 저 벽에서 발견했다.

조용히 밀려드는 배신감...

......

"꼭 이래야만 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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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o해도 괜찮아2018. 8. 7. 08:21

날이 덥다....에서 끝나면 좋을텐데

덥다라는 말이 부러울 정도의 날씨다.

그래서,

못하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운동을 못하고 있고,

주말에 즐겨 탔던 자전거도 못타고 있고,

개인적인 여행기도 못올리고 있고.

식사도 잘 못하고 있고,

잠도 못자고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퇴근을 못하고 있다.

 

커튼도 없고, 에어컨도 없는,

큰 일 대로변에 서있는 9층짜리 나홀로 아파트 꼭대기층은

살벌한 옥탑방 실사판이다.

늦은 밤 현관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하루 내내 통창으로 들어온 햇빛으로 달궈진 아파트는 보일러가 터진건 아닌가 의심케한다.

걸을때마다 발바닥에 그대로 전해지는 뜨거움.

에어컨을 사거나, 집을 팔거나.

아무래도 양당간에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다.

사실 요즘은 일요일에도 병원에 나온다.

아니 나올 수 밖에 없다.

집에 있다가는 온열질환에 결려 위급상황이 발생할 것만 같아서...

집순이의 품위가 정말이지 말이 아니다.

이 난민생활이 8월까지 지속되는건 아닌가 슬슬 겁이 난다.

좀 바보가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이러다 뇌가 녹아내리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못하고 있는 것들이 지금도 너무 많은데

이 상태라면 못하고 있는 것들이 점점 더 생길것 같다.

놔버리자, 다 놔버리자 하면서도

이대로 영영 놔지게 되는건 아닐까 걱정된다.

 

대단찮은 샮이지만

못하고 있는 것들이

하고 있는 것들로 바뀔 날을 기다리며...

Posted by Book끄-Book끄
soso해도 괜찮아2018. 8. 6. 19:15

멀리서 보면 지구는 아무런 관심도끌지 못할 곳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르다. 다시 이 빛나는 점을 보라. 그것음 바로 여기, 우리 집,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아는, 들어 본 모든 사람이 그 위에 있거나 있었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 수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 이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민, 서로 사랑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아이들, 발명가와 개척자, 윤리 도덕의 교사, 부패한 정치가, '슈퍼스타'와 '초인적 지도자', 성자와 죄인 등 인류 역사의 모든 것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 장군과 황제들이 이 작은 점의 한 귀퉁이를 아주 잠깐 지배하려고 흐르게 했던 유혈의 강을 생각해 보라, 또 이 작은 점의 어느 한구석의 주민들이 거의 구별할 수없는 다른 한구석 주민들에게 저지른 잔인한 행위를, 그들은 얼마나 자주 서로 오해했고, 서로 죽이려고 얼마나 날뛰었고, 얼마나 지독하게 서로를 미워했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의 거만함,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과신, 우리가 우주에서 어떤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망상은 이 엷은 빛나는 점의 모습에서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되었다. 우리 행성은 우주의 어둠에 크게 둘러싸인 외로운 티끌 하나에 지나지않는다.  -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2014년의 경제적 파이는 1500년보다 크지만 분배는 너무나 불공평하다.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한 아프리카 농부와 인도네시아 노동자가 얻는 식량은 500년 전보다 더 적다. 인류와 세계 경제는 성장을 거듭했지만 기아와 궁핍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더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기대수명, 유아사망률, 칼로리 섭취량 같은 물질적 기준으로 보면 2014년 평균적 인간의 생활수준은 인구가 크게 늘었는데도 100년 전보다 상당히 나아졌다. 하지만 모든 경제적 파이에는 원자재와 에너지가 들어간다. 어두운 결말을 예언하는 사람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조만간 우리 지구의 원자재와 에너지를 고갈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7만 년 전 아프라카 한구석에 살았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동물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전체의 주인이자 생태계 파괴자가 되었고 이젠 신이 되려는 참이다. 그들은 창조와 파괴라는 신의 권능을 가질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지만 불행하게도 자랑스러운 업적이라고 할 만한 것을 이룬 적은 없다. 환경을 정복하고, 식량 생산을 늘리고, 도시와 제국을 세우고, 넓은 교역망을 구축했지만 개별 사피엔스의 복지를 개선하지 못했고, 다른 동물에게는 큰 불행을 안겨 주었다. 우주왕복선을 만들었지만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힘은 세지만 책임 의식은 없고, 안락함과 즐거움만 추구하지만 만족할 줄 모른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은 많고 책임은 지지 않는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지구 온난화, 해수면 상승, 광범위한 오염은 지구를 우리 종이 살기에 부적합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자연 파괴'라고 하지만 사실은 파괴가 아니라 변형이다. 자연은 파괴되지 않는다. 6,500만 년 전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 공룡을 쓸어버렸지만, 그럼으로써 포유류가 번성할 길이 열렸다. 인류는 많은 종을 절멸하고 있으며 자기 자신도 멸종시킬지 모른다. 하지만 들쥐와 바퀴벌레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으며 핵무기로 인한 아마겟돈의 폐허에도 살아남을 공산이 크다. 6,500만 년 후에는 지능 높은 쥐들이 인류가 일으킨 대량살상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아볼지도 모른다.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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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o해도 괜찮아2018. 8. 3. 13:55

유시민 작가의 신작 <역사의 역사>를 읽고 있다.

유시민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유시만 방식으로 표현해보자)

첫째, 신뢰할 수 있는 글이라서 좋고

둘째, 박학다식을 뽐내지 않는 겸손한 글이라서 좋고

셋째, 내 얄팍한 '앎"에 깊이를 더하는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글이라 좋다.

그 중에서 글이 주는 신뢰성.

그게 내게 유시민 작가를 좋아하고 그의 글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다.

 

신뢰(信賴)

믿을 신(新), 의지할 뢰(賴) 

믿고 의지한다...

아름다운 뜻인지만 그 아름다움만큼 무서운 말이다.

신뢰라는 말 속엔 쌍방에 대한 책임과 존중이 숨어있다.

나는,

담배를 피우는 요리사의 손을 신뢰하지 않고,

사랑이 담겨있지 않은 어린이집 교사의 눈을 믿지 않고,

자녀에게 핸드폰 하지 말라면서 정작 자신은 핸드폰 게임을 빠져있는 부모를 믿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는 책방 주인도,

빵을 싫어하는 빵집 주인도,

직원에게 반말하는 상사와 고용주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런 사람들이, 이런 상황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진 못하지만

그래, 그럴수도 있지... 라는 마음은 도저히 안생긴다.

일종의 프로 불만러로 비춰지는 것도 싫지만

네가 뭔 상관이야 하는 눈길을 받아내는게 더 싫다.

일종의 말줄임표...로 마감.

 

"명확"하다는건 참 좋은거다.

오해의 소지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고,

타협과 이해의 여지까지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점점 버거워진다.

명확하지 않은 책을 읽다보면

인내심도 업그레이드 되지만 그만큼 피로도도 급상승한.

책 속으로 피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몹시 난감한 상황.

 

옆길로 새긴했지만

유시민 작가의 글이 편한 이유,

내겐 그렇다

어렵지만 수월하고,

힘들지만 편하다.

이해가... 될까?

Posted by Book끄-Book끄